All Chapters of 잿빛 회상 속 너를 만나다.: Chapter 41 - Chapter 50

65 Chapters

EP 41. 테이블 및의 열기

가정집을 개조한 듯한 스키야키 전문점.얼어붙은 유후인의 오이타 강변이 한 폭의 병풍처럼 스산하게 펼쳐져 있었다.유진은 고기 종류별로 욕심껏 잔뜩 시켜놓고는 정작 몇 점 먹지도 못한 채,나란히 앉은 요스케만 연신 달달 볶아댔다.“이거 안 먹고 가면, 주인이 음식이 맛없나 걱정할 텐데… 좀 팍팍 먹어봐요.”요스케는 기가 막힌다는 듯 실소를 터뜨렸다.“그런 걱정은 안해도 돼. 아까 주문 할 때 주인이 너 쳐다보는 거 못 봤어? 그나마 내 덩치 보고 대식가인가 보다 하고 다 준 거지. 8인분을 우리 둘이 어떻게 다 먹어?”“아…. 크렘블레도 먹어야 하는데…”유진은 미리 포장해 온 대형 디저트 쇼핑백을 바라봤다.“이번 여행으로 배웠네. 너… 절대 밥 굶기면 안되는 거. 아주 눈이 돌았어.”“그니까 왜 채식을 먹여가지고. 난 완전 고기 체질인데. 거기다 여기 길거리 맛집 천지고.”“그렇게 먹고 어떻게 이렇게 말랐지?”“왜 걱정 돼요? 나중에 하마 될까 봐?”순간 상상이 됐다. 근데 그래도 귀여워서 미칠 것 같았다.“그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육덕미가 있으니까… 너 살이 되게 말캉하고 하애서 모찌 같은 것 같아.”“미안한데. 그런 기대는 사절할게요. 부모님도 완전 대식가들인데 빼빼 말랐거든요.”“하하하… 아쉽네.”그는 아쉬운 마음에 테이블 밑으로 손을 넣어서 유진의 연약한 허벅지 안쪽을 살짝 꼬집었다.그 야릇한 침범에.유진은 도망치는 대신, 손을 뻗어 그의 손등 위로 깊숙이 손깍지를 끼며 붙잡았다.그러고는 그의 단단한 손길을 자신의 은밀한 안쪽 깊은 곳으로 더 노골적으로 유도해 끌어당겼다.순간 통제력을 상실한 그의 거친 숨결이 반사신경처럼 툭 터져 나왔다.그 야릇한 숨결을 막듯 그녀가 그의 입술을 훔쳤다.입술과 혀가 사정없이 뒤엉키는 찰나.유진이 머금고 있던 차가운 하이볼의 톡 쏘는 짜릿한 기포가 요스케의 목젖 너머로 그대로 흘러들어왔다.동시에 요스케의 바지 아래 터질 듯 팽창한 중심 위를 그녀의 손가락 끝이 남자를 약올리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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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42. 부산에서의 크리스마스

땀과 서로의 질척한 액체로 범벅이 된 채.나란히 누워 지쳐 잠들었던 두 사람의 나른한 아침이 밝았다.새하얀 침실 위로 주홍빛 아침 햇살이 길게 들이쳤지만.오늘 아침 식사 역시 유진은 고작 몇 입 먹지 못한 채 수저를 내려놓았다.이미 배가 고프면 이성을 잃고 난폭(?)해지는 유진을 목격한 요스케는 경계하는 흑색 눈동자로 그녀의 눈치를 살폈다.“유후인 시내 가서 고기 많이 들어 있는 샌드위치나 케이크 사다 줄까?”유진은 시무룩하게 턱을 갰다.뺨을 비죽이며 가만히 고개만 가로저을 뿐이었다.“그럼 뭐… 먹고 싶은데.”“괜찮아요.”요스케는 유진의 말을 조금도 믿지 않았다.그가 유진의 얇은 허리를 감싸 안으며 나직하게 읊조렸다.“뭔데 그렇게 뜸을 들여. 말해. 사다 줄 테니까. 또 성질 부리지 말고.”유진은 잠시 가슴이 답답하다는 듯 한숨을 푹ㅡ 쉬었다.“그게… 내 최애 음식. 3일에 한번씩은 수혈해야 하는데. 여기서 딱 3일 있었으니까…”“네 최애음식? 그게 뭔데?”“떡볶이랑 순대.”예상치 못한 한국 분식 이름에 요스케가 찰나의 실소를 터뜨렸다.그가 유진의 뺨을 부드럽게 쓸어내리며 답했다.“알았어. 기억해 둘게.”“당신 최애 음식은 뭐에요?”“난…… 시리얼?”유진의 헤이즐넛 빛 눈동자가 둥그렇게 커졌다.“네?”“아니. 어렸을때부터 부모님이 맞벌이셔서. 거기다 어머니가 음식에는 소질이 없으셨거든. 그래서 내 소울 푸드는 시리얼이야.”의외로 소박한 사내의 과거.유진은 피식 웃으며 요스케의 구릿빛 가슴에 자신의 하얀 뺨을 부볐다.“아…… 되게 좋은데요. 진입장벽이 낮아서. 어머니가 음식을 되게 잘하셨음, 어떤 여자라도 어머니 오래된 손맛 재현 못 할 테니까. 밥상머리에서 맨날 전쟁이었을 텐데.”석ㅡ.그 순간 그의 거대한 상체가 묵직하게 그의 정면으로 완전히 기울었다.유진의 숨통을 옥죄듯, 다가온 그가 애타는 눈동자로 대답을 갈구했다.“그래서 나 합격이라는 거지?”“글쎄. 그건 봐야죠. 나 당신 만난 지 아직 4개월밖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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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43. 그녀의 일상 속으로

오랜만에 밟은 모국의 익숙한 공기.유진의 새하얀 얼굴이 햇살처럼 환하게 밝아졌다.하지만 요스케는 부산항에 내려서도 초조한 얼굴로 휴대폰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블랙 코트 자락을 쥔 손끝에 미세한 긴장감이 서렸다.“큰 일인데…… 크리스마스라 호텔이 풀북(Fully Booked)이네.”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유진의 입술 사이로 빙긋 부드러운 미소가 새어 나왔다.헤이즐넛 빛 눈동자가 장난스럽게 빛났다.“여긴 내 영토니까, 당신은 아무것도 하지말고 나만 따라와요.”유진이 이끈 곳은 해운대의 수려한 곡선을 품은 달맞이 고개.두 사람이 도착한 곳은 아담하고 예쁜 아파트였다.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거대한 통창 너머로 넘실거리는 푸른 바다와 영롱한 은빛의 광안대교 해운대 백사장이 파노라마처럼 시원하게 펼쳐졌다.눈이 시릴 정도로 눈부신 조망.“와! 여기 너무 근사한데.”“어서 오세요.”“여기 어디야?”“부모님 휴가 하우스.”디리링ㅡ. 딩동!유진의 대답과 동시에 타이밍 좋게 초종이 울리며,미리 주문해 둔 신선한 한국 식재료들이 도착했다.“내가 아침밥 해줄게요.”유진은 소매를 걷어붙이고 식재료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오직 요스케만을 위한 순수한 모습.석ㅡ.그때 그가 다가와 요리를 하는 유진의 얇은 허리를 등 뒤에서 꼭 끌어안았다.그의 단단한 흉통에서 뿜어져 나오는 뜨거운 열기가 유진의 살결을 훅 감싸 안았다.이내 낮고 긁히는 그 남자의 매력적인 저음이 귓가를 간지럽혔다.“너무 좋다. 이대로 영원히 있고 싶어.”“영원히 나 밥순이 시키려고요?”“어?”“오늘만 특별하게 해주는 거니까. 매일은 기대하지는 말아요.”“크리스마스 선물이야?”“네.”“그럼 진짜 맛있게 해줘야 해. 아님, 딴 걸로 보상해 주던가…”요스케는 참지 못하겠다는 듯, 유진의 하얀 쇄골 위로 입술을 짓이기며, 또 하나의 자신만의 낙인을 찍어내렸다.아릿한 자극과 함께.등 뒤로 들이치는 사내의 육중한 존재감.둔부 위로 그대로 느껴지는 부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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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44. 커플링

룸 안의 공기가 완벽하게 얼어붙었다.부모님이 유진을 동시에 바라보았다.“진짜야!!!?”유진은 얼굴이 홍조로 새빨갛게 물든 채 다급하게 손사래를 쳤다.“아직은… 아니…”그때 그녀의 눈 앞에 초조함으로 말라가는 남자가 보였다.“맞아…. 결혼하고 싶어. 근데 바로는 아니야. 그러니까 그냥 조금만 더 지켜봐줘.”유진의 솔직한 고백에, 아버지가 껄껄 웃으며 요스케를 향해 잔을 들어 보였다.“Then you can be our son-in-law. Welcome to my family.”“아빠!!!”“I would love to. Mr. Seo.”요스케의 입꼬리가 매끄럽게 호선을 그렸다.식사와 다과가 완전히 끝나자마자 유진은 능숙하게 주방 싱크대 앞에 섰다.잔뜩 쌓여 있는 하얀 설거지 더미들.그때 요스케가 다가와 유진을 옆으로 가만히 밀쳐내며 고무장갑을 빼앗아 쥐었다.그리고 귓가를 간지럽히듯 뜨거운 숨결을 불어넣으며 나직하게 속삭였다.“부모님한테 가. 여기는 나한테 맡기고. 나 때문에 오랜만에 본 딸 얼굴 제대로 못 보셨을 테니까.”요스케는 유진의 헤이즐넛 빛 눈동자를 너무도 달콤하게 바라보다, 부모님의 시선이 미치지 않는 사각지대에서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당황스러우면서도 다정한 촉각.유진은 소스라치게 놀라 부모님의 눈치를 살피며 거실로 도망치듯 나갔다.유진은 부모님 앞에 죄인처럼 다리를 모으고 앉았다.어머니가 눈을 흘기며 물었다.“요스케는?”“설거지 하겠대. 엄마아빠가 나랑 대화하고 싶어하시는 것 같다고……”커다랗고 차가운 야수 같은 첫인상과 달리.유진을 배려하는 사내의 세심한 행동에 부모님의 눈빛에 은근한 흡족함이 들어찼다.“그러니까. 회사에서 만났으면 너처럼 엔지니어야?”“응. 그게…… 우리 팀 팀장.”“뭐? 그럼 나이가……”“나보다 8살 많아.”“생각보다 나이차가 좀 있구나. 그래서 결혼 서두르는 거야?”아버지는 내심 걱정스러운 표정을 내보이셨다.하지만 어머니는 아버지의 걱정 따윈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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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45. 해운대를 품은 열기

달맞이 고개의 아파트에는 마침내 지독할 정도의 완벽한 정적이 내려앉았다.두 사람은 해운대 바다를 투명하게 담아내고 있는 거대한 통창 앞에서 서로만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일몰의 주홍빛 낙조가 서서히 사그라지며.창밖으로는 눈이 시리도록 화려한 광안대교의 은빛 불빛과 해운대 마천루의 네온사인들이 아찔한 채도로 피어오르고 있었다.석ㅡ.그의 단단한 흉통에서 뿜어져 나오는 뜨거운 고열과 그의 민트향이 섞인 특유의 체취가 유진의 살결을 훅 습격해왔다.요스케는 유진의 목덜미에 뜨겁게 젖은 입술을 묻었다.그리고 그의 뜨거운 손끝이 조금 전 자신이 걸어주었던 목걸이의 은빛 줄을 가만히 잡아당겨 그녀를 조금 더 가까이 끌어당겼다.차가운 금속이 연약한 쇄골을 옥죄어오는 촉각.유진은 자신도 모르게 숨을 멈췄다.은빛 줄 끝에 매달린 링 반지가 통창 너머의 달빛을 받아 날카롭게 번뜩였다.“오늘…… 네 크리스마스 선물이 맛있긴 했었는데 너만큼 맛있지는 않았어.”그 엄격하고도 외설적인 선언.요스케는 자신이 직접 골라 그녀에게 입힌 그 헐렁하고 유아틱한 니트 드레스 자락을 두 손으로 잡고 그대로 벗겨 그녀를 뒤돌아 안았다.해운대의 화려한 은빛 조명 아래.유진의 새하얗고 매끄러운 나신이 통창 유리벽에 그대로 투영돼 그의 시선을 흐트렸다.“너무 아름다워…… 유진.요스케는 유진의 양 손목을 머리 위로 꽉 움켜잡았다.손바닥의 은빛 흉터가 유진의 손등을 부서져라 짓눌렀다.거친 바다가 넘실 거리는 유리벽에 유진의 가녀린 몸이 그대로 밀쳐져 결박돼 버렸다.순간 차가운 유리벽의 촉각과 무겁게 압박해 오는 사내의 육중한 체온의 극단적인 온도차가 피부를 잔인하게 옥죄어왔다.요스케는 이미 블랙 셔츠의 단추들을 전부 풀어헤친 상태였다.시벌겋게 눈이 돌아간 채.짐승 같은 흑색 눈동자를 번뜩이던 그는 유진의 가느다란 허리를 커다란 한 손으로 바스러뜨릴 듯 움켜쥐고는 그대로 자신의 바지 지퍼를 내렸다.그리고 그도 실오라기 하나 없는 나신으로 그녀의 뒤를 감싸안았다.더욱 거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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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46. 중독

싱가포르 술탄 로드 (Sultan Road).밤하늘을 가르는 화려한 네온사인과 테라스 바 전체를 집어삼킨 열기.회사 송년 회식이 열린 파티장은 흥겨운 음악과 독한 양주의 금빛 액체.흐느적거리는 사람들의 소란으로 빽빽하게 깔려 있었다.주말을 앞둔 동료들의 얼굴마다 긴장이 풀린 붉은 홍조가 번져 있었다.그 번잡한 소음의 한가운데.두 사람의 세계는 철저하게 대칭을 이룬 채 대립하고 있었다.바 가장 높은 상석.류 요스케는 차가운 흑색 정장을 입고 고고하게 앉아 있었다.얼음이 가득 찬 싱글몰트 위스키 잔을 쥔 채, 주변의 모든 흥을 차단하는 냉정함.그와 정반대로.유진은 수많은 남자 직원들에게 겹겹이 둘러싸여 있었다.맥주 한병을 들고 붉게 달아오른 사내들 사이에서 도발적인 미소를 흘리며.술 게임의 템포를 리드하는 유진.완벽한 여왕벌의 모습이었다.남자들의 음흉한 시선을 기꺼이 즐기며 그들을 손바닥 위에서 갖고 놀았다.그 모습을 바라보는 요스케의 속은 새까만 잿더미처럼 타들어 가고 있었다.그리고 이 흐느적거리는 파티장에서 두 사람의 긴장감이 마침내 임계점을 넘어섰다.끓어오르는 질투심과 소유욕으로 남자를 이글거리고 있었다.그때 이성을 잃어가던 요스케의 검은 눈동자가 번뜩였다.화장실에서 은밀하게 걸어 나오는 유진의 실루엣.요스케는 지체 없이 주먹을 쥐고 그녀에게 소리없이 다가갔다.그리고 서로가 지나치려는 바로 그 찰나.그의 거대하고 단단한 손아귀가 유진의 하얀 손목을 부서져라 낚아챘다.가차없이 그에게 끌려 나왔다.화려한 바의 바로 아래.사방이 회색 콘크리트 음영으로 가려진 어두운 비상계단.유진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아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며 겁을 먹었다.들키면 끝장이었다.공포에 질린 유진이 그의 거친 손을 뿌리치려 파드득거렸다.하지만 그 연약한 저항마저 이미 미쳐버린 요스케의 독점욕에 시뻘건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쾅ㅡ!요스케는 유진의 어깨를 붙잡아 차가운 시멘트 벽면으로 거칠게 밀어붙였다.유진의 얇은 실크 블라우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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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47. 공장에서의 사고

제품 개발실에서 버텨온 지 어느덧 2년.유진은 엔지니어로서 벌써 네 번째 대형 프로젝트를 참여했다.그리고 마침내 찾아온 최종 단계.첫 수주 물량의 거대한 선적 작업이 시작되었다.말레이시아 세나이 공장의 거대한 물류 하역장.후끈한 열기와 퀴퀴한 매연이 섞인 공기 속에서 유진은 팀원들과 함께 컨테이너에 실리는 제품들의 라벨과 포장 상태를 마지막으로 확인하고 있었다.사방에서 육중한 기계음이 고막을 찢어발기듯 울려 퍼졌다.바로 그때였다.삐- 삐- 후진하며, 선적 컨테이너 작업을 하던 지게차가 순간적으로 제어력을 잃고 미끄러졌다.쾅 하는 둔탁한 충격음과 함께.지게차의 뒷바퀴가 한편에 빽빽하게 쌓여 있던 거대한 강철 자재 더미를 사정없이 들이받고 말았다.균형을 유지하던 수 톤 무게의 강철 자재들이 유진의 머리 위로 무자비하게 쏟아져 내렸다.피할 틈조차 없는 위험 촉발의 잔인한 찰나.스으윽, 콰욱ㅡ!유진의 시야 위로 익숙한 블랙 실루엣이 번개처럼 들이쳤다.순식간에 공간을 지워버린 요스케가 유진의 가녀린 신체를 자신의 거대한 품 안으로 완벽하게 감싸 안았다.쿠루룽ㅡ 쾅ㅡㅡㅡ!“팀장님…!!! 유진……!!!”사람들의 핏대 선 아우성과 기괴한 비명 소리를 마지막으로.세상의 모든 빛이 소멸했다.유진의 시야는 순간 암전된 것처럼 새까만 무채색의 상태로 사정없이 전환되었다.얼마나 지났을까.고막을 마비시키는 둔탁한 이명 사이로.귓가를 잔인하게 긁어내리는 남자의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으윽……..!”고통으로 짓겨진 그의 저음에.유진의 끊어졌던 정신이 번뜩 돌아왔다.유진은 요스케의 거대한 흉통에 갇힌 채 천천히 눈을 떴다.하얀 먼지가 자욱하게 내려앉은 시야.가장 먼저 들이친 것은 처참하게 찢겨 나간 그의 화이트 드레스 셔츠 소매였다.그리고 그 소매 틈새를 타고 뚝ㅡ.뚝ㅡ. 흘러내리는 진득하고 짙붉은 선혈.순간, 유진은 뇌리가 하얗게 점멸하며 정신이 완전히 나가버리고 말았다.“어떻게…. 어떻게….”공포에 질려 눈물을 쏟아내는 유진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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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48. 간호 속 열기

일주일간의 지옥 같던 수술과 입원이 끝났다.퇴원 후 이스트 코스트, 그의 싱가포르 아파트로 함께 향했다.자신 때문에 다친 그의 퇴원을 돕는다는 당당한 이유를 핑계 삼아.처음으로 그의 아파트에 들어섰다.내 남자의 너무도 사적인 생활 공간.그의 냉정하고 완벽한 성격처럼.그곳은 너무도 칼같이 정갈하고 먼지 하나 없이 깨끗했다.하지만 너무도 낯설었다.지난 2년의 시간.세상 누구보다도 사랑하고 자신을 소유했던 남자가 처음으로 낯설게 느껴졌다.그리고 그의 체취가 가득한 푸른 민트향.순간, 그 민트향의 서늘함처럼 마음이 씁쓸했다.그때 그가 그녀의 손을 잡아 방이란 방의 모든 문을 다 열어보였다.세상 속에서 너를 비밀로 묶어두었지만.자신에게만큼은 어떤 비밀도 없다는 것을 증명하듯.그가 자신에게 애를 썼다.그리고 제일 먼저, 그의 창백한 안색이 들어왔다.“무리하지 말고 어서 침대에 누우세요. 팀장님!”“뭐? 팀장?”“난…… 여기 다친 팀장님 퇴원 도와주러 온 거니까. 일단 누우시죠.”그는 군말없이 그녀가 시키는 대로 침대로 가서 누웠다.사실 뇌진탕의 여파로 그는 아직 서 있기 힘들 정도로 어지러웠다.그리고 침대 위로 쓰러지듯 누운 요스케의 몰골은 여전히 처참했다.왼팔 전체와 어깨, 쇄골 부위까지 칭칭 감아올린 흰색 석고 캐스트.철심을 박아 넣은 상반신은 미동조차 하기 힘들 정도로 무력했다.유진은 단정한 무채색 셔츠 소매를 걷어붙인 채, 따뜻한 물을 적신 하얀 수건을 들고 그의 침대 옆에 가만히 앉았다.“가만히 있어요. 땀 닦아 줄 테니까.”유진의 헤이즐넛 빛 눈동자에는 여전히 마르지 않은 물기가 고여 있었다.뜨거운 김이 모락모락나는 수건으로 그의 목덜미를 조심스럽게 쓸어내렸다.그의 살결에 닿는 촉각이 애달프게 저려왔다.요스케는 베개에 고개를 깊숙이 묻은 채.아직은 몸이 주는 피로감으로 붉게 충혈된 검은 눈동자로.유진의 새하얀 얼굴을 가만히 올려다보았다.그때 그녀의 조심스러운 손길이 그의 단단한 맨가슴과 핏줄이 불거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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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49. 성폭력 추문

차가운 백색 형광등이 비추는 사내 복도와 탕비실.사람들 사이에 맴도는 공기가 은밀한 소문들로 일렁이며 요동치기 시작했다.서 유진과 류 요스케.두 사람을 둘러싼 사내의 숨막히는 기류.얼마 전, 목숨이 위태로운 위험천만한 현장에 망설임 없이 몸을 던져 유진을 구해냈던 류 요스케 팀장의 충격적인 사건.사내 익명 게시판과 직원들의 닿을 듯 말 듯 한 시선은 그날의 사건 위에 살을 입히고 또 입혀나갔다.그 어수선한 와중에.유진은 요스케의 불편한 몸을 챙긴다는 아주 당당하고 정당한 명분을 들이밀었다.그녀는 남들의 시선 따위 아랑곳하지 않고 대놓고 그를 보살폈다.[다쳤으니까. 날 구하려다 이렇게 된 거니까.]상황이 상황인지라, 그래도 될 거라고 오만을 부렸다.가슴속에서 타오르는 뜨거운 정념을 사적인 호의라는 명목 아래 감추었다고 생각했다.심지어 요스케마저도 그 특유의 얼음처럼 매서운 냉정함을 유지하지 못했다.이미 눈앞에서 그녀를 영영 잃을 뻔했다는 잔인하고도 지독한 두려움을 한차례 겪었다.이미 사랑에 미쳐버린 남자의 감정은 억누를 수 없이 끓어올라 당장이라도 터져 나가기 일보 직전이었다.흑색 모니터 너머, 매 순간 유진만을 향하는 그의 검은 눈동자.그 깊은 동공 속에는 이성의 통제력을 완전히 잃고 일렁이는 날것의 뜨겁고 끈적한 감정이 그대로 투영되고 있었다.‘제품 개발실 류 팀장이 팀 내 여자 엔지니어에게 완전히 미쳐서 그 사고때 난리도 아니었다고.’‘병원에서 보니까 류 팀장이 서 유진에게 막 스킨십을 했다고 하던데……’‘아니 그 병실에서 둘이 벌써 잤다는데……’자극적인 소문이 사내 전체를 빠르게 잠식해 가던 바로 그때.지르릉―.유진의 노트북 화면 위로.묵직하고 차가운 알림음과 함께 인사팀장의 사내 메시지가 툭 하고 날아와 박혔다.ㅡ유진 엔지니어, 지금 조용히 저희 인사팀으로 내려와 주시기 바랍니다.인사과.화면에 떠오른 세 글자를 마주한 순간.유진의 심장이 바닥 아래 까마득한 어둠 속으로 뚝 떨어져 내렸다.서늘한 불안감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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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50. 눈치없는 왓슨, 소개팅

제품 개발실로 돌아오자마자.유진은 옆자리에 앉아 있던 왓슨의 셔츠 소매를 다급하게 붙잡았다.그녀는 가쁜 숨을 누르며 조용한 주방 탕비실 안으로 그를 서둘러 불러냈다.끼익, 탁―.탕비실 문을 단단히 닫은 유진이 주변을 살피며 낮게 속삭였다.“저…… 뭐 좀 물어보고 싶은데……”“뭐…… 문제 있어, 유진?”유진은 초조하게 입술을 바짝 물어뜯으며 눈빛을 밝혔다.“혹시 회사 내에…… 저에 대한 소문이 있나요?”“유진에 대한 소문? 어떤…… 소문을 말하는데? 혹시…… 류 팀장이랑 소문?”“네.”“혹시 류 팀장이 그걸로 눈치 줬어?”“네? 그런 거…… 아니에요.”“진짜야?”왓슨의 미간이 의문스럽다는 듯 찌푸려졌다.유진은 타들어 가는 붉은 입술로 침을 삼키며 물었다.“왜…… 그렇게 생각해요?”“아니…… 사고 때도 그렇고 요즘 류 팀장이…… 유진을 바라보는 시선이…… 솔직히 다친 건 류 팀장이고 유진은 멀쩡한데, 왜 류 팀장이 유진을 그렇게 걱정하는 눈으로 보는지…… 거기다…… 류 팀장이 사고 전에도 유진 씨 슬쩍슬쩍 건드렸다는 목격담도 있고……”“그런 적 없으세요!”유진은 본능적으로 사내를 향해 방어벽을 단단히 치며 딱 잘라 말했다.왓슨이 헛웃음을 내쉬며 유진의 어깨를 가볍게 툭툭 쳤다.“암튼 유진이 혼자니까…… 거기다 여기 유진 좋아하는 남직원들 많잖아. 그러다 보니까…… 아무래도 사고도 그렇고…… 말이 돌 수밖에 없지. 아예 이참에 남자친구를 하나 만들어. 그럼 소문 확 줄 거야.”“네? 누구랑요?”불안감에 휩싸인 유진의 헤이즐넛 빛 눈동자가 거세게 흔들렸다.“에이, 류 팀장이랑 사귀라고 할까 봐 지레 겁부터 먹는 거야? 그건 말도 안 되지. 류 팀장은 사실 이혼남이나 다름없는데…… 거기다 유진과 나이 차도 많이 나고. 내가 옛날에 한번 말했는데…… 협력사 법무팀 과장인데 한국인이고 국제 변호사. 저번에 미팅 때 봤는데, 아직 여친 없다고 하더라고. 그때 딱 유진이 생각나더라니까. 나 밖에 없지?”요스케를 이혼남 취급하며 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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