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9시 21분.은서율은 작은 도서관에 앉아 연극 《책갈피를 돌려드립니다》의 등장인물 설정을 정리하고 있었다.어제까지는 이름 없이 ‘여자’와 ‘남자’로만 적어두었지만, 오늘은 인물에게 구체적인 삶을 만들어줄 생각이었다.여자는 43세의 출판 편집자.남자는 45세의 오래된 서점 운영자.두 사람은 같은 동네에서 자랐지만 서로를 기억하지 못한다.서율은 남자의 직업을 적다가 펜을 멈췄다.“서점 운영자면 도서관에 자주 올 이유가 부족한가?”그때 최태혁이 들어왔다.“뭐가 부족해?”“주인님, 남자 주인공 직업이요.”태혁은 수첩을 살펴봤다.“서점 운영자도 도서관에 갈 수 있지.”“그렇긴 한데, 20년 동안 같은 책을 찾는 이유가 조금 더 설득력 있었으면 좋겠어요.”태혁이 맞은편에 앉았다.“그 책이 특별한 이유가 있으면 되잖아.”“예를 들면요?”“처음 자기 생각을 누군가 이해해준 책이라든지.”서율은 잠시 그를 바라봤다.그리고 수첩에 적었다.그는 책을 빌리러 온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처음 답장을 보내준 사람의 안부를 확인하러 왔다.“주인님, 이거예요.”태혁이 웃었다.“그럼 아침 먹으러 갈까?”“잠깐만요. 이름만 정하고요.”“어제도 한 줄만 더 쓴다고 했는데.”“오늘은 진짜예요.”오전 11시 08분.서율은 등장인물의 이름을 정했다.여자, 차보배.남자, 서이강.두 사람은 20년 동안 책을 매개로 짧은 글을 주고받았다.하지만 매번 같은 날짜에 편지가 오간 것은 아니었다.어떤 해에는 답장이 늦었고, 어떤 해에는 아무 소식도 없었다.그럼에도 편지는 이어졌다.서율은 첫 번째 편지의 내용을 적었다.‘이 책을 읽고 나니 떠나고 싶어졌습니다.’그 아래에는 두 번째 사람의 답장이 있었다.‘저는 이 책을 읽고 돌아오고 싶어졌습니다.’서율은 두 문장을 나란히 바라봤다.“같은 책인데 정반대네.”그녀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이제 두 사람이 서로에게 관심을 갖게 된 이유가 조금 선명해졌다.오후 1시 17분.정이현에게
Last Updated : 2026-10-29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