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os os capítulos de 내 아이를 지운 남자가 내 친구와 결혼한다: Capítulo 91 - Capítulo 100

148 Capítulos

제90화. 병원에 묶인 검사

담당 검사는 아내의 수술 동의를 끝낸 뒤에도 조사실로 돌아오지 못했다.유리문 너머에서 그는 같은 문장을 반복했다.“병원 판단대로 해 주십시오. 산모와 아이만 살려 주세요.”연희는 책상 위 원격 접속 의견서를 덮었다. 검사가 돌아오자 가장 먼저 물은 것은 수사 내용이 아니었다.“아내분 진료기록 보전 신청하셨어요?”검사의 눈빛이 단단해졌다.“내 가족까지 끌어들이겠다는 겁니까?”“끌어들이지 않겠다는 말이에요.”연희는 날짜와 항목만 적은 종이를 밀었다.“최초 진단, 처치 변경 시각, 보호자 동의 내용, 태아 심박 수치. 원본과 수정 이력을 전부 남겨 달라고 하세요.”“세강이 내 아내에게 무슨 짓을 할 거라고 보는 겁니까?”“모릅니다. 모르니까 기록을 지키라는 겁니다.”검사는 종이를 보지 않으려 했지만 휴대전화가 다시 울렸다.조금 전에는 응급수술이 필요하다고 했던 병원이 이번에는 상태가 안정됐으니추가 동의를 기다리라고 했다. 설명은 바뀌었고, 그에게 남은 것은 통화 시각뿐이었다.도율이 덧붙였다.“병원을 의심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나중에 의심할 일이 생겨도 확인할 수 있게 하라는 뜻입니다.”검사는 휴대전화 화면을 보여 주지 않은 채 물었다.“당신들은 이걸 거래 조건으로 쓸 생각입니까?”연희는 바로 답했다.“아니요. 아내분 기록과 내 사건을 바꾸지 않겠습니다. 당신이 수사를 계속해도 보전 신청은 하세요.”“내가 당신을 구속할 수도 있습니다.”“그래도 그 기록은 없어지면 안 돼요.”연희는 그가 쥔 약점을 공격하지 않았다. 그 선택이 검사에게는 비난보다 더 오래 남았다.검사는 종이를 집어 들었다.보호자 동의서 사본과 처치기록 수정 이력까지 적힌 항목을 읽은 뒤 병원에 다시 전화했다.“방금 설명한 처치 변경 사유를 서면으로 보내 주십시오. 전산 수정 이력도 보존해 주세요.”병원 쪽에서 길게 답했지만 검사의 표정은 더 굳었다.“규정상 어렵다는 답변도 기록해 두십시오.”통화를 끝낸 그는 조서를 덮었다.“오늘 조사는 여기까지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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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1화. 타는 과수원

불은 창고 하나만 먹고 끝날 생각이 없었다.“아버지!”연희가 차에서 뛰어내렸을 때, 재문은 이미 과수원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창고 지붕 한쪽이 무너지며 불붙은 판자가 밭으로 떨어졌다.마른 풀이 먼저 탔고, 불길은 지주대를 타고 가장 가까운 복숭아나무로 올라붙었다.열을 받은 열매가 가지에서 떨어져 흙바닥 위에서 터졌다.정애가 뒤에서 소리쳤다.“휴대전화부터 꺼내야 한다며!”창고 안 선별대 밑에는 세강과 토지 계약을 논의했던 구형 휴대전화가 있었다.압수수색 전에 반드시 보존해야 했던 증거였다.그런데 재문은 창고가 아니라 나무 쪽으로 달렸다.“불이 번진다.”“증거가 안에 있어!”“저것부터 살려야 해.”“전화기 타면 끝이야!”재문은 수도 호스를 잡아당겼다.“저 나무도 타면 끝이야.”호스 끝에서 나온 물은 불길에 비해 턱없이 약했다.재문은 나무 밑동에 물을 뿌리고 젖은 포대를 지주대에 감았다.한 그루.다음 한 그루.그리고 세 번째 나무로 옮겨 가는 순간, 창고 처마에서 타던 각목이 떨어졌다.“아버지!”연희가 달려갔다.재문의 어깨를 스친 불붙은 나무가 바닥에 떨어졌다.도율이 소화기를 뿌리는 사이 정애가 재문의 외투를 벗겼다.오른팔과 목덜미 피부가 벌겋게 부풀어 있었다.“병원 가자.”재문은 다시 호스를 잡았다.“저쪽부터.”연희가 손에서 호스를 빼앗았다.“휴대전화도 안 꺼냈는데 왜 나무부터 살려!”재문은 타들어 가는 가지를 봤다.“전화기는 다른 증거를 또 찾을 수도 있다.”“아버지.”“저 나무는 15년이다.”짧은 말에 연희가 멈췄다.“네가 집 떠난 해에도 꽃 피었고, 네 엄마 수술했을 때도 내가 혼자 약 쳤다.저건 다시 사다 꽂는 물건이 아니야.”불길이 옆 나무로 건너갔다.세강의 개발계획서에는 이곳이 필지번호와 면적으로만 적혀 있었다.재문에게는 어느 해 냉해를 버틴 나무인지,어느 가지에 어린 연희가 올라갔는지까지 남아 있는 땅이었다.소방차 사이렌이 가까워졌다.소방대원들이 가족을 밖으로 밀어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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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2화. 폐기물의 출처

불탄 창고에서 나온 것은 증거가 아니라 혐의가 됐다.세강병원 로고가 남은 의료폐기물 봉투가 감식용 비닐에들어가기도 전에 압수수색팀 책임자가 재문을 찾았다.“농장주가 어디 있습니까?”연희가 대신 답했다.“화상 때문에 병원에 갔습니다.”“이 폐기물을 보관한 경위를 확인해야 합니다.”“아버지는 저게 뭔지도 몰라요.”“그건 조사해서 판단합니다.”오전 8시 17분, 세강의료재단은 입장문을 냈다.[ 당 재단은 해당 농가와 의료폐기물 반출에 어떠한 관련도 없으며,불법 취득·보관 경위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요청합니다. ]연희는 마지막 문장을 두 번 읽었다.불이 난 지 3시간도 되지 않았다. 감식 결과도,봉투 안 내용물도 확인되지 않았는데 세강은 이미 ‘불법 취득·보관’이라는 이름을 붙였다.도율이 입장문 발표 시각을 기록했다.“누가 가져다 놓았는지는 아직 아무도 모릅니다.”“그런데 저 사람들은 아버지가 가져갔다고 먼저 말하네요.”“정확히는 그렇게 믿게 만들고 있습니다.”점심이 되기 전에 마을 단체대화방에 사진이 돌았다.검게 탄 창고와 붉은 의료폐기물 표시가 한 화면에 찍혀 있었다.[ 과수원에서 병원 폐기물 발견 ][ 농산물 오염 가능성 조사 ]첫 전화는 농협에서 왔다.“재문 형님네 복숭아, 오늘 출하 잠깐만 잡아 두겠습니다.”정애가 병원 복도에서 벌떡 일어났다.“불난 건 창고인데 복숭아를 왜 막아요?”“사람들이 걱정을 해서 그렇죠. 검사 결과 나오면 다시...”“누가 우리 나무에 그걸 뿌렸대요?”“우리가 그런 뜻은 아니고요.”통화는 끝까지 책임질 주어를 찾지 못했다.두 번째는 마을 공동선별장 계약 취소였다.세 번째는 단골 과일가게였다.“누님, 미안한데 이번 물량은 좀 어려울 것 같아요. 손님들이 사진을 봐서.”정애는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어제까지 우리 복숭아 달다고 박스 더 달라던 사람들이야.”재문은 화상 처치를 받은 팔을 붕대로 감은 채 병실 침대에 앉아 있었다.“팔지 마.”정애가 돌아봤다.“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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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3화. 증거를 심은 사람

세강병원 의료폐기물과 연희의 수술 물품에는 같은 제조번호가 찍혀 있었다.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누가 봉투를 과수원에 가져왔는지 증명할 수 없었다.도율은 두 감정서를 나란히 놓았다.“같은 로트라는 건 출처를 좁혀 줍니다. 누가 옮겼는지는 별개의 문제예요.”연희는 불탄 창고를 바라봤다.“CCTV는요?”소방 감식관이 검게 녹은 저장장치를 보여 줬다.“카메라는 있었는데 녹화기가 불을 직접 먹었습니다. 복구해 봐야 압니다.”과수원 입구 카메라에도 마지막 27분이 없었다.창고에 불이 붙기 직전부터 전원이 끊겨 있었다.범인은 화면에 남지 않았다.대신 과수원에는 다른 사람들이 남았다.의료폐기물 소문이 퍼진 뒤에도 몇몇 마을 사람들은 물통과 장갑을 들고 찾아왔다.그러나 시선은 재문의 화상보다 흙바닥으로 먼저 향했다.“우물 검사도 해야 한다던데.”“옆 밭까지 문제 생기는 건 아니겠지?”재문은 붕대를 감은 팔로 대꾸했다.“검사 나오기 전에는 아무 말도 하지 마.”그때 낡은 1톤 트럭 한 대가 들어왔다.운전석에서 내린 사람은 이장 변성호였다.“형님.”성호는 연희가 아주 어릴 때부터 봐 온 사람이었다.비 오는 날 학교 앞에서 연희를 등에 업고 집까지 데려온 적도 있었다.재문이 허리를 다쳤을 때는 자기 밭보다 먼저 복숭아밭에 와서 약을 쳤다.성호가 재문의 붕대를 보고 혀를 찼다.“몸부터 챙겨야지. 나무 정리는 내가 사람들 불러서 할게.”“됐어.”“형님 혼자 어떻게 해. 팔도 그 모양인데.”성호가 대문 안으로 들어왔다.그 순간 헛간 옆에 묶여 있던 재문의 개가 몸을 일으켰다.처음에는 한 번이었다.성호가 창고 쪽으로 한 걸음 더 옮기자 목줄이 팽팽해졌다.컹. 컹컹!“얘가 왜 이래?”성호가 손을 내밀었다.개는 익숙한 사람을 반기는 대신 이빨을 드러냈다.몸을 바닥에 붙였다가 목줄이 끊어질 만큼 앞으로 튀어나왔다.재문이 개와 성호를 번갈아 봤다.“너한테 저런 적 있었냐?”“불 때문에 놀랐겠지.”“소방관들이 밤새 드나들어도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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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4화. 이장의 빚

변성호는 불을 질렀다는 말보다 먼저 아들 이름을 꺼냈다.“우리 애가 세강에서 치료받았어.”재문이 잡고 있던 개의 목줄이 느슨해졌다.“그게 내 창고하고 무슨 상관이냐.”성호는 대답하지 못했다. 불탄 창고에서 아직 탄내가 올라왔다.마을 사람들은 멀찍이 서 있었고, 연희는 그들을 돌려보냈다.“여기서 말하지 마세요.”도율이 먼저 선을 그었다.“지금부터 하는 말은 사실관계 확인이 필요합니다. 억지로 진술하게 할 생각도 없습니다.”성호가 마른 입술을 혀로 적셨다.“경찰 가기 전에 형님한테 먼저 말해야 해.”재문은 그를 집 안으로 들이지 않았다.불에 그을린 복숭아나무 앞에 낡은 의자 두 개를 가져다 놓았다.“여기서 해.”성호는 앉지 못했다.“아들이 크게 아팠을 때 돈이 없었어.세강에서 치료를 계속하려면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돈이 필요했어.”“재단이 내줬어요?”연희가 물었다.“처음엔 지원이라고 했지.”성호가 웃으려다 포기했다.“나중에는 갚아야 할 돈이 됐어.”아들이 치료를 끝낸 뒤에도 청구서는 끝나지 않았다.재단 산하 지원기금에서 대신 낸 비용, 추가 검사비, 입원비가 하나의 채무로 묶였다.그리고 어느 날부터 돈 대신 부탁이 왔다.“첫 번째로 뭘 했어요?”연희의 질문은 짧았다.성호는 재문을 보지 못했다.“상자 하나 가져다줬어.”“어디에?”“형님네 집.”재문의 턱이 굳었다.“무슨 상자.”“집 수리할 때 쓰는 부품이라고 했어. 건설업체 직원한테 받아서 창고에 놔두면 된다고.”연희가 곧바로 물었다.“도청기였어요?”성호는 한참 뒤 고개를 끄덕였다.정애의 자장가까지 세강 서버에 올라갔던 이유가 사람의 얼굴을 갖는 순간이었다.“그다음은?”“서류.”토지 계약서 복사본, 농지 측량표, 재문의 도장 견본이 들어 있는 봉투였다.성호는 마을 이장이라는 이유로 재문에게 서류를 전달하고 다시 회수했다.“형님은 나를 의심 안 하니까.”그 말에서 재문의 얼굴이 처음으로 움직였다.“그래서 했냐.”“그래서 시킨 거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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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5화. 목소리의 주인

23초짜리 음성파일이 재생되자 변성호의 얼굴부터 굳었다.“다시 들을 필요 없어.”도율은 휴대전화에 손대지 않은 채 물었다.“누구 목소리입니까?”성호는 답하지 않았다.연희가 재생 버튼을 눌렀다.짧은 연결음 뒤 여자의 목소리가 나왔다.“내일 새벽 전에 창고 정리하세요. 안쪽에 있는 물건은 남으면 안 됩니다.”평범한 업무 지시처럼 들렸다.그러나 다음 문장에서 말의 의미가 달라졌다.“이번에도 거절하시면 아드님 지원 건은 원래대로 처리합니다.”성호의 손등에 힘줄이 솟았다.음성은 계속됐다.“치료비 잔액, 알고 계시죠?”잠시 침묵.“불만 붙이면 됩니다. 나머지는 저희가 정리합니다.”파일은 거기서 끝났다.정애가 성호를 돌아봤다.“저 말 듣고 우리 창고에 불을 붙였어?”성호는 고개를 숙였다.“그날 오후에 전화도 왔어.”“뭐라고?”“불 안 내면 병원에서 아들 치료비 지원 전부 회수한다고.”재문이 물었다.“아들은 치료 끝났다며.”“추적검사가 남았어. 약도 계속 받아야 하고.”성호는 자기 무릎을 내려다봤다.“애한테는 말 못 했어. 지 때문에 내가 이러고 다닌다는 걸 알면 병원부터 안 간다고 할 놈이니까.”연희는 성호의 죄를 대신 가볍게 만들어 주지 않았다.“그래도 불을 붙인 건 이장님 선택이에요.”“알아.”“협박받았다는 것과 책임이 없다는 건 다른 일이에요.”“알아.”성호는 이번에도 변명하지 않았다.도율이 음성파일의 기본 정보를 확인했다.“발신 번호가 저장돼 있습니까?”“번호는 없어.”“왜요?”“메신저 음성이야.”성호가 대화방을 열었다.상대 이름은 개인 이름이 아니었다.[ 최무겸 대표 비서실 ]연희의 시선이 멈췄다.“무겸이 시켰다는 뜻이에요?”도율은 바로 결론 내리지 않았다.“계정 명칭과 실제 사용자는 다를 수 있습니다.”성호가 고개를 저었다.“최무겸 아니야.”“어떻게 알아요?”“목소리를 알아.”연희가 다시 휴대전화를 봤다.“누구예요?”성호는 한참 입을 열지 못했다.“최혜경 이사장 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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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6화. 죽은 사람의 통화

죽은 사람의 계정은 사망한 뒤에도 93번 움직였다.도율이 서미정의 사망 처리일과 메신저 접속기록을 나란히 놓았다.[ 사망 처리 — 3개월 전 ][ 마지막 접속 — 어제 23:41 ]연희는 숫자를 먼저 봤다.“사망 뒤 접속만 몇 번이에요?”“확인되는 것만 93회입니다.”성호에게 방화를 지시한 음성메시지도 그중 하나였다.그러나 더 이상한 것은 접속 장소였다.세강병원 본관, 재단 사무동, 무겸 비서실 인근 기지국. 서로 다른 장소에서 같은 계정이 사용됐다.한 사람이 휴대전화를 들고 움직였다기보다 필요할 때마다 누군가 죽은 비서의 이름을 꺼내 쓰는 모양새였다.연희가 물었다.“서미정 개인 휴대전화였어요?”도율은 통신 가입정보를 확인했다.“법인 명의 단말기입니다. 사용자만 서미정으로 등록돼 있습니다.”“사망하면 회수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그게 정상입니다.”하지만 반납 기록은 없었다.인사기록에는 사망으로 면직됐고, 자산관리표에는 휴대전화가 ‘반납 완료’로 처리돼 있었다.그런데 같은 단말기 식별번호가 사망 뒤에도 통신망에 접속했다.연희는 자산관리표의 날짜를 짚었다.“죽은 사람한테서 돌려받았다고 적어 놓고 계속 쓴 거네요.”“적어도 기록상으로는 그렇습니다.”도율은 단정하지 않았다.“누가 사용했는지는 아직 모릅니다.”연희는 서미정 계정에서 성호에게 온 과거 메시지를 다시 훑었다.도청기 전달.토지 서류 회수.정애의 일정 확인.그리고 화재 지시.모두 사람 이름 대신 업무 용어로 적혀 있었다.[ 설치 완료 ][ 수거 예정 ][ 대상자 이동 확인 ][ 현장 정리 ]사람이 죽어도 계정만 남으면 책임도 함께 죽는 구조였다.“서미정 하나뿐일까요?”연희의 질문에 도율이 재단 인사자료를 다시 열었다.퇴직자 가운데 최근까지 내부 시스템에 접속한 계정.사망자로 처리됐는데 비밀번호가 변경된 계정.부서 이동 뒤에도 예전 권한이 살아 있는 계정.한 명씩 대조하자 이상한 이름이 더 나왔다.퇴직 11개월 뒤 병원 서버에 접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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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7화. 신혼집의 방

죽은 비서의 휴대전화가 마지막으로 접속한 곳은 한세아와 최무겸의 신혼집 반경이었다.연희는 현관 앞에서 다시 위치기록을 확인했다.[ 마지막 접속 — 오늘 08:03 ]도율이 먼저 말했다.“건물 반경까지만 확인됐습니다. 집 안에 있다고 단정하지 않습니다.”연희가 초인종을 눌렀다.세 번째 벨이 울린 뒤 세아가 문을 열었다.병원에서 막 돌아온 듯 손목에는 진료용 밴드 자국이 남아 있었다.연희는 인사 대신 이름 하나를 꺼냈다.“서미정.”세아의 손이 문손잡이 위에서 멈췄다.“누구한테 들었어?”“죽었다는 사람한테서 이틀 전에 방화 지시가 왔어.”세아의 얼굴에서 핏기가 빠졌다.연희는 그 반응을 놓치지 않았다.“전화 어디 있어?”세아는 곧바로 부정하지 못했다.도율이 말했다.“영장 없습니다. 들어가게 할지, 기기를 보여 줄지 모두 세아 씨가 결정합니다.”한참 뒤 세아가 문에서 물러났다.“들어와.”거실에는 신혼사진 대신 아직 뜯지 않은 혼수 상자가 쌓여 있었다.세아는 안방을 지나 작은 서재로 향했다.책상 맨 아래 서랍을 열었다.검은 법인 휴대전화 한 대가 나왔다.연희는 화면을 보지 않고 세아부터 봤다.“네가 썼어?”“아니.”이번에는 대답이 빨랐다.“그럼 누가?”세아의 손이 배 위로 올라갔다.“무겸.”도율도 바로 단정하지 않았다.“직접 사용하는 걸 봤습니까?”“응.”“몇 번이나요?”“여러 번.”세아는 휴대전화를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처음에는 회사 보안폰인 줄 알았어.무겸이 이것만 따로 가지고 다녔거든. 통화하고 나면 기록을 지웠고.”“서미정 이름인 건 언제 알았어?”“한 번 화면이 켜졌을 때.”세아가 잠시 말을 멈췄다.“그 이름이 떠 있었어.”“죽은 사람이라는 것도 알았고?”“나중에.”“그런데 왜 네가 갖고 있어?”“무겸이 두고 갔어.”“그냥 두고 갔다고?”“숨겨 두라고 했어.”연희의 시선이 휴대전화로 내려갔다.“왜?”“묻지 말라고 했어.”세아는 자신이 대답할 수 없는 문장에서 더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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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8화. 젖은 사진

연희가 가장 무너졌던 밤을, 누군가는 사진으로 남겨 두었다.벽 한가운데 걸린 사진은 다른 자료보다 몇 배 컸다.젖은 머리카락이 얼굴에 붙어 있었고 바짓단에서는 물이 떨어지고 있었다.맨발 한쪽에는 진흙이 묻어 있었다.몸에 걸친 것은 재문이 집에서 가져와 덮어 준 점퍼였다.강에서 나온 뒤 집으로 돌아오던 밤.연희는 그 모습을 거울로도 본 적이 없었다.“이 사진 언제 봤어?”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연희가 돌아보자 세아가 벽에서 두 걸음 물러나 있었다.“세아야.”“처음 봐.”이번에는 말이 바로 나왔다.“정말 처음 봐. 내가 이 방 열었을 때 저건 없었어.”“확실해?”“저걸 어떻게 잊어.”세아는 사진을 보지 못하고 방 안쪽만 훑었다.“그럼 누가 나중에 걸었다는 거네.”“무겸이겠지.”“아직 몰라.”연희는 이름부터 붙이지 않았다.도율도 사진 가까이에서 멈췄다.“촬영자와 보관자는 다를 수 있습니다. 우선 사진 자체부터 확인하죠.”세아는 갑자기 천장을 올려다봤다.“나도 찍혔을까?”연희의 시선이 돌아갔다.“뭐?”“나도 여기서 살았어.”세아는 침실 쪽을 바라봤다.“잠도 잤고, 울기도 했고, 무겸이랑 싸우기도 했어.내가 모르는 사진을 저 사람이 갖고 있었다면…….”문장이 끝나지 않았다.연희는 세아를 달래지 않았다.“확인되지 않은 것까지 사실로 만들지 마.”“어떻게 안 무서워.”세아의 손이 배 위로 올라갔다.“내 집인 줄 알았는데.”그 말만 남았다.연희는 다시 사진을 봤다.다른 자료에는 날짜와 장소가 적혀 있었다. 그러나 젖은 사진에는 아무 표기도 없었다.날짜 없음.촬영자 없음.출처 없음.마치 설명이 필요 없는 사진처럼 가장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도율이 세아의 허락을 받은 뒤 액자를 분리했다.인화지 뒷면에는 출력업체 표시만 있었고 촬영정보는 남아 있지 않았다.서재 컴퓨터에도 같은 파일은 없었다.“디지털 원본 없이 인화본만 있네요.”연희가 말했다.“그럼 사진 안에서 찾아요.”“뭘요?”“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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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9화. 지붕의 발자국

아버지 집 지붕에 처음 올라간 사람은 도둑이 아니었다.집을 공짜로 고쳐 주겠다던 사람들이었다.재문은 사다리를 세우다가 연희에게 빼앗겼다.“팔 다 나을 때까지 올라가지 마.”“내 지붕이야.”“그러니까 더 올라가지 마.”화상 입은 팔에는 아직 붕대가 감겨 있었다.도율이 현장기록을 맡을 사람을 불렀다.기와를 함부로 들추지 않고 사진부터 남긴 뒤,연희가 강에서 돌아오던 모습을 찍은 방향을 중심으로 흔적을 확인했다.십여 분 뒤 지붕 위에서 목소리가 내려왔다.“여기 보셔야겠습니다.”처마 바로 위였다.기와 하나를 들어내자 목재에 작은 나사구멍 네 개가 남아 있었다.그 옆에는 검게 굳은 접착제.잘린 저전압 전선.그리고 처마 아래를 향하도록 고정했던 금속 브래킷 자국이 있었다.도율이 물었다.“카메라를 달 수 있는 형태입니까?”“소형 촬영장비를 고정하기에 맞는 자리입니다.”재문이 사다리 아래에서 지붕을 올려다봤다.“누가 우리 집에 저런 걸 달아.”정애가 먼저 기억해 냈다.“지붕 고쳤을 때.”연희가 돌아봤다.“언제?”“병원에서 집 고쳐 준다고 사람들 왔을 때 있잖아.”재단이 마을 노후주택 수리를 지원했던 때였다.비 새는 지붕을 고치고 오래된 전선을 갈아 준다고 했다.재문은 작업자들에게 대문을 열어 줬다.정애는 점심으로 국수까지 삶았다.“그 사람들이 지붕에도 올라갔어?”“하루 종일 있었지.”정애가 오래된 서류봉투를 꺼냈다.공사 확인서.작업사진.완료보고서.시공업체는 세강재단 계열 건설사였다.도율이 작업사진을 한 장씩 넘겼다.공사 전.공사 중.공사 완료.연희의 손이 세 번째 사진에서 멈췄다.“확대해 봐요.”지붕 끝 처마 아래.작은 검은 점 하나가 있었다.공사 전 사진에는 없었다.공사 완료 사진에는 있었다.도율이 오늘 촬영한 나사구멍 위치와 겹쳐 봤다.같은 자리였다.렌즈가 향했을 방향에는 재문 집으로 올라오는 농로가 있었다.강에서 젖은 연희가 걸어오던 바로 그 길.정애가 입을 막았다.“저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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