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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فصول

제1화 구름 위의 도망자들

제1화150년이라는 세월은 그리 짧지 않았다. 그것은 인류의 기억 속에서 ‘땅’이라는 개념을 지워버리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지상을 요괴들에게 내어준 그날 이후, 인류가 기워 붙인 하늘 위 징검다리는 거대한 무덤이나 다름없었다.“악력으로 짓이겨! 도깨비의 가죽은 바위보다 단단하다!”전장은 승리를 향한 진군이 아니라, 그저 죽지 않기 위한 처절한 발버둥이었다. 본디 지하의 어둠 속에서 태어나 햇빛조차보지 못하던 괴물들은, 겁도 없이 지상을 집어삼킬 야욕으로 기어 올라왔다. 놈들은 인간의 살점을 씹어 삼킬수록 뱀처럼허물을 벗고 더 단단해졌다. 머리를 잘라도 재생했고, 낮이 되어도 죽지 않았다.무사들은 피로 물든 칼자루를 놓지 못했다. 철퇴가 뼈를 으스러뜨리는 둔탁한 소리, 시퍼런 칼날이 도깨비의 살점을 파고들 때 나는 비릿한 파열음이 전장을 가득 채웠다. 도깨비의 이빨과 손톱이 갑옷을 긁어대며 내는 ‘끼이익-’ 하는 금속음은 무사들의 고막을 찢어 놓았다. 지키다가 손목이 잘려 나가는 것은 차라리 양호했다. 동료의 피와 내장이 쏟아져 내리는 것을 보면서도 무사들은 멈출 수 없었다. 물러서는 순간, 우리가 쌓아 올린 징검다리는 무너지고 뒤에 남은 가족들은 놈들의 먹이가 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땅이 갈라지고 절벽이 무너져 내리는 아비규환 속에서도, 무사와 도깨비는 서로의 목을 조른 채 끝까지 추락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인간의 광기에, 도리어 도깨비들이 겁을 먹고 뒷걸음질 치는 기이한 풍경조차 연출되었다.참혹했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동료가 죽어 있었고, 매일 저녁에는 새로운 어린 동료가 빈자리를 채우러 칼을 잡았다. 비릿한 피 냄새는 하늘 위 대기 속에서도 가시지 않았다. 앓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 막사 안에서도, 누군가는 자신의 잘린 팔을 동여매며 내일의 칼을 갈았다.끝내 도깨비들은 항복을 선언했다. 그러나 그것은 인류의 완전한 승리가 아니었다. 지상은 놈들의 발악으로 지각이 뒤틀려 갈라졌고, 그나마 숨 쉴 곳이었던 대지마저 산산이 부
last updateآخر تحديث : 2026-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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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벽류진(碧流陣) 의 회의

제2화벽류진(碧流陣)의 회의실, 구름 사이로 스며든 희뿌연 습기가 눅눅한 비린내와 섞여 실내를 채우고 있었다.150년 동안 이어진 전쟁은 대지를 찢어 놓았고, 인류의 기억 속에서 ‘땅’이라는 개념을 지워버리기에 충분한 세월이 흘렀다. 이제 남은 건 허공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징검다리와, 굶주린 늑대처럼 날이 선 8명의 최정예 무사들뿐이었다.총대장 테츠잔의 육중한 존재감 아래, 무사들은 모여들었다. 막내 렌은 떨리는 손으로 정찰 보고서를 건넸다.경계선의 이상 징후와 지형적 변화만이 건조하게 적혀 있었다. 하지만 렌의 뇌리 속에는 보고서에 담지 못한, 안개 너머의 낙원이 지워지지 않는 낙인처럼 새겨져 있었다.아슬아슬하게 걸쳐진 붉은 기모노, 하얀 피부, 그리고 자신을 향해 짓던 그 몽롱한 표정. 그건 인간이 아닌 도깨비였다. 렌은 그것을 본능적으로 직감했으나, 펜을 쥔 손은 끝내 그 사실을 적지 못했다.그 존재를 털어놓는 순간, 이 짐승 같은 선배들이 그녀를 사냥감으로 삼아 갈기갈기 찢어놓을 것이 자명했기 때문이다.“렌. 보고서가 평소보다 빈약하군. 사각지대에서 정녕 아무것도 보지 못했나?”테츠잔의 묵직한 물음이 정적을 깼다.“지상을 벗어나 하늘까지 도망쳤지만, 이제 한계다. 요기가 거의 없는 남은 도깨비들과 손을 잡든, 아니면 씨를 말려 그들의 살을 취하든 결단을 내려야 한다. 식량도, 약초도 바닥났어. 우리를 버린 영주들이 하늘 위에서 호의호식하는 동안, 우리는 여기서 썩어가고 있지.”가란이 검은 갑옷을 삐걱거리며 냉혹하게 읊조렸다. 그는 지난달 전투에서 동료 '키바'가 굶주림과 부상으로 비명을 지르다 죽어갔던 장면을 떠올렸다. 그 분노가 끓어올라 가란의 목소리에는 전쟁의 잔혹한 광기가 서려 있었다.“남은 놈들을 다 찢어 죽여야 합니다. 우리 식량이 부족한 이유도 놈들이 남아있기 때문이지. 저 하늘 섬 밑바닥 지하에 놈들의 비축 식량이 있다는 소문이 있습니다.”비사가 탁자를 거칠게 내리찍었다. 그의 말투는 거칠었고, 윗선에 대한 분노와
last updateآخر تحديث : 2026-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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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화 안개 너머의 낙원 그리고 붉은 꽃의 회상

제3화구름 너머,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는 하늘의 끝단에 그곳이 있었다. 짙은 안개가 일 년 내내 요새처럼 성벽을 두르는 곳.그 안쪽으로 걸음을 들이면 징검다리의 삭막함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풍경이 펼쳐졌다. 정갈하게 닦인 기와집 한 채가 매화나무 숲에 둘러싸여 고즈넉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마당에는 계절을 잊은 꽃들이 만개해 묘한 단향을 풍겼고, 기와지붕 위에는 바람에 실려 온 분홍꽃잎들이 비단처럼 내려앉아 있었다.그 모든 풍경은 그곳의 주인인 야츠키의 숨결을 닮아 있었다. 안온하고, 조용하며,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평화. 그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지키며 조용히 살아가고 있었다.야츠키는 도깨비였다. 하지만 그녀는 지하의 진흙탕 속에서 서로의 살점을 뜯으며 서열을 다투는 여느 도깨비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지하의 도깨비들에게 성(性)이란 그저 힘의 논리였다. 강자가 약자를 굴복시키고 취하는 약탈의 의식. 그들에게 사랑이나 교감 같은 단어는 사치였다. 그저 요력을 섞어 더 강한 개체를 낳거나, 힘을 갈취하는 것이 도깨비들의 삶이었다.서열 높은 도깨비가 낮은 도깨비를 혀로 핥아주는 행위는 애정이 아닌, 철저한 지배와 굴복의 확인이었다.야츠키는 그런 짐승 같은 굴레를 혐오했다.지우산(紙雨傘)을 타고 하늘을 유랑하며, 꽃의 향기로 오감을 자극해 환각을 만들어 적을 따돌리는 방식을 택했다. 그녀의 요력은 은닉과 방어에 특화되어 있었다. 지상에 남은 동족들이 인간의 땅을 탐내며 징검다리를 무너뜨리고 멸망의 씨앗을 뿌릴 때, 야츠키는 홀로 구름 위로 도망쳤다.그녀의 기억 속 지상은 언제나 피비린내와 비명으로 얼룩져 있었다.‘인간은 왜 저토록 나약하면서도 독한 걸까.’야츠키는 회상했다. 인간은 도깨비보다 훨씬 나약했다. 팔이 잘리면 재생하지 못했고, 날카로운 발톱 한 번에 생을 마감했다. 그러나 인간은 굴복하지 않았다. 그들은 도깨비의 심장 위치가 오른쪽이라는 사실을, 체내로 파고드는 독이 얼마나 치명적인지를 기어이 알아내어 도깨비들을 도륙했다. 도깨비
last updateآخر تحديث : 2026-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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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붉은 비의 눈물

제4화 벽류진(碧流陣)의 공기는 렌이 떠난 직후에도 여전히 탁하고 무거웠다. 신지로는 자신의 침통을 꼼꼼히 점검하며 눈을 가늘게 떴다."약초가 다 떨어졌어. 경계선 너머, 안개가 짙은 곳까지 가봐야겠어."그의 말에 가란이 말없이 묵직한 도끼를 챙겨 들었다. 가란은 FM(Field Manual)대로 움직이는 무사였고, 도깨비 척결을 위해 태어난 자였다. 둘의 정찰은 지극히 건조한 업무였으나, 그 뒤를 밟는 렌의 마음은 천 길 낭떠러지를 걷는 것 같았다.렌은 숨을 죽인 채, 거리를 두고 그들의 뒤를 쫓았다. '제발 그곳만은 들키지 않기를.'안개는 신지로와 가란 같은 강자들에게는 장애물이 아니었다. 마침내 그들이 안개의 핵심부에 다다랐을 때, 눈앞에 거짓말 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매화 향기가 진동하는 작은 계곡, 그곳에서 야츠키가 막 목욕을 마치고 얇은 기모노를 걸치고 있었다."……저게, 도깨비라고?"가란이 도끼를 고쳐 쥐며 나직이 읊조렸다. 신지로는 침통에서 침을 꺼내려다 말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기모노 틈새로 언뜻 드러난 야츠키의 등과 매끄러운 엉덩이 선은, 그들이 갈라지는 지상위에 봐온 흉측한 도깨비와는 차원이 달랐다. 생전 처음 보는, 인간 이상의 관능이 그곳에 있었다. 하지만 가란의 눈은 곧바로 요기를 감지했다."전투가 가능한 놈이다. 즉시 베어야 한다."가란이 도끼를 들어 올리는 순간, 신지로가 그의 팔을 가로막았다. 그의 눈빛은 관음증적인 흥분으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그는 야츠키가 무방비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뇌리에 새겼다. 그때, 젖은 머리카락을 털어내던 야츠키가 멈칫했다. 도깨비 특유의 감각으로 이질적인 기운을 알아차린 것이다.그녀는 다급히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그녀의 가녀린 손끝에서부터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기묘하고 아름다운 노랑꽃들이 순식간에 피어났다. 관상용으로 보일 만큼 화려한 꽃잎들이 흩날리며 안개를 타고 무사들을 향해 쏟아졌다. 그 꽃들이 내뿜는 매혹적인 향기는 인간의 오감을 즉각적으로 마비시키는 강력
last updateآخر تحديث : 2026-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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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화 늑대들의 포획, 사내의 등

제5화"비켜라, 렌. 그게 네놈이 150년이 걸린 전쟁터에서 배운 유일한 재주냐?"가란의 목소리에는 살기가 서려 있었다. 20대중반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징검다리의 삭막함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차갑고 날카로운 음성이었다. 렌은 쌍단검을 쥔 손에 하얗게 힘을 주며 버텼다. 가란의 도끼가 렌의 어깨 근처를 위협하듯 호를 그리며 맴돌았다. 렌의 발밑으로는 흙먼지가 피어올랐고, 등 뒤에서 느껴지는 야츠키의 얕은 숨소리는 그를 더욱 절박하게 만들었다.그 뒤에서 야츠키는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잘려 나간 손목에서 뿜어져 나오는 붉은 피는 그녀가 태어나 처음 느끼는 잔혹한 현실이었다. 뼈가 끊어지는 통증과 낯선 인간들의 광기,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를 사냥감으로 응시하는 저들의 눈빛이 그녀를 짓눌렀다. 야츠키는 렌의 넓은 등을 보았다. 자신을 향해 칼날을 겨누던 무사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방패가 되어준 사내.‘왜…… 어째서 저 인간은 나를 지켜주는 거지?’야츠키는 억울함과 공포가 뒤섞인 눈물을 뚝뚝 흘렸다. 흑, 흑 하며 터져 나오는 울음소리는 징검다리의 무사들이 평생 들어본 적 없는, 지극히 인간적이고 가련한 소리였다. 그녀는 자신의 잘린 손목을 반대쪽 손으로 감싸 쥐며 몸을 웅크렸다. 상처 부위에서 느껴지는 타는 듯한 작열감은 그녀가 꿈꿔왔던 안온한 낙원의 기억을 산산조각 내기에 충분했다.신지로는 조용히 그 광경을 관찰했다. 그는 안경 너머로 야츠키의 요기를 세밀하게 분석하기 시작했다.‘피의 색과 요력의 밀도가 달라. 보통의 도깨비가 비린내를 풍기는 짐승이라면, 이 녀석은 안개 그 자체를 몸에 두르고 있어. 징검다리위 생존을 위해 공존해 사는 도깨비들의 얕은 요기와는 격이 다르지. 꽤나 오랜 세월 동안 하늘 위에서 홀로 존재해 온 모양이야.’분석을 마친 신지로의 머릿속에는 의문이 가득했다. 고결한 요기를 가졌음에도, 정작 전투 능력은 갓 태어난 도깨비보다 못했다. 습격당해 당황한 것인가, 아니면 정말로 살생을 거부해온 탓인가. 그 기묘한 모순이 신지
last updateآخر تحديث : 2026-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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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화 여덟 무사와 붉은 눈의 성녀

제6화푸르스름한 새벽의 한기가 진영을 감싸고 있었다. 야츠키는 차가운 흙바닥에 앉아 밤새 숨죽여 울었다.렌이 보초를 서며 곁을 지켰지만, 그녀가 느끼는 공포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의 헌신적인 보호조차 그녀에게는 언제든 살육의 도끼가 날아들 수 있는 늑대의 소굴에서 잠시 숨을 고르는 찰나의 평온에 불과했다.그때였다. 천막의 휘장이 거칠게 걷히며 신지로가 들어섰다. 그는 잠든 듯 울고 있던 야츠키의 곁으로 다가와 렌과 가볍게 눈인사를 나눴다."새벽 내내 혼자 울었나 보군. 눈시울이 붉어 붓기가 가라앉질 않아."신지로는 야츠키의 턱을 잡아 강제로 얼굴을 들어 올렸다. 퉁명스러운 손길이었지만, 그 안에는 기묘한 집착이 서려 있었다. 태어나자마자 시체를 보고 유년기에 붓대신 칼을 들었다. 기나긴 전쟁 동안 인간 여성의 흔적을 잃어버린 이들에게, 울고 있는 여성의 존재는 그 자체로 남성성을 자극하는 금단의 열매와 같았다. 그녀는 말할 힘도 없는지 그저 파르르 떨리는 속눈썹만 적시고 있었다.신지로는 조심스레 야츠키의 손목에 감긴 붕대를 풀었다."회복은 되고 있지만, 신경이 다 끊어졌어. 손가락은 당분간 움직이지 않겠어."그는 건조하게 중얼거렸다. 야츠키는 대꾸할 힘조차 없는지 그저 가늘게 신음하며 고개를 떨굴 뿐이었다. 그것은 굴복이 아닌, 죽음을 기다리는 짐승의 절망이었다."일어나라. 총대장 테츠잔께서 널 친히 만나보고 싶어 하신다. 이곳은 벽류진. 150년이나 걸린 전쟁을 끝내기 위해 도깨비들의 목을 쳐온 최후의 무사들의 심판대지."야츠키는 비틀거리는 몸을 렌의 부축을 받아 일으켰다. 걷는 내내 그녀의 다리는 쉼 없이 떨렸다.벽류진의 중심, 테츠잔의 대장막은 숨 막히듯 무거웠다. 그곳에는 총대장 테츠잔을 필두로 그의 그림자라 불리는 미츠키,가란, 비사, 유우, 신지로, 시온, 그리고 렌까지 벽류진의 모든 핵심 무사들이 모여 있었다.20대 초중반, 피 끓는 청춘들이지만 그들의 눈은 이미 노병의 것처럼 깊고 탁했다. 시선들이 일제히 야츠키에게 꽂혔다
last updateآخر تحديث : 2026-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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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화 어린 기사의 여린 꽃

제 7화 벽류진의 감옥은 어제보다 조금은 온기가 돌았다. 지상을 집어삼킨 멸망의 안개가 아래로 깔리고, 구름을 발판삼아 그 위를 위태롭게 떠다니는 거대한 요새 벽류진. 총대장 테츠잔의 명으로 투옥된 야츠키의 자리에는 딱딱한 흙바닥 대신 푹신한 짚이 깔렸고, 살을 파고들던 밧줄도 풀려 있었다. 신지로는 그녀의 손목 붕대를 조심스레 풀어내더니, 신경계를 자극하여 회복을 돕는 푸르스름한 약물 주사를 투입했다."통증이 가실 거다. 지상이 무너지고 요새의 환경이 변한 뒤로, 도깨비들의 회복력도 예전 같지 않지. 아마 살생의 경험이 없는 넌 더 느릴 거야."신지로의 차가운 목소리엔 학구적인 호기심이 가득했다. 렌은 그 곁을 한 발자국도 떠나지 않고 보초를 자처하며 야츠키를 지켰다. 그의 눈빛은 멸망해가는 하늘 위 요새에서 홀로 꽃을 지키려는 어린 기사의 그것과 같았다.신지로가 주사를 놓는 동안, 야츠키의 고통 어린 숨소리가 좁은 감옥을 채웠다. 렌은 그녀가 짚 위에서 편히 기대도록 자세를 고쳐주려 했으나 손길이 닿을 때마다 야츠키는 움찔거렸다. 렌은 차마 그녀의 어깨를 만지지 못한 채 허공에 손을 멈추고는 자신의 커다란 손을 꽉 쥐어 속으로 삭였다.그때, 감옥 입구에서 시온이 큼지막한 감자를 우적우적 씹으며 등장했다."신지로, 너 또 여기 있었냐? 밥도 안 먹고 놈의 혈관이나 들여다보고 있는 거야?" -시온"왜 왔지?" -신지로"네가 하도 여색을 밝히니까 말이지. 전투의욕이라곤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 이 가련한 도깨비 아가씨를 네가 잡아먹을까 봐 막으러 왔다."-시온시온은 특유의 장난기 어린 웃음을 흘리며 야츠키를 훑었다. 지상이 사라지고 오직 벽류진의 삭막한 무기들만 남은 이 하늘 위에서, 그녀의 자태는 마치 다른 차원의 존재처럼 매혹적이었다. 지옥 같은 전장에서 20년을 살아온 무사들에게 이토록 정갈하고 여성스러운 존재는 생전 처음이었다. 신지로는 안경을 고쳐 쓰며 코웃음을 쳤다."난 환자는 안 건드린다. 내 관심사는 오직 저 몸 안의 요력이 어디서
last updateآخر تحديث : 2026-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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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8화 비사의 잔혹한 칼날, 그리고 짓밟힌 ‘꽃’

제 8화 렌이 정찰을 위해 하늘 요새 벽류진의 외곽으로 떠난 직후, 비사는 기다렸다는 듯 감옥의 휘장을 걷어찼다. 비사는 여전히 총대장 테츠잔의 명령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도깨비의 목을 따고 그 요기를 흩뜨리는 것이 삶의 유일한 낙이었던 그에게, 총대장의 유예는 인내심의 한계를 시험하는 꼴이었다. 그에게 도깨비는 그저 멸종시켜야 할 바퀴벌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비사는 미리 가란과 신지로를 찾아가 야츠키의 정체를 캐물었었다."고작 요물같은 계집 하나 살려두자고 벽류진의 대기가 이리도 찝찝해야 하나? 정말 저게 그 흉물들과 다른가? 신지로, 너는 연구랍시고 놈을 눈으로 핥고 있고, 가란 너는 도끼만 갈고 있군. 내 눈엔 놈의 목을 따지 못해 안달 난 것으로 보이는데."가란은 대답 대신 자신의 도끼날을 날카롭게 갈았다. 쇳소리가 예리하게 처소 안을 울렸다. 신지로는 안경 너머로 흥미로운 눈빛을 보내며 '실험 가치가 있다'고 답했을 뿐이었다. 비사는 그 답변들을 비웃으며 생각했다.'하..!..약해 빠진 도깨비라니, 그런 건 존재하지 않아. 그저 교활하게 숨을 죽이고, 인간의 동정심을 이용해 기회를 엿보고 있을 뿐이지.'비사는 처소 밖으로 나섰다. 가란은 열린 창틈으로 야츠키가 있는 감옥 방향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비사는 그 모습을 보며 코웃음을 쳤다. 그는 감옥으로 들어서자마자 야츠키의 멱살을 낚아채듯 끌어냈다. 차가운 쇠사슬이 그녀의 가녀린 손목을 쓸고 지나갔다."어이, 계집. 일어나 봐. 네가 그렇게 특별하다고?"야츠키는 비사의 살기 어린 눈빛을 마주하는 순간, 폐부 깊숙한 곳에서부터 얼어붙는 공포를 느꼈다. 렌이나 테츠잔에게서는 느껴본 적 없는, 순도 100%의 악의와 파괴 본능이 비사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비사는 야츠키를 텅 빈 훈련장의 마당에 내동댕이쳤다."말해봐. 징검다리에서 죽은 내 동료들의 비명소리, 너도 들었지? 너희 같은 것들은 심장이 찢겨나가기 전까지는 죽지도 않잖아. 지상이 사라진 지금, 네놈들이 우리
last updateآخر تحديث : 2026-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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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9화 벼랑 끝의 대치, 가란의 침묵과 렌의 포효

제 9화 지상을 잃고 부유하는 하늘 위 요새, 벽류진의 밤은 언제나 금속의 냉기로 가득했다. 150년에 걸친 긴 전쟁의 끝자락, 이제 인류의 마지막 보루가 된 이곳에서 무사들은 살육에 길들여진 짐승처럼 살아가고 있었다. 총대장 테츠잔은 감옥 내부의 소란을 잠재우기 위해, 8명의 무사가 순번을 정해 야츠키를 감시하는 ‘밀착 보초’ 명령을 내렸다. 비사와 유우는 여전히 이 명령을 모욕으로 받아들여 보초를 거부했지만, 가란은 아무런 군말 없이 그 명령을 수행했다.보름달이 창살을 타고 들어와 야츠키의 웅크린 어깨를 비추던 밤, 감시 순번은 가란이었다.그가 감옥 안으로 발을 들이자마자, 야츠키의 동공이 지진처럼 흔들렸다. 며칠 전 비사에게 당했던 폭행의 기억이 채 가시지 않은 그녀에게, 징검다리 위에서 도깨비의 목을 가장 많이 쳐온 가란의 존재는 곧 죽음의 예고편과도 같았다.야츠키는 비틀거리는 발걸음으로 뒷걸음질 치다 차가운 감옥 벽에 등을 부딪혔다. 그녀의 시선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잘린 손목을 향했다. 붕대는 풀렸지만, 여전히 욱신거리는 환부를 감싸 쥐며 가란의 눈치를 살피는 그녀의 모습은, 마치 맹수 앞에 내던져진 가녀린 사슴 그 자체였다. 그녀의 눈에 맺힌 원초적인 공포가 가란의 심장을 찔렀다.가란은 아무런 공격도 하지 않았다. 그저 묵불개언(默不皆言)한 태도로 그 자리에 멈춰 서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가 전장에서 숱하게 도깨비들의 목을 쳐오며 몸에 밴 '살기'는, 숨을 쉴 때마다 저절로 배어 나와 야츠키의 숨통을 조였다. 가란은 당혹감을 느꼈다. 놈을 죽이겠다는 살의는 없었다. 그저 여느 때처럼 도깨비를 대하는 서늘한 위압감이었을 뿐인데, 야츠키가 느끼는 고통은 그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깊었다. 가란의 무사 혈통, 즉 뼛속까지 박힌 살육의 본능이 그녀의 공포를 보며 묘하게 뒤틀리기 시작했다. '도깨비인데, 왜 나를 보며 저리도 비참하게 떨지?' 가란의 미간이 좁혀졌다.그 시각, 렌은 자신의 처소에서 검을 소독하고 있었다. 야츠키의 보초가 가란이
last updateآخر تحديث : 2026-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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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0화 안개의 역류, 늑대들의 성소에 핀 꽃

제10화 렌과 가란의 대치가 극에 달했던 그날 밤 이후, 벽류진의 공기는 기묘하게 뒤틀려 있었다. 지상을 잃고 150년 동안 살육의 연대기를 써 내려온 이 삭막한 요새는 이제 야츠키의 존재 하나로 인해 그 질서가 흔들리고 있었다. 야츠키의 귓가에는 여전히 비사의 거친 폭언과 주먹의 감각이 맴돌았고, 가란의 서늘한 살기는 그녀의 등 뒤를 항상 맴도는 환영처럼 따라다녔다.참았던 감정의 댐이 무너진 것은 불과 하룻밤 사이였다. 좁고 습한 감옥 안에서 야츠키는 비명 없는 절규를 삼키고 있었다."…무서워…돌아가고 싶어. 그곳으로……."그녀의 간절한 소망이 요력의 기폭제가 되었다. 감옥의 틈새로 흘러나온 요력은 파괴적인 불꽃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 요새의 삭막한 먼지와 피비린내를 씻어내듯, 너무나도 슬프고도 향기로운 '매화 향기의 안개'가 되어 벽류진 전체를 뒤덮었다.안개가 벽류진의 삭막한 복도를 타고 흐르자, 무사들은 하나둘 무장해제되었다. 검을 닦던 손이 멈추고, 거친 욕설을 뱉던 입들이 굳어졌다. 그 매혹적인 향기는 단순한 요기가 아니었다. 그 안개 속에서 무사들은 전쟁이 시작되기 전, 잊고 지냈던 고향의 평온했던 풍경과 잃어버린 가족의 얼굴을 환상처럼 보았다. 그것은 치유이자, 동시에 거대한 정신적 동요였다.총대장 테츠잔이 집무실 밖으로 나와 안개를 가르며 걸었다. 그의 눈동자에는 혼란과 깨달음이 교차했다. 안개 속에서 자신의 죽은 아내의 향기를 맡은 그는, 이 기이한 현상이 야츠키의 감정에서 비롯되었음을 단번에 알아차렸다."이 안개는 그녀의 눈물이다."테츠잔은 굳게 닫힌 감옥 앞에 섰다. 야츠키는 안개 속에 파묻혀 웅크리고 있었고, 그 곁을 지키던 렌은 눈물을 흘리며 그녀의 손을 잡고 있었다. 테츠잔은 낮게 읊조렸다."감옥에 계속 가둬두면 이 안개는 요새 전체를 침식해 우리를 미치게 하겠군. 더 이상은 안 된다."주변에 있던 비사와 유우는 격렬히 반대하려 했다. "총대장님! 저것은 도깨비의 술수입니다! 놈을 고문하고,감옥에 더 처박아두고
last updateآخر تحديث : 2026-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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