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hat ng Kabanata ng 삭왕은 세작을 총애한다: Kabanata 81 - Kabanata 90

328 Kabanata

81화. 북풍(北風)

매화 향갑의 기별이 북강에 닿는 데는 나흘이 걸렸다.파발은 역참 여섯을 갈아타며 밤낮없이 달렸다. 자시 넘어 왕부 문루를 두드린 파발꾼은 안장에서 내리다 무릎이 꺾여, 군졸 둘이 부축해 들였다. 서신은 노강의 손을 거쳐 서재로 들어갔다.서재의 등불은 켜져 있었다. 봄 들어 그 등불이 꺼진 밤이 없었다. 심지 갈던 시비가 졸다 데인 뒤로는, 노강이 밤마다 제 손으로 심지를 갈았다.진묵은 서신을 선 채로 읽었다. 두 번 읽지 않았다. 읽고 난 종이를 서안에 내려놓는 손이, 너무 반듯해서— 문가의 노강은 제 등이 먼저 곧아졌다."다친 것은.""호위 아이 하나— 팔이라 하옵니다. 마마께서는 무탈하시다고.""무탈."그 두 글자를 사내는 입 안에서 한 번 굴렸다. 굴리고 난 낯이, 눈 덮인 산봉우리의 그 낯이었다. 산봉우리 아래서 무엇이 끓는지는, 방 안의 등불만 흔들림으로 알았다. 서안 위에는 남쪽에서 온 서신들이 날짜순으로 각 맞춰 쌓여 있었다. 맨 위의 것만— 각이 틀어져 있었다."노강.""예.""채비해라.""어느 채비를— 여쭈옵니다."진묵은 서안 뒤의 벽으로 걸어갔다. 벽에는 검이 걸려 있었다. 서재의 검— 세자 시절부터 스무 해를 함께 온, 요즘은 장식처럼 걸려만 있던 그 검이었다. 사내는 그것을 벽에서 내렸다. 검이 제 무게로 손안에 앉는 소리가, 조용한 서재에 낮게 울렸다. 검집의 가죽끈이 새것으로 갈려 있었다. 언제 갈았는지는, 노강도 못 본 사이였다."남행 채비다."노강의 숨이 멎었다."왕야. 봉지의 왕이 어명 없이 봉지를 비우는 것은—""안다.""경성이 그것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옵니다. 왕야께서 스스로 걸어 들어오시기를— 그 죄목 하나면 저들은—""안다." 진묵은 검을 서안에 눕혔다. 눕히고, 문가의 부관을 바로 보았다. 스무 해를 모신 부관이 처음 보는 눈이었다. "노강. 본왕은 스무 해 동안 성벽 안에서 이겼다. 성벽을 지키는 싸움은— 성벽 안에서 하는 것이니.""하오면 어찌—""한데 본왕의 성벽이 지금 경성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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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화. 빈 향갑

북강에서 털어 내지 않은 꽃잎이 남쪽으로 길을 잡은 그 새벽, 경성 사가에서는 은빛 매화의 밑판이 열렸다.온보요가 가느다란 비녀 끝을 향갑의 이음새에 밀어 넣었다. 은판이 손톱만큼 들리더니, 딸깍 소리를 내며 빠졌다. 패물은 녹여 팔고 비단은 마름질해도, 향갑은 안주인의 손에 오래 머문다. 그래서 밀지를 숨기는 자들은 이런 얕은 바닥을 좋아했다.바닥 아래에는 아무것도 없었다.먹 한 점도, 향가루 한 톨도. 새 은을 긁은 자국만 둥글게 남아 있었다."사람을 죽이러 온 자가 새 노리개를 품고 왔군."소월백은 등불 건너편에 앉아 있었다. 흰 소매의 어깨께에는 찢긴 자리를 꿰맨 실이 가늘게 비뚤어져 있었다. 그가 향갑을 뒤집자 매화 다섯 잎이 서안 위에서 반듯하게 빛났다.온보요는 나흘 전의 방을 다시 보았다. 이불을 가르던 칼. 서안을 부순 칼. 호위 아이의 팔을 깊이 벤 칼. 목을 노린 자들은 달아나면서도, 이불 곁에 새 은을 남겼다."그날 밤 일이 적힌 기별은.""나흘 전 북강으로 떠났지."서안 위의 은빛이 차갑게 번졌다."제가 죽었어도 부고가 갔겠지요.""살았으니 피격 기별이 갔고."소월백의 눈이 향갑에서 그녀에게로 들렸다."어느 쪽이든 그 사내는 성벽을 나서겠군.""봉지의 왕이 어명 없이 남하하면, 역모를 묻겠지요. 군사를 움직이지 않았어도."온보요가 향갑 뚜껑을 닫았다. 빈 물건이 그제야 무거운 소리를 냈다.창밖에서 기와 맞추는 망치가 세 번 울렸다. 반 치 밀려났던 기와는 새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지붕은 고쳤으나, 북강으로 간 말은 되돌릴 수 없었다."왕야는 압니다." 그녀가 말했다."알고도 오겠지."소월백의 대답이 너무 빨랐다. 온보요의 손가락이 향갑 위에서 멎었다. 그 사내가 성벽을 버리지 않으리라는 믿음과, 자신을 버려두지 않으리라는 믿음은 같은 자리에 놓일 수 없었다.문가의 호위 아이가 몸을 일으키려다 얼굴을 찌푸렸다. 왼팔의 흰 무명 위로 붉은 것이 새끼손톱만큼 번졌다. 온보요는 보지 않은 척 약그릇을 아이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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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화. 맥

약함의 놋쇠 고리가 다시 부딪히기 전에 문이 열렸다.태후전 상궁이 먼저 들었다. 잿빛 궁장에 은비녀 하나. 뒤따른 어의는 백발이 귀밑에 성기게 남은 노인이었다. 약함을 든 의관 둘과 기록을 맡은 내관까지 들어서자, 넓지 않은 방이 갑자기 사람으로 찼다.문가에 앉아 있던 호위 아이가 오른손으로 몸을 일으켰다. 상궁은 붕대에 밴 피를 보고도 눈썹 하나 움직이지 않았다. 소월백은 말없이 검을 집어 들고 바깥채로 물러났다. 흰 옷자락이 문턱을 넘는 동안 어의의 눈이 검집을 따라갔고, 상궁의 눈은 그 눈을 따라갔다. 이 방에서는 아이의 피보다 누가 곁을 지켰는지가 먼저 적힐 모양이었다.상궁의 눈이 서안 위 빈 향갑을 지나, 온보요의 손가락 사이에 눌린 매실에 닿았다. 닿고도 묻지는 않았다."변고가 있었다 들었습니다. 태후마마께서 밤새 염려하셨습니다."사가의 대문은 나흘 동안 닫혀 있었다. 밖으로 나간 것은 북강행 기별 한 장뿐이었다."성은이 망극하옵니다.""먼저 저 아이의 팔을 보아 주세요. 칼을 받은 지 나흘인데 피가 다시 배었으니."어의는 상궁의 낯을 살핀 뒤에야 아이 앞에 앉았다. 붕대를 풀자 벌어진 살이 드러났다. 다행히 검붉게 죽은 자리는 없었다. 노인은 데운 술로 상처를 씻고 약가루를 눌러 담았다. 아이는 이를 악물었으나 소리는 내지 않았다. 온보요는 아이의 맨발 발가락이 바닥을 움켜쥐는 것을 끝까지 보았다.상궁이 말했다."이제 마마의 차례이십니다."온보요가 손을 내밀었다. 어의는 손목 위에 흰 명주를 덮었다. 세 손가락이 명주 위에 차례로 앉았다. 처음에는 가볍게, 다음에는 살이 눌릴 만큼 깊게. 노인의 눈꺼풀이 내려갔다.방 안에서 기와 맞추는 소리만 또각또각 들렸다.세 손가락 가운데 하나가 아주 조금 움직였다. 둥근 구슬이 손끝 아래로 미끄러지듯 흐르는 맥을 쫓는 움직임이었다.상궁이 놓치지 않았다."어떠한가."어의는 곧장 답하지 않았다. 반대쪽 손목도 내어 달라 했다. 온보요는 소매를 걷었다. 차가운 손가락이 다시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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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화. 답안

열흘은 약함의 놋쇠 고리가 대문을 빠져나간 뒤부터 줄기 시작했다.온보요는 어의가 남긴 처방을 화로에 넣었다. 마른 종이 끝에서 불이 붙고, 놀라 위기가 막혔다는 먹글씨가 먼저 오그라들었다. 아이를 품었다는 글자는 애초에 적히지 않았다. 적히지 않은 것이, 적힌 것보다 오래 남을 터였다.종이가 다 타기 전에 늙은 시비가 놋대야를 받쳤다. 재 한 조각도 마루 틈에 남기지 않고 물을 부었다. 매캐한 김이 올라오자 온보요는 고개를 돌렸다. 시비는 그 작은 움직임까지 보고, 화로를 창밖으로 가져갔다. 어제까지는 시중이던 손이 오늘부터 비밀을 지키는 손이 되어 있었다.소월백은 서안 맞은편에서 빈 향갑을 보고 있었다."열흘 안에 왕야가 올까요.""말을 죽여 가며 오면.""그분은 말을 아끼는 사내가 아닙니다.""너도 아니지."그녀는 대꾸하지 않았다. 속이 빈 채로 먹을 갈았다. 먹향은 견딜 만했다. 닭국과 당귀에서만 속이 뒤집혔다. 늙은 시비가 창가에 놓은 매실물은 손대지 않았다."내가 북쪽으로 가면 막을 수 있어."소월백의 말에 먹 가는 손이 멎지 않았다."왕야를요?""길을. 그 사내는 못 막겠지.""공자가 사가를 비우면 태후전은 두 번 묻지 않고 들어옵니다."소월백은 더 말하지 않았다. 검집 위에 얹힌 손가락만 한 번 굽었다 펴졌다. 붙잡으러 갈 수도, 곁을 비울 수도 없는 자의 손이었다.서안 위에 새 종이를 폈다.폐하께서 물으신 세 답 가운데 하나를 찾았사옵니다.첫 줄을 쓴 뒤 붓이 잠깐 멎었다. 편전의 등촉 여섯, 마른 찻잔, 용포가 아직 큰 어깨가 종이 위에 떠올랐다. 황제는 삭왕이 칼인지, 벽인지, 적인지 물었다.온보요는 다음 줄을 썼다.벽이옵니다.누군가 폐하의 벽을 제자리에서 뽑아 길 위에 세우려 하옵니다. 신첩이 죽었어도 부고가 갔을 것이고, 살았으니 피격 기별이 갔습니다. 어느 쪽이든 삭왕은 남하합니다. 그 길의 끝에서 역모를 묻고자 하는 자가 있사옵니다.삭왕을 폐하의 이름으로 부르소서.마지막 획을 마친 붓끝에서 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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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화. 어명

정문으로 들어간 글은 해가 지기 전, 편전의 마른 찻잔 곁에 놓였다.온보요가 다시 편전에 들었을 때에는 등촉이 넷뿐이었다. 지난번보다 둘이 적었다. 황제는 펼친 겉봉을 서안 한가운데 두고 있었다. 봉하지 않은 입이 보는 이를 향해 벌어져 있었다.서안 곁에는 처음 보는 찻잔이 놓여 있었다. 아직 김이 올랐고 잔 가장자리에 연지가 아주 옅게 묻어 있었다. 온보요가 부복하는 동안 내관이 그것을 소매 안으로 감추어 나갔다. 태후전 사람이 먼저 이 글을 읽고 갔다는 자국은, 닦지 않고 일부러 남긴 듯 선명했다."삭왕비는 글에도 문을 달지 않는군.""닫아도 보실 분들이옵니다.""모후를 말하느냐, 짐을 말하느냐.""두 분 모두이옵니다."황제는 잠시 문 쪽을 보았다. 닫힌 문 너머로 떠난 찻잔의 주인을 보는 눈이었다. 용포 소매 아래 손등에 붉은 인주가 한 점 말라 있었다. 오늘 찍은 장계가 많았거나, 찍지 못하고 만 것이 많았을 것이다.황제의 손끝이 답안의 첫 줄을 두드렸다. 벽이옵니다. 먹이 마른 네 글자가 손톱 아래 가렸다 나타났다."짐더러 네 지아비의 무단 이탈에 길을 깔아 주라는 말이구나.""폐하의 벽을 남이 뽑아 갔사옵니다.""아직 북강에 있을 수도 있지."온보요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그랬으면 좋겠사옵니다."황제의 손가락이 멎었다."너도 모른다?""나흘 전 기별을 보낸 뒤, 두 번째 글은 띄우지 않았사옵니다. 길목마다 눈이 기다릴 것이옵니다."편전 바깥에서 밤 순라의 목탁이 울렸다. 한 번. 멀어졌다가 다시 한 번.황제는 장계 무더기 가운데서 빈 황지를 꺼냈다. 붓을 들고도 곧 쓰지는 않았다."짐이 삭왕을 부르면 조정은 겁을 먹는다. 모후는 노하시고, 허 승상은 병을 핑계로 조회를 비우겠지.""부르지 않으시면 역모 상소가 먼저 궁문을 넘을 것이옵니다.""어느 쪽이든 시끄럽군.""벽이 움직이면 본래 돌 소리가 나옵니다.""그 벽이 군사를 끌고 오면.""오지 않을 것이옵니다.""너는 모른다며.""어디 계신지는 모르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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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화. 두 술

젖은 국새를 싣고 파발 셋이 북문을 나설 무렵, 남으로 내려가던 곡선 서른 척은 쇠사슬에 묶였다.물길을 가로막은 것은 금군의 검선 두 척이었다. 뱃머리에 붉은 깃발이 서고, 갑주 입은 군졸들이 갈고리를 던졌다. 갈고리가 난간을 물 때마다 곡선의 널판이 비명을 냈다.서른 척의 돛이 차례로 죽었다. 팽팽하던 베가 아래로 쏟아지고, 북강 군졸들이 노에서 손을 뗐다. 곡물 자루를 가득 실은 배는 물살을 받아 서로 부딪혔다. 둔중한 충돌음이 앞 배에서 뒤 배로 번졌다. 봄 조운을 하루 묶으면 군량 장부 서른 권의 날짜가 틀어진다. 금군은 그 값까지 이미 치르기로 한 얼굴들이었다.노강은 선실 안에서 왕야의 수라를 받고 있었다.밥은 두 술만 떴다. 구운 민어는 젓가락으로 살을 한 번 갈랐고, 맑은 탕은 입도 대지 않았다. 상을 물리는 시각까지 같았다. 삼 년 동안 곁에서 본 무심을 하루아침에 몸에 입으려니, 밥보다 어깨가 먼저 체할 지경이었다."전하를 뵙겠습니다."선실 밖에서 감찰관이 세 번째 청했다.노강은 대답하지 않았다. 왕야라면 세 번이나 청하게 두지도 않았을 터였다. 첫 번째에 꺼지라 했을 것이다. 그것을 노강의 말로 옮기면—"전하께서 장거리 수운으로 옥체가 불편하시어, 오늘은 누구도 들이지 말라 하셨습니다."제 목소리를 제 입으로 통변하고 나니 속이 쓰렸다.거울 속에는 왕야와 닮은 데가 한 군데도 없는 사내가 앉아 있었다. 수염에 흰 것이 섞였고 어깨는 한 뼘 좁았다. 다행히 선실 발은 두 겹이었고, 등불은 등 뒤에 두었다. 문이 열리는 순간 왕야 노릇은 끝이었다.문밖의 감찰관도 물러서지 않았다."황명 없이 봉지를 비우셨다는 고변이 있었습니다. 전하의 존안을 뵙고 출발 시각을 적어야 하겠습니다."문틈 아래로 문서 한 장이 밀려 들어왔다. 노강은 발끝으로 받아 펼쳤다.삭왕 봉지 이탈 고변장.죄목은 이미 먹으로 적혀 있었다. 맨 아래 출발 시각만 비어 있었다. 자시, 축시, 인시. 어느 글자가 들어가도 되도록 칸은 넓었다.노강이 문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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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화. 길

노강이 내일의 두 술을 남겨 둔 밤, 진묵은 북강의 마지막 관문 앞에 닿았다.회수관(回水關)은 산줄기와 물길이 함께 꺾이는 곳이었다. 관문 안쪽은 삭왕의 봉지, 바깥쪽은 황제의 직할주. 경계를 알리는 돌기둥이 길 양편에 서 있었다. 말발굽 하나만 더 나가면, 어명 없이 봉지를 비운 왕이 되었다.말 넷은 땀으로 검었다. 진묵이 탄 흑마의 입가에는 흰 거품이 굳었고, 여벌 말 하나는 오른쪽 앞발을 자꾸 아꼈다. 일영과 이영은 사흘 동안 열두 마디를 넘게 말하지 않았다. 필요한 것은 물과 길뿐이었다.진묵이 고삐를 당겼다.관문 위의 횃불이 바람에 눕고, 다시 일어났다. 문지기는 북강 군패를 알아보고도 누구냐 묻지 않았다. 묻지 않는 입에 왕부 주전 한 닢이 건너갔다. 그때 북쪽 관도에서 방울 소리가 들렸다.파발이었다.말 한 필이 어둠을 찢고 달려왔다. 안장 위 사내는 허리가 꺾일 듯 흔들렸고, 가슴에는 황색 주머니를 묶고 있었다. 관문 앞에 이르러 말을 세우려다 그대로 굴러 떨어졌다. 이영이 땅에 닿기 전에 멱살을 잡아 세웠다.파발꾼은 숨보다 먼저 황패를 꺼냈다."삭왕 전하께 올리는 어명이옵니다. 북강 왕부로 가는 길이었사온데······.""여기 있다."진묵이 말에서 내렸다. 짧은 세 글자에 파발꾼의 눈이 커졌다. 먹빛 융복은 흙먼지에 덮였고, 장식이라곤 허리의 검 하나뿐이었다. 한데 관문 군졸들이 이미 무릎을 꿇고 있었다.황색 주머니의 봉인이 뜯겼다.북강 봄 조운의 호송을 맡고, 경성에 들어 변방 군무를 아뢰라.붉은 국새 아래 먹 한 획이 유난히 깊었다. 벽. 어명에는 없는 글자가 종이 안쪽에서 보이는 듯했다."언제 궁을 나섰나.""닷새 전 해시이옵니다. 파발 셋이 서로 다른 길로······ 소인이 둘째이옵니다."첫째는 어디선가 쓰러졌고, 셋째는 아직 북쪽으로 달리고 있을 것이다. 진묵의 엄지가 어명 모서리를 한 번 눌렀다. 세 갈래로 달려온 종이에서, 한 사람이 갈아 보낸 먹향이 났다.진묵은 수령란에 이름을 썼다. 진묵 두 글자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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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화. 보호

세 필의 말이 회수관을 넘은 이튿날, 태후전의 가마 여덟 채가 사가의 대문을 막았다.가마보다 먼저 들어온 것은 상궁의 말이었다."변고를 겪은 왕비마마를 사가에 홀로 둘 수 없다 하셨습니다. 삭왕 전하께서 입경하실 때까지 태후전 곁에서 친히 보호하시겠다는 분부이십니다."홀로라는 말이 사람 가득한 마당에 떨어졌다. 소월백과 앵무, 팔을 묶은 호위 아이, 사가의 늙은 시비들까지 모두 그 말을 들었다. 상궁에게는 그들이 사람으로 세어지지 않았다.온보요는 아침상을 앞에 두고 있었다. 흰 죽 위에 잣가루가 얇게 뿌려졌고, 곁에는 간장에 조린 연근이 놓였다. 냄새가 적은 것만 고른 상이었다. 숟가락은 한 번도 죽에 닿지 않았다."태후마마의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갈아입을 시간을 주시겠습니까.""궁에서 모두 마련하셨습니다. 몸만 드시면 됩니다."몸만.아이를 품었을지 모르는 몸만 가져오라는 말이, 백자 그릇 위에서 서늘하게 식었다.앵무가 옷함을 들려다 상궁의 시선에 손을 놓았다. 호위 아이는 문가에서 일어나려 했고, 다친 팔이 먼저 떨렸다. 온보요가 고개를 한 번 저었다. 아이는 이를 악물고 다시 앉았다.소월백이 세 걸음 밖에서 예를 갖췄다."마마의 호위는 운수 상단에서 맡고 있습니다. 궁문까지 따르겠습니다.""외남자는 내전 문턱을 넘지 못합니다.""문턱 앞까지는 갈 수 있지요."상궁과 소월백의 눈이 맞섰다. 하나는 궁 안에서 스무 해를 버틴 눈, 하나는 천하의 길을 스무 해 떠돈 눈이었다. 먼저 물러난 쪽은 없었다.온보요가 매실물 잔을 들었다. 입술을 적시는 동안 울렁임이 가라앉았다."공자. 사가를 부탁드립니다."격식 있는 말이었다. 소월백은 그 말 아래 감춰진 늙은 시비와 다친 아이, 빈 향갑과 닫힌 문서함까지 들었다."염려 놓으십시오, 마마.""앵무는 데려가겠습니다."상궁이 잠깐 망설이다 허락했다. 입 빠르고 철없어 보이는 계집 하나. 궁이 가장 얕게 보는 사람이, 온보요에게는 남은 귀 전부였다.가마에 오르기 전 늙은 시비가 신을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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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화. 입성

태후전의 빗장이 바깥에서 걸린 지 사흘째, 경성 북문의 빗장이 안쪽으로 들렸다.성문 앞에는 사내 하나와 말 세 필뿐이었다.말들은 흰 거품을 물고 있었다. 안장 아래 깔린 검은 천은 땀과 흙으로 본래 색을 알아보기 어려웠다. 가운데 흑마 위의 사내도 먼지를 뒤집어썼다. 먹빛 융복은 어깨와 무릎이 말라붙은 흙으로 희끗했고, 머리칼은 관도 없이 검은 끈 하나로 묶여 있었다.그래도 수문장은 그가 누구인지 물을 필요가 없었다.사람을 삶아 먹는다는 북강의 왕. 스무 해 동안 경성의 입들이 제멋대로 키운 사내가, 군졸 하나 없이 성문 앞에 서 있었다."황명을 받들어 입경한다."진묵이 어명을 내밀었다. 회수관의 수령 시각과 붉은 인장이 국새 아래 나란히 찍혀 있었다. 수문장은 두 번 읽었다. 세 번째 읽기 전에 무릎을 꿇었다."삭왕 전하를 뵈옵니다."성문 안쪽의 등이 물결처럼 낮아졌다. 장사치는 지게를 멘 채 엎드렸고, 국수 뽑던 사내는 밀가루 묻은 손을 어디 둘지 몰라 앞치마에 문질렀다. 아이 하나만 어미 치맛자락 뒤에서 먹빛 사내를 빤히 보았다.궁성 금군이 왕을 맞으러 나왔다. 지휘관은 허리에 찬 검을 보고 입술을 적셨다."궁문 안에는 병장기를 들일 수 없사옵니다."진묵은 검집째 풀어 건넸다. 스무 해 함께한 검이었다. 지휘관이 두 손으로 받다가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팔꿈치를 굽혔다. 진묵은 보지 않았다. 무기 없는 사내의 걸음이 오히려 더 조용했다.북문에서 궁성까지 난 큰길은 스무 해 전보다 넓어져 있었다. 감꽃을 주웠던 담은 헐리고 붉은 관청이 들어섰고, 어린 황제와 숨어 만두를 먹던 골목에는 비단전이 세 채나 붙었다. 진묵의 눈은 어느 곳에도 오래 머물지 않았다. 이 성에서 아직 남아 있는 것은 사람뿐이었다. 하나는 편전에, 하나는 태후전 안에.길 양편의 백성들은 왕의 얼굴을 보려다 눈이 마주치면 급히 엎드렸다. 낭설 속 괴물 대신 지치고 아름다운 사내가 지나가자, 두려움보다 당황한 숨이 더 많이 새었다. 진묵은 그 숨에도 관심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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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화. 아직 봄

가서 데려가라.황제의 금패가 태후전 붉은 문에 닿자, 바깥에서 걸렸던 빗장이 열렸다.온보요는 태후와 차를 마시고 있었다. 갈색 다완에 맑은 차. 유밀과는 오르지 않았고, 대신 얇게 저민 생강정과 잣을 박은 대추가 놓였다. 속을 달랜다는 상차림이었다. 태후는 보요가 무엇에 젓가락을 대는지 보지 않는 낯으로 전부 보고 있었다.상궁이 들어와 부복했다."삭왕 전하께서 드셨사옵니다."다완을 받친 온보요의 손가락이 멎었다. 찻물에는 파문이 일지 않았다. 일어나야 할 파문이 손가락 안쪽으로 스며들어, 맥이 있는 자리에서 세게 뛰었다.태후가 찻잔을 내려놓았다."들라 하라."발이 걷혔다.먹빛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관도 없고 검도 없었다. 흙먼지를 털 시간조차 없었는지 융복 자락이 희끗했다. 사흘 밤을 말 위에서 보낸 낯은 더 깊게 패였고, 입술 한쪽이 말라 갈라져 있었다. 한데 걸음은 느렸다. 서두른 자가 아니라, 끝내 제 것을 찾으러 온 자의 걸음이었다.태후 앞에 부복하는 예는 흠이 없었다. 흠이 없어서 더 무례해 보였다."신 진묵, 태후마마를 뵈옵니다.""퍽 빨리도 왔구나. 북강의 말은 날개라도 달렸느냐.""말은 다리가 넷이옵니다. 갈아타면 그만이지요."태후가 웃었다. 웃음이 제 주름에 정확히 앉았다."네 왕비가 변고를 겪어 내 곁에 두었다. 아직 어의의 돌봄이 필요하다더구나."진묵의 눈이 그제야 온보요에게 왔다.눈 하나가 사람을 만지는 데 손보다 오래 걸릴 수 있다는 것을, 그녀는 잊고 있었다. 이마에서 눈가로, 창백한 입술에서 목까지 여민 깃으로. 시선이 내려올수록 숨이 얕아졌다. 배까지 닿기 전에 그녀는 다완을 상 위에 놓았다."무탈하다 적었더군."낮고 거친 목소리가 방을 가로질렀다."무탈하옵니다.""그 낯으로."진묵이 일어섰다. 태후의 허락을 구하지 않았다. 세 걸음이 줄고, 두 걸음이 줄었다. 마지막 한 걸음은 온보요의 무릎 앞에서 멎었다.큰 손이 그녀의 턱을 받쳤다. 엄지가 눈 밑의 옅은 그늘을 천천히 쓸었다. 손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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