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로맨스 / 내 아래 너를 두고 / Chapter 61 - Chapter 70

All Chapters of 내 아래 너를 두고: Chapter 61 - Chapter 70

162 Chapters

61화.

61화.그는 뭔가에 홀린 듯 시선을 고정했다.얼굴의 절반이 여진의 가슴에 묻혀 있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분명한 것은 백옥같은 피부는 여진을 그대로 닮았다는 것이다.여진은 나갈 생각을 하지 않는 준석을 향해 다시금 소리쳤다.“나가달라고요!”날카로운 목소리에 젖을 먹던 별아가 몸을 꿈틀거렸다.여진은 제 감정을 다스리며 가슴을 가렸던 손으로 아이를 토닥였다.어쩌다 이런 모습을 보이게 됐을까.당혹감을 넘어 수치스러운 생각까지 들었다.여진은 아랫입술을 꾹 말아 물었다.그녀의 눈가가 순식간에 축축하게 젖어 들었다.“…제발, 제발 나가줘요.”거의 애원하듯 말했다.아이에게 젖을 물리며 차준석 앞에서 울고 싶지는 않았다.그녀의 간절함 통했을까.망부석처럼 서 있던 남자가 몸을 돌렸다.여진은 안방에 저와 별아만 남게 되자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그와 동시에 그녀의 볼을 타고 눈물도 같이 떨어졌다. 여진이 얼른 손등으로 눈물을 닦아냈다.그러곤 다시 별아를 토닥이며 격해진 감정을 추슬렀다.준석은 안방에서만 나왔을 뿐, 집을 나가진 않았다.여진이 아이에게 젖을 다 먹일 동안 묵묵히 기다렸다.차준석은 여진을 사랑할 때도 집요했었다.윤여진이 다른 남자와 살림을 차렸는지, 별아가 내 딸이 맞는지를 추궁하러 왔다.그런 그가 빈손으로 돌아갈 리 만무했다.***잠시 뒤.식탁 위에 물 한 잔이 놓였다.여진이 맞은편에 앉은 준석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성의 있는 대접이었다.엄마 젖을 맛있게 먹은 별아는 거실 매트에 누워 이쪽으로 기어 오다, 다시 저쪽으로 기어갔다.옹알이와 함께 기어다니는 모습이 부모의 분위기와는 상관없이 평온해 보였다.준석은 제 앞에 놓인 물 한 잔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별아에게 시선을 두었다.그사이 아이는 바닥에 등을 대고 누워있었다.똘망똘망한 눈을 크게 뜨고 손에 든 실리콘 장난감을 관찰하더니, 이내 그 장난감을 입에 물었다 놓았다 했다. 그러다 혼자 배시시 웃었다.아이는 마치 살아 움직이는 인형 같았다.준석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7
Read more

62화.

62화.그런 여자를 바라보던 준석의 입가에 비소가 걸렸다.“오빠는 횡령죄로 징역 5년, 아버지는 사기죄로 징역 2년, 어머니는 전신마비로 봄 요양병원에 계시던데.”“지, 지금 뭐 하자는 거예요?”여진은 냉랭한 눈으로 제게 선고를 내리듯 말하는 준석을 보며 온몸을 파르르 떨었다.준석의 말이 다 맞았다.오빠는 작년에 엄청난 금액을 횡령한 죄로 징역 5년 형을 선고받았다.그나마 우리나라 최고의 로펌을 써서 그 정도라고 했다.그 변호사 비용을 대기 위해 아버지는 사업을 빌미로 여기저기서 돈을 빌렸다.결국 사기죄로 고소당해 아버지 또한 교도소에 수감 중이다.엄마는 여전히 여진을 외면하고 있었다.여진은 두꺼운 겨울옷으로 임신을 가릴 수 있었던 임신 8개월 때까지 엄마를 찾아갔었다.출산 후, 다시 찾은 엄마는 변함없이 그녀를 투명 인간 취급했다.그럼에도 여진은 친구 희주에게 별아를 맡기고 종종 엄마를 보러 갔다.갈 때마다 죄인이었다.처음엔 오빠를 잡아먹은 못된 동생이었고, 이젠 아빠마저 잡아먹은 배은망덕한 딸이 되어 있었다.여진은 그 모든 사실을 알고 제 삶을 파헤치려 드는 준석에게 분노가 일었다.“차준석 씨하고는 상관없는 일이니, 관심 끄고 이 집에서 나가요!”“자꾸 나랑 상관없다고 말하는데, 사회적 시선이라는 게 있잖아. 당신 친정이야 그렇다 쳐도, 윤여진은 다르지.”“그게 무슨.”“HK 그룹, 차준석의 전 아내가 늘어진 티 쪼가리나 입고 사는 거, 못 봐주겠다, 이 말이야.”“…!”여진은 준석과 이혼 후 이렇다 할 소득이 없었다.다행히도 GLORIA와 협업 후, GLORIA에서 나유미 팀장의 주도로 여진의 작품을 모두 사들였다.그 수입으로 엄마의 병원비를 감당하며 지금까지 버티며 지내고 있었다.희주는 공방에서 여진이 함께 일하길 원했지만, 아직 별아가 어렸다.돌도 안된 아이를 두고 일하고 싶지는 않았다.여진은 제 딸, 별아만큼은 사랑을 듬뿍 주고 키우고 싶었다.자신이 좋은 옷, 좋은 화장품, 좋은 음식을 먹지 않으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7
Read more

63화.

63화.여진은 자신을 철저히 방어해야만 했다.“마지막으로 말할게요. 내 집에서 나가줘요. 자꾸 버티면 경찰에 신고할 거예요.”“내가 말한 상황이 이런 거야.”“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당신이 경찰에 신고하면, 경찰이 이곳에 와서 내 신분을 확인하겠지. 그러면 당신과 내 관계가 이 작은 마을에 드러나는 건 시간문제일 테고. 안 그런가?”“…!”여진은 상상도 못 한 전개가 준석의 입에서 술술 흘러나왔다.한데 틀린 말이 아니었다. 그녀는 입만 벙긋할 뿐 어떤 대꾸도 하지 못했다.드르륵.준석이 의자를 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장신의 남자가 일어서니, 거대한 산이 여진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실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위압감이다.여진은 저도 모르게 한걸음 뒷걸음질 쳤다.그런 여자를 쫓아가듯 준석이 여진을 향해 몸을 수그렸다.서로의 숨결이 그대로 느껴질 만큼 얼굴이 가까워졌다.흡, 여진이 숨을 멈췄다.준석은 여진의 얼굴을 코앞에서 훑으며 제 신경을 거스르게 하는 향기를 느꼈다.이건, 아이 향인가?아니면 젖내일까.아니면….여진에게선 예전과 확연히 다른 향기가 났다.그 출처가 준석의 신경을 마구 긁어댔다.아이여도 싫었고, 젖내여도 싫었다.이러한데, 다른 수컷의 향기라면…!이혼한 사이더라도 그것만은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윤여진은 차준석이 아니면, 죽을 때까지 혼자 살아야 한다.여진아, 그러게 제대로 숨어 있지 그랬어.왜 나한테 그림자를 밟혀서는 내 입에서 이런 말까지 나오게 만드는 건지.이건 필시 네 잘못이다.나를 버린 네 잘못이야.“우리가 이혼은 했지만, 내가 당신한테 위자료는 청구하지 않았지.”“준, 준석 씨….”“위자료 청구 기한이 남아 있다는 건 아나?”여진은 준석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위자료를 청구할 거면, 이혼 당시 했으면 됐을 것을.느닷없이 찾아와 별아를 입에 올리고 위자료를 말하다니.무엇보다 자신의 이혼으로 인해 친정의 피해가 막심했다.결혼 생활 동안 준석이 자신의 친정에 어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7
Read more

64화.

64화.택배 기사와 밀회를 즐기다니!준석이 말하는 택배 기사는 이준을 말하는 것일 테다.이준은 그저 친한 이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아무 상관 없는 이준 씨, 끼워 넣지 말아요.”“이준 씨, 라…. 퍽 다정하게 들리는걸.”그가 기울였던 몸을 바로 세웠다.오만한 눈빛이 여진의 얼굴 위로 내리꽂혔다.“조만간 또 오지.”“싫어요!”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여진은 강하게 거부했다.“윤여진, 현실을 직시해. 지금 당신은 나한테 무릎 꿇고 애걸해야 할 판이야. 제발, 위자료 청구는 하지 말아 달라고 말이야. 당신, 돈 없잖아.”“…!”“그리고 택배 기사, 앞으로 이 집에 절대 들이지 마. 필요한 거 있으면 이걸로 나한테 연락해.”준석이 재킷 안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더니, 식탁 위로 툭 던졌다.다름 아닌 최신형 핸드폰이었다.“입력된 전화번호는 단, 하나야. 없던 핸드폰이 생겼다고 여기저기 알리지 마. 이 번호 당신과 나만 아는 거니까.”여진은 지금껏 핸드폰을 개통하지 않고 집 전화기만 사용했었다.“내 전화, 피하지 말고 받아. 언제 어디서든. 당신이 내 전화를 받지 않을 시엔 위자료 청구 소송이 들어갈 거야. 그걸 원하면, 그렇게 해.”여진은 식탁 위에 올려진 핸드폰을 보며 생각했다.저건 족쇄라고.차준석은 위자료 청구를 운운하며 저를 괴롭히더니, 권리도 없이 제게 족쇄를 채우는 남자였다.왜, 내가 위자료 때문에 도망갈까 봐?여진은 차준석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이 위자료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돈은 넘쳐나게 많은 사람이었다.그깟 몇천만 원을 못 받아서 이러는 게 아닐 테다.이건 분명 저에 대한 응징이었다.감히 바람핀 주제에 이혼을 말했던, 윤여진에 대한 복수이자 응징.그리고 별아가 다른 남자의 아이라고 생각해서 벌이는 어처구니없는 광기.사실 여진은 당장이라도 준석에게 위자료를 주고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그녀 명의로 파주 작업실이 있었지만, 그 작업실은 준석에게 받은 결혼선물이었다.아무리 상황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8
Read more

65화.

65화.준석은 엄한 눈빛으로 일갈하고는 주방을 벗어났다.“어웅, 어마.”거실에서 놀고 있던 별아는 제 옆을 지나가는 커다란 남자를 보며 옹알이했다.그 소리에 준석의 발걸음도 잠시 멈췄다.그가 시선을 내려 별아를 다시금 낱낱이 눈에 담았다.아무리 봐도 저를 닮은 곳이 단 한 곳도 없었다.그의 얼굴이 고통스럽게 일그러졌다.***HK 재활 병원.여진의 집을 나와 병원에 도착한 준석이 VIP 병실로 향했다.그곳엔 성훈이 입원해 있었다.교통사고가 났던 날, 성훈은 일반 병원에서 갈비뼈 골절을 진단받았다.진단이 나오자마자 준석은 성훈을 곧장 HK 재활 병원으로 옮겼다.성훈의 갈비뼈는 다행히도 골절 상태가 심각하지는 않았다.그래도 최소 4주는 입원해서 치료받아야 한다는 의사 소견이 있었다.준석이 병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누워있던 성훈이 준석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몸을 일으키려 했다.“제정신이야? 그냥 누워있어.”“그래도….”성훈이 미안한 얼굴로 대꾸했다.“이 와중에 격식 차릴 일 있어? 네가 가만히 누워있는 게 지금은 나를 돕는 거야.”준석은 성훈을 나무라듯 말했다.얌전히 누워만 있어도 붙을까 말까 하는 갈비뼈였다.거기다 허리 통증까지 호소하고 있으면서 일어나기는.걱정과 못마땅함이 뒤섞인 얼굴로 준석은 누워 있는 성훈을 내려다봤다.“최소 4주는 꼼짝 말라니까, 나 신경 쓰지 말고 회복에 집중해.”“죄송합니다.”성훈은 준석과 눈을 제대로 맞추지 못한 채 말했다.그런 동생의 모습을 안쓰럽게 쳐다보던 준석이 입을 열었다.“성훈아.”“네.”“그때 생각나냐? 너랑 나, 처음 만났을 때 말이야.”“아, 네….”“그때도 너, 갈비뼈가 나갔었잖아.”“….”“동네 양아치들이랑 1대 8로 싸워서 게네들 다 죽사발 만들어 놓고, 날 불렀었지. 그때 합의금으로 수천만 원 깨진 거 알지?”“죄송합니다.”“십 년도 넘은 일에 죄송은. 그 일 아니었으면 너랑 나, 만났겠나.”준석이 며칠 사이 푸석해진 동생을 내려다보며 안쓰러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9
Read more

66화.

66화.준석이 여진을 만났다면 여진의 딸, 별아도 만났을 테다.“사모님은 잘… 계시던가요?”모른 척 물어보았다.“아주 잘 지내더라고. 질투가 날 정도였어.”질투? 아이 때문은 아닐 테고, 혹 윤여진에게 다른 남자가 생긴 것일까.성훈이 흥신소에서 받은 정보에 의하면 여진의 집에 택배 기사가 자주 들락거린다는 보고가 있었다.택배 기사야 어느 집이든 들어갈 수 있기에 크게 의심하지 않았었다.한데 그 사람이 윤여진의 새로운 남자였나?성훈은 준석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혹시 사모님한테 남자가, 있습니까?”“성훈아.”준석은 대답 대신 성훈을 불렀다.“네.”“네가 보기엔 내가 사람 보는 눈이 없는 것 같아?”“네? 그게 무슨.”“여진이의 뒷조사를 하면 할수록 난 그동안 누구와 살았었나 싶어서 말이야. 내가 알던 윤여진이 아닌 것 같아서 아직도 혼란스러워.”“대표님….”“여진이한테 아이가 있더라고.”“…!”별아의 존재를 준석이 알고 있었다.“아, 아이요? 아이를 만나 보셨나요?”성훈은 일부러 놀란 척하며 물었다.“봤지. 너무 자세히 봐서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을 정도야. 세상에서 제일 예쁜 인형 같았어.”“대표님 아인가요…?”쉽게 물을 수 없는 것을 물었다.그래도 꼭 집고 넣어가야 하는 부분이었다. 성훈도 거기까지는 알아내지 못했으니까.“글쎄, 잘 모르겠다.”“…!”확신 없는 표정으로 말하는 준석을 보며 오히려 성훈이 당황했다.심지어 준석은 기가 꺾인 듯한 목소리에 씁쓸한 표정까지 지어 보였다.지금껏 차준석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좌하면서 흔히 보지 못한 말투와 표정이었다.HK 그룹 차준석은 확신 없는 사업에는 결코 뛰어들지 않았다.그만큼 준비가 철저했고 결과 또한 좋을 수밖에 없었다.예외가 있다면, 윤여진이 유일했다.한데 지금 그의 표정은 여진의 외도를 의심했을 때보다도 더 자신 없는 얼굴이었다.대체 무엇을 보고 왔길래 저런 표정을 짓는 것일까.“사모님이 대표님 아이가 아니라고 했습니까?”“그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9
Read more

67화.

67화.“아니. 그럴 시간도 없었지만, 할 생각도 없어.”할 생각이 없다니.성훈은 준석의 결정을 이해할 수 없었다.“유전자 검사를 해서 정확하게 알아보셔야죠. 닮지 않았다고 해서, 섣불리 판단하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성훈의 말에 준석은 자조적인 표정을 지으며 한쪽 입가를 올렸다.“유전자 검사에서 만약 내 아이가 아니라고 나온다면… 내가, 윤여진을 진짜로 가만두지 않을 것 같아서 말이야.”“대표님….”“여진이가 외도 했을 때 난 여진이를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웠어. 그래서 이혼을 먼저 말했던 거고. 한데 다른 남자의 아이를, 그것도 나와 결혼 생활 중에 가졌다? 이혼은 아무것도 아니야. 차라리 같이 죽는 게 나아.”“…!”준석은 움켜쥐고 있던 침대 가드를 놓으며 몸을 바로 세웠다. 그러곤 조금 전과 다르게 서늘한 얼굴빛을 보였다.준석을 살피던 성훈은 순간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그의 검은 눈동자가 성훈을 꿰뚫며 직시했다.“성훈아.”“아, 네….”성훈은 저도 모르게 긴장했다.“다음부턴 나에게 그 어떤 것도 숨기지 마.”“네?”“여진이 산모 수첩.”“…!”“보조석 글러브 박스에 보관되어 있던데.”“대, 대표님!”성훈의 표정이 사색이 되었다.콘솔 박스에 넣어 놨던 산모 수첩을 보조석 글러브 박스에 보관했었다.준석은 언제나 뒷좌석에 탔기 때문에 산모 수첩을 발견할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성훈은 속으로 자신의 안일함을 탓했다.차 사고만 나지 않았어도 준석이 그것을 발견할 일은 절대 없었을 텐데, 어쩌다가.“변명은 됐어. 다그치려고 했으면 여기 들어오자마자 따져 물었을 거야. 너도 여진이 아이가 누구의 아인지 확신이 없었겠지.”“죄, 죄송합니다.”윤여진의 행방과 산모 수첩.모두 준석에게 비밀로 하고자 했던 것인데, 결국 이렇게 드러나고 말았다.“앞으론 이런 일 없게 해라. 눈감아 주는 건 이번만이다. 네가 아무리 내 동생이라도 두 번은 없어.”“네, 명심하겠습니다. 대표님.”성훈은 누운 상태에서도 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9
Read more

68화.

68화.며칠 뒤.여진이 별아를 데리고 희주의 공방을 찾았다.희주의 공방은 여진의 집에서 멀지 않은 거리였으나, 한여름에 아기띠를 하고 온 여진은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나보고 집으로 가져오라고 하면 되지, 더운데 여기까지 나왔어.”희주가 여진이 앉아 있는 테이블 위에 차가운 얼음물 내주며 말했다.택배 기사를 집에 들이지 말라는 준석의 엄포가 있고 난 뒤, 여진은 필요한 물건을 희주의 공방으로 배달시켰다.“바람도 쐴 겸. 겸사겸사.”여진이 손등으로 이마의 땀을 닦으며 얼음물을 마셨다.시원한 물이 몸속으로 들어가니 그제야 살 것 같았다.별아는 그녀의 품에서 곤히 잠들어 있었다.여진이 손수건을 꺼내 땀이 맺힌 별아의 머리를 조심히 닦아냈다.“저기, 여진아.”“…응.”“이준 씨가 네 걱정 많이 하더라고. 자주 보다가 못 보게 되니까 걱정되나 봐.”희주는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준석이 여진과 이준의 관계를 오해하고 있다는 얘기를 며칠 전 들었었다.뻔히 알면서 이준에 대한 말을 여진에게 꺼내는 게 맞나 싶기도 했다.“이준 씨가 내 안부 물으면 별일 없다고…. 당분간 집에 손님이 와서 그렇다고 전해 줘.”“그래, 알았어. 근데 넌 언제 작품 시작할 거야. 별아 나한테라도 맡기고 가끔 작업하지 그래.”희주는 이제 막 떠오르는 신진 작가로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던 여진이 아이로 인해 두손 두발이 묶여 있는 모습이 안쓰러웠다.“작품 한다고 어떻게 너한테 애를 맡겨. 너도 바쁜 거 아는데. 그리고 요즘 별아 이유식 시작해서 정신이 하나도 없어.”“나야 네가 실력 발휘 못 하고 있으니 안쓰러워서 그렇지.”“별아 좀 더 크면, 그때 다시 해야지. 말만으로도 고마워.”“하여튼 딸 사랑은 못 말린다니까.”희주는 친구의 고집에 포기한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공방을 나온 여진은 정수리 위로 강하게 내리쬐는 태양을 가리기 위해 양산을 폈다.다른 손에는 작은 택배 상자가 있는 쇼핑백이 들려있었다.몇 분을 걸었을까.등에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30
Read more

69화.

69화.준석은 못마땅함을 감추지 않고 물었다.“어딜 갔다 오는 거지?”“희주가 운영하는 공방에 다녀왔어요.”“공방?”“이미 알고 있으면서 모른 척하지 말아요.”여진은 눈을 흘기며 따지듯이 말했다.이제 윤여진은 차준석의 손바닥 안에 있는 거나 마찬가지가 아닌가.저의 거처를 조사했다면, 근처에 사는 희주에 대해서도 모르지 않을 것이다.한데 준석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사람처럼 말했다.그런 그가 여진은 조금은 얄미웠다.“내가 남자도 아닌 당신 여자 친구가 운영하는 공방에 관심을 가질 정도로 한가하진 않아.”“하!”여진은 순간 헛웃음이 나왔다.만약 희주가 남자였다면 저리 나오진 않았을 게 분명했다.“근데 그건 뭐지?”준석의 시선이 여진이 들고 있는 쇼핑백에 꽂혔다.여진은 순간 저도 모르게 쇼핑백을 등 뒤로 감췄다.그 행동을 바라보던 준석의 한쪽 입가가 가소롭다는 듯 비스듬히 올라갔다.감춘다고 감춰질 것이 아니었다.준석은 분명 쇼핑백 안에 택배 상자가 들어 있는 것을 보았다.집에 택배 기사를 들이지 말라고 했더니, 친구의 공방에서 만났나.이러면 앞으로 그 공방에 지대한 관심을 가질 수밖에.“다시 한번 묻지. 그 택배 상자는 뭐야?”추궁하듯 집요한 시선이 여진의 눈동자를 옭아맸다.“별아 로션이에요.”여진은 여전히 뒤에 상자를 감춘 채 준석의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필요한 게 있으면 나한테 전화하라고 했잖아. 벌써 잊은 거야?”“아이한테 필요한 물건이잖아요.”“그래서 아이 물건은 꼭 택배로 받아야겠다 이건가? 남이준을 별아의 새아빠로 만들 계획인가 보지?”“준석 씨!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그때였다.여진의 품에 있던 별아가 소란스러운 소리에 찡찡, 거리며 눈을 떴다.이내 고개를 살짝 뒤로 젖히더니, 티끌 하나 없는 맑은 눈동자가 올곧이 준석을 향했다.준석과 별아의 눈동자가 마주쳤다.“…!”그 순간 준석의 심장은 고장 난 것처럼 숨쉬기를 멈췄다.흰 눈처럼 새하얀 별아가 순진무구한 얼굴로 눈꺼풀을 몇 번 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30
Read more

70화.

70화.여진의 정수리 위로 준석의 턱이 닿을 지경이었다.다행히 두 사람 사이에 별아가 있어 완전히 닿지는 않았다.너무 가까워진 거리에 여진은 숨을 들이켜고는 뱉지를 못했다.그녀의 얼굴이 점점 불그스름 해졌다.그렇게 몇 초의 시간이 흘렀다. 째깍, 째깍, 째깍.왜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는 거지?여진은 단단한 돌탑처럼 선 채로 움직이지 않는 준석을 의아하게 생각했다.더는 숨을 참을 수 없었던 그녀는 날숨을 뱉어냈다.“하아.”마치 그 숨결이 돌탑에 생기를 불어넣은 것처럼 준석이 몸을 스르륵 움직였다.여진은 고개를 들어 저와 멀어진 준석을 바라보았다.그의 얼굴은 미지의 세계에 갔다 온 사람처럼 어딘지 모르게 몽롱해 보였다.어째서 저런 표정을.여진은 자신이 잘못 본 거겠지 싶어 눈을 몇 번 깜빡거리고 준석을 다시 응시했다.그러면 그렇지.그의 표정은 금세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양산을 손에 쥔 여진은 여전히 제 앞을 가로막고 있는 준석을 벗어나려 몸을 움직였다.그때, 준석의 커다란 몸이 순식간에 여진의 길을 다시 막았다.여진은 그의 행동이 기막혔다. 다 큰 남자의 방해가 지나쳤다.“뭐 하자는 거예요, 지금. 별아, 배고프단 말이에요.”동네 양아치도 아니고, 백수처럼 대낮부터 나타나서 왜 이러는지 모를 일이었다.여진은 이런 준석이 무척 낯설었다.준석은 그녀의 타박을 가볍게 무시하고는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생각해 보니, 나도 점심을 안 먹었어.”“그래서요?”“나도, 배고프다고.”“…!”차준석의 입에서 저런 원초적인 말이 나올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여진은 하마터면 양산을 놓칠 뻔했다.그다음 이어진 준석의 말에 여진은 너무 황당해 입을 다물지 못했다.“나한테도 밥 좀 주지.”작년에 이혼한 전 남편이 갑자기 나타나서는 각설이처럼 밥 타령이었다.***준석과 함께 집에 도착한 여진은 별아를 거실에 내려놓고 부랴부랴 주방으로 향했다.그녀의 마음이 몹시 분주했다.별아에게 이유식을 먹이고, 밥 타령하는 전 남편의 배를 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30
Read more
PREV
1
...
56789
...
17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