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나의 시점자정을 넘긴 시각이었지만, 나는 여전히 길거리에 서 있었다.도시는 서서히 잠들어가고 있었다. 엔진 소리가 멀어지고, 상점들의 불빛이 하나둘 꺼져갔다. 옷깃을 세우고 고개를 숙인 채 바삐 걸음을 옮기는 마지막 행인들 중, 그 누구도 서로를 돌아보지 않았다.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빗물에 젖은 보도블록을 긁는 가방 소리, 빗소리, 그리고 풀벌레 울음소리. 그 적막함 속에 나 혼자 남아 있었다.이상하게도 무섭지 않았다.모든 재산을 끌고 어두운 밤거리를 홀로 헤매고 있으면서도, 앞으로 내게 일어날 그 어떤 일도 두렵지 않다는 게 참 이상한 일이었다.차라리 무슨 일이라도 일어나길 바랐다.어둠 속에서 무언가 튀어나와 이 삶을 끝내주기를. 살아서 이 모든 감정을 감내해야 하는 고통보다는, 죽음이 차라리 더 나아 보였으니까.그때, 무언가가 내 의식을 날카롭게 깨웠다.아기였다.가슴을 턱 짓누르는 듯한 강렬하고 불현듯 찾아온 깨달음에 눈이 번쩍 뜨였다. 걸음을 멈춰 섰다."다른 누구도 아닌…… 너를 위해서라도 살아야 해."쉬어터지고 갈라진 목소리로 어둠 속을 향해 중얼거렸다. 손바닥을 배 위에 살포시 얹었다.빗속에 가만히 서서 잠시 숨을 고른 뒤,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몇 시간을 내리 걸었다.정확히 얼마나 걸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발이 아려오고, 짐을 끌느라 팔이 끊어질 듯 경련이 일어나고, 찬 기운이 뼈마디까지 스며들기 시작한 두 번째 시간 즈음부터 시간 감각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몸은 비에 흠뻑 젖어 있었다. 피곤이 밀려왔고, 속이 비어 헛구역질이 나올 만큼 날카로운 허기가 배 속을 쥐어짜였다. 젖은 머리타래가 얼굴에 볼품없이 들러붙었다. 신발 속은 물에 완전히 잠겨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발가락 사이로 물이 찌럭거렸다.그럼에도 계속 걸었다.멈춰 선다는 건 어디든 앉아서 생각을 하게 된다는 뜻이었고, 지금의 나는 생각을 할 여유 따위는 없었으니까. 아직은 안 됐다.나를 향해 나가라던 그의 차가운 눈빛도, 물건을 품평하
Last Updated : 2026-08-05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