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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os os capítulos de 14일간의 계약 연애: Capítulo 51 - Capítulo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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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화

회의실의 조명이 스크린을 향해 한 단계 낮아지고, 단상 위의 소율에게 핀 조명이 떨어졌다.​소율은 안경을 한 번 치켜올리고는, 마이크를 잡고 입을 열었다.​"Bonjour, Monsieur Arnaud et membres de la direction. Je suis Han So-yul, directrice de la planification stratégique pour l'Europe. (안녕하십니까, 아르노 회장님 및 임원진 여러분. 태성그룹 유럽 총괄 전략기획팀장 한소율입니다.)"​소율의 입에서 흘러나온 불어는, 단순히 비즈니스 회화를 외운 수준이 아니었다. 파리 최고급 살롱에서나 들을 법한, 완벽한 악센트와 귀족적인 억양을 갖춘 극상(極上)의 불어였다.​순간, 팔짱을 끼고 삐딱하게 앉아 있던 아르노 회장의 눈썹이 흥미롭다는 듯 위로 치켜올라갔다.​"오늘 저희 태성그룹은 벨에포크 컨소시엄에 단순한 파트너십을 제안하러 온 것이 아닙니다."​소율은 프레젠터의 버튼을 눌렀다. 스크린에 벨에포크의 최근 3년간 매출 정체 그래프와 물류 적자 데이터가 붉은색으로 날카롭게 표시되었다.​"저희는 벨에포크가 안고 있는, 곪아 터지기 직전의 고질적인 물류 병목 현상을 완벽하게 수술할 '메스(Scalpel)'를 쥐여드리기 위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파격적이고도 도발적인 오프닝이었다.보통의 기안자라면 자사의 장점을 늘어놓기 바쁠 텐데, 소율은 시작부터 상대방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을 후벼 파며 기선을 완벽하게 제압해 버렸다.​"현재 벨에포크의 유럽 내 B2B 물류 시스템은 구시대적인 허브 앤 스포크(Hub-and-Spoke) 방식에 갇혀, 파리 외곽의 트래픽 체증으로 인해 매년 1,500만 유로 이상의 매몰 비용을 발생시키고 있습니다."​소율의 날카로운 지적에 벨에포크 임원들의 안색이 굳어졌다. 그것은 그들 내부에서도 골머리를 앓고 있는 1급 기밀에 가까운 데이터였기 때문이다.​"이를 해결하기 위해, 아마 기존 기획안들에서는 외곽 물류 창고의 단순 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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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화

​"좋은 지적입니다, 베르나르 수석."​소율이 단상 위에서 서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도현의 도움 따위는 필요 없다는 듯, 그녀의 눈빛은 한 치의 흔들림 없이 고요하고도 오만했다.​"프랑스 노조의 강경한 성향을 모를 리가 없죠. 그래서 저는 탁상공론을 하는 대신, 직접 발로 뛰는 방식을 택했습니다."​소율은 프레젠터의 버튼을 한 번 더 클릭했다.스크린의 화면이 전환되며, 불어로 빽빽하게 작성된 공식 문서 하나가 거대한 화면을 가득 채웠다.​문서의 하단에는 프랑스 운수 노조위원장의 공식 서명과, 태성그룹 한소율 기획팀장의 서명이 선명하게 나란히 찍혀 있었다.​"이게… 이게 뭡니까?"베르나르의 동공이 지진이라도 난 듯 미친 듯이 요동쳤다.​"보시다시피. 파리 운수 노조와 맺은 '사전 조건부 양해각서(MoU)'입니다."​소율의 맑고 청아한 목소리가 대회의실을 쩡쩡 울리며 벼락처럼 내리꽂혔다.​"도심형 센터 구축 시, 태성그룹의 전동화 모빌리티 우선 도입 및 노조원 고용 승계 100% 보장을 조건으로, 노조 측에서 우리의 프로젝트에 어떠한 파업이나 반발도 하지 않겠다는 공식적인 합의문이죠. 지난 주말, 제가 직접 노조위원장을 만나 4시간의 마라톤협상 끝에 얻어낸 결과물입니다."​"……!"​"베르나르 수석. 10년 차의 경험으로도 풀지 못한 현지 리스크를 핑계 삼아 기안서에 안일한 구법(舊法)을 복붙해 넣을 시간에, 저처럼 현장에 나가서 노조위원장과 커피라도 한잔하시지 그러셨습니까."​사이다를 넘어선, 완벽하고도 잔혹한 공개 처형이었다.베르나르의 얼굴은 순식간에 핏기가 가시며 시체처럼 하얗게 질려버렸다. 그는 입을 붕어처럼 뻐끔거렸지만, 단 한마디의 반박도 하지 못한 채 의자 깊숙이 주저앉고 말았다. 그의 추종자들 역시 사시나무 떨듯 고개를 푹 숙여버렸다.​익명 게시판에 떠돌던 '본부장의 스폰을 받는 무능한 애인'이라는 더러운 루머가, 이 단 한 장의 슬라이드와 압도적인 실력 앞에서 문자 그대로 산산조각이 나버리는 순간이었다.​정적.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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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화

​파리의 심장부, 샹젤리제(Champs-Élysées) 거리에 완벽한 밤이 내려앉았다.개선문을 향해 곧게 뻗은 가로수길 위로 황금빛 조명들이 일제히 불을 밝히며, 낮 동안 라데팡스를 지배했던 치열한 비즈니스의 열기를 로맨틱하고 우아한 축제의 공기로 바꾸어 놓고 있었다.​거리 한복판에 자리한 미슐랭 3스타의 최고급 프라이빗 레스토랑.평소라면 수개월 전부터 예약을 해야만 발을 들일 수 있는 이곳은, 오늘 밤 오직 태성그룹 유럽 총괄 지사의 임직원들만을 위해 완벽하게 대관되어 있었다. 브랑슈 그룹과의 4억 유로(한화 약 5,800억 원) 규모의 초대형 딜을 단 한 번의 프레젠테이션으로 성사시킨, 기적 같은 승리를 자축하기 위한 자리.​은은한 첼로 연주가 홀 안을 부드럽게 채우는 가운데, 크리스탈 샹들리에의 불빛 아래로 최고급 샴페인 잔들이 쉴 새 없이 부딪치며 경쾌한 파열음을 만들어냈다.​"Félicitations! (축하합니다!) 한 팀장님, 오늘 보여주신 그 완벽한 불어 PT는 파리 지사 전설로 남을 겁니다!""태성그룹 본사의 수준이 이 정도일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앞으로 저희 기획팀을 잘 이끌어 주십시오, 팀장님!"​연회장 중앙에 선 한소율의 주변으로는 현지 프랑스 임원들과 직원들이 구름 떼처럼 몰려들어 연신 샴페인 잔을 건네며 찬사를 쏟아내고 있었다.​오전 프레젠테이션 때 입었던 딥 네이비 슈트 차림 그대로였지만, 전투 모드를 위해 코끝에 올렸던 은테 안경을 벗고 옅은 미소를 머금은 소율의 모습은 그 어느 때보다 우아하고 지적으로 빛났다. 불과 어제 아침까지만 해도 그녀를 보며 '본부장의 스폰을 받는 낙하산'이라며 낄낄대던 자들의 시선은, 이제 완벽한 경외와 맹목적인 존경으로 180도 뒤바뀌어 있었다.​"과찬이십니다. 저 혼자만의 성과가 아니라, 여기 계신 기획팀 여러분들이 그동안 다져놓은 현지 인프라 데이터가 훌륭했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소율은 오만하게 우쭐대는 대신, 능숙하고 세련된 매너로 직원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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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화

​자신의 권력 뒤에 숨어 눈물을 훔치는 연약한 존재가 아니었다. 쏟아지는 악의적인 루머와 편견을 오직 스스로의 지독한 실력으로 산산조각 내버리고, 적들의 입을 완벽하게 틀어막은 채 파리 지사의 정점에 우뚝 선 진정한 태성그룹의 에이스.​도현의 짙은 눈동자 안에, 소율을 향한 통제 불가능한 소유욕과 터질 듯한 맹목적인 애정이 거센 파도처럼 밀려들었다.​어제 도현은 폭주하여 기획팀으로 내려가 권력을 휘두르려 했다. 하지만 소율은 그의 가슴을 밀어내며 "내 방식으로 증명하겠다"며 벼랑 끝의 배수진을 쳤다. 그리고 보란 듯이 오늘, 그녀는 자신을 향한 모든 쓰레기 같은 소문들을 스스로 완벽하게 정화해 냈다.​그 눈부신 긍지와 자부심을 가진 여자가 바로 내가 목숨을 걸고 사랑하는 사람이라니. 도현은 끓어오르는 감격과 벅참을 도저히 주체할 수가 없었다.​도현의 시선이 소율의 하얀 목선을 향했다.깊게 파인 네이비 슈트의 깃 아래로, 어제 아침 자신이 집요하게 남겨놓았던 그 붉은 소유의 표식들이 오늘은 보이지 않았다. 꼼꼼하게 목 끝까지 단추를 채운 실크 블라우스가 그 흔적들을 단정하게 가려주고 있었기 때문이다.​소율이 부임 첫날 그에게 요구했던 '회사에서는 완벽한 타인처럼 지낼 것'. 사내 비밀 연애의 철칙.어제까지만 해도 도현은 그 규칙에 순응하려 애썼다. 그녀의 자존심을 지켜주기 위해서.​하지만 지금 이 순간, 도현은 더 이상 그 바보 같은 규칙 뒤에 소율을 방치해 둘 생각이 단 1g도 남아있지 않았다.​'스폰을 받는 낙하산 창녀.'​어제 소율을 찌르던 그 더러운 익명 게시판의 문장들이 다시금 도현의 뇌리를 스쳤다. 오늘 완벽한 실력을 증명했다고 해서, 그 모욕의 파편들이 소율의 가슴에 남긴 상처가 완전히 지워지는 것은 아니었다.능력의 증명은 소율이 제 스스로의 힘으로 완벽하게 해냈다. 그렇다면 이제, 그녀에게 씌워졌던 그 더러운 성적 모욕과 스폰서라는 저열한 프레임을 뼛속까지 박살 내어 그녀의 명예를 가장 고고한 자리로 돌려놓는 것은 오직 자신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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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화

​"헉…!"​여기저기서 현지 직원들과 한국 파견 직원들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날카로운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태성그룹 내에서 그 누구에게도 곁을 주지 않던 얼음장 같은 총괄 본부장이, 무려 공개 석상에서 신임 팀장의 손을 깍지 껴 잡는 파격적인 스킨십을 벌인 것이다.​도현은 소율의 손을 부서질 듯 꽉 움켜쥔 채, 군중들을 향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빛은 맹수처럼 번뜩이고 있었지만, 목소리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우아하고 지적이었다.​"어제 오전, 사내 인트라넷 익명 게시판에 한소율 팀장이 제 '스폰'을 받아 파리로 온 낙하산 애인이라는 저급한 투서가 올라왔더군요."​도현의 입에서 튀어나온 적나라한 단어들에 베르나르를 비롯한 몇몇 직원들의 얼굴이 사색이 되어 굳어졌다.​"제 침대를 데워주는 대가로 팀장 자리를 꿰찼다, 라는 표현도 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도현은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 그것은 분노라기보다는, 그 어설픈 소설에 대한 지독한 조소였다.​"명확히 정정해 드리죠. 그것은 완벽하게 틀린 팩트입니다."​도현이 마이크를 쥔 손에 힘을 주며, 한 글자 한 글자 명확하게 쐐기를 박듯 선언했다.​"한소율 팀장이 제 권력에 기대어 낙하산으로 내려온 것이 아닙니다."​도현은 깍지 낀 소율의 손을 천천히 들어 올려, 그녀의 매끄러운 손등 위로 자신의 입술을 지그시 내리눌렀다.모두가 보는 앞에서 그녀가 완벽하게 차도현의 소유임을 각인시키는 로맨틱하고 파격적인 키스.​소율의 얼굴이 순식간에 홍옥처럼 붉게 달아올랐고, 그녀의 심장은 흉곽을 뚫고 나올 것처럼 거세게 요동치기 시작했다.​도현이 입술을 떼어내고, 소율의 눈을 깊게 응시하며 마이크에 대고 속삭이듯 말했다.​"지난 3년 동안. 오직 성과만을 바라보며 피도 눈물도 없이 살아왔던 얼음장 같은 제 심장을 통째로 뒤흔들어 놓고, 제발 한 번만 돌아봐 달라고 매일 밤 제가 목을 매달며 쫓아다녔던 쪽이… 바로 저이기 때문입니다."​장내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동공이 터질 듯 커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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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화

​파리의 아침은 어젯밤 샹젤리제 거리에서 터졌던 폭발적인 선언의 열기를 식혀주려는 듯, 맑고 청명한 공기를 품고 센강 위로 내려앉아 있었다.​펜트하우스의 드넓은 거실 창밖으로 눈부신 아침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지만, 현관문 앞에 선 한소율의 발걸음은 마치 접착제라도 붙은 것처럼 바닥에 딱 달라붙어 떨어질 줄을 몰랐다.​손에는 평소처럼 서류 가방이 들려 있었고, 단정한 베이지색 슈트 차림도 한 치의 흐트러짐이 없었건만, 그녀의 눈동자만큼은 갈 곳을 잃고 마구 흔들리는 중이었다.​'하아... 어떡하지. 진짜… 회사에 무슨 얼굴로 출근해야 하지?'​불과 몇 달 전만 해도 '들키면 끝장'이라는 강박에 시달리며, 회사에서 서로 남남인 척 거리를 두었던 두 사람이었다. 그런데 어젯밤, 수십 명의 지사 직원들이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지켜보는 한가운데서 차도현은 그녀의 스카프를 벗겨 던지고 '내 미래의 아내'라며 공개 프러포즈를 감행했다.심지어... 짐승처럼 거칠고도 뜨거운 키스까지 퍼부으면서.​그 모든 짜릿하고도 미친 짓의 대가를 치러야 하는 '다음 날 아침'이 밝은 것이다.​"뭘 그렇게 쭈뼛거리고 서 있어."​등 뒤에서 들려온 여유로운 음성에 소율의 어깨가 흠칫 뛰어올랐다.​어느새 출근 준비를 완벽하게 마친 차도현이 다가와 그녀의 허리에 자연스럽게 팔을 두르며 뺨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소율과 달리 도현의 얼굴에는 그 어떤 긴장감이나 민망함도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제 먹잇감을 완벽하게 쟁취해 낸 포식자의 나른하고도 오만한 만족감만이 뚝뚝 묻어나고 있었다.​"도현 씨는 아무렇지도 않아요? 어제 그 난리를 쳐놨는데! 오늘 회사 사람들이 우릴 어떤 눈으로 보겠어요.""어떤 눈으로 보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태성그룹 차기 제왕의 하나뿐인 반려자를 향한, 무한한 경외와 존경의 눈빛으로 보겠지.""아, 진짜 뻔뻔해!"​소율이 기가 차다는 듯 도현의 가슴팍을 찰싹 때렸지만, 도현은 오히려 그 손을 부드럽게 낚아채어 제 입술로 가져갔다.​"뻔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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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화

​권력의 이동과 사내 정치의 방향이 단 하룻밤 만에 완벽하게 뒤집혀버린 셈이었다. 소율은 이 민망하고도 노골적인 태세 전환에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지만, 동시에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쳐둔 도현의 그 거대하고 견고한 방벽이 얼마나 위력적인지 뼈저리게 실감하고 있었다.​전용 엘리베이터에 올라타 문이 닫히자마자, 소율은 잡혀 있던 손을 확 빼내며 도현을 흘겨보았다.​"사모님이라니요! 저 직원들한테 대체 무슨 바람을 넣어둔 거예요?""내가 넣은 거 아니야. 저들이 알아서 살아남는 법을 터득한 거지."​도현이 나른하게 웃으며 벽에 기대어 소율을 내려다보았다.​"왜, 마음에 안 들어? 난 아주 듣기 좋던데. 사. 모. 님.""놀리지 마요! 아직 결혼한 것도 아닌데 회사에서 그런 호칭으로 불리면 제 업무적 권위가 어떻게 되겠어요? 다들 저를 기획팀장이 아니라 본부장님 부인으로만 대할 텐데.""걱정 마. 네가 일할 때 뿜어내는 그 살벌한 업무적 권위는, 내가 백 번 사모님이라고 불러도 안 가려질 만큼 독보적이니까."​도현이 다가와 소율의 발개진 뺨을 부드럽게 꼬집으며 속삭였다.​"그러니까 오늘부터는 마음껏 누려. 네가 그동안 숨죽이며 고생했던 거, 이제는 세상에서 제일 당당하고 유난스럽게 보상받을 차례니까."​그 다정하고도 묵직한 위로에 소율의 뾰로통했던 입술이 결국 스르르 풀리며 옅은 호선을 그렸다.​비밀 연애의 족쇄가 풀린 차도현의 '애정행각 폭주'는 로비에서의 등장이 끝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그것은 기나긴 폭격의 서막에 불과했다.​오전 10시. 유럽 지사 주요 임원들이 모두 참석하는 주간 전략 회의 시간.​거대한 타원형 대리석 탁자 주변으로 팽팽한 긴장감이 맴돌았다. 평소의 차도현 본부장이라면, 스크린에 띄워진 데이터의 오차율 0.1%를 잡아내며 매서운 독설을 쏟아내고 있어야 할 타이밍이었다. 현지 임원들은 마른침을 삼키며 본부장의 서늘한 입이 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하지만 상석에 비스듬히 기대어 앉은 도현의 시선은, 정면의 스크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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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화

​"보, 본부장님!"​식사를 하던 기획팀 직원들이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려 했지만, 도현은 여유로운 손짓으로 그들을 만류했다.​"다들 편하게 식사들 하세요. 난 개인적인 용무로 온 거니까."​도현은 팀원들의 경악어린 시선을 뒤로한 채, 뚜벅뚜벅 걸어가 소율의 팀장실 유리문을 열고 들어갔다.​문이 열리는 소리에 서류에 코를 박고 있던 소율이 고개를 들었다.​"도현 씨? 아니, 본부장님. 이 시간에 여긴 어쩐 일이세요?""어쩐 일이긴. 내 미래의 아내가 또 점심시간에 샌드위치로 끼니를 때우며 혹사당하고 있을까 봐, 특별 셰프 노릇 좀 하러 왔지."​도현은 성큼성큼 다가와 소율의 책상 한편에 런치 박스를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망설임 없이 소율의 책상 모서리에 훌쩍 걸터앉더니, 3단 박스의 뚜껑을 하나씩 열기 시작했다. 고급스러운 트러플 리조또의 향기와, 랍스터 테일 구이, 그리고 마카롱 디저트까지 완벽하게 세팅된 만찬이 책상 위로 펼쳐졌다.​"세상에… 이거 다 뭐예요? 사무실에 냄새 다 풍기잖아요!""먹어. 아침도 거르고 출근했잖아."​도현이 포크를 집어 들고 트러플 리조또를 듬뿍 떠서, 소율의 입가로 다정하게 내밀었다.​"자, 아- 해.""미, 미쳤어요?!"​소율이 기겁을 하며 몸을 뒤로 젖혔다.​"여기 밖에서 다 보이는 통유리 사무실이에요! 팀원들이 지금 우리 쪽을 다 쳐다보고 있다고요!""쳐다보라 그래. 합법적인 연인끼리 점심시간에 밥 좀 먹여주겠다는데, 누가 뭐래."​도현은 전혀 굴하지 않고 오히려 포크를 소율의 입술에 살짝 가져다 댔다.​"빨리 입 안 벌리면, 밖의 놈들이 보든 말든 이 포크 던져버리고 내 입술로 직접 먹여줄 테니까 알아서 해."​그 살벌하고도 달콤한 협박에 소율은 결국 두 손 두 발을 다 들 수밖에 없었다. 이 남자의 직진은 타협이 불가능했다. 소율은 밖의 팀원들이 힐끔거리는 시선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붉어진 얼굴로 입을 벌려 도현이 주는 리조또를 받아먹었다.​"옳지, 잘 먹네."​도현이 만족스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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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화

​태성그룹 유럽 지사에 '파워 커플'의 탄생을 알렸던 그 폭발적인 샹젤리제의 밤으로부터 어느덧 6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다.​파리는 혹독했던 겨울의 허물을 벗고, 눈부신 연둣빛 새순과 따스한 햇살이 도시 전체를 감싸 안는 완연한 봄의 한가운데로 들어서 있었다. 사내 비밀 연애라는 숨 막히는 족쇄를 끊어낸 두 사람의 일상 역시, 파리의 봄날처럼 평화롭고도 달콤한 궤도에 완벽하게 안착해 있었다.​평일에는 라데팡스의 사옥에서 완벽한 호흡으로 수억 유로의 비즈니스를 주무르는 냉철한 총괄 본부장과 기획팀장이었지만, 주말이 되면 두 사람은 타이틀의 무거움을 모두 내려놓고 오직 서로에게만 집중하는 평범하고 다정한 연인으로 돌아갔다.​주말을 맞이한 몽마르트르(Montmartre) 언덕은 세계 각국에서 몰려든 관광객들과 현지인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이고 있었다.​"소율아, 이쪽."​가파른 언덕길의 돌계단을 오르던 도현이, 행여나 인파에 소율이 부딪힐까 제 넓은 어깨로 단단한 방어막을 치며 그녀의 손을 이끌었다.​평소 회사에서 입던 칼 같은 다크 네이비 슈트 대신, 부드러운 오트밀 색상의 캐시미어 니트와 롱코트를 걸친 도현의 모습은 한결 여유롭고 부드러워 보였다. 소율 역시 각 잡힌 테일러드 재킷을 벗어던지고, 흩날리는 벚꽃 잎을 닮은 연분홍색 플리츠 원피스 위로 포근한 카디건을 걸친 채 그의 곁에 바짝 붙어 걸었다.​"사람이 정말 많네요. 아, 저기 크레페 가게 향기 진짜 좋다!"​언덕 중턱, 고소한 버터와 달콤한 초콜릿 향기를 풍기는 길거리 크레페 노점 앞을 지나치며 소율이 눈을 반짝였다. 도현은 그 시선을 놓치지 않고 곧바로 소율을 이끌어 노점 앞에 줄을 섰다.​잠시 후, 딸기와 누텔라가 듬뿍 들어간 큼직한 크레페 하나를 받아 든 소율이 환하게 웃으며 한입을 크게 베어 물었다.​"음! 진짜 맛있어요. 도현 씨도 한 입 먹어볼래요?"​소율이 크레페를 도현의 입가로 내밀었다. 평소 단 음식이라면 질색을 하며 혀를 내두르던 도현이었지만, 그는 단 1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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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화

​회사에서의 차갑고 서늘한 긴장감을 모두 내려놓고, 그저 걷고, 웃고, 사소한 대화를 나누는 평범한 연인들의 주말. 3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도현의 서늘한 결재판 너머로 제 마음을 죽인 채 바라만 보아야 했던 소율에게, 지금 이 순간들은 마치 기적과도 같이 달콤하고 비현실적인 축복이었다.​그런데, 몽마르트르 언덕의 중턱쯤을 지날 무렵이었다.​맑았던 파리의 하늘 위로 갑작스럽게 먹구름이 짙게 몰려들기 시작하더니, 이내 차가운 돌풍이 골목길을 휩쓸고 지나갔다.​"어… 하늘이 왜 이러지?"​소율이 불안한 듯 하늘을 올려다보는 순간.​툭, 투둑.​빗방울이 몇 방울 떨어지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하늘 구멍이 뚫린 것처럼 억수 같은 장대비가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변덕스럽기로 유명한 파리의 기습적인 폭우였다.​"꺄악!""우와아아-!"​언덕을 거닐던 수많은 관광객들이 비명을 지르며 비를 피하기 위해 처마 밑이나 상점 안으로 다급하게 뛰어들기 시작했다.​순식간에 쏟아진 굵은 빗줄기에 소율이 당황하여 어깨를 움츠리던 바로 그 찰나였다.​"소율아!"​펄럭- 하는 소리와 함께, 소율의 시야가 순식간에 커다랗고 포근한 어둠 속으로 완벽하게 가려졌다.​도현이 자신이 입고 있던 오트밀 색상의 캐시미어 롱코트를 단숨에 벗어 던지듯 펼치고는, 소율의 머리 위부터 어깨, 그리고 허리 아래까지 그녀의 작은 체구 전체를 완벽한 텐트처럼 감싸 안아버린 것이다.​"도, 도현 씨!"​갑작스럽게 코트 안으로 갇힌 소율이 놀라 소리쳤지만, 도현은 소율을 감싼 코트 자락을 양손으로 단단히 틀어쥔 채 그녀를 제 품으로 빈틈없이 끌어당겼다.​"뛰어! 저쪽 처마 밑으로!"​빗소리를 뚫고 들려오는 도현의 다급한 외침. 소율은 도현의 넓은 가슴에 얼굴을 묻은 채, 그가 이끄는 힘에 의지해 언덕길 한편의 고풍스러운 석조 건물 아치형 처마 밑으로 뛰어 들어갔다.​"하아, 하아…."​처마 밑으로 피신한 두 사람의 가쁜 숨소리가 빗소리와 섞여 좁은 공간을 채웠다.​소율은 도현이 코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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