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심연의 군주는 로맨티스트: Chapter 51 - Chapter 60

183 Chapters

제51화

형체를 숨겨 음락전으로 향하자, 오늘도 지독한 벌을 받은 타나는 기진맥진 늘어져 가는 숨만 내뱉고 있었다. 꼭 감은 눈, 새하얀 나신 주변에 널브러진 까만 슬라임들. 온몸을 기어다니며 괴롭히던 슬라임들은 이미 한참 전에 칼데론에게 쪽쪽 빨려 형체를 잃어가고 있었다. 아니, 말라가고 있었다. 벌써 이틀이 지났다. 이쯤이면 충분한 벌을 받았다 싶다가도 애증 어린 마음은 용서라는 감정을 쉽게 인정하지 못했다.“죽지만 마. 내 이름을 울부짖는 것 정도는 봐주기로 했으니까.”애원하며 울부짖는 이름, 칼데론. 누구든 입에 올리는 게 금기인 이름이 유일하게 타나에게 허락된 순간이었다. “칼.. 칼데론.. 님...”중얼거리듯 흘러나온 미약한 말에 오늘도 그는 음락전을 떠났다. 이상하게 타나가 아니라, 자신이 벌을 받고 있는 기분이 너무도 불쾌해서.그래서 조금 더 탐락의 향에 허우적거리게 내버려두기로 마음먹었다. “젠장, 기분이 왜 이렇게 더러운 거냐고.”***“군주님, 타나 아가씨께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십니다.”로일드의 보고에도 칼데론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보나 마나 마물한테 시달려 앙앙거리다 혼절한 거겠지. 중간중간 시녀들이 밥도 먹이고, 몸도 씻기고. 나름 최선을 다해 배려해 주고 있거늘.“인간의 육체가 원래 그렇지 뭘.”“어제랑은 다릅니다. 시녀들 말로는 온몸이 불덩이 같다고..”뭐? 아침까지만 해도 내게 달콤한 단물을 선사했는데?심지어 내 이름을 울부짖으며 그 어여쁜 허리를 통통 튕겨댔는데?칼데론의 형체가 연기처럼 사라졌다. 텅 빈 침실 안에 남은 로일드의 머릿속엔 수만 가지 생각이 오갔다.타나는 분명 밉지 않은 존재다. 자신에게도 이런 인간은 처음이었다.하지만, 마음을 단단히 먹은 혈각들이 제대로 움직이기라도 한다면 둠바스는 검은 피로 물들 것이다.군주의 분노는 제국 하나를 단숨에 쓸어버릴 테니까. 설령 그게 자신의 제국이더라도. ‘언젠가는 내쳐지겠지.’오천 년을 모셔온 절대적인 군주, 칼데론. 그의 뜻에 반기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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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화

둠바스 시내 부근, 에일코 시장. 그곳의 가장 낮은 땅에선 인간들이 재배한 갖가지 작물과 생활용품은 물론 농사를 짓는 데에 필요한 도구, 비료, 씨앗들을 판매한다. 지대가 높아질수록 마족들을 위한 값비싼 비단, 장신구, 고급 과일들을 판매하는데 상인들은 대게 인간이다.즉, 인간들 중에서도 계급이 철저하게 나눠져 있다는 것. 주방에서 사용할 채 바구니를 사러 온 세쟈르가 시장 안을 두리번거렸다. 북적거리는 시장 안, 인간들은 그런 세쟈르를 향해 눈을 흘겼다.차림새는 분명 둠바스 성의 시녀복인데 눈동자가 왜 저렇게 시퍼렇지? 머리카락 색은 또 뭐고? 설마, 이 세계에서도 가장 미천한 취급을 받는 돌연변이 같은 건가? 그동안 저렇게 아리따운 돌연변이는 본 적이 없는데. 모두가 궁금증이 가득한 눈동자를 머금었지만, 아무도 쉽게 말을 걸지 못했다. 둠바스 성에서 일을 하는 인간은 전부 칼데론의 소유니까.함부로 건드렸다간 목숨을 잃는다. 자신을 무시했다며 온 가족이 몰살당하는 사건은 십 년에 한 번꼴로 발생한다.“저, 과일을 담을 채 바구니를 사러 왔는데요.”상점 주인이 앞치마에 손을 슥 닦아내고는 나무로 된 채반을 건네쟈 세쟈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조금 더 큰 건 없나요?”“잠시만요.”미간을 찌푸리며 크기가 큰 채반을 건네는 손길이 친절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세쟈르의 표정이 단숨에 굳어버렸다.자신은 고작 시녀일 뿐인데, 지금도 심부름을 하러 왔을 뿐인데, 왜 이렇게 이런 태도가 이질적이지? 가슴에 욱하고 치밀어 오르는 불쾌한 기분이 스스로도 이해되질 않아, 구릿빛 동전 하나를 가판대 위에 올려놓았다. 커다란 채반을 손에 들고 시장 입구를 빠져나가려던 중, “어머, 시녀네?”화려한 드레스와 악세사리로 치장한 여인이 세쟈르를 향해 거침없이 다가와 말을 건넸다. 세쟈르는 그 범접할 수 없는 차림새에 두 손을 모았다.누군지는 모르겠으나 이미 외관에서 뿜어져나오는 포스에 주눅이 들었다.“예, 둠바스 성의 시녀 세쟈르라고 합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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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화

밤이 돼서야 깨어난 타나는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도무지 정신이 차려지질 않아서, 그동안 무슨 일을 겪은 건가 싶어서. 천천히 머릿속을 정리했다. 세쟈르의 편을 들다 군주님의 화를 돋구었고, 정신을 차려보니 그곳은 음락전이었다. 3일간의 모든 일이 또렷하게 스쳤다. 발가벗겨진 채 각종 마물들에게 탐해지고, 정신을 놓았다 차렸을 땐 벌어진 다리 사이로 칼데론의 붉은 눈동자가 일렁였다.몇 번이나 살려달라 빌었었는지, 감당하기 버거운 쾌락은 확실한 고문이었다. ‘난... 성 고문을 당한 거야.’순간적으로 떠오른 단어와 달리, 내내 제 입으로 울부짖었던 단어는... 칼데론이었다. 매 순간 그에게 안기고 싶었다. 그가 자신을 안아주고, 품어주고, 그 단단하고 커다란 성기가 자꾸만 욕심나 애가 타 죽을 지경이었다. 대체 그 감정은 뭐였을까? 지금은 너무너무 두렵고 무섭게 느껴지는데 말이다.“타나.”어느새 침대 옆으로 다가와 자신을 내려다보는 붉은 눈동자. 타나는 다급히 상체를 일으켜 고개를 숙였다.“군주님..”“어째 감정 따위가 이토록 시시각각 변하기만 하는지.”“네...?”칼데론의 손가락이 쇄골 부근에 새겨진 표식을 느릿하게 쓰다듬었다.“갈망하더니, 두려워하고, 또 기분이 좋다가도 슬퍼지고. 어느 장난에 맞추라는 건지 알 수가 없군.”뭐야? 그동안 내 감정을 훔쳐보고 있던 거야? 이게 무슨 부당한 논리야..! 언제는 제가 새긴 표식도 아니라더니. “설.. 설마... 군주님께선 그동안 제 마음을..”“뭐, 매번은 아니고. 감정이 크게 요동칠 때?”“....요동이요?”“세 번이나 살려줬잖아. 말라토 기둥, 흑개구리, 몰틴.”아, 위험한 순간마다 기다렸다는 듯 나타났던 건 이 표식 때문이었구나.이상하긴했다. 마음속으로만 간절히 외쳤던 것 같은데, 늘 타이밍 좋게 나타나 위험에서 구해줬었으니까. 하지만 신기하다, 고맙다는 생각은 아주 잠깐이었다. 지금은 서운함 감정이 훨씬 더 크게 자리잡고 말아버렸다.아무리 큰 죄를 지었어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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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화

아침 해가 떠오르자마자 방을 나선 세쟈르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성을 나섰다. 보네타의 말을 무시할 수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 선물이 뭐일지 너무나도 궁금해 밤새도록 잠을 설쳤다.동쪽 성벽, 굳게 닫힌 성문을 지키던 기사가 세쟈르의 발걸음을 가로막았다. “어딜 가느냐.”“타나 아가씨께서 몸이 좋지 않다고 들었습니다. 혹, 기력 회복에 좋은 약초가 있을까 하고요.”망설임 없이 열린 문, 문밖으로 나서자마자 미간이 잔뜩 구겨졌다.자신을 가로 막는 것도, 타나라는 이름 하나에 아무렇지 않게 문이 열린 것도. 하나같이 언짢음으로 몰려와 배알이 꼴렸다.‘흥, 그 기지배가 뭐라고?’그리고 정말 성벽 너머엔, 자신의 머리색을 꼭 닮은 네이비색 가시덤불이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귀한 손질을 받은 듯 매끈한 원형, 사람 하나가 숨어도 충분할 정도의 크기와 너비. "거짓말이 아니었잖아?"덤불 아래, 희미하게 반짝이는 무언가를 향해 망설임 없이 손을 뻗었다.손 위에 올려진 건 오렌지빛을 머금은 작은 보석이었고, 그 색이 보네타의 머리색과 눈동자를 꼭 닮아 있었다. 뚫어지게 보석을 바라보던 중, 보석이 공중으로 떠오르며 빛을 발했다.“이, 이게 뭐야..?”깜짝 놀라 몸이 굳어버린 사이, 점점 강해지는 빛에 눈이 멀 것만 같아 눈을 질끈 감았다. “아..!”순간 귀 뒤에서 느껴지는 찌릿한 고통. 동시에 귓가에서 속삭이듯 울려 펴지는 익숙한 목소리. “어때? 선물이 마음에 들어?”보테타였다. 보석의 주인. 이런 짓이 너무 쉬운 빼어난 마력을 가진 존재. “보네타 아가씨...?”“지금부터는 내 말대로 움직여야 살아남을 거야. 만약 거절한다면, 내가 가장 아끼는 투혼(偸混)의 보석을 훔친 죗값을 톡톡히 물어야 할 테니까.”아, 이 악랄한 여자의 선물을 기대하는 게 아니었는데. 왠지 그 눈빛부터 표정까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했다.세쟈르는 텅 비어버린 손으로 자신의 귀 뒤를 만지작거렸다. 살에 박힌 보석이 묘한 빛을 내며 반짝였다.“저한테 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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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5화

몸이 회복되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 침실 안은 농밀한 숨으로 가득 찼다.감당하기 힘든 쾌락이 타나를 덮쳤고, 칼데론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타나의 모든 곳을 핥고, 빨고, 쓰다듬었다.혀와 손길은 한없이 부드러웠지만, 피스톤은 거친 걸 넘어 사악할 정도. 그래서 더더욱 피할 수 없었다. 정신을 차렸을 땐, 자신 역시 쾌락에 젖어 끝도 없이 허덕이고 있었으니까. “지금은 기분이 좋나 보군.”옆으로 돌아누워 그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던 탓일까, 아니면 정말로 좋았던 걸까. 타나의 입에서 솔직한 말이 흘러나왔다.“읏, 네, 응, 좋, 좋아요... 너무 좋아요... 하아....”칼데론의 손이 타나의 목덜미를 부드럽게 감쌌다.허리는 난폭하게 쳐올리면서도 둥글게 말린 등으로 튀어나온 척추뼈가 꼴보기 싫어, 귓바퀴를 혀로 핥았다.“으, 하, 아아...!”“앙상하게 마르면, 용서하지 않을 것이야.”억울했다. 이제는 살이 빠지는 것도 용서 받지 못할 일이야? 이렇게 괴롭히는데 체력이 남아날 리가 있겠냐고요..! 허벅지는 딱 달라붙어 있는데, 뒤에서 사정없이 박아대는 성기는 정말이지... 커도 너무 컸다.흉측하리만큼 크고 두꺼운 감각이 자꾸만 들이닥치자, 예민해진 질구가 경련하며 파르르 떨렸다. 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인간들이 사는 마을로 보내달라 떼를 썼는데, 지금은 또 그의 침대 위에서 헉헉거리며 모든 곳을 내어주고 있었다.'왜 그런 말을 내뱉었을까... 이렇게 좋은데... 좋아 죽겠는데...'그 사실이 민망하고 창피하면서도, 귓구멍 안으로 흘러오는 그의 따스한 숨결마저 자극이었다.엉덩이를 뒤로 밀어 성기를 향해 바짝 붙이자, 칼데론은 타나의 젖가슴을 뭉개버릴 듯 움켜쥐었다. 퍽퍽퍽, 아래가 꿰뚫리는 힘은 약해지긴커녕 자꾸만 거세지는데. 오늘은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타나는 금방이라도 가출할 것같은 멘탈을 최대한 부여잡았다.기절하기 싫어, 조금만.. 조금만 더...“읏, 으응, 군, 군주님, 하아앙..!”애처로운 마음과 달리, 얼마 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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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화

같은 시각, 세쟈르의 탐스러운 엉덩이가 탄력 있게 흔들렸다.침대 위, 무릎을 꿇고 엎드린 그녀는 로일드의 손에 뒷머리가 짓눌린 채 앙앙거렸다. “발정이 잔뜩 난 자세군.”“으으으응, 아, 아파요..!”오늘도 진실에 과장이 더해져 울부짖는 소리는 로일드의 흥분을 부추겼고, 사실 세쟈르 역시 그의 두꺼운 성기에 자궁이 터질 것만 같았다. 이제는 그의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아랫도리가 젖는다.자신도 모르게 그의 방문을 애타게 기다릴 지경이다.“감히, 명령 없이 엉덩이를 내리는 건가?”“흣, 잘, 잘못했습니다...! 흐아아앙...”엉덩이를 더 높게 치켜든 순간, 더욱더 깊숙하게 찔러대는 힘에는 자비라곤 없었다.앙칼진 비명이 높아질수록 구멍에서는 허여멀건한 거품이 일었다. 로일드는 세쟈르의 방을 틈만 나면 찾았다. 아르켈의 공주가 걸레가 되어가는 재미를 보는 게 요즘 그의 유일한 낙이었으니까. 정신없이 흔들리는 머리칼 너머, 귀 뒤에 박힌 손톱만 한 점이 그의 눈에 포착되었다. “흠, 귀 뒤에 이런 점이 있었나?”“앗, 흐응, 네에...!”세쟈르는 혹시나 싶어 두 눈을 질끈 감았지만, 그는 별생각 없이 오직 욕망에만 충실했다.엉덩이를 붙잡아 벌려 자신의 성기가 드나드는 음탕한 모습을 지켜보며 더더욱 폭력적으로 쑤셔 박았다. 머리 위로 쭉 뻗은 팔이 부르르 떨렸고, 세쟈르는 엄한 베갯잇만 쥐어뜯으며 울부짖었다. “빨라요, 흐앙, 로일드 님, 너무 빠르고 깊어서, 으응!”속도와 힘을 줄일 생각은 전혀 없었다. 천박한 공주님, 말은 늘 이런 식이면서 몸뚱어리는 다른 말을 하고 있잖아.오늘도 로일드는 세쟈르의 자궁에 모든 욕망을 쏟아내고는 바지춤을 정리했다. 침대에 앉아 새하얀 명주천으로 그의 흔적을 닦아내던 세쟈르가 스리슬쩍 눈치를 보며 입을 열었다.“로일드 님, 혹시.. 타나 아가씨는... 좀 괜찮으신가요?”“너 따위가 신경 쓸 존재가 아니지 않나.”이제는 그의 무시따위는 적응이 됐는지, 세쟈르는 곧바로 숙여진 고개를 살살 저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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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화

둠바스로 향하는 게이트 앞, 창 기둥을 움켜쥔 오르테아스의 손이 부르르 떨렸다.피부가 허옇게 질릴 정도로 꽉 쥔 주먹. 하지만 바닥에 박혀버린 듯 움직이지 않는 두 다리.솔피온의 충성스러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폐하, 어서 세쟈르 공주님을 구해야 합니다.”“벨리오는 데리고 왔느냐.”뒤쪽에서 벌벌 떨고 있던 벨리오가 질질 끌려오더니, 오르테아스 앞에 무릎을 꿇었다.타나와 친했다는 이유로 끌려온 곳이 둠바스로 향하는 게이트라니. 눈앞에 펼쳐진 게이트는 너무나도 웅장했지만, 빛으로 가득한 벽면에 새겨진 균열이 불길했다.벨리오는 균열의 이유를 모르지 않았다. 칼데론이 게이트 봉인을 산산조각 냈다는 소문은 이미 아르켈 바닥에 파다했으니까.“살, 살려주십시오 폐하...”“너에게 신력을 다룰 힘을 내려줄 것이다.”벨리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좋아서가 아니라 두려워서. 간혹 폐하의 총애를 받아 신력을 다루게 된 인간들이 존재했었다. 그중 상당수가 버티질 못하고 세상을 떠났고 말이다.온몸이 녹아내리거나, 심장이나 안구가 터지거나. 혹은, 미쳐 날뛰다 죽임을 당하거나.“저, 저는 그런 대단한 힘을 다룰만한 존재가 아니 옵니다. 폐하, 부디 명을 거두어 주시옵소서...”눈물을 뚝뚝 흘리며 도리질을 해대는 벨리오의 눈앞에 번쩍이는 창이 내리꽂혔다. “살 것이냐, 아니면 죽을 것이냐.”“살려주십시오..! 제발 목숨만.. 목숨만 건사할 수 있도록 자비를 베풀어...”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창에서 흘러나오는 금빛 아지랑이가 벨리오의 눈 안으로, 코 안으로, 귀 안으로 정신없이 스며들었다. 오르테아스는 끅끅거리며 고통에 몸부림치는 벨리오를 여유롭게 내려다보았다. ‘칼데론은 타나를 죽이지 않았을 테지.’삼백 년 만에 귀환해 가장 먼저 한 일이, 바로 그 타나라는 계집애를 구한 한심한 짓거리였으니까. 만약 그 막강한 힘이 칼데론이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졌다면, 세상은 달랐을 것이다.바하족의 수장은 지금처럼 고개를 빳빳하게 들지 못할 것이며,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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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화

잠에서 깨어난 타나는 베개 옆에 웅크린 검은 털 뭉치를 보곤 재빨리 몸을 일으켰다. “깜, 깜짝이야..!”먀옹.고양이었다. 앙증맞은 고양이는 꼭 노란 보석이 박힌 것 같은 눈동자를 꿈뻑거리더니, 타나의 손에 이마를 부볐다.설마 또 칼데론의 장난질인가? 아닌데? 눈동자가 노란색인데...? 혹시 나를 위한 선물인 건가? “넌 누구야? 왜 여기 있어?”고로로로롱.. 먀..!애교도 많고 나름 귀여운 고양이인 것 같았다.조심스레 손을 뻗어 품에 안자, 보드라운 털과 말랑거리는 몸에서 따스한 체온이 느껴졌다. “개냥이잖아. 무슨 고양이가 이렇게 착해?”칼데론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딱 사라지려던 순간,“이제야 웃는군.”..!역시나, 고양이의 입에서는 너무도 익숙한 그의 목소리가 튀어나왔다.소스라치게 놀란 타나는 품에 안고 있던 고양이를 침대 끝에 멀찍이 내려놓았다. “지,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왜 내려놓지? 안거라.”긴 꼬리로 침대 시트를 툭툭 치는 모습은 영락없는 고양이였다.또 뭔데? 밤새도록 괴롭힐 땐 언제고, 갑자기 왜 고양이로 변해서 이러는 건데. “싫, 싫어요...”고양이, 아니.. 칼데론이 작은 입을 앙! 벌리더니 타나의 팔꿈치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더니 정말로 물어버리는 게 아닌가.“꺄악, 아파요!”“안거라.”살짝 남은 이빨 자국이 어처구니가 없었다. 도무지 본 모습이랑은 어울리지 않는 고집의 흔적 같달까.타나는 결국 고양이가 된 칼데론을 품에 안고 씩씩거렸다.“많이 심심하신가 봅니다.”“정원 산책을 하고 싶은데.”“직접 걸어 가시면 되잖아요.”“안겨 가고 싶은데.”맞구나, 고집. 그것도 쓰잘데기 없는 고집.한숨을 내쉬면서도 발을 쿵쿵거리며 침실을 나선 타나는 그렇게 칼데론을 안은 채 복도를 거닐었다. 칼데론의 기분은 좋아 보였다. 꼬리는 타나의 팔을 휘감았고, 고로롱거리는 소리가 품 안에서 울려 퍼졌다.“개냥이가 무엇이지?”“아, 개 같다는 뜻입니다.”“썩 기분 좋은 말은 아닌 것 같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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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9화

쉬익─칼데론이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오던 찰나, 갑자기 거대해진 몸집에 밀려난 타나의 몸이 뒤로 쏠렸다. 검은 잔디를 나뒹구는 타나와 그 모습을 내려다보며 잔뜩 당황한 칼데론. “아악..!”“거리 계산을 미처 하지 못했군.” 자리에서 일어난 타나가 치맛자락을 털어내며 눈을 흘겼다.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말도 없이 갑자기 변하시면 어떡해요!”“실수.”기가 막혀서, 미안하다는 말이 그렇게 어렵나? 엉덩이 아파 죽겠네. 하, 얄미워.칼데론은 버둥거리는 타나를 안고, 다시 바위 위에 앉아 등허리를 쓰다듬었다.손길은 다정했지만 지금 아픈 곳은 거기가 아닌데. 어머? 내가 지금 엉덩이를 만져주길 바라는 거야? 미쳤어. “사랑?”짧은 단어가 떨어지는 순간 두 눈이 마주쳤다. 타나는 매일 보는 얼굴이 오늘도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들어 스스로가 한심해졌다. 아 맞다, 방금까지 아기곰이랑 그런 한심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지?이놈의 소녀 감성은 끝끝내 버리질 못한다니까. 어차피 하등 도움도 안 되는, 쓸모 없는 감정일 뿐인데. “그건 됐고요, 잘해주다가 벌을 주다가. 온도차가 심한 날들이 자꾸만 반복되잖아요. 그것도 성 안에만 갇혀서요.”“가고 싶은 곳이 있는 건가.”“제가 가본 곳이라고는 돌산밖에 없어요. 어디에 뭐가 있는 줄 알아야 대답을 하죠.”인간의 감정은 역시나 헷갈리고, 귀찮고, 한심하구나.음락전을 다녀온 지 며칠이나 됐다고. 벌써부터 틱틱 거리는 걸 보아하니, 대가리는 아무래도 장식인 건가? 그래도 화는 나지 않았다. 그때처럼 등을 돌리며 제 시야에서 벗어나진 않았으니까.“로일드.”?“군주님께 고개를 바칩니다.”0.1초만에 나타난 로일드가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타나가 둠바스 구경이 하고 싶다는군.”순간, 퓨마로 변한 로일드와 함께 성 근처를 거닐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살랑거리는 바람도 느끼고, 나무 아래에서 낮잠도 자고. 그때만 해도 행복한 날들이 이어질 줄 알았지. 음락전에서 지독한 고문을 받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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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화

흑사조의 날갯짓이 둠바스 하늘을 날아올랐다.질끈 감았던 타나의 눈도 어느새 열려있었고, 칼데론은 나긋한 목소리로 설명을 시작했다. “저긴 에일코 시장, 낮은 곳은 인간, 높은 곳은 마족들을 위한 곳.”“아... 시장이면, 먹을 것과 생필품을 파는 곳인가요?”“맞아. 화려한 보석은 물론 비단도. 아르켈과는 비교도 되지 않아.”사람들이 하나같이 콩알만 해 보였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이, 조금씩 잊혀져가는 현실에서의 시장과 별반 다르지 않다 느껴져 웃음이 났다.조금씩 시장이 멀어질 때 즈음, 웅장한 건물들이 모여있었다.풍기는 분위기는 고급 전원주택지를 연상시키는 딱 그 모습이었다.“이곳은 혈각들이 모여 사는 부촌이다.”“그때 그, 대전에 모여있던 자들이 사는 곳이요?”“응.”부촌에서 멀어질수록 건물들의 크기가 눈에 띄게 작아졌다. 산자락 아래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움막집들.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인간들이 모여 사는 곳이구나. 확실하게 나눠진 계급의 현실이구나.“조금 더 가까이서 보고 싶어요.”퍼득 거리는 날갯짓과 함께 작은 마을이 조금씩 선명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다.그 안에는 아이를 등에 업은 여인, 장작을 패는 남자, 동네 어귀를 뛰어다니는 작은 꼬마들의 모습을 담고 있었다. 이상한 건, 혈각들의 부촌보다 훨씬 더 평온해 보인다는 것.“행복해 보여요.”칼데론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흑사조의 옆구리를 툭툭 쳤을 뿐. 그 뜻을 알아챈 로일드가 빠르게 마을을 지나 방향을 틀었다. 둠바스는 생각보다 더 건재한 제국이었다.성을 중심으로 퍼져나간 수많은 갈래의 길과 건물들, 군데군데 위치한 산과 폭포는 물론 인간의 발길이 닿을 수 없는 조금은 위험해 보이는 곳까지. “홀바인 산맥이군.”“아! 군주님께서 흑룡 사냥을 나가시는 곳이요?”“그래, 자꾸 말을 듣지 않으면 이곳에 똑 떨어뜨려 주겠어.”아이고, 우리 군주님. 이런 말장난도 치실 줄 알았어?“흠, 그럼 어떻게 되는데요?"“흑룡의 송곳니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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