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열두 번째 명령이 끝나면: Chapter 221 - Chapter 230

420 Chapters

221화 . 반대해도 같은 문으로

서윤은 서재 문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도현은 책상이 아니라 창가에 서 있었다. 등을 보인 채였다. "부르셨다면서요." 그가 돌아섰다. 눈이 평소보다 조금 느리게 움직였다. "질문이 있습니다." "명령이 아니고요?" "오늘은 아닙니다." 서윤은 문가에 기댔다. 대답을 서두르지 않았다. "물어봐요." 도현이 다가왔다. 이번에는 멈추지 않고, 그녀와 문 사이의 거리까지 좁혔다. "한예린 대표와 저녁 약속을 잡았다고 들었습니다." "사업 때문이에요." "압니다." "그런데요?" 그의 손이 그녀의 옆, 문틀에 닿았다. 가두는 자세였지만 몸은 닿지 않았다. "불편합니까, 제가 물어보는 것이." "아니요. 물어봐서 다행이에요." 도현의 시선이 그녀의 입술에 잠깐 머물렀다가 다시 눈으로 돌아왔다. "저는 여전히 그게 잘 안 됩니다." "지금은 됐잖아요." "오늘만입니다." "그럼 내일은요?" 침묵이 길어졌다. 서윤은 그 시간을 세지 않으려 했지만, 이미 세고 있었다. 셋. 도현이 고개를 숙였다. 이마가 먼저 닿았다. "내일은 또 물어보겠습니다." 숨이 섞였다. 그의 손이 그녀의 허리로 내려와 조금 세게 당겼다. "이게 첫 번째예요, 도현 씨." "무엇의." "물어보지 말고요." 그가 낮게 웃었다. 웃음이 끝나기 전에 입술이 닿았다. 문에 등이 닿는 감각과 동시에, 서윤은 그의 넥타이를 손끝으로 감았다. 두 번째 질문은 말로 오지 않았다.창밖이 밝아 있었다. 서윤은 눈을 뜨자마자 옆자리부터 확인했다. 비어 있었다. 대신 협탁 위에 카드 한 장이 놓여 있었다. 숫자는 없었다. 대신 짧은 글씨. 두 번째 질문, 답을 기다립니다. 서윤은 이불을 걷고 몸을 일으켰다. 목덜미에 남은 감각이 아직 선명했다. 서재 쪽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통화 중인 듯했다. 평소보다 말이 짧고, 문장 사이 간격이 길었다. 그녀는 카드를 손에 쥔 채 문가로 걸어갔다. 도현은 창가에 서 있었다. 어젯밤과 같은 자리였다. 통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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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화. 여섯 번째 명령

다섯 번째 명령이 끝났는데도 도현은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정확히는, 놓아주지 않는 척하고 있었다. 내 손목을 감싼 그의 손에는 힘이 들어가 있었지만 조금만 비틀면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움직이지 않았다. 도현이 낮게 물었다. “왜 안 빠져나옵니까?” “나가라고 안 했잖아요.” “제가 잡고 있어서가 아니라?” 나는 그의 눈을 바라봤다. “제가 있고 싶어서요.” 그제야 손가락에 조금 더 힘이 들어갔다. 오늘은 커프도 없었다. 검은 장갑도, 안대도, 익숙한 가죽 리드도 꺼내지 않았다. 도현은 처음부터 말했다. 오늘은 숫자로만 하겠다고.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그리고 조금 전 다섯 번째까지. 무엇을 할지 미리 알려 주지도 않았다. 다만 하나가 끝날 때마다 반드시 내 색깔을 확인했다. “다섯 번째 명령.” 도현이 내 손목을 한 손으로 모아 머리 위에 올렸다. “그대로 있으십시오.” “이게 끝이에요?” “불만입니까?” “조금요.” 그의 눈빛이 즉시 짙어졌다. “원하는 걸 말하십시오.” “주인님이 알아서 해야죠.” “한서윤.” 목소리가 한층 낮아졌다. “원한다고 말하는 것과 주도권을 넘기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또 맞는 말만 했다. 나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좀 더 강하게 해도 돼요.” “어디까지?” “손목 잡는 거. 자세 잡아 주는 거.” “그 이상은?” 잠깐 고민하다 고개를 저었다. “오늘은 거기까지.” “좋습니다.” 대답과 동시에 허리를 감싼 팔이 나를 끌어당겼다. 숨이 짧게 끊겼다. 가까워진 거리 때문에 도현의 체온이 그대로 느껴졌다. 그런데도 입술은 닿지 않았다. 그는 일부러 기다리고 있었다. “왜 안 해요?” “무엇을?” “알면서.” “말하십시오.” 정말 얄미웠다. “키스해 줘요.” 도현의 시선이 입술로 떨어졌다가 다시 올라왔다. “부탁입니까?” “네.” “색깔.” “초록색.” 그제야 입술이 닿았다. 처음에는 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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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3화. 일곱 번째 명령

“일곱 번째를 원한다는 뜻으로 듣겠습니다.” 도현의 목소리가 낮게 떨어졌다. 나는 그의 목을 감고 있던 팔을 풀지 않았다. “제가 언제 원한다고 했어요?” “조금 전 직접 말했습니다.” “제대로 하라고 했지, 일곱 번째 하라고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허리를 감싼 팔에 힘이 들어갔다. 이번에는 확실히 달랐다. 아까까지 일부러 남겨 두었던 틈이 사라졌다. 몸이 단숨에 가까워졌고, 그의 시선이 내 얼굴에서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가 다시 눈으로 돌아왔다. “한서윤.”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만으로 등이 긴장했다. “후회합니까?” “…아니요.” “색깔.” “초록색.” 도현은 그제야 손을 움직였다. 손목을 잡아 등 뒤로 모았다. 커프는 없었다. 그런데 맨손으로 붙들린 감각이 오히려 더 선명했다. “일곱 번째 명령.” 그가 내 귓가에 낮게 말했다. “제가 허락하기 전까지 손을 풀지 마십시오.” “주인님이 잡고 있잖아요.” “지금 놓겠습니다.” 손이 정말 떨어졌다. 나는 등 뒤로 모은 손을 그대로 유지했다. 움직일 수 있었다. 그런데 움직이지 않았다. 도현은 한 걸음 떨어져 나를 바라봤다. 시선이 너무 노골적이라 얼굴이 뜨거워졌다. “왜 그렇게 봐요?” “보고 싶어서.” “뭘요?” “제가 손대지 않아도 제 말을 지키는 모습.” 목이 말랐다. 그는 천천히 내 주위를 돌았다. 등 뒤에서 발소리가 멈췄다. 손끝 하나 닿지 않았는데도 온몸이 그쪽으로 긴장했다. “앞을 보십시오.” 나는 거울을 바라봤다. 도현이 바로 뒤에 서 있었다. “다리 조금 벌리십시오.” 숨이 짧아졌다. 그래도 따랐다. 그의 눈빛이 거울을 통해 내 모습을 훑었다. “조금 더.” “주인님.” “싫습니까?” “…아니요.” “그럼 말이 아니라 움직이십시오.” 나는 아주 조금 자세를 바꿨다. 그 순간 도현이 가까이 왔다. 허리에 손이 닿았다. 이번에는 묻지 않았다. 이미 허용한 범위 안이었다. 대신 힘이 달라질 때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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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4화. 여덟 번째 명령

“그럼 여덟 번째는 지금부터 생각하겠습니다.” 도현이 그렇게 말했지만, 나는 믿지 않았다. 저 사람은 이미 정했다.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거울 속에서 마주친 눈빛이 조금 전과 완전히 달랐다. 손목을 잡고 있던 힘은 여전히 단단했지만, 당기지는 않았다. 오히려 기다렸다. 내가 먼저 흔들리기를. “이미 생각했죠?” 도현이 낮게 물었다. “무엇을 말입니까?” “여덟 번째.” “궁금합니까?” “…조금.” “조금?” 나는 입술을 다물었다. 도현의 손가락이 손목을 한 번 천천히 감쌌다가 힘을 풀었다. “다시 묻겠습니다.” 그 목소리 때문에 괜히 심장이 빨라졌다. “궁금합니까?” “네.” “호칭.” “궁금해요, 주인님.” 그제야 손목이 풀렸다. 갑작스럽게 자유로워지자 오히려 어색했다. 도현은 한 걸음 물러나며 말했다. “침대 끝에 앉으십시오.” 이번에는 바로 움직였다. 그의 시선이 따라왔다. “손은?” “허벅지 위에.” 나는 손을 올렸다. “등.” 자세를 바로 세웠다. “좋습니다.” 그 한마디에 괜히 얼굴이 달아올랐다. “또 칭찬.” “싫습니까?” “아니요.” “그럼 받아들이십시오.” 도현은 내 앞에 서서 넥타이를 천천히 풀었다. 그러나 벗어 던지지 않았다. 손에 한 번 감더니 내 앞에 보여 줬다. “이건 뭐 하려고요?” “여덟 번째에 필요합니다.” “손목 묶는 거?” “아닙니다.” “그럼?”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넥타이를 내 손 위에 올려놓았다. “잡으십시오.” 나는 양손으로 넥타이 끝을 잡았다. “세게요?” “떨어뜨리지 않을 정도로만.” “이게 명령이에요?” “아직 아닙니다.” 또 시작이었다. 나는 결국 웃음 섞인 한숨을 내쉬었다. “주인님 진짜 사람 애태우는 거 좋아하죠?” “특히 당신이 기다리지 못할 때.” “못됐다.” “그 말은 오늘 두 번째입니다.” “횟수도 세고 있었어요?” “당신이 숫자를 원했으니까.” 도현의 손이 턱 아래에 닿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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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5화. 아홉 번째 명령

검은 리본과 짧은 가죽 리드.도현은 둘 사이에서 고르라고 했지만, 나는 쉽게 손을 뻗지 못했다.“왜 두 개예요?”“하나는 보지 못한 채 제 목소리를 따라오는 것.”그가 검은 리본을 손끝으로 밀었다.“다른 하나는 전부 보면서 제 손을 따라오는 겁니다.”“어느 쪽이 더 어려워요?”“당신에게는?”도현의 눈빛이 짙어졌다.“아마 두 번째.”정답이었다.눈을 가리면 오히려 덜 부끄러울 것 같았다.나는 결국 가죽 리드를 집었다.“이거요.”“확실합니까?”“네.”“왜?”“보고 싶으니까.”“무엇을?”그 질문이 또 나왔다.나는 리드를 그의 손바닥에 올려놓았다.“주인님 얼굴.”도현은 한동안 나를 바라보다 고리를 들었다.“목에는 연결하지 않습니다.”“그럼 어디에요?”그는 내 손목에 얇은 가죽 밴드를 채웠다.손가락 하나가 충분히 들어갈 정도로 느슨했다.짧은 리드가 연결됐다.“아홉 번째 명령.”그가 한 걸음 물러났다.“당기기 전에 따라오십시오.”“당기지도 않을 건데 이건 왜 해요?”“제가 움직이는 방향을 보라는 뜻입니다.”도현이 뒤로 한 걸음 걸었다.리드는 아직 느슨했다.나는 가만히 있었다.그의 눈썹이 아주 조금 올라갔다.“안 와요?”“당기기 전에 따라오라면서요.”“그래서 기다리고 있습니다.”나는 천천히 앞으로 걸었다.리드는 끝까지 팽팽해지지 않았다.도현이 오른쪽으로 움직이자 나도 따라갔다.다시 왼쪽.이번에는 일부러 반 박자 늦었다.가죽이 손목에 아주 살짝 닿았다.그 즉시 도현이 멈췄다.“불편합니까?”“아니요.”“색깔.”“초록색.”그는 다시 움직였다.침대 앞.창가.거울 앞.한 번도 세게 당기지 않았다.그런데 이상하게도 내 시선은 계속 그의 손에 묶여 있었다.“이게 뭐가 야해요?”내가 투덜거리자 도현이 가까이 왔다.“당신은 지금 제가 손가락 하나 움직일 때마다 따라오고 있습니다.”숨이 순간 막혔다.“그걸 알고도?”리드가 아주 조금 올라갔다.“계속 저를 보고 있고요.”나는 괜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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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6화. 열 번째 명령

도현은 리드를 풀지 않았다.대신 연결된 손목을 들어 천천히 확인했다.“압박은?”“괜찮아요.”“손 저림?”“없어요.”그는 고개를 끄덕인 뒤 테이블 위 검은 리본을 집었다.“잠깐만.”내가 바로 말했다.“둘 다 쓰는 거예요?”“원하지 않으면 안 씁니다.”“아까 하나 고르라며요.”“아홉 번째는 선택이었습니다.”검은 리본이 그의 손에서 천천히 펼쳐졌다.“열 번째는 다른 명령입니다.”나는 그 리본을 바라봤다.“내용부터.”도현이 가까이 왔다.“눈을 가리지 않습니다.”“그럼?”그는 리본을 내 손에 쥐여 줬다.“제 손목에 묶으십시오.”“…뭐?”처음으로 내가 그의 손목을 묶는 건가 싶어 당황했다.“주도권 넘기는 거예요?”“아닙니다.”도현은 손을 내밀었다.“제가 움직이지 않을 뿐입니다.”“그게 그거 아닌가?”“전혀 다릅니다.”나는 리본을 느슨하게 그의 손목에 둘렀다.“이렇게?”“조금 더 단단하게.”“아프면요?”“제가 말하겠습니다.”묶고 나니 묘했다.늘 내 손목을 확인하던 사람이 이번에는 손을 내밀고 있었다.“열 번째 명령.”도현이 말했다.“제가 먼저 만지지 않을 겁니다.”“그럼?”“원하는 것이 있으면 직접 가까이 오십시오.”순간 얼굴이 뜨거워졌다.“이거 여덟 번째랑 비슷한데.”“아닙니다.”그의 시선이 내게 고정됐다.“그때는 참는 명령이었고.”목소리가 더 낮아졌다.“이번에는 원하는 것을 숨기지 않는 명령입니다.”나는 팔짱을 끼려다 멈췄다.도현은 움직이지 못하는 것도 아닌데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키스도 안 해요?”“원합니까?”“…네.”“그럼 오십시오.”진짜 끝까지 직접 안 오는 모양이었다.나는 한 걸음 가까이 갔다.도현은 그대로였다.“이렇게까지?”“더.”“주인님.”“네.”“진짜 얄미워.”“알고 있습니다.”결국 내가 그의 셔츠 깃을 잡았다.입술이 가까워졌지만 일부러 멈췄다.이번에는 내가 기다리게 하고 싶었다.그런데 도현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안 와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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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7화. 열한 번째 명령

열한 번째는 도구가 없었다.도현은 리드도 리본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전부 치워요?”“네.”“강하게 한다면서.”“강한 게 꼭 도구를 뜻하지는 않습니다.”그는 의자 하나를 침실 중앙에 놓았다.“앉으십시오.”이번에는 바로 따랐다.“손은 양옆으로.”“어디에요?”“의자 끝.”나는 손가락으로 의자 가장자리를 잡았다.“열한 번째 명령.”도현이 내 앞에 섰다.“제가 허락하기 전까지 눈을 피하지 마십시오.”“그게 다예요?”“해 보면 압니다.”처음에는 쉬웠다.도현 얼굴을 보는 일 정도야 늘 하던 일이었다.그런데 그가 아무 말 없이 내 앞에 서 있으니 이상하게 더 버티기 어려웠다.시선이 입술로 내려갔다.“눈.”도현이 바로 말했다.나는 다시 올려다봤다.“왜 자꾸 잡아내요.”“열한 번째니까.”그는 아주 천천히 가까워졌다.무릎 사이에 서면서도 여전히 시선을 놓치지 않았다.손이 턱 아래에 닿았다.“색깔.”“초록색.”엄지가 턱선을 따라 움직였다.“지금 무슨 생각합니까?”“말 안 할래요.”“거절입니까?”“…부끄러운 거예요.”“그럼 말하지 않아도 됩니다.”도현의 얼굴이 더 가까워졌다.“대신 눈은 피하지 마십시오.”입술이 닿았다.이번에도 길지는 않았다.하지만 떨어진 뒤에도 그는 눈을 마주친 채 있었다.“왜 계속 봐요.”“보고 싶어서.”“진짜…”나는 결국 시선을 내리고 싶어졌다.그 순간 턱을 받친 손이 아주 조금 올라왔다.“눈.”“주인님.”“네.”“진짜 못 보겠어요.”그의 표정이 달라졌다.“노란색입니까?”나는 고개를 저었다.“그냥 너무 부끄러워서.”“그럼 열한 번째를 중단해도 됩니다.”“싫어요.”“왜?”나는 숨을 고르며 다시 그를 바라봤다.“끝까지 해 볼래요.”도현의 눈빛이 깊어졌다.“좋습니다.”그는 더 가까이 왔다.이번에는 입술이 아니라 이마에 짧게 입을 맞췄다.“열한 번째 명령의 마지막.”“말해요.”“제가 당신을 볼 때, 숨지 마십시오.”순간 모든 장난기가 사라졌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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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8화. 새로운 열두 번째

다음 날 도현은 평소처럼 출근했다.아무 말도 없었다.저녁이 되어도 열두 번째에 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참다못해 내가 먼저 물었다.“잊었어요?”“무엇을?”“열두 번째.”“안 잊었습니다.”“그런데 왜 아무것도 안 해요?”“당신이 하루 종일 기억하는지 보고 싶었습니다.”“또 시험.”“아닙니다.”도현은 서랍에서 작은 흰색 카드 한 장을 꺼냈다.예전 [12] 카드와 달리 숫자가 없었다.“이제 번호 안 만든다며요.”“그래서 쓰지 않았습니다.”“그럼 열두 번째라는 건 뭐예요?”도현이 카드를 뒤집었다.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당신이 기억하는 순간 자체가 열두 번째입니다.”“뭔 소리예요?”그는 내 앞에 앉았다.“처음의 열두 번째는 당신이 제게 내린 명령이었습니다.”“붙잡아 달라고 말하라고 했죠.”“네.”“이번에는요?”도현은 카드를 내 손에 올려놓았다.“제가 당신에게 부탁하고 싶은 겁니다.”“명령이라면서.”“당신이 받아들여야 명령이 됩니다.”그 말에 가슴이 묘하게 뛰었다.“내용.”도현이 내 손을 감싸지 않고 기다렸다.“제가 불안해서 당신을 의심하는 말을 하면.”잠시 멈췄다.“그 자리에서 바로 멈춰 세워 주십시오.”“제가요?”“네.”“주인님한테?”“그 순간에는 한서윤으로.”그는 숨을 골랐다.“제가 당신을 잃을까 봐 예전 방식으로 돌아가려 할 때, 넘어가지 마십시오.”이번 열두 번째는 내가 따르는 명령이 아니었다.둘의 관계를 지키기 위한 약속이었다.“받아들일게요.”도현의 시선이 내려갔다.“그리고 오늘 밤은?”내가 묻자 그가 눈을 들었다.“무엇을 원합니까?”“어제 열한 번째까지 했잖아요.”“그래서?”“열두 번째도 뭔가 있어야죠.”그의 입가에 아주 작은 미소가 번졌다.“욕심이 많아졌군요.”“누가 이렇게 만들었는데.”도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내 앞에 섰다.“그럼 열두 번째는 간단합니다.”“말해요.”그가 손을 내밀었다.“오늘은 제가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았습니다.”“그래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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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9화. 아침의 경고

다음 날 아침, 스톡홀름 지부에서 긴급 메일이 도착했다.새로운 노동계약 적용을 두고 일부 직원들이 집단 서명을 제출했다.내용은 단순한 임금 요구가 아니었다.[유럽 총괄 체제 해체 및 도시별 독립 경영 요구.]서명자는 전체 직원의 31%.상당한 숫자였다.마르틴은 즉시 회의를 요청했다.“합병 이후 중앙 의사결정에 대한 불만입니다.”“우리가 권한 많이 넘겼잖아요.”“직원들은 그렇게 느끼지 않는 것 같습니다.”한예린은 비용 자료를 띄웠다.“특히 파리 총괄실 운영비가 불만의 핵심입니다.”내 직책 자체가 문제로 올라온 셈이었다.도현은 회의 내용을 듣고도 바로 방어하지 않았다.“직원들이 총괄 체제를 없애길 원한다면 검토해야 합니다.”뜻밖의 말이었다.“도현 씨도 그렇게 생각해요?”“당신 자리를 지키는 것이 회사보다 먼저일 수는 없습니다.”가슴이 순간 서늘해졌다.맞는 말인데도 듣기 싫었다.“제가 없어져도 괜찮아요?”도현의 표정이 굳었다.“직책이 없어지는 것과 당신이 없어지는 것은 다릅니다.”“알아요.”“지금은 안 아는 얼굴입니다.”그가 내 손을 잡으려다 멈췄다.“만져도 됩니까?”나는 잠시 망설이다 고개를 끄덕였다.손이 맞닿았다.“총괄 자리가 사라져도 당신이 실패한 것은 아닙니다.”“근데 제가 만든 체제잖아요.”“만든 사람이 필요 없어질 정도로 성장하면 성공일 수도 있습니다.”그 말이 오래 남았다.나는 직원들과 직접 공개 토론회를 열기로 했다.도현은 참석하지 않았다.이번에는 정말 내 자리의 가치가 검증돼야 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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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화. 총괄 없는 회사

공개 토론회에는 예상보다 많은 직원이 접속했다.스톡홀름 직원대표가 먼저 말했다.“총괄실이 생긴 뒤 현지 승인 절차가 늘었습니다.”파리 쪽에서도 불만이 나왔다.“도시별 대표가 있는데 왜 상위 조직이 또 필요합니까?”나는 변명하지 않았다.“그럼 묻겠습니다. 총괄실이 없어져도 되는 기능과 반드시 필요한 기능을 구분해 주세요.”세 시간 동안 목록이 쌓였다.필요 없는 것.일정 보고.소액 예산 승인.현지 채용 검토.필요한 것.도시 간 물류 조정.공동 투자.분쟁 중재.대규모 안전사고 대응.결론은 의외였다.직원들은 총괄직 자체를 없애길 원한 게 아니었다.총괄실이 너무 많은 일을 가져간 것을 문제 삼았다.나는 조직을 절반으로 줄이기로 결정했다.내 직속 인력도 40% 감축했다.“당신 권한도 줄어듭니다.”마르틴이 확인했다.“그래야죠.”“후회할 수도 있습니다.”“그럼 다시 고치면 돼요.”개편안은 직원 투표 72% 찬성으로 통과됐다.집에 돌아오니 도현이 와인을 따르고 있었다.“축하합니다.”“권한 줄인 걸요?”“당신 없이도 돌아갈 수 있는 조직에 가까워진 것.”“조금 허전해요.”“알고 있습니다.”“도현 씨도 예전에 이런 기분이었어요?”그는 잔을 내려놓았다.“대표 자리에서 내려왔을 때요?”“네.”“처음에는 제가 없어지면 회사도 무너질 줄 알았습니다.”“안 무너졌죠.”“네.”그가 나를 바라봤다.“그래서 더 힘들었습니다.”처음으로 이해가 갔다.필요하지 않은 사람이 되는 두려움.도현이 나를 붙잡으려 했던 이유 중 하나.“그럼 오늘 좀 이상해도 이해해 줘요.”“얼마든지.”“명령은?”“당신이 원하면.”나는 와인잔을 내려놓았다.“오늘은 하나만.”“내용은?”“제가 총괄이 아니어도 같은 사람이라고 느끼게 해 줘요.”도현은 잠시 침묵했다.“그건 명령으로 증명할 수 없습니다.”“그럼?”그가 내 손을 잡았다.“내일 아침까지 옆에 있겠습니다.”생각보다 그 말이 더 필요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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