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노트를 덮은 다음 날. 아침 7시 12분. 서율은 눈을 뜨자마자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옆에는 최태혁. 테이블 위에는 어제 덮어둔 흰 노트. 그리고— 오늘부터는 적을 페이지가 없었다. 서율이 침대에 누운 채 천장을 바라봤다. “태혁아.” “네.” 대답은 바로 돌아왔다. 이미 깨어 있었던 모양이었다. “우리 이제 규칙 없네.” 최태혁이 고개를 돌렸다. “있습니다.” “뭐가.” “400개.” “그건 지나간 거고.” “없어진 건 아니잖습니까.” 서율이 눈을 가늘게 떴다. 맞는 말이었다. 검은 노트도. 흰 노트도. 덮었다고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묘했다. 그동안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적었다. 싸우면 적었고. 실수하면 적었고. 서로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면 또 적었다. 하지 말아야 할 것. 물어봐야 할 것. 멈춰야 할 순간. 다시 시작해도 되는 순간. 그렇게 하나씩 만들어온 것이 가이드라인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빈 노트조차 없었다. 서율이 몸을 돌려 최태혁을 바라봤다. “그럼 오늘은.” “응.” “아무것도 안 정하고 살아볼까.” 최태혁의 눈썹이 아주 조금 올라갔다. “아무것도?” “응.” “저녁 약속도?” “그건 이미 했잖아.” “그럼 취소 가능?” 서율이 바로 인상을 썼다. “왜 취소해.” 태혁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규칙 없다며.” “최태혁.” “네.” “시작부터 악용하지 마.” “벌써 하나 생겼네.” 서율이 베개를 집어 던졌다. 최태혁이 웃으며 받아냈다. “제401조.” “쓰지 마.” “규칙 없다는 규칙.” “그것도 규칙이잖아.” “그러네.” 잠깐 정적. 그리고 동시에 웃음이 터졌다. 결국 둘은 아무것도 정하지 않은 채 출근했다. 오전 10시. 서율에게 문제가 하나 생겼다. 해외 투자사에서 예정에 없던 미팅을 요청했다. 시간은 오후 7시. 최태혁과 저녁을 먹기로 한 시간과 정확히 겹쳤다. 비서가 물었다. “어떻게
Última actualización : 2026-09-03 Leer má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