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옥화(軟玉花) — 향이 없는 꽃》全部章節:第 1 章 - 第 10 章

231 章節

1화 유월

마당에 친 무명 양붕 셋 아래로 사람이 지나갈 때마다 그림자가 명주의 무릎을 스쳤다.명주는 아침부터 정청 가운데 앉아 있었다.해가 옮겨 가는 동안 종들이 탁자를 들어 그늘을 따라갔는데, 명주가 앉은 의자만 아침 자리 그대로였다.목이 마르다고 느끼고 돌아보자 춘월이 바로 잔을 들어 왔다.잔을 입술에 대어 주고 두 모금 넘기자 춘월이 다시 잔을 떼었고, 입가에 흐른 것을 단아가 수건으로 눌렀다.넘기는 동안은 숨을 쉬지 못했고, 손이 물러나고 나서 숨이 돌아왔다.잔이 탁자 위에, 팔을 뻗으면 닿는 자리에 놓였다.탁자 사이로 갑옷 입은 사내 몇이 절그럭거리며 지나갔고, 쇠 비늘마다 볕이 한 점씩 얹혀 있었다.길 떠나는 차림의 시동생이 와서 읍하고 갔다.뒤에 남은 동서가 소매로 눈을 눌렀는데, 명주는 왜 우는지 묻지 않았다.옆 탁자에서 누가 말했다."오늘 밤에 온다면서."명주가 고개를 돌렸을 때는 두 사람 다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삼 년째라지.""이번 배가 닿으면 겨울은 넘긴대.""닿으면 말이지."무슨 연회인지도 아침에 한 번 들은 것이 전부였다.북쪽으로 가는 배를 보내는 자리라고 했다.북쪽에 무슨 일이 있는지는 듣지 못했다.아침에 시녀 셋이 한 벌씩 펼쳐 보였고, 육정이 고른 연둣빛을 입었다.소매 끝에 은실로 넝쿨을 놓은 옷이었다.치마는 쪽빛이었는데, 앞뒤는 판판하게 두고 양옆으로만 잔주름을 접어 내려서 앉아 있어도 주름이 물처럼 발등까지 흘렀다.머리를 낮게 틀어 백옥 비녀를 지른 것도 시녀들이 했다.탁자 사이를 지나던 여자들이 정청 앞에서 걸음이 늦어졌다.하나가 다른 하나의 소매를 당겼고, 당겨진 쪽이 무어라 하려다 말았으며, 둘이 두어 번 더 돌아보며 지나갔다.돌아볼 때 눈이 명주에게 있지 않고 명주 뒤의 중문에 가 있었다.명주는 그것이 제 외모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다."부인이십니까."낯선 여자가 탁자 너머에서 몸을 기울였고, 명주가 반박자 늦게 고개를 돌렸을 때 여자는 이미 웃고 있었다."희다는 말만 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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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향

여자의 이름은 '서란'이라 했다. 스물이라 했다.명주는 그 이름을 세 번이나 되물었다.처음에는 못 알아들어서, 두 번째와 세 번째에는 정확히 기억하고 싶어 재차 물었다."서란아."명주가 아주 애처롭고 작은 목소리로 그녀를 부르자 서란은 다소 고분고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예, 부인.""손을 이리 다오."서란이 숨을 한 번 멈췄다가 두 손을 내밀었다.열 손가락 중 여섯의 손끝이 갈라져 있었고, 그 자리에 피가 말라붙어 검게 남아 있었다.겨울에 찬물을 많이 만지며 제때 돌보아지지 못했을 것이 분명한 흔적들.그 흉터들을 보며 명주는 얼른 소매 안에서 작은 합을 꺼냈다."이거 궁에서 쓰는 연고라고, 여인은 손이 고와야 해.이걸 바르면 금방 나을 거다.""이런 귀한 것을.""나는 손이 트지 않는데, 가주께서 궁에서 하사받으신 물건을 나에게 주셨다."서란이 합을 받다가 손끝에서 한 번 놓쳤다.바닥에 떨어진 것을 도로 집으면서 귀가 붉어졌고, 집고 나서도 명주의 드러난 손을 바라보았다.명주의 손은 갓 깎은 백옥을 물에 헹궈 낸 듯한 손이었다.손가락 마디에는 주름 한 겹 잡히지 않았고 손등에는 힘줄 한 올 서지 않았는데, 손톱만이 안에서부터 배어 나온 것처럼 옅은 분홍으로 물들어 있었다.쥐어 본 적도 짜 본 적도 없는, 평생 찬물 한 번 만져 본 적 없는 손.합이 건너올 때 손끝이 잠깐 스쳤다.눈으로 볼 때보다 서늘한 살결이었다.서란이 제 갈라진 손끝을 오므렸다.서란의 시선이 명주의 손 위에 오래 얹혀 있었다.명주는 서란의 시선 끝에 제 손이 달린 것을 알아채지 못하고, 다만 고마워서 몸 둘 바를 모른다고 생각했다.그 모습이 꽤나 귀엽게 느껴져 서란에게 함께 밥을 먹자 청했다.탁자에 밥과 찬이 차려졌다.서란은 젓가락 한 번 제 손을 거치지 않고 시녀들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서 앉아 있는 여인을 똑바로 바라보았다.씻은 배꽃처럼 맑은 낯에, 물기 어린 눈은 탁자 위 어디에도 닿지 않는 얼굴.소문으로만 듣던 절세가인이 눈앞에서 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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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그믐

"이 집에 물을 못 마시는 사람이 나 말고 또 있느냐."춘월은 얼른 대답하지 못했다."…없습니다, 부인.""그렇구나."명주는 대답이 늦게 온 까닭을 묻지 않았다.서하당에 돌아오자 춘월이 잔을 들어 입술에 대 주었고, 명주는 두 모금 넘겼다.---여름이 가고 가을이 가는 사이 서란은 명주에게서 글을 배웠다.처음에는 주먹으로 붓을 쥐던 사람.명주가 그 손등을 위에서 잡아 쥐는 법부터 고쳐 주었고, 서란은 한 번 배운 것을 두 번 묻지 않는 영특한 사람이었다.서란은 가을이 깊어지자 편지를 쓸 수 있었고, 겨울이 오기 전에는 명주가 쓴 것과 나란히 놓으면 어느 것이 명주의 글씨인지 얼른 가려지지 않았다.명주는 그것을 보고 기뻐했다.---서란이 들어온 그달 그믐이라 달이 없는 밤이었고, 별빛만이 마당의 윤곽을 희미하게 잡아 주었다.그날 밤 명주는 침상에 누워 오래 뒤척였다.낮에 잠깐 잠이 들었던 탓인 것도 같았고 아침부터 무언가 어긋난 것 같기도 했다.오늘 아침에 육정이 방에 들르지 않았다.밤이 깊도록 손목을 쥐러 오지도 않았다.십 년에 없던 일이었다.그녀는 침상에서 조용히 일어섰다.평소라면 주인이 절대 깨어 있을 리 없는 시간이기에 시녀들도 깊은 단잠에 빠져 있는 그런 시각이었다.조용히 회랑으로 나가자 육정의 서재에 불이 켜져 있었다.명주는 맨발로 마당을 가로질러 서재 쪽으로 향했다.밟는 자리마다 흙이 서늘하게 발바닥을 간질였다.중간에 발바닥이 무언가에 찔리고 나서야 신을 신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걸음을 멈추지는 않았다.문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을 때 서재 안에서 옷이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사람이 앓는 것 같은 짙은 숨소리가 들려왔다.명주가 들이쉰 숨이 도로 나오지 않았다.사르륵, 비단이 바닥을 쓸었다.그 위로 삐걱, 삐걱, 나무가 무게를 받는 소리가 일정한 사이를 두고 되풀이되었다.서재의 문틈으로 새어 나온 촛불이 가늘게 흩어졌다가 모아졌다.문틈으로 본 광경은 명주에게는 크나큰 충격이었다.바닥에 떨어진 연둣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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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첩

마당에는 아직 양붕 자국이 남아 있었다.기둥을 박았던 자리가 여태 젖은 채 검었다.진 어멈이 향낭을 갈았는데, 명주의 소매 안에는 손가락 두 마디만 한 주머니가 들어 있어 아침마다 헌 것을 꺼내고 새것을 넣었다.헌 것을 꺼내는 손끝의 손톱이 회색이었다.밤마다 육정이 손수 묶어 주고 간 손목의 매듭을 푸는 것도 어멈의 일이었다.십 년째 하는 일이라 손이 빨라서, 명주는 제 소매에 남의 손이 들어왔다 나가는 것을 잘 느끼지 못했다."오늘 것은 매화를 조금 더 넣었습니다. 소인이 어제…아니, 그저께 것을 코에 대 보니 백단이 앞에 너무 서서요.백단은 오래가고 매화는 먼저 가니, 매화를 조금 더 넣어야 저녁까지 앞뒤가 맞습니다.부인께서는 향이 옅어지는 걸 싫어하시니 소인이 늘 그리 맞춥니다."명주가 고개를 끄덕였다.매화가 어떻고 백단이 어떻고 하는 그 향이 명주에게는 오지 않았다.소매에 든 것에서만 그랬고, 언제부터 그랬는지는 몰라서, 향낭이란 남에게만 나는 것인 줄 알고 살았다.진 어멈은 헌 것을 들고 나가지 않았다.옷궤 아래 서랍을 열고 넣는 눈치였는데, 명주는 돌아보지 않아서 소리로만 알았다.몸단장을 끝낸 춘월이 옷끈 매듭을 고쳐 매어 주고, 단아가 연둣빛 단삼의 깃을 반듯이 눕히는 동안, 세류는 남색 치맛단이 바닥에 닿는 자리를 손등으로 쓸어 폈다.세 사람이 물러가고 나자 육정이 문가에 서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명주가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고는 눈꼬리를 살짝 접으며 웃는 낯으로 그에게 돌아섰다."상공…"육정은 눈 밑이 검었고 옷깃이 한쪽만 접혀 있었다.이틀쯤 자란 수염 아래로 죄책감 같은 것이 스쳤으나, 명주에게는 그 밤의 일도, 그 무엇도 마음에 길게 남지 못했다.다만 그가 아침에 다시 제 처소에 들른 것이 기뻤다.그의 품에 기대자 먹 냄새가 흘러들어왔다.그의 접힌 깃을 풀어 주려 손을 올리다가 멈추었다.남편의 옷에 손을 대 본 적이 없었다.멈춘 손을 가만히 감싸 쥐고 육정이 입을 떼었다."부인."맑은 명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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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안태

아침마다 손이 여섯 개 붙었다.머리를 빗는 손, 옷끈을 잡는 손, 비단 나말을 발에 꿰어 주는 손.명주의 단장을 돕는 손길이 계속되는 동안 그녀는 창호지 얼룩에 시선을 고정한 채 앉아 있었다.재작년 장마에 생긴 것이라고 누가 그랬고, 그 뒤로 단장을 할 때 늘 그 얼룩에 시선을 두었다.빗이 정수리에서 허리께까지 물 흐르듯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와 내려가기를 되풀이했다.늘 스물여덟 번이었다.검은 머리카락이 빗살을 따라 한 방향으로 가지런히 누웠고, 아침 빛이 들 때마다 그 위로 윤이 물결처럼 흘렀다.결이 어긋난 데가 한 올도 없었다.연둣빛 단삼의 앞자락을 여며 준 손이 옷끈을 잡아 오른쪽 옆구리에서 잠깐 분주하다가 물러났고, 다른 손이 남색 치마 허리께를 추어올린 뒤 소맷단을 매만졌다.옆구리에서 옷끈이 당겨질 때 숨이 짧아졌다가 도로 길어졌다.매듭은 늘 왼쪽으로 조금 기울었다.매는 사람의 손버릇이었으나, 제 옷끈을 매어 본 적 없는 명주는 그 기울기가 남의 것인 줄도 몰랐다."다 되셨습니다."명주가 일어서자 치맛자락이 발치에서 접혔다가 흘러내렸다.---후원에서 사람이 왔다."부인. 이낭께 아기가 들어섰다 합니다.""이낭.""서 이낭께서요. 두 달이라 하옵니다. 석 달인가."명주가 잠자코 기다렸으나 아무도 더 말하지 않았다."어디 아픈 게냐.""아니오, 부인. 경사이옵니다.""어. …경사."명주가 소매 안에서 손을 폈다가 오므렸다.명주의 배는 철마다 어머님이 불러 주시는 의파(醫婆)가 만지고 갔다.찬 손이 갈비 아래를 한참 누르다 물러났다.아이를 기다려 주시는 것이라고 명주는 알았다. 십 년째였다."그럼 무얼 해 주어야 하느냐."방 안의 사람들이 무심코 서로를 마주 보았다가 다들 바닥으로 눈을 내렸다.하나가 참으려다 못 참고 소리를 냈고, 옆에서 따라 웃다가 둘 다 얼른 고개를 숙였다.곁에 섰던 진 어멈이 나섰다."안태약이나 한 제 지어 보내시지요.소인이 이 집에 온 뒤로 그 약이 두 번 나갔습니다.두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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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이름

처마 끝에서 똑, 똑, 물 떨어지는 소리가 아직 남아 있었다.낮부터 오던 비가 저녁에 가늘어졌다가 밤에야 그친, 비 잦은 가을의 시월 초이레였다.그 밤, 후원에서 짐승이 울부짖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고 명주가 그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 깨었다.시녀들이 침상으로 달려오지 않는 것이 이상하였다.밖은 사람이 뛰는 소리, 누가 이름을 부르는 소리로 가득 차 있었다.명주가 조심히 회랑으로 나가자 물을 나르던 하인 몇이 명주를 지나쳐 후원으로 달려가고 있었다."부인은 들어가 계시는 것이 좋겠습니다."시녀가 명주의 팔을 잡아끌었는데, 잡아끄는 손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무슨 일이 있느냐?""들어가십시오. 들어가십시오, 부인."명주가 팔을 흔들어 뿌리치자 시녀가 놀라 손을 놓치고 말았다.십 년 동안 한 번도 없던 일이었다.명주는 맨발인 채로 후원을 향해 걸었고, 등이 지나갈 때마다 젖은 마당이 번들거리며 발가락 사이로 흙이 들어왔다.차가운 것이 먼저 오고 미끄러운 것이 나중에 왔다.문 앞에 선 사람들이 명주를 보고 고개를 숙이며 길을 텄다.방 안에는 의원 둘, 여자 하인 여럿이 분주했다.더운 냄새, 비릿한 쇠 냄새.그 냄새가 코에 닿자 명주의 숨이 반만 들어왔다.방 안에 서란이 창백한 얼굴로 누워 있었다.이불 아래가 온통 붉었다."피… 피가…"명주가 서란이 걱정되어 침상으로 몇 걸음 더 다가가자 서란이 눈을 번쩍 뜨며 그녀를 보고 울기 시작했다."언니."명주가 붉은 이불 앞에 무릎을 꿇고 서란의 손을 찾았다.땀에 젖어 머리칼이 이마에 가 붙어 있는 창백한 서란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지며 명주를 향해 물었다.한 마디 하고 숨을 쉬고 나서 다음 마디가 왔다."언니가… 왜 그러셨어요."서란의 손을 찾던 명주의 고운 손이 멈춰 섰다."응? 내가 무얼…""약을…"명주의 소매를 움켜쥐는 서란의 손이 이제 갈라져 있지 않고 매끈한 분홍빛이 돌았다."제가 언니를 얼마나 믿었는데…"방 뒤쪽에서 누군가 흐느꼈고, 흐느낌이 번지듯 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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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편원

편원은 마당 서쪽 끝에 있었다.원래 곳간으로 쓰던 자리에 방을 들인 것이라 창이 하나였고 그 창이 북쪽을 봤다.해가 들지 않아 낮에도 벽이 찼다.벽 아래쪽에 포대 자국이 남아 있었다.무언가를 오래 쌓아 두었던 자리만 색이 옅었다.방을 들이면서 종이를 새로 발랐는데 그 자리만 풀이 덜 먹어 귀가 들떠 있었다.방의 캉(炕)은 아침에 데워지지 않았다.화덕이 멀어서 불기가 오다가 마는 방이었다.밤이면 벽지의 들뜬 귀가 제 숨에도 바스락거렸고, 이불 밖으로 나온 코끝이 시렸다.쪽창으로 담이 걸쳐 보였고 담 위로 하늘이 한 뼘 있었다.아침에는 그 한 뼘이 희고 저녁에는 붉었다.붉은색이 사라지고 나면 방 안의 하루는 그것으로 끝이었다.그 방으로 명주의 세간살이가 모두 옮겨졌다.옮기는 데 꼬박 반나절이 걸려서 큰 옷궤가 셋, 작은 궤가 넷, 옷이 스무 벌 남짓 넘어왔으나 편원으로 큰 옷궤는 들이지 못해 되돌아갔다.되돌아가는 옷궤가 마당을 건널 때마다 안에서 무엇인가 데구루루 구르는 소리가 났다.명주는 단지 자리가 옮겨진 것 외에는 더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시녀가 연둣빛 치마를 가져다 궤짝 위에 올려 두었고 명주는 그 옷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서란을 떠올렸다.---편원에는 시녀가 한 명 붙었다.이름을 세 번이나 물었으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아 명주는 조금 슬펐다.아이는 물그릇이며 밥을 문지방 안에 내려놓고는 그대로 나가 버렸다.처음 며칠은 그것이 곤욕이었으나 익숙해지자 아침에 몸을 일으키면 먼저 문지방으로 물을 마시러 갔다.밤새 식은 물은 이가 시리게 찼고, 명주는 그릇을 두 손으로 받쳐 들고 천천히 마셨다.첫날에는 한 손으로 들다가 놓쳤고, 쏟은 물이 마르는 데 하루가 걸렸다.생선을 발라 주는 이도 없었고 머리를 빗겨 주는 이도 없었다.십 년 동안 복기하듯 기억해 두었던 그녀의 일상이 뒤바뀐 것이 명주는 그저 어려웠다.명주는 사흘째에 젓가락으로 생선을 헤집어 보았다.하얀 살 속에서 잔가시가 은침처럼 일어섰다.가시를 삼켰고, 목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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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심가

편원 문밖에서 시녀가 누군가와 소곤거리고 있었다.명주가 창에 귀를 대자 십일월 찬바람이 창지 틈으로 새어 들어왔다."…북쪽에서 성 하나가 떨어졌대.""성문에 방이 붙었어.군량 댄 집부터 잡아들인다고.""…안란후께서 하옥되셨다는데.""쉿.""조량이라던가. 삼 년 치가 비었다고.삼 년이면 배가 몇 척이야.우리 가주께서 그 댁 뱃길에 이름을 얹어 두셨다는데, 이름 얹은 사람도 같이 부르지 않겠어?아니, 부른다는 게 아니고…아니, 그럴 수도 있다는 거지.아유, 나는 몰라.나는 아무것도 못 들었어.""심가가 저리 되면 이 댁 뱃길은 어찌 된대.""그걸 우리가 왜.""쉿, 안에서 듣는다."명주가 문을 열자 시녀가 놀라 돌아섰다."우리 아버지가.""부인.""우리 아버지가 어찌 되었다고."시녀는 대답하지 않고 물러갔고, 명주는 문 안에 가만히 서 있었다.심가, 하옥, 조량.들은 말들은 이어지지 않은 채 흩어지고 아버지가 옥에 있다는 것만 남았다.옥이 어디 있는지도 몰랐지만 아버지에게 나쁜 일이 생긴 것만은 틀림없었고, 마음이 까닭 없이 조급해졌다.명주는 비뚤어진 옷끈 채로 내원으로 달려 나갔다.편원에서 내원까지는 마당을 두 번 건너야 했고, 서리 앉은 흙이 내딛는 자리마다 신 밑에서 버석버석 부서졌다.명주는 그 길을 허둥지둥 걸으며 아버지, 하옥, 두 단어를 되뇌었다.지금 고해야만 아버지가 괜찮을 것 같았다.내원에서 서재로 꺾어 드는 길목에서 종이 명주를 가로막고 섰다."어. 가주께서 안 계십니다."명주가 문설주를 짚고 서재 쪽을 봤다."기다리겠다."종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땀만 흘렸다.명주가 다시 말했다."가주님을 여기에서 기다리겠다."명주는 서재 앞 섬돌 위에 그대로 주저앉아 버렸다.섬돌은 얼음장처럼 찼고, 그 기운이 치마를 지나 허리께까지 올라오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해가 뉘엿뉘엿 기울었다.오가던 계집종들이 명주를 흘끔 돌아봤다가는 눈을 돌렸다.둘이 저희끼리 무슨 말을 하다가 웃음이 터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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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초순

편원 문밖에서 웅성웅성 소란한 소리가 들려왔다.서재 앞에서 밤을 새워 육정을 만나고 온 지 사흘째 되던 아침.명주가 동경 앞에서 스스로 머리를 빗었다.사흘째라 손이 조금 익었다.명주가 문을 열자 찬 아침 빛이 확 밀려들었다.마당에 손님이 와 있었다.심가에서 온 유모였다.그녀가 어릴 적, 작고 여린 명주를 늘 업어 재워 주던 사람, 업히면 마른 쑥 냄새가 나던 사람이었다.그 등이 이제 굽어 더는 아이를 업을 수 없겠다고 명주는 생각했다.유모의 발이 온통 흙투성이에 한쪽 신끈이 끊어져 새끼줄로 묶여 있는 것은 명주에게는 보이지 않았다.명주의 까맣고 순진무구한 눈동자를 보자 유모는 가슴이 저렸다."아가씨!"유모는 그만 무릎이 꺾여 흙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숨이 턱에 닿아 있었다.다음 말은 한참 뒤에 나왔다."대인께서…""아버지가?"명주가 신도 꿰지 않고 나말만 신은 발로 문지방을 넘어 유모 앞에 서자 섬돌의 찬 기운이 발바닥에 쨍하게 올라왔다."대인께서 어제 새벽에 가셨습니다…. 흑… 끄윽…"명주가 그 말을 알아들었다.알아듣고 나서 할 일이 없었다.우는 사람 앞에 서 있는 것 말고는 배운 적이 없었다.유모가 고개를 들었다가 아가씨가 울지 않는 것을 보고 도로 숙였다.끅끅 삼키다 터진 울음이 이른 아침 편원을 지나 온 마당에 낮게 퍼져 나갔다.하방 쪽에서 문이 하나 열렸다가 다시 닫혔다.명주가 유모를 향해 고개를 숙이자 빗다 만 머리가 어깨에서 흘러내렸다."가주께서 사람을 보내겠다고 하셨다."명주가 밝은 얼굴로 유모의 어깨를 흔들며 말했다."…아가씨. 대인께서 사흘을 굶으셨습니다.옥에서 주는 것을 안 드시고, 소인이 넣은 것도 안 드시고요. 그러다 어제…아니, 그저께 밤에 누가 약을 넣어 드렸다 하는데 그날부터 잡수셨다 합니다.잡수시고 하루 만에요, 아가씨.하루 만에 가셨습니다. 약을…누가 옥에 약을 넣어 드렸다 하옵니다."유모가 고개를 들어 명주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말했다.명주는 고개를 머리칼이 흘러내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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