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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왕은 세작을 총애한다 のすべてのチャプター: チャプター 61 - チャプター 70

328 チャプター

61화. 황명

황명은 두 줄이었다.노란 겉봉에 자줏빛 인끈. 겉봉을 여는 데는 향을 사르고 북향해 절하는 격식이 먼저였다. 격식을 다 치르고 펼친 조서는, 비단 바탕에 어보(御寶)가 선명했다.태후의 성수(聖壽)가 가까우니, 삭왕비는 입경하여 축수(祝壽)의 예를 올리라.두 줄을 읽는 데는 숨 한 번이면 족했고, 두 줄이 무는 것을 읽는 데는 숨이 여럿 필요했다. 성수는 구실이고, 부르는 것은 사람이었다. 탄핵으로 다리를 걸고, 하옥으로 팔을 꺾고, 그 다음에 내미는 부름. 오라— 네 발로.조서를 받든 그녀의 손은 흔들리지 않았다. 흔들림은, 곁에 선 사내의 턱선 몫이었다."감히— 본왕의 사람을, 오라 마라 하는구나."진묵은 황명을 서안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어보가 찍힌 비단을 놓는 손이, 여느 서신 한 장 놓듯 심상했다. 소리는 크지 않았다. 크지 않아서, 방 안의 등불이 더 조용해졌다."안 보낸다.""항명이 되옵니다.""병이 나면 된다. 왕비가 봄 고뿔로 눕는데 황명인들 어쩌겠느냐." 말을 마친 사내의 눈이, 느리게 그녀를 훑고 지나갔다. "정 그럴듯해야겠다면— 며칠 자리에서 못 일어나게 해 주마. 그것은 본왕이 잘하는 일이니."온보요는 그 말을 못 들은 것으로 치웠다. 치우는 귀끝이, 붉었다."고뿔은 낫사옵니다. 다음 명은 여름에 오고, 그 다음은 가을에 오고— 명이 오갈 때마다 금부의 사흘이 늘어나겠지요."오라버니의 사흘. 그 말에 사내의 턱선이 굳었다. 그는 서안을 돌아 나와 그녀 앞에 섰다. 가까이 선 그림자가 등불을 반쯤 삼켰다."저들이 너를 부르는 까닭을 알고도 가겠다는 것이냐.""까닭을 아니까 가는 것이옵니다." 온보요는 물러서지 않았다. "신첩은 저들이 지어 준 세작이옵니다. 세작은 제 발로 걸어 들어가도 문이 열리는, 천하에 하나뿐인 병장기지요. 저들의 부름이— 신첩에게는 성문이옵니다.""저들의 성문이 어떤 것인지 잊었느냐. 열고 들어가기는 쉽다. 그 문은 본래— 들어오는 자에게는 넓다.""성문 안에서 문이 닫히면.""열 수
last update最終更新日 : 2026-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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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화. 약조

부인.그 두 글자는 밤이 깊도록 방 안에 남아 있었다. 혼례의 밤에도, 총애의 소문이 왕부를 덮던 날에도 나오지 않던 호칭이었다. 아껴 둔 것인지 없던 것인지 몰랐던 그 말이, 하필 싸움의 한가운데서 나왔다. 성문처럼 열렸다가, 닫히지 않고 있었다. 온보요는 그 말을 아무도 없는 자리에서 두 번 굴려 보았다. 세 번은, 굴리지 못했다.그 밤 이불 속에서도 두 사람은 등을 맞대지 않았다. 맞대지 않았을 뿐, 어깨와 어깨 사이 한 뼘이 밤새 뜨거웠다. 싸운 부부의 한 뼘이란 그런 것이었다.이튿날 서재에서, 두 사람은 싸움의 남은 반을 마저 싸웠다. 붓과 지도로.서안 위에 북강과 경성을 잇는 물길 지도가 펼쳐지고, 찻잔 넷이 네 귀를 눌렀다. 어느 잔에서도 김이 오르지 않았다. 차를 마실 참이 아니었다. 먹만 진하게 갈려 있었다."입경 행렬에 상단 배를 붙이겠사옵니다." 온보요가 먼저 입을 열었다. 지도의 물길 위로 그녀의 손가락이 남쪽에서 북쪽으로 길게 지나갔다. "운수 상단이 봄 조운 길에 오르니, 물길의 절반은 저들 눈 밖에서 갑니다.""호위 아이는 가마에 넣는다." 진묵이 받았다. "시비 옷을 입혀서.""앵아도 데려가겠사옵니다."붓이 멎었다. 붓끝의 먹 한 방울이 지도의 물길 위에 떨어졌다. 사내의 눈이 들렸다."경성의 실을 끊지 않고 가져가는 것이옵니다. 저들의 귀를 신첩 소매에 넣고 가면, 저들은 신첩이 어디서 무엇을 듣는지를— 신첩이 고른 것만 듣게 되지요."붓이 다시 움직이기까지, 사내는 그녀를 오래 보았다. 판을 보는 눈이 아니었다.들려줄 것을 고르는 자가 판의 임자다. 혼례 첫날밤부터 두 사람이 마주 쥐고 있던 오래된 이치가, 이번에는 경성 한복판을 향해 놓였다. 진묵은 지도 위의 그 물길을 오래 내려다보다가, 붓으로 한 점을 짚었다. 경성 남문 밖, 물상들의 나루."본왕의 사람이 셋, 이 나루에 있다. 이십 년 된 사람들이다. 신호는—""매듭이옵니까.""떡이다.""······떡이요.""수수떡을 세 켜로 찌는 집은 그
last update最終更新日 : 2026-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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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화. 화촉(華燭)

임자 노릇을 청한 뒤, 가장 먼저 임자를 잃은 것은 온보요의 숨이었다.어둠 속에서 사내가 웃었다. 낮고 젖은 웃음이 풀어진 옷고름 사이로 떨어졌다. 진묵은 고름 끝을 손가락에 감고 그녀를 당겼다. 발뒤꿈치가 요 끝에 걸렸다. 물러난 것은 한 걸음인데, 누운 것은 다음 숨이었다.입술이 내려왔다. 낮의 약조도 경성의 문서도 그 아래에서 한 장 종이처럼 탔다. 그녀가 청한 것은 임자 노릇이었는데, 사내는 한 계절 묵힌 외상부터 받아 냈다."하아······."진묵이 입술을 뗐다. 이마와 이마가 닿은 자리로 뜨겁고 고르지 못한 숨이 떨어졌다."무르기는." 갈라진 목소리가 낮게 내려앉았다. "이제 없다."온보요는 사내의 옷깃을 그러쥔 손부터 놓았다. 말을 듣지 않는 손가락을 하나씩 펴고, 목까지 차오른 숨을 삼켰다. 턱은 반듯이 들었으나 속눈썹 사이의 물기는 애원처럼 흔들렸다. 눈은 저리도 매달리면서, 입술은 끝까지 공문을 찾았다."문서라도 쓰시지요.""썼다. 방금— 네 입이 수결했다."진묵은 눈꼬리에 걸린 물기를 입술로 거두었다. 젖은 속눈썹이 다시 떨릴 때까지."번지면 곤란하니."무엇이 번진다는 것인지는 묻지 못했다. 웃음이 샜고, 옷은 한 겹씩 어둠에 녹았다. 손은 그녀의 숨이 얕아지면 더 느려졌고, 어깨가 달아나면 그보다 먼저 입술이 돌아갈 길을 막았다. 어디를 오래 누르면 몸이 제 손을 좇는지 이미 다 아는 사내 같았다. 왕부의 여인들이— 그날 삼킨 가시가 혀끝에 돋았다.다만 고름이 풀리는 순간, 엄지마디가 딱 한 번 떨렸다. 그것만 아니었다면 스무 해의 소문을 거짓으로 쳤을 것이다. 한 번의 떨림으로 믿기에는, 그 뒤의 손이 너무 태연했다.닿는 자리마다 살이 깨어났다. 입술이 목덜미의 맥을 짚고, 어깨의 선을 지나, 팔목 안쪽— 언젠가 자국을 새겼던 그 자리에 오래 머물렀다. 머무는 입술은 뜨거운데 지나간 자리는 서늘해서, 몸이 제멋대로 그 온도 차를 좇았다."읏······.""아프냐.""······아니옵니다.""그럼 그 소리는
last update最終更新日 : 2026-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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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화. 배웅

떠나기 전 마지막 밤, 사내는 아무것도 남겨 두지 않았다.밀린 외상을 하루에 다 받아 내는 채주처럼, 몇 번이고 그녀를 찾았다. 숨이 골라질 만하면 다시 입술이 내려왔고, 생각이 돌아올 만하면 다시 세상이 좁아졌다. 흰 빛이 몇 번을 다녀갔는지— 어느 결부터 그녀는 세는 것을 그만두었다. 그만둔 자리로 사내는 더 집요해졌다. 이 밤을 몸에 새겨 두면 떨어져 있는 계절 내내 꺼내 볼 수 있다는 듯이.정신을 놓은 것이 먼저인지, 밤이 다한 것이 먼저인지도 가려지지 않았다.어렴풋한 의식 사이로, 더운 물이 왔다. 사내가 손수 데워 온 물이었다. 힘이 들어가지 않는 몸을 큰 손이 받쳐 안고, 젖은 무명이 목덜미와 등과 팔을 천천히 지나갔다. 시비는 부르지 않았다. 제 손으로 어지럽힌 것을 제 손으로 거두는, 그런 손이었다. 새 속곳이 입혀지고, 고름이 매어지고, 몸이 침상에 뉘어졌다. 이불이 턱까지 올라왔다. 그 전부를 그녀는 반쯤 꿈결에 받았다.잠의 문턱 너머에서, 낮은 소리가 딱 한 번 내려왔다."봄이 가기 전에."기한인지 당부인지 가릴 수 없는 넉 자였다. 대답 대신 그녀의 손이 잠결에 사내의 소매를 찾아 쥐었고— 그것이 그 밤의 말 전부였다.새벽, 왕부는 등불을 다 켜고 있었다.가마 셋과 수레 다섯이 마당에 늘어서고, 어멈들이 마른 음식 궤짝을 다시 세었다. 방어멈은 가마 방석 밑에 손난로를 넣다가 들켜서, 봄이라는 말을 듣고도 하나를 기어이 더 넣었다. 넣으며 눈가를 훔치는 것은, 아무도 못 본 척해 주었다.호위 아이는 시비 옷을 입고 가마 곁에 섰다. 치마 밑에서 자꾸 무릎을 벌리고 서는 것을, 앵무가 지나가며 발등을 밟아 고쳐 주었다. 앵아는 왕비 가마의 곁시중으로 뽑혔다. 제가 뽑힌 줄 아는 낯이 발그레했다. 뽑힌 까닭은, 저만 몰랐다.부엌에서는 새벽밥 대신 주먹밥과 육포가 가마마다 실렸고, 상엄은 물목 두루마리를 세 번 확인하고도 네 번째를 폈다. 주먹밥은 어멈들 손맛대로 소금 간이 제각각이었는데, 짠 것은 눈물 섞인 것이라고 앵무
last update最終更新日 : 2026-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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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화. 강길

문루의 먹빛이 관도 굽이 너머로 사라지고도, 온보요는 한참을 가마 발을 올리지 않았다. 이틀 뒤 하구에서 행렬은 배로 옮겨 탔고, 배는 물살을 따라 남으로 내려갔다.북강의 봄물은 흙빛이었다. 눈 녹은 물이 산의 흙을 안고 내려와, 뱃전에 부딪는 소리가 무거웠다. 온보요는 선실 창을 반 뼘 열어 두고 그 소리를 들으며 서신을 적었다. 왕부에 보낼 문안 한 통, 경성 온부에 보낼 문안 한 통. 두 통의 먹빛이 달랐다. 왕부 것은 진했고, 온부 것은 물을 더 탔다.세 번째 종이에는 아무에게도 보내지 않을 것들을 적었다가, 화로에 넣었다.강 위의 하루는 물때로 나뉘었다. 아침에는 안개가 뱃전을 핥고 지나갔고, 낮에는 물새가 돛줄에 앉았다 갔고, 저녁이면 사공들이 뱃노래 반 가락에 국을 말았다. 국에서는 강물 비린내가 옅게 났다. 사흘이 지나자, 그 비린내가 밥맛이 되었다.앵아는 아침저녁으로 선실에 들었다. 찻물을 올리고, 이부자리를 개고, 손이 야무졌다. 온보요는 그 손이 잘 보이는 자리에 서신 초를 두었다. 초에는 참을 일곱, 지어낸 것을 셋 섞었다. 지어낸 셋 가운데 하나— 왕비가 뱃멀미가 심해 예정보다 이틀 늦게 닿으리라는 것— 은, 이틀 뒤 첫 나루에서 값이 나왔다.나루의 객잔마다 방이 잡혀 있었다. 이틀 뒤 날짜로."마마, 객잔이 착오가 있었다는데요." 앵무가 갸웃거리며 아뢰었다. "날짜를 잘못 잡아 두었다고.""물길이 빨랐던 게지."착오가 아니었다. 지어낸 이틀이 나루까지 먼저 와 있었다. 귀는 소매 안에서 성실하게 일하고 있었고, 듣는 쪽은 들은 것을 성실하게 믿고 있었다. 온보요는 객잔의 국수 한 그릇을 남김없이 비웠다. 멸치와 파뿌리로 낸 국물이 뜨끈하고 순해서, 뱃멀미라는 거짓이 조금 미안해지는 맛이었다. 곁상의 앵무는 두 그릇을 비우고, 세 그릇째를 앞에 두고 오래 갈등했다.소월백은 배 세 척 뒤의 상단 배에 탔다.하루 한 번, 물목을 맞춘다는 명목으로 배를 건너왔다. 건너와서는 갑판 위, 사방이 트인 자리에서만 말을 나눴다.
last update最終更新日 : 2026-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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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화. 필압(筆壓)

강길의 행렬이 남으로 멀어지는 만큼, 왕부의 밤은 넓어졌다.왕부가 먼저 안 것은 그리움이 아니라— 서릿발이었다. 왕야의 수라가 반으로 줄었다. 두 술에 물리는 상이 이어지자 부엌은 국 간부터 의심했고, 간의 죄가 아니라는 것은 아무도 입 밖에 내지 못했다. 서재 등불은 밤을 넘겼고, 새벽 조련장에서는 목검이 두 자루 부러졌다. 처결은 빨라지고 말은 줄었다. 왕비가 들기 전의 왕야를 기억하는 늙은 군관들이 낮게 주고받았다— 그때보다 지금이 더 무섭다고. 그때는 얼음이었는데, 지금은 얼음 밑에 물이 흐르는 것을 다들 알아서.파발은 사흘에 한 번 남으로 내려갔다.서신의 문면은 군령과 다르지 않았다. 물길은 어떠한가. 잠자리는 어떠한가. 상단의 배는 몇 걸음 뒤에 있는가— 마지막 물음은 두 번 지우고, 세 번째에 결국 적어 보냈다. 지운 자국 위에 다시 적힌 획이, 종이 뒤까지 눌려 있었다.답신은 닷새에 한 번 올라왔다.물길은 순하옵고, 잠자리는 넉넉하오며, 상단은 세 척 뒤에 있사옵니다— 격식대로 반듯한 문안이었다. 진묵은 그것을 등불 아래서 세 번 읽었다. 세 번째에는 글자가 아니라 획을 읽었다. 삐침이 여느 때보다 짧았다. 붓을 놀리던 손이 어디선가 서둘렀거나, 시렸거나.종이를 코끝에 가져갔을 때, 낯선 향이 스쳤다.침향이었다. 그녀의 살구 향이 아니라, 남쪽 배에 실린 향목의 냄새. 종이가 상단 배의 화물칸을 거쳐 온 것뿐이었다. 그것뿐인 것을 알면서, 진묵은 그 종이를 서안에 엎어 두고 반 시진을 군보만 잘랐다. 그날 잘린 군보 여섯 축 가운데 둘은, 이튿날 노강이 슬그머니 도로 올렸다.야참상이 서재 문턱을 넘은 것은 그 밤이었다. 상을 든 손이 낯설었다. 곽 부장의 누이— 왕비 부재 중의 안살림을 거들겠노라 제 발로 들어온 여인이었다. 새로 얹은 머리에 연지가 곱고, 잣죽에서 김이 올랐다. 여인은 상을 서안 곁에 내려놓으며, 소매가 닿을 듯한 데까지 들어와 섰다."밤이 기시온데— 옥체 상하실까 저어되어."진묵은 군보에서 눈을 들지 않았다
last update最終更新日 : 2026-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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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화. 동선(同船)

북강의 파발이 먼저 닿았다. 서신 끝의 적다 만 듯한 한 줄— 강바람이 밤에는 맵다 하니. 그리고 기름종이에 싼 좁쌀강정 한 줌. 온보요는 그것을 아침 차에 곁들여, 하루 두 알씩 아껴 먹었다.강정이 반으로 줄었을 무렵, 중류의 큰 나루에서 행렬이 하나 합쳐졌다. 연분홍 휘장을 두른 배 한 척. 허연교였다. 오라비의 명으로 성수연에 참례하러 가는 길이라 했고, 물길이 같으니 함께 가자는 청이 미리 서찰로 와 있었다. 물리칠 명분이 마땅치 않은 청이었다. 온보요는 배를 나란히 대게 했다."마마. 강 위에서 다시 뵙네요."허연교는 뱃전을 건너오며 웃었다. 봄바람에 연분홍 자락이 부풀었고, 쪽 찐 머리의 나비 보요(步搖)가 물빛을 받아 잘게 반짝였다. 북강에서보다 낯이 조금 야위어 있었다. 야윈 낯에 분은 더 얇아져, 눈 밑의 옅은 그늘이 그대로 비쳤다. 경성이 가까워지는 배 위에서, 경성의 여인이 경성의 화장을 덜어 내고 있었다.낮에는 한 배에서 지냈다. 허연교는 수를 놓았고, 온보요는 서책을 읽었고, 앵무는 두 사람 사이에서 다과를 나르며 혼자 바빴다. 다과는 배마다 결이 달랐다. 연분홍 배의 것은 설탕에 절인 매실이었고, 이쪽 배의 것은 말린 살구였다. 허연교는 말린 살구를 처음에는 사양했고, 이틀째에는 하나 집었고, 사흘째에는 사양하는 격식을 잊었다. 강물 소리 위로 바늘 지나가는 소리와 책장 넘어가는 소리만 오갔다. 사흘째 오후, 허연교가 수틀에서 눈을 들지 않은 채 물었다."경성 들어가시면, 어디에 묵으세요.""궁에서 정해 주겠지요.""온부에는······ 못 가시겠네요."바늘이 천을 지나는 소리가 한 번, 멎었다가 이어졌다. 온보요는 책장을 넘겼다."성수 전에는 어렵겠지요.""왕야께서는— 어떤 분이세요." 허연교가 실을 이로 끊으며, 지나가듯 물었다."북강의 겨울 같은 분입니다.""추운 분이시구나.""······겨울에는, 화로가 가깝지요."답하고 나서야 답을 들었다. 허연교의 바늘이 천 위에서 잠깐 쉬었다가, 아무 말 없이 다시
last update最終更新日 : 2026-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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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화. 물목장(物目帳)

조심— 두 자가 수놓인 천 조각을 등불에 태운 이튿날, 상단 배에 물이 샜다.밤새 내린 비로 화물칸 한 귀퉁이가 젖어, 아침부터 짐을 옮겨 말리는 소동이 났다. 실은 짐의 이름과 수량을 장부와 맞춰야 한다고 소월백이 청해 와, 온보요는 처음으로 상단 배에 건너갔다. 건너는 널판이 물살에 잘게 흔들렸다. 흔들리는 판 위에서, 내밀어진 흰 손을 그녀는 잡지 않았다. 잡히지 않은 손이 허공에 반 호흡 있다가, 거둬졌다.화물칸은 향 반, 종이 반이었다. 침향 궤짝과 남지 두루마리 사이로 볕이 창살처럼 내려앉았고, 그 볕 속에 먼지가 천천히 돌았다. 소월백은 소매를 걷고 짐을 직접 날랐다. 흰 옷은 여전히 흰데, 팔뚝에는 상단 사람다운 힘줄이 있었다. 짐꾼 둘이 젖은 궤짝을 나르다 말고 힐끔거렸다. 대공자가 손수 짐을 나르는 것이 처음인 낯들이었다. 소월백은 그 눈들을 등지고, 궤짝을 하나 더 들었다.물목장은 세 권이었다. 젖은 궤짝이 나올 때마다 사환이 이름과 수량을 불렀다. 온보요는 같은 줄을 찾아 먹점을 찍으며 장부를 넘겼다. 넘기는 것은 버릇이었다. 버릇은 셋째 권 중간에서 멎었다.숯. 철장산 숯, 두 섬. 사들인 날짜는 지난겨울— 원정보다 석 달 앞이었다. 그 장만 종이 귀가 한 번 접혔다 펴진 자국이 있었다. 먹빛도 다른 장보다 옅은, 겨울 먹이었다."숯을 겨울에 사셨네요."말은 지나가듯 나왔다. 짐을 나르던 손이, 반 호흡 늦게 다음 궤짝을 잡았다."북쪽 장사에 숯은 밑천이지요.""두 섬은 장사 치고 적고, 선물 치고 많은데요."볕 속의 먼지가 한 바퀴 돌 동안, 답이 없었다. 소월백은 궤짝을 내려놓고, 처음으로 장부 쪽으로 몸을 돌렸다. 웃음기가 걷힌 낯은 갱도에서 본 그 낯이었다. 화물칸 밖에서 사공들의 노랫가락이 멀게 지나갔다. 안의 침묵과 밖의 가락이, 서로 모르는 척을 했다."겨울에, 철장산 숯장수에게서 기별을 샀습니다. 밤수레가 다닌다는 기별을. 마마께서 산흙을 물어 오시기— 석 달 전에.""그럼 그날 골목에서.""우연이
last update最終更新日 : 2026-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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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화. 값

아요. 그 이름이 침향 냄새 속에 떨어진 순간— 화물칸의 볕이 이십 년을 거슬러 올라갔다.그 시절 온부는 다섯 살의 눈에 남아 있었다.마당에서 밤새 무언가를 태우던 아버지. 재가 눈처럼 날려 담을 넘던 새벽. 이튿날부터 끊긴 남쪽 손님들. 그해 겨울 처음으로 저잣거리에 나가 어깨너머로 셈을 배웠고, 배우는 김에 저자의 이름 하나를 얻었다. 아요. 이름을 지어 준 이는 국숫집 노파였고, 흰 옷의 소년 하나가 그 이름을 불렀다. 소년은 국수를 먹을 때 왼손을 평상 밑에 감추고 먹었다. 굳은살 밴 왼손이었다. 다섯 살의 아요도 그것은 보았다. 보고, 값을 묻지 않았다. 저자에서는 서로의 밑천을 묻지 않는 것이 예의였다. 그 예의로, 철마다 오는 곁상을 일곱 해 먹었다."기억하는구나." 소월백의 말투가, 이름과 함께 이십 년을 거슬러 올라가 있었다. "국숫집 평상. 다섯 살의 아요와, 여덟 살의 나를.""네가 그 집 국수를 두 그릇씩 먹던 것은 기억해."옛 말이 생각보다 쉽게 혀에 얹혔다. 마마도 공자도 없는 말. 저자 바닥의, 곁상의 말이었다."세 그릇이다. 두 그릇은 네가 세던 값이고."국숫집 노파는 셋째 그릇부터 값을 반으로 쳐 주었다. 흰 옷이 아까워서라고 했다. 이십 년 만의 반말이 침향 냄새 속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오갔다. 아무렇지도 않은 것이— 이상할 만큼, 아무렇지도 않았다.우스개를 주고받는 목소리가, 둘 다 웃고 있지 않았다.문서 이야기로 들어서도, 말은 곁상의 것을 벗지 않았다. 무거운 것일수록— 가벼운 말이 나르기 쉬웠다."그 문서가 뭔지는 알아?""남방 물길 스물여섯 갈래의 세곡 문서. 어느 물길이 누구 주머니로 흐르는지— 이십 년 전의 이름들이 적힌 것." 소월백은 볕 죽은 화물칸에서 낮게 말했다. "그해에 그 이름들 절반이 죽거나 귀양 갔어. 남은 절반이 지금— 조정 윗자리에 앉아 있고." "태워진 문서야.""태워진 문서가 왜 아직 사람을 죽여?"온보요는 답하지 않았다. 다섯 살의 재가 담을 넘던 그림 위로, 스무
last update最終更新日 : 2026-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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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화. 남문(南門)

태후전이 남쪽에 풀었다는 사람들을 생각하는 사이, 배는 마지막 물굽이를 돌았다. 하구에서 내려 관도로 갈아탄 지 한나절— 경성은 냄새부터 달랐다. 성이 보이기도 전에 냄새가 먼저 왔다. 향과 기름과 사람의 냄새. 북강의 바람이 마른 흙과 숯 냄새라면, 경성의 바람은 무엇이든 태우고 지지고 바르는 냄새였다. 삼 년 만이었다. 삼 년 전에는 이 냄새를 냄새인 줄도 몰랐다.관도의 흙먼지 속에서 행렬은 느려졌다. 성문으로 몰리는 수레와 나귀와 지게꾼들. 성수를 앞둔 경성으로 팔도의 물산이 밀려들고 있었다. 비단 짐 위에 닭장이 얹히고, 닭장 위에 아이가 얹혀 졸았다. 이윽고 성벽이 보였다. 북강의 성벽보다 높고, 희었다.남문 밖 물상들의 나루에서 행렬이 쉬었다.떡집은 나루 안쪽에 있었다. 김 오르는 시루가 문밖까지 나와 있고, 수수떡이 채반에 줄지어 식고 있었다. 온보요는 가마 발 틈으로 그것을 보았다. 채반의 떡은— 세 켜였다. 붉은 수수 켜 사이로 콩고물이 두 줄, 선명했다. 시루에서 김이 오를 때마다 단내가 관도까지 밀려왔다. 떡집 늙은 주인은 채반을 뒤집으며 행렬 쪽은 보지도 않았다. 보지 않는 것이, 스무 해짜리 눈이었다.세 켜면 대문이 열린다.앵무를 시켜 떡 한 채반을 샀다. 저녁에 시비들과 나눠 먹였다. 쫀득하고 구수한 떡이 목을 넘어가는 동안, 스무 해짜리 신호 하나가 그녀의 소매 안에 들어와 앉았다. 경성 남문 밖에, 열리는 대문이 있다.입성은 이튿날 정오였다.성문의 수문군이 왕비 행렬의 문첩을 오래 들여다보았다. 오래 볼 것 없는 문첩이었다. 오래 보는 것으로 무언가를 전하는 눈이었다. 행렬이 문루 그늘을 지나는 사이, 온보요는 가마 안에서 허리의 백옥 패를 옷섶 안으로 넣었다. 은방울 소리가 옷감에 눌려 죽었다. 경성 한복판에서 울리기에는, 너무 북강의 소리였다.거처는 궁 동쪽의 사가로 정해져 있었다.담이 높고 마당이 좁은 집이었다. 성수 참례 왕비들의 임시 거처라 했다. 마당에는 오래된 석류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석류는
last update最終更新日 : 2026-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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