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하얀 아오자이는 피와 먼지로 더럽혀져 본래의 색을 잃어버렸고, 가늘고 깨끗했던 손등은 바닥에 긁혀 찢어져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통증조차 느끼지 못했다. 가슴속 깊숙이 품은 금속의 감촉만이 그녀의 의식을 온전히 붙잡고 있었다. 아오자이 안쪽, 가슴골 사이에 소중하게 숨겨둔 이준의 회중시계. 그리고 그 곁에 놓인 한국군 계급장. 째깍, 째깍, 째깍. 거친 총성과 사상 선전 방송이 사방을 뒤흔드는 속에서도, 린의 귀에는 오직 그 회중시계가 내는 작은 소리만이 똑똑히 들려왔다. 그것은 이방인 병사의 심장 소리였고, 그가 자신에게 약속했던 하얀 눈의 소리였다. "이봐, 거기 너! 일어나!" 거친 손길이 린의 어깨를 잡아채며 강제로 일으켜 세웠다. 붉은 별 뱃지를 단 북베트남군 장교 하나가 소름 끼치는 눈빛으로 린을 훑어보았다. 찢겨나간 아오자이 사이로 드러난 가녀린 목선과, 먼지로 얼룩졌으나 감출 수 없는 맑고 고결한 용모가 사내의 시선을 끌었다. "이 여자는 누구냐? 착의를 보니 단순한 농민이 아닌데." 장교의 물음에 옆에 서 있던 베트공 대원이 서류를 뒤적이더니 악에 받친 목소리로 외쳤다. "이 여자는 북부 중부 전선 전략촌에서 아이들에게 반동 사상을 가르치던 교사입니다! 남조선 괴뢰군 병사와 정을 통하며 당의 정보를 밀통한 중범죄자입니다!" 장교의 입꼬리가 삐딱하게 올라갔다. "남조선 괴뢰군의 첩자라... 외세의 앞잡이 노릇을 한 놈들은 사상을 뿌리째 뽑아야 하지."&
Last Updated : 2026-08-31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