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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Autor: 가을단풍
신경운은 다짜고짜 따져 물었다.

배지희는 서두르지 않고 고개를 들어 그녀를 보았다.

신경운은 신경남과 동복 남매였다. 생김새도 제법 닮았고, 사람을 훈계하는 태도와 오만함은 언뜻 보아도 신경남과 판박이였다.

마치 신경남이 직접 와서 꾸짖는 것처럼 어투마저 똑같았다.

신경운은 배지희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차갑게 비웃었다.

"재형이를 키운 게 무슨 대단한 공이라도 되는 줄 알고 그리 방자하게 구는 모양인데, 단단히 착각했어. 오라버니도 널 좋아하지 않고, 어머니도 널 마땅찮게 여기셔. 그분들 마음속에 네 자리는 죽은 형님 발끝에도 못 미친다는 걸 알아야지. 내가 너라면 말도 안 되는 헛된 기대는 고이 접어두고, 얌전히 재형이나 키우면서 어떻게든 우리 오라버니 마음에 들려고 노력을 했을 텐데."

그녀는 배지희가 눈을 내리깐 채 자신을 바라보지도 않자 저도 모르게 언성을 높였다.

"뭐, 내 비위를 잘 맞춰준다면, 어머니와 오라버니 마음을 돌릴 묘수 몇 가지쯤은 귀띔해 줄 수도 있어. 내가 원하는 건……."

"아가씨께서 신경 쓰실 일이 아닙니다."

배지희는 맑고 서늘한 눈빛으로 신경운을 바라보며 말을 끊었다.

"제가 아무리 어리석어도 시집도 안 간 처자에게 부부간의 일까지 조언받을 이유는 없습니다. 아가씨는 곧 성년례를 치를 나이이니, 그보다는 장차 도움이 될 양반가 귀녀로서의 예절이나 익히시는 게 어떨는지요."

신경운은 하려던 말이 목구멍에 턱 막히고 수치심으로 하얗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녀는 버럭 화를 내며 호통쳤다.

"배지희, 너 정말 은혜를 모르는구나. 널 위해 넌지시 가르침이라도 주려고 했거늘, 감히 호의를 무시해? 내가 바보지, 너 같은 것한테 무슨 말을 하겠어. 어차피 네가 방자하게 굴수록 제 무덤만 파는 꼴이니까. 너 아직 모르지? 우리 오라버니께서 마음속에 품은 여인은 어릴 적부터 함께 자란 유정 언니뿐이라는 걸. 어제 유정 언니가 우리 집에 왔었어. 알다시피 우리 오라버니는 여인들과 어울리는 성미가 아니잖아. 그런데 어제는 웬일로 오후 내내 유정 언니 곁을 지켰지. 오늘은 같이 한문사로 불공을 드리러 가기로 약속까지 하셨어. 오라버니는 여전히 유정 언니를 잊지 못하신 게 분명해. 예전에 일이 꼬이지만 않았어도 진작 유정 언니와 혼인했을 텐데……."

배지희는 무표정한 얼굴로 신경운의 말을 잘랐다.

"아, 그렇습니까. 그럼 어째서 혼인하지 않았답니까. 백씨 가문이 죄를 짓고 금주로 좌천되어 신씨 가문의 격에 맞지 않아서입니까, 아니면 다른 피치 못할 사정이라도 있었습니까? 두 사람의 정분이 그토록 깊었다면, 어찌 그 오랜 세월 동안 엇갈리기만 했답니까."

신경운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너, 너……!"

그녀는 한참 동안 반박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입술만 달싹였다.

배지희는 한치 동요도 없이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아가씨께서 방금 저를 바보 같다고 하셨는데, 아가씨야말로 참으로 어리석은 짓을 하셨습니다. 백 소저께서 아가씨가 뒤에서 이런 입방아를 찧고 다닌다는 걸 아시면 참으로 고마워하시겠습니다."

"너!"

신경운의 얼굴은 시퍼레졌다가 붉게 달아오르기를 반복했다. 반박할 말이 없었던 것도 한몫했지만, 늘 고분고분 저자세로 지내던 배지희가 감히 자신에게 대들었다는 사실에 적잖이 당황한 것이다.

신씨 가문 사람들에게 배지희는 언제나 본분을 지키고 얌전히 굽신거려야 마땅한 존재였다.

신경운은 속으로 이를 갈며 낮게 쏘아붙였다.

"그래, 마음껏 방자하게 굴어봐. 그 잘난 기세가 며칠이나 가는지 똑똑히 볼 테니."

그녀는 성질을 부리며 옷자락을 휙 뿌리치고 방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배지희는 그 자리에 선 채 짧은 한숨을 쉬었다. 고운 미간에 짙은 피로감이 드리웠다.

청심이 조심스레 배지희의 눈치를 살피다 말했다.

"작은 마님, 경운 아가씨가 저리 성을 내시는 걸 보니 틀림없이 방에 들어가 부인께 고자질을 할 텐데 이를 어쩝니까?"

배지희는 고개를 저으며 담담히 말했다.

"상관없다."

신경운은 배지희를 싫어했다. 시집온 뒤로 그녀는 틈만 나면 듣기 싫은 말로 배지희의 속을 긁었다. 예전에는 그저 나이가 어려 철이 없는 탓이려니 하고 번번이 참고 양보했다. 하지만 열세 살이면 적은 나이도 아닌데 여전히 무례하게 구는 걸 보면 애초에 근본부터 비뚤어진 게 틀림없었다.

설령 신경운이 돌연 태도를 바꿔 배지희를 칭찬한다 한들, 시어머니 진씨가 가하는 괴롭힘이 줄어들 리도 없었다.

사람의 편견은 한번 생기면 아무리 노력해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스스로 깨닫고 이해하기 전에는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배지희는 더 이상 그들이 자신의 진심을 알아주기를 기다릴 인내심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배지희는 마당에서 꼬박 한 시진을 기다린 끝에, 마침내 안으로 들라는 시녀의 부름을 받았다.

방 안에는 화려한 비단옷을 차려입은 귀부인들이 자리를 꽉 채우고 앉아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신씨 가문은 적통인 본가와 방계로 나뉘었다.

본가는 수백 년간 이어져 온 신씨 가문의 막대한 가업을 물려받을 적계 가문이었다. 둘째 집안과 셋째 집안, 넷째 집안은 사촌 관계로 방계에 속했다. 이들도 가문의 일원이었지만 대업을 물려받을 권리는 없었다.

하지만 여느 명문 세가들처럼, 신씨 가문 역시 방계 일족을 함부로 경성 밖에 두지 않고 본가 가까이에 저택을 짓고 모여 살게 했다.

겉으로는 한 가족처럼 화목해 보였으나, 실상은 본가의 재산으로 방계들을 부양하며 가문의 번성함을 외부에 과시하는 것에 불과했다.

방계 가문의 대소사는 둘째 집안이 총괄했다. 둘째 집안 안주인인 진씨가 실권을 쥐고 있었다. 나머지 두 집안의 부인들은 수시로 찾아와 안부를 묻거나 씀씀이를 보고하며 돈독한 관계를 다졌다.

배지희는 안으로 걸음을 옮겨 시어머니 진씨에게 다소곳이 인사를 올렸다.

진씨는 배지희를 힐끗 보더니 물었다.

"병이 났다고 들었는데."

배지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님께서 배려해 주신 덕분에, 어제 약을 달여 먹고 오늘은 많이 좋아졌습니다."

진씨는 속으로 내심 놀랐다. 배지희가 병을 핑계 삼아 눈물을 짜며 불당에 가 불경을 필사하는 고된 일을 면해 달라고 매달릴 줄 알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제 입으로 다 나았다고 하니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진씨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

"차도가 있다면서, 어찌 재형이는 데리러 오지 않은 게냐. 어제 한 말은 대체 무슨 뜻이었느냐."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시끌벅적하던 방 안이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방 안을 가득 메운 수많은 시선이 일제히 방 한가운데 선 배지희에게로 쏠렸다. 고소하다는 듯 비웃는 자도 있었고, 경멸을 담아 흘겨보는 자도 있었지만, 구경하는 분위기였다.

배지희는 차분하게 답했다.

"어머님, 재형이도 벌써 여섯 살이 되었습니다. 슬슬 글공부를 시작해야 할 나이지요. 아이가 제법 자랐고 몸도 건강해졌으니, 훌륭하신 어머님 슬하에서 자라는 편이 아이의 앞날에 더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습니다."

진씨는 다시 한번 말문이 막혔다.

예상이 완전히 빗나갔다.

그녀는 배지희가 신재형의 거취를 두고 자신과 날 선 말다툼을 벌이며 억울함을 토로할 줄 알았다. 불평을 쏟아내기만 하면, 그 즉시 불효막심하고 은혜도 모르는 며느리라며 죄를 뒤집어씌울 참이었다.

그런데 뜬금없이 신재형의 글공부를 핑계 삼아 양육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할 줄은 몰랐다.

"글공부라, 그리 서두를 필요 있느냐."

진씨는 애써 침착하게 대꾸했다.

"재형이는 아직 어리다."

배지희는 단호하게 맞받아쳤다.

"어리지 않습니다. 듣자 하니 부군께서는 네 살에 글공부를 시작하여 다섯 살에는 꽤 많은 글자를 익히셨다 들었습니다. 재형이는 이미 여섯 살입니다."

진씨는 말문이 턱 막혔다.

어릴 적부터 총명했던 신경남은 네 살에 계몽 교육을 시작해 다섯 살에 글을 깨우쳤다는 이야기는 진씨가 평소 모임이 있을 때마다 입버릇처럼 자랑하던 내용이었다. 이제 와서 신재형은 자질이 아비보다 뒤떨어진다고 인정할 수는 없었다.

자리에 앉아 있던 셋째 집안의 전씨와 넷째 집안의 이씨는 서로 시선을 교환하며 오늘따라 막힘없는 배지희의 행보에 내심 놀라워했다.

평소 배지희는 말수가 적고 나약한 사람이었다. 진씨가 대놓고 조롱을 하든 억지로 힘든 일을 떠맡기든 묵묵히 견뎌낼 뿐, 한 번도 사람들 앞에서 진씨의 체면을 깎아내린 적이 없었다.

그들은 배지희가 순순히 괴롭힘을 당하는 모습에 익숙해져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사뭇 새롭고 낯선 모습이었다.

그때 곁에 있던 신경운이 헛기침을 하더니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거들었다.

"어머니, 들으셨지요? 형님이 저리 당돌하게 나오는데 어쩌겠습니까. 어머니 옥체가 상하시더라도 재형이를 돌보는 무거운 짐을 도맡으시는 수밖에요."

그 말에 진씨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어쩌겠느냐. 제 속으로 낳은 자식이 아니니 재형이를 품을 마음이 애당초 없었던 게지."

진씨는 일부러 기침을 하더니 손으로 가슴을 두드렸다.

"가엾은 내 손자. 어미를 일찍 여의고 이제는 보살펴 줄 사람조차 없으니 반백이 다 된 이 늙은이에게 기댈 수밖에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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