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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내 아래 너를 두고: Chapter 71 - Chapter 80

162 Chapters

71화.

71화.그런 여자를 빤히 보며 준석이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벌써 밥이 다 된 건가?”하!여진은 계속되는 밥 타령에 기가 막혀 소리 없는 헛웃음을 쳤다.이내 정색한 얼굴로 준석을 바라봤다.“밥이 무슨 금 나와라 뚝딱하면 나오는 건 줄 알아요?”“주방에서 소리가 나길래 하는 말이야.”아마도 전자레인지 소리를 말하는 것 같았다.“별아 이유식이에요. 차준석 씨 밥은 별아 먹이고 할 거예요.”이런 것까지 설명해야 하는 여진의 목소리가 좋을 리 없었다.“기다리라고 좋게 말하면 될 텐데, 꼭 그렇게 쏴 붙일 필요는 없잖아.”준석은 조금 서운한 표정을 짓더니, 여진의 대답을 들을 생각은 없었는지 다시 별아에게 시선을 뒀다.여진은 그 모습을 보고 뭐라 말하려 입을 벙긋하다가 말았다.별아 앞에서 말씨름하는 부모의 모습은 보이고 싶지 않았다.여진은 뾰로통한 얼굴을 하고는 별아에게 다가갔다.이내 아이를 덥석 안아 들고 주방으로 향했다.그녀의 행동을 따라 준석의 시선이 따라갔다.별아가 제 앞에서 사라지자 준석은 아쉬운 얼굴을 했다.그가 더위를 느끼며 입고 있던 재킷을 벗어 소파 구석에 놓았다.별아를 관찰하느라 정신이 팔려 몰랐었는데 여진의 집엔 에어컨이 없었다.사방으로 창문이 열려 있다고는 하나 한여름의 정오였다.그의 셔츠에 금세 땀이 배어 있었다.준석은 제 몸에 붙은 찝찝함에 인상을 잘게 구기고는 주변을 살폈다.거실과 주방의 경계에 선풍기가 있었다. 그가 망설이지 않고 몸을 일으켰다.막 선풍기를 손에 잡으려고 할 때였다. 휙! 하고 선풍기가 그의 코 앞에서 바람처럼 사라졌다.허, 뭐가 이렇게 빨라.준석은 아무렇지 않게 선풍기를 들고 가는 여진을 응시했다.이윽고 선풍기는 별아 쪽으로 향했다.준석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은 채 손등으로 제 목에 맺힌 땀을 닦아냈다.***잠시 뒤.선풍기가 시원한 바람을 일으키며 빙빙빙, 돌아가기 시작했다.땀을 식힐 시원한 바람은 별아와 여진만을 향했다.“자, 우리 딸. 아- 해보자.”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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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화.

72화.준석의 돌발 행동에 여진의 눈동자가 더는 커질 수 없을 만큼 커졌다.그녀의 눈동자가 불안감에 이리저리 흔들렸다.태어나서 처음으로 아이를 안아본 남자는 조금 불편하게 별아를 안고 있었다.그러면서도 우는 아이를 달래려 애썼다.“착하지, 울지 마.”낮고 부드러운 목소리였다.별아는 저를 달래는 소리에 신기하게도 울음을 서서히 그쳤다.준석은 아이의 얼굴에 남은 눈물을 손으로 조심스레 닦았다.“예쁘네, 말도 잘 듣고.”너무도 다정한 행동이었다.여진은 그 모습에 벅차오르는 감동보다는 손끝에서부터 올라오는 초조함을 느꼈다.별아가 그의 딸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일까.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저렇게 행동할 수 있지?여진은 예상을 벗어난 준석의 행동에 머릿속이 복잡해져 왔다.차준석이 나타나고 나서 여진은 희주에게도 별아를 맡기지 않았다.혹여나 친자 검사를 한다고 난리를 칠까 싶어, 한시도 별아와 떨어지지 않았었다.며칠 동안 낯선 사람과 접촉한 적도 없었고 누군가 집에 들어온 적도 없었다.순전히 직감만으로 저렇게 행동하는 거라면….유전자 검사를 통해 별아가 자신의 친딸이라는 것을 차준석이 알게 되는 날에는!아, 안돼!저 사람이 별아를 빼앗아갈지도 몰라!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여진은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그녀가 손에 들고 있던 뒤집개를 던지듯 내려놓고 별아를 향해 손을 벌렸다.“벼, 별아야! 엄마한테 와!”“어무, 아바.”별아는 엄마의 간절함을 알지 못했다.언제 울었냐는 듯 해사하게 웃으며 준석의 품에 얼굴을 더 기댔다.“…!”이번엔 준석이 흠칫하며 놀랐다.아이의 보드라운 뺨이 벌어진 셔츠 사이에 고스란히 닿았다.맨살에 닿는 아이의 체온이 무척이나 따뜻했다.그가 숨을 멈추고 아이의 체온을 느꼈다.방금까지 더워서 어쩔 줄 모르던 남자는 어디 갔는지, 아이를 품에 안고 잔뜩 긴장한 아빠만 존재했다.완벽한 부녀의 모습에 여진은 더 불안했다.그녀가 준석을 쏘아보며 말했다.“별아, 이리 줘요!”“아이가 싫다잖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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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화.

73화.자신과 결혼 생활 동안 여진은 그의 말에 이렇다 할 토를 단 적이 없었다.한데 이혼하고 나니 자신의 배려와 아량에도 계속 토를 달았다.아이 엄마가 되면 저렇게 변하나?하긴 윤여진의 외도를 안 순간 그는 아내를 전혀 몰랐던 머저리 남편이 되어있었다.어쩌면 온순한 양인 줄 알았던 여자의 실체가 손발톱을 단단히 세운 앙큼한 고양이가 아니었을까.한데 그 실체가 썩 나쁘지만은 않았다.나쁜 건 그녀의 외도밖에 없었다.외도.제기랄!잠잠하던 그의 심경에 다시금 파도가 일렁이기 시작했다.그것을 알지 못하는 여진은 고개를 빳빳이 들고 제 조건을 말했다.“오늘처럼 갑자기 와서 밥 먹고 가는 거, 싫어요. 나도 사생활이 있어요. 준석 씨 시간에 맞춰 밥을 차릴 수는 없어요. 오기 전에 연락하고 왔으면 해요.”“당당한 건 좋은데, 상황 파악 좀 하지?”건조하고 무뚝뚝한 말투에 여진은 약간 당황해하며 준석을 바라봤다.저를 향한 준석의 눈동자가 조금 전과 다르게 사뭇 사나워져 있었다.갑자기 또 왜 저러지?여진은 오늘따라 유독 오락가락하는 그의 표정 변화에 불안감을 느꼈다.준석은 그런 여진을 옥죄듯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윤여진, 내가 지금 부탁하는 거로 보여?”“…!”“밥 한 끼 먹기가 이렇게 힘들어서야. 차라리 위자료 소송이 낫지.”“아니, 준석 씨. 난, 난 그런 뜻이 아니라….”“그만.”준석이 여진의 말을 막았다. 이윽고 그가 여진이 잊고 있었던 것을 상기시키듯 말했다.“한 기업의 대표가 그렇게 한가해 빠진 줄 알아? 새삼스럽게 왜 이래? 나랑 안 살아 본 사람처럼. 내 스케줄이 집안 사정에 맞춰 움직였던가?”“…!”“움마, 어마.”두 사람의 살벌한 분위기를 별아의 옹알이가 끼어들었다.그 소리에 준석의 눈동자가 돌연 변하며 그의 표정이 조금 부드러워졌다.그가 짧게 숨을 고르고 마저 말했다.“그래, 좋아. 내가 많이 양보하지. 한 달 동안 여기서 출퇴근할 테니, 저녁만 차려.”“준석 씨! 그게 무슨!”“더 이상 타협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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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화.

74화.“재수가 없으려니! 퉤!”문율은 화가 치밀어 올라 다시금 침을 뱉었다.“사무실에서 담X 피우지 말랬잖아!”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은 차애란이 인상을 와락 구기며 문율에게 다가왔다.‘개는 짖어라, 나는 간다.’문율은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허공을 향해 후우! 연기를 날렸다.“야! 귓구멍이 막혔니?”차애란은 문율이 피고 있던 담X를 냉큼 뺏어 그의 맨몸 위로 팍! 던졌다.“앗! 따가워! 누나! 미쳤어?”붉은 심지가 맨 가슴에 떨어지자 화들짝 놀란 문율이 소파에서 벌떡 일어났다.“이쁘다, 이쁘다, 하니까 건방이 하늘을 찌르지 너.”험악한 표정으로 제 앞을 우뚝 막고 선 문율을 손가락 하나로 꾹, 꾹, 찌르며 애란이 말했다.“누나! 오늘 좋았잖아, 진짜! 이 정도는 봐줘!”애란의 손가락을 확 잡으며 문율이 짜증스러운 얼굴을 했다.“인상 안 펴? 누구 앞에서 얼굴을 구기니? 볼 거라고는 그거 하나면서.”“왜 이래, 또오. 누나, 화났어? 한 번 더 할까, 우리?”“미친X. 한 번만 더 내 말 무시해. 그땐 너 아웃이야.”“아이고, 무서워라. 알았어요, 알았어. 누나 말 잘 들을게요.”금세 태세를 전환한 문율이 애란을 와락 껴안았다.애란이 그를 세게 밀치며 말했다.“잔말 말고, 다음 주에 이천에나 다녀와.”“갑자기? 이천엔 왜?”“반반한 니 얼굴 좀 써먹자.”“누나, 내가 일어설 수 없게 땅바닥에 곤두박질친 건 사실인데, 그래도 나 잘 나가던 탑스타였어.”“그걸 누가 몰라?”“그걸 아는 사람이 내 얼굴을 써먹겠다고? 너무 무리수 아니야? 아, 오해는 마요. 난 전적으로 누나 생각해서 하는 말이니까.”문율이 능글맞은 표정을 짓고는 다시금 애란을 껴안았다.“성폭행범, 문율.”“누나!”애란을 안고 있던 문율이 정색하며 몸을 떨어트렸다.작년에 하도 많이 듣던 지랄 같은 개소리라 이젠 노이로제가 걸릴 정도였다.“발끈하긴, 그러게 누가 그런 짓 하랬니?”“다 지난 과거는 왜 갑자기 꺼내는 거야? 기분 더럽게!”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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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화.

75화.연기는 그 누구보다 잘할 자신이 있었고, 차준석의 전 와이프하고는 구면이기까지 했으니까.“너, 걔 보고 은근히 꼴려 했잖아.”몸을 쓸어내리던 애란의 손이 문율의 허리께로 내려갔다.“내가? 그랬나?”문율은 여진을 떠올리다, 제 몸을 계속 더듬어 대는 애란의 손길에 보이지 않게 얼굴을 구겼다.“작년 전시회 때 걔 보고 와서는, 누나 며느리 아주 예쁘더라고, 살색이 무슨 도자기인 줄 알았다고. 한참 말했었던 거 기억 안 나니?”“그랬어? 뭘 그런 자잘한 거까지 기억하고 그래. 누나처럼 바쁜 사람이.”문율은 제 몸을 떠나지 않는 애란의 손길에서 그녀의 생각을 읽었다.그가 애란을 순식간에 뒤로 돌려 안았다. 이내 그녀를 꽉 움켜쥐었다.“훗. 눈치 빠른 놈.”아플 법도 한데, 애란은 고통을 즐기는 여자처럼 웃어댔다.“그래서 내가 일 처리 잘하면, 얼마 줄 거야?”“한 장.”“고작? 너무 짜다.”“겁만 주는 거에 1억이면, 쏠쏠하지 않아? 더 바라면 너 배탈 난다. 매달 너한테 들어가는 돈이 수천이야.”“알았어, 알았어.”“30분 뒤에 임원 회의야. 원피스에 구김 가지 않게 해.”“네네, 전무님. 테이블이나 꽉 잡고 계세요.”끝난 줄 알았던 욕정이 다시금 시작되었다.***밤 9시.주방에서 음식을 준비하는 여진의 손길이 분주했다.오늘 저녁 메뉴는 도미찜.한 끼에 백만 원짜리 요리를 한다는 게 생각보다 부담감이 컸다.반찬 가짓수는 많지 않더라도 메인 요리가 좀 있어 보여야 할 것 같았다.그런 이유로 생선을 좋아하는 준석을 위해 여진이 특별히 준비한 음식이었다.도미찜은 준석과 부부였던 시절, 여진이 준석에게 가끔 해줬던 음식이었다.도미찜이 식탁에 오를 때마다 준석은 밥을 두 공기나 먹었었다.“지난번에 대구전도 게 눈 감추듯이 먹었었지.”여진은 며칠 전 제가 만든 대구전을 점심으로 맛있게 먹고 간 준석을 떠올렸다.“그래도 이 집에서 자는 첫날인데, 이 정도는 해야겠지?”여진은 가스레인지에 불을 끄며 혼잣말했다.그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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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화.

76화.여진은 빠르게 거실로 향했다.“…왔어요?”여진이 캐리어를 들고 거실로 들어서는 준석을 보며 어색한 인사를 했다.준석은 여진의 인사에 대꾸하려다 말았다.아니 못했다는 게 맞다.그의 시선에 앞치마를 두른 채 다소곳이 서 있는 여진이 보였다. 집안을 진동하는 비린내와 함께.그 순간 준석의 미간이 단박에 구겨졌다.또, 생선인가.며칠 전 대구전도 비린내를 꾹 참고 억지로 먹었었다.그나마 시장이 반찬이라고, 배고프니 우선 입에 들어갔다. 한데 오늘도 비린내 가득한 생선이라면.앞으로도 저녁 밥상이 생선으로 가득할 가능성이 농후했다.미래에 닥칠 일을 생각하니 아찔하기까지 했다.“이건 무슨 냄새지?”말투가 좋을 리가 없었다.여진은 며칠 만에 보자마자 추궁하듯 묻는 준석을 보며 서운함이 몰려왔다.며칠 동안 잘 지냈냐, 별일 없었냐, 별아는 뭐 하느냐. 등등….수많은 질문 가운데, 이건 무슨 냄새냐니.여간 실망이 아니었다.여진도 차준석과 한 달살이를 하는 것이 좋을 리 없었다.그래도 한 달을 같이 살기로 했으니, 별아를 위해서라도 두 사람 관계가 온화하길 바랐는데.그게 이렇게 어려운 일일 줄이야.여진은 속상한 눈빛을 하고 입술을 뗐다.“밥 냄새지 무슨 냄새겠어요?”그녀 또한 말투가 곱지 않았다.준석은 미간을 구긴 채로 캐리어를 끌며 여진 앞에 섰다.여진은 뾰로통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그 모습이 썩 귀엽다고 느꼈을 때였다.여진의 몸에서 생선을 팔다 온 사람처럼 생선 냄새가 폴폴 올라왔다.준석은 오늘 저녁밥은 안 먹어도 된다고 말하려 했었다.한데 저녁을 차린다고 수고한 티가 역력한 여진을 보니 그 말이 쏙 들어갔다.그가 좁혀진 미간을 풀며 말했다.“맛있는 냄새길래 물어본 거야. 다른 의미는 없어.”준석의 말에 여진도 조금 마음이 풀렸다.마음이 풀리고 나니, 제가 너무 쏴붙인 건 아닌가 싶었다.“씻고 먹을 건가요?”“뭘?”“뭐, 뭐긴 뭐예요. 밥이지.”여진은 순간 얼굴을 붉히며 얼른 대답했다.“씻고 오는 길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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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화.

77화.‘재혼을 하더라도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제 나이에 할아버지가 맺어준 사람과 결혼이라니요. 사람들이 비웃을 일입니다.’‘허허, 이혼한 전 아내의 뒤꽁무니를 졸졸 쫓아다니는 게 더 비웃을 아니냐?’‘…!’‘어리석은 놈. 네 동선 하나하나가 회사 주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걸 잊지 마라. 이천에서 있었던 교통사고가 인터넷에 도배되지 않게 하려고 홍보실 실장이 진땀을 뺐다더구나.’‘그 일은 면목 없습니다. 죄송합니다.’준석은 고개 숙일 때를 알았다.교통사고가 수면 위로 떠오르면 저를 보좌한 성훈의 자리도 위험했다.그렇지 않아도 성훈을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어머니 차애란에게 좋은 건수를 던져주는 일밖에 되지 않았다.HK 그룹, 차애란 전무.아무리 골칫덩어리라도 쉽게 무시할 수 없는 존재다.차준석의 어머니이기 전에 차원호 회장의 외동딸.그 당시 재벌가에서는 전무후무했던 평사원과 결혼시켜 그녀의 자리를 어떻게든 유지 시켰던 차원호 회장이 아닌가.HK 그룹의 수장이 차준석으로 바뀐다고 해도 차원호 회장은 차애란 전무를 내치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지금 손 부회장이 하고 있는 방패막이를 아들 차준석이 대신할 테니까.‘재혼인데 시끄럽게 할 필요 있나. 혼인신고 먼저하고 회장 취임 되면, 신혼은 그때 즐겨.’차 회장은 이미 결정을 내린 상태였다.준석은 오늘 차 회장이 저를 부른 이유가 설득이 아니라, 통보라는 것을 알았다.자신이 맺어준 사람과 잔말 말고 재혼해라.곧이어 이어진 차 회장의 말에 준석은 차 회장의 제안을 감히 무시할 수 없었다.‘여진이한테 아이가 있더구나.’‘할아버지!’‘귀 안 먹었다고 몇 번을 말해!’준석의 연이은 큰 소리에 차 회장이 이번엔 역정을 냈다.‘아비가 누구인지도 모를 아이를 낳았다지?’‘…!’‘하루빨리 유전자 검사하고, 아이가 우리 차 씨 집안 아이면 데려와야지. 아이 엄마가 따라오는 건 너무 당연한 거고.’차 회장의 말을 잠자코 듣고 있던 준석은 뭔가 의구심이 들었다.‘지금 할아버지 말씀은 아이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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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화.

78화.“준석 씨, 음식 식겠어요.”여진의 목소리였다.“그래…, 알았어.”준석의 대답에 여진의 발걸음이 멀어졌다.답답함에 짧게 한숨을 내쉰 준석은 캐리어에서 갈아입을 옷을 꺼냈다.“이건 뭐, 출장 온 것도 아니고.”출장지에서나 했던 행동을 하고 있는 자신을 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그나마 출장지에서는 언제나 최고급 호텔에서 지냈다.객실도 스위트룸 이하에서 자 본 적이 없었다.한데 침대만 왕실 침대일 뿐, 모든 환경이 동네 여관처럼 열악했다.하, 누구를 탓할 수 있을까.불평을 하기엔 이 모든 상황은 자신 스스로가 자처했다.다시 만난 윤여진을 떠나보내지 못해서.윤여진이 낳은 별아가 눈에 밟혀서.***준석이 방에서 나오자, 여진은 그때 밥을 공기에 펐다.“아이는?”준석이 자리에 앉으며 들어올 때부터 보이지 않았던 별아를 찾았다.“자요. 보통 이 시간엔 별아 자는 시간이에요.”여진은 모락모락 김이 나는 밥공기를 준석 앞에 놓으며 말했다.시간은 어느새 9시 반이 훌쩍 넘어 있었다.준석은 오늘 별아를 보지 못한다는 사실에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아쉽다니.언제부터 별아를 봤다고, 아쉽다는 생각이 드는 건지.그래도 그는 자신의 감정을 굳이 외면하려 하지 않았다.며칠 전 이 집에 왔을 때 그는 이미 별아에 대해 정의를 내렸다.윤여진이 낳은 윤여진의 아이라면, 그것으로 됐다.그가 제 품에서 울음을 뚝 그치던 별아를 생각하며 수저를 들었다.여진은 준석이 식사를 시작하자, 거실로 향했다.거실 한편에 천 기저귀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그녀는 그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한 장 한 장 쓰기 편하게 기저귀를 갰다.밥을 입에 넣던 준석은 여진의 움직임에 시선을 두었다.수건인 줄 알았던 천이 별아가 쓰는 기저귀라는 것을 그는 뒤늦게 알았다.준석이 시선을 돌려 식탁 위에 놓인 반찬들을 바라봤다.그의 표정이 곤란함에 저절로 찌푸려졌다.무엇부터 먹어야 할지….식탁 정중앙엔 나름 달걀지단으로 예쁘게 꾸며진 도미찜이 놓여있었다.밑반찬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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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화.

79화.통 크게 세 번 먹고 끝날 일을 30일 동안이나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그러잖아도 비린 도미찜이 날생선처럼 느껴졌다.여진은 도미찜을 맛있게 먹고 있는 준석을 보며 흐뭇해했다. 이내 다시 몸을 돌려 기저귀를 갰다.어느새 그녀의 뺨이 신혼을 보내는 여자처럼 발그레해졌다.준석을 위해 제 손으로 반찬 하나하나 신경쓰며 제대로 된 음식을 차린 날이었다.그런 음식을 맛있게 먹는 별아 아빠, 차준석.어쩌면 그와 함께하는 30일이 힘들지만은 않겠구나 싶었다.***다음날, 아침.여진이 일어났을 때 준석은 이미 출근한 뒤였다.작은 방의 문이 열려 있길래 여진은 사람이 없는 줄 알면서도 도둑고양이처럼 살금살금 방에 발을 디뎠다.깔끔한 차준석답게 침대가 잘 정돈되어 있었다. 여진은 직접 잠자리를 정돈했을 준석을 떠올리며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어마, 엄마!”거실에서 놀고 있던 별아가 엄마를 불렀다.며칠 사이 별아는 여진을 보며 정확하게 ‘엄마’ 소리를 했다.그 소리를 들었을 때 여진은 하늘을 나는 것처럼 너무 기뻤었다.“우리 아기, 엄마 불렀어요? 여기 있지요.”여진은 얼굴을 환하게 밝히며 딸에게 향했다.“엄마!”“그래, 엄마야. 우리 별아, 말도 너무 잘하지.”여진은 별아를 품에 안으며 행복한 얼굴을 했다.그러다 문득, 엄마가 떠올랐다.원래대로라면 지난주에 엄마를 보러 요양병원에 가야 했다.한데 준석이 갑자기 나타나는 바람에 그녀의 일상에 균열이 갔다.자주 보던 이준과 호영도 만나지 못했고, 엄마도 만나지 못했다.오늘은 엄마를 보러 가야겠다고 여진은 마음먹었다.***별아를 희주에게 맡긴 여진은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햇살은 뜨거웠으나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과 산들 바람이 부는 날이었다.정류장 옆으로 수백 년도 넘는 느티나무가 있었는데, 길게 뻗은 가지의 푸른 잎이 바람에 살랑거렸다.그 사이를 비집고 내리치는 햇살이 윤슬처럼 반짝였다.“날씨가 참 좋네.”여진의 갈색 머리칼이 바람에 날리며 그녀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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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화.

80화.“배달 가는 중이에요?”“네, 여진 씨는 혹시 봄 요양병원 가는 중?”여진의 품에 별아가 없었다.이런 날은 보통 그녀가 요양병원에 가는 날이었다.“맞아요. 요즘 잘 못 갔었거든요.”“아, 그 손님 때문에요?”이준은 여진의 집에 손님이 와서 그녀가 바쁘다는 소식을 희주를 통해 들었었다.같은 동네에 사는 저도 못 볼 정도였으니, 병원에 계신 어머니는 더 못 찾아뵀을 게 뻔했다.“아…, 네.”여진은 이준의 입에서 ‘손님’이라는 말이 나오자 마치 감춰야 할 것을 들킨 사람처럼 대답했다.“마침 봄 요양병원 가는 길인데, 차에 타요. 태워다 줄게요.”“고마워요. 그럼, 신세 좀 질게요.”여진은 오랜만에 만난 이준의 호의를 거절하지 않았다.이준의 차에 탈 때 준석이 언뜻 생각났지만, 이내 머릿속에서 그를 지워냈다.그는 택배 기사를 집에 들이지 말라고만 했을 뿐, 만나지 말라고 하지는 않았으니까.그리고 자신이 말하지 않으면 이준의 차를 얻어 탄 것을 준석이 알 리는 없었다.***한적한 시골길을 택배 트럭이 신나게 달렸다.“손님은 얼마나 계시다 가는 거예요?”이준이 전방에 시선을 둔 채 물었다.“한 달… 이요.”“한 달이요? 손님이 한 달이나 더 있는 다고요?”이준은 여진에게 시선을 두고 놀라며 되물었다.“네, 그렇게 됐어요.”“가까운 분인가 보네요. 한 달 동안이나 함께 지내는 거 보면.”“아, 뭐…. 그럭저럭.”여진은 자세히 말하지 않고 얼버무렸다.그런 여진을 보며 이준은 ‘손님’에 대해 더 궁금해졌다.하지만 섣불리 누구인지 묻지 못했다.어젯밤 그는 호영이를 데리고 산책을 나왔었다.그때 여진의 집 앞에 세워진 검은색 세단을 봤다.이런 시골 동네와는 어울리지 않는 지나치게 고급스러운 차였다. 마치 여진의 손목시계처럼.희주를 통해 여진의 소식을 이미 들어 알고는 있었지만, 검은색 세단을 본 순간.여진의 집에서 지내는 ‘손님’이 남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혹시, 별아의 친아빠가 온 것일까.여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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