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연옥화(軟玉花) — 향이 없는 꽃: Chapter 31 - Chapter 40

231 Chapters

30화 연옥화

이제는 정말로 돌아가야 할 때였다.그러나 오늘 나온 값을 아직 하나도 사지 못했고, 다음 날이 언제일지는 그녀도 알 수 없었다.빨리 사고 빨리 간다고 그녀는 침착하게 마음을 정했다.시약장에서 보이지 않는 골목 안쪽에 손님 없는 가게 하나가 있었는데, 문간에 내놓은 소쿠리에 뿌리가 수북했고, 그녀의 발이 거기서 저절로 멎었다.조금 전 석두의 입에서 나던 바로 그 아린 냄새라는 것을 그녀는 금방 알아차렸다."이건 뭐예요. 냄새가 아린데."그녀는 소쿠리를 가리키며 조심스럽게 물었다."그거? 써 붙였잖소, 한 줌에 서 푼.그래, 뭘 찾소."약재상이 좌판 안쪽에서 귀찮은 듯 고개를 들고 퉁명스럽게 되물었다.북변으로 가는 환약에서 서 푼짜리 냄새가 났다는 사실을 그녀는 조용히 기억에 넣었다.그 이유는 아직 알 수 없었지만, 언젠가 반드시 쓸 데가 있을 것이었다."사람 재우는 거요.밤에 깊이 자게 하는 거.""그런 게 열두 가지요. 이름을 대쇼."약재상은 손가락으로 소쿠리 열두 개를 차례로 가리켰다."이름은 몰라요. 맛을 보면 알아요."그녀가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대답하자, 약재상이 그녀를 위아래로 미심쩍게 훑었다."약을 누가 맛으로 사.종 계집이 무슨 맛을 안다고."그러나 한경은 그 말을 못 들은 척하고 벌써 맨 앞 소쿠리의 것을 코에 대고 있었다.모르는 것은 입에 넣지 않는다는 것이 십칠 년 동안 지킨 습관이었다.다만 파는 사람이 약이라 부르고 값을 매긴 물건은 반쯤 아는 물건이었으며, 나머지 반은 코로 맡고 혀끝에 댔다가 뱉으면 되었다.아랫사람이 이랬으면 그날로 내보냈을 것이라고 그녀는 생각했고, 그 생각이 조금 우스웠다."이건 달기만 하네요.""그걸 왜 씹어! 그건 달여서—"약재상이 기가 막힌 듯 소리쳤지만, 그녀는 이미 다음 소쿠리에 손을 넣고 있었다."이건 그냥 풀인데요.이걸 누가 잠 오는 데 써요?"약재상이 잠시 말을 더듬으며 눈을 피했다."…다들 쓰오.""다들 속았네요."그녀는 담담하게 말했고, 약재상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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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화 말하지 마라

골목은 세 번 꺾이고 담으로 끝났다.담 밑에는 깨진 독 조각만 쓸쓸하게 쌓여 있었다.시약장의 패를 찬 사내 둘이 그녀를 그 담까지 느릿하게 몰아 놓고 섰다.하나는 어깨가 넓었고 하나는 왼쪽 눈썹이 끊겨 있었다.어깨 넓은 쪽이 먼저 거칠게 입을 열었다.아까 탁자에서 엄지를 긋던 바로 그 사내였다."시약장에서 죽을 놈을 살리는 건 관의 물건에 손댄 거다. 어느 집이냐. 약 댄 집이냐.제 집 약에 사람이 넘어가니까 계집을 보내 살려 놓으라더냐."그녀는 대답할 말이 없었다.그 집이 맞았고, 종의 옷을 입은 이 여자가 바로 그 약을 댄 육가의 정실이라는 사실만 그들이 몰랐다.사내가 그녀의 손목을 잡아 거칠게 뒤집자, 재가 씻긴 손바닥이 볕 아래 하얗게 드러났다."그 손은 종 손이 아닌데."사내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의심으로 눈을 가늘게 떴다.소리를 지르면 사람이 오고, 사람이 오면 관아로 가고, 관아에서는 이름을 대야 한다는 것을 그녀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그러나 손목은 사내의 엄지와 검지 안에 꽉 잡혀 있어서 달아날 수도 없었다.사내가 턱짓하며 명했다."만석아, 수건 벗겨 봐라."그러자 눈썹 끊긴 쪽이 머릿수건을 거칠게 잡아챘다.사내 둘의 눈이 그녀의 얼굴에서 동시에 멎었다."형님, 이건 종이 아니오.이런 얼굴이 종일 리가 없소."만석이 당혹한 소리로 말했다."그러게 어느 집이냐니까."어깨 넓은 사내가 손목을 당기며 무슨 말을 더 하려고 입을 열었는데, 말 대신 다른 것이 나왔다.곧이어 목울대 한가운데로 쇠붙이의 끝이 손가락 한 마디만큼 돋았고, 사내는 그것을 내려다보려는 것처럼 턱을 당겼다.목에서 물 끓는 소리가 나더니, 뜨거운 것이 그녀의 앞치마에 튀어 붉은 실로 놓은 잎사귀 곁에 붉은 점을 남겼다.쇠끝이 도로 들어가자 사내가 무너졌는데, 손목을 쥔 손은 무너진 뒤에도 한 호흡을 더 쥐고 있다가 풀렸다.만석이 돌아서 뛰었지만 네 걸음째에 앞으로 엎어져 다시 일어나지 않았는데, 소리가 조금도 없었다.---골목 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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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화 댁

그는 무슨 약이냐고 되묻지 않았다.제가 삼키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아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녀는 그 침묵으로 알았다."끊으면 주는 사람이 알겠죠.끊은 날부터 그 사람이 댁을 다르게 볼 거예요."그녀는 턱 밑의 날을 의식하며 조심스럽게 대답했다.주는 사람이라는 말에서 그의 숨이 한 번 걸렸는데, 아주 짧았지만 그녀는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그러면 삼키고, 보는 눈이 나간 뒤에 게워요.그러면 들어간 것이 반은 도로 나와요.""어찌."그가 나직하게 되물었는데, 그 한 마디에는 묻는 사람의 호기심보다 명하는 사람의 습관이 더 많이 들어 있었다.한경은 턱 밑의 날이 살갗을 누르는 것을 느끼면서도 천천히 손을 들었다.그녀는 두 손가락을 모아 그의 턱 아래, 목울대 위 오목한 데를 가만히 짚었다.그는 조금도 피하지 않았지만 닿은 자리의 살결이 한 번 움찔했는데, 누가 손을 댄 지 오래된 살결이라는 것을 그녀는 손끝으로 알았다."여기. 두 손가락.여기 닿을 때까지 누르면 저절로 올라와요."그녀는 의원이 환자에게 이르듯 또박또박 말했다.손끝이 닿은 자리에서 그의 맥이 빠르게 뛰었다.얼굴은 겨울 호수처럼 잔물결 하나 없는데, 맥만 혼자 달리고 있었다.그녀는 그런 몸을 하나 알고 있었다.오늘 아침에도 그 몸으로 시어머니 앞에 앉아 있었다.손끝에 닿은 것은 환자의 목이라고 그녀는 생각했으며, 그 손끝을 받는 쪽이 무엇을 생각하는지는 끝내 헤아리지 않았다.이윽고 그가 손가락 하나를 아주 작게 까딱했다.턱 밑의 찬 것이 사라졌으며, 잿빛 옷은 그의 등 뒤 담 그늘로 그림자처럼 소리 없이 돌아갔다.그가 천천히 일어서자 그녀의 손가락이 그의 목에서 떨어졌다.그 순간 그의 입술이 소리 없이 움직여 네 글자를 만들었다.말하지 마라, 하는 네 글자였다.등 뒤의 두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입이었고, 그것이 둘만의 비밀이 된 첫 순간이라는 것을 그녀는 아직 몰랐다.그러고 나서 그는 비로소 소리를 내어 서늘하게 말했다."가거라. 돌아보지 말고."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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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화 형틀

초하는 서하당 문 안쪽에 주저앉은 채 넋이 나간 얼굴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정실이 종의 옷으로 문지방을 넘어오자, 아이는 울음과 말을 동시에 터뜨렸다.겁이 나면 말이 넘치는 아이의 습관은 오늘도 그대로였다."부인! 소인은 죽는 줄 알았어요.붕어탕은 다 먹었고요, 아니 그건 점심이고, 저녁은 주무신다고 또 돌려보냈는데 진 어멈이 그럼 들어가 보겠다고 해서 소인이 문지방에 드러누웠거든요.진 어멈이 소인을 넘어가려다 발이 걸려서 넘어졌고, 그래서 화가 나서 그냥 갔어요."그녀는 머릿수건을 벗으며 그 말을 끝까지 묵묵히 들었다.그런데 진 어멈이 넘어진 대목에서는 하마터면 웃을 뻔했다."뒷문 빗장. 네가 걸었느냐."그녀는 웃음을 삼키고 아주 낮게 물었다."소인은 이 방에서 한 발짝도 안 나갔어요. 정말이에요."초하가 몹시 억울한 얼굴로 대답했다.그 눈에 거짓이 없다는 것을 그녀는 한눈에 알았고, 조금 안도했다.그러면 누가, 하는 의문이 그녀의 머릿속에 차가운 돌처럼 남았다."부인. 앞치마에 그게 뭐예요.""내 것은 아니다."그녀는 짧게 대답했으며, 초하는 그 핏자국의 뜻을 묻는 대신 고개를 숙였다.그녀는 종의 옷을 벗고 목과 손의 재를 천천히 씻었다.헝겊신이 발바닥에 피로 붙어 있어서 떼어 내는 데 한참이 걸렸다.떼어 내는 동안 운 것은 그녀가 아니라 초하였다.봉지 셋은 침상 널 밑으로 조용히 들어갔다.그러나 피 묻은 앞치마는 태울 새가 없었다.회랑에 발소리가 나자, 초하가 그것을 뭉쳐서 재빨리 옷궤 밑으로 밀어 넣었다.---밤이 되자 마당의 등이 평소보다 늘었다.그녀는 그 불빛의 뜻을 금방 짐작하고 숨을 죽였다.마당의 긴장이 창지 너머로도 전해져 왔다.한경은 침상에서 무릎으로 내려와, 어젯밤 손톱으로 뚫어 둔 창지의 구멍에 가만히 눈을 댔다.마당 가운데 긴 걸상이 형틀로 놓여 있었으며, 염 노인이 거기 엎드려 묶였다.묶이기 전에 노인은 회랑 쪽으로 고개를 들고 무엇을 말하려고 입을 열었다.그런데 장복이 허리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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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화 발

문이 열리고 먹 냄새가 먼저 방 안으로 들어왔다.단아가 구리 대야를 들고 뒤따라 들어와 침상 발치, 옷궤 앞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는데, 김이 조금도 오르지 않는 물이었다.이 여자가 뜨거운 것을 못 견딘다는 사실을 그가 알고 있다는 뜻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두고 나가거라."종에게 하는 그의 말은 늘 짧고 끊기는 데가 없었다.한경은 침상 가에 앉아 그를 맞았다.얼굴은 인형의 것으로 돌려놓았으며, 느린 눈과 조금 벌어진 입술까지 열 해 동안의 그대로였다.육정은 한참 서서 아내를 말없이 내려다보았다.그러고는 천천히 무릎을 굽혔다.낮에 대문간에서 군관을 말에서 내리게 한 사람이, 전돌 바닥에 한 무릎을 대고 아내 앞에 앉은 것이었다.그의 손이 치맛단 밑으로 들어와 발목을 가만히 쥐었다.몸이 머리보다 먼저 알았고, 맥이 뛰어올랐으며, 발목의 살결이 그 손바닥의 온기를 저절로 받아들였다.하루에 한 번 손목에만 오던 손이 발목에 왔다고, 이 몸은 그 손을 반기고 있었다.그러나 그것은 방금 서른을 세게 한 손이었다.한경은 그 사실을 머릿속으로 또박또박 되뇌었지만, 몸은 이성의 말을 조금도 듣지 않았다.수치심과 안도감이 한꺼번에 밀려와서, 그녀는 어느 쪽을 먼저 느껴야 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그는 초하가 급히 감아 둔 천을 천천히 풀었다.천이 피에 말라붙어 있었는데, 그는 당기지 않았다.손바닥으로 물을 떠 붙은 자리에 끼얹고, 불기를 가만히 기다렸다가, 한 겹씩 떼어 냈다."…부인은 발이 얇소.이런 발로는 멀리 못 가오."그가 나직하게, 거의 혼잣말처럼 말했다.그 목소리에는 탓하는 기색이 없었고, 오히려 무엇을 아끼는 사람의 온기가 묻어 있었다.그는 발을 조심스럽게 대야에 담갔다.터진 자리에 물이 닿자 발가락이 저절로 오그라들었으며, 그는 손을 멈추고 발가락이 다시 펴질 때까지 묵묵히 기다렸다.물이 서서히 분홍빛이 되었다.그의 엄지가 발바닥 가장자리부터 씻어 들어왔다.깨질 자기를 만지듯 조심스러운 손이었다.한경은 그 조심스러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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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화 피에 트는 씨

아침에 그녀는 끝내 제 발로 일어서지 못했다.터진 발바닥이 바닥에 닿자 무릎이 저절로 꺾였으며, 초하가 비명을 지르며 달려와 그녀를 침상에 도로 앉혔다.문안에는 결국 가지 못했다.발이 아파 그렇다고 가주가 노부인에게 아뢰었다는 말을 진 어멈이 전했으며, 며칠 누워 있으라는 가주의 말도 함께 전했다.누워 있으라는 말은 가두는 말과 같다는 것을 그녀는 알았고, 그 사실을 체념하듯 받아들였다.진 어멈은 여느 아침처럼 의심 많은 눈으로 손목의 매듭을 살폈다.어젯밤 그가 묶은 매듭이 그대로였으므로 회색 손톱은 말없이 물러갔다.그런데 물러가던 어멈이 문지방에서 한마디를 더 떨어뜨렸다."뒷문에 쇠를 달았습니다.가주 말씀입니다."그녀는 등잔만 보는 시늉으로 그 말을 묵묵히 들었다.제 발로 밟아 둔 길 하나가 하룻밤 사이에 닫혔다는 사실이 가슴 어딘가를 돌처럼 눌렀지만, 얼굴에는 조금도 내지 않았다.초하가 낮은 소리로 하방 소식을 전했다.염 노인은 하방 끝방에 엎드려 누워 있고, 오 어멈이 밤새 곁을 지켰으며, 아침에 겨우 물을 넘겼다고 했다."부엌 꿀을 조금 보내라.소금물로 먼저 씻고, 꿀을 얇게 바르라고 어멈에게 이르고."그녀는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일렀다."부인이 보내셨다고 할까요?""아니. 네가 훔쳤다고 해라."초하가 눈을 크게 떴다가, 이내 알아들은 얼굴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정실이 보낸 꿀은 가주의 귀에 들어가지만, 시녀가 훔친 꿀은 부엌에서 끝난다는 것을 아이도 아는 것이었다.---초하가 발을 씻으라고 대야를 가져왔다.어젯밤 그의 손이 닦아 낸 자리에 밤새 새로 피가 배어 있었으며, 천을 풀자 물이 금방 붉어졌다.그녀는 발을 담근 채 손수건을 펼쳤다.밤마다 골라내어 모아 둔 알갱이들이 서른 몇 알, 어둑한 방에서 조그맣게 빛났다.오늘 밤부터는 약재상에서 산 풀씨를 그 자리에 채워 넣을 것이었다.그러면 주머니의 무게는 그대로이고, 그의 손은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지나갈 것이었다.그것이 그녀의 계산이었다.그런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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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화 병풍

사흘째 밤에 그녀는 낯선 꿈을 꾸었다.불빛이 있었고, 무엇을 달이는 냄새가 있었으며, 누구의 등에 업힌 아이 하나가 그 불빛 너머에서 그녀를 보고 있었다.아이의 눈과 마주친 순간 큰 손 하나가 그녀의 어깨를 거칠게 돌려세웠으며, 그녀는 거기서 깨었다.이 몸이 땀을 흘리고 있었다.열 해 동안 땀 한 방울 없던 살결이 축축하게 젖어 있다는 것을 그녀는 손바닥으로 알았고, 그 사실에 이상한 안도를 느꼈다.밤마다 알갱이를 골라낸 지 벌써 열흘이었다.이 몸에서 무엇이 빠져나가고 있었고, 땀이 그 첫 기별이었다.그런데 그 꿈은 한경의 것이 아니었다.명주의 기억 어딘가에 눌려 있던 것이 땀과 함께 올라온 것이라는 사실을 그녀는 어렴풋이 짐작했다.그날 밤 그가 왔을 때, 그녀는 아직 그 꿈에서 다 나오지 못한 얼굴이었다."…잠을 못 주무시오?"그가 손목을 쥔 채 낮게, 조심스럽게 물었다."꿈을… 꿉니다."그녀는 인형의 느린 목소리로 대답했는데, 그다음 말은 시늉이 아니라 저절로 나왔다."불이… 아이가…"그의 손이 손목 위에서 돌처럼 굳었다.등잔 아래에서 그의 낯빛이 눈에 띄게 하얘지는 것을 그녀는 똑똑히 보았다.무엇을 아는 사람의 얼굴이라는 것을 그녀는 알아보았다.그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천천히 몸을 숙여 그녀의 이마에 입술을 가만히 댔다."잊으시오."그가 쉰 목소리로 말했다.그 한 마디는 명령이었지만, 목소리는 간청에 가까웠다.그가 나간 뒤에도 이마에 남은 온기가 오래 식지 않았고, 그녀는 그 온기와 그 하얘진 낯빛을 나란히 기억에 넣었다.이 사람은 그 꿈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그리고 내게는 끝까지 말하지 않을 것이다.---이튿날 정오, 그녀는 발에 천을 감고 조용히 서재로 갔다.가주는 어공서에 나가 있었고, 종들은 점심을 먹으러 하방에 몰려 있었으며, 회랑에는 볕만 하얗게 깔려 있었다.북에 보낸 금창약이 밀가루였다면 어디서 바뀌었는지가 장부에 남아 있을 것이라고 그녀는 계산했다.그것이 이 집의 약점이고,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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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화 몽유

그는 아내를 안고 한낮의 마당을 천천히 가로질렀다.점심을 먹고 나오던 종들이 회랑과 섬돌에서 돌처럼 굳었으며, 스무 개 남짓의 눈이 가주의 팔에 늘어진 정실의 남색 치맛단을 따라왔다.한경은 그의 어깨에 뺨을 댄 채 눈을 감고 있었다.숨을 고르게 쉬는 시늉은 열 해 동안 이 몸이 가장 잘해 온 일이었고, 지금도 조금도 어렵지 않았다."더위를 드셨다. 오늘 본 것은 이 마당에 두어라."그가 걸음을 멈추지 않고 마당에 대고 낮게 말했다.크지 않은 목소리였지만, 마당의 누구도 그 말을 되묻지 않았다.그리고 의원을 부르라는 말은 끝내 나오지 않았다.그 이유를 그녀는 그의 어깨에 기대어 침착하게 헤아렸다.의원이 오면 종이에 적고, 종이에 적힌 병은 집안의 병이 되며, 밤에 걷는 정실은 쫓아낼 수 있는 아내가 된다.이 사람은 종이를 두려워하고 있었다.무엇 때문인지는 아직 알 수 없었지만, 그 공포가 지금은 그녀를 지키고 있다는 것을 그녀는 알았다.서하당 문 앞에는 장복이 어느새 그림자처럼 서 있었다."장복아. 오늘부터 이 문에 서라.""예."장복이 고개를 숙이며 짧게 대답했고, 그 한 마디로 서하당의 문은 안에서 열 수 없는 문이 되었다.그녀는 그것을 들으면서도 눈을 뜨지 않았다.간수가 하나 늘었다는 사실을 몸이 먹먹하게, 체념하듯 받아들였다.---그는 그녀를 침상에 눕히고도 나가지 않았다.해가 지고 등이 켜지고 밤이 깊어지도록, 그는 침상 가 걸상에 앉아 아내의 손목을 묵묵히 쥐고 있었다.손목의 주머니가 그의 손바닥 밑에서 곱절로 데워져 갔으며, 그녀는 눈을 감은 채 그 온기를 느꼈다.자는 사람의 숨을 그녀는 끝까지 유지했지만, 귀만은 짐승처럼 깨어 있었다.문밖에서는 장복이 밤새 한 번도 자리를 옮기지 않았다.숨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거기 있다는 것을 그녀는 살갗으로 알았다.마침내 마당의 등이 하나씩 꺼질 무렵, 그가 혼잣말처럼 아주 낮게 말했다."…삼월이 무엇이오."자는 아내에게 하는 물음이었다.대답을 바라지 않는 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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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화 등에 감았던 천

뒷창은 미리 기름을 먹여 둔 덕에 소리 없이 열렸다.장복은 문 앞에 서 있었지만, 문 앞만 지키고 있었다.창 아래 어두운 뜰로 조심스럽게 내려서면서 그녀는 그 사실을 고맙게 여겼다.하방 끝방에는 등잔 하나가 낮게 켜져 있었다.그 불빛 아래 오 어멈이 혼자 앉아 있었으며, 그 앞에 거적을 덮은 긴 것이 가만히 놓여 있었다.그녀가 문지방을 넘자 늙은 여자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고, 그 눈에는 원망도 경계도 없이 피로만 남아 있었다."부인이 나가셔서 우리 집 사람이 맞았습니다."오 어멈은 울지 않았고, 울음을 다 쓴 사람의 메마른 목소리로 말했다.한경은 피풍의 깃을 내리고 그 말을 피하지 않고 그대로 받았다."그래. 내가 나가서 그 사람이 맞았다."그녀는 거짓도 변명도 하지 않았으며, 늙은 여자는 그 대답에 조금 놀란 듯 눈을 들었다.그녀는 거적 곁에 무릎을 꿇고 천천히 거적을 걷었다.겁이 나면 읽는 것이 습관이었지만, 지금은 겁이 아니라 빚과 책임 때문에 읽었다.눈꺼풀을 열자 동자가 밤의 고양이처럼 크게 벌어져 있었고, 입을 열자 혀가 가물 든 논처럼 갈라져 있었다.그리고 살결은 종이처럼 마르고 땀기가 없었다.그런데 등을 돌려 보자 매 맞은 자리는 오히려 아물어 가고 있었다.딱지가 앉은 자리 위로 희끄무레한 것이 얇게 말라 있었으며, 코를 대자 쓴내 밑에 단내가 있었다.그 밑에 아무 냄새도 없는 것이 하나 더 있다는 진실을, 그녀는 냄새가 아니라 앎으로 알았다."고약이군."그녀는 확신을 담아 혼잣말처럼 낮게 말했다."후원에서 보낸 것입니다.제가 아는 약이 있다고요."오 어멈이 거적을 도로 덮으며 힘없이 말했다."처음엔 좋아졌습니다.아픈 데가 덜하다고 했고, 잠도 잤습니다.그런데 사흘째부터 물을 찾고, 빛을 싫다 하고, 밤에는 저기 문간에 누가 서 있다고…"늙은 여자의 목소리가 거기서 뚝 끊겼다.한경은 그 끊긴 자리에 말을 넣지 않았다.침묵이 지나가기를 묵묵히 기다렸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형틀에서 노인이 무슨 말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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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화 쓴 것

오 어멈이 찾아낸 것은 뒷광 쪽으로 늘어선 장독들 가운데, 금이 가서 비워 둔 맨 끝 독 안에 있었다.유월 스무날 밤이었고, 그믐까지는 아흐레가 남아 있었다.그녀는 기름 먹인 뒷창을 소리 없이 넘었으며, 초하가 등잔도 없이 그 뒤를 바싹 따라왔다.아이의 숨소리에 겁이 그대로 묻어 있었다.장복은 오늘 밤에도 서하당 앞문에 서 있었지만, 뒷창 쪽 어두운 뜰까지는 그 눈이 닿지 않았다.오 어멈은 독 그늘에 몸을 낮추고 기다리다가, 두 사람이 다가오자 허리도 펴지 않은 채 낮게 아뢰었다."후원 사람이 이경이 지나면 꼭 여기를 다녀갑니다.뚜껑을 들고 무엇을 꺼내 흔들어 보고는 도로 넣고 갑니다.오늘도 방금 갔습니다.""언제부터 지켰어."한경이 짧게 묻자, 늙은 여자는 독 가장자리를 짚은 손에 힘을 주었다."그이를 묻은 이튿날부터입니다.부엌 뒷문에 앉으면 여기가 다 보입니다."그 목소리에는 슬픔보다 독기가 더 짙게 배어 있었다.남편을 잃은 지 사흘 만에 늙은 여자는 울음 대신 경계를 배운 것이었다.빚을 갚겠다고 한 사람 앞에서, 이 여자는 받을 것을 먼저 찾아 들고 온 것이었다.한경은 무거운 뚜껑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빈 독 바닥에 손바닥만 한 흰 사기병 하나가 세워져 있었고, 아가리는 밀랍 먹인 헝겊으로 단단히 막혀 있었다.그녀가 마개를 조심스럽게 뽑자, 곁에 선 초하가 먼저 코를 막았다."꽃 냄새가 진해요.부인 향낭에 든 그 꽃이요. 옥빛 나는 꽃잎.그게 열 곱은 진하게 나는데요."초하는 겁도 잊은 듯 신기한 얼굴로 소곤거렸다."부인은 안 나세요?"그러나 한경의 코에는 꽃이 조금도 오지 않았다.혀뿌리가 저절로 오그라드는 쓴내만 곧장 코 안쪽을 찔렀으며, 손끝이 서늘하게 식었다.밤마다 향낭에서 골라내는 알갱이의 냄새였고, 소매 속에 접어 둔 염 노인 등의 천에서 나던 냄새였으며, 그 둘보다 훨씬 진했다.씨를 달인 물이라는 것을 그녀는 단숨에 알아차렸다.남의 코에는 꽃이 먼저 오고, 쓴 것은 그 밑에 조용히 묻힌다.하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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