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방인의 계절, 붉은 흙의 땅습한 열기가 군복 안감을 파고들어 살죽을 짓눌렀다. 한이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헬멧 아래로 흘러내리는 땀을 닦아냈다. 한국의 여름과는 차원이 다른, 마치 거대한 찜통 속에 갇힌 듯한 불쾌한 감각이었다. 1968년, 베트남의 중부 전선은 그렇게 질척이는 열기로 이방인을 맞이하고 있었다.'도대체 여기가 어디라고.'이준은 소총을 고쳐 쥐며 주위를 경계했다. 울창한 밀림은 언제든 죽음을 뱉어낼 준비가 된 거대한 짐승처럼 입을 벌리고 있었다. 나뭇잎 하나가 흔들리는 소리에도 신경이 곤두섰다. 이곳에서 적은 보이지 않았다. 땅 밑에 숨어 있거나, 나무 뒤에 숨어 있거나, 아니면 평범한 농민의 얼굴을 한 채 등 뒤에서 대창을 휘둘렀다."한 병장님, 또 멍 때리십니까? 그러다 베트공 놈들이 목 따갑니다."옆에서 걷던 박 일병이 너스레를 떨었지만, 그의 목소리에도 팽팽한 긴장감이 서려 있었다. 이준은 대답 대신 묵직한 군화를 옮겨 붉은 흙바닥을 밟았다. 비라도 내릴 모양인지 하늘은 낮게 가라앉아 있었고, 공기는 금방이라도 터질 듯한 화약 냄새를 머금고 있었다.파병을 자원했을 때의 결기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가난한 집안 형편을 일으켜 세우고 싶다는 소박한 욕망과 국가의 부름이라는 거창한 명분은, 동료의 창자가 쏟아져 나오는 전장 한복판에서 비명과 함께 휘발되었다. 이준에게 남은 것은 오직 하나, 살아남아 돌아가는 것뿐이었다.그날 오후, 이준의 소대는 '빈호아' 인근의 작은 마을에 주둔하게 되었다. 전략촌으로 지정된 이곳은 남베트남 정부의 통제하에 있다고는 했으나, 밤이 되면 누가 주인인지 알 수 없는 기묘한 공간이었다. 이준은 마을 어귀에 있는 낡은 우물가에서 잠시 숨을 돌렸다. 그때였다.나무 그늘 사이로 하얀 옷자락이 나풀거렸다. 이준은 반사적으로 총구를 그쪽으로 돌렸다."누구냐!"날카로운 외침에 수풀이 흔들리더니 한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얀 아오자이를 입고 목에는 낡은 책가방을 멘 여인이었다. 그녀는 갑작스러운
Last Updated : 2026-08-10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