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열두 번째 명령이 끝나면: Chapter 211 - Chapter 220

420 Chapters

211화. 받쳐 주는 사람

다음 날 아침, 도현의 팔 위에서 눈을 떴다.밤새 같은 자세로 있었는지 그의 오른팔은 내 목 아래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내가 몸을 일으키자 도현의 미간이 가볍게 찌푸려졌다.“팔 저리죠?”“괜찮습니다.”“거짓말.”나는 그의 손을 잡아 천천히 주물렀다. 손끝이 차갑고 굳어 있었다.“이렇게까지 안 움직여도 됐잖아요.”“당신이 기대고 있었습니다.”“제가 자고 있는데 살짝 빼도 몰랐어요.”도현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놓았다가 깨어났을 때 당신이 없는 것이 싫었습니다.”어젯밤 열려 있던 손 위에 스스로 손을 올린 건 나였다. 그런데 그는 그 선택이 사라질까 봐 잠든 뒤에도 움직이지 못했다.“저 안 없어져요.”“알고 있습니다.”“또 말만 알죠?”도현은 부정하지 않았다.출근 준비를 마치자 재단에서 긴급 연락이 왔다.박미라에게 지원금을 준 뒤 다른 지원자들이 형평성 문제를 제기했다. 전과가 있는 지원자에게 더 관대한 기준이 적용됐다는 주장이었다.재단 앞에는 기자들까지 모여 있었다.“제가 먼저 갈게요.”가방을 들자 도현도 재킷을 집었다.“함께 갑니다.”“오늘 이사회 있잖아요.”“오후로 미뤘습니다.”“저한테 말도 없이요?”그의 손이 멈췄다.“당신이 공격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그래도 제 일정에 맞춰 도현 씨 일정 바꾸는 건 미리 말해야죠.”“미안합니다.”그는 재킷을 다시 내려놓지 않았다.“그래도 가고 싶습니다.”이번에는 결정이 아니라 요청이었다.“재단 안에는 들어오지 말고 밖에서 기다려요.”“받아들이겠습니다.”재단 회의실에는 지원 탈락자 세 명이 와 있었다.그중 한 사람이 서류를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범죄를 저지르면 오히려 사연이 생겨서 유리한 겁니까?”“박미라 지원자는 범죄 이력 때문에 가산점을 받지 않았습니다.”“이사장님 개인 피해자라 관심을 더 받은 건 사실이잖아요.”그 말은 완전히 틀리지 않았다.이름을 확인한 순간 심사 절차를 더 엄격하게 바꿨고, 결과적으로 다른 지원자보다 더 많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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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화. 재심사

외부 감사위원회는 재단의 첫 심사 자료를 전부 다시 확인했다.박미라의 사업성 점수는 상위권이었다.문제는 윤리심사 과정이었다.심사위원 한 명이 박미라의 사연이 재단 이미지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의견을 남긴 사실이 발견됐다.[피해자의 관용을 보여 줄 상징적 사례.]내가 가장 원하지 않았던 문장이었다.박미라의 재기보다 내 이미지를 위해 선정하려 했다는 뜻이었다.“해당 위원은 심사에서 제외해야 합니다.”나는 즉시 말했다.재단 사무국장이 조심스럽게 물었다.“그럼 박미라 지원자도 탈락 처리할까요?”“다시 심사합니다.”“사업 자체는 문제가 없는데요.”“상징성이 점수에 영향을 줬는지 분리해서 봐야 해요.”박미라에게 재심사 사실을 통보하자 그녀는 별다른 항의 없이 답했다.[결과를 받아들이겠습니다.]그날 오후 차명희가 재단으로 찾아왔다.“첫 사업부터 시끄럽군요.”“그러게요.”“박미라를 탈락시키면 간단합니다.”“간단한 걸 선택하려고 재심사하는 게 아니에요.”차명희는 소파에 앉아 감사보고서를 읽었다.“당신은 왜 자신에게 불리한 기록까지 공개합니까?”“안 그러면 누군가 나중에 찾아내니까요.”“평생 의심받을 걸 전제로 사는군요.”“한 번 크게 당해 봤으니까요.”차명희의 시선이 잠시 멈췄다.사생활 유출 당시 그녀는 내 편에 섰지만, 집안의 명예를 먼저 걱정한 순간도 있었다.“그때 내가 당신에게 모든 사실을 공개하라고 요구했던 것, 후회합니다.”뜻밖의 말이었다.“갑자기요?”“당시에는 도현을 지키려면 당신이 증명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그녀는 보고서를 덮었다.“하지만 피해자에게 결백을 설명하게 한 셈이었죠.”차명희가 먼저 잘못을 인정하는 일은 드물었다.“지금이라도 아셨으면 됐어요.”“쉽게 말하는군요.”“용서했다고는 안 했는데요.”그녀의 눈썹이 올라갔다.나는 웃지 않고 덧붙였다.“그래도 같이 일할 수는 있어요.”차명희의 입가가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다.감사 결과, 박미라의 상징성 점수를 제외해도 사업성 순위는 지원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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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3화. 회장의 유언장

차명희가 재단을 다녀간 지 사흘 뒤, 도현에게 가족 변호사가 찾아왔다.그날 저녁 도현은 평소보다 늦게 집에 돌아왔다.“무슨 일 있었어요?”그는 재킷을 벗지 않은 채 식탁에 서류봉투를 내려놓았다.“어머니가 유언장을 변경했습니다.”“갑자기요?”“재단 출범 전부터 준비한 것 같습니다.”유언장에는 차명희가 보유한 지분과 재단 자산의 상속 구조가 적혀 있었다.도현이 받을 지분 일부가 가족재단으로 넘어가고, 그 재단의 운영위원 후보에 내 이름이 들어 있었다.“저랑 상의도 안 했어요.”“저에게도 말하지 않았습니다.”더 문제인 문장은 따로 있었다.[차도현과 한서윤의 혼인 관계가 종료되더라도 한서윤의 재단 운영위원 자격은 유지된다.]도현의 얼굴이 굳어 있었다.“왜 이런 조항을 넣었을까요?”“당신의 능력을 혼인과 분리하려 한 것 같습니다.”“좋은 뜻이잖아요.”“저는 싫습니다.”“왜요?”그는 유언장을 접었다.“어머니가 우리의 이혼 가능성을 문서로 준비했다는 것이.”또 불안이었다.“유언장은 가능한 상황을 다 적는 문서잖아요.”“알고 있습니다.”“그럼요?”“당신이 저와 관계없이도 가족재단에 남을 수 있다는 것이 이상합니다.”“저를 집안 소유로 묶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독립시킨 거예요.”도현은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당신이 떠난 뒤에도 어머니와 연결된다는 뜻입니다.”“도현 씨랑 이혼하면 어머니랑도 자동으로 남이 돼야 해요?”“그 상황을 구체적으로 말하지 마십시오.”목소리가 날카롭게 올라갔다.나는 서류를 내려놓았다.“유언장에 적혔다고 이혼하는 거 아니에요.”“알고 있습니다.”“도현 씨는 왜 존재하지도 않는 미래랑 싸워요?”그가 입을 다물었다.잠시 뒤 먼저 말했다.“미안합니다. 문서가 실제 가능성처럼 느껴졌습니다.”“그럼 어머니한테 물어봐요.”다음 날 차명희와 셋이 만났다.도현은 서류를 그녀 앞에 놓았다.“왜 이 조항을 넣으셨습니까?”“한서윤의 자격이 네 아내라는 이유로 생긴 게 아니니까.”“혼인 종료까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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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4화. 떨어진 반지

파리에서 열린 재단 행사 도중 반지가 사라졌다.행사 준비를 위해 장갑을 끼면서 잠시 화장대 위에 내려놓았는데, 돌아왔을 때 없었다.보안팀이 즉시 대기실을 폐쇄했다.출입자는 스타일리스트 두 명과 재단 직원 세 명.나는 가방과 바닥을 먼저 확인했다.“누구도 나가지 못하게 하겠습니다.”보안팀장이 말했다.“잠깐만요.”사생활 유출 사건 때처럼 주변 사람부터 범인으로 몰고 싶지 않았다.도현에게 연락하자 그는 스톡홀름 회의를 중단하고 영상으로 연결됐다.“반지를 마지막으로 본 시간이 언제입니까?”“십 분 전.”“대기실 CCTV는?”“안쪽에는 없어요.”그의 표정은 차갑게 굳었지만 특정인을 의심하는 말은 하지 않았다.“행사 진행은 중단하십시오.”“반지 하나 때문에요?”“하나가 아닙니다.”그 반지 안쪽에는 [돌아올 사람.]이라는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누군가 사진을 찍어 공개한다면 다시 사적인 의미가 기사화될 수 있었다.“행사는 계속할게요.”“서윤.”“반지 찾는 동안 다른 사람이 진행하면 더 소문나요.”“그 상태로 무대에 설 수 있습니까?”나는 빈 손가락을 바라봤다.“설 수 있어요.”결국 반지 없이 행사를 진행했다.질문을 받는 동안 자꾸 손가락이 허전했지만 숨기지 않았다.행사가 끝난 뒤 대기실로 돌아오니 도현이 와 있었다.스톡홀름에서 전용기를 타고 바로 온 것이다.“왜 왔어요?”“찾고 싶었습니다.”“회의는요?”“부의장에게 넘겼습니다.”“또 제 일 때문에 일정 바꿨네요.”도현의 표정이 굳었다.“지금은 그 말을 듣고 싶지 않습니다.”그가 이렇게 명확히 감정을 말한 건 오히려 나았다.“알겠어요. 미안해요.”반지는 예상 밖의 곳에서 발견됐다.내가 장갑을 벗을 때 안감 속으로 들어간 것이었다. 스타일리스트가 장갑을 정리하다 작은 금속 소리를 듣고 찾아냈다.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도현은 반지를 받아 내 손가락에 바로 끼우지 않았다.“다시 해도 됩니까?”“반지를요?”“네.”나는 손을 내밀었다.그가 천천히 반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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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5화. 돌아올 사람

반지 분실 소동 이후 도현은 내 일정에 더 민감해졌다.비행기 탑승 시간과 호텔 도착 시간까지 확인하려는 질문이 다시 늘어났다.“반지는 잘 끼고 있습니까?”프라하로 출발하기 전에도 그가 물었다.“손에 있잖아요.”“비행 중 부을 수 있으니 빼 둘 수도 있습니다.”“그럼 가방에 넣으면 되죠.”“어느 주머니에?”나는 그를 빤히 바라봤다.도현도 자신이 지나치다는 걸 알아차렸다.“미안합니다.”“반지 한 번 잃어버렸다고 이럴 거예요?”“없어진 동안 당신과의 약속까지 사라진 기분이었습니다.”“약속은 금속 안에 있는 게 아니잖아요.”“압니다.”“그런데 또 말만 알죠?”그가 고개를 끄덕였다.나는 반지를 빼 그의 손바닥에 올렸다.도현의 얼굴이 바로 굳었다.“왜 뺍니까?”“일주일 동안 도현 씨가 가지고 있어요.”“싫습니다.”“왜요?”“당신 손에 있어야 합니다.”“반지 없어도 제가 돌아오는지 확인해 봐요.”그는 손을 닫지 못했다.“이런 시험은 원하지 않습니다.”“시험이라기보다 연습.”“당신이 없는 동안 이것만 보고 기다리라는 겁니까?”“응.”도현은 오래 망설이다 반지를 받았다.프라하에 도착한 뒤 손가락은 생각보다 더 허전했다.직원들이 결혼반지를 빼고 온 이유를 묻기도 했다.“수리 맡겼어요.”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았다.도현은 영상통화 때마다 반지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있었다.“왜 끼고 있지 않아요?”“제 것이 아니니까.”“목걸이에 걸어도 되잖아요.”“당신이 돌아오면 직접 돌려주려고 합니다.”일주일 동안 그는 반지에 관한 질문을 하지 않았다.대신 매일 한 번만 물었다.“오늘도 돌아올 예정입니까?”“네.”마지막 날에는 내가 먼저 말했다.“내일 돌아가요.”도현의 눈빛이 조금 풀렸다.서울에 도착하자 그는 공항이 아니라 집에서 기다리고 있었다.내가 현관문을 열자 바로 다가왔지만 안지는 않았다.“손을 주십시오.”나는 왼손을 내밀었다.도현은 반지를 끼우기 전 물었다.“다시 받아들이겠습니까?”“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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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6화. 기다릴 사람

내 반지가 돌아온 뒤 이번에는 도현이 자신의 반지를 빼 놓았다.아침 식탁 위에 은색 반지가 놓여 있었다.“왜 안 껴요?”“스톡홀름 기술 현장에서 장비 점검이 있습니다.”“장갑 안에 끼면 안 돼요?”“안전 규정상 금속 액세서리를 빼야 합니다.”합리적인 이유였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쓰였다.반지 안쪽의 문장은 [기다릴 사람.]이었다.“가방에 넣어요.”내가 말하자 도현이 나를 바라봤다.“걱정됩니까?”“조금.”그의 입가가 희미하게 올라갔다.“제가 질투할 때 즐기지 말라고 했습니다.”“그런 표정 아니거든요.”“그럼?”“그냥 잃어버리지 말라고요.”도현은 반지를 내게 건넸다.“당신이 보관하십시오.”“왜요?”“지난번에는 제가 가지고 있었으니까.”그가 스톡홀름에 있는 동안 나는 반지를 목걸이에 걸었다.두 개의 은색 반지가 가슴 앞에서 부딪힐 때마다 작은 소리가 났다.도현이 영상통화에서 바로 알아봤다.“목에 걸었습니까?”“네.”“불편하지 않습니까?”“괜찮아요.”“보여 주십시오.”“지금요?”“확인하고 싶습니다.”나는 화면 가까이 목걸이를 들어 보였다.도현의 표정이 부드러워졌다.“잘 있네요.”“도현 씨보다 제가 더 집착하는 것 같아요.”“좋습니다.”“좋긴 뭐가 좋아요.”“당신도 저를 기다린다는 뜻이니까.”스톡홀름 현장에서는 예상보다 큰 문제가 생겼다.신규 설비의 안전센서가 기준에 미달해 설치를 중단해야 했다.도현은 일정을 사흘 연장했다.“언제 와요?”내가 먼저 물었다.“정확히 말할 수 없습니다.”“매번 제가 하던 말이네요.”그는 웃지 않았다.“기다리게 해서 미안합니다.”“일 때문이잖아요.”“이해와 서운함은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그가 내가 잊었던 말을 돌려줬다.“맞아요. 서운해요.”“말해 줘서 고맙습니다.”“빨리 와요.”“노력하겠습니다.”“노력 말고.”도현은 잠시 생각한 뒤 말했다.“문제가 해결되는 즉시 가장 빠른 비행기로 돌아가겠습니다.”사흘 뒤 새벽, 현관문이 열렸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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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7화. 차명희의 조건

차명희가 갑자기 대표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발표했다.그녀가 맡고 있던 가족재단 이사장과 지주회사 회장직을 동시에 내려놓겠다는 내용이었다.언론은 즉시 후계 구도를 다뤘다.도현의 이름이 가장 먼저 거론됐고, 내 이름도 함께 올라갔다.[차도현·한서윤 부부 공동 경영 체제 가능성.]나는 기사를 보자마자 차명희에게 전화했다.“왜 미리 말 안 하셨어요?”“내 자리에서 물러나는 데 네 허락이 필요합니까?”“재단 운영위원 후보인 저한테는 영향이 있잖아요.”“그래서 오늘 만나자고 했어요.”차명희의 집에는 도현도 와 있었다.테이블 위에는 승계 계획이 놓여 있었다.지주회사 회장 후보는 전문경영인.가족재단 이사장 후보는 도현.여성 경영인 지원기금은 계속 내가 맡는다.“도현 씨가 재단 이사장이요?”차명희가 고개를 끄덕였다.“경영권은 전문경영인에게 넘기고, 가족 자산은 재단으로 관리할 겁니다.”도현이 물었다.“왜 저와 상의하지 않았습니까?”“상의하면 네가 거절할 테니까.”“지금도 거절합니다.”차명희의 표정이 굳었다.“회사를 갖겠다는 것도 아니고 재단 책임만 맡으라는 거다.”“제 직책이 이미 있습니다.”“가족이 가진 자산에 책임질 의무도 있어.”도현의 턱이 굳었다.나는 그에게 바로 대답하지 말라는 신호로 손등을 눌렀다.“조건이 있어요?”차명희가 나를 봤다.“도현이 이사장을 맡으면 당신은 운영위원으로 들어옵니다.”“부부가 동시에요?”“서로 감시하게 하려는 거예요.”“표현이 이상해요.”“견제라고 하죠.”도현은 내 손을 내려다봤다.“당신도 맡고 싶습니까?”“제 의사는 아직 안 물어봤잖아요.”그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미안합니다.”나는 차명희에게 말했다.“운영위원은 공개 선임 절차를 거칠게요.”“가족재단인데?”“그래야 제 이름을 넣어도 특혜가 아니죠.”“도현은?”“도현 씨도 이사장 심사를 받아야 해요.”차명희가 헛웃음을 흘렸다.“내가 만든 재단에서 내 아들을 심사하라고?”“전문경영으로 바꾸신다면서요.”오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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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8화. 공개 심사

가족재단 이사장 공개 심사 소식이 알려지자 반응은 거셌다.“결국 차도현에게 물려주면서 형식만 만드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이어졌다.도현은 심사 참여 자체를 철회하려 했다.“제가 후보에서 빠지면 논란이 끝납니다.”“끝나는 게 아니라 도망가는 거죠.”내 말에 그의 표정이 굳었다.“저는 그 자리를 원한다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원하지 않으면 심사받고 거절해요.”“왜 굳이?”“어머니가 도현 씨한테 책임을 맡기고 싶어 하는 이유도 들어봐야 하니까.”차명희는 심사위원회에 직접 출석했다.“왜 차도현 후보를 추천했습니까?”외부위원의 질문에 그녀가 답했다.“제 아들이라서가 아닙니다.”회의장에 웃음기 없는 긴장이 흘렀다.“실패했을 때 숨기지 못하는 사람이 됐기 때문입니다.”도현의 시선이 아주 잠깐 내게 향했다.차명희가 계속 말했다.“예전의 도현은 잘못하면 사람을 밀어냈습니다. 지금은 잘못했다고 말한 뒤 돌아오는 법을 배웠어요.”그녀가 우리 관계를 이렇게 보고 있었다는 사실이 의외였다.도현의 심사 차례가 됐다.“가족의 영향에서 독립적으로 재단을 운영할 수 있습니까?”“완전한 독립은 불가능합니다.”그의 대답에 위원들이 고개를 들었다.“저 역시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대신 이해충돌 안건에서는 의결권을 포기하겠습니다.”“배우자인 한서윤 이사장과 관련된 안건은요?”“같은 기준을 적용하겠습니다.”“부부 관계가 판단에 영향을 줄 가능성은 없습니까?”도현은 잠시 침묵했다.“있습니다.”지나치게 솔직한 대답이었다.“그래서 감정이 없다고 주장하는 대신, 기록과 외부위원의 검토를 남기겠습니다.”최종 결과, 도현은 조건부 이사장으로 선임됐다.임기 이 년.매년 외부 평가.가족 관련 안건 의결 제한.나는 공개 모집을 거쳐 운영위원에 선임됐다.첫 회의 전 도현이 말했다.“재단에서는 저를 이사장님이라고 부르십시오.”“알아요.”“집에서는?”“도현 씨.”그의 눈썹이 올라갔다.“다른 호칭은?”“잘하면요.”“평가 기준이 있습니까?”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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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9화. 첫 번째 반대표

도현이 재단 이사장이 된 뒤 첫 투자 안건은 유럽 청년 창업기금이었다.그는 안정적인 채권 중심 운용을 제안했다.나는 일부 자금을 초기 창업기업에 직접 투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원금 손실 가능성이 큽니다.”도현이 회의에서 말했다.“지원 목적이 안정적인 수익만 얻는 건 아니잖아요.”“재단 자산을 보전해야 지원도 지속됩니다.”“위험을 전부 피하면 이미 성공한 기업만 선택하게 돼요.”표결 결과는 찬성 네 표, 반대 네 표.이사장인 도현에게 최종 결정권이 있었다.그는 내 쪽을 보지 않고 말했다.“직접 투자안에 반대합니다.”안건은 부결됐다.회의가 끝난 뒤 나는 먼저 일어났다.도현이 따라오지 않았다.집에 도착해서도 서운함이 가라앉지 않았다.“제 의견이 그렇게 위험했어요?”“현재 재단 규모에서는 그렇다고 판단했습니다.”“조금도 제 말이 맞다고 생각 안 했어요?”“일부는 동의합니다.”“그런데 반대했잖아요.”도현은 재킷을 벗어 걸었다.“재단에서는 안건을 선택했습니다.”“집에서는요?”“당신이 화났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그게 끝이에요?”그의 표정이 굳었다.“제가 당신 의견에 반대표를 던지면 관계까지 흔들립니까?”질문이 아프게 들어왔다.“그런 뜻 아니에요.”“하지만 집에 돌아온 뒤에도 이사장 결정을 남편에게 따지고 있습니다.”맞는 말이었다.나는 소파에 앉았다.“회의에서는 참았잖아요.”“네.”“집에서는 서운하다고 말할 수 있죠.”도현의 표정이 조금 풀렸다.“그건 말할 수 있습니다.”“제가 틀렸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제 의견을 더 믿어 줬으면 했어요.”“당신을 믿는 것과 안건에 동의하는 것은 다릅니다.”그가 내 앞에 앉았다.“저도 당신이 제 반대에도 제 곁에 있을지 확인하고 싶었습니다.”이번에는 그의 불안이었다.“반대표 하나로 안 떠나요.”“알고 있습니다.”“또 말만?”“네.”나는 한숨을 쉬다 그의 손을 잡았다.“다음 회의에서 다시 제안할 거예요.”“새 자료가 있다면 검토하겠습니다.”“또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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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화. 반대해도 남는 사람

도현은 침실 중앙에 의자 하나만 놓았다.커프도 리드도 없었다.“앉으십시오.”첫 번째 지시였다.나는 팔짱을 꼈다.“싫어요.”도현의 눈빛이 미세하게 변했다.예고했어도 실제 거절을 들으면 긴장하는 얼굴이었다.“이유를 물어도 됩니까?”“서 있고 싶어요.”그는 강요하지 않았다.“알겠습니다.”“기분 어때요?”“좋지는 않습니다.”“그래도요?”“당신이 떠난 것은 아니니까.”도현은 다음 지시를 내렸다.“저를 보십시오.”이번에는 따랐다.그가 한 걸음 가까이 왔다.“반대해도 관계가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배우려는 겁니까?”“도현 씨도, 저도요.”“그럼 두 번째 질문입니다.”“네.”“오늘 제가 재단에서 반대한 것이 당신의 능력을 믿지 않아서라고 생각합니까?”“조금은 그렇게 느꼈어요.”“사실은 아닙니다.”“알아요.”“알면서 왜 서운합니까?”“남편이 제 편이었으면 했으니까.”도현의 얼굴이 부드러워졌다.“저는 당신 편입니다.”“안건에서는 아니었잖아요.”“당신 편이라는 말이 항상 같은 표를 던진다는 뜻은 아닙니다.”그 문장이 오래 남았다.도현은 손을 내밀었다.“잡아도 됩니까?”“네.”그는 손목이 아니라 손바닥을 잡았다.“오늘의 명령입니다.”“말해요.”“제가 반대할 때 저를 적으로 만들지 마십시오.”숨이 짧게 막혔다.그 명령은 나에게만 필요한 게 아니었다.“도현 씨도요.”“네.”“제가 거절해도 사랑이 줄었다고 생각하지 않기.”“노력하겠습니다.”“약속 못 해요?”도현은 쉽게 말하지 않았다.“두려움이 먼저 올라올 수 있습니다.”“그럼 올라온 뒤에요?”“당신을 통제하지 않고 말하겠습니다.”“뭐라고요?”그는 내 손을 조금 더 단단히 잡았다.“거절당해서 불안하다고.”“좋아요.”나는 의자를 바라봤다.“이제 앉으라고 다시 말해 봐요.”도현의 눈빛이 짙어졌다.“앉으십시오.”이번에는 천천히 의자에 앉았다.“왜 이번에는 따릅니까?”“제가 선택했으니까.”“색깔.”“초록색.”그가 내 앞에 무릎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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