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슨 가문의 잃어버린 상속녀의 모든 챕터: 챕터 61 - 챕터 70

75 챕터

제61장

리나의 시점4월의 어느 화사한 화요일 아침, 나는 헨리 오빠에게 내 신부 입장을 함께해달라고 부탁했다.다른 선택지를 고민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어떤 결정이든 내리기 전에 깊이 심사숙고하는 내 성격상 모든 가능성을 하나하나 세심히 따져보았다. 데미안 오빠는 큰오빠이자 가문의 수장이었기에, 그가 내 손을 잡고 들어가는 것이 논리적으로 가장 완벽한 그림이었다. 아벨 오빠에게 부탁했다면 특유의 넘치는 에너지로 내가 미처 예상치 못한 스펙터클하고 잊지 못할 순간을 만들어주었을 터였다.마커스는 어떤 방식이든 내가 가장 편안하게 느끼는 대로 결정하라며 다정하고 부담 없이 내 의사를 존중해 주었다.하지만 내 마음은 자꾸만 헨리 오빠에게로 향했다.헨리 오빠. 이 가문에 들어와 내가 처음으로 마음을 열고 믿었던 따스한 존재. 이 저택의 견고한 벽 안에서 '안식'이 무엇인지조차 미처 알지 못했던 시절, 내게 가장 먼저 안전하다는 느낌을 안겨준 사람. 내 빽빽한 일정을 멋대로 취소하고 손을 잡고 산책을 나가 우리 어머니의 웃음소리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던 오빠. 아기방 바닥에 앉아 내 어린 아들에게 모리슨 가문 아이들의 특별한 성장에 대해 도란도란 이야기해 주었던 오빠. 에이든이 회의실을 나간 후, 경련하듯 떨리는 내 손 위에 자신의 따스한 손을 얹어 가만히 다독여주며, 그 어떤 말보다 깊은 침묵으로 나를 받쳐주었던 오빠.나는 오빠의 연구실로 찾아갔다.노크를 했다.오빠의 맞은편에 앉아 똑바로 눈을 맞추며 말했다. "내 결혼식 날, 내 손잡고 같이 입장해 줄래?"오빠가 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턱 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커다란 감정이 밀려올 때 헨리 오빠가 온힘을 다해 그것을 받아내는 특유의 작은 절제 동작이었다."응." 오빠가 입을 열었다. 평소의 목소리와는 다른, 결이 한층 부드러워진 음성이었다. "당연히 그래야지. 리나야, 기꺼이 그럴게."나는 고개를 끄덕였다.자리에서 일어났다.내가 거의 문가에 다다랐을 때, 오빠가 뒤에서 나지막이 불렀다."부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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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2장

리나의 시점나카무라 그룹 인수 건은 무려 14개월 동안 이어진 데미안 오빠의 프로젝트였다.나는 그 개요를 처음부터 잘 알고 있었다. 초기 논의 몇 차례에 직접 참여했고, 재무제표를 검토했으며, 전략적 틀을 짜는 데 힘을 보태기도 했다. 호텔 및 리조트 사업부를 보유한 대형 일본 재벌 기업 나카무라 그룹은 모리슨 코퍼레이션의 동남아시아 확장 전략과 완벽하게 부합하는 곳이었다. 거창한 수식어나 억지스러운 명분이 필요 없이, 오직 수치만으로도 계약의 당위성이 완벽히 증명되는 보기 드문 기회였다.데미안 오빠는 6개월 동안 그쪽 최고 경영진과 직접 협상을 진행해 왔다.하지만 상황은 그리 좋지 않았다.기업의 기본 조건이나 가치 때문이 아니었다. 재무 구조와 기본 요건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했고, 양측 모두 그 사실을 완벽히 인지하고 있었다. 협상이 꼬인 것은 모리슨 특유의 정교하고 치밀한 경영 기계 시스템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훨씬 지극히 개인적이고 까다로운 문제 때문이었다.나카무라 그룹의 수뇌부가 데미안 오빠에게 마음을 열지 않은 것이다.오빠 개인에 대한 악감정 같은 사적인 이유는 아니었다. 아들에게 실권을 넘겨주는 경영 승과 작업을 진행하면서도 여전히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던 나카무라 그룹의 창업주, 일흔 살의 켄지 나카무라(Kenji Nakamura) 회장은 대형 비즈니스 관계를 맺을 때 그만의 독특하고도 확고한 기준을 고수하는 인물이었다. 그는 테이블 건너편에 앉은 상대를 완벽히 신뢰해야만 했다. 상대의 수치나 전략적 비전만을 보는 것이 아니었다. '그 사람' 자체를 보았다.그리고 켄지 나카무라 회장에게 신뢰란, 깊은 인간관계와 진정성 있는 온기, 그리고 *‘당신을 단순한 거래 대상이 아닌 한 사람으로 존중합니다’*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특유의 섬세한 경청을 통해 형성되는 것이었다.데미안 오빠의 눈빛과 태도가 전하는 메시지는 무수히 많았지만.아쉽게도 그것만큼은 거기에 포함되지 않았다.내가 이 문제에 본격적으로 투입되었을 때, 협상은 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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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3장

**리나의 시점**그 일은 9월의 어느 일요일 오후에 일어났다.생후 13개월이 된 이단은 이미 3주 전부터 혼자 서기 시작했다. 마치 다음 목표를 명확히 설정하고 온 힘을 다해 거기에 매진하는 사람처럼 지극히 진지한 태도였다. 녀석은 가구든,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의 다리든 잡고 일어서서 잠시 동안 서 있다가, 나중에 쓰기 위해 정보라도 저장해 두는 듯한 표정으로 엉덩방아를 찧곤 했다.한동안 아이는 걸음마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던 참이었다.우리 모두 그 사실을 눈치채고 있었다.아벨 오빠는 저녁 식사 자리에서 2주 연속으로 그 시기에 대한 나름의 이론을 펼치던 중이었다."화요일이야." 목요일 저녁 식사 자리에서 오빠가 장담하듯 말했다. "내가 호언장담하는데, 주중 특유의 에너지가 있거든. 모리슨 가문 사람들은 꼭 화요일에 대사를 치르더라고.""모리슨 가문이 화요일에 해낸 위대한 일 하나만 대봐." 헨리 오빠가 받아쳤다.아벨 오빠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이사회 정면 승부." 오빠가 말했다. "그날 화요일이었어.""수요일이었어." 내가 바로잡았다."나카무라 계약 타결된 날.""목요일이었어." 마커스가 말했다."밴티지 그룹 계약 서명한 날.""그것도 목요일이었어." 이 대화를 들을 수 없는 위치에 있던 제이드가 어디선가 한마디 보탰다. 진작부터 우리 대화를 훔쳐듣고 있었다는 뜻이었다.아벨 오빠가 식탁을 둘러보았다."다들 나 왕따시키는 거지?" 오빠가 투덜거렸다. "좋아. 화요일에 걸음마 떼고 나면 내가 맞았다는 게 증명될 테니, 그때 가서 딴소리들 하지 마.""인정해 줄게." 헨리 오빠가 말했다. "진짜 화요일이면.""언제가 아니라 '화요일이 되면'이라니까." 아벨 오빠가 우겼다.그리고 그날은 일요일이었다.마커스와 나는 거실에 있었다.아무도 어디 갈 데가 없고, 누군가에게 떠밀려서가 아니라 스스로의 의지로 같은 공간에 머물기로 선택한 사람들만의 편안한 온기가 저택 안에 가득 찬 9월 일요일 오후 특유의 정취가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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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4장

**리나의 시점**시작은 벽지였다.생후 14개월이 된 이단은 자기 공간에 대한 호불호를 한층 더 명확하게 표현하기 시작했고, 그에 맞춰 아기방을 새로 꾸밀 필요가 있었다. 나는 샘플 세 개를 들고 화요일 아침 데미안 오빠의 서재로 향했다. 문을 두드리고 들어서서 그의 책상 위에 샘플을 나란히 놓았다.오빠는 샘플을 바라보았다.그리고 나를 보았다."아기방 벽지인데," 내가 말했다. "도저히 못 고르겠어서요."오빠는 다시 샘플을 내려다보았다. 그러고는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고급스러운 지오메트릭 패턴의 짙은 네이비색 샘플, 즉 가운데에 있던 것을 집어 들어 슬쩍 들어 보였다."이거."오빠는 샘플을 내려놓고 다시 모니터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이렇게 간단하게요?" 내가 물었다.오빠가 나를 건너다보았다. "더 논의할 게 있나?""왜 그걸 골랐는지 이유는 말해줄 수 있잖아요."오빠의 시선이 다시 샘플로 향했다. "기하학적 패턴은 시간이 지나도 질리지 않아. 첫 번째는 너무 부드러워서 2년만 지나도 촌스러워 보일 거다. 세 번째는 방 규모에 비해 문양이 너무 산만해. 공간을 실제보다 좁아 보이게 만들지." 오빠는 다시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네이비가 가장 깔끔해."나는 세 개의 샘플을 유심히 살펴보았다.셋 다 오빠 말이 전부 맞았다."고마워요, 데미안 오빠."오빠는 이미 화면 속 무언가를 읽어 내려가는 중이었다. 나는 샘플을 거두어 서재를 나왔다.나는 오빠가 추천한 네이비 벽지를 사용했다.후에 완공된 아기방 벽면을 바라보며 서 있다가, 문득 데미안 오빠가 아기방 벽지에 대해 구체적이고, 정확하며, 즉각 도움이 되는 식견을 네 문장으로 명쾌하게 내놓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일로 복귀했던 순간이 떠올랐다.나는 오빠에게 문자를 보냈다.*[네이비로 하길 잘했어요. 세 번째 샘플에 대해 오빠가 했던 말이 맞았네요.]*답장은 3분 만에 왔다.*[알고 있다.]*나는 휴대폰 화면을 보며 미소 지었다.음식을 챙겨두기 시작한 것은 그다음 주부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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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5장

**리나의 시점**6시 45분, 나는 이미 내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제이드는 6시 30분부터 나와 있었다. 내가 요청한 일도 아니었다. 자신의 역할은 내가 내 일을 완벽히 해낼 수 있도록 판을 깔아주는 것이라고 스스로 정의 내리고, 그 결정을 지시나 인정 없이도 깔끔하게 완수해 내는 제이드 특유의 조용하고 철저한 전문성이었다.내가 도착했을 때 브라이트웰 서류들은 이미 책상 위에 정갈하게 놓여 있었다.3년 치의 지원금 관련 문서들, 재무 보고서, 프로그램 이행 평가서까지. 모리슨 재단이 선의와 신뢰를 바탕으로 구축해 온 관계이자, 적어도 그 일부는 그 신뢰를 배신한 채 진행되어 온 흔적들이 겹겹이 쌓여 있었다.나는 모든 자료를 하나하나 읽어 내려갔다.대충 훑어본 것이 아니었다. 정독이었다. 무슨 일을 어떻게 처리할지 결정하기 전에 일어난 사건의 전체 전말을 완벽하게 파악해야 하는 사람 특유의 세심하고 신중한 읽기였다. 성급하게 움직이는 기사 한 줄이 아니라, 완벽하고 확실한 정보에 기반하여 결정을 내려야 했기 때문이다.아침 8시가 되었을 때, 나는 내부고발자의 핵심 주장이 사실임을 확인했다.제시된 문서들은 신빙성이 높았다. 재무상의 비위 정황은 단단한 사실이었다. 단순한 회계상의 실수도 아니었고, 해석에 따라 변호가 가능한 모호한 조직적 결정의 영역도 아니었다. 사업 자금을 의도적으로 우회하여 빼돌린 정황이 명백했다. 그것도 지난 2년에 걸쳐 지속적으로. regular 감시망의 기준선 바로 아래에 걸릴 만큼 치밀하게, 하지만 지원 금의 핵심 조건을 심각하게 위반하기엔 충분할 만큼 거대한 액수였다.누군가 작정하고 아주 치밀하게 판을 짰다는 뜻이었다.그 사실이 사태를 나아지게 만들기는커녕 훨씬 더 악질적으로 만들고 있었다.8시 15분, 다이애나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사실 확인, 지원금 회수, 공식 입장문 발표. 이 순서대로 처리해. 오늘 안에 전부." 다이애나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네." 내가 응수했다."입장문은 홍보팀이나 대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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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장

**리나의 시점**나는 가장 먼저 다이애나에게 전화를 걸었다.허락을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내게는 누구의 허락도 필요하지 않았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 재단 위기를 깔끔하게 해결했던 그날 아침, 데미안 오빠가 *'내가 도와줄 필요가 없었군'*이라고 말하고 내가 *'알아요'*라고 응수했던 순간부터 나는 그 사실을 아주 명확히 깨닫고 있었다. 내가 다이애나에게 전화를 걸었던 건, 에이든을 만나는 것이 내가 미처 생각지 못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가장 솔직하게 평가해 줄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지난 2년간 그녀를 곁에서 지켜보며 배운 게 있다면, 다이애나 크로스는 직구 형태의 질문을 던졌을 때 세상에서 가장 단호하고 솔직한 평가를 내려주는 사람이라는 사실이었다."에이든이 만나자고 해요." 내가 말했다. "개인적인 만남이에요. 변호사도 없이, 딱 한 번만.""당신은 뭘 원하는데?" 다이애나가 물었다."가고 싶어요."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럼 가." 그녀가 말했다. "그 사람이 청했기 때문이 아니라, 당신 스스로 그 자리가 필요하다고 결정해서 가는 거잖아. 그 둘은 엄연히 다른 거고, 당신도 그 차이를 잘 알고 있을 텐데.""네.""이게 정말 당신 서사의 마지막 조각이야?" 그녀가 물었다.나는 내 마음에 대해 솔직하게 가만히 생각해보았다."네." 내가 답했다. "마지막 조각인 것 같아요.""그럼 가." 다이애나가 다시 한번 강조했다. "그리고 그걸로 정말 깔끔하게 끝내."그날 저녁, 나는 마커스에게 그 사실을 털어놓았다.역시 허락을 구하기 위함은 아니었다. 우리의 대화는 결코 허락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 오직 '진실함'에 관한 것이었다. 내가 누군가와 진정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이 진실함이었고, 알고 보니 마커스 역시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방식이 바로 그것이었기 때문이다.그는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내가 말을 이어가는 동안 그는 자신의 감정을 섣불리 얹어 공간을 채우려 들지 않았다. 내가 말을 다 마칠 때까지 가만히 기다려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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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7장

**리나의 시점 **3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지금, 모리슨 코퍼레이션은 이런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11개국에 걸친 43개의 활발한 파트너십. 브라이트웰 사태 이후 한층 새로워진 감시 체계로 재정비된 재단 부문—다이애나는 이 체계를 *‘철저함의 결정체’*라고 평가했고, 아벨 오빠는 *‘뚫을 길 없는 철옹성’*이라 혀를 내둘렀으며, 나는 *‘진작에 이랬어야 했던 당연한 모습’*이라고 정의 내렸다. 완전히 안착하여 본궤도에 오른 동남아시아 확장 사업, 수정된 예상 수치를 한참 뛰어넘는 실적을 내고 있는 나카무라 그룹 인수 건, 그리고 카라의 초기 기획안조차 오히려 보수적이었다고 느껴질 만큼 상상을 초월하는 수익을 창출해 내고 있는 메리디안 그룹과의 2년 차 협력 사업까지.그리고 '접근성 이니셔티브(Accessibility Initiative)'. 까마득한 전생처럼 느껴지는 어느 날, 마커스와 커피를 마시며 나누었던 그 꿈. 모리슨 코퍼레이션이 지닌 하이엔드 럭셔리라는 상징성과, 이전에는 감히 모리슨의 손길이 닿지 못했던 사람들을 이어주는 그 아름다운 다리. 그 사업은 모리슨의 엄격한 기준을 충족한 중저가 라인 제품 세 가지를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시키며 첫 운용 해를 맞이했고, 인재 양성 프로그램을 통해 첫해에만 소외 계층 출신의 인재 11명을 사원으로 영입하는 성과를 거두었다.11명의 사람들.나는 가끔 그 숫자에 대해 생각하곤 했다.뛰어난 역량을 품고도 세상의 눈에 띄지 않던 존재가, 마침내 누군가에게 발견된다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인지를.나는 그 감정이 무엇인지, 내면 깊은 곳에서부터 아주 잘 알고 있었다.그리고 이제 그 11명의 사람들 역시 그 감정을 온몸으로 체감하고 있었다.지난 1년 동안 경제지에서는 세 번이나 나를 조명하는 대형 기사를 다루었다. 모리슨 코퍼레이션에 대한 기사가 아닌, 바로 오롯이 '나'라는 사람에 대한 기사였다.모든 것을 바꾼 CEO. 아무것도 없이 맨손으로 찾아와 이미 완벽했던 회사를 전혀 다른 차원의 원대한 야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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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8장

**리나의 시점**세 살이 된 이단 모리슨 그레이는 뚜렷하고 완벽하게 구축된 자아를 지닌 하나의 완전한 인격체였다.사실 신생아 중환자실에 있을 때부터 나름대로 그러긴 했다. 아이는 이곳에 존재하기로 스스로 결정하고 그 결심을 굳건히 고수하는 사람 특유의 남다른 자제력을 지니고 세상에 태어났었다. 하지만 세 살이 된 지금, 그 특질은 부인할 수도 없을 만큼 명확해져서 아이가 발을 들여놓는 모든 공간마다 선명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아이는 데미안 오빠의 눈매를 쏙 빼닮았다.어둡고 맑으며 직설적인 눈동자. 반응을 보이기 전에 대상을 완벽하게 가늠하고, 단 하나도 놓치지 않은 채 모든 것을 머릿속에 정리해 두는 눈빛. 이단이 누군가를 바라볼 때면 오롯이 그 사람에게만 시선을 고정하곤 했는데, 그것은 지난 15년 동안 데미안 오빠가 이사회장에서 사람들을 압도하며 고쳐 앉게 만들었던 바로 그 눈빛이었다. 그리고 이제 세 살짜리 아이가 자신의 눈높이에서 의식조차 하지 않은 채 특유의 곧은 시선으로 그 눈빛을 똑같이 내뿜고 있었다.웃음소리는 마커스를 닮았다.짧고 진실하며 경계심 없는 웃음. 밖으로 터뜨리겠다고 미처 마음먹기도 전에 흘러나오는 웃음소리. 내가 마커스를 마음에 품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에게 인정하기 2년 전부터 가슴속에 고이 모아두었던 바로 그 웃음소리였다. 정말로 재미있는 것을 발견했을 때 이단이 터뜨리는 웃음은 마커스의 그것과 완벽하게 똑같았다. 갑작스럽고, 솔직하며, 가식이라고는 전혀 없는 울림. 그 소리가 터져 나올 때마다 마커스는 이단의 머리 너머로 나를 바라보며 *'나도 느껴져'*라는 뜻이 담긴 표정을 짓곤 했다.또한 아이는 지독하게 고집이 셌다.이것만큼은 이단 모리슨 그레이와 40분 이상 시간을 보내본 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토를 달지 않는 명백한 사실이었다. 아이는 모든 사안에 대해 자신만의 주관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을 굳건히 고수했으며, 생각을 바꾸게 만들려면 명확한 증거를 제시해야만 했다. 게다가 그 증거조차 올바른 방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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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9장

**리나의 시점**2월의 어느 화요일 아침, 나는 임신 테스트기를 확인했다.내가 애타게 기다려온 결과를 확인하려던 것은 아니었다. 특별히 날짜를 꼽아본 적도 없었고, 이 목표를 향해 달리는 사람처럼 간절하게 바라지도 않았다. 그저 평범한 화요일 아침이었을 뿐이고, 몸이 나에게 전하고 싶어 하는 아주 익숙하고 뚜렷한 신호와 욕실 세면대 아래에 있던 상자 하나 때문이었다.나는 욕조 세면대에 가만히 앉았다.테스트를 진행했다.그리고 기다렸다.이 욕실은 우리 방, 즉 나와 마커스의 방에 딸린 욕실이었다. 모리슨 저택에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내 몫이었던 그 방은 3년의 세월을 거치며 단순한 거주 공간이 아닌, 온전한 온기로 가득 찬 진짜 보금자리가 되어 있었다. 협탁 위에 놓인 마커스의 책, 의자에 걸린 그이의 재킷. 다시는 누릴 수 없을 거라 믿었던 타인과의 삶의 흔적들이, 이제는 무의식적으로 스쳐 지나갈 만큼 너무나 당연하고 편안한 일상이 되어 있었다.나는 테스트기를 손에 쥐고 욕조 가장자리에 앉아 있었다.문득 지난날의 그 순간이 떠올랐다.병원 대기실. 갈색 봉투를 든 채 복도에 서 있던 의사. 수년간 자신이 문제라는 말을 들으며 살다가 비로소 그것이 거짓임을 알게 되어, 봉투를 가슴에 꽉 안은 채 집으로 달려갔던 한 여자의 그 지독하고 섬뜩했던 희망. 그리고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마주했던, 내 인생 최악의 순간.그 시절의 여자는 덜덜 떨고 있었다.나는 내 두 손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손은 조금도 떨리지 않고 완벽하게 정지해 있었다.다시 테스트기로 시선을 옮겼다.아주 오랫동안 두 줄을 가만히 바라보았다.그러고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안았다.그리고 터져 나온 것은 헛웃음이었다.병원 대기실에서 터져 나왔던 복잡하고 서글픈 소리도 아니었고, 간절히 바라면서도 두려워했던 감정이 오열로 얼룩진 그런 웃음도 아니었다. 그저 순수한 웃음이었다. 내 집, 내 방 욕실의 욕조에 앉아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웃고 있었다. 너무나 행복해서, 그 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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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장

**리나의 시점**아벨 오빠와 카라의 첫 번째 결혼기념일은 3월의 어느 토요일이었다.내가 이 사실을 알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아벨 오빠가 1월부터 특유의 집요하고 완벽주의적인 태도로 기념일을 준비해 왔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중요한 일이라면 무엇이든 쏟아붓는 그 열정. 사실 아벨 오빠의 계획은 굳이 입 밖으로 내지 않아도 주변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아차릴 수 있을 만큼 티가 났다. 목적을 가지고 움직이는 아벨 오빠에게서는 그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단번에 읽어낼 수 있는 특유의 분위기가 풍겨 나왔으니까.오빠는 근사한 레스토랑을 예약해 두었다.아주 훌륭한 곳이었다. 몇 달 전부터 미리 예약해야만 갈 수 있는 곳이었는데, 오빠가 그걸 무려 1월에 해냈다는 사실은 지난해 기념일이 채 다 지나가기도 전에 다음 해 기념일을 준비하기 시작했음을 의미했다. 지독하게 철두철미한 건지, 아니면 지독하게 아벨 오빠다운 건지. 나는 그 둘이 결코 별개의 개념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하지만 그 예약은 취소되었다.아벨 오빠가 취소한 게 아니었다.카라가 취소했다.결혼기념일을 고작 사흘 앞둔 수요일, 카라는 예약을 취소하고 아벨 오빠 몰래 다른 일정을 준비했다. 예약이 취소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 대체안이 무엇인지 듣기까지, 그 24시간 동안 아벨 오빠가 풍겨낸 에너지는 주변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야말로 가관이었다.오빠는 지극히 프로페셔널하게 상황을 대했다.물론 그 프로페셔널함이란 막대한 에너지가 요구될 때 아벨 오빠가 보이는 특유의 방식이었다. 다시 말해, '상황 통제야말로 현재 가장 적절한 대응'이라고 결론 내린 사람처럼,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동원해 상황을 통제하려 애쓰는 게 겉으로 투명하게 다 보였다는 뜻이다.카라는 오빠가 마음껏 상황을 통제하도록 내버려 두었다.그리고 목요일 저녁, 자신이 직접 준비한 특별한 대체안을 오빠에게 털어놓았다. 둘만의 아주 특별한 이벤트였는데, 구체적인 내용은 알지 못하지만, 그 이야기를 전해 들은 지 불과 3분 만에 오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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