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잿빛 회상 속 너를 만나다.: Chapter 51 - Chapter 60

65 Chapters

EP 51. 소개팅 남, 선호

ㅡ월요일 월차냈어요. 그리고 이번 주말, 저 한국에 좀 갔다오려고요. 다음 주말에 뵐게요.정확히 금요일 오후 5시 정각.퇴근을 알리는 차가운 전자음과 동시에.요스케의 휴대폰 화면 위로 유진의 메시지가 떠올랐다.단 한 줄의 건조한 문장이 그의 시야를 뒤틀어버렸다.쿵ㅡ.순간 요스케의 흉통 안에서 심장이 파열음을 소리를 내며 아릿하게 가라앉았다.주말 내내 그녀를 자신의 품에 가두고 온몸의 살결을 집어삼켜도 모자랄 지경인데.상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다음 주말에 보자는 선언.그리고 한국에 가는 거라면, 미리 자신과 조율해 얼마든지 함께 갈수도 있었을 텐데.왜 굳이 자신을 철저히 배제한 채 혼자 떠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요스케는 문자를 확인하자마자 곧바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두르르르ㅡ. 두르르르ㅡ.통화음만 공허하게 이어질 뿐 끝내 연결되지 않는 차가운 기계음.요스케는 미칠 것만 같았다.주먹을 쥔 그의 손바닥 한가운데 새겨진 은빛 흉터가 하얗게 질려갔다.이제는 정말로 이 거지 같은 비밀 연애를 제 손으로 찢어발겨 끝내고 싶었다.더 이상은 유진을 향한 자신의 감정을 숨길 수가 없었다.피가 거꾸로 솟구치듯 말라붙었다.유진이 너무도 절실해서 당장이라도 심장이 죽어버릴 것만 같았다.같은 시각.유진은 싱가포르 창이 공항의 회색 바닥을 정신없이 달리고 있었다.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은 분위기 속에.유진이 선택할 수 있는 생존 방식은 단 하나, 최대한 몸을 낮추고 숨는 것뿐이었다.혹시라도 주말에 요스케와 함께 있다 꼬리라도 잡히면.지난 2년의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되어 사라질 판이었다.결국 요스케의 전화를 외면한 채 서울을 향하는 비행기 좌석 깊숙이 몸을 묻었다.“어! 유진씨?”좌석 바로 옆자리에서 낮고 매끄러운 사내의 음성이 유진에게 아는 척을 했다.고개를 돌린 유진의 헤이즐넛 빛 눈동자가 놀라 얼어버렸다.바로 그 소개팅 남자, 강 선호였다.“오늘……. 서울 가세요?”유진은 하얗게 질린 안색을 숨기지 못한 채 멍하니 반문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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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52. 첫 오해

다시 차갑고 건조한 현실의 땅, 싱가포르로 돌아왔다.화요일 아침.출근 도장을 찍기가 무섭게.제품 개발실 안이 시끄러운 가십의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려 들었다.덜컥―!왓슨이 개발실의 커다란 유리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한껏 흥분된 얼굴과 목소리로 사방을 방방 떠다니기 시작했다.그의 요란한 발걸음 소리에 사무실의 고요한 정적이 순식간에 산산조각 났다.“유진! 이건 무슨 번갯불에 콩을 볶아도 너보다는 느리겠다!”“네?”“나한테 크게 한턱사라, 진짜!”왓슨은 신이 나서 주변 동료들의 회색 파티션을 탕탕 두드리며, 찌렁찌렁한 목소리로 목청을 높였다.그 소란에 개발팀원들의 시선이 일제히 유진의 자리로 쏠렸다.은밀하고 진득한 호기심이 공기를 타고 오염되듯 퍼져나갔다.“내가 말했잖아. 둘이 진짜 잘 어울린다고! 혹시 강선호라고 알아? 우리 회사 협력사 변호사. 내가 유진한테 소개팅 주선했잖아!”“유진, 소개팅했어? 언제?”“둘이 나이도 동갑이지? 또래라서 말도 잘 통한 건 알겠는데, 아무리 그래도 수요일 날 소개팅하고 금요일 날 서울로 동반 여행이라니! 벌써 선호 가족들이랑도 인사했다며?”“뭐? 진짜야, 유진?”“와…… 우리 유진이 이제 품절녀 되는 거야?”사방에서 날카롭게 들이치는 동료들의 기습적인 축하와 웅성거리는 소음.유진의 새하얀 얼굴이 순식간에 터질 듯한 진홍빛으로 질려갔다.순간 아무 생각도 나지 않고 그저 숨이 막혔다.그대로 무채색 책상 파티션 아래로 제 가녀린 몸을 완전히 숨겨버렸다.숨소리조차 제대로 내지 못할 만큼 목구멍이 꽉 죄어왔다.이 끔찍한 오해가 저 멀리 홀로 앉아 있는 그의 귀에 들어갈까 봐 전신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유진은 파르르 떨리는 손가락으로 가방 속에 든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차가운 은빛 액정 화면을 거칠게 두드리며, 선호에게 다급하게 메시지를 찍어 보냈다.“도대체 왓슨한테 뭐라고 한 거예요?”지르릉―.거의 실시간으로 선호의 답장이 화면 위로 번쩍였다.ㅡ아마 오늘로 유진 씨 힘들게 하는 소문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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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53. 첫 싸움

소피텔 923호.방 안으로 들어선 찰나.서늘한 정적이 감도는 방 한복판에서 마주친 요스케.그의 거대한 냉혹함이 블랙 수트 속에 갇힌 채 얼음처럼 차갑게 굳어 있었다.붉게 충혈된 채 광기로 타오르는 그의 새까만 눈동자가 유진의 전신을 집어삼킬 듯 옭아넸다.유진이 마른침을 삼키며 다급하게 입술을 열었다.“저…… 제가 설명 할게요. 그게 어떻게 된 거냐면요.”“이제 난 질렸니?”요스케의 낮고 거칠게 긁히는 저음이 심장에 박혔다.그가 유진의 애타는 심정을 가차 없이 자르고 들어왔다.“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분노로 얼어붙은 차가운 음성이 방 안의 공기를 진득하게 오염시켰다.“이제 내가 시시하냐고? 또래? 한국인이라고…?사내의 입술 사이로 터져 나오는 질투와 멸시 그리고 지독한 상처의 파편들.요스케의 단단한 가슴 근육이 긴장으로 단단하게 부풀어 올랐다.유진 또한 치밀어 오르는 억울함과 슬픔에 눈물이 고인 채 그를 똑바로 쏘아보았다.“화 나는 건 알겠는데, 내 사정부터 듣고……”“딴 남자를 만나려면, 최소한 이별부터 하고 만나. 아무리 내가 너에게 비밀이라고 해도. 이건 아니잖아.”콰르릉ㅡ.그 잔인한 단어가 유진의 머릿속을 사정없이 때려 부수었다.그 순간 유진의 가슴속에서 무언가 툭 끊어지며 허무함의 거대한 해일이 몰려왔다.자신의 사정은 알려고 하지도 않은 채.오직 배신감에 눈이 멀어 제 기분만 쏟아내고 있는 남자의 알량한 태도.[날…… 목숨보다 더 사랑한다더니, 알량한 자존심이 먼저였어요?!]지독한 서운함.유진은 지금 이 순간 그 어떤 변명도 구차한 설명도 하기 싫어졌다.입술을 꾹 닫아버린 유진은 뒤돌아서서 그대로 밖으로 도망쳐 나와 버렸다.구두 굽 소리가 복도를 잔인하게 찢었다.유진이 자신을 철저히 무시하고 그대로 뒤돌아 도망쳐버리자.요스케의 머릿속을 지배하던 마지막 이성의 끈이 완전히 끊어져 버렸다.하지만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뛰쳐 나가는 그녀를 잡지 않았다.아니, 잡을 수 없었다.지금 쫓아가 그녀를 강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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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54. 상사병

지난 주말. 유진은 단 한통의 메마른 메시지만 던져 놓았다.순간 불안감에 온 몸이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사고 이후로, 그는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계속 되는 악몽. 그녀를 놓쳤던 그 산다칸의 바다에 침몰하는 꿈.요스케는 두려웠다.이제는 유진이라는 지독한 낙인에.자신의 육신과 영혼, 세포 하나하나까지 완벽하게 중독되어 종속된 상태였다.그녀를 눈앞에 단 1초라도 두지 않으면, 숨이 턱 막혀 죽을 것 같이 아팠다.그리고 비밀 연애가 시작된 지 2년 만에.처음으로 그는 소피텔 923호의 문을 열지 못했다.그리고 사방이 칠흑 같은 어둠으로 내려앉은 그 잔인한 주말 동안.요스케는 마르지 않는 그리움과 심장을 난도질하는 두려움에 완전히 미쳐 있었다.하지만 끝내 유진은 그에게 연락조차 하지 않고 차갑게 무시했다.그리고 돌아온 화요일.그녀를 향한 지독한 금단현상으로 피가 말라가던 요스케의 심장에 가장 잔인한 비수가 날아와 꽂혔다.그도 협력업체에서 만난 적이 있는 어렴풋이 기억나는 잘생긴 한국인 사내.유진이 자신을 무시했던 그 주말동안.그 사내와 함께 서울에 가서 벌써 그의 가족들에게까지 인사를 했다는 사내 스캔들.왓슨의 입을 통해 개발실 전체로 퍼진 그 소문을 들은 순간.요스케는 도저히 이성을 붙잡을 수가 없었다.머릿속이 시벌건 화염으로 전소되는 것 같았다.당장이라도 그녀를 찾아가 짓이기듯 품에 안고 소유권을 주장하고 싶었다.하지만 요스케는 끝내 도망쳤다.그녀의 입술에서 가차 없이 튀어나올 잔인한 이별을 마주할 용기가 없었기에.파국을 회피하려 그녀를 철저히 무시하고 피했다.만약 그녀가 정말로 자신과의 잔인한 이별을 원한다면.그 끝에 남은 자신의 미래는 완벽한 파멸뿐이었다.그리고 어김없이 돌아온 주말.그는 싱가포르의 적막한 자신의 아파트 침대 위에서 혼자 끙끙 앓아누웠다.지독한 상사병이었다.영혼이 도려 나간 육체 위로 지독한 고열이 들이쳤다.진짜로 숨이 끊어져 죽을 것만 같았다.‘보고 싶어. 안고 싶어. 널…… 나 못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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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55. 더욱 뜨겁게

쾅ㅡ!유리문이 닫히기 무섭게.요스케는 주먹을 쥐고 회의실 창가로 달려가 하얀 블라인드를 빠르게 내렸다.드디어 세상의 모든 시선이 차단된 밀폐된 공간.돌아서서 다시 마주한 유진의 원망 어린 눈동자.그 서러운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힌 바로 그 찰나.참아왔던 유진의 헤이즐넛 빛 눈가에서 투명한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내렸다.그녀의 눈물이 바닥으로 툭 떨어지는 순간.온몸의 살점이 날카로운 칼날로 사정없이 도려내지는 것 같았다.요스케는 더는 참지 못하고 유진의 얇은 허리를 자신의 품 안으로 거칠게 끌어당겨 안았다.“사랑해. 제발…… 날 떠나지 마. 나…. 버리지 마. 제발…. 뭐든 할게. 제발…… 사랑해.”피를 토해내는 사내의 처절한 복종과 애원의 문장이 그녀의 귓가에 내리 박혔다.요스케는 유진을 자신의 단단하고 긴 두 팔로 완전히 감싸 안은 채.부서져서 가루가 되어도 좋다는 듯이 강하게 안고 또 안았다.그 지독하리만큼 커다란 사내의 진심을 마주하자마자.유진 역시 참았던 오열을 펑펑 터뜨렸다.그리고 그의 거대한 가슴 안쪽 깊숙한 곳으로 파고들었다.요스케의 드레스 셔츠가 유진의 뜨거운 눈물로 순식간에 진득하게 젖어 들었다.축축하게 스며든 그녀의 눈물이 고열로 달아오른 요스케의 살갗에 닿는 순간.마치 뻘건 화상 자국이라도 남긴듯 전신이 쓰라린 화끈거림으로 거칠게 떨려왔다.견디기 힘들 만큼 아찔하고 관능적인 통증이었다.그렇게 잠시 요스케의 흉통에 매달려 울던 유진이 간신히 울음을 멈췄다.그리고 이내 감정을 추스르며, 그의 단단한 가슴을 손으로 가볍게 밀어냈다.하지만 요스케는 여전히 불안감에 휩싸여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유진이 그를 안심시키듯 헤이즐넛 빛 눈동자로 그를 바라보며 속삭였다.“나… 안 도망가요. 그러니까 놔 줘요. 그리고…… 오늘 밤에 923호에서 봐요.”그녀의 약속에, 요스케는 가만히 쥐고 있던 그녀의 손목을 스르륵 놔주었다.그는 잠시 커다란 엄지손가락을 움직여, 유진의 새하얀 뺨에 여전히 남아 있는 뜨거운 눈물 자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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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56. 삭제된 프로포즈

“사랑해. 영원히 너만을 사랑해.”뜨거운 화해를 이루었던 수요일 밤부터.매일 밤 두 사람을 서로를 뜨겁게 안았다.평일의 차단도 주말의 밀회도.서로에게 향하는 둘 사이를 가로막던 모든 규칙이 더 이상 어떤 힘도 발휘하지 못했다.요스케는 유진의 성벽 입구에 자신의 뜨겁게 부풀어 오른 중심을 맞대어 놓은 채.열기로 달아오른 그녀의 매끄러운 목덜미와 새하얀 쇄골 위를 아주 천천히 빨고 또 빨아 내렸다.데일 듯 뜨겁고 습한 촉각이 뽀얀 피부 위를 긁어 내릴 때마다.유진의 입술 사이로 자지러지는 신음이 튀어나왔다.자신을 가득 품어 안은 남자의 탄탄한 둔부 골짜기를 유진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부서뜨릴 듯 잔뜩 움켜쥐었다.그리고 맞닿은 자신의 은밀한 살결에서 흘러나온 애액으로 온통 젖어 든 그의 둔부.그의 민감한 안쪽 중심을 향해 짜릿한 곡선을 그리며 그녀의 손끝이 미끄러져 내려갔다.“아…… 아…… 유진…… 계속…… 만져줘……”동시에 그의 묵직하고 거대한 중심이 성벽 입구의 문을 두드리며.유진의 가장 연약하고 깊은 곳을 지긋이 짓누르고 또 짓눌렀다.유진의 입술 사이로 더는 참을 수 없는 외설적인 신음 소리가 연속해서 터져 나왔다.헐떡이는 여인의 숨결은 생명의 구원을 청하듯.요스케의 거칠고 뜨거운 숨결을 찾아 허공을 가쁘게 헤맸다.서로의 뜨거운 숨결이 실타래처럼 은밀히 엉켜 들고 서로의 타액이 완벽하게 하나로 맞물려 들었다.“앗…… 아…… 윽…… 요스케…… 악……!”사내의 거대한 중심이 마침내 유진의 굳게 닫혔던 성문 안으로 잔인하게 밀고 들어왔다.그의 거대한 전부를 온전히 자신의 가장 안쪽 깊숙이 받아들이려고.유진은 자신의 이미 벌어진 골반에 더욱 더 힘을 주어 벌리고 또 벌려냈다.점점 더 그의 중심이 더 깊게 그녀의 내궁 문 안쪽으로 밀려들어왔다.그러자 마치 커다랗고 두꺼운 기둥이 중심에 박혀 가녀린 육체를 반으로 쪼개는 듯한 극심한 파열통에 눈동자가 하얗게 뒤집혔다.하지만 그 잔인한 통증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극상의 절정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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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57. 여전히 남아 있는 결혼반지

달칵ㅡ!유진은 화장대 가장 깊숙한 서랍 안쪽에 숨겨두었던 작은 상자를 천천히 꺼냈다.상자 뚜껑을 열자 차가운 화이트 조명 아래.여전히 눈이 부시게 반짝이는 다이아몬드 반지가 모습을 드러냈다.그리고 그 옆 차가운 은색 목걸이 줄에 매달린 채.단 한 번도 떳떳하게 약지에 껴보지 못했던 커플 반지가 유진의 떨리는 손끝에 서늘하게 스쳐 지나갔다.4년 전, 싱가포르 창이공항의 서늘한 화장실에서.요스케의 마지막 사진까지 불태우며 그와의 모든 것을 정리했었다.하지만 차마 이 두 개의 반지만큼은 그에게 돌려주지도 쓰레기통에 처박지도 못했다.그와 지독하게 사랑했던 가장 뜨거웠던 마지막 흔적만큼은.영원히 끝까지 간직하고 싶었다.만약 이 부서진 증표마저 자신의 손을 떠나버린다면.모든 것이 너무도 허무해져서.인생의 그 어떤 목적도 갖지 못한 채 아무런 의미 없이 살게 될 것만 같았다.유진은 마른침을 삼키며.4년 만에 처음으로 자신의 왼손 약지에 두 개의 반지를 겹쳐서 같이 끼워보았다.손가락을 조여오는 묵직한 금속성의 촉각과 함께.봉인되어 있던 과거의 유령이 모습을 드러냈다.“반지 예쁘네요. 근데 어쩌죠. 당신은 어차피 그 남자의 운명이 아닌데……”여전히 귓가를 송곳처럼 잔인하게 괴롭히는 그녀의 마지막 목소리.4년 전, 싱가포르의 화려한 통창 너머로 아찔한 스카이라인이 내려다보이던 LEVEL 32.그곳에서의 잔인했던 그녀와의 대화가, 다시 기억 저편에서 추악하고 푸르스름한 고개를 치켜들었다.대리석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던 요스케의 전 약혼녀.지독하리만큼 우아하고 서늘한 비주얼로 유진의 심장을 난도질했었다.“운명이었다면, 산다칸에서부터 함께 있었겠죠. 그때도 그 남자는 나에게 왔고, 이번에도 그 남자는 내게 올 거에요. 당신이 아무리 내 결혼식을 그토록 잔인하게 망가트리고 그 남자를 빼앗았다고 해도, 그 남자는 단 한번도 당신의 남자인 적이 없어요.”상대의 무자비한 폭언에 유진은 전신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유진은 간신히 무너지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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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58. 산다칸 공항

산다칸 공항의 문이 열리자마자.열대 우기 특유의 숨이 턱 막히는 축축한 열기가 훅 몰아쳐 들어왔다.10년 만에 다시 발을 디딘 산다칸은 여전했다.교외의 버스 터미널을 연상케 하는 공항.10년 전과 마찬가지로 작은 공항 보안 검색대를 느리게 통과했다.그리고 유진은 도착층으로 걸어 나왔다.도착층이라고 할 것도 없이 문을 나서자마자 바로 연결되는 야외 주차장,그리고 그 뒤로 웅성거리는 현지인들의 북적거리는 인파.그 무채색의 풍경 한복판에.우뚝 서 있는 거대하고 익숙한 검은 실루엣이 유진의 시야에 박혔다.요스케.순간, 유진은 가슴 저 밑바닥에서부터 뜨거운 눈물부터 왈칵 치밀어 올랐다.[벌써부터 이러면 안되는데…… 도대체 나이는 어디로 먹고. 나이 삼십에 눈물부터 질질 짜는지…… 한심해.]유진은 입술을 짓씹으며 몰아치는 서글픔을 강제로 눌러 내렸다.서늘하게 그늘 진 공항의 하얀 조명 아래.억지로 화사한 미소를 입가에 띄운 채로.자신을 기다리는 그를 향해 한 걸음씩 천천히 걸어갔다.*벌써 한 시간째, 요스케는 그녀만을 기다리고 있었다.그리고 4년의 이별 동안.단 한순간도 자신의 몸에서 떼어놓지 못하고 항상 목에 걸었던 유진과의 그 커플 반지를 의미없는 결혼반지 대신 자신의 왼손 약지에 꼈다.시간이 흐를수록 입안이 바짝바짝 타들어 갔다.열대 정글이 뿜어내는 지독한 열기에도 서늘한 한기가 뼈마디를 찔렀다.겁이 났다. 이번에도 그녀가 자신을 포기해 버릴까 봐.다시 세상의 시선 뒤로 숨어 자신을 또다시 허망하게 놓아줄까 봐.손끝이 가볍게 떨렸다.그 어떤 확신도, 구원의 기미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심해였다.하지만 그는 1%의 가능성에 모든 것을 걸고 이 자리에 섰다.그 1%의 끈이 마침내 자신에게 그녀를 돌려주기를.자신의 유일한 운명, 태초부터 쪼개진 제 반쪽인 그녀를.이제는 제발 자신에게 되돌려달라고, 그는 가슴을 찢으며 세상의 모든 신에게 빌고 또 빌었다.[네가 조금만 나쁜 여자였다면 좋겠어. 그랬다면 나도 널 절대 놓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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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59. 오랑우탄 보호구역

요스케는 말없이 유진의 캐리어를 들어주려 커다란 손을 내밀었다.“고마워요.”그 찰나.캐리어를 쥐고 있던 유진의 새하얀 오른손가락 위로.공항의 채도 낮은 하얀 조명 아래, 영롱한 빛을 띤 다이아몬드가 반짝거렸다.그리고 그의 시선 끝에 날카롭게 걸려드는.그녀의 왼손이 아닌 오른손 약지 위로 외롭게 얹어진 자신들의 결혼반지.요스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자신의 왼손으로 유진의 오른손을 부드럽게 잡았다.그러자 그의 왼손 약지에 낀 반지가 유진의 오른손 약지에 박힌 반지와 딱 맞물리며, 서늘하고 날카로운 금속성 쓸림이 서로의 살결 위로 찌릿하게 전해졌다.유진의 헤이즐넛 빛 눈동자에도.그의 왼손 약지 위, 4년의 세월 동안 살짝 빛을 잃은 채 박혀 있는 자신들의 커플 반지가 고스란히 담겼다.가슴 저 밑바닥에서부터 다시금 뜨거운 눈물이 차올랐다.유진은 무너지려는 자신을 필사적으로 억누르며 빠르게 고개를 돌려 시선을 회피했다.그때 요스케가 낮게 가라앉은 저음으로 입을 열었다.“터틀 아일랜드가 지금 휴장 중이라서, 3일 뒤에나 들어갈 수 있다는데……”“그 섬은 참…… 끝까지 밀당이 장난이 아니네요. 그럼 우리 뭐 할까요?”유진은 짐짓 씩씩하게 웃어 보였다.요스케가 유진의 얇은 허리를 감싸 안으며 물었다.“혹시 파충류 좋아해?”“네? 파충류면, 거북이도 파충류니까…… 뭐. 나쁘지 않아요.”“그럼 물왕도마뱀 (Water Monitor Lizard) 보러 갈래? 팔라우 티가섬인데, 그 섬으로 가는투어 일정에 오랑우탄 국립공원이랑 키나발루 정글투어가 포함되어 있어서 그걸 예약했는데…… 괜찮지?"“완벽한데요. 그럼 가요.”잠시 후, 두 사람은 낯선 이국의 투어 픽업 차량에 몸을 실었다.그리고 10년 전.자신들의 지독한 운명이 시작됐던 그 짙은 녹음의 정글 숲.오랑우탄 보호 구역 속으로 거침없이 빠져들었다.투어 일정은 소름 끼치도록 정확하게 10년 전의 그날과 완벽하게 똑같았다.여전한 오랑우탄의 식사 시간.전통 롱하우스에서의 티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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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60. 버스 안의 열기

정글에서의 투어가 완전히 끝나고,키나발루의 노천 온천에서 간단한 온천욕과 저녁 식사를 마친 두 사람은,어둠이 짙게 깔린 산을 넘어가는 야간 버스에 몸을 실었다.사방이 어둡고 퀴퀴한 버스 안.주변에는 잠든 다른 탑승객들의 숨소리가 널려 있었지만,그 은밀한 고립감 속에서.두 사람은 서로를 향해 끓어오르는 정욕을 도저히 참아낼 수가 없었다.칠흑 같은 어둠이 깔린 버스의 맨 뒷좌석.구석진 좌석에 나란히 앉은 두 사람의 손길이 과감해지기 시작했다.사내의 커다란 카키색 사파리 점퍼를 서로의 무릎 위로 넓게 덮어 시선을 차단한 채.두 사람은 옷감 밑으로 서로의 은밀한 곳을 희롱하기 시작했다.유진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먼저 요스케의 바지 지퍼 위를 간지럽히듯 더듬기 시작했다.보물을 찾듯 아주 천천히.그의 속옷 안쪽으로 파고들어.남자의 무성한 수풀을 헤치고.마침내 빳빳하게 터질 듯 부풀어 오른 목적지에 다다랐다.두꺼운 핏줄이 요동치는 거대한 중심을.유진의 손바닥이 닿을 듯 살며시 놀리듯 쓰다듬다 지긋이 누르듯 잡는 순간.요스케의 입술 사이로 묵직한 탄식이 흘러나왔다.곧이어 요스케의 커다란 손 역시 유진의 드레스 자락 안쪽.맨살의 허벅지 사이로 거침없이 파고들었다.그녀의 녹아내릴 듯 여린 허벅지 안쪽 살결을 스치듯 지나.잔뜩 애액을 뿜어내고 있는 은밀한 샘을 찾아가던 중.요스케가 흠칫 놀라며 고개를 돌려 유진을 바라보았다.“너…… 언제부터 아무 것도 안 입고 있었던 거야?”유진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뜨거운 숨결을 내뿜는 사내의 입술만을 맹목적으로 바라보았다.요스케의 흑색 눈동자가 정욕으로 붉게 타올랐다.“아…… 첫 날부터, 무박을 하는 건…. 무리였어. 미칠 것 같아. 나…… 널 안고 싶어.”“또…… 실수 한 거에요?”유진이 요염하게 눈매를 접으며 속삭였다.요스케가 이빨을 깨물며 신음했다.“응. 네 앞에서 난 어쩔 수가 없나봐. 자꾸……. 더 욕심이 나서……. 자꾸 실수를 해.”그 말과 동시에.요스케의 두껍고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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