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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화.

81화.이브를 유혹한 사과가 저런 모양이었을까.여진의 정수리를 장식한 동그란 사과 모양의 머리가 참 예뻐 보였다.그 사과 모양이 너무도 잘 어울리는 새하얀 여자, 윤여진.오늘따라 그녀가 평소보다 더 앳되어 보였다.어느 누가 아이 엄마라고 생각할까.윤여진은 흰 티셔츠에 평범한 주름치마마저 최고급 드레스처럼 보이게 하는 매혹적인 여자다.이준은 여진에게 묶여 있던 시선을 얼른 떼고 운전에 집중했다.이러다간 진짜 큰일이 나겠다 싶었다.***봄 요양병원.요양병원에 도착한 여진은 담당 직원을 통해 그녀의 엄마가 퇴원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그게 무슨 말이죠? 저희 엄마가 퇴원했다니요?”상상도 못 한 상황에 여진의 얼굴은 엄청난 혼돈에 휩싸였다.“이정희 환자님이 다른 병원으로 옮기길 원하셔서 며칠 전에 퇴원 처리했습니다.”이정희는 여진이의 엄마 이름이었다.엄마가 다른 병원으로 옮겼다니!여진이 면회를 올 때마다 엄마는 언제나 입을 꾹 닫고 있었다.어떤 날엔 눈까지 감아버려 면회가 몇 분 안에 끝난 적도 있었다.그래도 엄마는 여진의 면회를 거부한 적은 없었다.그랬던 엄마였는데…, 저에게 일언반구 말도 없이 병원을 옮기다니!“어떻게 보호자한테 말도 없이 병원을 옮기나요?”여진이 직원을 향해 따지듯 물었다.“환자분이 의사 표현에 어려움이 없을 때는 가족의 동의 없이도 퇴원이 가능합니다. 이정희 님께서는 의사소통엔 문제가 없으신 분이라서요. 그리고….”직원은 흥분한 여진을 의식하며 말을 잇지 못하고 그녀의 눈치를 살폈다.“그리고요? 엄마한테 무슨 일이 있었나요?”여진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다그쳐 물었다.직원은 조금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이정희 님께서 가족, 특히 딸에게는 알리지 말라고 하셨습니다.”“네…? 그게 무슨. 정말, 정말 엄마가 그렇게 말씀하셨어요?”“네. 저희로서도 방법은 없었습니다. 딱히 규정에 어긋난 것도 아니라서요.”“…!”여진은 순간 현기증이 몰려왔다.그녀가 어지러움을 이기지 못하고 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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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화.

82화.동시에 하루아침에 엄마의 행방을 모르게 된 여진이 안쓰럽게 느껴졌다.그 또한 부모가 있으나, 조카 호영이를 혼자 키우며 부모와 연을 끊고 산 지 오래였다.그는 스스로 원해서 부모와 연을 끊었지만, 원수 같은 부모라도 종종 생각나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한데 여진은 엄마가 그녀를 투명 인간 취급해도 꿋꿋하게 면회를 계속했던 사람이다.그만큼 엄마에 대한 마음이 컸다는 뜻일 텐데, 그런 엄마가 사라져 버렸다니….언젠가 이준은 여진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여진 씨, 어머니 면회 횟수를 좀 줄이는 건 어때요? 어머니가 여진 씨를 반가워하는 것도 아닌데.’그때 여진은 이렇게 대답했다.‘자주 가는 것도 아닌걸요. 그리고 전 엄마한테… 죄인이에요.’‘…네? 그런 말이 어딨어요. 여진 씨처럼 착한 사람이 어딨다고.’‘아니에요. 저 그렇게 착한 사람 아니에요. 저 때문에 가족들이 모두 힘들어졌거든요.’그 말을 하는 여진의 표정이 너무 슬퍼 보여 이준은 더는 묻지 못했었다.이준은 가족에 대해 죄책감을 가지고 있는 여진이 항상 안타까웠었다.그렇다고 자초지종을 잘 모르는 상황에서 섣불리 위로할 수도 없었다.이준은 엄마의 행방을 몰라 힘들어하는 여진을 돕고 싶었다.그는 데스크에서 실랑이하는 것보다는 사무실에 가서 사정하는 게 빠르겠다고 판단했다.다행히 사무실 과장과는 택배 일을 하면서 꽤 친한 사이였다.“여진 씨, 내가 알아볼게요. 우선 앉아서 기다려요.”여진은 이준의 말에 서둘러 눈물을 훔치고는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이준은 몸을 돌려 다시 사무실로 향했다.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이준이 빠른 걸음으로 여진에게 다가왔다.“여진 씨.”여진은 그의 부름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그녀는 너무 긴장돼 엄마가 있는 곳을 알았는지 곧장 묻지도 못했다.그런 여진의 상태를 알고 이준은 우선 그녀를 병원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두 사람이 병원 밖 주차장에 마주 섰다.“이준 씨, 아, 알았나요?”여진이 긴장된 목소리로 물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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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화.

83화.같은 시각.딸랑.풍경 소리와 함께 희주의 공방에 손님이 들어왔다.별아를 이유식 의자에 앉혀놓고 이유식을 먹이고 있던 희주는 자리에서 일어나 손님을 맞았다.“어서 오세요.”“그릇을 좀 사려고 하는데요.”공방에 들어온 사람은 나이가 지긋한 중년의 여자였다.“네, 어떤 그릇을 보시나요?”“디너 파티 때 쓸 접시를 볼까 해요.”“그럼, 이쪽으로 오시겠어요?”희주는 별아가 안전하게 있는지 확인하고는 접시가 전시된 곳으로 손님을 안내했다.손님은 쓱, 하고 전시된 접시를 훑더니 손가락으로 몇 개를 가리켰다.“이거, 이거, 이거. 포장해 주세요.”“아, 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금방 해드릴게요.”손님은 전시된 접시 중 가장 비싼 것만을 골랐다.희주는 손님이 고른 접시를 포장대로 가져와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포장했다.그러면서도 그녀는 별아에게 시선을 떨어트리지 않았다.“선물할 건 아니라서요. 그냥 대충 해주세요.”손님의 요구에 희주는 그러겠다고 대답했다.“근데 아이가 너무 예쁘네요.”손님이 별아에게 다가가며 말했다.“네, 정말 예쁘죠?”“사장님 딸인가요?”“아니에요. 친구 딸이에요.”“아, 그렇구나. 애가 너무 예뻐서 그러는데 혹시 안아봐도 될까요?”접시 포장을 다 끝낸 희주는 손님의 말에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죄송해요. 친구가 낯선 사람이 아이 안는 거 싫어해서요.”희주에 말에 손님은 그러냐며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포장된 접시를 가방에 담아 희주가 손님에게 건넸다.“여기 받으세요.”“솜씨가 정말 좋으시네요, 포장도 예뻐요.”“칭찬 감사합니다.”“아무래도 더 사는 게 좋겠어요. 이거랑 똑같은 거로 따로 포장해 주시겠어요? 이번엔 선물하려고요.”“똑같은 거로요?”“네.”“그럼, 잠시만 기다리세요.”“천천히 하세요, 바쁘지 않으니.”“네, 그래도 여기 의자에 앉아 계세요.”희주는 방금 제가 앉아 있던 의자를 손으로 가리켰다.별아를 마주 보고 있던 의자였다.손님은 엷게 미소 짓더니 별아를 바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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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화.

84화.HK 재활 병원.끼익!택배 트럭이 재활 병원 앞에 급하게 섰다.여진이 차에서 내리기 전, 이준을 바라보며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이준 씨, 정말 고마워요. 여기서부터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어서 일 봐요. 나 때문에 배달이 늦어져서 미안해요.”“늦어봤자 큰 차이도 안 나요. 괜찮으면, 나도 병원에 같이 들어가고 싶은데.”이준이 여진을 걱정하며 말했다.“아니에요, 엄마가 저한테 어떻게 반응하실지도 모를 일이라서요.”“아…, 그렇겠네요. 괜히 내가 방해될 수도 있겠어요. 그래도 도움 필요하면 곧장 연락해요.”“그럴게요, 정말 고마워요.”여진은 다시 한번 이준에게 고마움을 전하고는 트럭에서 내렸다.이내 병원 출입구를 향해 빠르게 달려갔다.이준은 멀어지는 여진을 보며 걱정스러운 눈빛을 했다.마음은 이미 그녀와 함께 병원으로 달려가고 있었다.그가 배달 시간을 확인했다.이준은 결정을 내린 듯 핸들을 돌려 병원 주차장에 트럭을 세웠다.병원 로비에 도착한 여진은 곧장 데스크로 향했다.“저, 저기. 면회를 왔는데요. 몇 층 몇 호에 계시는지 확인 좀 하려고요.”여진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직원에게 물었다.“성함이 어떻게 되시죠?”“이정희 님이요.”“잠시만요.”직원이 키보드를 몇 번 두드리고 화면을 보더니, 다시 여진에게 시선을 뒀다.그러고는 조금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여진은 직원의 표정에 불안해하며 물었다.“혹시… 이 병원에 안 계시나요?”“그건 아닌데, 환자분이 면회를 거절하신 상태세요.”“네? 면회를 거절한 상태요?”“네, 아무래도 그냥 돌아가셔야 할 것 같아요. 병동도 VIP 병동이라 아무나 접근할 수 없는 곳이거든요.”“하…!”여진은 순간 다리가 후들거려 데스크 난간을 붙잡았다.그때 여진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단 한 사람이 있었다.이젠 괘씸하기까지 한 차준석이었다.저에게 일언반구 말도 없이 엄마를 이 병원에 데리고 온 사람에게 여진은 단단히 따지기로 마음먹었다.몸을 바로 한 여진은 데스크를 벗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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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화.

85화.정말 그의 말처럼 로비에 있는 사람들이 흥분해 있는 그녀를 구경하듯 힐끗거리며 지나갔다.“준석 씨! 설마 날 감시하는 거예요?”여진은 화가 난 얼굴로 물었다.- 감시?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그런 것도 부부일 때나 하는 거지. 뒤돌아봐, 당신 뒤에 누가 있는지.여진은 준석의 말에 몸을 완전히 뒤로 돌렸다.“…!”그녀의 뒤편에는 병원 2층에서 1층으로 내려오는 기다란 에스컬레이터가 있었다.에스컬레이터를 탄 준석이 핸드폰을 귀에 댄 채 여진을 뚫어져라 바라봤다.여진은 준석을 발견하고 순간 놀랐으나, 그것도 잠시였다.그녀는 그를 향해 망설임 없이 성난 발걸음을 옮겼다.준석은 저를 향해 빠르게 다가오는 여자를 보며 핸드폰을 재킷 주머니에 넣었다.1층에 도착한 준석은 에스컬레이터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서 여진을 기다렸다.어떻게 알고 여기까지 왔는지 모르지만, 언젠가는 알게 될 일이라 놀랍지는 않았다.다만, 여진이 별아 없이 혼자 이곳에 왔다는 사실이었다.별아는 어디에다 두고 저리 성난 토끼처럼 다가오는 것인지.그때, 여진의 뒤로 낯익은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뭐야, 윤여진. 저 자식이랑 여길 같이 온 거였어?”야구모자를 벗었다고 해서 못 알아볼 얼굴이 아니었다.여진의 뒤를 따르는 남자는 택배 기사, 남이준이었다.준석은 여진을 거의 따라잡은 이준을 보며 그녀를 향해 재빨리 몸을 움직였다.택배 기사보다는 자신이 더 빨라야 했다. 한데 저보다 남이준의 몸이 더 빨랐다.준석은 전략을 바꿔 자리에 선 채로 입만 열어 제 여자를 불렀다.“여진아.”그 소리에 오히려 여진은 반응이 없었으나, 그녀의 뒤를 바짝 붙어오던 이준의 발걸음이 우뚝 멈춰 섰다.위엄이 가득한 준석의 눈동자와 당황한 이준의 눈동자가 여진을 사이에 두고 정면에서 부딪혔다.이준은 더는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그렇지 않아도 여진을 따라가며 건너편에 있는 남자가 눈에 들왔었다.긴가민가했으나 가까이에서 보니 확실했다.지나치게 잘 생겨 쉽게 잊힐 얼굴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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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화.

86화.“알고 봤더니 장모님이 요양병원 생활에 불만이 많으셨더라고. 난 최적화된 환경에서 지내실 수 있도록 도운 것뿐이야. 납치가 아니라.”준석은 일부러 납치가 아니라는 말을 강조했다.그는 경악에 가까운 표정을 짓고 있는 여진을 보며 말을 이었다.“아까도 말했지만, 난 장모님을 뵌 적이 없어. 모든 일 처리는 병원 사무처장이 알아서 한 일이고.”“사무처장이 당신 허락도 없이 진행했을 리가 없잖아요!”맞는 말이었다.이 모든 것은 그가 사무처장에게 지시했었다.그가 몰랐으면 몰랐을까 여진의 상황을 안 이상 가만히 있고 싶지는 않았다.장인어른과 형님은 쉽게 해결될 사안이 아니었으나, 장모님은 달랐다.“전신마비 환자의 치료를 돕는 국내 최대 로봇 재활 센터가 가까이 있는데, 장모님을 모셔 오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 난 오히려 당신이 고마워할 줄 알았는데, 의외군.”“뭐, 뭐라고요?”“그리고 면회 거절은 나도 별 방법이 없었어. 장모님이 강력하게 원했다고 하던데. 당신을 만나고 싶지 않다고 말이야.”“그, 그럴 리가 없어요! 요양병원에 계실 때만 해도 날 만났단 말이에요!”“여진아.”준석은 사색으로 변해가는 여진의 얼굴을 보며 그녀의 양어깨를 잡았다.여진은 혼란스러운 상황이라 그의 손을 뿌리치지 못했다.곧 눈물을 쏟을 것 같은 여자의 얼굴이 그의 눈동자를 가득 채웠다.“장모님을 위해서 어느 병원이 좋을지 이성적으로 생각해. 나도 처음엔 장모님이 당신한테 병원 옮기는 것을 알리지 말라고 하고, 면회도 거절했다고 해서 의아해했었는데, 오늘 당신을 보니 알겠어.”“그, 그게 무슨 말이죠?”초조함으로 파르르 떨리는 여진의 어깨가 준석의 손에 그대로 느껴졌다.“장모님은 당신이 이렇게 반응할 걸 알고 계셨던 거지. 병원을 옮기기 전에 당신한테 말했다면, 당신은 과연 장모님을 이 병원으로 옮겼을까?”“…!”“우리 병원 VIP실은 제일 저렴한 곳이, 요양병원의 한 달 입원비보다 세 배나 비싸.”“…!”“장모님은 당신이 그걸 감당할 능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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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화.

87화.그가 눈동자를 고정한 채 이준을 향해 입을 열었다.“애 엄마에 거적때기를 입고 다녀도 남자 새X들이 꼬이니, 참 기분이 더럽군. 밥줄을 단단히 끊어 놔야 정신차리고 떨어지려나.”“…!”준석의 말은 곧, 내 여자에게 신경끄라는.그렇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전 남편의 경고이자 위협이었다.이준은 그 위협에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치며 여진을 향했던 몸을 완전히 돌렸다.그가 지금 여진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이준은 이유 모를 패배감에 눌린 채 병원 출입구를 향해 도망치듯 달려 나갔다.준석의 매서운 눈동자가 이준의 뒤를 끝까지 따라붙었다.그의 시야에서 이준이 완전히 사라졌을 때, 그가 다시 여진에게 물었다.“별아, 지금 어딨어. 누구한테 맡겼지?”간신히 감정을 추스른 여진이 입을 열었다.“하아…, 희주한테요.”***끼익.검은색 세단이 희주의 공방 앞에 정차했다.“별아 데리고 나와. 여기서 기다릴 테니.”준석이 보조석에 앉아 있는 여진에게 말했다.“….”깊은 상념에 빠진 사람처럼 여진은 대답이 없었다.그런 여진을 보며 준석이 속으로 한숨을 삼키고 다시 입을 열었다.“여진아.”그 부름에 여진이 멍한 눈으로 준석을 바라봤다.“…왜요?”“별아, 찾아야지.”“아, 그래야죠….”여진은 그제야 자신이 공방 앞에 와 있다는 것을 인지했다.딸깍, 소리와 함께 문이 힘없이 열렸다.공방을 향해 걸어가는 여진의 발걸음이 느릿느릿해 속도가 나지 않았다.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준석은 착잡한 표정으로 차에서 내렸다.“세상이 다 무너진 것 같은 얼굴이네.”여진은 마치 엄마가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진 사람처럼 행동했다.그녀의 엄마는 지금, 아무나 누릴 수 없는 호사를 누리는 중인데도 말이다.병원을 나서기 전, 무너져 내릴 것 같은 여진을 데리고 준석은 일부러 병원장을 만났었다.‘걱정하지 마세요. 해외에서도 우리 병원을 찾는 환자들이 아주 많습니다. 꾸준히 재활 치료받으시면 어머님의 마비 증상이 눈에 띄게 호
last updateÚltima actualización : 2026-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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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화.

88화.“괜찮아, 별아야. 엄마야, 엄마.”여진이 별아를 바로 안아 등을 토닥였다.그 모습을 보며 희주가 혼이 빠진 얼굴로 말했다.“별아 운 지는 얼마 안 됐어. 아무래도 배고픈 거 같아.”“미안, 내가 너무 늦었지? 정말 미안해, 희주야.”“나야 뭐. 별아가 울어서 그렇지. 방에 들어가서 수유할래?”“그럴게, 고마워.”여진은 별아의 등을 계속 토닥이며 공방 안쪽에 있는 방으로 향했다.그곳은 희주가 작업하면서 쉬는 방이었다.“근데 여진아, 어머니한테 무슨 일 있었어? 너 얼굴이 많이 안 좋아 보여서….”방문을 열어주며 희주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응, 일이 좀 있었어.”“일이라니. 얼마나 안 좋은 일이야?”“나중에… 나중에 설명할게.”“흐음, 그래. 지금은 별아 먼저 챙겨. 수유하면서 너도 좀 쉬고.”“응, 고마워.”희주는 여진을 안쓰럽게 바라보다 방문을 닫고 나갔다.여진은 문을 등지고 놓인 소파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러곤 곧장 별아에게 젖을 물렸다.공방이 떠나가게 울어대던 아이는 엄마 젖을 물더니, 금세 울음을 뚝 그쳤다.별아는 있는 힘껏 울어서인지 양쪽 눈가가 울긋불긋 변해 있었다.“미안해, 별아야. 엄마가… 늦었어.”여진이 저를 닮아 갈색 머리칼을 가진 별아의 머리를 부드럽게 쓸며 말했다.별아는 꽤 서럽게 울었었는지 젖을 빨면서도 히끅, 거리며 울음소리를 냈다.여진은 별아의 반응에 순간 울컥하며 서글픔이 몰려왔다.그녀의 눈가에 삽시간에 물기가 차올랐다.뚝, 뚝, 뚝.엄마에게 외면당한 여자의 눈물이 별아의 얼굴 위로 떨어졌다.“흐흑. 미, 미안해…, 별아야. 엄마가 울어서 미안.”그렇게 한참을 소리 죽이며 울고 있을 때였다.벌컥, 하며 방문이 열렸다.여진은 희주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희주야, 나 아직 수유 중.”“….”희주는 대답이 없었다.대답 대신 탁, 하는 문 닫는 소리만 들렸다.의아하게 여긴 여진이 그제야 문 쪽으로 고개를
last updateÚltima actualización : 2026-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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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화.

89화.“새삼스럽게, 나 바쁜 사람이야. 그래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시간을 줄이려고.”“그게, 무슨 말이에요?”“당분간 이천에서 지낼 거야.”“네? 여기서 지낸다고요?”“그런 눈으로 보지 마. 집에서 일할 일은 없어. 지금 재활 병원에 정 비서도 입원해 있거든.”“정 비서님이요?”여진은 처음 듣는 소리에 놀라 되물었다.생각해 보니 준석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던 정 비서가 전혀 보이지 않았었다.1년 만에 준석을 만났다는 사실만으로도 정신이 없었던 여진이었다.정 비서까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얼마 전에 교통사고가 있었어. 정 비서는 병원에서 재활 치료 중이고.”“세상에! 많이 다쳤나요?”정 비서는 준석의 동생이기도 했다.여진은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말에 걱정이 되었다.“몇 주 입원하면 돼. 걱정할 정도는 아니야.”다행이었다.그래도 정 비시와 여진은 오랫동안 알고 지냈던 사이였고, 한때는 시동생이었다.아픈 것보다는 건강하길 바랐다.“정 비서도 입원해 있고 해서, 병원 사무실에서 당분간 일할 생각이야.”“병원 사무실이요?”“그래. 거기서 일하면서 장모님 소식도 내가 종종 전하지.”“…준석 씨.”여진은 엄마의 소식을 전하겠다는 준석의 말에 순간 서운한 감정은 사라지고 고마움이 자리했다.준석은 경계를 푼 여진의 얼굴을 향해 손을 내렸다.이윽고 그녀의 짓무른 눈가를 살살 어루만졌다.“그러니까, 이제 장모님 일로 더는 울지 마.”***같은 시각. VIP 병실.성훈은 핸드폰에 도착한 메시지를 확인했다.[친자 검사에 필요한 검체 확보. 기관에 의뢰할까요?]그가 고민없이 빠르게 메시지에 답했다.[신속하고 정확한 기관에 의뢰하세요. 연락 기다리겠습니다.]메시지를 보내놓고도 그는 핸드폰에서 한참동안 시선을 떼지 못했다.성훈은 새까맣게 점멸된 핸드폰 액정을 확신 없는 표정으로 바라봤다.검은색 화면에 불투명한 그의 얼굴이 그대로 반영되었다.별아의 유전자 검사. 과연 잘한 행동일까.성훈은 흔들리는 제 표정을 더는 마주하고 싶
last updateÚltima actualización : 2026-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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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화.

90화.“겸손하기도 하시지. 서울에서 여기까지 오시느라 수고가 많으셨죠?”“지난번에는 이장님이 서울에 오셨으니, 오늘은 당연히 제가 와야죠.”두 사람은 며칠 전 서울에서 만난 적이 있었다.“이장님, 이거 받으세요.”남자가 손에 든 선물을 건넸다.“이게, 뭔가요?”“녹용입니다. 넉넉하게 사 왔으니, 이장님이 어르신들 챙겨주세요.”“세상에! 이렇게 고마울 때가! 나는 우리 대배우님이 그런 일 당했을 때 안타깝더라고. 십 년도 넘게 지난 일인데다, 어차피 피해자 부모랑 합의도 다 본 일이었잖아요. 어딜 봐서 이 얼굴이 그런 못된 짓을 할 얼굴이냔 말이야. 이 시골에 사는 어르신들까지 살뜰하게 챙기는데 말이지.”이장은 만면에 화색을 띠며 선물을 냉큼 받았다. 그러면서 남자의 허물마저 덮고 치켜세웠다.“아, 네. 철없던 시절 일이었는데…. 그래도 이젠 어른이니 늦게라도 책임, 져야죠.”남자의 말에 이장은 감동한 얼굴을 하더니, 그의 손을 덥석 잡았다.“이런 바른 청년이 있나요. 문율 씨, 관상은 거짓말을 안 하잖아요. 세상 착하게 생긴 사람이 그런 모진 일을 당하고 고생 많았죠?”“아닙니다.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살아야 하는 공인인데…. 제 불찰이 크죠.”“내가 동네방네 소문 다 낼 테니 걱정하지 말아요. 우리 대배우님이 이렇게 좋은 사람이라는 걸 사람들이 알아야지, 암.”“감사합니다, 이장님. 그런데 며칠 전에 후원한 금액은 어떻게 잘 전달됐을까요?”문율은 세상에서 가장 착한 사람의 얼굴로 물었다.“어르신들한테는 다 전달했고, 남은 돈으로 이렇게 잔치를 벌였지요. 아이들한테는 문율 씨가 직접 전달한다고 해서 며칠 전에 동네 사람들한테 다 말해 놓은 상태예요.”“부탁드린 데로 제 이름은 말씀 안 하셨죠?”“그럼요! 젊은 사람들은 우리랑 달라서 의심이 많거든. 유명한 기부 천사랑 이장인 내가 같이 집마다 방문해서 전달할 거라고 잘 말했어요.”“사실 제가 어렸을 때 진짜 가난했었거든요. 배우 활동하면서도 여기저기 기부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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