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에게 진실인 일이, 내게는 어째서 배신이 되는 것이오?”창호 밖의 이겸은 곧장 대답하지 않았다.저녁빛이 걷힌 얼굴은 어둠 속에 반쯤 묻혔고,연화의 손에서는 붉은 천이 더는 구겨질 자리 없이 말려 있었다.“그대가 닫은 문과 초희가 연 문을 한데 묶기 때문이오.”“그대에게는 모두 서로 상관없는 일이오?”“문을 연 사람도, 그때의 뜻도 저마다 다르오.”“그러니 어느 문을 넘든 다른 문에는 빚이 없다는 말이구려.”“없는 빚을 있다고 말하지 않겠소.”연화는 창호를 닫았다.창호짝이 맞물린 뒤에도 그의 발소리는 한동안 들리지 않았으나,밤이 깊기 전 골목 끝으로 멀어졌다.그녀는 식은 밥상을 물리지 않은 채 물주전자를 기울였고,잔이 넘쳐 상 아래로 흐른 뒤에야 손을 멈췄다.넘친 물이 치맛자락 가까이 번졌으나 닦지 않은 채 닫힌 창호의 가는 틈만 바라보았다.이튿날 약초를 말리는 마당에는 쑥과 당귀 냄새가 햇볕에 짙어져 있었다.매향은 묶어 둔 뿌리를 길이대로 나누었고,옥련은 주막에 쓸 말린 귤껍질을 받으러 와 바구니를 내려놓았다.연화가 약초 위에 덮어 두었던 베를 걷어 접자 옥련은 술독 마개 안쪽에 비녀 끝으로 짧은 금 하나를 냈다.“문을 연 밤이라도 새겨 두면 누가 먼저였는지는 잊지 않겠지.”“밤을 세기 시작하면 허락이 차례가 되오.”매향이 부러진 뿌리를 따로 놓자 옥련은 짧게 웃었다.“차례가 없으니 먼저 연 사람만 우스워지는 것 아니오?”월선은 옥련의 손에서 마개를 받아 뒤집어 놓았다.새긴 금은 바닥을 향해 보이지 않게 되었다.“밤을 새긴 금이 차례가 되는 순간, 댕기는 허락이 아니네.”옥련은 다시 웃으며 마개를 되찾았다.웃음은 가벼웠으나 비녀 끝은 아까보다 깊이 파고들었고,보이지 않는 자리에 금 한 줄이 더 선명해졌다.마당 밖을 지나던 이겸은 그 말을 듣고 걸음을 늦췄다.연화와 눈이 마주친 뒤에도 시선을 거두지 않았고,연화가 먼저 베 끝으로 고개를 숙이자 손아래에서 펴 놓았던 주름 하나가 다시 접혔다.해가 기울
Last Updated : 2026-07-27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