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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e Kapitel von 부정맥 메이커: Kapitel 51 – Kapitel 60

66 Kapitel

51.

“본부장님.” 에단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주말에 저한테 그러셨죠.” 에단의 시선이 천천히 올라왔다. 무심하던 얼굴에 묘한 여유가 스쳤다. 회의실 안의 공기가 아주 미세하게 달라졌다. “위스키는 갇힌 시간이라고.” 선우의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 “좁고 어두운 오크통 안에서 계절을 견디고, 나무의 결을 받아들이고, 증류소의 공기까지 삼켜낸 뒤에야 비로소 세상 밖으로 나올 자격을 얻는 술이라고.” 루시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랬죠.” 무슨 말이라도 해보라는 듯한 눈빛이었다. 그런데 입꼬리는 아주 조금 올라가 있었다. 검은 눈동자. 햇빛이 창을 타고 들어오며 그 안쪽에 희미한 청색이 번졌다. 선우가 괜히 숨을 한 번 삼켰다. “그런데 이 디자인은.” 골드 시안을 손끝으로 톡 건드렸다. “갓 짜낸 주스 같아요.” “…….” “너무 가볍고.” 시안 위의 금빛을 바라봤다. “너무 친절해요.” 선우가 고개를 들었다. “우리가 이렇게 친절한 술을 만들기로 했던가요?” *** 루시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Ethan!” 의자가 바닥을 긁었다. “너도 그렇게 생각해?” 루시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I brought this all the way from Manhattan for you.” 그녀가 시안을 집어 들었다. “저 여자가 뭘 안다고 내 커리어에 토를 달아?” 격앙된 목소리에 날이 잔뜩 서려 있었다. 루시가 테이블 위의 시안을 거칠게 그러모으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Are you serious right now?” 그제야 선우의 머릿속에 전구가 번쩍 켜졌다. 눈 앞의 여자는 루시 킴.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의 리브랜딩을 몇 차례나 성공시켰고, 업계에서는 그녀의 이름만으로 프로젝트의 급이 달라진다는 말이 나올 정도의 인물이었다. ……퇴사해야 하나? 머릿속에서는 혼자 인사팀까지 다녀오는 시뮬레이션을 재생 중이었다. “—a can
last updateZuletzt aktualisiert : 2026-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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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대학병원 응급실의 공기는 밤새 식지 않은 소음으로 가득했다. 소독약의 알싸한 냄새 사이로 희미한 피 냄새가 섞여 들었고, 끊임없이 울리는 모니터음과 다급하게 오가는 발걸음, 낮게 새어 나오는 신음과 울음이 뒤엉켜 있었다.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목 안쪽까지 달라붙는 듯한 불쾌한 감각. 선우는 제대로 숨도 쉬지 못한 채 복도를 달렸다. 구두 굽이 바닥을 연달아 찍었다. 탁, 탁, 탁. 응급실 안쪽으로 들어서자 각종 기계음이 한꺼번에 귀를 때렸다. 삐— 삐— 누군가의 다급한 목소리. 바쁘게 오가는 의료진. 그리고 그 한가운데. “……아빠.” 선우의 발이 멈췄다. 창백한 얼굴. 가슴 위로 오르내리는 이불. 옆에서 쉼 없이 숫자를 토해내는 모니터. 순간 선우의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어떻게. 갑자기 이런 일이. “김선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권윤오가 서 있었다. 셔츠 소매는 걷혀 있었고 넥타이는 느슨하게 풀려 있었다. 머리카락도 평소보다 조금 흐트러져 있었다. 거짓말처럼 공포가 가라 앉았다. “어떻게 된거야?” “숨 좀 골라.” 단단한 손이 선우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제야 선우는 자신이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아빠…… 아빠 괜찮은 거야?” 목소리가 떨렸다. “대동맥판막 협착증이야.” “…….” “예전부터 판막이 좁아져 있으셨는데, 오늘 갑자기 심장에 과부하가 오신 것 같아.” 윤오가 모니터를 한 번 확인했다. “약물 처치가 빨라서 일단 응급 상황은 넘겼어.” 안도감이 전신을 휘감자 다리에 힘이 풀릴 것 같았다. 그 순간 윤오가 선우의 팔을 잡아챘다. “하…….” 떨리는 숨이 입술 사이로 새어 나왔다. “윤오 아니었으면 정말 큰일 날 뻔했어.” “엄마.” 선우의 엄마가 벌게진 눈으로 윤오의 손을 꼭 붙잡았다. “아버지 쓰러지는데, 당장 생각나는 사람이 윤오더라.” “……”
last updateZuletzt aktualisiert : 2026-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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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병원 로비를 빠져나오자 눅눅한 밤공기가 얼굴을 때렸다. 선우가 병원 앞 벤치에 털썩 주저앉았다. “……” 손바닥에 얼굴을 묻었다. 손바닥에 닿은 뺨이 뜨거웠다. 내가 감히 권윤오를 좋아할 자격이 있나. 생각이 떠오르는 순간, 선우는 피식 웃었다. 자격. 웃기지도 않았다. 사랑에 무슨 자격이 있다고. 나는 도대체 뭘 하고 있었지? 가까이 다가왔을 때 숨이 막히던 순간. 낮게 떨어지던 목소리에 심장이 이유 없이 뛰던 순간. 싫다고, 낯설다고 경계하면서도. ……좋았지, 너. “……” 선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하.” 웃음인지 한숨인지 모를 소리가 새어 나왔다. 정말 구제불능이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처럼 쉽고. 철저하게 제 본능따라 사는 병신같은 여자. 수치심과 비참함이 선우를 짓눌렀다. *** 텅 빈 거실에는 불도 켜지지 않은 채 적막만 내려앉아 있었다. 선우는 신발을 벗어 던지고 곧장 부엌으로 향했다. 냉장고 문을 열었다. 찬밥 한 덩이. 며칠 전 끓여놓고 남은 국. 반찬 몇 가지. 평소라면 아무 생각 없이 차렸을 밥상이었다. 전자레인지가 돌아가는 소리. 가스레인지 위에서 국이 끓는 소리. 그 사이로 선우는 몇 번이나 눈을 깜빡였다. 울고 싶은 건지. 정신을 차리고 싶은 건지. 자신도 알 수 없었다. “좀 먹어.” 두 사람이 식탁에 마주 앉았다. 달그락. 숟가락이 그릇에 부딪히는 소리만 텅 빈 집 안에 어색하게 울렸다. “엄마 정말 놀랬어.” 목소리가 떨렸다. “아빠 숨 넘어가는 줄 알았잖아. 앞이 캄캄하고……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엄마가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그때 윤오가 딱 나타나더라.” 선우의 손이 멈췄다. “그게 얼마나 고맙던지.” 엄마의 눈가가 다시 붉어졌다. “윤오 아니었으면 정말 어떻게 됐을지 모르겠어.” 한마디. 또 한마디. 이상하게도 그 말들이 선우의 명치
last updateZuletzt aktualisiert : 2026-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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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아까까지는 벨벳의 붉은색이 멋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점심의 예고편이었구만. 에단이 앞장서 걸음을 옮긴 곳은 스테이크 하우스였다. 낮게 깔린 조명, 광택이 흐르는 원목 테이블, 잔을 기울일 때마다 은은하게 흔들리는 샹들리에. 그리고 눈앞에 놓인 스테이크. 선우가 칼을 들었다. 사각. 육즙이 흘러나왔다. 한 점 입에 넣었다. “…….” 분명 맛있는데.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때 그 갤러리 기억나? 네가 그때—” “Of course. 그 전시는 꽤 좋았지.” 루시와 에단이 끊임없이 뉴욕 소호의 갤러리와 디자이너들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두 사람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오가는 영어. 누가 끼어들 틈도 없는 대화였다. 선우는 조용히 물만 마셨다. 한 잔. 또 한 잔. “…….” 식사가 아니라 거의 수분 보충이었다. 머릿속에서는 아까 본 패키지가 계속 떠올랐다. 짙은 버건디 벨벳. 손끝에서 살아나는 질감. 심장이 뛰게 만들던 그 디자인. 인정하기 싫지만. 완벽했다. 루시는 실력으로 자신을 눌렀다. “Honey, Seonwoo.” 루시가 갑자기 말을 걸었다. 선우가 고개를 들었다. “네?” “아까 말인데.” 루시가 와인잔을 천천히 흔들었다. “솔직히 조금 놀랐어요.” “……뭐가요?” “생각보다 감각이 있으시더라고.” 칭찬이야, 아니야? 선우는 헷갈렸다. 루시는 보란듯이 웃었다. “에단이 왜 당신 아이디어를 마음에 들어 했는지 알겠어요.” 루시가 다시 에단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선우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 “…….” 둘 사이에는 자신이 모르는 시간이 있었다. 뉴욕. 갤러리. 업계 사람들. 서로만 알아듣는 농담.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너무 자연스럽게 공유하는 두 사람. “…….” 선우가 물잔을 내려놓았다. 유리잔에 비친 자신의 얼굴이 보였다. 피곤해
last updateZuletzt aktualisiert : 2026-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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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본부장님.” 선우가 거칠게 숨을 골랐다. “대체 무슨 일이에요?” 에단은 한 손으로 운전대를 잡은 채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평소보다 훨씬 날카롭게 굳은 옆얼굴이 있었다. 차창 밖으로 서울의 빌딩 숲이 빠르게 밀려났다. 선우는 처음으로 그의 얼굴에서 여유가 완전히 사라진 것을 보았다. “스코틀랜드 더프타운에 이례적인 폭염이 닥쳤습니다.” 에단이 입을 열었다. “우리가 점찍어둔 모틀락 18년 버번 캐스크 숙성 창고의 냉각 시스템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선우의 표정이 굳었다. “……냉각기가요?” 에단의 손가락이 운전대를 한 번 두드렸다. 탁. “현재 창고 내부 온도가 정상 범위를 벗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럼 원액은…….” 짧은 대답. 그리고 아주 낮게 이어졌다. “시간이 없습니다.” 선우는 입을 다물었다. 어쩌지. 첫번째 난관에 봉착한 기분이었다. “아시다시피, 버번 캐스크는 온도에 민감합니다. 숙성 환경이 무너지면 우리가 의도했던 첫 번째 레이어부터 달라지게 되겠죠.” “바닐라와 꽃향기…….” 선우가 중얼거렸다. 에단이 고개를 끄덕였다. “선우 씨가 말했던 첫맛입니다.” 그가 잠시 말을 멈췄다. “처음 입에 닿았을 때 사람을 방심시키는 향이요.” 차 안이 조용해졌다. “그게 무너지면 Heartbeat는 우리가 처음 설계했던 술이 아닙니다.” 에단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셰리 캐스크의 묵직함만 남겠죠.” 그가 앞을 보며 말했다. 맛의 순서. 첫맛. 중간의 뜨거움. 마지막에 남는 모틀락의 지독한 잔향. 그 모든 것이 한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는 위기였다. 선우는 잠시 말을 잃었다. “그런데 본부장님. 내일 오전에는 루시 씨와 패키지 최종 미팅이 있잖아요.” 에단이 짧게 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아름다운 벨벳을 두르고, 금박을 입히고, 백화점 조명 아래 세워놓는다 한들.” 그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
last updateZuletzt aktualisiert : 2026-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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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14시간의 비행은 길었다. 눈을 감았다 뜨면 서울이었고, 다시 눈을 뜨면 창밖의 구름이었고. 그리고 마침내. 에든버러 공항이었다. 비행기 문이 열리자마자 차가운 공기가 얼굴을 후려쳤다. 대한민국 서울의 습기와는 달랐다. 이곳의 공기는 차갑고 축축했다. 이끼 냄새와 젖은 흙, 멀리서 불어오는 바닷바람에 빗물까지 뒤섞여 있었다. 선우는 공항 밖으로 나오자마자 어깨를 움츠렸다. “역시 춥네요.” “더프타운은 더 춥습니다.” ​공항 입구 갓길에 들어서자마자 비상등을 켠 채 대기하고 있던 검은색 올드 클래식 랜드로버 한 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차에서 내린 현지 직원이 에단을 발견하고 다가왔다. “Mr. Lowell.” 에단은 가볍게 목례했다. “Morning.” 그리고 그대로 운전석으로 향했다. 그는 내내 입고 있던 런던제 맞춤 수트 상의를 벗었다. “…….” ​그리고 대신 차 뒷좌석에 미리 놓여 있던, 하일랜드의 거친 수풀에나 어울릴 법한 낡고 빳빳한 바버 자켓을 꺼내 걸쳤다. 투박하고 낡아 보였다. 그런데 그걸 걸치는 순간. 사람이 달라졌다. 서울에서의 에단은 완벽하게 재단된 수트와 시계, 흐트러짐 하나 없는 머리카락까지 전부 계산된 사람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그는 달랐다. 빗속의 황야와 오래된 증류소가 더 잘 어울리는 남자. 수트가 그를 완성했다면. 이 재킷은 그가 원래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드러내는 것 같았다. 에단이 운전석에 앉았다. “타세요.” 선우가 조수석에 올라탔다. 에단이 시동을 걸었다. 묵직한 엔진음이 새벽의 공기를 깨뜨렸다. “준비됐습니까?” “네.” 에단이 기어를 넣었다. “여기서부터는 1분 1초가 전쟁입니다.” *** ​더프타운의 새벽은 서울보다 훨씬 무겁고 축축했다. 안개가 자욱하게 깔린 비포장도로를 따라 도착한 아르벨라의 옛 증류소는 비에 젖은 보리와 진한 위스키 원액 향으로 가득 차 있었다. ​에
last updateZuletzt aktualisiert : 2026-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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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선우가 눈을 떴다. “아니요.” 에단의 표정이 굳었다. “뭐가 아닙니까?” “안 날아갔어요.” 선우가 잔을 내려다봤다. “향.” 그리고 아주 천천히 미소가 번졌다. ​“오히려 더 선명해요, 본부장님. 고온 때문에 숙성이 비정상적으로 가속된 것 같아요.” ​에단의 눈빛이 순간 흔들렸다. “확실합니까?” 목소리에서 처음으로 아주 미세한 조급함이 묻어났다. ​“버번 캐스크 특유의 진득한 단맛이……. 모틀락 고유의 거친 황동 빛 뼈대에 완전히 달라붙었어요. 원래라면 몇 년은 더 걸렸을 질감이에요.” 에단이 서둘러 잔을 낚아채듯 가져갔다. ​그는 선우의 입술이 닿았던 것을 전혀 개의치 않고, 남은 원액을 입안으로 거칠게 들이켰다. 단숨에 잔을 비워내는 그의 목줄기가 크게 출렁였다. “……” ​묵직한 액체가 목을 타고 넘어가는 순간, 에단의 미간이 단번에 좁혀졌다. 처음 혀를 덮은 건 모틀락 특유의 묵직한 육질감이었다. 그 뒤로 흙내음과 젖은 오크, 아주 미세한 스모키함이 낮게 깔리며 혀 전체를 천천히 붙잡았다. 처음에는 착각처럼 가벼웠지만, 혀를 굴릴수록 선명해졌다. 모틀락의 묵직함을 뚫고 올라온 그 화사한 향이 의외로 또렷했다. 감청색 눈동자 깊은 곳에, 처음 보는 감정이 떠올라 있었다. 안도. 그리고. 기쁨. 아주 작지만 분명한 웃음이 그의 입가에 걸렸다. 창고 밖에서는 빗물이 쏟아지고 있었다. 수백 개의 오크통 사이. 죽을 뻔했던 Heartbeat는 아직 살아 있었다. 그리고 선우는 어쩐지. 자신의 심장 역시 이 남자 앞에서는 아직 너무 멀쩡하게 살아 있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 ​“숙성만 빨라진 게 아니네요.” “네. 이건 위기가 아니라 기회예요.” 에단이 빈 잔을 손 안에서 굴리며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버번이 모틀락을 완전히 눌러버렸어요. 밸런스가 아슬아슬할 정도로.” 선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당장 숙성을 멈춰야 해요.” 선우가 잔을 내려다보며 빠르게 말을 이었다. “지금 상태에
last updateZuletzt aktualisiert : 2026-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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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일단 근처로 이동하시죠.” 현지 직원이 앞장섰다. 폭풍이 거세지는 탓에 더프타운으로 돌아가는 건 무리였다. 한참을 빗줄기 속으로 달린 끝에 차가 멈춘 곳은 숲 한가운데 자리한 낡은 돌벽 오두막이었다. 거칠게 쌓아 올린 회색 돌벽은 세월을 견딘 흔적처럼 군데군데 이끼가 짙게 내려앉아 있었고, 낮고 묵직한 지붕에는 빗물이 폭포처럼 흘러내렸다. 처마 끝에 매달린 녹슨 철제 등 하나가 바람에 흔들리며 희미한 불빛을 토해냈다. 선우가 차에서 내리자마자 차가운 비바람이 얼굴을 후려쳤다. “으…….”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리는 순간이었다. “잠깐.” 에단의 목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렸다. 그가 먼저 선우 쪽으로 몸을 돌렸다. “……!” 쏟아지는 비를 막아주려는 듯 한쪽 팔을 들어 선우의 머리 위를 가렸다. 넓은 어깨가 그대로 비를 받아냈다. “뛰어요.” “본부장님은요?” “저야 괜찮습니다.” 에단은 대수롭지 않게 말하며 선우의 팔꿈치를 가볍게 잡았다. 차에서 오두막까지 고작 몇 걸음이었다. 그런데 폭풍 속에서는 그 짧은 거리조차 길었다. 선우가 미끄러질 듯 발을 헛디디자 에단의 손이 재빨리 허리 가까이로 내려왔다. “조심.” “……네.” “젖은 돌은 미끄럽습니다.” 그의 손이 다시 선우의 팔을 단단하게 잡았다. 두 사람이 서둘러 오두막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쾅. 거센 폭풍이 문 너머로 밀려났다. 오래된 나무 냄새와 먼지, 눅눅한 돌 냄새 사이로 희미한 장작 향이 배어 있었다. 부르릉. 돌 벽 바깥으로 증류소로 돌아가는 직원의 차가 출발하는 소리가 들렸다. 선우는 그제야 알았다. 자신의 머리카락은 거의 젖지 않았다는 것을. 대신 에단의 어깨와 머리카락에서는 빗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본부장님, 옷이 다 젖으셨는데…….” “내 옷보다 그쪽 안색이 더 문제에요.” 에단이 젖은 머리카락을 손으로 쓸어 넘기며 대답했다. 그리곤 아주 익숙한 동작으로 벽난로 앞으로 걸어
last updateZuletzt aktualisiert : 2026-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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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그냥 해요, 김선우 씨.” 낮은 목소리였다. “미안해하지 말고.” 선우의 손끝이 잔을 꽉 움켜쥐었다. “나 이용하고 싶으면 이용하고.” 그는 마치 별일 아니라는 듯 덤덤하게 말했다. 하지만 그 말은 선우가 평생 들어보지 못한 종류의 허락이었다. 에단의 눈이 그녀를 향했다. “흔들리고 싶으면 흔들리고.” “…….” “내가 다 받아줄 테니까.” 허락 같기도 했고. 유혹 같기도 했다. “여기 있는 동안만이라도 좀 제멋대로 살아요.” 낮은 목소리가 불꽃 사이로 천천히 스며들었다. “내가 다 모른 척해 줄게.” 에단은 서두르지 않았다. 그녀를 똑바로 바라봤다. “…….” 선우의 손끝에 힘이 들어갔다. 선우는 고개를 숙여 위스키를 한 모금 삼켰다. 뜨거운 액체가 목을 타고 내려갔다. 그런데. 달았다. “…….” 손안의 잔이 미세하게 떨렸다. 아, 못 쳐다보겠는데. 옆 얼굴이 불에 데인듯이 뜨겁고. 술보다 먼저 심장이 달아올랐다. 두 사람 사이로 장작 타는 소리만 간간이 흘렀다. 밖에서는 폭풍이 돌벽을 두드리고 있었다. 세상이 통째로 뒤집힐 것처럼 사납게 몰아치는 밤. 그런데 이 작은 오두막 안만큼은 이상할 정도로 고요했다. 선우는 담요를 가슴께로 끌어올렸다. 포근하다. 이 짧은 방종이 내일부터 자신을 얼마나 괴롭힐지 알고 있었다. 그래도 지금은. “…….” 싫지 않았다. 아니. 조금 더 여기 있고 싶었다. 그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는 순간, 선우는 괜히 손에 쥔 잔을 내려다봤다. 이곳에서는 아무도 자신을 재촉하지 않았다. 윤오의 다정함도, 회사의 시선도, 내일 해야 할 일도 잠시 문밖에 세워둔 것 같았다. 그리고 에단이 있었다. 벽난로의 불길이 거실을 주황빛으로 핥아 내렸다. 에단은 말없이 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불빛이 그의 턱선을 따라 느리게 움직였다. 젖은 머리카락 끝에서 떨어진 물기가 목선을 타고 사라졌다. 평소의 단정한 수트 대신 헝클어진 셔츠 차림인데도, 지금이 더 보기 좋은듯
last updateZuletzt aktualisiert : 2026-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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