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그녀에게 죽어납니다: 하늘 위의 낙화(落花): Chapter 11 - Chapter 20

32 Chapters

제11화: 안개의 자각, 늑대들을 길들이는 향기 

제11화포근한 침구의 감촉은 야츠키에게 기적과도 같았다. 지상을 탐내 인간의 살점을 노린 도깨비들과 150년 전쟁으로 박살 난 세계, 그 아슬아슬한 징검다리 위 구름위로 떠다니는 벽류진의 차가운 강철 감옥을 벗어난 것만으로도 그녀는 살 것 같았다. 야츠키는 아침 햇살 대신, 인공 조명이 만들어낸 미묘한 광채를 받으며 천천히 눈을 떴다.같은 시각, 총대장의 집무실에서는 무사들의 오전 회의가 살벌하게 이어지고 있었다."계집을 방으로 옮긴 것은 독을 품은 꽃을 우리 심장부에 들인 것과 다름없습니다."비사의 호통에 신지로가 안경을 고쳐 쓰며 차갑게 받아쳤다."독인지 명약인지는 관찰해봐야 안다. 그래서 오늘 놈을 식사 자리에 불러내 관찰하겠다. 놈의 신진대사와 요력의 상관관계를 분석할 좋은 기회니까."유우가 특유의 능구렁이 같은 웃음을 흘리며 비아냥거렸다."야, 신지로. 도깨비들은 본래 인간의 살점을 찢어 먹는 종족이야. 네가 아무리 분석 타령을 해도 놈은 네가 내놓는 쌀밥 따윈 안 먹어. 오히려 그 붉은 입술로 네 목덜미를 뜯어먹고 싶어 할걸? 너부터 잡혀 먹히고 싶은 거냐?""말조심하십시오, 유우."렌이 탁자를 내리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유우의 천박한 모욕에 렌의 손등에는 푸른 핏줄이 섰다. 시온은 두 사람의 싸움을 흥미롭게 지켜보면서도, 머릿속으로는 야츠키가 인간의 음식을 먹는 모습을 상상하고 있었다. 붉고 작은 입술이 아삭, 사과를 베어 물고 그 과즙이 턱 끝으로 흘러내리는 장면. 그 과즙이 자신의 손가락을 적시는 상상에 시온의 눈동자가 기묘하게 일렁였다. '내가 그 사과였다면, 그 안에서 녹아버렸을 텐데.'결국 식사 시간, 야츠키는 무사들의 거대한 공동 식당으로 불려 나왔다.8명의 무사가 각자의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들은 음식을 입에 넣으면서도 시선은 오직 한곳, 야츠키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식탁 위에는 된장국, 갓 지은 쌀밥, 계란말이와 나물 같은 소박한 차림이 놓여 있었다.야츠키는 난생처음 보는 인간의 음식 앞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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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2화 미녀 도깨비 야츠키의 억제 

제 12화. 벽류진의 밤은 소리 없이 흘러갔다. 철판으로 둘러싸인 요새의 밤은 외부의 공기와 단절된 채, 오직 기계적인 환기 장치가 돌아가는 둔탁한 소음만으로 가득했다. 야츠키의 처소는 미츠키의 배려로 감옥보다는 한결 안락했으나, 그 안락함마저도 누군가 언제든 문을 열고 들이닥칠 수 있다는 불안 위에서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었다.야츠키는 침대에 앉아 창밖의 삭막한 하늘을 응시했다. 문밖에서는 어김없이 렌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보초를 서는 날이 아님에도, 매일 밤 야츠키의 문앞을 지켰다. 그것은 총대장의 명령보다도, 렌 자신의 본능적인 의무이자 집착이었다.야츠키는 문틈으로 들어오는 희미한 그림자를 보며, 심장 깊은 곳에서부터 알 수 없는 동요를 느꼈다. 렌은 다른 무사들과 달랐다. 비사가 야츠키를 사냥감으로, 가란이 척결해야 할 도깨비로 볼 때, 렌만이 그녀를 '여인'으로 대했다. 그 정중한 존댓말과 따뜻한 시선은 야츠키의 얼어붙은 마음을 조금씩 녹이고 있었다.그녀는 문을 열었다. 렌은 갑작스러운 방문에 당황한 듯, 굳어 있던 자세를 고쳐 잡았다."무슨 일입니까, 야츠키 님? 어디 불편하신 곳이라도……."렌의 눈동자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야츠키는 말없이 그를 쳐다보았다. 렌의 잘생긴 얼굴, 전쟁터의 흉터가 남아 있는 턱선, 그리고 그녀를 향한 진심 어린 걱정이 묻어나는 눈빛. 야츠키는 자신도 모르게 렌의 옷깃을 잡았다. 그를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거부할 수 없는 끌림이 그녀의 전신을 휘감았다."렌, 들어와요. 밖은 너무 춥잖아요."렌은 망설였다. 무사로서의 규율과 야츠키를 지켜야 한다는 이성 사이에서 그는 갈등했다. 하지만 야츠키의 목소리에 담긴 가느다란 떨림이 그의 결심을 무너뜨렸다. 그는 천천히 방 안으로 들어섰다. 닫힌 문틈 사이로 렌의 그림자가 야츠키의 등 위로 겹쳐졌다.방 안에는 야츠키가 내뿜는 은은한 매화 향기가 가득했다. 그 향기는 렌의 이성을 조금씩, 아주 느릿하게 잠식해 갔다. 렌은 야츠키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는 그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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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분석의 굴레에 빠진 메스 끝으로 베인 매화 향[ 香 ]

제13화 벽류진의 규율은 여전히 엄혹했다. 총대장 테츠잔의 허락 아래 야츠키는 하루동안 단 두 시간 요새 주변과 외곽의 부유하는 암석 지대를 산책할 수 있는 자유를 얻었다. 그곳은 150년 전쟁의 상처로 인해 식물이라곤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척박한 지대였지만, 간혹 바위틈에서 생명력을 잃어가는 피다 만 꽃잎들이 앙상하게 매달려 있었다.야츠키는 손을 뻗어 그 꽃잎에 생기를 불어넣고 싶었다. 자신의 요력이 닿으면 곧장 화려한 매화가 피어오를 것임을 알았다. 하지만 그 화려함은 곧 비사나 가란 같은 강경파들의 눈을 자극할 독이 될 터였다. 그들은 분명 꽃을 보며 '도깨비의 간교한 술수'라며 비난을 쏟아낼 것이고, 끔찍한 살기를 내뿜으며 꽃잎을 짓밟을 것이다. 야츠키는 간신히 욕구를 억누르며 발걸음을 옮겼다.그때, 문득 기억 한 조각이 뇌리를 스쳤다. 처음 이곳에 잡혀왔을 때 가란과 신지로에게 끌려가던 도중 떨어뜨렸던 붉은 지우산, 그것은 그녀가 자신만의 낙원에서 살던 시절의 유일한 물품이었다.야츠키는 그날 오후, 신지로의 연구실로 향했다."저기..신지로 님……."야츠키가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렸다. 신지로는 현미경에 눈을 댄 채 대꾸도 없이 메스를 놀리고 있었다."그때 잡혀왔던 그 장소에, 제가 떨어뜨린 물건이 있습니다. 붉은 색의 지우산인데…… 혹시 찾아와도 될까요?"신지로가 고개를 들어 안경 너머로 그녀를 응시했다. 차갑고 건조한 시선"뭔가 착각하는 것같은데..너는 이 벽류진의 무사가 감시하기 위해 잡혀온 포로더 도깨비 야츠키. 자유를 누리는 게 아니라 허용된 시간을 쓰는 것뿐이지."하지만 신지로의 입가에는 기묘한 호기심이 서려 있었다. '요물'이 자신의 물건에 집착한다라. 도깨비의 심리에 대한 데이터가 될 터였다. 곁에서 시온이 "오 ! 야츠키가 아끼는 물건?나도 따라갈래!"라며 쾌활하게 끼어들려 했지만, 신지로는 차갑게 시온을 제지하고는 야츠키와 단둘이 요새 외곽으로 향했다.야츠키의 한 걸음 뒤에서, 신지로는 그녀의 모든 움직임을 기록하듯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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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4화 그림자가 훔친 밤[ 夜 ]

제 14화 ​벽류진의 공기는 언제나 비릿한 철 냄새와 차가운 기계적 소음으로 가득했다. 그 누구의 접근도 허락지 않는 차가운 벽 너머에서 야츠키는 매일 밤 자신의 운명을 저울질하고 있었다. 무사들에게 야츠키는 저마다 다른 의미의 대상이었다. 누군가에게는 제거해야 할 불길한 도깨비였고, 누군가에게는 분석해야 할 호기심의 표본이었으며, 또 누군가에게는 지켜주고 싶은 여인이었다.렌은 그녀의 곁을 지키며 자신의 순결한 감정을 바쳤고, 신지로는 그녀의 신체와 요기가 빚어내는 현상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비사는 당장이라도 그녀의 목을 조를 기회만을 엿보는 짐승 같았다.​하지만 그들 모두가 놓친 존재가 있었다. 바로 총대장 테츠잔의 가장 가까운 그림자 미츠키였다. 미츠키에게 야츠키는 단순한 감시 대상이 아니었다. 요새의 벽 그 자체가 된 것처럼 어디에나 스며들어 있는 그는, 야츠키가 감옥에서 침소로 옮겨진 첫날부터 그녀의 모든 움직임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묵묵히 기록하고 있었다. 다른 무사들이 야츠키의 겉모습에 열광하며 앞다투어 자신의 욕망을 드러낼 때, 미츠키는 그들이 소란스러운 낮 동안 겪지 못한 야츠키의 진정한 평온함을 탐닉하고 있었다. 그는 그녀가 깊은 잠에 들었을 때 비로소 드러나는 고요한 그 얼굴을 보는 것을 세상 무엇보다 소중한 안식으로 여겼다.​밤이 깊어 요새의 소음이 잦아들면, 미츠키는 어둠에서 걸어 나왔다. 그것은 그녀를 침범하는 포식자의 걸음이라기보다는, 오직 자신만이 누릴 수 있는 고요한 시간을 향한 예의 바른 접근에 가까웠다. 잠든 야츠키의 곁에 무릎을 꿇고 앉은 미츠키의 손길은 정교하고 조심스러웠다. 그는 잠든 그녀의 옷깃을 조심스럽게 다듬었다. 옷 사이로 드러난 하얀 쇄골이 달빛을 머금고 창백하게 빛났다. 그 매끄러운 살결을 바라보는 미츠키의 눈동자에는 여인을 향한 깊은 갈망과, 그녀의 평온함을 오롯이 독점하고 있다는 정적인 만족감이 가득했다.​‘렌, 그 애송이무사가 네 손을 잡는 게 그렇게 좋으냐.’​그는 잠든 야츠키의 뺨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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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5화 시온의 탐닉(耽溺)  

제15화 시온은 벽류진의 무사들 중에서도 가장 밝고 유쾌한 가면을 쓰고 있었다. 그는 언제나 야츠키에게 다가가 "야츠키 아가씨, 오늘도 예쁘시네요."라며 살갑게 굴었다. 남들이 그녀를 '계집'이라 부를 때 그는 꼬박꼬박 야츠키라는 이름을 불러주었고, 귀한 사과나 수박 한 조각을 가져와 그녀의 손에 쥐여주곤 했다. 도깨비인 야츠키가 인간의 음식을 먹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는 그 행위를 통해 그녀와 단 한 마디라도 더 섞고, 그녀의 손끝에 닿으려 애썼다.하지만 그 밝은 미소 뒤에는 기괴한 집착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처음 야츠키가 잡혀 왔을 때, 그녀의 가느다란 목덜미를 보고 느꼈던 그 서늘한 충동. 시온은 매일 밤, 그녀의 얼굴을 만지고 피부를 훑는 상상을 하며 제 안의 욕망을 길러왔다.그러던 어느 날 밤, 시온은 요새의 어두운 복도를 지나다 렌의 처소 근처에서 멈춰 섰다. 렌의 방 안에서 새어 나오는 낮고 다급한 숨소리, 그리고 은은하게 피어오르는 매화 향기. 그것은 야츠키의 체취였다. 호기심을 참지 못한 시온은 벽 틈에 눈을 대고 안을 엿보았다.렌이 야츠키의 위에서 서툴지만 간절한 손길로 그녀를 애무하고 있었다. 렌의 스무 살 어린 손이 야츠키의 얇은 속옷을 들추자, 드러나는 하얀 피부가 렌의 손길 아래에서 비정상적으로 붉게 물들고 있었다. 시온은 숨을 죽였다. 렌의 서툰 애무에 야츠키가 고통과 쾌락이 뒤섞인 신음을 흘리며 몸을 비틀었다. 렌은 그녀의 허벅지를 떨리는 손으로 감싸 쥐고, 어찌할 바를 몰라 쩔쩔매면서도 그녀의 귓가에 끊임없이 무언가를 속삭이고 있었다.그 광경은 시온의 뇌리를 강타했다. 평소 상상 속에서만 그렸던 야츠키의 모습이, 현실에서 렌의 손길을 받으며 무너지고 있었다. 시온의 눈동자는 짐승처럼 번뜩였다. 그는 방 밖에서 렌의 행동을 그대로 복제하며 자신의 욕망을 뒤틀린 망상으로 치환했다.상상 속의 시온은 렌을 밀어내고 그 자리에 자신이 올라타 있었다.시온의 망상 속에서 야츠키는 렌을 볼 때보다 훨씬 더 고혹적인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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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메스의 끝 해부학적 탐닉의 정사

제 16화신지로의 연구실은 늘 소독약 냄새와 오래된 서적의 퀴퀴한 향이 섞여 있었다. 벽면을 가득 채운 해부도와 복잡하게 얽힌 유리관들, 그리고 반듯하게 정렬된 수술 도구들은 이곳이 생명을 다루는 곳인지, 파괴하는 곳인지 모호하게 만들었다.야츠키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섰다. 신지로는 현미경을 들여다보며 무언가 기록에 열중하고 있었다. 야츠키는 말없이 그를 기다리다, 작업대 한구석에 놓인 가느다란 은침들을 발견했다. 반짝이는 은빛이 마치 어린 시절 낙원에서 보았던 바늘 같았다. 그녀는 홀린 듯 손을 뻗었다. 십자수를 놓거나 찢어진 천을 수선할 때 쓰던 다정한 물건이라 생각했다."신지로 님, 이것도 바느질할 때 쓰나요? 저, 바느질은 잘하는 편인데……."손끝이 은침에 닿기 직전, 신지로의 손이 벼락같이 튀어나와 그녀의 손목을 낚아챘다. 그의 눈빛은 평소보다 훨씬 차갑고 날카로웠다."함부로 건드리지 마라. 이건 도깨비의 피부를 뚫고 들어가 독을 퍼뜨리거나, 신경을 마비시켜 죽이는 무기다. 네가 아는 그 다정한 바늘이 아니야."그의 낮고 서늘한 경고에 야츠키는 움찔하며 어깨를 떨었다. 하지만 신지로는 그녀의 겁먹은 눈동자와 순진하기 짝이 없는 표정을 보는 순간, 자신의 복부 깊은 곳에서부터 알 수 없는 열기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이런 천진한 얼굴로, 사람을 미치게 하는군.'신지로는 그녀의 손목을 잡은 채로 단번에 그녀를 들어 올려 묵직한 오크나무 책상 위로 앉혔다. 야츠키의 치마가 헝클어지며 그녀의 하얀 허벅지가 드러났다. 신지로는 그녀의 귓가에 얼굴을 밀착하고, 뜨거운 숨결을 내뱉으며 낮게 속삭였다."그 순진한 얼굴로, 지금 나를 유혹하는 건가? 아니면, 정말로 이 침의 용도처럼 나를 파괴하고 싶은 건가."그는 서늘한 손가락으로 야츠키의 쇄골 라인을 따라 느릿하게 선을 그었다. 이어 가운 안으로 거침없이 손을 밀어 넣어, 윗가슴의 부드러운 살결을 훑고 가슴골 사이로 깊숙이 손가락을 파고들었다. 야츠키는 숨을 삼켰다."도깨비여.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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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네 몸에 내 문자를 새기는 방법

제17화 벽류진의 밤은 차갑고도 적막했다. 금속성 소음만이 요새를 지배하는 밤, 신지로의 처소는 뜨거운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평소라면 잉크 냄새와 오래된 서적의 향이 지배했을 방 안이었으나, 오늘 신지로의 책상 위는 기묘할 정도로 고요했다. 그는 붓을 쥔 채 한참 동안 빈 종이만을 노려보았다. 머릿속을 파고드는 것은 의학적 데이터도, 요기의 해부학적 구조도 아니었다. 며칠 전, 자신의 연구실 책상 위에서 흐트러졌던 야츠키의 목선, 억지로 참아내던 가느다란 신음, 자신을 올려다보던 젖은 눈빛뿐이었다. 그는 참을 수 없었다. 그녀가 보고 싶었다. 렌이나 시온 같은 이들이 그녀의 곁에서 알짱거리는 꼴을 상상하자 손끝이 잘게 떨렸다. 의학자로서의 자부심은 사라지고, 오직 그녀의 살결을 쥐고 싶다는 원초적인 갈망만이 남았다. 그는 책상 위를 서성이다 낡은 (남성) 기모노 소매를 잡아당겨 억지로 실밥을 터뜨렸다. 명분은 충분했다. 그녀를 부를 이유가 필요했다. "들어와라." 낮게 깔린 목소리에 문이 열리고, 야츠키가 조심스럽게 들어섰다. 신지로는 대답도 없이 뜯어진 옷을 그녀에게 내밀었다. "바늘을 다룰 줄 안다고 했지. 이 틈을 메워. 옷이 불편해서 연구에 집중할 수가 없군." 야츠키는 아무런 의심 없이 자리에 앉았다. 가느다란 손가락이 능숙하게 바늘을 쥐고 실을 꿰었다. 한 땀 한 땀, 옷감을 파고드는 하얀 손가락을 보며 신지로는 입안이 바짝 마르는 것을 느꼈다. 야츠키가 고개를 숙일 때마다 드러나는 가녀린 뒷목, 바늘을 꿰기 위해 입술을 살짝 벌린 모습이 이성을 아슬아슬하게 흔들었다. ‘저 손길이 내 살결을 훑고 지나간다면 어떤 기분일까. 바늘을 꽂아 실을 꿰매듯이 내 몸 위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게 하고 싶군.’ 신지로는 그녀의 곁으로 바짝 다가가 귓가에 낮게 읊조렸다. "야츠키, 만약 네게 모든 속박이 풀린 자유가 주어진다면... 무엇을 하고 싶지?" 야츠키는 바느질을 멈추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자유가 주어져도... 제게는 너무 먼 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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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8화  금지된 광경, 비사의 폭주와 억눌린 짐승 

제18화 벽류진의 무사들은 배고픔을 몰랐다. 신지로가 개발한 고농축 요기 추출물, 일명 '생명수(生命水)'라 불리는 주사가 무사들의 혈관을 타고 흐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도깨비의 요력을 의학적으로 정제한 그 액체는 인류의 허기를 지우고 전투력을 한계까지 폭발적으로 증폭시켰다. 무사들은 그 약의 힘으로 거친 요새의 환경을 버텨내고 있었고, 뼈를 깎는 수련 없이도 강한 힘을 손에 쥐었다는 사실에 도취되어 있었다.하지만 그 약의 핵심 재료는 오직 야츠키의 몸에서 채취한 안개와 체액이었다. 벽류진의 그 누구도 진실을 알지 못했다. 자신들이 생존과 힘을 위해 기꺼이 맞고 있는 그 약이, 사실은 자신들을 야츠키라는 절세미인 도깨비의 노예로 만드는 강력한 중독제이자 굴복의 증거라는 사실을 말이다. 약을 맞을수록 그들의 영혼은 서서히 야츠키의 향기 속으로 침잠해 가고 있었다.강경파 무사인 비사는 이 시스템의 정점에 있는 자였다. 그는 지상에서 유물을 징수하고 구름 위를 유영하는 거대한 하늘고래를 사냥하며 벽류진의 물리적 생존을 최전선에서 책임졌다. 그의 근육은 쇠처럼 단단했고, 정신은 얼음처럼 차가웠으며, 도깨비에 대한 적개심은 그 누구보다 깊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비사는 이상한 열병에 시달리고 있었다. 신지로의 처소 근처를 지날 때마다 느껴지는, 숨이 막힐 정도로 달콤한 매화 향기가 그의 이성을 조금씩 무너뜨리고 있었던 것이다.그날 밤, 비사는 거친 사냥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신지로의 처소 앞을 지나치고 있었다. 그는 출정에 앞서 신지로가 만든 고농축 생명 주사를 맞은 직후였다. 약효가 혈관을 타고 돌며 뿜어내는 열기는 그의 온몸을 뜨겁게 달구었고, 억누를 수 없는 원초적인 정욕이 뱃속부터 치솟아 오르고 있었다.그때, 닫힌 문틈 사이로 낯익은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것은 차갑기로 유명한 의원 신지로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평소의 이성적이고 건조한 톤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것은 짐승이 낮게 으르렁거리는 소리에 가까웠고, 소유욕과 독점욕으로 완전히 점철된 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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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9화 늑대의 난입과 뒤틀린 소유 

제19화 벽류진의 뒤쪽은 인공적인 요기로 유지되는 계곡이 있다. 그곳은 이제 단 하나의 도깨비와 무사인간이 공존하는 기묘한 정원같은 곳. 신지로는 더 이상 야츠키를 실험체로 대하지 않았다. 그는 그녀에게 밤하늘 아래 조용히 피어나는 '야화(夜花)'라는 한자를 붓으로 가르쳐주고 있었다. 먹물이 묻은 야츠키의 가느다란 손가락을 겹쳐 잡고, 신지로는 그녀의 귓가에 어린시절 자신이 왜 의학이라는 학문에 집착하게 되었는지를 낮게 읊조렸다."살리고 싶었다. 죽어가는 것들이 눈앞에서 부서지는 게 싫어서... 그런데 야츠키, 너를 만나고 깨달았지. 정말로 지키고 싶은 건 부서지지 않게 가두는 것이라는 걸."신지로의 목소리는 다정했지만, 그 속에는 집착의 독기가 서려 있었다. 그는 자신이 공부했던 해부학 서적, 낡은 기록들을 그녀에게 보여주며 그녀의 몸이 얼마나 신비로운지를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녀와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자신만의 세계를 넓혀가고 있었다. 그는 이제 그녀의 노예였다. 그녀가 눈짓 한 번만 해도 그녀의 기분을 맞추려 애썼고, 혹여나 그녀의 발끝에 가시라도 찔릴까 전전긍긍했다.어느 날 계곡, 신지로는 마치 성스러운 의식을 치르듯 야츠키를 물가에 앉혀 놓고 정성스레 씻겨주었다. 차가운 계곡물에 닿는 그녀의 하얀 살결을 어루만지는 그의 손길에는 숭배에 가까운 경외심이 담겨 있었다. 신지로는 젖은 그녀의 몸에 정성스럽게 옷을 입혀주고, 그녀의 손등에 낮게 입을 맞추며 애틋한 시선을 보냈다."이곳에 영원히 머물러라. 네가 글을 다 배우고 나면, 그때는..."그 광경을 바위 뒤에서 지켜보는 비사의 눈은 이미 핏발이 서 있었다. 신지로가 야츠키를 처소까지 바래다주고 사라지자마자, 비사는 참았던 숨을 토해내며 튀어 나갔다.문이 열리는 소리에 야츠키가 돌아보기도 전에 비사는 그녀의 어깨를 낚아채 벽으로 밀어붙였다. 강렬한 남자의 냄새, 짐승의 기운이 방 안을 순식간에 점령했다."어이, 요물같은 계집, 신지로 놈의 손길은 이제 지겹지 않나? 그 샌님 같은 놈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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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0화 무너진 천장과 피어오르는 파멸의 서막 

제 20화 요새의 공기가 찢어지는 듯한 기괴한 굉음과 함께 멈춰 섰다. 천장의 균열은 마치 거대한 괴수의 아가리처럼 쩍 벌어지며 주위의 철판을 비틀어놓았다. 복도 저편에서 다급하게 울리며 달려오는 발소리는 단연 미츠키의 것이었다. 늘 기척을 완벽하게 죽이며 그림자처럼 은밀하게 움직이던 그였으나, 지금만큼은 그 어떤 은폐도 없었다. 다급하게 렌에게 이 변고를 알리고 상황을 통제하기 위해 요새의 철판 바닥이 울릴 정도로 전력으로 질주하고 있었다.렌은 닫힌 문을 두드리거나 걷어찰 시간조차 아까웠다. 그는 자신의 주 무기인 쌍단검을 수직으로 매섭게 쥐고, 뒤틀린 천장의 틈을 향해 망설임 없이 몸을 날렸다. '쾅!' 하는 둔탁한 파열음과 함께 시멘트 조각과 천장 가루가 사방으로 쏟아져 내렸다. 자욱한 흙먼지가 방 안을 가득 메운 그 찰나, 비사의 본능적인 짐승 같은 감각이 처절한 경보를 울렸다.비사는 짐승처럼 낮게 으르렁대며 남은 이성의 끈을 겨우 붙잡은 채 야츠키를 반대편 구석으로 거칠게 밀어 넣었다. 동시에 자신의 바지를 엉겁결에 추스르며 몸을 틀었지만, 렌이 분노를 담아 쏟아낸 검기의 여파를 완전히 피할 수는 없었다. 푸른 빛을 머금은 날카로운 단검이 비사의 왼쪽 팔을 깊숙이 스쳤고, 곧이어 검붉은 선혈이 사방으로 낭자하게 튀어 올랐다.방 안은 순식간에 비릿한 피 냄새와 야츠키의 처연할 정도로 짙은 매화 향, 그리고 비사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타락한 정액의 냄새가 기괴하게 뒤섞여 형언할 수 없는 악취를 풍겼다. 렌은 먼지가 걷히는 순간 눈앞의 참혹한 광경을 목격하고는 눈이 완전히 뒤집혔다. 방 안을 가득 채운 짙은 요기의 잔여물, 야츠키의 헝클어진 옷매무새, 그리고 피를 흘리면서도 비열한 미소를 거두지 않는 비사의 몰골은 렌에게 방금 전까지 어떤 추악한 일이 벌어졌는지 설명하기에 차고도 넘쳤다."이 빌어먹을 새끼가... 야츠키 님에게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렌의 목소리는 단순한 화를 넘어 뼛속까지 파고드는 살의로게 떨리고 있었다. 비사는 흐르는 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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