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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속 얼굴이 바뀌던 날 のすべてのチャプター: チャプター 1 - チャプター 10

11 チャプター

제1화

결혼기념일 한 달 전부터 레스토랑을 예약해 뒀다.빨간 원피스는 한민준이 예쁘다고 했던 옷이고, 진주 귀걸이는 한민준이 선물해 준 것이다.오후 6시, 막 옷을 갈아입고 거울 앞에서 귀걸이를 하고 있는데 한민준의 전화가 걸려 왔다.[급하게 출장 가야 해. 오늘 밤에는 못 들어갈 것 같아.]목소리는 다급했다.한민준은 말을 마치자마자 전화를 끊었다.그가 먼저 전화를 끊은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나는 거울 속 내 모습을 바라봤다.귀걸이는 한쪽만 걸려 있었고, 나머지 하나는 귀밑에서 흔들리고 있었다.그때 서민정에게서 전화가 왔다.[그럼 오늘은 내가 같이 있어 줄게.]서민정은 차를 몰고 와서 나를 데리고 양식당으로 향했다.차가 그 가게 앞에 멈춰 섰고, 나는 막 문을 열려다가 손잡이에서 손이 멈췄다.창가 자리에 한민준이 앉아 있었다.한민준의 맞은편에는 스물대여섯 살쯤 돼 보이는 여자가 앉아 있었는데, 웃을 때 입가에 보조개가 깊게 팼다.한민준이 손을 뻗어 엄지손가락으로 그 여자의 입가에 묻은 크림을 닦아주고 있었다.그 손짓은 한민준이 열여덟 살 때부터 지금까지 나에게만 하던 거였다.서민정도 그 모습을 보고 곧장 뛰어들려고 했다.나는 서민정의 손을 붙잡았다.“가지 마.”“저 여자 누구야?”“몰라.”그날 밤 11시가 되어서야 한민준이 집에 돌아왔다.손에는 매년 결혼기념일마다 사 오던 것처럼 빨간 장미 한 다발이 들려 있었다.한민준은 샤워를 마치고 나오더니, 등 뒤에서 나를 끌어안고 턱을 내 머리 위에 얹었다.“오늘은 정말 미안해. 다음에 꼭 제대로 기념일 챙겨줄게.”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머릿속에 두 사람의 얼굴이 번갈아 떠올랐다.내 얼굴, 그리고 그 낯선 여자의 얼굴.놀랍게도 두 사람의 비중은 정확히 반반이었다.21년 만에 처음으로, 한민준의 마음속에 내가 아닌 다른 여자가 보였다.한민준이 잠든 뒤, 나는 그의 휴대폰을 몰래 확인했다.비밀번호는 여전히 내 생일이었다.그런데 연락처 목록 맨 위에 고정된 대화방 하나가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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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나는 한민준의 회사로 찾아갔다.엘리베이터를 타자마자 정우연과 마주쳤다.정우연은 나를 알아보고는 먼저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사모님, 안녕하세요. 저는 정우연이라고 해요. 한 대표님 비서예요.”말투도, 표정도 지나치게 자연스러웠다.정우연은 층수를 누르고 한 걸음 물러서 내 옆에 섰다.그때 전화가 걸려 왔다.“민준 오빠? 오빠는 원래 점심 잘 안 먹어요. 그냥 커피 한 잔 마시는 게 습관이라서요.”전화를 끊고 나서 정우연은 내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사모님, 오빠랑 점심 드시러 오셨어요?”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먼저 내렸다.사무실에 들어갔을 때, 한민준은 서류를 검토하고 있었다.나는 보온 도시락을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점심을 아예 안 먹는 거야?”“가끔 바쁘면 그냥 거르기도 해.”정우연이 서류를 들고 들어와 도시락을 힐끗 보며 웃었다.“정말 세심하시네요. 오빠가 얼마 전에 갈비찜 먹고 싶다고 했더니 바로 해오셨네요.”한민준에게 갈비를 집어주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한민준은 고개를 숙인 채 밥만 먹고 있었다.정우연이 나가고 사무실에는 우리 둘만 남았다.“당신에 대해 꽤 많이 알고 있네.”“누구?”“정 비서. 당신이 점심을 잘 안 먹는 것도 알고, 커피만 마시는 것도 알고.”한민준이 젓가락을 내려놓았다.“우연이는 내 비서야. 내 업무 습관을 아는 것도 비서가 할 일이고.”“그래?”“또 무슨 생각 하는 거야? 나는 너밖에 없어.”한민준은 한숨을 쉬고 다시 밥을 먹기 시작했다.그날 밤, 한민준은 10시까지 야근을 했다.나는 서재로 과일을 가져다주러 들어갔다.한민준의 휴대폰 화면이 켜져 있었고, 정우연이 보낸 셀카 사진이 떠 있었다.한민준은 내가 보는 앞에서 휴대폰을 뒤집었다.“회사 일이야.”“아무것도 안 물어봤는데.”나는 과일을 내려놓고 서재를 나왔다.손잡이를 잡은 채 2초쯤 멈춰 있었지만, 한민준이 날 붙잡지는 않았다.일요일에 한민준이 기념일을 다시 챙기자며 예약해 둔 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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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한민준은 서재에서 늦은 시간까지 일을 하고 있었다.밤 11시가 넘어서야 나는 우유 한 잔을 들고 서재로 들어갔다.문이 제대로 닫혀 있지 않아서, 한민준이 통화하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아주 오랫동안 듣지 못했던 다정한 말투였다.“응, 먼저 자. 내일 다시 얘기해. 나도 보고 싶어.”전화를 끊고 고개를 든 한민준이 문 앞에 서 있는 나를 보고는 잠시 멈칫했다.“왜 아직 안 잤어?”“부하 직원한테도 그렇게 다정하게 말해?”“평소랑 똑같이 말한 건데, 괜한 생각하지 마.”나는 아무 말 없이 몸을 돌려 걸어 나왔다.곧이어 뒤에서 서재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예전에는 절대 서재 문을 닫지 않던 사람이었다.20분쯤 기다리자 한민준이 방으로 들어왔고, 내가 아직 깨어 있는 걸 보고는 조금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할 말이 있어. 나한테는 어릴 때부터 특별한 능력이 하나 있어. 누군가를 만지면 그 사람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볼 수 있어.”한민준이 외투를 벗던 손을 멈췄다.“7살 때 처음 당신을 만졌을 때, 내가 본 얼굴은 나였어.”“18살에 당신이 내 손을 잡아줬을 때도 나였지. 프러포즈하던 날에도 나였고.”“그런데 결혼 3주년 되던 날 아침에 당신 목젖에 손이 닿았을 때, 두 사람의 얼굴이 보였어. 바로 나랑 정우연이었지.”한동안 침묵이 흘렀다.그러더니 한민준이 피식 웃었다.“상상력 참 풍부하네. 요즘 혼자 집에 너무 오래 있어서 그래?”“농담이 아니야. 전부 사실이야.”한민준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너무 피곤한 거 아니야? 병원에 한번 가 보는 게 어때?”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한민준의 손을 붙잡았다.“그럼 내가 확인해 볼게. 지금 나한테 한 번만 만져 보게 해줘. 눈을 감고 한 사람을 떠올려 봐. 그러면 당신 마음속에 누가 있는지 내가 말해 줄게.”순간 한민준이 내 손을 확 빼냈다.동작은 크지 않았지만, 아주 단호했다.“그만해! 정 비서한테 불만 있으면 나한테 직접 말해. 그 사람은 남자친구도 있어. 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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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나는 한민준에게 시간을 내서 산부인과 검진에 함께 가 달라고 했다.한민준은 알겠다고 답장했다.그런데 다음 날 7시, 한민준에게서 메시지가 왔다.[급하게 출장 가게 됐어. 모레 돌아올게. 몸이 불편하면 기사님한테 데려다 달라고 해. 사랑해.]나는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하지만 휴대폰은 꺼져 있었다.회사 프런트 데스크로 전화했더니, 거기 있던 직원이 한민준은 오늘 출장 일정이 없다고 말했다.나는 혼자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갔다.복도 한쪽에서는 남편이 아내의 신발 끈을 묶어 주고 있었고, 반대쪽에서는 남편이 아내를 부축하며 천천히 걷고 있었다.그 사이에서 나는 혼자였다.의사가 프로게스테론 수치가 너무 낮아 유산 위험이 있다며, 보호자가 왔는지 물었다.“제가 직접 서명할게요.”그러자 의사가 나를 한참 바라봤다.“남편분은 어디 계시죠?”“출장 갔어요.”의사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보존 주사를 맞으며 나는 정우연의 SNS를 보게 되었다.바닷가 석양 사진이 아홉 장 올라와 있었다.게시물에는 글이 적혀 있었다.[스트레스 받을 때마다 바다가 보고 싶다고 했는데, 오늘 억지로 끌려왔어요. 잘 챙겨주는 상사가 있어서 참 좋네요.]마지막 사진 오른쪽 아래 구석, 누군가의 손이 살짝 보였다.약지에 끼워진 반지는 내 왼손에 낀 것과 한 쌍이었다.그날 밤 10시, 복통이 시작되었다.나는 혼자 택시를 타고 응급실로 갔고, 간호사가 나를 휠체어에 태워 수술실로 데려갔다.“아이... 유산된 건가요?”“이미 유산됐습니다. 소파술을 받아야 해요. 보호자는 오셨나요?”“제가 직접 서명할게요.”수술이 끝난 건 새벽 3시였다.병원 복도에 앉아 한민준에게 몇 번이고 전화를 걸었지만 계속 꺼져 있었다.결국 메시지를 남길 수밖에 없었다.[나한테 일이 생겼어. 집에 한 번만 와줘.]그리고 다음 날 오후가 되어서야, 한민준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수화기 너머로 파도 소리와 자동차 엔진 소리가 들렸다.[막 비행기에서 내렸어. 무슨 일이야?]나는 몸의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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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서민정에게 전화를 건 건 밤 9시였다.“나 좀 데리러 와.”[지금?]“응.”서민정은 20분 만에 도착했다.현관에 들어서자마자 거실 탁자 위에 펼쳐져 있는 것들을 보고는, 아무것도 묻지 않은 채 내 캐리어를 차에 실어 주었다.차가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갈 때쯤 휴대폰 화면이 밝아졌다.한민준에게서 온 메시지였다.[열이 좀 심해서 우연이랑 같이 병원에서 수액 맞고 있어. 네가 말하려던 건 내일 돌아가서 제대로 이야기하자.]서민정은 한 손으로 핸들을 잡은 채 나를 슬쩍 바라보았다.“어디로 갈 거야?”“일단 네 집으로 가자.”“그 사람은?”“다른 사람 링거 맞는 거 옆에 있어 주고 있대.”서민정이 입술을 꽉 깨물었고, 더 이상 묻지 않았다.나는 차창에 머리를 기댔다.차가운 유리창이 뺨에 닿았다.손은 이미 비어 버린 배 위에 올렸다.‘아가야, 아빠는 네가 왔다는 걸 몰랐던 게 아니란다.’‘그저 다른 일이 더 급하다고 생각한 것뿐이야.’...다음 날 오후, 한민준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집에 없는 거야? 거실 테이블 위에 있는 그 종이, 무슨 뜻이야?]“초음파 검사 결과지야. 당신 아이였어.”수화기 너머가 조용해졌다.[어제 네가 말한 임신...]“이미 없어졌어.”[난 몰랐어. 난 네가 그냥 검사받으러 같이 가 달라는 줄 알았어. 우연이가 정말 열이 심했는데...]“알아.”나는 한민준의 말을 끊었다.“열이 38.5도였다는 것도 알아. 아주 똑똑히 들었으니까. 그런데 내가 임신 6주였다는 말은 못 들었지.”“당신이 돌아오면 이야기하자고 했고, 난 기다렸어. 그런데 내가 기다린 끝에 본 건 당신의 뒷모습이었어.”한민준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어젯밤 당신이 집을 나갈 때, 한 번이라도 뒤돌아봤어?”수화기 너머에는 숨소리만 들렸다.“아니, 한 번도 안 돌아봤어.”나는 그대로 전화를 끊었다.서민정이 부엌에서 고개를 내밀며, 손에는 물 두 잔을 들고 있었다.“뭐래?”“열이 심했대.”서민정은 들고 있던 물컵을 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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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한민준이 출장 간 사이, 나는 내 물건을 전부 빼냈다.미리 집을 구해 두었고, 박스에 짐을 다 싸 두었으며, 이삿짐센터도 예약해 놓았다.그리고 고작 3시간 만에, 6년의 추억을 모조리 비웠다.드레스룸에 있던 내 옷들, 화장대 위에 가득했던 내 화장품이며 잡동사니들까지 정리했고, 침대 옆 탁자에 두었던 읽다 만 책, 물 마시던 컵, 앞머리 고정하던 작은 집게까지 정리했다.그리고 서랍 속에 있던 결혼증명서와 주방에 있던 내가 산 앞치마, 내 그릇, 내 젓가락, 베란다에서 내가 키우던 자스민 화분까지 정리했다.서민정이 도와주러 왔다가 거실 한가운데 서서 천천히 주변을 둘러봤다.“이것들 다 안 가져갈 거야?”“응, 다 버릴래.”“그럼 소파는? 너 그거 고르느라 반년 넘게 걸렸잖아.”나는 그 소파를 바라보았다.“너무 커. 새집에는 안 들어가.”서민정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마지막으로 옷장을 열었을 때, 한민준 쪽은 반듯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내 쪽에는 빈 옷걸이들만 남아 조용히 흔들리고 있었다.나는 서명까지 마친 이혼 합의서를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그 위에는 빨간 실 팔찌 한 개를 올려두었다.한민준이 7살 때 내게 주었던 것으로, 방울은 이미 녹슬어 있었다.그리고 그 옆에 메모 한 장을 남겼다.[너무 무거워서 이제는 차고 있을 수가 없어.]현관에는 집 열쇠를 두고 나왔다.문을 닫기 전에 안을 한 번 바라보았다.소파는 우리 함께 고른 것이었고, 커튼은 내가 직접 바느질한 것이었으며, 식탁 위에는 내가 어제 꽂아 둔 꽃이 놓여 있었다.나는 이 모든 걸 가지고 가지 않았다.서민정이 차 안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차에 올라타자 서민정이 시동을 걸었다.“울었어?”“아니.”서민정이 나를 한 번 바라보았지만, 더 이상 캐묻지는 않았다.새집은 북향이고 그리 넓지 않았다.창문은 열려 있었고, 아래층에는 아이들이 뛰어다니는 소리가 들렸다.나는 짐가방을 내려놓고 텅 빈 거실 한가운데 한동안 서 있었다.창문으로 햇빛이 들어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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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이혼합의서는 한민준의 회사로 발송했다.등기우편으로 보냈고, 나는 등기 번호도 따로 저장해 두었다.하지만 그쪽에서는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서민정이 전화를 걸어 와서 물었는데, 목소리는 나보다 더 다급했다.[아직도 서명 안 했어?]“응.”[재촉은 해봤어?]“안 했어.”[너 하나도 안 급해?]나는 창밖의 플라타너스 나무를 바라보았다.잎이 거의 다 떨어지고 있었다.“이혼합의서에 내용 다 적혀 있잖아. 숙려기간 지나면 자동으로 효력이 생겨. 시간을 끌어 봤자 얼마나 더 끌겠어?”서민정은 잠시 말이 없다가, 목소리를 낮추었다.[현욱한테 들었는데... 그 사람 요즘 상태가 많이 안 좋대. 수염도 제대로 안 깎고, 회의하다가도 멍때리고, 한밤중까지 사무실에 혼자 앉아 있고, 누가 불러도 안 나온대.]“그건 그 사람 일이야.”[정말 하나도 안 불쌍해?]나는 휴대폰을 쥐고 있었고, 손톱이 살을 파고들었다.“나는 유산을 했어. 그 사람이 바닷가에서 딴 사람 사진 찍어 주고 있을 때, 나는 수술대 위에 혼자 누워서 수술 동의서에 내 이름을 서명했어. 그런 사람을 어떻게 마음 아파하라는 거야.”수화기 너머가 완전히 조용해졌다.한참이 지나서야, 서민정은 작게 말했다.[미안해.]“괜찮아.”전화를 끊고 나는 한참 동안 창문 앞에 서 있었다.다리가 저릿저릿해질 무렵에야 몸을 돌려 책상으로 돌아와, 다시 디자인 작업을 이어 갔다.며칠이 지나고 한민준에게서 메시지가 왔다.[우리 만나서 제대로 얘기 좀 하자.]나는 그 문장을 2초 정도 바라보다가, 짧게 답했다.[알았어.]우리는 무역센터 아래에 있는 카페에서 만나기로 했다.나는 일부러 약속 시간보다 10분 늦게 도착했다.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차가운 바람이 옷깃 안으로 파고들었다.나는 자신도 모르게 목을 움츠렸다.한민준은 구석 자리에 앉아 있었고, 앞에는 커피 두 잔이 놓여 있었다.한 잔은 라테, 다른 한 잔은 아메리카노였다.한민준은 살이 많이 빠져서 턱선이 날카로워졌고, 셔츠 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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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한민준은 결국 이혼합의서에 서명했다.대신 조건이 하나 붙었다.한민준이 내게 10억 원을 보내겠다며, 21년 동안의 보상이라고 했다.나는 받지 않았다.그러자 한민준은 또 하나의 부탁을 해왔다.이혼 절차를 석 달만 미뤄 달라는 것이었다.그동안 다시 나를 쫓아볼 기회를 달라고.서민정이 그 말을 전해줄 때 목소리가 묘하게 복잡했다.“자기가 너한테 제대로 된 연애 한 번 못 해 준 게 마음에 걸린대. 7살부터 28살까지 네가 그 사람을 쫓아다녔잖아. 그러니까 이번에는 자기가 널 쫓아가겠대.”“마음대로 하라고 해.”...다음 날, 꽃이 도착했다.붉은 장미였다.카드에는 ‘첫째 날’이라고 적혀 있었다.나는 프런트 직원에게 당장 돌려보내라고 했다.사흘째에도 또 꽃이 왔다.프런트 직원이 난처한 얼굴로 말했다.“돌려보냈는데도 다시 보내왔어요. 어떻게 할까요?”“옆 꽃집에 줘.”다음 날 프런트 직원이 웃으며 말했다.“옆 꽃집 사장님이 전해 달래요. 한민준 씨 덕분에 요즘 장사가 아주 잘된다고.”그 뒤로 한민준은 다른 선물을 보내기 시작했다.가방은 그대로 반송했다.목걸이는 상자에 ‘뒤늦은 결혼 3주년 기념’이라고 적혀 있었지만, 나는 보지도 않고 택배로 돌려보냈다.한민준이 메시지를 보내 물었다.[한 번만 열어 보면 안 될까?]나는 답하지 않았다.그러자 한민준은 직접 찾아오기 시작했다.마침 내가 브랜드 패키지 디자인을 논의하느라 고객을 만나고 있던 때였다.비서가 들어와 리셉션 구역에 한민준이라는 남자분이 기다리고 있다고 알렸다.“기다리라고 해.”고객과의 미팅은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이어졌고, 한민준은 리셉션 구역에 꼬박 3시간을 앉아 있었다.그 사이 비서가 세 번이나 물을 권했지만, 한민준은 한 모금도 마시지 않았다.그저 내 작업실 디자인 북을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넘겨 보고 있었을 뿐이다.고객을 배웅하고 회의실에서 나오자, 한민준이 일어섰다.손에는 여전히 그 디자인 북을 쥐고 있었다.“이 책자에 있는 것들, 난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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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서민정이 말했다.“내 전 직장 동료가 직접 봤대.”한민준은 정우연을 사무실로 불렀다.문은 열려 있었고, 회사 사람들 모두가 보는 앞에서 말했다.“정 비서, 오늘부로 해고야. 퇴직 절차는 오늘 안에 마무리해.”정우연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눈가가 순식간에 붉어지더니 말했다.“왜요?”“본인이 더 잘 알겠지.”정우연은 곧 울기 시작했다. 목소리는 점점 커졌고, 어느새 사무실 전체에 울려 퍼졌다.“그럼 그 바닷가는요? 그 플라타너스 나무는 또 뭐였어요? 그리고 식당은 대체 무슨 의미였어요? 분명 나를 부모님께 데려가겠다고 약속하지 않았어요?”하지만 한민준은 정우연의 말을 잘랐다.“앞으로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마.”서민정은 이야기를 마친 뒤 나를 바라봤다.“진짜 해고했대. 현욱 말로는 그날 회사 전체가 뒤집혔대.”“그래서?”“너 아무렇지도 않아?”“그 사람이 정우연을 해고한 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 그 사람은 내 직원이 아니잖아. 그 사람 직원이잖아.”다음 날 한민준이 작업실로 찾아왔다.한민준은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서류 한 장을 내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해고 통지서였다.위에는 정우연의 서명이 있었고, 회사의 직인도 찍혀 있었다.한민준이 내 앞에 서서 나를 바라봤다.마치 좋은 일을 해놓고 칭찬받기를 기다리는 어린아이처럼 눈빛이 간절했다.“나 정우연 해고했어. 이제 그 사람은 우리 앞에 나타나지 않을 거야.”나는 펜을 내려놓고 고개를 들어 한민준을 보았다.“그래서?”한민준이 준비해 온 말들이 전부 입안에서 막혀 버렸다.“네가 기뻐할 줄 알았어.”“문제는 처음부터 그 사람이 아니었어.”“알아. 문제는 나였어. 내가 잘못한 것도 알아. 고칠게. 네가 어떻게 하라고 하든 다 할게. 휴대폰도 다 보여 줄게. 내 모든 SNS 계정 비밀번호도 다 알려 줄게.”“내가 언제부터 당신 마음속에서 사라졌는지 알아? 당신이 처음 거짓말을 했을 때가 아니었어. 당신이 그 사람 커피엔 시럽을 반만 넣어야 한다는 걸 기억하고, 내가 아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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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1년 후, 나의 첫 개인 디자인 전시회가 열렸다.전시의 이름은 ‘7살’, 어린아이의 시선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작품들이었다.큐레이터는 부드럽지만 힘이 있다고 평했다.잡지사에서 인터뷰를 하러 왔다.기자는 작품 곳곳에 등장하는 손을 잡는 이미지에 어떤 의미가 있느냐고 물었다.“별다른 의미는 없어요. 누군가와 손을 잡을 수 있다는 건 정말 좋은 일이죠. 하지만 잡지 못한다면, 그냥 혼자 걸어가면 되는 거예요.”인터뷰 기사가 나간 뒤, 서민정이 내게 말했다.“한민준이 그 잡지를 사서 침대 머리맡에 두었대.”내가 예전에 자던 자리였다.옷장은 반쪽이 비어 있고, 옷은 전부 다른 쪽에 몰아넣은 채 내가 쓰던 쪽에는 아무것도 두지 않는다고 했다.한민준의 비서는 한민준이 요즘 사무실에서 컴퓨터 화면만 바라보며 멍하니 앉아 있는 시간이 많다고 했다.그 화면에 떠 있는 건 우리 결혼사진이었다.나는 서민정에게 물었다.“너는 그런 걸 어떻게 그렇게 자세히 알아?”“현욱이가 말해 줬지. 친구들이 안달이 났대. 1년 사이에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다고.”“그건 그 사람 일이야.”...11월, 나는 N시로 플라타너스 나무를 보러 갔다.플라타너스 대로에는 낙엽이 온 바닥에 수북이 쌓여 있었고, 밟을 때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다.걷다 보니 저쪽 나무 밑에 누군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회색 코트, 내가 5년 전에 한민준에게 사 줬던 그 코트였다.소맷단은 닳아서 올이 풀리고 실밥이 다 튀어나왔는데도, 한민준은 바꾸지 않고 그대로 입고 있었다.한민준도 나를 보았다.그리고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서더니, 이쪽으로 두 걸음 정도 다가왔다.입이 열리며 나를 부르려는 것 같았다.나는 몸을 돌려 반대 방향으로 걸어갔다.한참을 걸어가다 뒤를 돌아보니, 한민준은 아직도 그 플라타너스 나무 아래에 서 있었다.코트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로 내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나는 고개를 돌려 다시 앞으로 걸었다.전시회 첫째 날, 직원이 내게 말했다.“폐관하고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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