首頁 / 로맨스 / 봄을 담다 / 第 81 章 - 第 90 章

《봄을 담다》全部章節:第 81 章 - 第 90 章

98 章節

81

1년이라는 시간이 더 흘렀다.볼티모어의 병원 복도를 걷는 유봄의 걸음은 이제 더 이상 조심스럽지 않았다.펠로우 시절, 담당교수 뒤에서 숨죽이며 모니터를 바라보던 눈빛 대신 이제는 수술 계획을 직접 설명하고, 레지던트들의 질문에 막힘없이 답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교수님, 이 케이스 로봇으로 가도 될까요?”후배의 물음에 그녀는 차트를 넘기며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가능해요. 대신 포트 위치는 조금 더 아래로. 출혈 가능성 대비해서 준비 철저히 하고.”그녀의 이름이 붙은 수술 일정은 늘 빠르게 찼고,학회 발표 요청도 자연스럽게 따라왔다.누군가는 이제야 묻는다.“교수님은 원래 이렇게 침착하셨어요?”유봄은 웃으며 대답한다.“아니요. 엄청 떨었어요.”하지만 이제는 안다.떨림을 견디는 법을.한편, 뉴욕.강민재의 3년 프로젝트는 막바지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허드슨강을 배경으로 시작한 대형 개발 사업은 마지막 계약 조율 단계에 들어갔고, 그는 매일같이 회의와 서류, 협상 테이블을 오갔다.“3년 예상이었는데, 2년 만에 여기까지 오다니.”동료가 감탄하듯 말하면 그는 담담하게 대답했다.“아직 끝난 건 아니죠.”하지만 알고 있었다.이제 곧 정리할 시간이라는 걸.밤늦게 사무실 창가에 서면 강 너머 불빛보다 더 또렷이 떠오르는 얼굴이 있었다.볼티모어에서 수술복을 입고 있을 그녀.시간은 두 사람을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자주 보지 못해도 흔들리지 않았고, 바빠도 연락은 놓치지 않았다.영상통화를 켜면 유봄은 수술 후 머리를 대충 묶은 채 웃으며 말한다.“오늘 6시간짜리였어요. 힘들었지만… 성공이야.”강민재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자신의 피로가 사라지는 걸 느꼈다.“잘했어, 교수님.”그녀는 장난스럽게 눈을 흘기고, 그는 화면 너머로라도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는 시늉을 한다.1년.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하지만 분명한 건 두 사람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도망치지 않았다는 것. 출국을 이틀 앞둔 밤.뉴욕의 아파트는 이미
last update最後更新 : 2026-09-09
閱讀更多

82

그럼에도 밤이 되면“오늘 너무 보고 싶었어요.”그 한마디에 강민재의 표정은 부드러워졌다.“당신 목소리 들으니까 살 것 같네.”“뉴욕 돌아올 생각은 없어요?”“있죠. 당신 있는 데가 집이니까.”화면 너머로 서로를 바라보는 그 순간만큼은 거리도, 시차도 의미가 없었다.사랑은 격렬함보다 꾸준함이 더 무섭다는 걸 두 사람은 이제 알고 있었다.매일의 통화, 짧은 메시지, 출장 일정 맞춰 잠깐이라도 얼굴 보는 노력.그 작은 반복들이 둘을 더 깊게 묶어가고 있었다.유봄의 입지는 점점 커지고 강민재의 책임도 점점 무거워졌지만, 이상하게도 둘의 사랑은 더 가벼워졌다.의심도, 불안도 없었다.다만“언제 같이 함께 할 수 있을까”그 현실적인 고민이 조금씩, 아주 천천히 두 사람의 다음 페이지를 열 준비를 하고 있었다.대한병원은 최근 몇 년간 한양병원 로봇수술센터에 밀려 고난도 케이스와 젊은 의료진 유입이 줄어드는 상황이었다.병원 혁신 프로젝트가 공식 안건으로 상정된다.“대한병원 로봇수술센터 신설.”기획실장이 프레젠테이션을 넘긴다.로봇수술 글로벌 트렌드해외 학회 발표 및 논문 인용지수센터장급 인재 영입 필요성브랜드 리빌딩 전략“단순히 장비를 들여오는 문제 아닙니다.센터를 상징할 얼굴이 필요합니다.”이사회가 조용해진다.“조건은 세 가지입니다.”해외 임상 1,000례 이상SCI급 논문 실적글로벌 학회 네트워크 보유“이 조건을 동시에 충족하는 인물은 국내에 거의 없습니다.”그때 한 이사가 조심스럽게 말한다.“미국에서 활동 중인 유봄 교수는 어떻습니까.”회의실이 잠시 조용해진다.“최근 국제학회 발표, 로봇복강경 논문 실적…데이터가 압도적입니다.”다른 이사가 고개를 끄덕인다.“솔직히 말해 대한병원이 다시 도약하려면 저 정도급 인물이 필요합니다.”누군가 말한다.“하지만 이사장님 손녀 아닙니까.외부에서 낙하산 이야기 나올 수 있습니다.”그 시선이 유철중에게 향한다.유철중은 천천히 자료를 넘긴다.“그래서 저는 추천하지
last update最後更新 : 2026-09-09
閱讀更多

83

며칠 뒤.또 다른 제안서가 도착한다.발신: 한양병원.조건은 파격적이다.대한보다 높은 연봉센터장 직함 즉시 부여연구비 3년 선지원전담 팀 구성 보장해외 공동 임상 네트워크 구축유봄은 조용히 서류를 내려놓는다.잠시 후 전화가 울린다.“유 교수님, 저는 한양병원 전략기획실장입니다.”“네, 말씀하세요.”“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저희는 교수님이 필요합니다.대한병원이 아니라, 한양이 교수님의 무대가 되어야 합니다.”“왜죠?”“교수님이 이사장 손녀라는 말, 한국 들어오면 반드시 나옵니다.저희는 오직 ‘실력’으로 모시겠습니다.”짧은 침묵.유봄의 눈빛이 미묘하게 흔들린다.연구실 불은 거의 꺼졌고 유봄의 책상 위에는 두 개의 제안서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한양병원.대한병원.조건만 보면 한양이 더 좋았다.돈도, 권한도, 명분도.“이사장 손녀라서 왔다.”그 말을 평생 듣지 않으려면 한양이 더 편했을지도 모른다.하지만 그녀는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자신은 누군가의 손녀가 되기 전에 의사였다.그리고…할아버지는 단 한 번도“손녀니까 와라”라고 말한 적이 없었다.항상 말했다.“대한을 올릴 사람은 내 손녀가 아니라 유봄 교수다.”그 말이 가슴 깊숙이 박혀 있었다.“이사장님.”손녀가 아니라 공식적인 호칭으로 시작했다.유철중은 잠시 놀랐다.“한양에서 제안이 왔어요.”“알고 있다.”“조건도 좋았습니다.”짧은 침묵.그리고 유봄이 또박또박 말한다.“하지만 저는 대한병원 제안을 받아들이겠습니다.”유철중의 눈이 천천히 흔들린다.“왜지?”“제가 대한을 선택하는 건 가족이라서가 아닙니다.”그녀의 목소리는 단단했다.“대한병원이 지금 필요한 건 센터장이 아니라결과를 만들어낼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제가 하겠습니다.”한 마디 더 덧붙인다.“이사장님께 힘이 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그 순간, 유철중의 눈이 붉어진다.평생 병원을 키웠지만 이렇게 든든한 순간은 처음이었다.“……그래.”짧은 숨.“그럼 대한은
last update最後更新 : 2026-09-09
閱讀更多

84

김지숙.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하지만 피할 수 없는 가족.“첫날이니까요.”유봄은 조용히 말했다.문이 열리자 가장 먼저 일어난 사람은 유재원이었다.“왔어?”짧은 한마디였지만, 그 안에는 오래 눌러둔 감정이 묻어 있었다.유봄은 잠시 멈칫했다가 고개를 숙였다.“아빠.”그 한 단어에 유재원의 눈빛이 부드럽게 풀렸다.딸은 더 강인해졌고, 더 단정해졌고, 어딘가 빛이 났다.미국에서 교수로 자리 잡았다는 소식,대한병원이 모셔오려 한다는 이야기,이사회가 이름을 올렸다는 보고까지.그 모든 타이틀보다도 그는 그저 딸이 건강하게 자기 힘으로 걸어 들어온 것이 자랑스러웠다.“피곤하지? 얼굴은 좋아 보이네.”“괜찮아요.”짧은 대답이었지만, 예전처럼 가시가 서 있지 않았다.식탁에는 김지숙이 준비한 음식이 가득했다.손이 많이 간 한식 상차림.“비행기 오래 탔을 텐데 많이 먹어.”김지숙은 다정하게 말했다.표정도, 말투도 완벽했다.하지만 그녀의 시선은 아주 미세하게 유봄을 훑고 지나갔다.금의환향.그 말이 자꾸 머릿속에서 맴돌았다.자신의 딸은 아직 지방 병원에서 당직을 서며 버티고 있는데 이 아이는 미국 명문 병원 교수, 대한병원이 영입하려는 핵심 인물.같은 집안의 아이들인데 왜 이렇게 다른 자리에 서 있는가.유재원은 그런 공기를 눈치챘지만 모른 척했다.괜히 말을 보태면 균형이 깨질 걸 알았다.대신 조용히 유봄의 잔을 채워주었다.“앞으로 계획은?”“아직 결정은 안 했어요.”유봄은 담담하게 말했다.“앞으로 쉽지만은 않을 거야.”그 말은 경고가 아니라 걱정이었다.유철중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쉬운 길 가라고 부르는 게 아니다.”공기가 잠시 단단해졌다.“대한병원 한 단계 올릴 사람은 내 손녀라서가 아니라 유봄이라서다.”말에 유재원의 시선이 흔들렸다.자랑스러움과 동시에 아버지의 선택이 불러올 파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김지숙은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부드럽게 말했다.“그래도 병원 안에서 말 나올 수는 있겠죠. 이사장님
last update最後更新 : 2026-09-09
閱讀更多

85

강민재가 숨을 내쉬었다.짧게 웃더니, 솔직하게 말한다.“나 지금 심장 뛰는 소리 들릴 것 같아.”“그렇게까지?”“어.”잠시 멈췄다가 더 낮아진 목소리.“보고 싶어. 미치겠어.”직설적인 고백.유봄의 손끝이 조금 굳는다.“당신 지금 내 앞에 있으면… 진짜 아무것도 못 하고 안고만 있을 것 같아.”말이 거침없이 내려온다.유봄은 웃음을 눌렀다.강민재는 아직 사무실이었다. 서류를 넘기는 소리가 간간이 들렸다.“지금도 회사예요?”“어. 정리 좀 하고 있었어. ”유봄이 잠깐 숨을 고르더니 장난처럼 말했다.“지금… 나 만나러 올 수 있어요?”서류 넘기던 소리가 멈췄다.“뭐?”목소리가 단번에 달라진다.“무슨 일 있어?”의자 밀리는 소리,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유봄, 어디야. 무슨 일인데. 아픈 거 아니지?”“아니예요.”“그럼 왜 갑자기 그런 말을 해.”이미 검색창을 열어 비행시간을 찾는 기세였다.“잠깐만. 지금 출발하면 제일 빠른 게”유봄이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왜 이렇게 진지해요.”“진지하지 . 당신이 지금 오라고 했잖아.”“진짜 올 거예요?”“당연하지.”망설임이 없다.“무슨 일인진 몰라도 내가 가면 되는 거잖아.”그 말에 유봄의 심장이 괜히 뜨거워졌다.“당신 때문에 나 진짜 미치겠다.”“왜. 어디야. 병원이야?”“아니.”“그럼?”잠깐 뜸을 들이다가.“한국이예요.”정적.“……뭐?”“한국이라고.”“어디야.”이번엔 단호하게 묻는다.“서울.”“주소 보내.”“지금 가게.”유봄은 메시지로 주소를 보냈다.강민재는 겉옷을 집어 들고 그대로 주차장으로 내려갔다.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시간도 길게 느껴졌다.차 문을 닫자마자 시동을 걸고 밤길을 달렸다.아파트 복도.초인종이 울렸다.짧고 선명한 벨소리.유봄은 숨을 한번 고르고 문을 열었다.문이 열리자마자 강민재가 한 걸음에 들어와 그녀를 끌어안았다.“언제 온 거야.”숨이 조금 가쁜 목소리.“왜 진작 말 안 했어.”두 팔에 힘이 더 들
last update最後更新 : 2026-09-09
閱讀更多

86

유봄이 대한병원에 온 지 한 달.로봇센터는 아직 완전히 자리 잡지 못한 상태였지만 수술 스케줄표는 이미 빽빽했다.아침 7시 회의실.“오늘 케이스 세 번째 환자, 유착 심합니다.혈관 위치 다시 한번 확인하고 들어가겠습니다.”차분하지만 단호한 목소리.전공의가 고개를 끄덕이며 자료를 넘긴다.간호사는 그녀의 지시를 정확히 메모한다.수술실 안.로봇 콘솔 앞에 앉은 유봄의 눈빛이 날카로워진다.손끝의 미세한 움직임이 화면 속에서 정교하게 구현된다.“흡인 조금만 더. 좋아요.그 라인 건드리지 말고… 네, 그대로 유지.”출혈 위험이 높은 구간을 통과하는 순간 수술실 공기가 잠시 멎는다.그리고 몇 분 뒤.“됐습니다. 주요 혈관 보존 확인.”안도의 숨이 동시에 터진다.첫 달 만에 고난도 로봇수술 성공률 100%.환자 보호자가 복도에서 그녀를 붙잡는다.“교수님 아니었으면… 정말 감사합니다.”유봄은 고개를 숙인다.“환자분이 잘 버텨주셨습니다. 이제 회복에 집중하시면 됩니다.”학회 발표 요청이 다시 들어오고, 의료기기 회사에서 협력 제안이 오고, 타 병원에서 참관 요청이 이어진다.병원 내부 분위기도 달라졌다.“로봇센터 예약 한 달 대기래.”“유 교수님 팀으로 배정해달라는데요.”전공의들은 그녀 수술을 직접 보고 배우기 위해일정을 조정한다.유재원은 원장실에서 보고서를 넘기며 조용히 미소 짓는다.“수술 건수, 회복률, 재입원율…확실히 달라졌군.”대한병원 로봇센터는 이제 ‘시도 중인 프로젝트’가 아니라 '결과를 내는 센터’로 불리기 시작했다.그리고 그 중심에는 이름이 아니라 실력으로 서겠다고 말했던 유봄이 있었다.유봄이 부임한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병원 안에서는 노골적인 말까지 나왔다.“이사장 손녀라면서.”“로봇센터를 왜 갑자기 그 사람한테 맡겨?”“아무리 경력이 좋아도… 결국 낙하산이지.”회의실 밖 복도에서, 의국 안에서, 커피 머신 앞에서 그 말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첫 수술 날.유봄은 아무 말 없이 수술복을 입고
last update最後更新 : 2026-09-09
閱讀更多

87

한편, 이진성은 이미 알고 있었다.대한병원 로봇센터를 맡은 교수가 유봄이라는 사실을.의사들 사이에서 소문은 빠르다.“세인트 존 메디컬센터 출신이라던데.”“실력 미쳤대.”“대한병원 제대로 판 키우는 모양이야.”그 이름이 나올 때마다 이진성의 심장은 묘하게 내려앉았다.유봄.입 안에서 조용히 굴려보는 이름.그녀가 한국에 돌아왔다는 것, 그리고 자신과 같은 도시, 같은 의료계 안에 있다는 것.그 사실 하나로 그는 밤잠을 설쳤다.원장실에 혼자 앉아 창밖을 보며 생각했다.컨벤션센터에서 봤던 그 장면.환하게 웃으며 다른 남자에게 달려가던 모습.그 이후로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살고 있었지만 사실은 아니었다.환자 앞에서는 냉정했지만 혼자 남으면 늘 떠올랐다.그녀의 눈을 보고 처음부터 다시 말해야 한다.“난 아직도 너야.”이번엔 놓치지 않겠다고.그의 눈빛이 서서히 굳어졌다.사랑이든 집착이든 그 경계 어딘가에서 이진성은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강민재는 새벽부터 움직였다.미국 동부 쪽 화상회의를 마치고 곧바로 자료를 정리해 본사로 향했다.7년짜리 허드슨강 프로젝트.뉴욕 상주 2년은 마무리됐지만 이제부터가 진짜였다.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자금, 인허가, 현지 파트너 계약까지 하나라도 틀어지면 수백억이 흔들리는 판.삼진건설 본사 회의실.긴 테이블 끝에 강두수 회장이 앉아 있었다.“그래서, 최종 보고는?”강민재가 차분히 자료를 넘겼다.“미국 측 파트너사는 계약 조건 일부 수정 요청했습니다.환경영향평가 부분에서 주 정부 승인 지연 가능성이 있습니다.”임원들이 서로 눈치를 봤다.“지연되면 손실은?”“최대 4개월.하지만 대체 공정안 준비해두었습니다.”강두수의 눈이 반짝였다.“대체안 설명해봐.”강민재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이어갔다.“부지 일부를 단계 분할 개발로 전환하면 초기 투자 부담을 줄이면서도 사업권은 유지할 수 있습니다.”잠시 정적.회의실 공기가 팽팽해졌다.강두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밀어붙여.”짧은
last update最後更新 : 2026-09-09
閱讀更多

88

허드슨강 프로젝트 정기 미팅.이미연은 평소보다 한 발 먼저 도착해 있었다.자료는 완벽하게 정리돼 있고, 질문도 예상 범위 안에서 날카롭다.“이번 분기 리스크 해지 전략은 조금 더 공격적으로 가셔도 될 것 같습니다.”강민재가 답한다.“안정성이 우선입니다.”“대표님 스타일이죠.”짧은 미소.그녀는 그를 자극하지 않는다.대신 존중한다.남자들은 대체로 자신을 이해해주는 사람에게 마음을 연다는 걸 이미연은 알고 있었다.며칠 뒤.뉴욕 현지 투자자 미팅.“이번 건은 제가 직접 동행하겠습니다.”굳이 올 필요는 없었다.하지만 그녀는 왔다.공식적인 이유는 ‘공동 투자사로서 책임.’비공식적인 이유는 강민재의 현장을 보고 싶어서.현장에서 그는 더 대단했다.협상 테이블에서 밀리지 않고, 감정 없이 숫자로 설득한다.이미연은 조용히 그를 관찰했다.‘이 남자는 권력에 흔들리지 않겠지.’그래서 더 탐났다.뉴욕, 맨해튼.투자자 미팅은 성공적으로 끝났다.예상보다 반응이 좋았고, 조건도 나쁘지 않았다.회의실을 나서며 이미연이 말했다.“오늘은 의미 있는 자리였네요.가볍게 저녁이라도 하시겠습니까?”공식적인 제안처럼 담백한 어조.강민재는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였다.“파트너로서 축하는 해야겠죠.”그 말에 이미연은 미묘하게 웃었다.선은 넘지 않는다.하지만 한 발 더 가까워진다.허드슨강이 내려다보이는 레스토랑.조용한 창가 자리.와인이 한 병 열리고, 두 사람은 사업 이야기를 이어갔다.“대표님은 확신이 빠르신 편이네요.”“판단은 빠르게, 실행은 신중하게.”“그래서 믿고 투자한 겁니다.”잔이 가볍게 부딪혔다.이미연은 일부러 속도를 조금 올렸다.술이 약한 건 사실이지만 오늘은 계산도 조금 섞였다.볼이 은은하게 붉어졌다.“저는 술이 약한 편이라…”목소리가 한 톤 낮아졌다.강민재는 눈치를 챘지만 모른 척했다.“그만 드시는 게 좋겠습니다.”“괜찮습니다.”하지만 잔을 들던 손이 살짝 흔들렸다.식사가 끝날 무렵, 이미연은 의
last update最後更新 : 2026-09-09
閱讀更多

89

퇴근 시간이 막 지난 대한병원 로비.하루 종일 이어진 외래와 회의로 몸은 지쳤지만, 유봄의 걸음은 여전히 곧았다.자동문을 향해 걷는 순간“유봄.”아주 익숙한 목소리.심장이 먼저 멈칫했다.천천히 돌아본다.로비 한가운데, 한 남자가 서 있었다.이진성.몇 년 만이었다.시간은 분명 흘렀다.예전보다 살이 빠졌고, 턱선이 더 도드라졌다.눈빛은 조금 지쳐 보였지만 여전히 그녀가 알던 그 눈이었다.그리고 그의 눈에 비친 유봄은 예전보다 훨씬 성숙했고, 차분했고, 무엇보다 눈부시게 아름다웠다.흰 블라우스 위에 걸친 코트, 단정하게 묶은 머리,의사로서의 자신감이 묻어나는 표정.이진성은 순간 말을 잇지 못했다.“…오래간만이다.”유봄은 감정을 읽히지 않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네. 오랜만이네요.”짧은 침묵.로비를 오가는 사람들 사이로 둘만 정지된 듯 서 있었다.이진성이 먼저 입을 열었다.“잠깐… 차 한잔 마실 시간은 안 되나?길게 안 잡을게.”부탁에 가까운 목소리였다.유봄은 시계를 내려다봤다.오늘은 더 이상의 일정이 없었다.잠시 망설이다가.“…근처면 괜찮아요.”그 한마디에 이진성의 얼굴에 미세하게 숨이 돌아왔다.병원 근처 카페.저녁 시간이라 한산했다.창가 자리에 마주 앉는다.잠시 어색한 정적.이진성이 먼저 웃었다.“진짜… 많이 달라졌다.”“시간이 흘렀으니까요.”“아니.”그가 고개를 저었다.“그냥… 더 단단해졌어.”유봄은 컵을 들어 올렸다.“진성 씨도요. 많이 말라 보이네요.”그 말에 그가 쓴웃음을 지었다.“일이 좀 많았지.”사실은 그녀가 떠난 뒤가 더 힘들었다는 말을 차마 꺼내지 못했다.잠시 눈을 맞춘다.이진성의 시선엔 여전히 정리되지 않은 감정이 남아 있었다.카페 안은 조용했다.커피 향이 은은하게 퍼지고, 창밖에는 병원 간판 불빛이 번지고 있었다.이진성은 한동안 컵만 만지작거렸다.무언가를 꺼내야 하는데,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는 사람처럼.“유봄.”조심스럽게 부른다.“그때… 아무
last update最後更新 : 2026-09-09
閱讀更多

90

“진짜로요.”유봄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안엔 오래 묵은 감정이 담겨 있었다.“당신이 대한병원 때문에 저를 만났다는 말도 들었고, 집 앞에서 들었던 그 소리도…저한텐 충분했어요.”그녀는 웃지 않았다.“확인할 용기도 없었고, 묻고 따질 힘도 없었어요.”그저 자존심이 먼저였고, 상처가 먼저였다.“그래서 도망치듯 미국으로 갔어요.”그 말은 인정이었다.“도망이었죠. 솔직히.”이진성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근데요.”유봄의 눈빛이 달라졌다.“그게 다 오해였다고 해도.”잠시 숨을 고른다.“전… 후회하지 않아요.”카페 안이 고요해졌다.“그 시간 덕분에 여기까지 왔어요.”세인트 존 메디컬센터에서의 치열한 날들, 수없이 버텨낸 밤, 자기 힘으로 증명해낸 자리.유봄은 가방을 들어 올리다 말고 잠시 멈췄다.해야 할 말이 남아 있었다.천천히 이진성을 바라본다.“그리고.”그의 눈이 다시 희망을 품듯 올라왔다.“그 시간 덕분에… 다른 사람을 만났어요.”공기가 조용히 갈라졌다.이진성의 표정이 굳는다.유봄의 목소리는 흔들리지 않았다.“처음엔 저도 몰랐어요.그냥 제 일에만 집중하려고 했고, 다시는 누구한테도 기대지 않겠다고 생각했어요.”하지만.“그 사람은…제가 기대지 않으려 해도 자연스럽게 제 옆에 서 있었어요.”강민재의 얼굴이 스쳤다.멀리 있어도 단단하게 연결되어 있는 느낌.숨기지 않겠다고 말하던 밤.정식으로 소개하겠다고 약속하던 목소리.유봄의 입가에 아주 미세한 온기가 번졌다.“이제는.”그녀는 분명히 말했다.“그 사람 없는 제 인생은 상상할 수 없어요.”정적.과거의 사랑을 부정하지는 않았다.그 시간도 진심이었다.하지만 지금의 사랑은 더 단단했고, 더 성숙했고,도망이 아니라 ‘선택’이었다.“진성 씨.”유봄의 눈빛은 부드럽지만 분명했다.“우린 그때 많이 어렸어요.”그리고 지금은 다르다.“이제 각자의 자리에서 잘 지냈으면 좋겠어요.”희망을 남기지 않는 말.이진성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자신
last update最後更新 : 2026-09-09
閱讀更多
上一章
1
...
5678910
掃碼在 APP 閱讀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