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hat ng Kabanata ng 부군을 버렸더니, 무서운 형님이 나에게 집착한다: Kabanata 1 - Kabanata 10

30 Kabanata

제1화

화원에서 신재형에게 밀려 호수에 빠진 순간, 배지희는 깨달았다.신경남과 삼 년간 이어온 얄팍한 부부의 연도 이제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것을.청심이 물에 흠뻑 젖은 배지희를 힘겹게 호수 밖으로 건져 올렸을 때, 신경남은 호숫가에 서 있었다.그는 신재형을 품에 안은 채 미간을 찌푸리며 엉망이 된 배지희를 불만스럽게 바라보았다.마치 철천지 원수를 대하듯, 굉장히 싸늘하고 혐오가 담긴 눈빛이었다."지희야, 그해 네 언니가 병으로 세상을 떠났을 때 널 후실로 들인 건 배씨 가문과 신씨 가문의 의리를 지키기 위함이 첫째였고, 네 언니의 유언을 받들어 네가 재형이를 잘 돌보길 바라서였다. 그렇게 삼 년 동안 호의호식하게 해주었거늘 은혜도 모르고, 오히려 앙심을 품고 재형이를 해치려 들다니. 죽은 네 언니에게 미안하지도 않으냐. ""정말 실망스럽구나."전후 사정은 묻지도 않고 질책이 쏟아졌다.배지희는 흠뻑 젖은 채로 무표정한 얼굴로 쏟아지는 비난을 듣고만 있었다.가슴속이 차갑게 식었다.지난 삼 년 동안 이런 폭언은 수없이 들어왔다.예전 같았으면 억울한 마음에 어찌 내 말은 믿어주지 않느냐고 호소했을 것이다.하지만 그런 말을 할 때마다 돌아온 것은 신경남의 더욱 차갑고 혐오스러운 시선뿐이었다.그 눈빛은 그를 향한 그녀의 연모를 우습게 만들고 예리한 칼날이 되어 그녀의 가슴을 후벼팠다.매번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그녀는 만신창이가 되었다.점차 배지희는 해명을 포기하고 신경남의 말에 대꾸하지 않는 법을 배웠다.그저 무조건 잘못을 인정하면 그만이었다.잘못을 빌면 처벌이 줄어들 것이라 생각했다.다만, 오늘은 평소와 달랐다.마음속 깊은 곳에서 피로감이 몰려왔다.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힘겹게 홀로 걷다가 한순간에 짐을 내려놓은 기분이었다.한때 무엇보다 소중하다 생각했던 것들이 이제는 아무런 의미도 없게 느껴졌다.배지희는 시선을 바닥에 둔 채로 답했다."부군의 말씀이 다 맞습니다."신경남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하려던 많은 말들이 갑자기 목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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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진씨가 또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백씨 가문의 큰부인을 초대해 차 한잔 나누기로 했다. 그 댁 아가씨도 함께 온다더구나."신경남은 얇은 입술을 굳게 다문 채 침묵했다."그 아이는 너와 어릴 적부터 함께 자란 소꿉친구 아니냐. 그 아이의 아비가 일 처리를 잘못하여 금주로 좌천되지만 않았어도, 네가 배연희같이 병약한 여식과 혼인할 일은 없었을 게다. 쯧, 청렴하고 뼈대 있는 가문이고 당시 네 장인도 앞날이 창창하여 훗날 네게 힘이 될 줄 알았건만. 도움은 고사하고 가문 전체가 화를 입더니, 배연희마저 제 몸 하나 건사하지 못해 재형이만 덩그러니 남겨두고 떠날 줄 누가 알았겠느냐. 그러지 않았다면 배지희 저것을 집안으로 들일 일도 없었을 텐데 말이지."진씨는 지난날의 아쉬움을 토로하며 길게 탄식했다.신경남은 시선을 떨군 채 차를 마셨다.복잡한 표정을 보아하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길이 없었다."백씨 가문은 인맥이 넓어 연줄을 대기도 쉬운 집안이지. 작년에 막대한 은자를 들여 여식 하나를 입궁시키더니, 그 아이가 폐하의 총애를 입으면서 가문을 다시 일으켜 세웠지 않느냐."신경남은 어머니의 잔소리를 더는 듣기 싫은 듯 말을 끊었다."어머니, 그만하십시오."진씨는 슬그머니 아들의 안색을 살피더니 계속해서 말했다."유정이가 널 못 본 지 이 년이나 되었다며 내심 그리워하더구나."한참을 침묵하던 신경남의 차갑던 얼굴이 봄바람에 눈 녹듯 부드럽게 풀렸다.그는 느릿한 어투로 물었다."백씨 일가는 언제쯤 도착합니까."진씨가 활짝 웃으며 답했다."시간을 보아하니 이맘때쯤 도착할 게다. 그 아이가 오면 친누이처럼 다정히 대해주거라. 어차피 남들도 섣불리 입을 놀리진 못할 테니. 혹여나 배지희가 내막을 알고 너와 따지려 든다면 내가 알아서 입을 막을 테니 안심하렴."신경남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앞뜰로 향했다.청심원.난심은 미리 소식을 듣고 일찌감치 대야에 뜨거운 물을 받아두었다.깨끗한 의복과 신발, 버선은 물론 상처에 바를 약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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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곁에 있던 청심이 비명을 지르며 다급히 배지희 앞을 가로막고 무릎을 꿇었다."나리, 고정하십시오!"자신이 내던진 서책이 배지희에게 날아간 줄도 몰랐던 신경남은 그제야 시선을 들었다.서책에 맞아 흘러내린 머리가 배지희의 얼굴 반쪽을 가렸다. 그녀는 싸늘한 눈빛을 하고 무덤덤하게 그 자리에 서 있었다.그런 모습마저도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세상을 떠난 친언니 배연희도 그녀의 미모에는 비할 수 없었다.백옥 같은 피부에 그림처럼 단아한 이목구비는 여전했으나, 평소 그를 좇던 눈망울에는 더 이상 애틋함이 아닌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차갑고 냉랭한 기운이 돌고 있었다. 신경남은 입을 달싹였다.약간의 후회가 마음속에서 피어올랐다.백유정에 대해 해명하려다가 내심 켕기는 구석이 생겨 난생처음 손을 대고 만 것이다.비록 고의는 아니었으나 결국 그녀에게 상처를 입히고 말았다.하지만 그는 사과하고 싶지 않았다.신경남은 음침한 얼굴을 하고는 긴 한숨을 내쉬더니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다 널 위해서 하는 말이다. 지금처럼 속이 좁고 질투나 일삼는 네 모습을 본다면, 나뿐만 아니라 구천에 있는 네 언니조차 실망을 금치 못할 것이다."배지희는 신경남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삼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건만 그는 여전히 변한 것이 없었다.경성 사람들이 입을 모아 칭송하는 우아하고 바른 세가의 공자였다.하지만 기억 속에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녀의 귓가에 다정한 모습을 속삭이던 신경남은 어디에도 없었다.어쩌면 애초부터 그녀 혼자만의 착각이었는지도 모른다.신경남은 그저 원래 이런 사람이고, 그의 다정함과 애정은 처음부터 진심이 아니라 기분 좋을 때 하사하는 오만함이었을지도 모른다.그렇다면 그가 신씨 가문의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가 무엇이겠는가.그는 그저 배지희가 그의 부인으로서 본분을 다하고, 정성을 쏟아 신재형을 훌륭히 키워내기만을 바랐다.그녀의 체면이나 서러움 따위는 애당초 안중에도 없었다.사람이 한 번 편견을 품으면 아무리 애를 써도 소용이 없는 법이다.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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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아니나 다를까 서쪽 별채에 등불이 밝혀졌다.신경남은 얇은 창호지 너머로 비친 가녀린 인영을 보았다.시녀의 부축을 받으며 세수를 하고 긴 머리를 빗어 넘기는 모습이 보였다.그저 창호지에 비친 그림자일 뿐인데도 사내의 마음을 일렁이게 만들 만큼 자태가 고왔다.동태를 살피러 갔던 청서가 돌아와 배지희가 병이 나 의원을 불렀다고 고했다.신경남은 그제야 어제 그녀가 호수에 빠졌고 곧바로 사당으로 불려가 무릎을 꿇고 벌을 받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그 정도 했으면 병이 나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했다.거기다 간밤에는 홧김에 그가 던진 서책에 이마에 상처까지 났다. 마음에도 큰 상처를 받았을 테니 그를 시중들러 오기 싫은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신경남은 본디 심성이 곱고 온순한 여인이니 자신을 너무 깊이 사랑한 나머지 저지른 실수라 여기고 이번 한 번은 눈감아주기로 했다.어차피 벌도 내렸고 혼도 냈으니 앞으로는 신재형을 허투루 대하지는 못할 것이다.백유정의 일에 관해서도 신경남은 배지희가 감히 질투할 처지가 못 된다고 생각했다.그녀는 신씨 가문의 후실로서 분수만 잘 지킨다면 마땅히 누려야 할 대우는 언젠가 다 받게 될 터였다.허나 주제넘는 것을 원한다면 절대 허락하지 않을 것이며 헛된 꿈도 꾸지 못하게 만들 것이다.신경남은 굳은 표정으로 차갑게 말했다."보양식이나 챙겨 보내거라. 당분간 푹 쉬면서 몸이나 잘 추스르라고 전하고."말을 마친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시종들에게 세숫물을 가져오게 한 뒤, 몸단장을 마치고 서재로 향했다.배지희는 청심의 도움을 받아 머리를 빗고 따뜻한 물 반 그릇을 비운 뒤 다시 침상에 누웠다.북정원에서 사람이 와서는 병이 다 나을 때까지 며칠 푹 쉬고, 다 나은 뒤에 다시 이야기하자는 짤막한 전언을 남겼다.심부름을 온 자는 시어머니 진씨의 수족인 박씨 어멈이었다.어멈은 배지희의 안색을 찬찬히 뜯어보더니 불쑥 말을 꺼냈다."이틀 뒤가 돌아가신 마님의 생신입니다. 부인께서는 작은 마님더러 칠 일 동안 사당에서 채식을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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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박씨 어멈은 배지희가 고집스럽게 나오자 분노가 치밀어 얼굴이 퍼렇게 질렸다."작은 마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이니 훗날 후회나 하지 마십시오. 재형 도련님이 부인 슬하로 들어가시면, 작은 마님께서 무릎을 꿇고 눈물로 애원하신다 해도 절대 다시 내어주지 않으실 겁니다."박씨 어멈은 음침한 얼굴을 하고 가버렸다.청심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작은 마님, 박씨 어멈은 틀림없이 부인께 고자질을 할 텐데요. 그리되면 나리께서 또 성을 내실 겁니다."배지희는 열이 올라 시야가 흐릿했다.그녀는 나직하게 중얼거렸다."걱정할 것 없다. 나는……."어차피 이 집을 떠날 생각이었으니 아무래도 상관없었다.말을 다 맺기도 전에 그녀는 까무러치듯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다시 눈을 떴을 때는 사방이 어두웠고, 탁자 위에 놓인 작은 촛불 하나만이 희미한 황색 빛을 내고 있었다.한숨 푹 자고 나니 열이 꽤 내려 몸이 한결 개운해졌다.배지희는 시녀를 불렀다.그녀가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먹은 것을 아는 청심이 미지근한 미음 한 그릇과 짠지 한 접시를 내왔다. 배지희는 조용히 미음을 한술 떴다. 평생 맛본 음식 중 가장 달게 느껴져서 그 뒤로는 재빨리 수저를 놀렸다.청심은 주인의 기색이 한결 나아진 것을 보고 황급히 탕약을 들고 들어왔다.방 안의 시종들이 부산하게 움직이자 비로소 사람 사는 온기가 돌았다.그런데 뜻밖에도 밤중이 되어 신경남이 신재형을 안고 찾아왔다.그는 문을 열자마자 훅 끼치는 짙은 탕약 냄새에 발길을 돌리려 했다. 하지만 낮에 모친이 했던 말이 떠올라 아이를 안은 채 곧장 방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자리에 앉은 그는 신재형을 품에서 내려놓지 않았다. 난심과 유모가 다가가 아이를 건네받으려 하자, 그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들을 쏘아보았다. 시종들은 얼음장 같은 시선에 흠칫 놀라 슬그머니 물러났다.난심은 밖으로 나가며 걱정스러운 눈으로 배지희를 한 번 돌아보았다.방 안의 공기가 순식간에 차갑게 가라앉았다. 시중을 들던 청심은 신경남의 굳은 표정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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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배지희는 옷자락을 휘날리며 밤바람 속으로 멀어지는 신경남의 뒷모습을 보고 있다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등줄기를 타고 흐른 식은땀이 옷을 흠뻑 적셨다.방금 전 신경남을 마주하고 그 말을 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용기와 기력을 쥐어짰는지는 아무도 모를 것이다.가장 하고 싶었고 중요한 말을 꺼냈으니, 신경남이 믿든 안 믿든 첫 고비는 넘긴 셈이었다. 다만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는 여전히 막막했다."어머니."방에 남겨진 신재형이 그녀를 불렀다. 아이는 눈에 눈물을 가득 머금은 채 평소에 자신에게 늘 다정하게 대해주던 계모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그는 방금 전 아버지와 계모가 크게 다투었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구체적으로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오늘 낮에 자신이 한 잘못 때문일 거라 짐작했다.하지만 예전에도 이런 일은 종종 있었다.아버지가 계모를 호되게 꾸짖으면, 그녀는 순순히 잘못을 인정하고 자신을 더욱 정성껏 돌봐주었다. 때로는 눈시울을 붉히며 서글픈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기도 했다.그럴 때마다 신재형도 작은 죄책감을 느꼈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어차피 그녀는 마음씨 고약한 계모이니 그래도 된다고 굳게 믿었다.어머니의 동생이라는 것을 핑계로 자신에게서 어머니의 기억을 지우고 그 자리를 차지하려 한다고 생각했다.아이는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를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고 수없이 다짐했다.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신재형은 입을 삐죽거리며 크게 울기 시작했다."배 아파, 재형이 배 아파요……."아이는 울며불며 배지희에게 안아달라고 두 팔을 뻗었다.멍하니 있던 배지희는 무의식중에 아이를 안아주려 팔을 내밀었다.그 순간 그녀는 통통한 아이의 얼굴에 스치는 묘한 웃음을 보았다. 배지희는 섬뜩함을 느끼고 멈칫 동작을 멈추었다.바로 그때였다.짝!신재형의 작은 손이 배지희의 손등을 매섭게 내리쳤다.하얀 손목 위에 순식간에 붉은 자국이 생겼다.청심이 놀라서 신재형을 안아 들었다."도련님, 이게 무슨 짓입니까. 도련님 때문에 작은 마님께서 오늘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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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신경운은 다짜고짜 따져 물었다.배지희는 서두르지 않고 고개를 들어 그녀를 보았다.신경운은 신경남과 동복 남매였다. 생김새도 제법 닮았고, 사람을 훈계하는 태도와 오만함은 언뜻 보아도 신경남과 판박이였다.마치 신경남이 직접 와서 꾸짖는 것처럼 어투마저 똑같았다.신경운은 배지희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차갑게 비웃었다."재형이를 키운 게 무슨 대단한 공이라도 되는 줄 알고 그리 방자하게 구는 모양인데, 단단히 착각했어. 오라버니도 널 좋아하지 않고, 어머니도 널 마땅찮게 여기셔. 그분들 마음속에 네 자리는 죽은 형님 발끝에도 못 미친다는 걸 알아야지. 내가 너라면 말도 안 되는 헛된 기대는 고이 접어두고, 얌전히 재형이나 키우면서 어떻게든 우리 오라버니 마음에 들려고 노력을 했을 텐데."그녀는 배지희가 눈을 내리깐 채 자신을 바라보지도 않자 저도 모르게 언성을 높였다."뭐, 내 비위를 잘 맞춰준다면, 어머니와 오라버니 마음을 돌릴 묘수 몇 가지쯤은 귀띔해 줄 수도 있어. 내가 원하는 건…….""아가씨께서 신경 쓰실 일이 아닙니다."배지희는 맑고 서늘한 눈빛으로 신경운을 바라보며 말을 끊었다."제가 아무리 어리석어도 시집도 안 간 처자에게 부부간의 일까지 조언받을 이유는 없습니다. 아가씨는 곧 성년례를 치를 나이이니, 그보다는 장차 도움이 될 양반가 귀녀로서의 예절이나 익히시는 게 어떨는지요."신경운은 하려던 말이 목구멍에 턱 막히고 수치심으로 하얗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그녀는 버럭 화를 내며 호통쳤다."배지희, 너 정말 은혜를 모르는구나. 널 위해 넌지시 가르침이라도 주려고 했거늘, 감히 호의를 무시해? 내가 바보지, 너 같은 것한테 무슨 말을 하겠어. 어차피 네가 방자하게 굴수록 제 무덤만 파는 꼴이니까. 너 아직 모르지? 우리 오라버니께서 마음속에 품은 여인은 어릴 적부터 함께 자란 유정 언니뿐이라는 걸. 어제 유정 언니가 우리 집에 왔었어. 알다시피 우리 오라버니는 여인들과 어울리는 성미가 아니잖아. 그런데 어제는 웬일로 오후 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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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배지희는 서늘한 얼굴로 꼿꼿이 서서 시어머니의 비아냥을 듣고만 있었다.진씨는 틈만 나면 신재형의 친모가 일찍 세상을 떠난 일을 들먹이며 그녀를 옭아맸다. 예전 같았으면 그 말만 들어도 눈물이 나서 당장 무릎을 꿇고 사죄했을 것이다.신재형은 언니가 이 세상에 남긴 유일한 혈육이었다. 진씨가 죽은 배연희를 들먹이며 그녀를 꾸짖을 때마다 그녀의 마음 역시 칼로 저미듯 아팠다.하지만 이제 헛된 꿈을 버리기로 한 그녀에게, 진씨와 신경운이 주거니 받거니 그녀를 들으라고 내뱉는 말들은 그저 서글프고 황당하게 들릴 뿐이었다.한때 그녀와 언니 배연희는 경성 사람들에게 학식과 미모를 겸비한 일등 며느릿감이라며 칭송을 받았다. 그런 두 자매가 나란히 신씨 가문이라는 심연에 빠져, 언니는 병마에 시달리다 죽고 동생도 점점 피가 말라가고 있었다.배연희야 신경남과 부부의 정은 있었다고 쳐도, 그녀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이 감옥에서 버텨온 것인지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었다.지난 삼 년 동안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온 마음을 다해 헌신했건만, 돌아온 것은 경멸하고 쥐고 흔들려는 냉대뿐이었다.진씨와 신경운이 한참 동안 장단을 맞추며 떠들어댔지만, 배지희는 목석처럼 서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진씨는 왈칵 치밀어 오르는 화를 억누르며 눈을 내리깔았다."됐다. 제 속으로 낳은 자식이 아니니 애당초 믿을 수가 없지. 오늘이 지나면 불당에 가 칠 일간 불공을 드리거라."배지희는 알겠다고 대답한 뒤 가볍게 인사를 올리고 자리를 떴다.북정원을 나선 배지희는 마침 밖에서 돌아오던 신경남과 마주쳤다.그는 화려한 옷차림의 앳된 얼굴을 한 처자와 나란히 걷고 있었다. 신경남은 푸른 장포를 입고 머리에는 흑옥관을 쓴 단정한 차림이었다.두 사람이 천천히 걸음을 옮겨 정원을 지날 때, 때마침 이른 봄바람에 해당화 가지가 바람에 흔들리며 밑으로 늘어졌다. 신경남이 다정하게 손을 뻗어 소녀를 위해 가지를 치워주었다. 훤칠하고 수려한 사내는 마치 소녀를 품에 안은 듯 다정한 모습이었다.배지희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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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백유정은 유독 후실이라는 단어에 힘을 주어 말했다.그 말을 들은 배지희는 미간을 찌푸렸다.아니나 다를까, 신경남은 혐오스럽다는 얼굴로 차갑게 말했다."그래, 네가 재형이의 친어미도 아니니 진심일 리가 없지. 당연히 거두어 키우기 싫을 테고."배지희의 시선은 빗물에 젖은 회랑 한구석의 난초에 머물렀다.주변에 잡초가 무성한 가운데, 거친 모래와 자갈밭에 간신히 뿌리를 내린 채 홀로 자란 난초였다. 아무도 돌봐주지 않고 아껴주는 이도 없었다.신경남이 배지희를 대하는 태도가 꼭 그러했다. 그녀를 집안으로 들인 후 단 한 번도 편을 들거나 감싸준 적이 없었다. 가문의 어른들 앞에서도, 남들 앞에서도 늘 마찬가지였다.그가 그녀의 체면을 깎아내린 것이 하루 이틀 일은 아니었지만, 오늘 백유정 앞에서 이토록 모질게 구는 것은 그녀의 가장 아픈 상처를 건드렸다.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지만 하소연할 곳도 없었다.백유정이 방긋 웃으며 말했다."경남 오라버니, 오라버니가 머무시는 청심원을 구경시켜 주신다 하셨잖아요. 어서 가요."백유정은 아주 자연스럽게 신경남의 손을 잡고 배지희를 스쳐 지나갔다.신경남은 힐끗 배지희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배지희의 시선은 그에게 머물지 않고 허공을 향해 있었다.그는 더 깊이 생각하기도 귀찮다는 듯, 앞장서서 걸었다. 두 사람의 뒷모습이 멀어지자, 분노로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청심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작은 마님, 보셨습니까? 백 소저는 부끄러움도 모르고 대낮부터 나리와 대놓고 손을 잡고 걷다니요. 체통이 없군요. 저건 대놓고 마님을 무시하는 처사 아닙니까."배지희는 창백한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고개를 저었다."상관없다."같은 여인으로서, 배지희는 백유정이 처음 마주쳤을 때부터 교묘하게 숨기고 있던 질투심을 단번에 알아챘다. 보란 듯이 신경남의 손을 잡은 것은 은밀한 도발이자 우월감의 과시였다.하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배지희를 비참하게 만든 것은 백유정의 무례를 허용하는 신경남의 태도였다. 그런 다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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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배지희는 그림을 힐끗 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시종에게 그림을 가져오라 지시했다.백유정은 그림을 받아들고 감탄을 늘어놓았다.신경남의 얼굴도 조금 누그러졌다. 이 한매도는 배지희가 시집올 때 가져온 혼수 중 하나였다. 배씨 가문은 대대로 학문을 숭상하는 가문이었고, 부친 배진수가 화를 입기 전까지만 해도 이름난 문인들과 교류가 잦았다.두 자매 역시 그런 가풍 덕분에 유명한 학자들을 스승으로 모실 수 있었다. 남산 선생은 자매에게 그림을 가르쳐준 스승이었다.배지희는 유독 매화를 사랑했고, 그림 솜씨 또한 뛰어나 언니 배연희보다 서화 쪽으로 두각을 드러냈다.생각이 이에 미치자 신경남의 시선은 자연스레 배지희에게로 향했다. 문득 그녀가 책상 앞에 앉아 여유롭게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본 지 오래되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그때 별안간 백유정이 짧은 비명을 질렀다.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찻잔이 바닥에 나뒹굴었고, 쏟아진 찻물이 한매도를 흥건히 적셨다.천금을 주고도 구하기 힘든 명화가 순식간에 엉망이 되었다."유정아, 괜찮으냐."신경남은 다급히 백유정을 품에 안고 그녀의 손가락을 조심스레 살폈다. 찻물에 덴 듯 하얗고 고운 손끝이 살짝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그는 매서운 눈초리로 배지희를 쏘아보았다."무슨 짓이냐. 어찌 유정이에게 차를 쏟는단 말이냐!"백유정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신경남의 품에 파고들었다."경남 오라버니, 다 제 탓입니다. 제가 찻잔을 놓쳐 언니가 아끼시는 명화를 망치고 말았어요. 지희 언니, 설마 저를 원망하시는 건 아니지요?"그녀는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배지희를 애처롭게 바라보았다.배지희는 고개를 들어 그녀와 눈을 맞췄다.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동자 속에 숨겨진 웃음기는 신재형의 모습과 소름 끼치도록 똑같았다.가증스러운 미소 뒤에 감춰진 은밀한 악의였다. 겉모습은 이리도 청초하고 고운 처자이건만, 속은 참으로 추악해 보였다.신경남은 서럽게 우는 백유정을 다정하게 위로했다."네 잘못이 아니다. 고작 그림 한 폭일 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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