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의 첫해는 지옥이었다.최진희는 뉴저지의 허름한 원룸에서 시작했다.대한병원에서 외과 전문의로 집도하던 손이 이제는 다시 교과서를 넘겼다.낯선 영어 의학용어, 속도를 따라갈 수 없는 청취,그리고 끝없이 밀려오는 외로움.USMLE 1차 시험을 준비하는 동안 그녀는 하루에 열여섯 시간씩 책상에 앉아 있었다.벽에 붙여둔 한 장의 사진.어린 유봄이 하얀 원피스를 입고 웃고 있었다.1차를 통과하고,2차를 통과하고,임상 술기 시험까지 마쳤다.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외과 레지던트 매칭.이미 한국에서 전문의였지만 미국에서는 다시 시작해야 했다.그녀의 나이, 경력 단절, 그리고 이민자 신분은 불리했다.첫 해는 떨어졌다.두 번째 해, 한 지방 병원의 외과 레지던트 프로그램에서 겨우 자리를 얻었다.중서부의 작은 도시였다.응급실은 늘 바빴고, 총상 환자와 교통사고 환자가 뒤섞였다.그녀는 누구보다 많이 남았고, 누구보다 많이 집도했다.한국에서 다져진 손놀림은 곧 인정받기 시작했다.“Dr. Choi, you’re steady.”지도교수의 그 한 마디는 그녀가 몇 년 만에 들은 칭찬이었다.밤마다 기숙사 침대에 누우면 딸 생각이 밀려왔다.레지던트 수료 후, 그녀는 보드 인증까지 마쳤다.대도시 병원에서 오퍼도 들어왔다.하지만 그녀는 선택하지 않았다.대신 북동부의 작은 시골 마을.인구 8천 명 남짓한 곳이었다.외과 의사는 단 한 명.그 자리에 최진희가 들어갔다.병원은 작았고, 수술실은 두 개뿐이었다.맹장 수술,담낭 절제,탈장 수술,가끔은 농기계 사고로 실려 오는 응급환자.화려하지 않았다.하지만 그녀는 그곳에서 처음으로 숨을 쉬는 느낌을 받았다.창밖으로는 옥수수밭이 펼쳐졌고, 퇴근길에는 사슴이 도로를 건넜다.동네 사람들은 그녀를 "닥터 최”라고 불렀다.아이들은 쿠키를 가져왔고, 노인들은 직접 기른 사과를 건넸다.어느 날, 마을 교회 앞에서 한 할머니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당신이 와줘서 우리 마을이 살았어요.”
Last Updated : 2026-09-09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