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헌이 궤짝을 발로 걷어차 열었다.그 안에는 병조판서가 방금 불태운 장부와 내용이 정확히 일치하는, 또 다른 서류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이, 이게 무엇이오……!”“자네가 불태운 본장부는 하나뿐이겠지. 허나, 그 돈이 흘러간 객주의 은표 발행 기록, 상단의 물류 이동 대장, 자네가 차명으로 사들인 전라도의 토지 대장을 모조리 긁어모아 교차 검증(交叉檢證)하여 복원해 낸 내역서요.”병조판서의 동공이 지진이라도 난 듯 요동쳤다.현대 법조계에서 기업의 이중 장부를 잡아낼 때 쓰는 파생 데이터 추적 방식.이헌은 그들의 돈줄과 연관된 모든 외곽 기록을 털어 완벽한 ‘백업 데이터’를 법적 증거로 조립해 둔 상태였다.“본장부 하나 태운다고, 네놈이 저지른 살육의 흔적이 지워질 줄 알았소?”“아, 아닙니다! 이것은 조작이오! 대군이 나를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의금부로 끌고 가라.”이헌의 서늘한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무사들이 달려들어 병조판서의 무릎을 꺾고 포박했다.“놓아라! 나는 병조판서다! 이놈, 대군! 네가 이리 피바람을 일으키고도 무사할 줄 아느냐!”끌려 나가는 병조판서의 단말마 같은 절규가 밤하늘을 찢었다.이헌은 화로의 불씨를 싸늘하게 내려다보며 입가를 비틀었다.시작에 불과했다.그녀를 벼랑 끝으로 몰아넣었던 자들, 그녀의 가족을 찢어발겼던 자들.그 모든 배후의 숨통을, 오직 빈틈없는 율법의 칼날로 도륙 낼 참이었다.---같은 시각, 대군저의 안채.가림막 너머로 짙은 어둠이 깔린 방 안에서, 서연은
Última atualização : 2026-07-25 Ler ma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