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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담다》全部章節:第 71 章 - 第 80 章

98 章節

71

학회 종료 후, 오후 일정이 마무리되자, 학회 운영위원 중 한 명이 조용히 다가왔다.“유 교수님, 내년에도 국제 세션을 확대할 예정입니다. 지속적으로 협업 가능하실까요?”공식적인 제안이었다.유봄은 미소 지으며 명함을 건넸다.첫날 일정은 성공적으로 끝났다.컨벤션센터 밖으로 나오자 서울의 저녁 공기가 서늘하게 감돌았다.그녀는 잠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뉴욕은 아직 새벽일 시간.하지만 오늘 하루는, 그에게 가장 먼저 전하고 싶었다.자신이 잘 해냈다고.학회장 건물을 나서며 유봄은 잠시 멈춰 섰다.서울의 저녁 공기가 뺨을 스쳤다.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내 강민재에게 메시지를 보내려는 순간이었다.“유봄?”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고개를 돌리자, 대학 시절 선배였던 남자가 웃으며 다가오고 있었다. 외과 레지던트 시절 몇 번 마주쳤고, 이진성과도 가까웠던 인물이었다.“와, 오늘 발표 진짜 인상적이더라.”그는 자연스럽게 말을 이었다.“이진성 이놈, 여자친구 때문에 어깨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겠는데?”순간, 유봄의 표정이 굳었다.여자친구?그 단어가 귀를 때렸다.분명 몇 달 전, 유지원과 결혼을 한다고 들었다.그리고 자신과는 이미 오래전에 끝난 인연이었다.그런데 왜 아직도, 왜 이런 자리에서조차 자신이 그의 ‘여자친구’로 거론되는 걸까.그때였다.“유 선생!”뒤에서 또렷한 목소리가 들렸다.학회 운영위원을 맡은 중견 교수가 손을 들어 그녀를 찾고 있었다. 주변에는 몇몇 교수들과 기자로 보이는 인사들도 함께 서 있었다.유봄은 짧게 숨을 고르고 표정을 정리했다.“죄송해요, 선배. 나중에 또 뵐게요.”급히 인사를 건넨 뒤 교수 쪽으로 걸어갔다.방금 전까지의 미묘한 감정은 얼굴에서 지워냈다.대신 단정하고 차분한 표정이 자리 잡았다.“유 교수, 오늘 발표 정말 좋았어요.”교수가 악수를 청했다.“기자분들이 잠깐 인터뷰를 원하시는데 괜찮겠습니까?”“네, 괜찮습니다.”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대화 속에서, 조금 전의 불쾌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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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회 둘째 날 저녁.서울의 조용한 한정식당 별실에서 유철중과 강두수는 마주 앉아 있었다.오래 알고 지낸 사이답게 말투는 편했다.“요즘 우리 손녀가 한국 들어와 있다네.”유철중이 은근히 자랑을 섞어 말했다.“알고 있네. 기사 봤어.”강두수가 잔을 내려놓으며 웃었다.“자네 손녀, 미국에서 이름 꽤 날리던데.”유철중의 어깨가 으쓱 올라갔다.“오늘 일정 끝났다길래 잠깐 오라 했어. 얼굴이나 보게.”잠시 후 문이 열리고 유봄이 들어섰다.단정한 차림, 또렷한 눈빛.“할아버지.”“그래, 이리 와. 할애비 친구 강 회장이야.”유봄은 공손히 인사했다.“처음 뵙겠습니다.”강두수는 천천히 그녀를 바라봤다.사진이나 기사로 본 것보다 훨씬 더 단정하고 기품 있었다.눈빛은 맑았고, 태도는 흔들림이 없었다.‘이렇게 예쁘고 반듯한 애를…’속으로 혀를 찼다.‘저런 애를 우리 집 며느리로 들이면 얼마나 좋겠나.’순간 손주 생각이 났다.여자가 있다던 그놈.괜히 속이 부글거렸다.‘대체 어떤 여자길래… 이런 아이를 두고.’괘씸했다.괜히 화도 났다.겉으로는 태연하게 말했다.“이야기 많이 들었어. 젊은데 대단하네.”유봄은 차분히 웃으며 대답했다.“과찬이세요.”강두수는 유철중을 힐끗 보며 말했다.“자네 복이 많아.”유철중이 웃었다.“나도 그렇게 생각하네.”강두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민재 그놈… 눈은 있는 놈이겠지.’괜히 손주가 더 괘씸해진 밤이었다.서울의 밤공기가 차 안을 눌렀다.유철중과 헤어진 뒤, 강두수는 뒷좌석에 몸을 기대고 창밖을 한참 바라보다가 휴대전화를 들었다.참다 참다 결국 버튼을 눌렀다.한국 밤 9시.뉴욕은 아침 8시 무렵.한창 출근 준비를 하던 강민재는 넥타이를 고쳐 매다 말고 화면을 확인했다.“할아버지?”전화를 받자마자 강두수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야, 이놈아!”강민재는 순간 멈칫했다.“왜 그러세요?”“여자친구 있다며?”“……네?”“있다면서 왜 인사가 이 모양이야! 내가 남이냐?”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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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이 조금 지난 무렵, 이진성의 대학 동기인 박성우가 병원으로 불쑥 찾아왔다.진료가 잠시 비는 틈을 타 원장실 문을 열고 들어오더니, 의자에 털썩 앉으며 다짜고짜 말했다.“야, 너 진짜 뭐냐.”이진성이 서류에서 눈을 들었다.“왜.”성우는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니 여친. 진짜 미쳤더라.”이진성의 손이 멈췄다.“학회 갔다가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발표하는데 분위기 장악하는 거 봤냐? 얼굴은 예전보다 더 예뻐졌고, 실력은 뭐 말할 것도 없고. 다들 웅성웅성 난리였어.”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야, 너 진짜 복 터졌다. 솔직히 부럽다. 인정.”그 순간, 노크 소리가 났다.“들어오세요.”문이 열리며 심혜진이 커피 두 잔을 들고 들어왔다.“원장님, 커피”말끝이 흐려졌다.“…니 여친.”“…예전보다 더 예뻐졌고.”“…부럽다.”짧은 문장들이 귀에 정확히 꽂혔다.심혜진의 손이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 커피잔이 접시에 닿으며 작은 소리가 났다.“여기… 커피요.”그녀는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컵을 내려놓았다.이진성은 친구를 한 번, 심혜진을 한 번 바라봤다.“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짧게 말했지만 부정의 느낌은 애매했다.심혜진은 고개를 숙였다.“그럼 저는 나가보겠습니다.”문을 닫고 나오는 순간, 심장이 괜히 세게 뛰었다.‘여자친구… 있었구나.’혼자 좋아한다고 생각했지만, 확실한 말로 들으니 마음 한쪽이 조용히 내려앉았다.원장실 안에서는 성우가 히죽 웃으며 속삭였다.“야, 근데 진짜 조심해라. 그런 여자, 가만 안 둔다. 다들 노리고 있더라.”이진성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창밖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복잡했다.이진성은 며칠 전, 지인을 통해 유봄이 한국 학회에 참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지만, 그는 아무렇지 않은 척 고개만 끄덕였다.개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병원은 이제 막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입소문이 퍼지면서 예약 환자가 꽉 차 있었고, 하루라도 자리를 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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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성의 시선이 잠시 멈췄다.한 걸음 내딛으려던 순간 유봄의 시선이 그를 스치듯 지나쳤다.그녀의 눈이 향한 곳은, 그보다 더 멀리.로비 한가운데, 등을 보이고 서 있는 한 남자.검은 코트 차림, 단정한 어깨선, 길게 뻗은 다리.휴대폰을 내려놓으며 고개를 드는 순간 유봄의 얼굴이 순식간에 환해졌다.학회 내내 보여주던 단정한 미소가 아니라, 완전히 다른, 숨김없는 웃음.사람들 시선 따위는 신경 쓰지 않은 채 그녀가 먼저 달려갔다.구두 굽 소리가 로비 바닥에 또각또각 울렸다.그리고 그의 품 안으로 그대로 안겼다.두 팔을 그의 허리에 감고, 얼굴을 그의 가슴에 묻듯이.강민재는 놀라지도 않았다.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자연스럽게 그녀를 감싸 안았다.한 손이 유봄의 머리 뒤를 감싸 쓸어내린다.“수고했어.”낮고 다정한 목소리.유봄은 고개를 들며 웃는다.눈이 반짝이고 있었다.학회의 긴장도, 한국에서의 복잡했던 감정도 그 순간만큼은 다 풀린 얼굴.멀리서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이진성은 움직이지 못했다.강민재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그저 넓은 어깨와 단단한 뒷모습만 보일 뿐.이진성은 그 자리에 굳어 선 채 움직이지 못했다.놀람이 먼저였다.그리고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 뒤따랐다.유봄이… 저렇게 웃는 얼굴이었나.자신과 사귈 때, 그녀는 늘 차분했고 조심스러웠다.감정을 크게 드러내지 않았고, 먼저 다가오는 법도 거의 없었다.손을 잡을 때도, 항상 그가 먼저였다.포옹도, 가벼운 키스도.그녀는 받아주는 쪽이었다.그런데 지금 유봄은 망설임이 없었다.사람들 시선도, 체면도, 거리도 아무것도 고려하지 않았다.먼저 달려가 안기고,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올려다보는 눈빛엔 숨김이 없었다.이진성의 심장이 묵직하게 내려앉았다.그는 애써 기억을 더듬었다.하지만 아무리 떠올려도 저렇게 환하게, 아무 계산 없이 웃는 얼굴은 없었다.강민재의 손이 자연스럽게 유봄의 허리를 감싸 안는다.익숙한 사람처럼.놓칠 생각이 없는 사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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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너무 보고 싶었어요.”그 말은 낮았고, 깊었다.유봄의 숨이 조금씩 흐트러졌다.그녀가 먼저 그의 셔츠 깃을 잡아당겼다. 두 사람 사이의 거리가 완전히 사라졌다.입술이 닿는 순간, 이번엔 훨씬 더 오래 머물렀다.혀끝이 스치고, 숨이 뒤엉키고, 낮은 숨소리가 방 안을 채웠다.그의 손이 허리를 감싸 안으며 천천히 끌어당겼다.가운 끈이 느슨해지고, 따뜻한 체온이 더 직접적으로 닿았다.유봄의 손이 그의 등을 따라 천천히 내려갔다. 단단한 근육 위로 손끝이 미끄러지자, 강민재의 숨이 거칠어졌다. 그는 그녀를 벽 쪽으로 밀어 세웠다. 부드럽지만 분명한 힘이었다.그는 그녀를 안아 들어 침대로 옮겼다.조명이 어둡게 번지는 가운데, 두 사람의 그림자가 얽혀 흔들렸다.침대 위에 내려놓인 순간에도 두 사람의 입술은 떨어지지 않았다.강민재의 손이 그녀의 뺨을 감싸고, 천천히 엄지로 입술을 쓸었다.그 시선은 깊었고, 참는 사람의 눈이었다.“이렇게 가까이 있는데도… 아직도 믿기지가 않아요.”그의 목소리는 낮게 잠겨 있었다.유봄이 그의 셔츠 단추를 하나씩 풀었다.급하지 않게. 일부러 느리게.단추가 풀릴 때마다 그의 숨이 조금씩 무너졌다.그의 손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고, 천천히 몸을 끌어당겼다.가운이 어깨 아래로 미끄러졌다. 따뜻한 공기와 그의 시선이 동시에 피부 위로 내려앉았다.입술이 다시 내려왔다.목선, 쇄골, 그 아래로 이어지는 숨결.유봄의 손이 그의 머리카락을 감싸 쥐었다.참으려 해도 새어나오는 숨소리가 방 안을 채웠다.그는 다시 그녀에게 입을 맞췄다. 이번엔 더 천천히.혀끝이 부드럽게 닿고, 숨이 섞이고, 체온이 서로를 감쌌다.그녀의 등이 침대에 닿고, 그는 몸을 기울였다.무게가 실리지는 않았지만, 서로를 완전히 가두기엔 충분한 거리였다.손끝이 허리를 타고 내려가며 천천히 선을 그렸다.닿을 듯 말 듯 스치는 감각에 유봄의 몸이 작게 떨렸다.“괜찮아요?”“네… 괜찮아요.”그 말에 그의 숨이 거칠어졌다.그는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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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강민재는 이른 시간에 호텔을 나와 곧장 삼진건설 본사로 향했다.오랜만에 들어온 한국이었지만, 놀 시간은 없었다.회의실에는 이미 임원들이 모여 있었고, 테이블 위에는 미국 프로젝트 자료가 빼곡히 펼쳐져 있었다.허드슨강 인근 개발 사업 브리핑, 뉴욕 현지 법인 보고, 자금 집행 계획, 한국 파트너사 일정 조율까지.그는 차분하지만 단호한 어조로 하나씩 정리해 나갔다.“미국 건은 일정 지연 없이 진행합니다. 현지 설계 변경안은 이번 주 안으로 확정하고요. 한국 본사 지원은 최소화하되, 리스크 관리는 제가 직접 보겠습니다.”오랜만에 보는 본사 직원들은 그가 해외에 나가 있는 동안 더 단단해졌다는 걸 느꼈다.사적인 감정은 완전히 지운 얼굴.일 앞에서는 철저한 대표였다.회의가 끝난 뒤에도 그는 쉬지 않았다.전화 몇 통, 서류 결재, 해외 화상회의까지.그 바쁜 틈 사이에서도 문득문득 유봄의 얼굴이 떠올랐다.어젯밤 환하게 웃던 얼굴.그는 작게 숨을 내쉬며 다시 업무에 집중했다.일은, 그에게 가장 익숙한 도피처였다.강두수 회장은 집무실 창가에 서서 회의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유리벽 너머로 보이는 강민재의 모습은 빈틈이 없었다.자료를 넘기는 손도, 질문에 답하는 태도도, 임원들을 정리하는 말투도 단단했다.“역시 내 손자다.”작게 중얼거리며 흐뭇한 미소가 번졌다.미국 프로젝트부터 국내 재개발 건까지,젊은 나이에도 중심을 잡고 이끌어가는 모습이 제법이었다.일 앞에서는 흔들림이 없다.그 점만큼은 누구보다 마음에 들었다.그런데 표정이 서서히 굳었다.‘여자가 있다면서.’있다 해놓고, 한 번을 소개를 안 한다.집안 어른이 이렇게 눈 빠지게 기다리는데 감감무소식이라니.더구나 오늘 아침.유철중과 통화하던 장면이 떠올랐다.“우리 손녀가 오늘 나랑 데이트 한다더군. 하하.”괜히 더 크게 웃으며 자랑하던 그 목소리.강두수의 눈썹이 꿈틀했다.‘손녀랑 데이트?’그 손녀가 누군지 그는 안다.똑 부러진 말투에, 단정한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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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두 사람은 서울의 야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레스토랑에 마주 앉아 있었다.창밖으로 한강 불빛이 길게 번지고, 잔잔한 피아노 선율이 공간을 채웠다.테이블 위 촛불이 유봄의 얼굴을 부드럽게 비췄다.강민재는 와인잔을 들어 천천히 내려놓았다.“내일 바로 가야 한다는 게 서운하네.”유봄이 작게 웃었다.“저도요. 시간이 왜 이렇게 빨리 가는지 모르겠어요.”잠시 침묵.그는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말했다.“같이 못 가서… 미안해요.”그 말에는 진심이 묻어 있었다.본사 일정, 회장과의 미팅, 미뤄둔 결재들.한국에 며칠은 더 있어야 했다.“괜찮아요. 일 때문에 온 거잖아요.”“그래도.”그는 포크를 내려놓고 그녀 쪽으로 몸을 조금 기울였다.“며칠 못 본다고 생각하니까, 괜히 더 아쉬운데.”유봄의 눈이 살짝 흔들렸다.“며칠이면 되잖아요.”그가 조용히 웃었다.“나한테는 며칠이 아니니까.”그리고 와인잔을 들어 그녀의 잔과 부딪쳤다.“그러니까… 오늘 밤은 각오해요.”유봄이 놀란 눈으로 그를 쳐다봤다.“각오요?”“네.”그는 장난스럽게 말했지만, 눈빛은 진지했다.“당분간 못 보니까. 오늘 충분히 기억에 남게 해야죠.”그녀의 귀끝이 붉어졌다.“민재 씨…”“싫어요?”“아니요.”대답이 너무 빨라서, 둘 다 잠시 웃어버렸다.디저트가 나올 때쯤, 테이블 아래에서 그의 손이 조용히 그녀의 손을 잡았다.빈틈없이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호텔 복도를 지나 방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문이 닫히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찰칵.그 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강민재의 손이 유봄의 손목을 잡았다.부드럽지만 단호하게.그는 그녀를 벽 쪽으로 이끌었고, 등이 벽에 닿는 순간 그의 숨이 가까워졌다.“민재 씨…”이름을 부르는 사이에도 그의 손은 이미 그녀의 허리를 감싸고 있었다.망설임은 짧았다.입술이 닿았다.처음엔 급하게, 며칠의 아쉬움을 한꺼번에 쏟아내듯이.그리고 곧, 더 깊어졌다.그의 손이 그녀의 등을 따라 올라가고 유봄은 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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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은 잘한다.”짧은 한마디였지만, 충분한 인정이었다.하지만 곧 표정이 미묘하게 바뀌었다.“오늘 저녁은 비워라.”“예?”“할애비 친구랑 식사 있다.인사하고 와라.”강민재는 순간 고개를 들었다.“갑자기요?”“갑자기가 아니다.미리 말해두는 거다.”강두수는 의미심장하게 덧붙였다.“사람은 사람으로 엮이는 거다.사업도, 인연도.”그 말에 강민재는 잠시 생각했다.단순한 저녁 자리는 아닐 가능성이 높았다.“알겠습니다.”짧게 대답했지만, 어딘가 예감이 스쳤다.회장실을 나서는 그의 표정은 차분했다.일정표에는 미국 화상회의, 본사 검토 보고, 저녁 만찬.그리고 그 사이 어딘가에 유봄이 있었다.앞으로 7년.일도, 사람도 쉰지 않을 거라는 걸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저녁이 되자 강민재는 강두수 회장과 함께 차에 올랐다.차가 도착한 곳은 전통 한옥을 개조한 고급 한정식집이었다.은은한 조명과 나무 향이 어우러진, 조용하지만 격이 느껴지는 공간.문을 열고 들어서자 이미 한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나 있었다.단정한 양복 차림, 연륜이 묻어나는 눈빛.유철중이었다.강민재를 보자마자 그는 환하게 웃었다.“아이고, 실물이 훨씬 잘생겼네.”강민재가 공손히 허리를 숙였다.“처음 뵙겠습니다. 강민재입니다.”유철중은 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이렇게 든든한 손자가 있으니 얼마나 든든하겠어.”옆에서 듣고 있던 강두수의 입꼬리가 올라갔다.“일은 제법 한다.”툭 던지듯 말했지만, 은근한 자랑이 섞여 있었다.강두수는 자리에 앉으며 덧붙였다.“소개하지. 대한병원 이사장이야.”유철중은 손을 내밀었다.“반갑네. 병원 쪽 일만 오래 해서 건설은 잘 모르지만, 자네 이야기는 들었어.”강민재는 두 손으로 악수하며 고개를 숙였다.“과찬이십니다.”세 사람은 자리에 앉았다.곧 정갈한 반찬들이 차려지고 맑은 탕과 제철 회가 이어졌다.대화는 자연스럽게 사업 이야기로 흘렀다.허드슨강 개발, 해외 의료시설 협력 가능성, 한국 투자 흐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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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걔가 누굴 봐주냐.”다른 친구가 고개를 저었다.“유봄은 원래 남자한테 관심 없었잖아.”“맞아. 연애보다 성적, 실습, 논문. 그거밖에 몰랐지.”“우리가 뭘 해도 눈길 한 번 안 줬다니까.”처음 말 꺼낸 친구가 씁쓸하게 웃었다.“그래도 혹시나 했지.근데 이진성 그 새끼가 먼저 옆에 붙어 있더라.”“붙어는 있었지.”“유봄이 좋아한 건 맞냐?”잠깐 조용해졌다.“그건… 모르겠어.”“근데 확실한 건, 우린 게임도 못 해보고 끝났지.”쓴웃음이 돌았다.맥주를 내려놓으며 그가 중얼거렸다.“근데 지금 상황 보니까… 꼴 좋다.”“왜."“유봄이 다른 남자한테 안겼다며?그거 봤으면 정신 차렸겠지.”누군가 조용히 말했다.“아니면 더 집착하겠지.”잠깐 공기가 묘하게 식었다.웃고 떠들었지만, 그 안엔 질투와 패배감이 섞여 있었다.대학 시절, 누구도 제대로 다가서지 못했던 여자.그리고 지금도 그녀는 여전히 아무도 쉽게 가질 수 없는 자리에서 자기 속도로 걷고 있었다.안은 여전히 시끄러웠다.이진성의 친구들은 술기운에 목소리가 더 커져 있었다.“야, 그 남자 진짜 부럽다니까.”“유봄 같은 여자면… 솔직히 다들 한 번쯤은 꿈꿔봤잖아.”“근데 아무도 못 가졌지.”“그러니까 더 열 받는 거야.”웃음과 질투가 섞였다.“그 남자 누군지 몰라도 전생에 나라 구했네.”“학회장에서 그렇게 안겼다며?완전 영화 찍었다던데.”“와… 진짜 부럽다.”그들은 자기들끼리 상상하며 떠들어댔다.그들은 모르고 있었다.자신들의 바깥쪽, 창가 자리에 앉아 서류를 넘기며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남자가 유봄의 진짜 남자라는 사실을.강민재는 천천히 잔을 들었다.“말씀하시던 2차 투자 구조는, 저희가 지분을 조금 더 가져가는 방향으로 조정하면 어떻겠습니까.”목소리는 완전히 평소와 같았다.차분하고 침착했다.거래처 사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료를 다시 펼쳤다.대화는 숫자와 계약 조건으로 돌아갔다.수익률, 리스크 분산, 장기 운영권.강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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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아침.도시를 벗어나 한 시간쯤 달렸을까, 회색 빌딩 대신 초록 들판과 낮은 언덕이 펼쳐졌다.강민재는 흰 셔츠에 가벼운 재킷, 유봄은 연청바지에 니트 차림.꾸미지 않은 모습이었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눈에 띄었다.둘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천천히 산책로를 걸었다.손은 자연스럽게 맞잡혀 있었고, 어깨는 자주 스쳤다.지나가던 사람들이 한 번쯤은 돌아보는 연인.하지만 정작 두 사람은 주변을 거의 의식하지 않았다.“저기 봐요. 강아지.”유봄이 먼저 달려가듯 걸음을 옮기자 강민재는 웃으며 따라갔다.“넘어지면 안됩니다.”“안 넘어져요.”그녀가 뒤돌아 웃는 순간, 햇빛이 얼굴에 내려앉았다.강민재는 잠시 말을 잊었다.“왜 그렇게 봐요?”“그냥… 좋아서요.”유봄은 괜히 그의 팔을 가볍게 쳤다.둘은 벤치에 나란히 앉아 테이크아웃 커피를 나눠 마셨다.별것 아닌 이야기들이 오갔다.병원에서 있었던 소소한 일, 회사에서의 실수담, 어릴 적 추억.웃음이 끊이지 않았다.강민재가 장난스럽게 말했다.“이렇게 평범하게 웃는 모습이 제일 예뻐요.”“수술복 입고 있을 때는요?”“그땐… 존경스럽구요.”유봄이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기대 앉았다.그는 아무 말 없이 그녀의 어깨를 감쌌다.바람이 부드럽게 불고 햇살이 따뜻하게 내려앉았다.세상은 그대로 돌아가고 있었지만 그 순간만큼은둘만의 세계 같았다.유봄이 낮게 말했다.“이렇게 아무 생각 없이 웃는 날이 생각보다 귀하네요.”강민재는 그녀의 머리 위에 입을 맞췄다.“그래서 더 자주 만들 겁니다.”두 사람은 다시 걸음을 옮겼다.손은 놓지 않은 채, 여느 연인들처럼 웃고, 떠들고, 가끔은 괜히 눈을 마주치며 웃다가 괜히 더 가까워지고, 그날의 햇빛과 공기와 웃음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만큼 따뜻했다.***6개월이 흘렀다.계절이 한 번 바뀌고, 뉴욕의 공기가 조금 더 차가워질 무렵이었다.유봄은 여전히 바빴다.펠로우라는 이름표는 달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거의 독립 집도의처럼 수술을 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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