บททั้งหมดของ 부군을 버렸더니, 무서운 형님이 나에게 집착한다: บทที่ 11 - บทที่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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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배지희는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물었다."어째서입니까."신경남이 미간을 찌푸렸다."어째서라니? 유정이가 남산 선생의 그림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느냐. 마침 네게 몇 폭 더 있으니 사죄의 선물로 내어주면 딱 맞을 거라 생각했다. 다 널 위해서 하는 말이야."배지희는 손수건을 쥔 손끝을 매만지며 단호하게 말했다."부군께서 저를 그런 식으로 생각해 주실 필요는 없습니다."신경남은 흠칫 놀라 되물었다."방금 뭐라 했느냐."배지희는 고개를 돌린 채, 아무리 문질러도 지워지지 않는 얼룩을 천천히 닦아내며 담담히 대꾸했다."스승님의 그림을 백 소저에게 사죄의 선물로 내어주는 일은 없을 거라는 뜻입니다."신경남의 눈빛에 실망감이 번졌다."배지희, 너… 어찌하여 죽은 네 언니처럼 사리에 밝고 너그럽게 처신하지 못하는 게냐.""예, 못합니다."배지희는 그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한매도의 얼룩을 닦으며 말했다."부군을 실망시켜 송구합니다만, 저는 언니가 아닙니다. 언니처럼 굴욕을 참으며 무거운 짐을 짊어질 생각도 없고, 백 소저처럼 가증스럽게 굴고 싶은 마음은 더더욱 없습니다."안타깝게도 한번 얼룩진 그림은 아무리 공들여 닦고 손을 본들 예전의 모습을 되찾을 수 없을 것이다.그녀는 마침내 한매도를 닦던 손을 멈추었다. 그러고는 흑백이 뚜렷한 맑은 눈으로 신경남을 응시하며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부군, 어제 제가 드린 말씀을 진지하게 고민해 보시고 속히 휴서를 써주십시오. 그리해주신다면 깊이 감사하겠습니다."신경남의 얼굴이 먹구름이 낀 듯 어둡게 굳었다.그가 한참 만에 서늘한 냉소를 흘렸다."배지희, 진심으로 이혼을 바라는 것이냐."배지희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렇습니다. 제 뜻은 확고합니다. 재형이도 이제 제법 자랐고 백 소저께서도 경성으로 돌아오셨지요. 부군께서는 장차 탄탄대로를 걸으실 텐데, 제가 짐이 될 수는 없지 않습니까……."쨍그랑!신경남이 소매를 거칠게 뿌리치자 탁자 위에 있던 찻잔이 바닥으로 굴러떨어지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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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그 무렵, 북정원에서 온 시녀가 청심원에 당도했다."작은 마님, 부인께서 기혈단을 거의 다 드셨다 합니다. 작은 마님더러 한 상자 더 준비해 오라 분부하셨습니다."배지희는 예전처럼 순순히 명을 받드는 대신, 청심을 시켜 단약의 처방전을 가져오게 했다."난 불당에서 칠 일 동안 불공을 드려야 해서 짬이 나지 않는구나. 이 처방전을 부인께 가져다드리거라. 부관에게 일러 의관에서 직접 지어 오라 하시는 편이 훨씬 수월할 것이다."영문을 모르는 시녀는 처방전을 받아 들고 돌아갔다.시녀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청심은 안도의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진작에 거절하셨어야 할 심부름이었습니다. 처방전에 적힌 약재들은 하나같이 구하기 힘든 것들인데, 제세당 당주께서 작은 마님의 체면을 보아 내어주지 않았다면 진작에 동이 났을 약재들입니다. 부인께서는 늘 말 한마디로 사람을 부려먹기 바쁘시지, 그 약을 구하느라 작은 마님께서 얼마나 고생하셨는지는 안중에도 없으셨지요. 이번 기회에 약 구하기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똑똑히 아셔야 합니다."배지희는 하늘을 힐끗 보더니 청심에게 저녁 식사를 준비하라고 일렀다.식사를 마치고 소화도 시킬 겸 뜰을 가볍게 산책하다 돌아온 배지희는 청심에게 자신의 물건들을 모조리 서쪽 별채로 옮기라 명했다.청심이 놀라 물었다."작은 마님, 나리와 각방을 쓰시려는 겁니까."배지희는 묵묵히 청심을 바라보았다. 청심은 더 이상 캐묻지 못하고 사람들을 불러 짐을 챙겨 별채로 옮기기 시작했다.어차피 신경남은 청심원에 발걸음을 하는 일이 드물었다. 공무로 바쁘기도 했거니와, 청심원이 너무 썰렁하고 사람 사는 온기가 없다는 핑계였다. 그는 대부분 시간을 동편전의 서재에 머물곤 했다.배지희 역시 널찍한 안방을 홀로 쓰는 것이 무척이나 쓸쓸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갓 시집왔을 무렵에는 병치레가 잦은 신재형을 보살펴야 했다. 아이가 아파 밤새 울고 보챌 때도 신경남은 낮에 잠깐 얼굴만 비출 뿐, 밤에는 으레 서재로 돌아가 잠을 청했다.그래서 배지희는 서쪽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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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심부름을 온 시녀는 배지희가 건너갈 기미를 보이지 않자 진땀을 흘리며 방금 전의 말실수를 거듭 사죄했다.배지희는 고개를 저었다."장 의원은 소아병을 다스리는 데 뛰어난 명의다. 그분을 모셨으니 틀림없이 약을 먹자마자 나을 것이다. 내가 가든 안 가든 다를 바 없다."시녀가 엉겁결에 불쑥 내뱉었다."다를 바 없다니요. 평소 재형 도련님이 앓아누우실 때면 늘 작은 마님께서 곁을 지키셨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돌본답시고 나서봤자 상황만 악화시키기 일쑤였고, 웬만한 사람들은 도련님을 제대로 달래지도 못했습니다."청심은 비꼬듯 쏘아붙였다."이제야 작은 마님만이 도련님을 제대로 보살필 수 있다는 걸 너희들도 인정하는 모양이구나. 나는 여태껏 너희들이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사람인 줄 알았지."시녀는 얼굴이 붉어져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배지희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어서 가보거라. 여기서 시간을 허비할수록 재형이만 더 고통스러울 뿐이다."시녀는 더 이상 지체하지 못하고 서둘러 연고를 챙겨 북정원으로 향했다.북정원은 대낮처럼 훤하게 불을 밝히고 있었는데 안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안방에서는 신재형의 자지러지는 울음소리와 함께, 진씨와 유모가 번갈아 가며 아이를 달래는 소리가 어지럽게 섞여 들려왔다. 하지만 달래면 달랠수록 아이는 더욱 악을 쓰며 울어댔고, 이내 격하게 토하는 소리까지 이어졌다.몇 번의 구토 끝에 아이의 울음소리는 점차 기운을 잃어갔다.진씨는 현기증을 느끼며 시녀의 부축을 받아 안방을 나와 평상에 주저앉았다.그러고는 시녀에게 다짜고짜 호통을 쳤다."배지희는 왜 아직도 오지 않은 게냐. 재형이가 이토록 위급한데 코빼기조차 비치지 않는단 말이냐.""오셨습니다, 오셨어요."마침 박씨 어멈이 심부름을 갔던 시녀를 데리고 들어왔다.진씨의 눈이 반짝였으나, 배지희는 오지 않고 연고만 보냈다는 시녀의 보고를 듣자마자 가슴이 거칠게 오르내렸다."뭐, 뭣이라? 감히 오지 않겠다고 했단 말이냐."진씨는 시녀가 내민 약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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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진씨는 체면도 잊은 채 신경남을 향해 쉴 새 없이 원망을 쏟아냈다.신경남이 당황하며 말했다."어머니, 그런 뜻이 아니었습니다."진씨는 가슴을 부여잡고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됐다. 이 모든 게 내 업보다. 너와 네 처 사이가 틀어지니 결국 내가 이 꼴을 당하는구나.""어서 가서 배지희를 달래 데려오너라. 오늘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그 애를 데려와야 한다."신경남이 미간을 찌푸렸다.침상에 누운 신재형은 앓는 소리를 내며 나지막이 흐느꼈다."어머니, 어머니 안아주세요……."신경남은 허리를 숙여 아이를 안아 올리려 했다.순간 신재형이 자지러지게 울며 팔다리를 사방으로 마구 휘둘렀다."싫어요, 아버지는 싫어요. 어머니 데려와요. 으앙……."아이가 어찌나 발버둥 치며 걷어찼는지, 신경남은 가슴과 배에 묵직한 통증을 느꼈다. 난생처음 겪어보는 아이의 난동에 그는 하마터면 아이를 바닥에 떨어뜨릴 뻔했다.유모가 황급히 달려와 신재형의 팔다리를 꽉 붙잡고서야 신경남은 간신히 뒤로 몸을 뺄 수 있었다.신경남은 이토록 체면을 구긴 적이 없었다. 안방을 나서는 그의 표정은 싸늘하게 굳어 있었다.그는 아이가 아플 때 이렇게까지 속을 썩인다는 것을 미처 몰랐다. 평소 배지희가 곁을 지켰을 때는 그 여린 몸으로 난동 중인 아이를 달래 약을 먹였다니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진씨는 아들의 모습을 보고 내심 속이 시원하면서도 이내 안쓰러운 기색을 보였다."어서 지희를 데려오라니까. 지금은 네가 굽혀야 할 때다. 이번 한 번만 꾹 참고 네가 먼저 사과하며 달래주거라……."신경남은 여전히 망설였다."어머니, 그건……."진씨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그 애가 어찌 재형이를 외면하겠느냐. 그저 몇 년간 아이 병수발을 드느라 심신이 지친 데다, 네가 다정하게 대해주지 않으니 서운해서 투정을 부리는 게지.""네가 먼저 다가가 다정한 말 몇 마디만 건네면 다시 예전처럼 너에게 순종할 것이다."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밖에서 시종들이 장 의원을 모셔 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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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장 의원은 마치 보물이라도 다루듯 조심스레 연고의 향을 다시 한번 깊이 들이마시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이 연고를 조제하신 분의 정성과 공력이 실로 대단합니다. 제가 미처 생각지 못한 귀한 약재들이 여러 가지 배합되어 있군요. 필시 수십 년간 환자들을 치료해 온 명의의 솜씨가 분명합니다."진씨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신경남을 쳐다보았다."어디서 이런 영약을 구해다 지희에게 준 것이냐."신경남은 고개를 저었다."제가 준 것이 아닙니다."그 사이 장 의원은 이미 시녀들을 시켜 배지희가 일러준 방식대로 신재형의 배를 부드럽게 만져주도록 지시했다.장 의원이 설명했다."어린아이가 쓴 탕약을 거부하느라 발버둥치면 칠수록, 꼬인 장이 더욱 틀어져 극심한 복통을 유발합니다. 허나 이렇게 겉에 바르는 약이 있으면 굳이 쓴 약을 억지로 삼킬 필요가 없지요. 약효가 뛰어나니 금세 효험을 볼 겁니다."과연 얼마 지나지 않아 신재형은 울음과 구토를 멈추었다.또 한참 지나자 유모가 기쁜 얼굴로 달려와 신재형이 평온히 잠들었다고 고했다.진씨는 그제야 가슴을 쓸어내리며 연신 부처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장 의원이 당부했다."이미 훌륭한 약을 갖고 계시니, 내일 아침에 한 번, 잠들기 전 한 번 덧발라 주십시오. 사흘째 되는 날 비위를 다스리는 탕약을 먹이시면 말끔히 나을 것입니다."장 의원은 말을 마치고 탕약의 처방전을 쓰기 시작했다.신경남은 시종들에게 진료비와 함께 두둑한 사례품을 준비시켰다.하지만 장 의원은 고개를 저으며 사양했다."진료비면 족합니다. 사례품은 거두시지요. 아이의 병을 치료한 것은 제 처방이 아니라 저 귀한 약 덕분이니까요."장 의원은 해야 할 일을 마친 후 정중히 작별 인사를 고했다.신경남이 직접 그를 대문 밖까지 배웅했다.북정원으로 돌아온 신경남은 진씨가 약병을 손에 쥔 채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는 모습을 보았다.신경남이 다가가 말했다."어머니, 의원은 무사히 배웅했습니다. 당분간 재형이를 돌보시느라 어머니께서 심려가 크시겠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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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제세당 당주는 배지희와 꽤 막역한 사이였다.배지희는 어릴 적부터 의서를 즐겨 읽었다. 종종 청심을 보내 처방전대로 약을 지어 오게 해서 약효를 살피고는 했다. 일이 반복되자 제세당 당주도 점차 의아함을 느꼈다. 그녀가 직접 쓴 처방에는 구하기 힘든 약재가 많았다.어떤 처방은 사라진지 오래된 고서의 처방에서 약재 몇 개만 영리하게 바꾼 것이었다. 제세당의 노의원이 그 처방을 보고는 약재를 바꾼 솜씨가 대단히 기발하다며 극찬했다.어느 날 배지희는 제세당에 약을 사러 갔다가, 당주의 주선으로 한 신의를 만나게 되었다. 재능이 뛰어났던 배지희는 신의 밑에서 일 년 반을 배운 끝에 발을 치고 홀로 진맥을 볼 수 있는 경지에 올랐다.그녀가 진료한 환자들은 약을 먹자마자 병이 나았고 후유증도 없었다. 쓱 훑어보기만 해도 단번에 병증을 짚어내고 알맞은 처방을 내렸다.그녀는 돈이 아쉬울 게 없었지만, 신의는 반드시 진료비를 받아야 부질없는 인과를 피할 수 있다고 엄히 당부했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여겨 약값에 보탤 요량으로 푼돈만 받았다.이후 아버지가 화를 입어 가문은 재산의 태반을 몰수당했다. 혼인 후 시어머니는 사사건건 그녀를 구박했고 신경남은 무심했다. 후실로 들어온 터라 지참금도 초라했다. 그래서 배지희는 가끔 처방전과 단약 제조법을 제세당 당주에게 팔아 은자를 벌었다.그 의술이 어느새 험난한 시댁에서 버틸 수 있는 든든한 밑천이 되었다.가문에 시집온 뒤, 그녀는 신재형의 허약한 몸을 다스리는 한편 시어머니 진씨의 고질병도 남몰래 치료해 주었다. 식구들이 의심할까 염려하여 자신이 의술을 안다는 사실은 입 밖에도 꺼내지 않았다.배지희는 창가 평상에 기대앉았다. 고운 얼굴에 옅은 피로감이 서려 있었다.방 안에 다른 사람이 없으니 몸을 편안하게 뉘었다. 유려하게 뻗은 가녀린 곡선이 허리에서 깊숙이 파고들었다.짐 정리를 마친 청심이 머뭇거리다 물었다."정말 불당으로 가실 겁니까?"불당의 생활이 두려운 것은 아니었다. 시집온 뒤로 그들 주종이 함께 겪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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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평소 신경남은 어디를 가든 배지희에게 행선지를 일러준 적이 없었다. 기분이 동해 보름씩 훌쩍 유람을 다녀와도 그녀는 저택에서 가장 늦게 그 사실을 전해 듣곤 했다.배지희가 가만히 있자, 분통이 터진 청심이 쏘아붙였다."참으로 별일이군요. 안 들어오시면 안 들어오시는 거지, 왜 굳이 알리러 오셨답니까. 작은 마님께서도 며칠간 불당에 가 불공을 드리셔야 한다는 걸 모르신답니까? 어차피 작은 마님께서도 청심원에 안 계실 텐데요."청서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배지희가 다시 물었다."부군께서 달리 남기신 말씀은 없느냐."청서는 곤란한 얼굴로 우물쭈물하며 없다고 둘러댔다.배지희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청심에게 청심원 창고 열쇠를 가져와 청서에게 건네라 명했다.청서는 깜짝 놀랐다. 오늘 그가 이곳에 온 목적은 창고 열쇠가 아니었다. 밤새 기다려도 배지희가 신재형의 안부를 묻지 않자, 안달이 난 신경남이 거듭 이유를 캐물으라며 그를 닦달했다.어쩔 수 없이 일정을 보고한다는 핑계를 대고 그녀의 의중을 살피러 온 참이었다.배지희는 차분하게 설명했다."청심원 창고 열쇠다. 부군께 가서 전하거라. 귀중품과 재물은 모두 안에 있다고. 장부는 이번 달 내역을 아직 정리하지 못했으니 끝나는 대로 넘기겠다고 전하거라."청서가 참지 못하고 다급히 물었다."작은 마님, 갑자기 이러시는 연유가 무엇입니까."창고 열쇠에 장부까지 넘긴다는 것은 심상치 않은 일이었다. 설마 나리와 이혼이라도 하겠다는 뜻일까?청서는 감히 그 이상 불길한 상상을 이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어쩐지 지난 이틀간 나리의 기색이 초조해 보였고, 난생처음 작은 마님의 동향을 캐묻더니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청서는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나리를 깊이 연모하고 재형 도련님을 살뜰히 보살피는 분이 이혼을 입에 올리실 리 없었다.배지희는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늘 봄바람처럼 다정했던 눈빛은 온데간데없고, 마주 보기조차 버거울 만큼 차갑고 서늘한 기운만이 감돌았다.청서는 황급히 시선을 떨구고 감히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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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화

청심이 울분을 토했다."사람을 업신여겨도 유분수지, 어찌 이렇게 대놓고 찾아와 억지를 부립니까. 그 연고를 만드시느라 귀한 약재를 쏟아붓고 몇 달을 꼬박 고생하셨는데. 내다 팔면 족히 백 냥은 받을 텐데요!""소용없다면서 왜 돌려주지는 않는답니까. 남의 귀한 물건을 넙죽 받아 쓰면서 입으로는 무슨 쓰레기 취급을 하다니요."배지희는 손을 저어 청심의 말을 끊었다."고작 연고 한 통일 뿐이다. 정 필요하면 다시 만들면 될 일이지."그녀는 책상 서랍에서 미리 작성해 둔 이혼서를 꺼내 들었다. 맑은 눈동자에는 더 이상 일말의 애틋함이나 미련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점심 식사가 끝난 뒤 틈을 보아 이 문서를 부군께 직접 전하거라."청심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을 느끼며 조심스레 문서를 받아 들었다.배지희는 시어머니 진씨에게 문안 인사를 올리러 북정원으로 향했다.오늘은 웬일로 기다릴 필요가 없이 곧장 안방으로 안내되었다.안방에는 병문안을 온 방계의 부인들과 친척들이 모여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은 배지희가 들어오자 힐끗 쳐다보기만 하고 다시 고개를 돌려 자기들끼리 수다를 떨기 바빴다.아무도 그녀에게 먼저 알은체하거나, 호수에 빠졌는데 몸은 괜찮은지 묻지 않았다. 배지희는 투명 인간 취급을 받으며 어멈의 안내에 따라 조용히 가장 구석진 자리에 가서 앉았다.부인들의 대화 주제는 온통 본가의 대소사였다.본가의 장남 신주헌이 최근 지방에서 황제의 밀명을 훌륭히 수행하여 막대한 하사품을 받았고, 황제가 이례적으로 후작의 작위까지 하사할 예정이라고 했다. 이 나라에서 후작이란 실로 막강한 권세와 실권을 거머쥔 작위였다.관직을 잘 모르는 부인들은 그저 본가에 내려온 값나가는 하사품 이야기에만 열을 올리고 있었다.배지희는 조용히 차를 마셨다. 그들의 수다가 끝나면 시어머니에게 불당으로 가겠다고 고하고 조용히 물러날 참이었다.차를 한 모금 머금자, 쓰고 떫은맛과 함께 퀴퀴한 곰팡내가 났다.배지희는 찻잔을 내려놓고 곁눈질로 찻상을 담당하는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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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화

결국 신재형은 울음을 터뜨렸다.진씨는 체념한 듯 배지희에게 말했다."네가 안아주거라. 아이가 아직은 널 어미라고 따르는 모양이다."배지희는 더 이상 거절하지 못하고 진씨의 품에서 신재형을 받아 안았다.아이는 행여나 배지희가 자신을 다시 두고 갈까 봐 그녀의 목에 꼭 매달렸다. 평소의 심술궂고 방자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자리에 앉아 있던 셋째 집안 전씨가 웃으며 거들었다."지희는 이렇게 젊은 나이에 아이를 저리 잘 돌보니, 훗날 경남이에게 아이를 하나 더 낳아준다면 참으로 경사겠네요."넷째 집안 이씨가 불쑥 말을 꺼냈다."그러고 보니 조카며느리는 시집온 지도 벌써 삼 년인데 아직 소식이 없군요. 의원이라도 불러 진맥을 보게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진씨는 굳은 표정을 짓더니 헛기침으로 당혹감을 감췄다."무슨 그런 섭섭한 소리를 하는가. 지희는 몸이 아주 건강하니 의원까지 부를 필요는 없네. 아직 나이도 젊고 앞날이 구만리인데 천천히 가져도 늦지 않아."말을 마친 진씨는 슬쩍 배지희의 눈치를 살폈다. 하지만 배지희는 시선을 아래로 둔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치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한 사람처럼 묵묵부답이었다.이씨가 웃으며 말했다."젊다니요, 올해 벌써 열여덟 아닙니까. 저만 해도 열여덟 살에 혜준이를 품에 안았는걸요……."전씨는 다급히 이씨의 말을 끊으며 눈치를 주었다."말조심하게, 동서. 아직 시집도 안 간 여섯째 아가씨도 있지 않은가."이씨는 그제야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병문안을 온 친척들이 모두 돌아간 뒤, 배지희는 다가가 내일 아침 일찍 불당으로 가 불경을 필사하겠다고 고했다.진씨가 머뭇거리며 말했다."몸도 성치 않은데 불당은 그만두거라. 게다가 재형이도 당분간 각별한 보살핌이 필요하지 않느냐."진씨는 자신이 이쯤에서 물러설 명분을 주었으니, 며느리는 당연히 고마워하며 따를 것이라 여겼다.그것도 후실로 들어온 처지이니 쥐락펴락하기 쉬운 상대였다.하지만 배지희는 정중히 몸을 굽혀 예를 행하고는 차분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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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화

중문을 끼고 모퉁이를 돌려던 찰나, 은밀하게 속삭이는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둘째 형님은 유독 지희가 아이를 갖지 못하게 막는 모양이군. 평소에도 온갖 핑계를 대며 경남이와 합방하는 걸 방해하고, 무슨 구실만 생기면 사당에 무릎을 꿇리거나 불당에 불공을 드리러 보내지 않나.""저도 그걸 느꼈습니다. 그래서 아까 은근슬쩍 지희에게 자식 농사 좀 신경 쓰라고 귀띔해 준 거지요. 어차피 재형이는 조만간 본가 나리의 양자로 입적될 테니 지희 품에서 계속 기를 수 없지 않습니까.""동서는 참으로 오지랖도 넓군. 본가 도련님은 훗날 후작 자리에 오를지도 모르는 분이야. 그리되면 내로라하는 고관대작의 규수들이 줄을 서서 시집오려 할 텐데 무슨 양자 걱정인가. 그나저나 둘째 형님은 참으로 속이 좁지. 쯧쯧, 애먼 지희만 불쌍하게 되었군…….""불쌍할 것까지야 없지요. 배씨 가문도 진작에 옛날의 명망을 잃었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고서야 배연희가 죽자마자 부리나케 둘째를 후실로 밀어 넣었겠어요?""맞는 말이네. 사실 그게 영 보기 안 좋기는 했지. 딸의 혼사를 볼모 삼아 가문 자제들의 출세 길을 열어주려 한 셈이니, 둘째 형님이 지희를 박대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야.""배씨 가문의 얄팍한 수였지요. 지희가 겪을 험난한 고초는 이제 시작일 뿐입니다. 소문 들으셨어요? 백씨 가문이 황실의 총애를 업고 다시 일어섰지 않습니까. 둘째 형님께서는 경남이를 백 소저와 다시 이어주려 물밑 작업을 한다는군요. 참으로 간사한 분이지요.""쉿, 그런 이야기는 입 밖에 내지 말게.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 법이니."두 부인의 발소리가 멀어지며 말소리도 점차 사라졌다.배지희는 중문의 짙은 그림자 속에 선 채, 저 멀리 지붕 위 처마 끝에 우뚝 선 조각상을 멍하니 응시했다.평소 쉴 새 없이 재잘거리던 청심조차 넋이 나간 얼굴로 배지희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입술만 달싹일 뿐 차마 위로의 말조차 꺼내지 못했다. 방금 전 목소리의 주인은 셋째 집안 전씨와 넷째 집안 이씨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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