บททั้งหมดของ 연옥화(軟玉花) — 향이 없는 꽃: บทที่ 31 - บทที่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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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화 글씨

서란이 향낭을 지어 왔다.옥색 하나. 매듭이 단정하고 실 끝이 하나도 삐져나오지 않았다."백단에 매화만 넣었어요.부인이 무겁다 하셔서.""고생했어."받아서 소반에 놓았다.서란의 눈이 향낭을 따라왔다가, 소매로 갔다가, 도로 향낭으로 갔다.소매에 넣기를 기다리는 눈이었다.넣지 않았다."부인.""응."서란이 무릎 위에서 두 손을 모았다."소인, 청이 하나 있어요.""해 봐.""글을 배우고 싶어요."창으로 든 볕이 서란의 무릎까지 와 있었다.얌전히 모인 두 손.손끝의 갈라진 자리는 어느새 아물어 가고 있었다."글은 왜.""까막눈이 답답해서요.장 보러 온 종이 하나 못 읽고.""바깥에 훈장 두면 되겠네.나리께 말해 줄게.""부인 글씨로 배우고 싶어요."방이 잠깐 조용했다."부인 글씨가 고우시다고, 행랑에서들 그러던데요."십 년 동안 이 집에서 명주의 글씨를 본 사람이 몇이나 될까.행랑 사람들 이 고운 글씨를 논할 만큼 명주는 글을 내돌린 적이 없었을 것이다.그 말의 출처는 행랑이 아니었다.출처를 짚는 대신 붓을 폈다.짚어서 나올 것은 어차피 반박자뿐이었다."별로야, 내 글씨.""한 자만 써 주세요.소인이 두고 베끼게요."붓을 들었다.거절할 길도 있었다.다만 거절은 거절대로 대답이 된다.못 쓰는 글씨를 감추는 사람과 안 쓰는 사람은 다르게 보이는 법이라, 쓰는 쪽을 골랐다.먹이 갈리는 동안 서란은 두 손을 무릎에 모은 채 소리도 없이 기다렸다.볕이 그 아이의 가르마에서 한 번 빛났다.종이를 펴고, 명(明) 한 자를 썼다.밝을 명. 명주의 명이고, 이 집에 십 년 걸려 있던 이름의 앞 자.날 일에 달 월. 획이 여덟.몸이 긋는 대로 두되 서두르지 않았다.다 쓴 종이를 돌려 서란 앞에 놓았다.서란이 종이를 봤다.붓끝에서 서란이 반박자 멈췄다.숨 하나 들어왔다 나갈 만큼.눈이 글자 위에서 멈추고, 모은 두 손이 오른손으로 왼손을 감쌌다."…고우세요."거짓말이었다. 반박자가 그렇게 말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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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화 무게

아침상에 수저가 두 벌 놓이기 시작했다.아욱을 넣은 탕이 맑게 끓어 기름꽃이 잘게 떠 있고, 갓 지은 밥에서 오른 김이 창으로 드는 볕에 희게 섰다가 스러졌다.부엌 어멈의 오이소채는 오늘도 조금 짰고, 가지는 그을린 보랏빛 그대로 결을 따라 찢겨 소복했다.간장 종지 위로 아침 빛이 얇게 미끄러졌다.아침을 안 먹던 사람이 언제부턴가 그 상머리에 앉았다.국물 두어 술, 소채 한 젓가락.다만 상이 나갈 때까지 자리를 뜨지 않았다."오늘은."육정이 물그릇을 내려놓으며 말했다."어디를 걸으시오."걸음을 막던 사람의 입에서 나온 물음이었다.아뢰고 나가라던 것이, 어느새 어디를 가느냐가 되어 있었다."부엌에. 물 뜨러요.""부엌에는 종이 넷이오.""넷이 바쁘잖아요."그가 국그릇을 내려다보고 잠깐 있었다.입가가 움직이려다 말았다."…초하를 데리고 다니시오.그것만 지켜 주시오.""그럴게요."그가 상을 물리고 나가다 무심코 한 번 돌아서서 이쪽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이내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그가 나가고 상이 나갔다.마당에서 종들이 웃는 소리가 났다가, 문지기 기침 소리에 그쳤다.부엌 쪽에서 도마질이 골랐다.이 집의 아침이 아침 같아지고 있었다.초하는 요즘 문밖이 아니라 마루에서 잤다.올라와 자라는 말에 며칠을 버티다가 어느 밤부터 마루 끝에 제 이부자리를 폈다.밤에 그 아이가 뒤척이면 마루가 낮게 우는 소리가 났고, 그 소리가 싫지 않았다.낮에 장을 정리했다.유월이 끝나 가고 있었다.겹옷을 개켜 넣고 홑옷을 앞으로 꺼내는데, 서란이 지어 온 옥색 향낭이 소반에 그대로 있었다.서랍에 넣어 둘 것.장 아래 서랍을 열었다.지난번의 향낭 여섯이 들어 있었다.옥색, 자색, 남색, 연둣빛, 다시 옥색, 그리고 흰 것.서란이 처음 보낸 것들.쓰지 않고 넣어 둔 채로 철이 하나 지났다.새것을 넣으려니 자리가 좁았다.안에 있던 것들을 꺼내 한쪽으로 옮겼다.하나가 무거웠다.손이 먼저 알았다.다른 것들은 집으면 마른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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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화 빠진것

장마가 들어 비가 이어졌다.처마에서 떨어진 물이 마당에 골을 냈다.갠 날 아침에 생강짜가 다시 왔다.이번에는 궤를 종이 아니라 사람이 졌다.짐꾼 둘이 어공 문서 궤를 대청 아래 내려놓고 물러났다.나무 궤가 셋, 위에 붉은 인이 찍힌 종이가 붙어 있었다.강목이 그 앞에 앉아 맨 위 궤의 뚜껑을 열었다.육정이 대청에 나와 있었다.관복이 아니라 평복이었고, 아침이면 나갈 사람이 나가지 않았다.궤가 들어올 때부터 기둥 곁에 서서, 강목의 손이 아니라 강목의 눈을 보고 있었다."빠진 것이 있다더니."육정이 말했다."빠진 게 아니라, 새는 겁니다."강목이 장부를 폈다.손가락이 한 줄에 닿았다."들어온 것이 스무 근, 나간 것이 스무 근. 맞지요.""맞소.""그런데 이 황기가 두 번 적혔습니다.들일 때 한 번, 낼 때 한 번.물건은 하나인데 장부에는 둘입니다.하나가 어디선가 걸어 나갔다는 뜻이지요."육정의 눈이 그 줄에 머물렀다.머무는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한경은 마루 끝에 서 있었다.볕과 그늘의 경계, 지난번 그 자리였다.궤 안의 것이 마당까지 냄새를 보냈다.마른 뿌리, 눅은 종이, 그리고 그 아래 다른 것.코가 먼저 갈랐다."그 황기 좀 줘 봐요."말이 나왔다.강목이 이쪽을 봤다.잠깐 있다가, 뿌리 하나를 집어 마루 끝에 놓았다.집어 들었다. 목이 두 군데 잘려 있었다.한 번 캔 자리에서 새순이 오른 것을 이듬해 또 캔 것.뿌리가 여위고 가운데가 비어 있었다."이건 두 번 캤어요.한 밭에서 두 해를.첫해에 굵은 걸 가져가고, 남은 데서 이듬해 또.그러니 장부에 두 번 적히죠.물건이 둘이라서가 아니라 한 밭을 두 번 턴 거예요."강목이 뿌리를 받아 목이 잘린 자리를 봤다.봤다가, 궤에서 마른 것 하나를 더 집었다.뿌리 갈래가 굵고 단면에 기름이 도는 것.지난번 마루에서 이름을 안 대던 그 당귀였다."그럼 이건."시험이었다. 지난번 세 번째 물음을 그대로 다시 놓았다.받아서 단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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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화 등불

밤이 눅었다.낮의 비가 마당에 고였다가 처마 끝에서 한 방울씩 늦게 떨어졌다.떨어질 때마다 물 고인 자리가 얕게 울렸다.창을 반만 열어 두었는데도 방 안 공기가 물을 먹어, 숨을 쉬면 목 안까지 미지근했다.씻고 나왔다. 데운 물에 마지막으로 찬물 한 바가지를 끼얹었더니 살이 한 번 조였다가 풀렸다.여름 홑옷 한 겹이 물기 남은 등에 붙었다가, 걸을 때마다 떨어졌다 다시 붙었다.머리를 풀어 한쪽으로 넘기고 끝의 물을 짰다.물이 손가락 사이로 빠지며 팔목을 타고 내렸다.동경을 보지 않아도 알았다.씻고 난 살은 늘 두 빛이었다.푸른 기가 도는 흰 목에, 뺨과 귀밑으로 붉은 기가 얕게 올라와 있었다.분을 바른 것도 아닌데 그랬다.장 아래 서랍 쪽으로 눈이 한 번 갔다가 돌아왔다.무거운 것은 여전히 맨 밑에 있었다.씻은 살 냄새와 서랍 속 백단이 방 안에서 아주 옅게 섞였다.발소리가 마당을 건너왔다.문지방을 넘어 두 걸음, 늘 앉는 자리에 육정이 앉았다.관복을 벗은 평복이었고, 깃을 여미지 않아 쇄골 아래가 드러나 있었다.낮의 열이 아직 안 빠진 얼굴이었다.손에 아무것도 들고 오지 않은 것은 처음이었다.문서도, 벼루도, 남방 배 이야기도."남방 배가.""예.""…들어왔소. 값이 내렸고.""잘됐네요."말이 짧게 끊겼다.할 말을 하러 온 사람 같지 않았다.온 김에 무슨 말이든 찾는 사람 같았다.등불이 낮았다. 심지를 돋우지 않아 방이 어스름했고, 불빛이 닿는 데만 또렷했다.젖은 목, 흐트러진 머리끝, 홑옷 아래로 오르내리는 숨.그의 눈이 그 또렷한 데를 따라 움직였다.얼굴에서 목으로, 목에서 젖은 머리끝으로, 그리고 다시 얼굴로.십 년을 벽 쪽으로 붙어 앉던 여자가, 오늘은 등불 앞에 얼굴을 두고 있었다.한경은 그 눈을 피하지 않았다.이 얼굴이 사람에게 무슨 짓을 하는지 이제 알았고, 알고 나서는 굳이 거두지 않았다.무기로 쓰는 것도 아니었다.치우지 않았을 뿐인데, 치우지 않는 것이 더 오래 그를 붙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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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화 저울

비가 잠깐 그친 사이에 나섰다.초하를 앞세웠다. 데리고 다니라던 말은 지켰다.골목이 진창이라, 초하가 디딜 자리를 먼저 짚으며 걸었다.물이 괸 데는 피하고, 돌이 드러난 데만 골라 밟았다.시전 서편, 약재 골목.지난번 걸음을 멈춘 그 어귀였다.낮인데도 볕이 안 드는 골목이었다.담이 높고 처마가 맞붙어 하늘이 실처럼만 보였다.마른 약재 냄새 아래로 눅은 냄새가 깔렸고, 그 아래로 쇠 냄새 비슷한 것이 아주 옅게 지나갔다.코가 그 끝을 한 번 물었다가 놓쳤다.좌판도 가게도 아닌 뒷문 하나가 열려 있었다.그 앞에서 사내 하나가 저울을 보고 있었다.마른 뿌리를 얹고, 추를 옮기고, 종이에 적었다.손이 떨렸다.추를 집는 손끝이 잘게 떨려서, 추가 접시에 닿을 때마다 두 번씩 부딪쳤다.사내가 그때마다 손목을 다른 손으로 눌렀다.눌러도 떨림이 손목 위로 번졌다.한경은 걸음을 멈췄다.사내를 보는 것이 아니라 사내의 손을 봤다."손이 왜 떨려요."사내가 고개를 들었다.낯선 여자가 말을 걸자 눈을 한 번 깜빡였다."…수전증입지요. 늙으면 다 그렇습니다.""몇이신데요.""…서른둘입니다."서른둘. 늙은 손이 아니었다.가까이서 봤다. 손끝만이 아니었다.아랫입술 안쪽이 헐어 있었고, 말할 때 입가에 침이 조금 고였다.잇몸 가장자리에 검푸른 선이 얕게 앉아 있었다.눈꺼풀이 무겁고, 낮인데 볕을 등지고 섰다.증상이 순서대로 놓였다.손, 입, 잇몸, 눈.몸을 아래에서 위로 올라온 자리였다."아니에요, 이건."말이 나왔다."수전증 아니에요.이 사람 수은을 만졌어요. 오래."사내의 얼굴이 굳었다.저울에서 손을 떼고 뒷문 안쪽을 한 번 봤다."…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그가 종이를 접고 저울을 거두기 시작했다.서두르는 손이 더 떨렸고, 추 하나가 접시에서 굴러 진창에 떨어졌다. 줍지 않았다.골목 어귀에서 발소리가 났다.강목이었다. 우산도 없이, 젖은 어깨로 골목을 들어오고 있었다.이쪽을 보고 걸음이 잠깐 늦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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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화 사람

낮에 육정이 처소에 들었다.밤에 오던 사람이 낮에 왔다.관복 그대로였고, 조정에서 바로 온 걸음이라 신에 마른 흙이 묻어 있었다.문지방을 넘어 두 걸음, 늘 앉던 자리에 앉지 않고 선 채였다.낮에 그가 이 방에 든 적은 십 년 동안 없었다.밤의 사람이 낮에 서 있으니 방의 공기가 제 시각을 잃었다.창으로 든 볕이 그의 관복 어깨에 얹혔다가, 그가 몸을 틀 때마다 자리를 잃고 흔들렸다.조정에서 여기까지, 관을 벗을 새도 없이 온 걸음이었다."성 서편에 다녀오셨다더구려."급한 사람의 말이었다.낮에 예 없이 처소에 든 것부터가."다녀왔어요.""약재 골목이오.""거기요."그가 창 쪽으로 갔다가 돌아왔다.앉지 않고 다시 섰다."사람을 붙이겠소.""사람이요.""나가실 때 곁에 두시오. 그것만.""왜요."그가 대답하지 않았다.대답하지 않는 것이 그의 대답이었다.아뢰고 나가라던 것이 곁에 사람을 두라는 것이 되었고, 그사이에 낀 이유는 십 년째 이 방에 없던 것이었다."누굴 붙이시게요.""믿을 만한 아이로 고르겠소.""제가 고를게요."그의 눈이 이쪽에 왔다."…부인이.""곁에 둘 사람이잖아요.제가 고르는 게 맞죠."그가 무어라 말하려다 다물었다.곁에 둘 사람을 아내가 고르겠다는 말을, 막을 명분이 그에게 없었다.그가 손등으로 이마를 한 번 눌렀다.무어라 더 말하려 입을 열었다가, 고른 말은 다시 짧았다."…아무 데나 함부로 가지 마시오."명이라기엔 끝이 물러 있었다.십 년 동안 이 방에서 아내에게 무엇을 시키기만 하던 사람의 입에서, 오늘은 청에 가까운 말이 나왔다.그날 오후에 사람을 마당에 세웠다.뒤채 아이 몇과 안채 종 몇.오래 보지 않았다.이미 정한 뒤였다.마당에 선 아이들이 볕 속에서 눈을 내리깔았다.부인이 곁에 둘 사람을 고른다는 것은 이 집에서 자리가 하나 오른다는 뜻이라, 몇은 등을 곧게 폈고 몇은 숨을 죽였다.서란은 맨 끝에 서서, 고르는 눈이 제게 오기를 기다리지도 피하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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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화 빈문

이튿날 서란을 데리고 골목에 갔다.초하도 뒤에 붙었다.셋이 걸으니 골목이 더 좁았다.서란은 반걸음 뒤에서 따라왔는데, 걸음이 조용하고 눈이 부지런했다.담의 높이, 뒷문의 자리, 지나는 사람들의 얼굴.장 보러 나온 아이의 눈이 아니었다.지난번 그 뒷문 앞에 섰다.문이 닫혀 있었다.저울도, 종이도, 마른 뿌리도 없었다.문턱에 흙이 쌓여, 하루아침에 빈 자리가 아니었다.지난번 저울이 놓였던 자리에 물이 괴어 있었다.여러 날 사람 손이 닿지 않은 물이라 위에 얇은 기름막이 앉아 볕에 어른거렸다.마른 약재 냄새가 나던 자리에서 이제 눅은 흙냄새만 올라왔다.손 떨리던 사내가 종이에 무언가를 적던 그 자리였다.옆집 처마 밑에서 노파가 나물을 다듬고 있었다."여기 사람 어디 갔어요."노파가 눈을 들었다.이쪽 얼굴을 보고 잠깐 멈췄다가, 손을 다시 놀렸다."…나갔지요.""언제요.""그저께 야반에. 짐도 안 챙기고.""어디로요.""낸들 아나. 밤에 수레가 왔다가, 아침에 보니 없습디다."노파의 손이 나물 위에서 빨라졌다.더 묻지 말라는 손이었다."쇤네는 아무것도 못 봤어요, 부인.여기선 다들 아무것도 못 봐요."서란이 반걸음 물러나 담 쪽에 붙었다.듣고 있는 아이의 자세였다.골목 끝에서 강목이 왔다.평복이었고, 걷어 올린 소매 아래 팔에 약재 냄새가 배어 있었다.빈 문을 한 번 보고, 이쪽을 봤다.서란에게서 눈이 반 박자 머물렀다."부인.""사람은요.""…야반에 나갔답니다.저도 방금 들었습니다.""어디로요."강목이 대답하지 않았다.서란을 한 번 더 보고, 말을 골랐다."…돌아오지는 않을 겁니다."그 말에 서란이 이쪽으로 한 걸음 붙었다.부인을 지키는 아이의 걸음처럼 보였고,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드는 아이의 걸음처럼도 보였다.강목이 빈 문으로 눈을 돌렸다."부인. 지난번 그 손 이야기는.""안 해요.""…예.""여기선 다들 아무것도 못 본다면서요."강목이 이쪽을 봤다.눈부터 웃을 뻔하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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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화 등잔

서란이 곁방으로 옮겨 왔다.부인을 모시는 아이는 가까이 있어야 한다며, 저녁에 제 이부자리를 안채 곁방으로 들였다. 짐이 단출했다.옷 두어 벌, 반짇고리, 그리고 보에 싼 것 하나.보 안의 것은 풀어 보이지 않았다.밤이 되자 곁방에 불이 늦게까지 있었다.창에 그림자가 앉았다.바느질하는 어깨가 규칙적으로 움직이는 밤이 아니었다.오래 가만히 있다가 고개만 이따금 숙이는 그림자.쓰는 밤이거나, 견주는 밤이었다.곁방은 안채와 벽 하나를 사이에 두었다.벽이 얇아, 마음만 먹으면 이쪽 숨소리가 저쪽에 닿을 자리였다.부인을 모시는 아이를 곁방에 두는 것은 이 집에서 예사였고, 그 예사가 오늘은 조금 다른 무게로 벽에 붙어 있었다.초하가 물을 들고 들어왔다.곁방 쪽을 한 번 보고, 문을 조금 더 닫았다."부인.""응.""…곁방 아이가.""응.""…아니에요."물그릇을 내려놓는 손이 조심스러웠다.나가려다, 문고리를 잡은 채로 섰다."초하야.""예.""그 아이 곁에서 자지 마."초하가 돌아봤다."…예?""네 자리, 마루 끝 그대로 둬.곁방으로 옮기지 말고."초하의 눈이 한 번 흔들렸다.무언가 아는 아이의 눈이었는데, 아는 것을 말해도 되는지 모르는 눈이기도 했다."부인. 소인, 여쭐 게 있어요.""해.""…아니에요. 주무세요."초하가 나가지 않고 문가에 앉았다."부인은 왜 소인한테 잘해 주세요.""물 떠다 줬잖아. 오래.""그거 말고요."등잔 심지가 한 번 튀었다."소인은요. 여기 종인데, 종이 아니에요.어미가 심가에 있어서요."말이 거기서 멈췄다.더 가면 안 되는 데까지 온 아이의 멈춤이었다."어미가 심가에 있으면.""…아니에요. 소인이 말을 잘못했어요."초하가 이마를 바닥에 대고 물러갔다.문이 닫히고, 마루 끝에서 이부자리 펴는 소리가 났다.심가. 명주의 친정.그 이름이 초하의 입에서 나온 것은 처음이었다.명주의 친정에서 온 아이가, 명주가 십 년을 산 집에서 물을 떠 나르고 있었다.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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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화 깃

그날 밤 육정은 늦게 왔다.관복을 벗지 않은 채였다.조정에서 바로 온 걸음이 아닌데도 깃이 반쯤 풀려 있었다.매듭을 고쳐 매다 만 것처럼 한쪽 깃만 접히고, 다른 쪽은 목선을 따라 벌어져 있었다.손이 여러 번 갔다가 여러 번 놓은 깃이었다.문지방을 넘어 늘 앉는 자리에 앉았다.앉고 나서도 등이 곧지 않았다.밤이 깊었는데 조정 이야기도, 남방 배 이야기도 없었다.늘 무슨 핑계든 손에 들고 오던 사람이 오늘은 빈손에 빈 입으로 왔다.등불 아래서 옆얼굴이 얼마 새 여윈 것처럼 보였다.관자놀이에 그늘이 앉고, 눈 밑이 꺼져 있었다."곁방에 아이를 들이셨다더구려.""낮에 나리가 붙이라 하셨잖아요.""…뒤채 아이 말이오.""서란이요."그 이름이 나오자 그의 손이 무릎에서 한 번 움직였다."저 아이를 뒤채로 물리는 게.""왜요.""…곁에 두기에는."말이 거기서 멈췄다.곁에 두기에는 무엇인지, 그 뒤가 나오지 않았다."제가 골랐는데요.낮에 나리 앞에서.""그랬지.""하루 만에 곁엣사람을 내치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봐요.안주인이 변덕이 심하다고."그가 대답하지 않았다.입이 열렸다가 다물렸다.다문 자리에서 아랫입술 안쪽을 한 번 물었다.할 수 있는 말이 있는데 그것을 못 하는 얼굴이었다.그의 눈이 방 안을 한 바퀴 돌았다.문갑을 지나고, 소반을 지나, 지난번 그가 붉은 실 문서를 넣어 두겠다던 상자에서 잠깐 멎었다.하사받은 것의 문서는 함부로 두는 것이 아니라던, 그 상자였다.멎었던 눈이 도로 무릎으로 내려왔다."부인.""예.""저 아이는."또 거기서 끊겼다.촛불 심지가 타는 소리가 방을 채웠다.그가 무릎 위에서 두 손을 모았다가 풀었다.십 년을 아내에게 말을 아끼던 사람이, 오늘은 막혀서 못 하고 있었다.무엇에 막혔는지 이쪽은 알 길이 없었다.다만 그가 골목이라는 말에도 곁방 아이라는 말에도 같은 자리에서 막혔다.막히는 자리가 늘 같다는 것만, 이쪽은 봤다."…아무 데도 가지 마시오. 당분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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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화 기별

강목이 어공 문서를 마무리하러 마지막으로 왔다.이번에는 궤도 짐꾼도 없었다.문서 한 권만 겨드랑이에 끼고, 대청에 잠깐 앉아 붓을 놀렸다.육정은 조정에 나가 없었고, 마루 끝에는 서란이 서 있었다."부인. 빠진 것을 채웠습니다.""뭐였는데요.""장부의 구멍이 한 군데가 아니었습니다. 길이었지요.두 번 턴 밭에서 난 것이 어공으로 들어왔다가, 도로 나가 어디론가 흘렀습니다."붓이 마지막 줄에 닿았다."그 길이 이 댁 어공을 지났습니다.댁이 판 것은 아니고, 지나간 겁니다.지나가는 길목에 대문이 있으면, 대문 임자도 이름이 오르지요."목소리가 낮고 넓었다.마당 건너 서란에게까지 가 닿는 소리였는데, 강목은 그것을 알고도 소리를 낮추지 않았다."…그럼 나리가.""이름이 오를 수 있다는 겁니다.아직은 아니고요."강목이 붓을 놓고 문서를 접었다.접다가 마루 쪽을 봤다."세 번째 밭을 트는 손이 급하다 했지요.그 손이 이 댁 문간을 아는 손입니다."한경은 마루 끝에 앉아 그 말을 들었다. 문간을 아는 손.이 집을 드나드는 사람이 하루에도 수십인데, 그중에 급한 손이 하나 섞여 있다는 말이었다.누구냐고 묻지 않았다.물어서 나올 답이면 강목이 먼저 댔을 것이다.그때 문지기가 마당을 가로질러 왔다."부인. 친정에서 사람이 왔습니다."마루 끝에서 서란이 이쪽을 봤다.붓을 접던 강목의 손도 잠깐 멎었다."누가 아프대?""…그것이, 대인께서 부인을 뵙자 하신다고."심가의 가주. 명주의 아버지.십 년 동안 딸을 한 번도 부르지 않았다던 사람이었다.딸이 담 안에서 늙어 가는 동안 기별 한 장 없던 집이, 오늘 갑자기 딸이 보고 싶다 했다.병이 먼저인지 다른 것이 먼저인지는 기별에 적혀 있지 않았다.강목이 어공 문서를 덮은 바로 그날이라는 것만, 마당의 볕처럼 분명했다.문밖에 온 것은 심가의 늙은 집사였다.마당에 들지 않고 중문 밖에 선 채, 접힌 기별을 두 손으로 올렸다.종이가 좋았고 매듭이 단정했다.받아 펴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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