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과부촌의 밤도깨비: Chapter 1 - Chapter 10

141 Chapters

1화

비가 사흘째 쏟아지던 저녁, 망월촌 어귀에 사내 하나가 들어섰다.문제는 그가 잘생겨서가 아니었다. 여자들을 보는 눈이 너무 노골적이었다.젖은 도포가 어깨와 허리에 달라붙은 채 이겸은 마을 한복판에 멈춰 섰다. 장작을 걷던 난실이 손을 놓쳤고, 약초를 나르던 매향은 광주리를 발등에 떨어뜨렸다.윤옥련이 먼저 웃었다.“여긴 과부촌이오. 길 잘못 들었으면 지금 돌아가시오.”이겸이 천천히 그녀를 훑었다.“길은 안 잃었소.”“그럼 뭘 찾으러 왔는데?”“문 열어 줄 여자.”난실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미친놈이네.”그때 골목 끝에서 홑청을 걷던 한연화가 고개를 들었다.이겸의 시선이 그대로 멎었다.연화는 상복 차림이었다. 남편을 묻은 지 반년도 지나지 않은 여자. 망월촌에서도 누구 하나 함부로 농을 걸지 못하는 여자였다.그런데 이겸은 눈을 떼지 않았다.연화가 먼저 쏘아붙였다. “뭘 보시오?”“사람.”“처음 보오?”“저런 얼굴은.”주변에서 숨죽인 웃음이 터졌다.연화의 얼굴이 굳었다. “개수작 부리러 왔으면 다른 집 알아보시오.”“다른 집은 이미 보고 있소.”그 말에 옥련이 피식 웃었다. “말은 잘하네. 밤에도 그런가?”그녀는 주막 안으로 들어갔다가 붉은 댕기 하나를 들고 나왔다.망월촌에서 붉은 댕기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었다. 오늘 밤, 이 문은 열릴 수 있다는 뜻이었다.옥련이 그것을 문고리에 걸었다.툭.마을 여자들의 눈이 이겸에게 몰렸다.“들어올 테요?”그런데 이겸은 움직이지 않았다.옥련의 미간이 좁아졌다. “겁먹었소?”“문이 안 열렸소.”“댕기 걸린 거 안 보이오?”“댕기와 문은 다르지.”월선이 그 말을 듣고 처음으로 이겸을 똑바로 보았다.옥련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문을 반쯤 열었다.“이제 됐소?”이겸이 문 앞까지 갔다. 그러고도 문턱에서 멈췄다.“왜 또.”이겸이 옥련의 저고리 고름을 내려다봤다. “내가 풀어도 되오?”옥련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이런 데까지 와서 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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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옥련의 시선이 연화의 검지에 감긴 붉은 실에 꽂혔다.“그걸 왜 아직 쥐고 있소?”연화는 뒤늦게 손을 움켜쥐었다. “비에 떠내려갈까 거둔 것뿐이오.”“거둔 것치고는 참 애틋하네.”옥련은 밤새 풀어 두었던 머리카락을 한쪽 어깨로 넘겼다. 손목에는 어젯밤 걸었던 붉은 댕기가 아직 감겨 있었다.연화의 눈이 거기에 잠깐 머물렀다.옥련이 놓치지 않았다. “왜. 이게 부럽소?”“헛소리 마시오.”“그럼 내 손목 말고 내 얼굴을 봐.”연화가 문을 닫으려 하자 옥련이 낮게 웃었다.“남의 문 닫히는 소리는 밤새 듣더니 제 문은 잘도 닫네.”쾅.연화는 그대로 빗장을 질렀다.아궁이 앞에 앉아 붉은 실을 함 밑바닥에 처박았지만 손끝이 자꾸 떨렸다. 옥련의 웃음도, 주막 창호 너머에서 한 번씩 끊겼던 숨소리도 귀에서 떨어지지 않았다.“미친년.”누구를 향한 욕인지 연화 자신도 알 수 없었다.동이 틀 무렵 우물가로 나가자 더 미친 광경이 기다리고 있었다.이겸이 먼저 와 있었다.느슨하게 여민 옷깃 아래로 붉은 자국 하나가 반쯤 드러나 있었다.연화는 보지 않은 척 물동이를 내려놓았다. “비키시오.”“내가 길을 막았소?”“그 덩치로 우물턱을 처막고 있으면 막은 거지.”이겸이 웃지도 않고 한 걸음 비켰다.그런데 연화가 두레박줄을 잡는 순간 소매 끝에서 붉은 실밥 하나가 떨어졌다.이겸의 시선이 내려갔다. “버렸다더니.”“돌려주려던 참이오.”“내 것이 아니라 했는데.”연화가 고개를 들었다. “그럼 왜 내 문 앞에 던져 두었소?”“그대가 주울 것 같았으니까.”“재수 없는 사내.”“그런데도 주웠소.”연화가 두레박을 거칠게 잡아당겼다. 물이 우물턱을 넘어 치맛자락을 적셨다.그때 주막 문이 열렸다.옥련이었다.그녀는 이겸에게 다가가 옷깃을 바로잡으려 손을 뻗었다. 이겸이 반걸음 물러났다.옥련의 손이 허공에서 멎었다.“밤에는 내 손 잘도 받더니.”“해가 떴소.”“해가 뜨면 정말 남이야?”“그대가 정한 법도 아니었소?”옥련의 입꼬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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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이 미친년이.”옥련의 욕이 골목을 갈랐다.연화는 문고리에 붉은 실을 건 채 손을 떼지 않았다. 난실도, 옥련도 그녀를 보고 있었다.이겸만 움직이지 않았다.“오늘 밤 오고 싶으면 와 보시오.”옥련이 헛웃음을 쳤다. “남의 방에서 나온 사내를 밤새 훔쳐 듣더니 이제는 문까지 여네?”“닥치시오.”“왜? 맞는 말이라 배가 아프오?”연화가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내 문을 내가 여는데 그대 허락까지 받아야 하오?”옥련이 이겸을 턱짓했다. “내 허락은 필요 없지. 저 사내가 들어가 줄지는 모르겠지만.”모두의 시선이 이겸에게 쏠렸다.그가 연화 앞으로 걸어왔다. 붉은 실이 걸린 문고리 앞에서 멈췄다.“왜 걸었소?”“오라 했잖소.”“나를 원해서 걸었소, 저 여자들에게 지기 싫어서 걸었소?”연화의 입술이 굳었다.“무슨 차이요?”“내게는 크오.”“사내 하나가 참 유세도 떠네.”“그럼 걷으시오.”연화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옥련이 웃음을 터뜨렸다. 난실은 웃지 않았다.연화가 낮게 물었다. “내 문을 거절하는 것이오?”“그대가 나를 부른 게 아니니까.”“내 입으로 오라고 했소.”“질투가 대신 말했지.”짝.연화의 손이 먼저 나갔다.골목이 얼어붙었다. 이겸의 뺨이 한쪽으로 돌아갔다.이겸은 천천히 고개를 바로 했다.“이제 좀 그대답네.”“미친놈.”연화가 붉은 실을 잡아 뜯었다. “꺼지시오.”실이 끊어져 진흙 위로 떨어졌다.그날 밤, 어느 집 문에도 그를 들이지 않았다.하지만 다음 날 해가 기울자 난실이 대장간 문고리에 붉은 댕기를 걸었다.옥련은 주막 창문을 열었다. 연화는 대문 안에서 낫 손잡이에 새 끈을 감았지만 매듭은 자꾸 풀렸다.그때 이겸의 발소리가 골목을 지나갔다.연화의 손이 멎었다.발소리는 그녀의 집 앞을 지나 대장간 앞에서 멎었다.“빌어먹을.”자기도 모르게 욕이 튀어나왔다.창호에 비친 그림자만으로도 상황이 보였다.난실이 문 안쪽에서 말했다.“어젯밤에는 내게 오라 했는데 안 왔소.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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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가지 마.”연화의 입에서 떨어진 두 글자가 골목을 얼렸다.난실의 손은 이겸의 팔을 잡은 채 멎었고, 옥련은 주막 창틀에 기대 웃음조차 잊었다.가장 놀란 것은 연화 자신이었다.“방금 뭐라 했소?”난실이 먼저 물었다.연화는 입술을 깨물었다. “못 들었으면 됐소.”“아니. 아주 잘 들었어.”난실이 이겸의 팔을 놓고 문밖으로 나왔다.“남의 문 앞까지 쫓아와서 내 사내 가지 말라 했지?”“그대 사내가 언제부터 되었소?”“내 문 안에 들어왔으니 적어도 오늘 밤은 그렇지.”“문 하나 열었다고 사람까지 차지하오?”난실의 눈이 서늘해졌다.“그 말, 옥련 앞에서도 해 보시오.”옥련이 창문을 닫더니 곧장 골목으로 나왔다.“왜 나까지 끌어들여?”“어젯밤 네 방에 들어갔던 사내잖아.”옥련은 연화를 똑바로 보았다.“그래서 오늘 내내 저년 얼굴이 썩어 있었지.”“입 닥쳐.”“싫은데?”옥련이 다가왔다.“내 방에서 나오는 걸 봤을 때는 홑청이나 쥐어뜯더니, 난실 방에 들어가려니까 직접 뛰쳐나왔네.”연화의 얼굴이 붉어졌다.“둘 다 미쳤소.”“셋이지.”옥련이 이겸을 가리켰다.“제일 미친 건 저 사내고.”그동안 말이 없던 이겸이 연화를 보았다.“왜 가지 말라 했소?”“실수였소.”“두 번 묻지 않겠소.”연화가 고개를 들었다. “그럼 묻지 마시오.”이겸이 난실에게 몸을 돌렸다.“들어가도 되오?”연화의 손가락이 움찔했다.난실은 일부러 천천히 문을 열었다.“들어오시오.”이겸이 문턱을 넘으려는 순간.“이겸.”또 연화였다.난실이 욕을 뱉었다.“아, 씨발. 대체 어쩌자는 거야?”연화도 소리쳤다.“나도 몰라!”골목이 조용해졌다.연화의 눈가가 붉어졌다.“나도 모르겠으니까 자꾸 묻지 마시오.”이겸이 한 걸음 돌아왔다.“모르면 오늘은 아무 문에도 들어가지 않겠소.”난실의 얼굴이 굳었다.“뭐?”“그대가 싫어서가 아니오.”“그럼 저 여자 때문이오?”이겸은 대답하지 않았다.그 침묵이 대답보다 더 잔인했다.난실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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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내 이름 불렀소?”연화의 목소리가 골목을 잘랐다.옥련은 붉은 댕기를 움켜쥔 채 이겸을 봤다. 이겸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그 침묵 하나로 연화의 얼굴이 굳었다.“왜 대답을 못 해?”옥련이 비웃었다. “내 말이 맞으니까 그렇지.”“입 닥쳐.”“그럼 저 사내한테 물어. 어젯밤 내 방에서 누구 생각했는지.”연화가 이겸을 똑바로 봤다.“불렀소?”이겸이 입을 열었다. “불렀소.”연화의 손이 문고리에서 떨어졌다.옥련이 승리한 얼굴로 웃으려는 순간 이겸이 말을 이었다.“그대 이름이 아니라.”옥련의 웃음이 멎었다.“뭐?”“문밖에 누가 있는지 물었소. 옥련이 그대 이름을 먼저 꺼냈지.”연화가 옥련을 돌아봤다.옥련의 얼굴이 붉어졌다.“그게 그거지.”“아니.”이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그대가 물었소. ‘연화 생각하오?’라고.”골목이 조용해졌다.연화의 눈빛이 흔들렸다.옥련이 이를 악물었다. “그래서 아니라고 했어?”이겸은 또 잠시 침묵했다.이번에는 옥련이 먼저 웃었다. “봐. 결국 생각은 했잖아.”연화가 문을 닫으려 했다.이겸이 말했다. “문 닫기 전에 들어야 할 게 있소.”“듣기 싫소.”“그대가 내 문 앞에 서지 말라 했으니 안 섰소. 그런데 오늘은 그대가 내게 오라 했지.”“실수였소.”“세 번째 실수요.”연화가 멈췄다.옥련이 코웃음을 쳤다. “저 정도면 실수가 아니라 발정이지.”연화가 홱 돌아섰다. “뭐라 했어?”“못 들었어? 밤마다 남의 문 소리에 귀 세우고, 다른 여자한테 갈까 봐 뛰쳐나오고, 이제 제 문까지 열어 놓고도 아닌 척하잖아.”짝.이번에는 연화가 옥련의 뺨을 때렸다.옥련의 고개가 돌아갔다.주막 처마 밑에서 숨죽이고 보던 초희가 입을 틀어막았다.옥련이 천천히 고개를 바로 했다. 입술 끝이 떨렸다.“그래. 이제야 본색 나오네.”그녀가 연화의 팔을 잡으려는 순간 이겸이 둘 사이에 섰다.“손대지 마시오.”옥련이 헛웃음을 쳤다.“왜? 이제 대놓고 저년 편이야?”“싸움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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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둘이서 설명해 봐.”연화는 맨발로 골목을 내려왔다.초희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이겸은 문 앞에 선 채 움직이지 않았다.“언니, 이건 정말 그런 게 아니야.”“그런 게 뭔데?”연화가 웃었다. “내가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왜 먼저 겁을 먹어?”초희가 입술을 깨물었다.그때 주막 문이 벌컥 열렸다. 옥련이 머리를 묶지도 않은 채 뛰어나왔다.“뭐야.”뒤이어 난실도 대장간에서 나왔다.두 여자의 시선이 초희의 열린 방문과 이겸에게 동시에 꽂혔다.옥련이 헛웃음을 쳤다. “와, 이 새끼 진짜 대단하네.”난실은 더 노골적이었다. “내 문도, 옥련이 문도 버리고 결국 제일 조용한 년 방으로 들어갔어?”초희가 울컥했다. “아니라고 했잖아!”“그럼 왜 새벽에 네 방에서 나와?”“피가 났어.”골목이 조용해졌다.연화의 얼굴이 굳었다. “뭐?”초희는 떨리는 손으로 소매를 걷었다. 팔 안쪽에 길게 긁힌 상처가 있었다.“밤에 염색방 뒤쪽에 누가 들어왔어. 천을 훔치려는 줄 알고 붙잡다가 다쳤고, 이겸이 소리를 듣고 왔어.”난실이 상처를 보며 미간을 좁혔다.옥련은 곧장 물었다. “그래서 밤새 둘이 있었어?”“상처가 벌어져서 피를 막아 준 것뿐이야.”“밤새?”초희의 얼굴이 붉어졌다. “무서워서 가지 말라고 했어.”연화의 시선이 이겸에게 돌아갔다.“그래서 남았소?”“그랬소.”“내 문에는 오지 않고?”이겸의 눈이 가늘어졌다. “오지 말라 한 건 그대요.”연화가 입을 다물었다.옥련이 바로 비웃었다. “이제 와서 왜 남의 방 앞에서 지랄이야.”연화가 홱 돌아봤다. “넌 빠져.”“싫어.”옥련이 초희 쪽으로 다가섰다. “어제는 나, 오늘은 초희. 내일은 난실인가?”난실이 코웃음을 쳤다. “나는 저런 식으로는 안 받아.”“문고리에 댕기까지 걸어 놓고?”“적어도 남의 눈치 보며 숨어서 들이지는 않지.”초희가 참다못해 소리쳤다. “그만해!”모두가 그녀를 봤다.초희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왜 다들 내 방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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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망월촌에 이겸이라는 자가 있느냐!”말발굽 소리가 골목을 찢었다.관군 셋이 빗길을 밀고 들어왔다. 선두의 사내가 말에서 내리자 월선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무슨 일로 찾소?”“관아에서 찾는다.”그의 시선이 여자들 사이를 훑었다.“사람을 죽이고 달아난 놈이다.”연화만 이겸을 보았다.“사람을 죽였소?”이겸은 대답하지 않았다.그 침묵 하나로 골목이 얼어붙었다.관군이 칼자루를 잡았다. “이겸!”이겸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서려는 순간 연화가 그의 앞을 막았다.“잘못 찾아왔소.”모두가 연화를 봤다.관군이 눈을 좁혔다. “방금 저자가 이겸이라 하지 않았느냐?”“이름이 같을 뿐이오.”옥련이 어이없다는 듯 연화를 쳐다봤다.“야, 너 지금 뭐 하는—”연화가 이를 악물고 잘랐다. “닥쳐.”관군이 비웃었다. “이름도 같고 생김도 맞는다. 어젯밤 어디 있었는지만 확인하면 끝이다.”연화의 얼굴이 굳었다.“어젯밤?”“살인이 난 시각이다. 자정부터 닭 울기 전까지.”어젯밤 이겸이 초희의 방에 있었다는 걸 여기 있는 모두가 알고 있었다.그런데 연화가 먼저 입을 열었다.“내 방에 있었소.”정적이 떨어졌다.“뭐?”이번에는 난실이 물었다.연화의 손이 떨렸지만 목소리는 더 세졌다.“어젯밤 저 사내는 내 방에 있었소.”옥련이 욕을 뱉었다. “미친년아.”초희의 얼굴도 하얗게 질렸다. “언니, 어제는—”“내가 잘못 기억했어?”연화의 눈이 초희에게 박혔다.초희가 입을 다물었다.관군은 연화를 위아래로 훑었다. “증명할 수 있나?”“무슨 증명을 원하오?”“한밤중부터 새벽까지 한 방에 있었다는 걸.”연화가 잠시 멎었다.그때 옥련이 피식 웃었다. “그건 내가 증명하지.”모두가 돌아봤다.옥련은 연화를 보지도 않고 말했다.“새벽에 저 집 앞을 지났는데 남자 목소리가 났소.”난실이 옥련을 노려봤다.옥련이 낮게 말했다. “저년 꼴 보기 싫은 거랑 관아에 사내 넘기는 건 다른 일이지.”관군이 여전히 의심스러운 얼굴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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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너, 대체 누구 아들이냐?”월선의 목소리가 떨렸다.이겸은 한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연화는 그 침묵이 이상했다.“왜 묻는 것이오?”월선이 한 걸음 물러났다. “그 눈을 어디서 봤는지 이제 알겠구나.”옥련이 팔짱을 꼈다. “설마 아는 얼굴이오?”월선은 대답하지 않았다.이겸이 낮게 말했다. “이상헌.”월선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난실이 물었다. “누구요?”월선의 입술이 떨렸다. “십오 년 전 이 마을에서 죽은 사람.”정적이 내려앉았다.이겸이 월선을 똑바로 봤다. “죽었다고 했소?”“그때는 그렇게 들었네.”“거짓말.”이겸의 목소리가 차갑게 가라앉았다.“내 아버지는 죽은 게 아니라 끌려갔소.”연화가 숨을 삼켰다.“누구에게?”“관아.”월선이 눈을 감았다.이겸이 한 걸음 다가갔다. “그리고 그날 밤, 망월촌 여자 하나가 관아에 아버지 이름을 넘겼지.”모두의 시선이 월선에게 쏠렸다.옥련이 먼저 입을 열었다. “설마.”월선이 고개를 들었다. “내가 넘겼다.”연화가 굳었다.“뭐라고요?”“내가 관아에 말했다.”난실이 욕을 뱉었다. “미친.”월선은 울지도 않았다. “안 그러면 마을 여자 셋을 끌고 가겠다고 했어.”이겸의 턱이 굳었다. “그래서 아버지를 대신 줬소?”“살릴 수 있다고 믿었네.”“누굴.”“여기 남은 여자들을.”이겸이 웃었다. 웃음 같지 않았다.“내 아버지는 사람 아니었소?”월선이 입을 다물었다.그때 연화가 이겸의 팔을 잡았다.“그만.”이겸이 내려다봤다. “놓으시오.”“지금 화난 채로 더 들으면 아무것도 못 듣소.”“그대가 왜 끼어드오?”연화도 소리쳤다. “아까 내가 당신 때문에 관군 앞에서 거짓말까지 했으니까!”골목이 조용해졌다.옥련이 헛웃음을 쳤다. “결국 인정하네.”연화가 홱 돌아봤다. “뭘.”“저 사내 때문에 미쳐 가는 거.”“입 닥쳐.”“싫어. 어제는 내 방에서 나온 사내 때문에 날 때리더니, 오늘은 살인 혐의까지 덮어줘?”난실도 연화를 봤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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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이제 누가 누구를 숨기는 건지 말해 봐라.”관군의 말이 떨어지자 연화는 손에 든 종이를 구겨 버렸다.“그래. 만났소.”옥련이 숨을 삼켰다. 이겸의 얼굴도 굳었다.관군이 웃었다. “이제야 입이 열리네.”“하지만 내가 죽인 건 아니오.”“그럼 치맛단의 피는?”연화는 대답하지 않았다.월선이 낮게 말했다. “말해라. 여기서 숨기면 더 큰 죄가 된다.”연화가 이를 악물었다.“그날 밤 최만복이 내 집에 왔소.”“왜?”“내 남편 이야기를 꺼냈으니까.”골목이 조용해졌다.난실이 눈을 좁혔다. “죽은 남편?”연화가 고개를 들었다.“그 인간이 내 남편이 사고로 죽은 게 아니라고 했소.”옥련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무슨 소리야.”“광산 장부를 빼돌리다 들켰고, 입을 막으려고 죽였다고 했어.”월선의 손에서 무명천이 떨어졌다.연화가 월선을 돌아봤다. “왜 놀라시오?”월선은 입술만 떨었다.관군이 재촉했다. “그래서 최만복을 따라갔나?”“증거가 있다고 했소.”“어디로.”“산 아래 폐광.”이겸의 눈빛이 변했다.“혼자 갔소?”연화가 그를 노려봤다. “당신이 왜 묻소?”“대답하시오.”“혼자 갔어.”옥련이 욕을 뱉었다. “미친년. 밤중에 사내를 따라 폐광까지 갔다고?”“남편이 왜 죽었는지 알 수 있다는데 가만있어?”“그래서 피는!”연화가 소리쳤다.“내가 찔렀어!”정적이 골목을 덮쳤다.초희가 입을 틀어막았다.이겸이 한 걸음 다가왔다. “어디를.”“배.”“왜.”연화의 눈이 흔들렸다.“그자가 나를 덮치려 했으니까.”이겸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관군은 오히려 비웃었다. “죽일 만했네.”이겸이 그를 돌아봤다.“한 번만 더 그 입 놀리면 그때는 정말 사람 하나 죽일 것이오.”칼이 일제히 뽑혔다.연화가 이겸 앞을 막았다. “미쳤소? 지금 누구 편을 드는 거야!”“그대 편.”“누가 들어 달랬어?”“안 들어도 들 거요.”“그래서 또 내 대신 잡혀가려고?”이겸은 대답하지 않았다.그 침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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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네 아버지 때처럼.”최만복의 말이 떨어지자 월선의 얼굴이 무너졌다.이겸이 한 걸음 앞으로 나갔다. “똑바로 말해.”최만복은 피 묻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네 아버지 이상헌. 저 여자가 관아에 넘겼지.”“이미 들었소.”“그게 전부인 줄 아나?”월선이 소리쳤다. “입 닥쳐!”최만복이 비웃었다. “왜. 네가 직접 문서에 도장 찍은 것까지 말하면 곤란해?”연화가 월선을 돌아봤다. “도장?”월선의 입술이 떨렸다.이겸은 그녀 앞으로 다가섰다. “무슨 문서요.”“그때는 방법이 없었네.”“무슨 문서였냐고 물었소.”월선이 끝내 고개를 들었다. “이상헌이 광산 물건을 빼돌린 역적이라는 진술서.”이겸의 눈빛이 얼어붙었다.“아버지가 그런 짓을 했소?”“아니.”한마디였다.이겸의 주먹이 움켜쥐어졌다. “그럼 거짓말에 도장을 찍었소?”“마을을 살리려고!”월선의 절규가 골목을 울렸다.“그날 관아 놈들이 여자 셋을 끌고 가겠다고 했어. 어린애까지 있었어. 한 사람만 넘기면 끝내겠다고 했다고!”이겸이 웃었다. 웃음 같지 않았다.“그래서 아버지를 골랐군.”“내가 고른 게 아니야!”“도장은 그대 손으로 찍었잖아!”연화가 이겸의 팔을 붙잡았다. “그만.”“놓으시오.”“지금 월선을 죽일 얼굴이오.”“죽이고 싶은 건 맞소.”월선은 피하지 않았다.“그래. 죽여.”연화가 홱 돌아봤다. “무슨 소리요!”월선은 이겸만 보았다. “네 아버지 인생을 내가 망쳤다. 네가 칼을 들이대도 할 말 없어.”그 순간 최만복이 박수를 쳤다.짝. 짝.“아주 눈물겹네.”난실이 욕을 뱉었다. “저 새끼 입부터 막으면 안 돼?”최만복이 그녀를 보며 웃었다. “왜. 다음은 네 얘기일까 봐 겁나?”난실의 얼굴이 굳었다.옥련이 눈을 좁혔다. “뭘 알고 있는데.”“이 마을 과부들 남편이 다 운 나쁘게 죽은 줄 알아?”모두가 조용해졌다.연화가 천천히 돌아섰다.최만복이 그녀를 가리켰다. “특히 너.”“내 남편 얘기 함부로 하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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