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열두 번째 명령이 끝나면: Chapter 411 - Chapter 420

420 Chapters

410화. 먼저 원한다고 말한 밤

자정을 훌쩍 넘겼다.침실에는 작은 스탠드 하나만 켜져 있었다.서윤은 도현의 품에 기대 한동안 꼼짝하지 않았다.뜨거웠던 몸이 천천히 가라앉고 있었다.도현이 손을 뻗어 협탁의 물을 가져왔다.“마십시오.”서윤이 눈도 뜨지 않고 받아 마셨다.몇 모금 넘기고 잔을 돌려주자 도현이 물었다.“괜찮습니까.”“응.”“피곤합니까.”“조금.”서윤이 눈을 떴다.도현은 여전히 자신을 보고 있었다.그 시선을 마주한 순간 서윤이 웃었다.“왜 그렇게 봐요.”“아까 한 말 생각하고 있었습니다.”“무슨 말?”“쉽게 안 끝낸다고.”서윤의 얼굴이 조금 뜨거워졌다.“그걸 아직도 기억해요?”“당신이 한 말인데 왜 잊습니까.”“그때는….”“그때는?”서윤이 입을 다물었다.도현의 입꼬리가 아주 조금 올라갔다.“말해보십시오.”“싫어요.”서윤이 몸을 돌리려 하자 도현이 허리를 감았다.억지로 끌어당기지는 않았다.그저 놓치지 않을 정도로만.서윤이 그 손을 내려다봤다.“또 시작하려고?”“제가요?”“그 손이 그런데.”도현이 오히려 손을 풀었다.“그럼 안 하겠습니다.”너무 쉽게 떨어졌다.서윤이 눈을 깜빡였다.도현은 정말로 돌아누웠다.“자죠.”“…뭐야.”대답이 없었다.서윤은 몇 초 동안 그의 등을 바라봤다.그러다 조금 가까이 붙었다.도현은 움직이지 않았다.서윤이 손가락으로 그의 등을 한번 건드렸다.“도현 씨.”“네.”대답은 바로 돌아왔다.“자는 거 아니었어요?”“자려고 했습니다.”“근데.”“네.”“진짜 그냥 잘 거예요?”이번에는 도현이 돌아봤다.“피곤하다면서요.”“조금이라고 했지.”“그럼 쉬어야죠.”서윤은 그 얼굴을 한동안 바라봤다.아침부터 자신을 기다리게 했던 사람.집에 돌아온 뒤에는 먼저 원한다고 말하게 만들었던 사람.그리고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게 물러난 사람.서윤이 입술을 깨물었다.도현이 그걸 봤다.“왜요.”“진짜 얄미워.”“제가 뭘 했습니까.”“알면서.”“모릅니다.”서윤이 결국 그의 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8
Read more

411화. 먼저 손을 뻗는 아침

서윤이 눈을 떴을 때는 오전 아홉 시가 조금 넘어 있었다.평소보다 늦었다.그리고 몸을 움직이자마자 어젯밤을 떠올렸다.“…아흣.”작게 소리를 내며 다시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옆자리는 비어 있었다.대신 주방 쪽에서 희미하게 무언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서윤은 이불을 끌어당긴 채 잠깐 고민하다 침대에서 일어났다.도현의 셔츠가 의자에 걸려 있었다.서윤은 잠옷 대신 그걸 집어 들었다.어깨가 컸고 소매도 길었다.단추를 대충 몇 개 잠그고 거실로 나가자 커피 향이 먼저 났다.도현은 주방에 있었다.회색 앞치마.그리고 식탁 위에는 토스트와 달걀, 과일이 놓여 있었다.서윤이 식탁을 보며 말했다.“안 태웠네요.”도현이 돌아봤다.“오늘은 성공했습니다.”그러다 시선이 멈췄다.서윤이 입고 있는 셔츠 때문이었다.“왜요?”“…그건 제 셔츠 아닙니까.”“맞는데.”“알고 입었습니까?”“응.”서윤이 일부러 소매를 한 번 접었다.“입어보고 싶었어요.”도현은 대답하지 않았다.그저 몇 초 동안 바라봤다.서윤이 눈을 가늘게 떴다.“또 이상한 생각 하죠.”“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얼굴이 했는데.”“그럼 안 보겠습니다.”도현이 정말 시선을 돌렸다.서윤이 바로 다가갔다.“그건 또 싫은데.”“어쩌라는 겁니까.”“봐요.”도현이 다시 그녀를 바라봤다.서윤은 만족한 듯 웃었다.“이렇게.”도현의 시선이 천천히 내려갔다가 다시 얼굴로 돌아왔다.“예쁩니다.”“그게 끝?”“아침부터 어디까지 듣고 싶은 겁니까.”서윤이 잠깐 생각했다.그리고 그의 앞치마 끈을 잡았다.“도현 씨가 먼저 말해보라면서요.”어젯밤 했던 말이었다.나만 기다리지 말고.도현도 먼저 원하는 걸 말해달라고.도현 역시 기억하고 있었다.“그랬죠.”“그러니까 지금 뭐 하고 싶은데요?”도현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서윤은 재촉하지 않았다.그저 앞치마 끈을 손가락에 감았다가 풀었다.잠시 뒤 도현이 말했다.“안고 싶습니다.”서윤이 웃었다.“그건 해도 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8
Read more

412화. 여섯 시에 고른 것

오후 다섯 시 오십이 분.서윤은 소파에 누워 책을 읽고 있었다.정확히는 같은 문장을 세 번째 읽고 있었다.시선이 자꾸 벽시계로 갔다.5시 53분.“아직 칠 분 남았습니다.”맞은편 테이블에서 스케치북을 보고 있던 도현이 말했다.서윤이 책을 내렸다.“나 아무 말도 안 했는데.”“시계를 여섯 번 봤습니다.”“…세고 있었어요?”“보이니까.”서윤은 책으로 얼굴을 가렸다.아침에 괜히 물어봤다.몇 시?도현은 정확하게 여섯 시라고 했다.그 뒤로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았다.5시 58분.서윤이 결국 책을 덮었다.“이제 이 분.”도현이 웃었다.“알고 있습니다.”“뭘 할 건데요?”“두 분 뒤에 말하겠습니다.”“진짜 피곤한 성격이다.”“기다리겠다고 한 사람은 서윤 씨입니다.”서윤이 쿠션을 집어 던졌다.도현이 한 손으로 받았다.그리고 정확히 여섯 시.도현이 스케치북을 덮었다.탁.작은 소리였는데 서윤은 바로 몸을 일으켰다.도현이 시계를 한 번 확인했다.“여섯 시입니다.”“알아요.”“침실로 갑시다.”서윤의 표정이 멈췄다.“…바로?”“싫습니까?”“아니.”너무 빨리 대답했다.도현의 입꼬리가 올라갔다.서윤이 먼저 일어났다.“웃지 마요.”“안 웃었습니다.”“웃었거든요.”도현은 대답하지 않고 침실로 향했다.침실에 들어가자 서윤이 먼저 침대 쪽으로 가려 했다.“거기 말고.”걸음이 멈췄다.도현이 가리킨 곳은 전신거울 앞이었다.“여기 서십시오.”서윤은 거울 앞에 섰다.뒤에는 도현이 있었다.거울 속에서 시선이 마주쳤다.“오늘 고른 게 이거예요?”“일부는.”도현이 가까이 왔다.그러나 바로 손을 대지는 않았다.“오늘은 제가 먼저 하고 싶은 걸 말하겠다고 했죠.”“응.”“당신이 제 옷을 골라줬으면 합니다.”서윤이 눈을 깜빡였다.“옷?”예상과 완전히 달랐다.도현이 옷장 문을 열었다.셔츠 몇 장을 꺼내 침대 위에 놓았다.흰색.검은색.짙은 남색.“내가 골라요?”“네.”“어디 가려고?”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8
Read more

413화. 벗긴 뒤에 입혀주는 사람

밤이 꽤 깊었다.서윤은 침대 한가운데 엎드린 채 베개를 끌어안고 있었다.조금 전까지 어질러져 있던 옷들은 어느새 바닥 한쪽에 모여 있었다.도현이 치운 모양이었다.서윤은 눈만 움직여 침실을 둘러보다 물었다.“도현 씨.”욕실 쪽에서 대답이 돌아왔다.“네.”“뭐 해요?”“수건 가져갑니다.”잠시 뒤 도현이 돌아왔다.서윤은 몸을 돌려 그를 바라봤다.“나 움직이기 싫은데.”“그럴 것 같았습니다.”“누구 때문인데.”도현이 침대 가장자리에 앉았다.“제 책임도 있겠죠.”“‘도’?”서윤이 눈을 가늘게 떴다.“내 책임도 있다는 거예요?”“끝까지 그러라고 한 사람이 누구였습니까.”서윤이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그건 잊으라니까.”“기억력이 좋아서 어렵습니다.”“진짜 얄미워.”그렇게 말하면서도 서윤은 웃고 있었다.도현이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한쪽으로 넘겨주었다.손길은 조금 전과 전혀 달랐다.급하지도 않았고,무언가를 요구하지도 않았다.그저 땀에 젖은 머리카락이 얼굴에 붙지 않도록 정리해 주는 손이었다.서윤은 가만히 그 손길을 받았다.“씻을 수 있겠습니까?”“지금?”“네.”“못 걷겠다고 하면?”도현이 잠깐 서윤을 바라봤다.“데려가겠습니다.”“어떻게?”대답 대신 도현이 몸을 숙였다.서윤의 등이 침대에서 떨어졌다.“잠깐!”본능적으로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도현이 서윤을 안아 들었다.“이렇게.”“진짜 들 줄은 몰랐는데.”“물어봤잖습니까.”서윤은 그의 품에서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오히려 목에 감은 팔에 힘을 주었다.“그럼 욕실까지.”“알겠습니다.”몇 걸음 되지도 않는 거리였다.그래도 서윤은 끝까지 내려오지 않았다.욕실 앞에 도착한 뒤에야 도현이 천천히 내려주었다.발이 바닥에 닿았다.그런데 서윤은 그의 목에서 팔을 풀지 않았다.도현이 내려다봤다.“다 왔습니다.”“알아요.”“그런데 왜 안 놓습니까.”“놓기 싫어서.”도현의 손이 자연스럽게 허리에 닿았다.서윤은 그 손을 느끼고 웃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8
Read more

414화. 이번에는 내가 고를게

토요일 오후.도현은 거실 바닥에 앉아 스케치북을 펼쳐놓고 있었다.창가 쪽 벤치를 조금 손볼 생각인지 같은 선을 몇 번이나 지웠다가 다시 그리고 있었다.서윤은 소파에 앉아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책은 진작 덮어놓았다.어젯밤 자신이 했던 말이 계속 생각났다.다음에는 내가 고를게.도현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그런데 묻지 않았다.언제 할 건지.무엇을 할 건지.기다리겠다는 말조차 하지 않았다.그저 평소처럼 자신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그게 마음에 들었다.서윤은 소파에서 일어났다.도현의 앞에 섰다.도현이 고개를 들었다.“왜요.”“스케치 언제 끝나요?”“십 분 정도면 됩니다.”“그럼 십 분 줄게요.”도현의 눈빛이 달라졌다.“그 뒤에는?”서윤이 웃었다.“내 시간.”잠깐의 정적.도현이 연필을 다시 들었다.“알겠습니다.”정확히 십 분 뒤.도현은 스케치북을 덮었다.서윤이 손을 내밀었다.“일어나요.”도현이 그 손을 잡고 일어났다.“어디로 갑니까.”“침실.”이번에는 서윤이 먼저 걸었다.침실에 들어온 서윤은 커튼부터 닫았다.도현은 문 앞에서 기다렸다.서윤이 돌아섰다.“거기 있어요.”도현은 움직이지 않았다.서윤이 천천히 다가갔다.어제 자신이 입혀줬던 잠옷도,도현이 골랐던 검은 원피스도 아니었다.아주 평범한 흰 셔츠와 짧은 홈웨어 차림이었다.그래서 오히려 좋았다.오늘 필요한 건 옷이 아니었다.서윤은 도현 바로 앞에서 멈췄다.“오늘은 내가 먼저 하고 싶은 거 말할게요.”“듣고 있습니다.”“도현 씨가 기다리는 거 보고 싶어요.”도현의 눈이 가늘어졌다.“제가 기다리는 걸?”“응.”서윤은 그의 손을 잡았다.침대까지 데려가 가장자리에 앉혔다.그리고 자신은 바로 앞에 섰다.“손.”도현이 손을 내밀었다.서윤은 그 손을 잡았다가 손바닥에 짧게 입을 맞췄다.도현의 시선이 고정됐다.“벌써 표정 바뀌었는데.”“당신이 이러고 있으니까요.”“아직 아무것도 안 했어요.”“그게 문제입니다.”서윤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8
Read more

415화. 기다린 만큼

서윤이 침실 문을 다시 연 건 삼 분쯤 뒤였다.손에는 물병 두 개가 들려 있었다.도현은 그대로 침대에 앉아 있었다.정말 따라오지 않았다.하지만 표정은 조금 전과 달랐다.서윤이 문을 닫으며 웃었다.“잘 기다렸네요.”“삼 분이었습니다.”“그래도.”서윤은 물병 하나를 협탁에 올려놓고 다른 하나를 도현에게 건넸다.도현이 받아들었다.“일부러 오래 걸렸습니까?”“조금?”“서윤.”낮아진 목소리에 서윤이 웃었다.“왜요.”“재미있습니까.”“응.”망설임 없는 대답이었다.서윤은 도현 앞에 섰다.“평소에는 내가 기다리잖아요.”“그래서 복수입니까?”“복수까지는 아니고.”서윤의 손이 도현의 셔츠 깃에 닿았다.414화에서 풀어놓은 단추는 그대로였다.“도현 씨가 나 기다리는 얼굴이 궁금했어요.”“봤습니까.”“응.”“어떻습니까.”서윤이 그의 턱을 손끝으로 가볍게 들어 올렸다.“생각보다 더 좋아.”도현이 물병을 내려놓았다.손이 서윤의 허리로 향하려는 순간,서윤이 먼저 손목을 잡았다.“아직.”도현이 그녀를 바라봤다.“또입니까.”“응.”서윤은 그의 손을 자신의 허리가 아니라 침대 위에 내려놓았다.“내가 하라고 할 때까지.”“알겠습니다.”그 대답이 마음에 들었다.서윤은 천천히 그의 앞에 가까이 섰다.이번에는 키스하지 않았다.대신 풀려 있던 셔츠를 양쪽으로 벌렸다.손바닥이 맨가슴에 닿았다.도현의 몸이 바로 긴장했다.서윤은 그 변화를 손끝으로 느꼈다.“만지고 싶은데 못 만지는 거 어때요?”“별로입니다.”서윤이 웃었다.“솔직하네.”“당신이 솔직하게 말하라고 했잖습니까.”“그랬죠.”서윤의 손이 어깨를 지나 목 뒤로 올라갔다.도현의 시선이 계속 그녀를 따라왔다.“그럼 또 솔직하게 말해봐요.”“뭘 말입니까.”“지금 제일 하고 싶은 거.”도현은 이번에는 망설이지 않았다.“당신을 눕히고 싶습니다.”서윤의 손이 멈췄다.예상보다 직접적인 대답이었다.“그리고?”“키스하고 싶고.”도현의 시선이 서윤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8
Read more

416화. 이번에는 멈추지 말아요

일요일 오후 세 시. 서윤은 침대에 엎드려 책을 읽다가 세 페이지째 같은 곳에서 멈춰 있었다. 도현 때문이었다. 정확히는 침실 한쪽에서 옷을 정리하고 있는 도현의 손 때문이었다. 셔츠 소매를 접고. 옷걸이를 걸고. 흐트러진 침구를 정리하는 손. 어젯밤 자신을 만지던 것과 똑같은 손인데 지금은 지나치게 얌전했다. “도현 씨.” “네.” “나 지금 이상한 생각 했어요.” 도현이 옷장 문을 닫았다. “굳이 예고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궁금하라고.” “이미 궁금합니다.” 서윤은 책을 덮었다. “여기 와봐요.” 도현이 침대로 다가왔다. 서윤은 일어나 앉았다. “손 줘요.” “왜요.” “일단.” 도현이 오른손을 내밀었다. 서윤은 손목을 잡아 자기 앞으로 끌어왔다. 손가락을 하나씩 펴봤다. “뭘 봅니까.” “그냥.” 서윤은 그의 손바닥에 자신의 손바닥을 맞댔다. 크기 차이가 확실했다. “어제 이 손 때문에 잠 늦게 잤잖아요.” 도현의 시선이 달라졌다. “저만의 책임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또 그 얘기.” “사실이니까.” 서윤은 그의 손을 놓지 않았다. 오히려 손목을 끌어당겼다. 도현이 침대 가장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뭐가요.” “이 손을 불러놓고 보기만 할 겁니까.” 서윤이 웃었다. “성격 급해졌네.” “어제 기다리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 말에 서윤의 웃음이 잠시 멈췄다. 맞았다. 자기가 그랬다. 다음에는 기다리게 하지 말라고. 도현이 먼저 손을 움직였다. 서윤의 손가락 사이로 자신의 손가락을 넣었다. 깍지가 맞물렸다. “이렇게?” 서윤이 물었다. “아닙니다.” “그럼?” 도현이 서윤을 끌어당겼다. 입술이 바로 겹쳤다. 서윤이 웃음 섞인 숨을 내쉬었다. 이번에는 예고도 없었다. 누가 먼저인지 확인하는 대화도 없었다. 서윤은 곧바로 그의 목에 팔을 둘렀다. 키스가 길어졌다. 도현이 떨어지려는 순간 서윤이 따라갔다. “어디 가요.” “안 갑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9
Read more

417화. 말하지 않아도 먼저

서윤이 눈을 뜬 건 월요일 아침 여섯 시 반이었다. 알람이 울리기 전이었다. 옆을 보자 도현은 아직 자고 있었다. 주말 내내 붙어 있었는데도 이상하게 먼저 눈이 갔다. 서윤은 베개에 얼굴을 반쯤 묻고 한동안 그를 바라봤다. 평소에는 먼저 일어나는 사람이었다. 씻고, 커피를 내리고, 서윤이 일어날 때쯤이면 이미 하루를 시작한 얼굴을 하고 있는 사람. 그런데 지금은 달랐다. 흐트러진 머리카락. 힘이 빠진 표정. 이불 밖으로 나온 한쪽 팔. 서윤은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다. 도현의 손목을 잡았다. 은색 팔찌가 손끝에 걸렸다. [붙잡아 달라고 말할 수 있도록.] 오래전 새겨 넣었던 문장이었다. 서윤은 팔찌를 한 번 쓸었다. 그러다 도현의 손을 자신의 쪽으로 끌어왔다. 그 순간. “뭘 합니까.” 잠긴 목소리가 들렸다. 서윤이 움찔했다. “깼어요?” “방금.” 도현이 눈을 떴다. “왜 제 손을 가져갑니까.” 서윤은 잡고 있던 손을 놓지 않았다. “그냥 잡고 싶어서.” 도현의 시선이 맞잡힌 손으로 내려갔다. “그럼 가져가십시오.” “손을?” “네.” 서윤이 웃었다. “출근할 때도?” “그건 곤란합니다.” “왜요.” “운전해야 합니다.” 서윤이 웃음을 터뜨렸다. 도현도 작게 웃었다. 그렇게 시작한 아침은 평범했다. 둘이 씻고, 커피를 마시고, 각자의 옷을 챙겨 입었다. 현관 앞에서 도현이 서윤의 코트 깃을 정리해 주었다. 서윤은 그의 넥타이가 조금 비뚤어진 걸 발견했다. “가만있어요.” 손을 뻗어 매듭을 바로잡았다. 도현이 내려다봤다. “됐어요.” 그런데 서윤은 손을 떼지 않았다. 넥타이 끝을 잡은 채 잠시 바라봤다. “왜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 얼굴은 아닌데.” 서윤이 도현을 조금 끌어당겼다. 그리고 입술에 짧게 입을 맞췄다. “이거.” 도현의 손이 자연스럽게 허리에 닿았다. 서윤이 바로 웃었다. “회사 가야 돼요.” “시작한 사람이 할 말입니까.” “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9
Read more

418화. 먼저 벗어놓은 것

침실 문이 닫혔다.서윤은 도현의 손을 잡은 채 그대로 침대까지 걸어갔다.그런데 이번에는 바로 눕지 않았다.도현도 재촉하지 않았다.서윤은 맞잡은 손을 내려다보다가 물었다.“우리 요즘 너무 자연스럽지 않아요?”“뭐가 말입니까.”“이렇게 들어오는 거.”도현이 그녀를 바라봤다.“싫습니까.”“아니.”서윤은 바로 대답했다.“좋아서 그래요.”처음에는 침실로 들어오는 것조차 하나의 선택처럼 느껴졌다.누가 먼저 말하는지.어디까지 원하는지.누가 이끌 것인지.그런데 이제는 달랐다.거실에서 손을 잡고 있다가 같이 들어오고,입을 맞추다가 자연스럽게 옷을 벗고,서로를 원하는 걸 굳이 감추지 않았다.서윤은 도현의 넥타이에 손을 올렸다.“오늘 이거 내가 풀어도 돼요?”“하고 싶습니까.”“응.”“그럼 하십시오.”서윤이 매듭을 풀었다.넥타이가 느슨해졌다.그런데 완전히 빼내기 전에 손을 멈췄다.도현이 물었다.“왜요.”“생각 바뀌었어요.”“어떻게.”서윤이 넥타이에서 손을 뗐다.“도현 씨가 해요.”도현은 이유를 묻지 않았다.직접 넥타이를 풀어 의자 위에 내려놓았다.그리고 셔츠 단추에 손을 올렸다.서윤이 그 모습을 바라봤다.하나.둘.도현이 스스로 셔츠를 벗었다.평범한 행동이었다.그런데 이상하게 시선을 떼기 어려웠다.도현이 알아차렸다.“계속 봅니다.”“보면 안 돼요?”“보십시오.”서윤의 시선이 그의 몸을 천천히 훑었다.도현이 가까이 다가왔다.“이번에는 제 차례입니까.”서윤이 고개를 저었다.“나도 내가 할래.”도현의 눈썹이 조금 올라갔다.서윤은 그 앞에서 자신이 입고 있던 얇은 카디건을 먼저 벗었다.소파에서부터 이미 흐트러져 있던 옷차림이었다.그런데 도현이 벗겨주는 대신 스스로 하나씩 벗어놓으니 기분이 달랐다.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너무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 같았다.옷이 의자 위로 떨어졌다.도현의 시선이 서윤에게 고정됐다.서윤이 물었다.“왜 아무 말 안 해요.”“보고 있습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0
Read more

419화. 주말까지 못 기다리겠는데

수요일 밤.서윤은 침대에 누워 휴대폰을 보다가 화면을 껐다.그리고 다시 켰다.몇 초 뒤 또 껐다.옆에서 책을 읽던 도현이 결국 고개를 들었다.“집중이 안 됩니까.”“누구 때문에요.”“제가 뭘 했습니까.”서윤이 몸을 돌려 그를 봤다.“지난번에 말했잖아요.”“뭘 말입니까.”“주말에 하고 싶은 거 있다고.”도현은 너무 태연했다.“기억합니다.”“나는 계속 신경 쓰이는데 도현 씨는 아무렇지도 않아요?”“제가 하자고 한 건데 왜 신경 쓰이겠습니까.”“그러니까 뭔데요.”“토요일에 알게 됩니다.”또 토요일.서윤이 베개를 끌어안았다.“아직 수요일인데.”“사흘입니다.”“길어요.”도현이 책을 덮었다.“못 기다리겠습니까.”“조금.”“조금?”서윤이 입을 다물었다.도현이 웃었다.“많이군요.”“아, 진짜.”서윤은 아예 등을 돌렸다.잠시 뒤 침대가 움직였다.도현이 가까워진 것이 느껴졌다.하지만 손을 대지는 않았다.그게 더 신경 쓰였다.서윤이 결국 다시 돌아봤다.“왜요.”“아무것도 안 했습니다.”“그러니까 왜 안 해요?”“지금 뭘 원합니까.”서윤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도현이 기다렸다.서윤은 그 기다리는 얼굴을 보다가 손을 뻗었다.책을 치웠다.그리고 도현의 손을 잡아당겼다.“이거.”“손?”“아니.”서윤이 조금 더 당겼다.“가까이 오는 거.”도현이 몸을 기울였다.두 사람 사이가 좁아졌다.“이 정도?”“조금 더.”이번에는 입술이 닿을 만큼 가까워졌다.서윤이 먼저 키스했다.짧게 끝내려 했는데 도현의 손이 목 뒤에 닿으면서 자연스럽게 길어졌다.서윤은 그의 팔을 잡았다.며칠 전부터 둘 사이에는 확실히 달라진 게 있었다.예전처럼 매 순간을 말로 정리하지 않았다.좋으면 가까워지고,원하면 손을 뻗었다.싫으면 멈추면 됐다.입술이 떨어졌다.서윤은 여전히 도현의 팔을 잡고 있었다.“힌트 하나만.”“키스까지 해놓고 결국 그겁니까.”“키스는 키스고.”“안 됩니다.”서윤이 눈을 가늘게 떴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0
Read more
PREV
1
...
373839404142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