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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作者: 찹쌀떡
한민준은 서재에서 늦은 시간까지 일을 하고 있었다.

밤 11시가 넘어서야 나는 우유 한 잔을 들고 서재로 들어갔다.

문이 제대로 닫혀 있지 않아서, 한민준이 통화하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아주 오랫동안 듣지 못했던 다정한 말투였다.

“응, 먼저 자. 내일 다시 얘기해. 나도 보고 싶어.”

전화를 끊고 고개를 든 한민준이 문 앞에 서 있는 나를 보고는 잠시 멈칫했다.

“왜 아직 안 잤어?”

“부하 직원한테도 그렇게 다정하게 말해?”

“평소랑 똑같이 말한 건데, 괜한 생각하지 마.”

나는 아무 말 없이 몸을 돌려 걸어 나왔다.

곧이어 뒤에서 서재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예전에는 절대 서재 문을 닫지 않던 사람이었다.

20분쯤 기다리자 한민준이 방으로 들어왔고, 내가 아직 깨어 있는 걸 보고는 조금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할 말이 있어. 나한테는 어릴 때부터 특별한 능력이 하나 있어. 누군가를 만지면 그 사람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볼 수 있어.”

한민준이 외투를 벗던 손을 멈췄다.

“7살 때 처음 당신을 만졌을 때, 내가 본 얼굴은 나였어.”

“18살에 당신이 내 손을 잡아줬을 때도 나였지. 프러포즈하던 날에도 나였고.”

“그런데 결혼 3주년 되던 날 아침에 당신 목젖에 손이 닿았을 때, 두 사람의 얼굴이 보였어. 바로 나랑 정우연이었지.”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그러더니 한민준이 피식 웃었다.

“상상력 참 풍부하네. 요즘 혼자 집에 너무 오래 있어서 그래?”

“농담이 아니야. 전부 사실이야.”

한민준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너무 피곤한 거 아니야? 병원에 한번 가 보는 게 어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한민준의 손을 붙잡았다.

“그럼 내가 확인해 볼게. 지금 나한테 한 번만 만져 보게 해줘. 눈을 감고 한 사람을 떠올려 봐. 그러면 당신 마음속에 누가 있는지 내가 말해 줄게.”

순간 한민준이 내 손을 확 빼냈다.

동작은 크지 않았지만, 아주 단호했다.

“그만해! 정 비서한테 불만 있으면 나한테 직접 말해. 그 사람은 남자친구도 있어. 괜한 생각으로 그 사람까지 곤란하게 만들지 마.”

한민준은 외투를 집어 들고 서재를 나가 버렸다.

나는 한참 동안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방금 전까지 한민준의 손을 잡고 있던 내 손은 아직도 그대로 굳어 있었다.

새벽 두 시가 되어서야 한민준이 돌아왔다.

옷에 담배 냄새가 가득 배어 있었다.

나는 눈을 감고 자는 척했다.

한민준이 조심스럽게 누우면서 팔을 뻗어 내 몸을 감싸안았다.

나는 끝까지 눈을 뜨지 않았다.

그러자 단 한 사람의 얼굴만 보였다.

정우연의 얼굴이었다.

그곳에서 내 얼굴은 완전히 사라졌었다.

한민준의 팔이 내 허리를 감싸고 있었고, 숨결이 바로 귓가에 닿았다.

나는 한민준을 21년 동안 알고 지냈다.

그런데 처음으로 한민준의 마음속에서 나를 찾을 수 없었다.

나는 조용히 한민준의 품에서 빠져나왔다.

잠결에 한민준이 중얼거렸다.

“움직이지 마.”

한민준의 숨소리가 고르게 변한 뒤, 몸을 돌려 한민준에게서 등을 보였다.

달빛이 커튼 사이로 새어 들어와 화장대 위를 비추고 있었다.

내 화장대에 무엇이 놓여 있는지 한민준은 한 번도 신경 써 본 적이 없었다.

날이 거의 밝아 올 무렵, 나는 일어나 작은 가방 하나에 짐을 대충 챙겨서 손님방으로 옮겼다.

...

다음 날 아침, 식사를 하던 한민준이 손님방 문 앞에 놓인 내 슬리퍼를 발견했다.

“왜 손님방에서 잤어?”

“어젯밤에 잠이 안 와서. 시끄러울까 봐.”

한민준은 짧게 대답했다.

“그래.”

그리고 다시 고개를 숙여 휴대폰을 바라봤다.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손님방으로 옮긴 지 사흘째 되던 날, 임신 테스트기에 두 줄이 나타났다.

혈액검사를 받고 임신 6주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초음파 사진을 다이어리 사이에 끼워 두고, 빈 여백에 한 줄을 적었다.

[네가 이 세상에 왔을 때, 아빠 마음에는 이미 엄마가 없었단다.]

나는 한민준을 만나러 회사로 갔다.

건물 아래층에 도착했을 때, 마침 한민준이 정우연에게 차 문을 열어 주는 모습이 보였다.

정우연은 고개를 숙인 채 조수석에 올라탔다.

그 자리는 원래 내 자리였다.

한민준이 차에 오르기 전, 정우연 머리 위를 손으로 가려 주는 것도 보였다.

그 행동은 예전에는 오직 나에게만 해 주던 것이었다.

“기사님, 다시 돌아가 주세요.”

가방 속 초음파 검사 결과지가 손에 닿았지만, 나는 차를 세워 달라고 하지 않았다.

그날 밤 한민준이 돌아왔고, 나는 거실에 앉아 한민준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회사에 갔었어.”

한민준은 신발을 갈아 신던 동작을 멈추지 않았다.

“왜 안 들어왔어?”

“들어가서 뭐라고 말해?”

한민준이 나를 한 번 바라보더니, 조금 짜증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또 무슨 일이야?”

“당신이 그 여자한테 차 문 열어 주고, 머리 위 가려 주는 거 다 봤어. 그 행동, 예전엔 나한테만 하던 거잖아.”

한민준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 사람은 내 비서야. 차 문 열어 주는 건 기본적인 매너라고. 너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니었잖아. 예전에는 대범하고 사려 깊었는데.”

“사려 깊다고? 그러니까 당신이 나한테 했던 행동을 똑같이 남한테 해도 내가 신경 쓰면 안 되고, 신경 쓰는 순간 속 좁은 사람이 된다는 뜻이야?”

한민준은 미간을 손으로 문질렀다.

“나 오늘 진짜 피곤해. 싸우고 싶지 않아.”

한민준은 서재로 들어가 문을 닫아 버렸다.

예전 같았으면 이런 일쯤은 내가 한쪽 눈 감고 넘어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그냥 너무 피곤하다는 생각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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