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육정이 벼루를 들고 왔다.문서 상자와 벼루와 붓 두 자루.종을 시키면 될 것을 제 손으로 들고 문지방을 넘었다."사은 문서요. 내일까지 올려야 하오."소반 위에 종이가 펼쳐졌다.그가 먹을 갈기 시작했다.먹 가는 소리는 처음 듣는 소리였다.돌 위에 물이 마르며 무거워지는 소리.방에 낮게 깔려서, 듣고 있으면 다른 소리들이 하나씩 물러났다.등불이 그의 손등에서 벼루로 미끄러졌다.물이 조금씩 짙어지고, 짙어진 것이 돌의 파인 자리에 고였다.벼루 가운데가 얕게 파인 돌.서재의 십 년이 이 돌에도 있었다.그는 말없이 갈았다.소매를 걷은 팔목에 힘줄이 두 개 서고, 손목은 움직이는데 어깨는 흔들리지 않았다.십 년을 밤마다 서재에서 갈았을 손놀림.다만 이 방에서 가는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다."글은 내가 쓰겠소.""그러세요.""이름은 부인이 쓰셔야 하오."붓이 종이 위를 갔다.그의 글씨는 획이 가늘고 끝이 굽지 않았다.문서의 말은 길고 뜻은 하나였다.성은이 망극하다는 것.이름 자리가 비워진 채 종이가 이쪽으로 돌아왔다.빈자리는 두 치가 못 되는데, 그 두 치가 소반 위에서 이상하게 넓어 보였다.붓을 받았다.가벼웠다. 전생의 손은 펜과 칼을 쥐던 손이라, 붓은 쥐는 것부터가 낯설었다.그런데 손가락이 저 혼자 자리를 잡았다.엄지와 검지가 붓대를 세우고 새끼손가락이 종이 위에 떴다.이 몸이 십 년 넘게 잡아 온 자세.심(沈) 자를 썼다.첫 획은 몸이 그었다.둘째 획에서 손과 머리가 서로 밀었다.획이 가다가 반 박자 어긋나고, 삐침이 짧게 끊겼다.명(明) 자에서 한 번, 주(珠) 자에서 두 번.종이 위의 석 자는 낯선 사람의 이름 같기도 하고, 이제 겨우 제 것이 된 이름 같기도 했다.등불이 이쪽 소매에도 닿아 있었다.낮에 입던 옥색 적삼이 불빛 아래서는 물빛으로 가라앉았고, 옷끈 끝이 숨을 따라 얕게 오르내렸다.풀어서 한 갈래로 땋아 내린 머리가 어깨 앞으로 넘어와, 고개를 숙일 때마다 끝이 종이 가장자
Terakhir Diperbarui : 2026-08-09 Baca selengkapny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