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열두 번째 명령이 끝나면: Chapter 231 - Chapter 240

420 Chapters

231화. 불필요한 사람

총괄실 조직 개편이 시행되자 실제로 내 업무량이 줄었다.하루 열두 개였던 결재가 네 개로 줄었다.긴급 연락도 절반 이하가 됐다.처음 이틀은 좋았다.셋째 날부터 불안해졌다.“진짜 아무것도 없어요?”비서가 웃었다.“대표님이 직접 하던 일을 현지에서 해결하고 있습니다.”“문제는요?”“없습니다.”문제가 없다는 게 문제였다.나는 프라하 운영회의에 필요도 없이 참석했다.파리 물류 자료도 다시 열어봤다.결국 마르틴이 말했다.“총괄님.”“네.”“저희가 일하도록 놔두십시오.”말이 너무 정확해서 반박하지 못했다.집에 돌아오자 도현이 내 표정만 보고 알아챘다.“불필요한 사람이 된 것 같습니까?”“조금.”“저도 그랬습니다.”“어떻게 버텼어요?”“못 버텼습니다.”“도움 안 되네.”그가 아주 조금 웃었다.“그래서 당신을 통제하려 했습니다.”웃음이 사라졌다.“회사를 통제할 수 없게 되자 관계라도 통제하려 했던 것 같습니다.”처음 듣는 고백이었다.“지금 생각하니까 이해돼요?”“네.”“그럼 저도 그럴 수 있어요?”“저를 통제할 겁니까?”“아니.”나는 소파에 몸을 기대었다.“주인님한테 더 매달릴 수도 있잖아요.”도현의 눈빛이 깊어졌다.“그건 경계해야 합니다.”“왜요?”“제가 필요하다는 감각을 얻기 위해 당신이 관계 안에서 스스로 작아지면 안 됩니다.”그 말이 묘하게 뜨거웠다.“그럼 오늘은?”“원하는지 먼저 확인하십시오.”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회사에서 잃은 통제감을 여기서 채우고 싶은 건지.아니면 정말 도현을 원하는 건지.한참 뒤 눈을 떴다.“원해요.”“확실합니까?”“네.”“그럼 오늘은 제가 주도합니다.”도현이 일어섰다.“대신 회사에서 잃은 자리를 여기서 보상받는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알겠어요.”“당신은 이미 충분히 큰 사람입니다.”그 말 뒤에 이어진 명령은 단순했다.“저만 보십시오.”이번에는 어렵지 않았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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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2화. 숫자 없는 밤

도현은 갑자기 숫자를 세지 않았다.“오늘은 몇 번째예요?”내가 묻자 그가 대답했다.“없습니다.”“왜?”“당신이 숫자를 기다리기 시작했으니까.”“그게 뭐 어때서.”“다음 명령을 얻기 위해 현재를 버티는 것 같았습니다.”정곡이었다.여덟 번째가 끝나기도 전에 아홉 번째를 궁금해했고, 열한 번째 중에도 열두 번째를 기다렸다.도현은 내 앞에 서서 말했다.“오늘은 다음이 없습니다.”“진짜?”“네.”“그럼 뭘 해요?”“지금 하나만.”그가 손바닥을 펼쳤다.“손을 주십시오.”나는 올려놓았다.“끝.”“…이게 명령이에요?”“네.”“장난하죠?”“아닙니다.”도현은 내 손을 잡은 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답답해.”“왜?”“뭔가 더 있을 것 같잖아요.”“없습니다.”“키스도?”“원하면 요청하십시오.”“주인님이 알아서 해야지.”“오늘은 아닙니다.”그의 고집은 단단했다.결국 내가 먼저 말했다.“키스해 줘요.”“네.”입술이 닿았다.끝나자 도현은 다시 가만히 있었다.“그 다음은?”“없습니다.”“진짜 미치겠네.”그가 낮게 웃었다.“당신은 명령보다 예고를 더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아니거든요.”“그럼 다음을 묻지 마십시오.”나는 입을 다물었다.도현은 기다렸다.한참 뒤 내가 먼저 그의 품으로 들어갔다.“이건 명령 아니죠?”“당신 선택입니다.”“그럼 됐어요.”숫자 없이 보낸 밤은 예상보다 더 길었다.몇 번째인지, 다음이 무엇인지 알 수 없으니 매 순간 선택해야 했다.그리고 이상하게도 그게 더 야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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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3화. 차명희의 퇴임식

차명희의 공식 퇴임식이 열렸다.정치인이나 유명인 대신 회사와 재단에서 오래 일한 직원들이 초대됐다.차명희는 긴 연설을 하지 않았다.“내가 없어도 돌아가야 제대로 만든 조직입니다.”그 한마디로 끝이었다.나는 며칠 전 내 상황을 떠올렸다.행사 뒤 차명희가 나를 불렀다.“총괄실 줄였다면서요.”“들으셨어요?”“도현이 말했어요.”“도현 씨가요?”“자기가 예전에 못했던 걸 당신은 했다고 하더군.”조금 의외였다.“칭찬이에요?”“아마도.”차명희는 창밖을 바라봤다.“자리를 내려놓으면 사람이 남아요.”“회장님은 뭐가 남아요?”“아직 모르겠어요.”처음으로 그녀가 약한 말을 했다.나는 차를 한 잔 더 따랐다.“그럼 천천히 찾아보세요.”차명희가 나를 바라봤다.“며느리처럼 말하네.”“그 표현 싫다니까요.”“알아.”이번에는 웃음이 섞였다.퇴임식 뒤 도현은 어머니와 한참 대화를 나눴다.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내가 물었다.“뭐라고 하셨어요?”“처음으로 쉬는 법을 모르겠다고 했습니다.”“도현 씨랑 똑같네.”“저도 그렇게 말했습니다.”“화 안 내셨어요?”“부정하지 않았습니다.”잠시 뒤 도현이 내 손을 잡았다.“우리 둘 다 어머니를 닮은 부분이 있군요.”“난 왜요?”“필요한 사람이 아니면 불안해하는 것.”나는 창밖을 봤다.반박할 수 없었다.“그럼 오늘은 셋 다 쉬는 연습 해야겠네.”“어머니까지 부를 겁니까?”“미쳤어요?”도현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번졌다.“다행입니다.”질투할 대상이 이제 어머니까지 된 모양이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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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4화. 새로운 지원자

재단 2기 지원자 모집에는 한 사람의 이름이 화제가 됐다.유럽 최대 투자회사 창업자의 딸, 최아린.부족한 것이 없어 보이는 사람이 지원금을 신청했다.심사위원들은 반발했다.“이런 사람에게 지원금까지 줘야 합니까?”아린은 면접에서 말했다.“아버지 돈을 받지 않고 제 회사를 만들고 싶습니다.”“그럼 대출을 받으면 되잖아요.”“은행에서는 가족 보증을 요구합니다.”그녀의 문제도 결국 독립이었다.나는 공정한 심사를 지시했다.사업성은 압도적으로 높았다.하지만 재단의 목적은 자본 접근성이 낮은 사람을 지원하는 것이었다.도현은 말했다.“선정하면 재단 취지가 흔들릴 수 있습니다.”“실력은 제일 좋아요.”“필요성이 낮습니다.”“본인 돈은 없잖아요.”“가족 자산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은 다릅니다.”이번에는 도현 말이 맞았다.나는 아린을 지원금 대상에서는 제외하되, 멘토링과 투자자 연결 프로그램은 제공하자고 제안했다.아린은 결과를 받아들이면서 말했다.“한 이사장님도 가족 자본이 있는데 독립하셨잖아요.”“전 그 자본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않았어요.”“그래서요?”“독립은 돈을 안 받는 걸로 끝나는 게 아니에요.”내가 도현과 겪은 일도 떠올랐다.도움을 받으면서도 결정권을 지키는 법.아린은 결국 외부 투자를 받아 회사를 시작했다.한 달 뒤 재단에 작은 기부금을 보내왔다.[다음 사람에게 써 주세요.]도현이 편지를 읽으며 말했다.“좋은 결정이었습니다.”“이번에는 같은 표였네요.”“가끔은.”“집에서는요?”그의 눈빛이 깊어졌다.“오늘도 같은 선택을 할지는 확인해야 합니다.”“갑자기?”“회사 이야기가 끝났으니까.”도현이 그렇게 말하는 순간, 업무와 둘만의 세계를 가르는 문이 조용히 닫혔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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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5화. 열세 번째가 없는 이유

나는 결국 물었다.“왜 열세 번째는 안 해요?”도현이 책에서 시선을 들었다.“숫자를 없앴으니까.”“그래도 열두 번째까지 했잖아요.”“그건 당신이 원했습니다.”“열세 번째도 궁금한데.”도현은 한동안 나를 바라봤다.“열세 번째라는 숫자를 기다리는 이유가 무엇입니까?”“그냥 다음이니까.”“그게 문제입니다.”“뭐가.”“당신이 숫자 때문에 원하는지, 정말 원하는지 구분하기 어렵습니다.”또 정확한 말을 했다.나는 소파에 턱을 괴었다.“그럼 제가 진짜 원한다고 하면?”“무엇을 원합니까?”“…강하게.”“구체적으로.”“또 시작.”“필요한 질문입니다.”나는 생각했다.“손목 잡는 거.”“네.”“자세 통제.”“네.”“목소리 좀 세게.”도현의 눈빛이 달라졌다.“그 이상은?”“오늘은 안대도 괜찮아요.”“왜?”“이번에는 안 보고 싶어요.”“무서워서?”“아니.”나는 솔직하게 대답했다.“더 집중될 것 같아서.”도현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럼 숫자는 붙이지 않습니다.”“그래도 해요?”“당신이 원하는 것이 명확해졌으니까.”검은 리본이 꺼내졌다.그는 바로 눈을 가리지 않았다.“마지막 확인.”“네.”“색깔.”“초록색.”“손목.”“괜찮아요.”“안대.”“네.”“강도.”나는 도현의 눈을 마지막으로 바라봤다.“강하게.”검은 리본이 시야를 가렸다.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그런데 도현의 목소리는 더 선명해졌다.“이제 숫자를 잊으십시오.”손목이 잡혔다.“오늘 필요한 것은 하나뿐입니다.”“뭔데요?”“지금 원하는지.”나는 망설이지 않았다.“네, 주인님.”열세 번째는 없었다.그래서 오히려 다음이 더 자유로워졌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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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6화. 보이지 않는 거리

안대를 한 상태에서 가장 어려운 건 도현이 어디 있는지 모르는 일이었다.손목을 잡았던 손이 사라졌다.발소리도 멀어졌다.“주인님?”대답이 없었다.“도현 씨.”그제야 목소리가 들렸다.“여기 있습니다.”“왜 대답 안 했어요.”“당신이 먼저 무엇이 필요한지 말하기를 기다렸습니다.”“어디 있는지.”“두 걸음 앞.”숨이 조금 풀렸다.“가까이 와요.”“명령입니까?”“부탁.”한 걸음.또 한 걸음.체온이 느껴졌다.“손대도 돼요.”도현의 손이 허리에 닿았다.강하게 해 달라고 했지만 그는 처음부터 힘을 주지 않았다.서서히.내 몸이 긴장할 때마다 멈췄다.“색깔.”“초록색.”이번에는 손목을 등 뒤로 모았다.“이 정도?”“더.”조금 강해졌다.“이 정도?”“네.”내가 직접 강도를 고르는 과정이 오히려 더 아찔했다.“오늘은 왜 안대가 좋습니까?”도현이 물었다.“주인님 목소리만 들려서.”“좋습니까?”“…네.”“그러면 들으십시오.”목소리가 귀 가까이 내려왔다.“아무것도 보이지 않아도 당신은 언제든 멈출 수 있습니다.”“알아요.”“그래서 제가 더 강하게 해도 됩니까?”심장이 뛰었다.“네.”손목을 잡은 힘이 한 단계 더 단단해졌다.나는 숨을 짧게 들이켰다.도현이 즉시 멈췄다.“노란색?”“아니요.”“확실합니까?”“네.”잠시 뒤 안대가 풀렸다.“왜 벌써 풀어요?”“당신 얼굴을 봐야 해서.”“아깐 목소리만 들으라며.”“제가 확인해야 합니다.”도현은 내 눈을 오래 살폈다.“괜찮습니까?”“네.”“다시 가릴까요?”나는 고개를 저었다.“이제 봐도 돼요.”그는 리본을 내려놓았다.“잘했습니다.”“또 칭찬.”“좋아하지 않습니까?”나는 대답 대신 그의 셔츠를 잡았다.이번에는 그가 웃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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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7화. 파리의 경고장

다음 날 파리 센터에 공식 경고장이 도착했다.프랑스 노동당국이 일부 직원들의 초과근무 기록을 조사하겠다는 통보였다.문제는 내 총괄실이었다.조직 축소 이후 남은 직원들이 업무를 떠안으며 주당 근무시간이 급증한 것이다.“제가 줄인 조직 때문에 생긴 거네요.”마르틴이 말했다.“맞지만, 관리자가 막지 못한 책임도 있습니다.”“총괄 책임입니다.”나는 바로 인정했다.도현에게 말하자 그는 첫마디부터 달랐다.“사람을 다시 늘리십시오.”“아직 조사도 안 끝났어요.”“기록만 봐도 과도합니다.”“조직 줄인 지 한 달밖에 안 됐는데 다시 늘리면 실패 인정이잖아요.”도현의 표정이 굳었다.“사람이 지쳐 있는데 체면을 먼저 생각합니까?”말이 세게 들어왔다.“체면 때문만은 아니에요.”“그럼?”“또 조직이 커지면 예전으로 돌아갈까 봐.”“인원을 늘리는 것과 권한을 가져오는 것은 다릅니다.”그는 정확히 구분했다.나는 총괄실 인원을 일부 복원하되 결재 권한은 늘리지 않는 구조를 만들었다.초과근무 수당도 소급 지급했다.노동당국 조사는 경고 없이 종결됐다.직원 간담회에서 한 사람이 말했다.“총괄님이 사람을 줄이면서 효율을 강조했을 때 솔직히 버티라는 뜻으로 들렸습니다.”가슴이 아팠다.“미안합니다.”이번에는 ‘대표니까 책임진다’는 말 대신 구체적으로 약속했다.“앞으로 조직 개편 후 한 달 동안 근무시간을 주 단위로 확인하겠습니다.”집으로 돌아오자 도현이 물었다.“힘듭니까?”“네.”“오늘은 뭘 원합니까?”나는 한참 고민했다.“아무것도 안 하고 싶어요.”그는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좋습니다.”“진짜 아무것도?”“네.”“주인님도 쉬어요?”“오늘은 남편입니다.”그 말이 이상하게 편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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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8화. 한 번의 거절

도현이 오랜만에 먼저 보관함을 열었다.“오늘 원합니까?”나는 잠시 고민하다 고개를 저었다.“아니요.”그의 손이 멈췄다.“알겠습니다.”그뿐이었다.보관함을 닫고 돌아섰다.“끝?”“네.”“왜 안 물어봐요?”“싫다고 했으니까.”“이유도?”“말하고 싶으면 들을 겁니다.”너무 담담해서 오히려 내가 이상해졌다.“서운하지 않아요?”“조금.”“그런데?”“당신의 거절을 바꾸려고 하면 안 됩니다.”도현은 침대 반대편에 앉아 책을 펼쳤다.나는 한동안 그를 보다가 옆으로 갔다.“이유는 그냥 피곤해서예요.”“알겠습니다.”“주인님이 싫어서 아니고.”책장이 멈췄다.“그 말은 조금 고맙습니다.”“많이는 아니고?”“많이.”그제야 웃음이 났다.“안아 주는 건 괜찮아요.”도현은 책을 내려놓았다.“확실합니까?”“네.”그가 품을 열었다.나는 스스로 들어갔다.“이런 것도 매번 물을 거예요?”“당신이 싫다고 말한 직후니까 더.”“진짜 많이 변했네.”“좋습니까?”“가끔은 너무 조심해서 답답해요.”도현의 눈썹이 올라갔다.“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제가 괜찮다고 한 다음에는 좀 자신 있게.”“기억하겠습니다.”말이 끝나자 허리를 감싼 팔이 조금 더 단단해졌다.“이 정도?”“응.”“더?”“조금.”그는 내가 말한 만큼만 힘을 더했다.거절은 그날 밤 아무것도 끝내지 않았다.오히려 그 뒤에 무엇이 가능한지 더 분명하게 만들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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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9화. 도현의 거절

며칠 뒤 반대 상황이 찾아왔다.이번에는 내가 먼저 보관함을 열었다.도현은 문 앞에서 내 손을 바라봤다.“오늘은 안 됩니다.”“…뭐?”예상하지 못했다.“왜요?”“피곤합니다.”“도현 씨가요?”“네.”나는 괜히 당황했다.그가 거절할 거라고 생각한 적이 거의 없었다.“진짜 피곤해서?”도현의 눈빛이 변했다.“다른 이유가 있어야 합니까?”“아니, 그냥…”말을 하다 멈췄다.내가 지금 그가 나에게 했던 일을 똑같이 하고 있었다.거절을 개인적인 거부로 받아들이고 이유를 찾는 것.“미안해요.”나는 보관함을 닫았다.“쉬어요.”도현은 침대에 앉았다.“서운합니까?”“조금.”“말해도 됩니다.”“제가 원할 때 도현 씨도 항상 원하는 줄 알았어요.”“대부분은 그렇습니다.”“오늘은 아니고?”“몸이 지쳤습니다.”그는 솔직했다.“억지로 시작하면 제가 집중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알겠어요.”나는 옆에 누웠다.도현이 물었다.“안아도 됩니까?”“응.”그의 팔이 허리를 감쌌다.“이상하네요.”“뭐가?”“거절당하면 불안해지는 기분.”“이제 알겠습니까?”“네.”도현이 아주 작게 웃었다.“좋은 학습이군요.”“놀리지 마요.”“미안합니다.”나는 그의 가슴을 가볍게 쳤다.“내일은?”“내일 상태를 보고 다시 선택하겠습니다.”그 말도 맞았다.미리 약속할 필요는 없었다.원하는지 그때 다시 묻는 것.결혼한 뒤에도, 오래 함께한 뒤에도.그 기본은 달라지지 않았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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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화. 다음 명령은 내일

다음 날 아침, 도현은 먼저 일어나 있었다.식탁 위에는 커피 두 잔과 작은 카드 한 장이 놓여 있었다.“또 카드?”“읽어 보십시오.”앞면에는 숫자가 없었다.뒷면에는 한 줄만 적혀 있었다.[다음 명령은 내일도 선택한 뒤에.]나는 카드를 뒤집어 봤다.“이게 뭐예요?”“어제 생각했습니다.”“피곤하다며.”“그래서 더.”도현은 내 맞은편에 앉았다.“우리가 관계에 익숙해질수록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늘어납니다.”“뭘요?”“당신이 원할 거라는 것.”그가 잠시 멈췄다.“제가 원할 거라는 것.”어제의 거절이 떠올랐다.“그래서 매일 다시 묻자?”“네.”“좀 귀찮은데.”“알고 있습니다.”“그래도 해야 해요?”“저는 하고 싶습니다.”나는 카드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그럼 오늘은?”도현의 시선이 깊어졌다.“지금 묻습니까?”“네.”그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잠시 자신의 상태를 확인하는 것 같았다.“오늘은 원합니다.”“뭘요?”도현의 눈썹이 아주 조금 올라갔다.이번에는 내가 그가 하던 질문을 돌려줬다.“구체적으로 말해요.”입가에 작은 미소가 생겼다.“당신이 제 앞에서 스스로 선택하는 것을.”“그건 늘 하잖아요.”“오늘은 조금 더 명확하게.”“어떻게?”도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내 앞에 섰다.“침실 문까지는 제가 가지 않겠습니다.”“또 제가 와야 돼요?”“네.”“안 가면?”“오늘은 끝입니다.”그는 먼저 침실로 들어갔다.문은 닫지 않았다.나는 혼자 식탁에 남았다.일어나지 않아도 됐다.누가 잡으러 오지도 않을 것이다.몇 초.십 초.도현은 돌아오지 않았다.나는 결국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침실 문 앞에 도착하자 그는 안쪽에 서 있었다.손 하나 뻗지 않았다.“여기까지 왔어요.”“알고 있습니다.”“이제요?”그가 물었다.“들어올 겁니까?”나는 문턱 앞에서 잠시 멈췄다.그리고 한 걸음 들어갔다.“네.”도현의 눈빛이 짙어졌다.“확실합니까?”“네.”“오늘의 색깔.”“초록색.”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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