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잿빛 바다 위의 밀항선 서울의 밤은 혹독하게 추웠다. 빌딩 구석에서 뿜어져 나오는 차가운 바람이 인도를 휩쓸고 지나갈 때마다, 한이준의 얼어붙은 뺨 위로 하얀 김이 흩어졌다. 이준은 허름한 패딩 점퍼 주머니에 손을 깊숙이 찔러 넣었다. 손가락 끝에 잡히는 것은 진흙과 피로 얼룩진 하얀 아오자이의 조그마한 천 조각이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그 천 조각을 문지르고 또 문질렀다. 거칠어진 손등의 검푸른 흉터가 쓰라리게 울렸지만, 가슴을 파고드는 애절한 그리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조금만 기다려 줘, 린. 내가 꼭 당신을 구하러 갈 거야.' 이준은 입술을 깨물며 굳은 결의를 다졌다. 전역 후 그에게 남은 삶은 오직 단 하나뿐이었다. 린을 붉은 사상의 지옥에서 끌어내는 것. 정부도, 외교관도, 적십자조차도 냉전이라는 거대한 장벽 앞에 고개를 저었지만, 이준은 포기할 수 없었다. 포기하는 순간 자신의 영혼도, 전장에서 나눴던 그 숭고한 사랑의 약속도 모두 거짓이 되어버릴 터였다. 이준은 낮에는 공사장에서 무거운 시멘트 포대를 나르고, 밤에는 인천 포구의 화물 적재소에서 밤샘 노역을 했다. 피로로 몸이 무너져 내리고 얼어붙은 손가락에서 피가 터져 나왔지만, 그는 쉬지 않았다. 번 돈은 전부 어둠의 브로커들에게 바칠 자금이 될 것이었다. "이봐, 한 씨! 오늘 밤에 또 출항 일거리가 들어왔는데 할 거야?" 화물 적재소의 인력 반장이 이준의 어깨를 두드리며 물었다. 이준은 거친 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하겠습니다.
Last Updated : 2026-09-08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