บททั้งหมดของ 연옥화(軟玉花) — 향이 없는 꽃: บทที่ 41 - บทที่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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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화 길

심가로 가는 날 아침, 마당에 가마가 대령되었다.서란이 옷을 챙겼다.나들이옷을 펼쳐 놓고 고르는 손이 빨랐다.연둣빛과 자색과 옥색을 늘어놓고, 그중 자색에 손이 오래 머물렀다.친정 가는 안주인의 옷을 고르는 것이 처음이 아닌 손 같았다."이걸로 하시지요.심가 대인 뵈러 가시는데.""아무거나.""…아무거나가 어디 있어요."서란이 자색을 입혔다.옷끈을 매는 손끝이 야무졌다.십 년 명주 곁에 있던 여느 시녀보다 익숙한 손이었다.초하는 그 곁에서 버선을 들고 서 있었다.심가라는 말이 나온 뒤로 얼굴이 돌아오지 않았다.버선을 내미는 손이 조금 떨렸다.마당으로 나가니 육정이 있었다.관복이 아니라 나들이 차림이었다.조정에 나갈 사람이 나가지 않고, 말 한 필을 세워 두고 이쪽을 기다리고 있었다."나리가 왜 따라오세요.""처가에 인사할 때도 되었소."십 년을 안 가던 처가였다.인사할 때가 십 년 만에 오늘 됐다는 말을, 그는 말고삐를 고쳐 쥐며 했다."멀어요?""반나절이오. 성 밖이니."가마에 올랐다. 주렴이 내려지고, 마당의 소리가 한 겹 멀어졌다.채가 들리고, 흔들림이 시작됐다.성문을 나서자 길이 넓어지고 볕이 곧게 들었다.주렴 사이로 밖이 조각조각 보였다.마른 논둑, 미루나무, 그리고 가마 곁에 바짝 붙은 말의 다리. 육정의 말이었다.앞서지도 처지지도 않고, 가마 한 뼘 옆에서 같은 속도로 왔다.가마가 돌부리에 한 번 크게 흔들렸다.몸이 주렴 쪽으로 쏠렸다가 돌아왔다."괜찮으시오."주렴 너머에서 목소리가 왔다.얇은 발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말 위의 그와 가마 안의 이쪽이 반 뼘 거리였다.발이 볕을 걸러 그의 옆얼굴을 흐리게 비쳤다.턱선, 고쳐 여민 깃, 고삐를 쥔 손등의 힘줄."흔들려서요. 괜찮아요.""…길이 곧 험해지오. 발을 잡으시오."주렴 끝을 쥐었다.쥔 손 바로 너머, 발 한 겹 밖에 그의 손이 고삐를 쥐고 있었다.천 한 장을 두고 두 손이 나란히 흔들렸다.볕이 뜨거웠고, 가마 안에 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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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화 객당

심가에서 저녁상이 났다.상이 걸었다. 육가의 아침상이 맑고 단출했다면, 이 집 상은 기름지고 색이 짙었다.붉게 조린 것, 검게 볶은 것, 노랗게 지진 것.그릇마다 김이 다르게 올랐다.대인은 나오지 않았다.몸이 편치 않아 내일 뵙자 하셨다고 집사가 전했다.십 년 만에 딸을 불러 놓고, 딸이 온 첫 저녁에 얼굴을 보이지 않는 아버지였다.젓가락을 들었다. 강목의 말이 손끝에 얹혀 있었다 — 드신 것과 만진 것을 기억해 두십시오.밥알을 씹으며 상을 읽었다.붉게 조린 것에서 단내 아래로 쇠 비린 것이 얕게 지나갔고, 검게 볶은 것은 간이 짜서 다른 맛을 덮었다.그릇 하나에서 젓가락이 반 박자 멎었다.맞은편에서 육정이 그 멎음을 봤다.그도 젓가락을 그 그릇에서 거뒀다.서란이 상 곁에 서서 시중을 들었다.이 집이 낯설지 않은 걸음이었다.빈 그릇을 물리고 새 그릇을 놓는 손이, 제집 부엌을 아는 사람처럼 매끄러웠다.밤에 객당으로 들었다.부부에게 방 하나가 내려졌다.낯선 집의 낯선 방이었다.이부자리 둘이 한 자 사이를 두고 나란히 깔렸다.십 년을 벽 하나 두고 각방을 쓰던 두 사람에게, 한 방의 두 자리는 벽보다 가까웠다.씻고 나왔다. 데운 물이 부족해 미지근했고, 낯선 집 우물물이라 살에 닿는 결이 달랐다.여름 홑옷 아래로 물기가 마르며 살이 두 빛으로 돌아왔다.푸른 흰빛에 얕은 붉은 기.육정은 불을 끄지 않았다.등불 심지를 낮추기만 하고, 이부자리에 앉아 벽 쪽을 한 번, 문 쪽을 한 번 봤다."불을 안 끄시네요.""…낯선 집이오."낯선 집에서 등불을 켜 두는 사람의 경계였다.그 경계가 방을 반쯤 밝힌 채로, 두 자리 사이 한 자를 비췄다.빗소리가 시작됐다.성 밖이라 빗소리가 육가보다 넓었다.처마가 낮아 빗방울이 창 아래 흙에 바로 떨어지는 소리가 방 안까지 들어왔다.자리에 누웠다. 낯선 천장이었다.서까래의 결이 육가와 달랐고, 등불이 낮아 천장이 어스름했다.옆자리에서 육정이 뒤척였다.한 자 옆에서 옷깃 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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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화 아버지

아침에 눈을 뜨니 옆자리가 비어 있었다.이부자리는 개켜져 있고, 육정은 마당에 나가 있었다.밤새 등을 벽처럼 세우고 자던 사람이 먼저 일어나 밖에 선 것이다.씻고 나온 목덜미에 물기가 남아, 십 년 각방이 하룻밤 한 방으로 바뀐 것을 아침 볕이 아직 어색해했다.마당에서 그와 눈이 한 번 마주쳤다.그가 먼저 눈을 돌렸다.소매 안에서 손목에 남은 간밤의 자국이 아직 뜨거웠다.사시에 대인이 불렀다.서재였다. 벽을 두른 책장이 높고, 먹과 마른 약재 냄새가 함께 배어 있었다.아랫목에 늙은 사내가 앉아 있었다.명주의 아버지, 심가의 가주.살이 빠져 광대가 서고 손등에 검버섯이 짙었다. 병색이었다.그런데 눈만은 맑았다.몸은 저무는데 눈은 저물지 않은 사람.병으로 부른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그 눈이 먼저 보였다."…왔느냐.""예.""앉거라."앉았다. 아버지가 딸의 얼굴을 오래 봤다.이마에서 눈으로, 눈에서 입으로.무엇을 확인하는 눈이었다.십 년을 안 부른 아버지의 눈에 반가움은 옅었다.대신 살핌이 짙었다.어의가 환자를 보듯 위에서 아래로 훑어 내리는, 이 몸이 무엇을 아는지 무엇을 잊었는지 재는 눈이었다.부른 것이 딸이 보고 싶어서가 아니라는 것을, 그 눈이 앉자마자 알려 주었다."명주야.""예.""네가 어릴 적에."아버지의 손이 무릎 위에서 한 번 쥐어졌다."그 밤을 기억하느냐.""무슨 밤이요?"즉답이었다. 정말 몰라서 나온 대답이었고, 그 모름이 얼굴에 그대로 있었다.아버지가 딸의 눈을 한참 봤다.무언가를 찾다가, 찾지 못하고, 그 못 찾음에 어깨가 내려앉았다.안도인지 서글픔인지 모를 것이 늙은 얼굴을 한 번 지나갔다."…아니다. 잊었으면 됐다."딸이 무엇을 잊은 것을 다행으로 여기는 아버지였다.무엇을 잊었는지 이쪽은 잊은 줄도 몰랐다.다만 아버지가 안도한 그 자리에, 안도할 만큼 큰 것이 하나 있었다는 것만 남았다.집사가 차를 올렸다.김이 옅게 오르는 찻잔.색이 맑고 냄새가 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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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화 단약

궁의 아침은 소리가 없었다.태의원 서리가 붉은 함을 받쳐 들고 왔다.함이 열리자 단약이 놓여 있었다.붉은 돌을 갈아 빚은 것, 매끄럽고 윤이 도는 알.선단(仙丹)이었다.궁에서는 그 정수를 영사(靈砂)라 높여 불렀다.신령한 단사라는 뜻이었다.강목이 그 앞에 무릎을 꿇고 감별했다.냄새를 맡고, 빛을 보고, 문서를 폈다.시약을 거친 물건이었다.먹여 사흘을 보아 탈이 없었다는 도장이 찍혀 있었다.문서에는 빈 데가 없었다.그런데 손이 함 위에서 한 박자 멎었다.영사라 부르나 주사를 정제해 빚은 것이었다.주사를 불에 올리면 수은이 오른다는 것쯤은 약을 보는 사람이면 다 안다.그러니 이 신령한 이름 밑에 앉은 것이 무엇인지도 강목은 알았다.알되, 거기서 생각을 잘랐다.황제께 올리는 성약을 천한 수은과 한 줄에 놓는 것은, 심약이 목으로 감당할 수 있는 생각이 아니었다."옥체를 맑히는 약이오."곁에서 어의가 말했다.몇 해째 같은 말을 해 온 사람의 매끄러운 말투였다.영사니 선단이니 하는 높은 이름이 그 매끄러움 위에 얹혀 있었다.강목은 그 붉은 것을 오래 보았다.보고, 도장 옆에 제 도장을 찍었다.진어(進御)는 편전에서 있었다.황제가 앉아 있었다. 젊은 황제였다.스물을 갓 넘긴 얼굴에 낯빛이 희고, 눈이 컸다.그런데 그 큰 눈이 어딘가 비어 있었다.사람을 보는데 사람 너머를 보는 눈.잠을 오래 잃은 눈이었다.서리가 단약을 은잔에 받쳐 올렸다.황제가 손을 뻗었다.손이 떨렸다.은잔에 닿기 전, 손끝이 잘게 떨렸다.황제는 그 손을 한 번 소매 안으로 거두었다가 다시 냈다.두 번째에는 떨림이 덜했다.떨림을 감추는 법을 익힌 손이었다.단약을 삼키고, 물을 한 모금 넘겼다.넘기고 나서 잠깐 눈을 감았다.편전이 조용했다. 아무도 그 떨림을 못 본 척했고, 못 본 척하는 것이 이 자리의 예법이었다.눈을 뜬 황제가 강목을 봤다."그대가 약을 본다지.""…예. 심약이옵니다.""약을 보면, 사람도 보이는가."물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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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화 생강짜

심가에서 육가로 돌아오는 데 다시 반나절이 걸렸다.돌아오는 가마 곁에도 육정의 말이 따라왔다.다만 올 때와 달리, 그는 가마 곁으로 말을 붙이지 않고 저만치 앞서 갔다.하룻밤 한 방에서 잔 것이, 낮의 볕 아래서는 도로 십 년 각방의 거리로 돌아가 있었다.육가 대문이 보이자 초하가 가마 뒤에서 처음으로 숨을 크게 내쉬었다.심가 담을 벗어난 뒤로 조금씩 돌아오던 아이의 얼굴이, 제집 대문 앞에서야 다 돌아왔다.한경은 무언가를 안고 돌아왔다.그 밤을 기억하느냐던 물음, 먹과 약재 냄새가 밴 서재, 책장으로 가던 서란의 눈, 입에 대지 않은 찻물.낱낱은 아무것도 아니었고, 모으면 이름이 없었다.이름 없는 것을 방 어디에 둘지 몰라, 우선 향낭 서랍 곁에 함께 두었다.그날 저녁에 강목이 왔다.궁에서 바로 온 걸음이었다.관복 자락에 회랑의 먼지가 앉아 있었고, 얼굴에 하루가 얹혀 있었다.어공 문서를 마저 맞춰야 한다는 것이 명분이었는데, 문서를 펴 놓고도 붓을 오래 들지 않았다.눈부터 웃던 사람이 오늘은 웃지 않았다."부인.""예.""지난번 골목에서 본 사내 말입니다. 손이 떨리던.""죽었어요?""…그건 모릅니다."강목이 붓을 내려놓았다."그게 아니라. 부인은 그 손을 보고 대번에 아셨지요. 수은이라고.""봤으니까요.""그런 손을. 다른 데서 또 보면."말이 거기서 멎었다.다른 데가 어디인지, 그 뒤가 나오지 않았다.강목의 눈이 문서에서 이쪽으로 왔다가, 갈 데를 못 찾고 다시 문서로 갔다."무슨 일 있어요?""…아무 일도 없습니다."거짓이었다. 강목처럼 물건만 보는 사람은 거짓을 말할 때 손이 먼저 어긋났다.붓대를 고쳐 쥐는 손이 아까부터 같은 자리를 두 번씩 만지고 있었다."부인."그가 목소리를 낮췄다.낮춘 소리가 소반 위를 건너와, 두 사람 사이가 문서 한 장 너비로 좁아졌다."혹여 그런 손을 또 보시거든.무엇을 만졌겠느냐고 소신에게 먼저 물어 주십시오.부인이 짚고, 소신이 어디서 났는지 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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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화 낯

심가에 다녀온 며칠 뒤, 밤에 육정이 왔다.요즘 조정이 바쁜지 얼굴에 하루가 두껍게 얹혀 있었다.관복은 벗었는데 깃을 제대로 여미지 못해 한쪽이 벌어졌고, 눈 밑이 검었다.늘 앉는 자리에 앉아 물그릇을 들었다.한경은 그 얼굴을 물끄러미 봤다.씻고 온 낯에 등불이 얹히니, 피곤한데도 이목구비가 제자리에서 또렷했다.콧날이 곧고 눈꼬리가 길었다.십 년을 벽만 보고 산 여자가 이 얼굴을 매일 곁에 두고도 안 봤다는 것이, 이 몸의 손해였다.이 시대 기준으로도 상위권이었다."나리 얼굴 잘생겼어요."물그릇을 든 손이 멈췄다.물이 잔 가장자리에서 한 번 출렁했다.그가 그것을 놓칠 뻔하다가 도로 쥐었다."…무슨.""아니, 그냥. 피곤해 보이는데도 잘생겨서요."그가 물그릇을 소반에 내려놓았다.내려놓는 손이 조금 늦었다."…부인은 요즘 말이.""말이 왜요."그가 대답을 못 했다.목울대가 한 번 오르내렸다.십 년을 한 지붕 아래 살면서 아내에게 잘생겼다는 말을 들은 것이 처음인 사람의 얼굴이었다.한경은 그 얼굴을 계속 봤다.보다가, 눈 밑의 검은 자리에 눈이 갔다."잠 못 자죠.""…괜찮소.""이리 와 봐요."무릎으로 반 자를 다가갔다.그가 물러설 새도 없이, 손을 들어 그의 관자놀이에 댔다.응급의였던 손이 자리를 먼저 알았다.관자놀이에서 눈썹 끝으로, 뭉친 자리를 엄지로 눌렀다."여기 뭉쳤네. 사흘 밤은 샜겠어요."그가 숨을 멈췄다.십 년을 벽 쪽으로 붙어 앉던 여자가, 오늘은 제 손으로 남편의 얼굴을 짚고 있었다.내외도 없이, 진맥하듯 스스럼없이.그 스스럼없음이 그를 더 굳게 했다.관자놀이에 얹힌 손끝 아래로 그의 맥이 빨라지는 것이, 짚은 손에 그대로 왔다."…부인.""가만있어 봐요. 하나도 안 아프게 할게."관자놀이를 누르는 동안 그가 눈을 감았다.십 년을 곤두서 있던 사람이 눈을 감는 것은 처음 보는 일이었다."심가는."한경이 물었다. 손은 여전히 그의 관자놀이에 있었다."…무엇이오.""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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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화 제자

강목이 또 육가로 왔다.어공 문서는 지난번에 다 맞췄다.오늘의 명분은 지난 물목에 빠진 별품 하나를 확인한다는 것이었는데, 그것은 서리를 보내도 될 일이었다.서리를 보내지 않고 제 발로 온 것을, 강목은 궁문을 나설 때부터 알고 있었다.요즘 육가로 오는 발이 가벼웠다.물건만 보고 살아온 사람이었다.약재의 골, 문서의 빈칸, 죽은 자를 산 것으로 적은 붓 자국 — 그런 것만 보던 눈에 근래 자꾸 사람 하나가 걸렸다.그 집 마루 끝에 서 있던 부인.두 번 캔 밭을 대번에 짚고, 수은을 이름으로 부르던 여자.그 여자를 만나러 가는 길에 가슴이 제멋대로 뛰었다.낯선 일이었다. 낯선데 싫지 않았다.중문을 들어서며 강목은 저도 모르게 먼저 말을 골라 두고 있었다.부인에게 무엇을 물을지, 무엇을 물으면 그 여자가 눈부터 답할지.한경은 마루에서 약재를 말리고 있었다.소반에 뿌리를 펴 놓고, 마른 것과 덜 마른 것을 갈라 놓는 참이었다."또 오셨네요.""…빠진 물목이 있어서."거짓말이 손끝에 티가 났다.한경이 그것을 보고도 짚지 않고, 소반 한쪽을 비켜 앉을 자리를 내주었다.강목이 앉았다. 앉아서 소반의 뿌리 하나를 집어 들었다."이건 왜 이렇게 쓰십니까. 색이 좋은데.""그건 안 배워도 돼요. 죽으니까.""…예?""색은 좋은데 속이 상했어요.이런 걸 달여 먹으면 그날 밤에 배를 잡아요.버리는 걸 배워야지, 쓰는 걸 배우면 안 돼요."강목이 그 뿌리를 다시 봤다.십수 년 약재를 감별해 온 눈에도 색만 보이던 것을, 부인은 속을 봤다.물건을 보는 눈이 저와 다른 데를 짚고 있었다.배우고 있었다. 심약이, 부인에게.그 전복이 우스운데 부끄럽지 않았다.부끄럽기는커녕, 하나를 알고 나면 또 하나를 묻고 싶었다.그때 부엌 쪽에서 오어멈이 왔다.앞치마에 무언가를 싸 들고 마루 끝에서 머뭇거렸다."부인. 그… 아이 것은.""거기 두고 가. 저녁에 데워서 줘."오어멈이 소반 곁에 보퉁이를 놓고 갔다.강목의 눈이 무심코 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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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화 선단

육설이 붉은 함을 안고 대부인 처소에 들어서자, 안채 사람들 눈이 다 그 함으로 갔다."어머니. 이거 구하느라 제가 얼마나." 육설이 함을 열었다.옥합에 비단, 그 안에 앵두만 한 붉은 알이 있었다. "선단이에요.궁에서 폐하께서도 진어하시는.""어머, 형님. 그 귀한 걸 어떻게." 박씨가 손뼉을 쳤다."값은 묻지 마세요.어머니 잡숫는 걸 값으로 따지면 불효지."대부인의 염주가 멎었다.방 안 사람들이 붉은 알로 몸을 기울였다.문가에 앉은 한경만 빼고."그거 드시면 안 돼요."전부 돌아봤다."수은이거든요. 쌓이면 죽어요."박씨가 먼저 웃음을 터뜨렸다.육설이 따라 웃었다. 눈은 안 웃었다."언니가 약을 아세요?""폐하께서 잡숫는 성약을 수은이라니.형님, 우리 언니가 요즘 저잣거리에 재미를 붙이셨나 봐.""시전 바닥 물이 어디 가겠어."웃음이 방을 한 바퀴 돌았다.한경이 자리에서 일어섰다."믿기 싫으면 드시고요." 치맛자락을 걷었다."장례는 성대하게 치러 드릴게요."웃음이 뚝 그쳤다."명주야." 대부인이 불렀다."너 요즘 어디서 그런 걸 배워 오느냐.""배운 적 없어요.눈이 좀 좋은가 봐요." 한경이 돌아봤다."어머니도 눈 밝으시잖아요.저 알 색, 좀 이상하지 않으세요?"대부인이 대답하지 않았다.한경은 문을 나갔다.사람들이 흩어진 뒤에도 대부인은 그 붉은 알을 들여다봤다."치워라.""어머니?" 육설이 되물었다."귀한 거라며. 잘 싸 두라고."육설이 함을 도로 쌌다.대부인은 멎은 염주를 다시 돌리지 않았다.제 방으로 돌아온 육설이 함을 소반에 던지듯 내려놨다."…무식한 년이."몸종이 눈치를 봤다."큰서방님이 저 여자 말이라면 껌뻑 죽는 게 문제야.온 집이 웃는데 혼자 편을 들잖아, 낮에 봤지?""…예.""두고 봐. 저 잘난 얼굴이 언제까지 가나." 육설이 붉은 알을 옥합에 도로 넣었다."이 선단, 어머니껜 아직 안 드렸다고 해 둬."몸종이 고개를 숙였다.그날 낮, 한경이 오어멈을 불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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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화 불면

자정이 넘도록 침전에 불이 꺼지지 않았다.내관들이 숨을 죽이고 벽을 따라 섰다.황제가 잠들지 못하는 밤이면 궁 전체가 잠들지 못했다."폐하. 침수 드시옵소서." 어의가 아뢰었다."짐이 자고 싶어서 안 자는 줄 아느냐."황제가 몸을 일으켰다.스물 몇의 낯이 서늘하게 잘생겼는데, 그 고운 눈에 빛이 얕았다.촉대를 드는 손끝이 잘게 떨렸다.내관 하나가 그 손을 보고 얼른 눈을 내렸다."맥을 짚어라."어의가 무릎걸음으로 다가와 오래 맥을 짚었다.짚는 손이 저부터 떨렸다."…심기가 허하신 심질이옵니다.선단을 거르지 마시고 진어하시오면 차차.""선단을 석 달을 먹었다.""…화후를 한 번 더 올려 빚으라 이르겠나이다.""더 먹으라. 짐이 덜 먹어 병이 났다는 게냐.""…황공하옵니다. 황공하옵니다."황제가 어의를 내려다봤다.웃는 것 같기도 한 얼굴이었다."물러가라. 네 죄가 아니다."어의가 이마를 바닥에 대고 물러갔다.황제는 도로 누웠다.촛불을 끄라는 명은 내리지 않았다.새 선단을 감별하러 든 강목이 그 문답을 다 들었다.옥반에 붉은 알이 놓였다.강목이 그것을 집어 등불에 비췄다.표면이 기름을 먹인 듯 매끄러웠다.골목에서 손 떨리던 사내가 만지던 것과 같은 결이었다.낮에 저잣거리에서 들은 말이 자꾸 겹쳤다.육가 안주인이 온 집 앞에서 선단을 두고 수은이라 했다고. 쌓이면 죽는다고.황제의 손끝이 떨리고 있었다.잇몸의 검푸른 선도, 얕은 잠도, 강목이 아는 얼굴이었다.그는 붉은 알을 오래 비춰 보다가, 옥반에 도로 놓았다.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약을 보는 자."황제가 강목을 봤다.얕은 눈이 이쪽에 머물렀다."성 밖에 약을 안다는 여인이 있다지.선단을 수은이라 했다는."강목의 손이 멎었다."…소문이옵니다, 폐하.""소문치고는 짐의 귀까지 왔다." 황제가 몸을 기울였다."그 여인이 옳으냐."강목이 고개를 숙였다."…무지한 아녀자의 말이옵니다.약재 산지나 겨우 짚는.""산지나 겨우."황제가 옅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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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화 소문

비 갠 아침이었다.한경은 경대 앞에 앉아 머리를 풀어 내렸다.검은 머리가 등허리를 지나 자리에 고였다.참빗이 걸리는 데 없이 미끄러졌다.창으로 든 볕이 목덜미에서 어깨로 흘러내리다, 홑적삼 깃 안으로 들어가 사라졌다.소반에 살구 한 접시와 매실 담근 물이 놓여 있었다.한경이 살구를 하나 집어 베어 물었다.즙이 손끝을 타고 내렸다.그 손을 무명천에 닦지 않고, 잠깐 볕에 들어 보다가 혀끝으로 훔쳤다.경대 서랍에서 노리개를 둘 꺼냈다.산호 하나, 옥 하나.옷고름에 번갈아 대 보며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다.거울 속에서 목선이 길게 돌아갔다."초하야. 뭐가 나아."초하가 산호 쪽으로 눈을 두었다.한경은 옥을 골라 걸었다.그러고는 산호를 초하의 손바닥에 얹고 손가락을 접어 주었다.초하가 두 손을 모아 쥐고 어쩔 줄 몰라 했다.부인은 벌써 거울로 돌아가 귀밑머리를 매만지고 있었다.아침볕에 뺨이 안에서부터 희게 돌았다.버선을 신길 때 발끝까지 곱던 것을 초하는 며칠째 몰래 훔쳐봤다."…부인은 요즘 참 고우세요.""응. 나도 알아."초하가 물을 길으러 나갔다가 반쯤 쏟고 뛰어 들어왔다."부인. 저잣거리에서 다들, 「폐하께서 편찮으시다며?」 하고—"한경이 그 입에 손가락을 댔다.초하가 숨을 삼켰다.한경은 손가락을 뗀 뒤에도 초하의 눈을 잠깐 더 붙들고 있다가, 고개를 아주 조금 저었다.초하가 물동이를 내려놓고 물러갔다.문지방을 넘을 때까지 뒤를 두 번 돌아봤다.그 무렵 안채 건넌방에는 참외를 깎아 낸 찻상이 들어갔다."큰마님이 선단을 수은이라 하셨다며."박씨가 부채로 입을 가렸다.육설은 가리지 않았다.참외 한 쪽을 집어 천천히 베어 물고, 물기를 손수건에 찍어 냈다."큰서방님이 그런 안사람을 언제까지 싸고도시나 봐야지."찻상을 물리러 든 몸종이 그 말을 주웠다.저녁이 되기 전에 그 말은 행랑을 한 바퀴 돌았다.해 질 무렵부터 다시 비가 들었다.강목이 마루에 올라섰을 때 어깨가 젖어 있었다. 눈 밑이 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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