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군을 버렸더니, 무서운 형님이 나에게 집착한다 のすべてのチャプター: チャプター 21 - チャプター 30

30 チャプター

제21화

청심이 말했다."작은 마님, 어서 가시지요. 평소 송풍원은 외인의 접근을 금한다지만, 듣자 하니 본가 나리께서는 늘 외부 공무로 바쁘시어 저택에 계시는 날이 드물다고 합니다. 오늘도 안 계실지 모릅니다.""설령 송풍원 호위들과 마주친다 해도, 사정을 잘 설명하면 괜찮을 겁니다. 작은 마님도 신씨 가문 사람이니까요."배지희는 잠시 고민하다가 청심과 함께 어둑한 샛길로 발걸음을 옮겼다.하지만 재수가 없으려니 별일이 다 생겼다.샛길에 들어선 지 어느 정도 되었을 무렵, 어디선가 불쑥 나타난 호위가 호통을 쳤다.훤칠한 키에 날카로운 인상을 한 호위는 허리춤의 검자루를 움켜쥔 채 다가왔다."무릎을 꿇지 않고 뭣들 하느냐!"그는 신주헌의 측근 호위 진무였다.청심은 기겁하며 그 자리에 털썩 무릎을 꿇고는 두려움에 떨며 입조차 떼지 못했다.배지희는 고개를 들어 앞을 보았다. 오솔길 끝에서 금실로 이무기를 수놓은 비단옷을 입은, 훤칠한 체구의 사내가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추적추적 내리는 이른 봄비가 짙은 물안개를 피워내며 길 양옆의 무성한 꽃나무를 흐릿하게 가렸다. 빗속을 뚫고 다가오는 사내는 이른 봄의 추위보다 더 섬뜩하고 매서운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서두르지 않고 일정한 보폭으로 다가오는 모습은, 흡사 차갑고 어두운 심연에서 막 걸어 나온 사자처럼 보였다.신주헌. 소문으로만 듣던 본가 나리를 이토록 가까이서 마주한 것은 처음이었다.세간의 소문에 따르면, 신씨 가문의 본가 적장자는 지독히 냉혹하고 잔인한 인물이라 했다. 지난 몇 년간 황제의 명을 받아 굵직한 사건들을 피바람을 일구며 해결해 왔기에, 그의 악명을 아는 사람들에겐 공포 그 자체였다.게다가 살기를 타고난 자라, 정혼자마저 죽음으로 몰고 간 불길한 사내라는 소문도 파다했다.배지희 역시 그에 대한 숱한 소문을 들어왔기에, 그토록 지체 높고 신비로운 인물이라면 분명 험상궂은 외모일 거라 지레짐작했었다.하지만 직접 마주친 순간, 그녀는 짐작이 완전히 빗나갔음을 깨달았다.사내의 얼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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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화

잠시 후, 금실로 갈매기를 수놓은 검은 가죽신 한 쌍이 배지희의 시야에 들어왔다. 이어서 새까맣고 윤기 나는 비단옷 자락이 아른거렸다.사내의 몸에서 배어 나오는 묵직한 용연향이 비 냄새에 섞여 코끝을 스쳤다. 황제의 금란전에서 피우는 진귀한 향이었다.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배지희는 슬그머니 반 보 뒤로 물러서며 고개를 더욱 깊이 숙였다.검은 가죽신은 그녀 앞에서 찰나의 망설임도 없이 한 걸음 크게 내디디며 차갑게 스쳐 지나갔다. 처음부터 끝까지 신주헌이 그녀 앞에 머문 시간은 찰나였고, 철저한 무시와 함께 홀연히 멀어졌다.신주헌 일행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진 뒤에야 배지희와 청심은 안도의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청심은 바닥에서 몸을 일으키며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본가 나리의 위압감이 어찌나 숨이 막히는지 마치 저승사자를 마주한 것 같았습니다."배지희는 청심의 손을 잡아끌며 재촉했다."지체할 시간이 없다. 어서 가자꾸나."조금 전 찰나의 대치로 그녀의 등은 식은땀으로 흥건히 젖었다.신주헌이 뿜어내는 압도적인 분위기 때문만이 아니었다. 배지희는 그에게서 익숙한 약 냄새를 맡았다. 외상을 다스릴 때 쓰는 약 냄새였다.신주헌은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신주헌이 송풍원에 들어서자, 호위들이 정원을 물샐틈없이 에워쌌다. 굳은 얼굴의 호위들이 뿜어내는 살기가 보이지 않는 그물처럼 촘촘하게 퍼져나갔다.안으로 들어온 진무는 능숙한 솜씨로 문과 창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서랍에서 붕대와 크고 작은 약병들을 꺼내 늘어놓았다.신주헌은 무심하게 망토를 벗어던졌다. 허리춤은 이미 피로 흥건히 젖어 있었고 옆구리에는 부러진 화살이 깊숙이 박혀 있었다. 화살촉이 조금만 더 깊이 파고들었다면 내장을 찌를 뻔한 아찔한 부상이었다.하지만 그는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처럼 무표정한 얼굴로 단검을 쥐고 상처 부위의 비단옷을 찢어냈다. 단단하고 다부진 근육이 고스란히 드러났다.진무는 탁자 위에 약을 준비해 두고, 예리한 비수를 불에 달구어 소독했다.그러고는 깨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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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화

진무는 고개를 끄덕이고 몸을 돌렸다."잠깐……."등 뒤에서 얼음장처럼 차가운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안개에 가려진 그의 얼굴은 표정을 읽을 수 없었다."그 여인이 어디서 의술을 배웠는지 정도는 알아보거라."조금 전 그녀의 곁을 스쳐 지나갈 때, 상대는 흠칫하며 숨을 멈추더니 이내 조심스럽게 호흡을 골랐다. 짙은 용연향 너머로 풍기는 미세한 약 냄새와 피비린내를 알아챈 것이 분명했다.그는 상처에 바른 약은 냄새를 지우기 위해 특별한 처리를 했고, 그 위에 강한 향까지 입혀두었다. 후각이 유달리 예민하거나 약초에 정통한 자가 아니라면 절대 알아챌 수 없는 냄새였다.평소 안방에나 틀어박혀 지내는 평범한 여인이, 도대체 어디서 그런 의술을 익혔을까?*한편, 청심원에 돌아온 후 청심은 재빨리 배지희를 위한 목욕물을 준비했다.다행히 일찍 자리를 피한 덕에 비를 많이 맞지는 않아 풍한은 피할 수 있었다.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는 나무 욕조에 몸을 담그자 피로가 가시며 온몸이 노곤해졌다. 하지만 머릿속은 여전히 어지러웠고, 신주헌의 차갑지만 수려한 얼굴이 자꾸만 눈앞에 아른거렸다.그는 분명 의구심 가득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무엇을 의심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본능이 그렇게 경고하고 있었다.저 사내와는 엮이지 않는 편이 상책이었다.목욕을 마치고 나오니, 난심이 고향에서 온 서신 한 통을 내밀었다.서신을 읽어 내려가던 배지희의 표정이 서서히 굳어갔다.어머니가 보낸 서신에는, 친정 조카들을 신씨 가문의 서당에 입학시켜 달라고 신경남에게 청하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대단한 부탁은 아니었지만, 그녀의 처지로서는 결코 들어줄 수 없는 부탁이었다.배지희는 서신을 다 읽고는 미련 없이 화로 속에 던져 넣었다.타오르는 불꽃 너머로 그녀의 얼굴은 지극히 차분하고 평온했다."은자 백 냥을 꺼내어 진 당주에게 주어 청주에 연락을 보내거라. 신씨 가문의 서당은 이미 정원이 다 차서 더 이상 사람을 들일 수 없다고."난심이 주저하며 물었다."하지만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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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화

난심이 장부를 들고 다가와 고했다."이번 달 장부 정리를 모두 마쳤습니다. 남은 여유 자금을 계산해 보니 대략 오백삼십이 냥입니다. 거기에 제세당 당주에게 받을 진료비가 대략 일곱 냥이니, 도합 오백삼십구 냥입니다."상념에서 깨어난 배지희가 지시했다."내일 내가 불당으로 가거든, 부군께 이 장부를 올려라."난심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망설이며 다시 물었다."작은 마님, 정말 이리 해도 괜찮을까요?"결국 그녀는 참지 못하고 속내를 털어놓았다."신씨 가문을 떠나시면, 고향에 돌아가셔도 마님께서 의지할 곳이 없지 않습니까. 훗날을 어찌하시려고 그러십니까?"배지희는 말없이 창밖을 바라보았다.비가 그치고 하늘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캄캄하게 가라앉은 밤하늘이 꼭 그녀의 막막한 앞날 같았다.*깊은 밤, 신경남은 청심원으로 걸음을 옮겼다.대문 양옆을 밝히는 두 개의 등불 외에는, 청심원 전체가 깊은 어둠에 잠겨 있어 마치 오랫동안 버려진 폐가처럼 스산했다.그는 성큼성큼 몇 걸음 내디디다가 우뚝 멈춰 섰다.오늘 낮, 청심이 밀봉된 문서를 전해왔다.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청심은 우물쭈물하며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대충 짐작 가는 바가 있었지만, 평소 그토록 순종적이던 여인이 감히 그런 걸 보냈을 리 없다고 스스로 부인했다. 그는 봉투를 뜯어보지도 않고 서랍 깊숙한 곳에 던져 두었다.그는 청서에게 지시했다."작은 마님이 안에 있는지 알아보고 오거라."청서는 불안감을 느끼며 시종들에게 알아보고 와서 고했다. "작은 마님께서는 이미 침소에 드셨다고 합니다."신경남은 묵묵히 안방으로 향했다.당직 시녀가 서둘러 불을 밝히고 잠자리를 봐주었다. 방 안을 둘러본 그의 시선이 허공을 맴돌았다. 침상은 텅 비어 있었고, 평소 눈에 익었던 장식품도 여러 점 사라져 있었다.넓은 안방이 비워지자, 까닭 모를 공허함이 가슴을 맴돌았다.밤이 이슥하도록 그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던 여인이, 이제는 정말로 그와 함께하지 않기로 작정한 모양이었다.청서는 멍하니 서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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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화

신경남은 청서를 방으로 불렀다."밖이 왜 이리 소란스러우냐."청서는 묘한 표정으로 답했다."작은 마님께서 아침 일찍 불당으로 떠나셨습니다. 짐을 옮기는 소리에 잠을 깨신 겁니까?"신경남은 고개를 주억거리더니 무심하게 물었다."여우털 망토는 전해주었느냐.""전해드리기는 했습니다만……."청서는 등 뒤에 숨겼던 망토를 조심스레 꺼냈다."작은 마님께서는 한사코 사양하셨습니다. 봄추위가 한풀 꺾였으니 이런 두꺼운 옷은 필요 없다고, 나리께서 입으시라고 하셨습니다."눈을 비비던 신경남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망토를 받쳐 든 청서의 표정은 몹시 민망해 보였다. 배지희의 거절은 꽤나 정중했지만, 청서는 그녀가 나리의 호의에 아무런 감흥이 없음을 느꼈다. 심지어 그녀는 거절의 말을 전할 때 망토 쪽으로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하지만 이 민망한 상황을 감히 나리에게 곧이곧대로 고할 수도 없었다.신경남이 미간을 찌푸렸다."달리 덧붙인 말은 없었느냐."청서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없다고 답했다가, 신경남의 차갑게 굳은 얼굴을 살피고는 황급히 말을 돌렸다."다만 재형 도련님을 각별히 보살펴 달라는 당부를 남기셨습니다."그 말에 신경남의 싸늘했던 눈빛이 한결 누그러졌다."음, 재형이에 대한 애정은 여전하군. 불당에서 돌아오면 그때 다시 찬찬히 이야기를 나누어보아야겠다."청서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잠시 후, 밖에서 난심이 찾아왔다는 전갈이 왔다.이미 세수를 마친 신경남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일렀다."들여보내라."난심은 배지희가 시집올 때 데려온 시녀였다. 그녀가 찾아왔다는 것은 곧 배지희의 뜻을 전하러 왔다는 의미였다.불당에 머무는 며칠 동안 그가 입고 신을 것들이 부족할까 염려되어 챙겨 보낸 게 틀림없었다.혼인한 이래로 신경남이 입는 옷과 신발은 모조리 배지희가 치수를 재어 특별히 주문하거나 손수 바느질해 지은 것들이었다.바느질은 촘촘하고 튼튼했으며, 수놓은 문양도 밖에서 파는 것들과 확연히 달랐다. 모두 그녀가 직접 도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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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화

배지희는 가문의 불당에 도착했다.불당은 꽤 넓었지만 사방이 문과 창문으로 뚫려 있어 밤이면 매서운 외풍이 스며들었다. 불당 옆에 딸린 쪽방은 낡은 침상 하나와 조그만 책상 하나만 둘 수 있을 만큼 협소했다.방 안에는 뽀얗게 내려앉은 먼지와 퀴퀴한 곰팡이 냄새가 진동했다. 청심은 익숙한 솜씨로 방을 치우고 챙겨 온 이불을 깔았다.배지희는 불당 한편의 창문 아래 자리를 잡고 앉아 불경을 필사하기 시작했다.오후 즈음 돌아온 난심은 신경남이 노발대발하며 찻잔을 깨뜨렸다는 소식을 전했다.붓을 쥐고 있던 배지희의 손이 잠시 멈칫했다. 그녀는 무심하게 말했다."알았다."난심은 안절부절못하며 발을 동동 굴렀다."마님, 이를 어쩌면 좋단 말입니까. 나리께서 단단히 노하셨으니, 저희는 언제쯤 청심원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예전에 신경남은 시어머니 진씨가 틈만 나면 트집을 잡아 배지희를 벌하려 들 때 모른 척 방관했다.그런데 이제는 신경남의 분노마저 샀으니 불당에서 벗어날 길은 더욱 아득해 보였다.배지희는 차분히 말했다."걱정 말거라. 다 방도가 있으니."난심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주인의 이혼 결심이 그저 홧김에 내뱉은 일탈일 뿐이며, 머지않아 그에 대한 대가를 치를 거라 생각했다.배지희가 아침 내내 불경을 필사하는 동안, 뜻밖에도 북정원에서 두 번이나 심부름꾼을 보냈다.한 번은 북정원 장씨 어멈이 두툼한 이불과 양털 무릎 담요를 건네주었다. 두 번째로 온 시녀는 신재형이 배지희가 손수 만들어주던 달걀찜을 찾는다며 전갈을 가져왔다.처음 찾아온 장씨 어멈의 물건은 청심을 시켜 받아 두었다. 하지만 두 번째 전갈에 배지희는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재형이는 체하기 쉬운 체질이다. 이제 막 병상에서 일어났으니 며칠간은 달걀찜을 먹여서는 안 된다고 부인께 여쭈어라."시녀는 무안한 얼굴로 물러가 진씨에게 그 사실을 고했다.마침 진씨 곁에 앉아 있던 신경운은 그 말을 엿듣고 입을 비죽거렸다."어머니, 굳이 그 여자 말을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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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화

신경운은 무척이나 흡족한 얼굴로 말했다."강설각이면 아주 좋지요. 이번에는 유정 언니한테 며칠 푹 쉬어 가라 할 겁니다."며칠간 이어진 봄비가 그치면 즐거운 명절이 연달아 기다리고 있었다.아직 성년례도 치르지 않은 신경운의 머릿속은 온통 놀 궁리뿐이었다. 백유정만 곁에 있으면, 신경남을 졸라 사방으로 유람을 다닐 구실이 생겨서 좋았다.이야기가 한창 무르익을 무렵, 시종이 다가와 신경남이 귀가했다는 소식을 알렸다.진씨가 의아해하며 물었다."반나절밖에 지나지 않았거늘. 국자감에서 서책을 편찬하느라 한창 바쁘다 하지 않았느냐."시종이 고했다."나리를 모시는 자의 말로는, 나리께서 휴가를 내셨다 합니다."신경운이 손뼉을 치며 호들갑을 떨었다."틀림없이 우리 오라버니가 유정 언니를 빨리 집으로 초대하고 싶어서 공무마저 내팽개친 거네요."진씨는 내심 고개를 갸웃거렸다. 신경남은 공무를 등한시할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데 왜 이리 갑작스레 일찍 귀가한 걸까?잠시 후 모습을 드러낸 신경남의 곁에는 역시나 백유정이 함께였다.신경운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백유정의 손을 맞잡으며 웃음꽃을 피웠다. 진씨 역시 시종들에게 서둘러 손님맞이를 명하고, 자신의 심복 시녀 둘을 따로 붙여 시중을 들게 했다.그때 신경남이 불쑥 말했다."어머니, 저는 당분간 청심원에 머물까 합니다."진씨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청심원은 사람 손길이 닿지 않아 썰렁한데, 굳이 그곳으로 갈 이유가 있느냐."신경운이 미간을 찌푸리며 끼어들었다."오라버니, 서재에서 잘 지내시더니 왜 갑자기 안채로 돌아가시려 합니까."청심원이 공간은 넉넉할지 몰라도 안채의 깊숙한 곳에 자리해 드나들기 번거로웠다. 반면 바깥채의 큰 서재는 백유정이 머물 강설각과 훨씬 가까웠다.신경남은 동생의 물음에 답하는 대신 백유정에게 다정히 말했다."내가 강설각까지 안내해 주마. 더 필요한 물건이 있는지 살펴보고 한꺼번에 채워 넣자꾸나."백유정은 수줍게 뺨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였다."예, 오라버니."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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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화

한편, 배지희는 인적이 드문 외진 불당에서 불청객과 마주칠 줄은 꿈에도 몰랐다.신경남이 백유정을 이끌고 이 으슥한 곳까지 우연히 걸음을 한 것이다.그녀는 미간을 찌푸리며 갓 써내려간 서신 몇 통을 서둘러 품에 갈무리하고 밖으로 나섰다.백유정은 연두색 바탕에 배꽃을 수놓은 치마를 입고, 그 위로 옅은 진주색 덧저고리를 걸쳤다. 목에는 하얀 여우 털 목도리를 둘렀는데, 솜털처럼 보송보송한 털 장식이 어우러져 봄꽃처럼 화사하고 앳된 얼굴을 한층 돋보이게 했다.그녀는 배지희를 발견하고 잠시 멈칫하더니, 활짝 미소를 지었다."이런, 지희 언니께서 이곳에서 불공을 드리고 계실 줄은 몰랐네요."배지희는 가볍게 눈인사를 나눈 뒤 신경남에게 시선을 돌렸다."부군께서 이곳까지 어쩐 일이십니까."신경남은 착잡한 눈빛으로 배지희를 훑어보았다.그녀는 철 지난 붉은빛 주름치마에, 역시 유행이 지난 연노란색 긴 저고리를 걸치고 있었다. 가느다란 허리는 같은 색의 매듭띠로 단단히 동여맸다.치장이라곤 풍성하게 틀어 올린 머리에 꽂힌 소박한 은비녀 한 개가 전부였다.머리부터 발끝까지 새 옷으로 빼입은 백유정에 비하면, 배지희의 차림새는 낡고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눈처럼 희고 고운 자태 덕분에 아무리 수수하게 입어도 명문가 안주인의 기품을 잃지 않았다.신경남은 그제야 지난 삼 년 동안 배지희에게 번듯한 장신구 하나 선물한 적이 없음을 깨달았다. 반면 백유정이 경성으로 돌아오자마자 어제 바로 거리로 나가, 값이 꽤 나가는 비취 장신구들을 안겨주었다.죄책감도 잠시, 그는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신씨 가문은 곳간이 차고 넘치는 부자였다. 배지희의 생활 역시 궁핍할 필요가 없었다. 그녀가 단 한 번도 무언가를 조른 적이 없으니, 필시 그런 사소한 물건에는 연연하지 않는 성정이라 넘겨짚었다.백유정은 달랐다. 지난 몇 년간 금주에서 숱한 고생을 겪었을 테니, 그녀를 각별히 보살피고 보상해 주더라도 배지희가 속 좁게 질투하지는 않을 터였다.신경남의 대답이 늦어지자, 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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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화

가련한 척 울먹이던 백유정은 그 말을 듣고 순간 제 귀를 의심했다. 신경남은 지금 벌을 받고 있는 배지희를 감싸주며 변명까지 해준 걸까?항간의 소문으로 배지희가 신씨 가문에 시집온 뒤 시어머니 진씨에게 온갖 구박을 당해도 신경남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철저히 무시한다고 했다.그 모든 소문이 헛소문이었던 걸까?자신만만했던 백유정의 마음 한구석에 미세한 불안감이 고개를 들었다.그녀는 애써 입꼬리를 올리며 미소를 지었다."오라버니, 빈말이라도 절 위로해 주실 필요 없어요. 필시 제가 언니의 귀한 명화를 망쳐버린 탓에 노여움이 안 풀리신 걸 테죠. 차라리 제가 그림 한 폭을 새로 구해 배상해 드리는 게 어떨까요?"신경남은 딴생각에 빠져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게 하거라. 그 사람이 무척이나 아끼던 그림이니 잃고 나서 꽤 상심이 컸을 거다. 네가 이리 세심히 배려해 주니, 그 사람도 틀림없이 네 진심을 알아줄 게다."백유정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신경남은 싸늘하게 굳은 백유정의 얼굴을 미처 보지 못했다. 무언가 좋은 핑곗거리가 떠오른 듯 그의 눈동자에 생기가 돌았다.그는 백유정을 남겨둔 채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백유정은 허둥지둥 그의 뒤를 쫓을 수밖에 없었다.*송풍원 안방.서늘한 기운을 풍기는 사내가 창가에 놓인 평상에 비스듬히 누워 있었다. 짙은 청색 이불이 가슴 아래를 덮고, 칠흑 같은 머리카락은 어깨 위로 흩어져 있었다.그는 미간을 좁힌 채 손에 든 서책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흑옥처럼 깊고 차가운 눈동자가 미세하게 움직일 때마다 묵직한 위압감이 뿜어져 나왔다.흰 비단 옷자락이 부드럽게 흘러내려 차가운 분위기에 귀티를 더했다.그 모습을 바라본 진무는 크게 심호흡하고 입을 열었다."나리, 둘째 집안 도련님께서 뵙기를 청합니다.""무슨 일이라더냐."신주헌은 시선 한 번 주지 않고 무심하게 책장을 넘겼다.진무가 답했다."그림을 구하러 왔답니다."신주헌은 묵묵부답이었다.진무가 다시 말을 이었다."나리의 서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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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화

배지희는 정성스레 약재를 다듬고 탕약을 달일 시간을 일러둔 뒤 불당 안으로 들어갔다.그녀의 품에는 세 통의 서신이 들어 있었다. 이 서신들에 그녀의 앞날이 걸려 있었다.부디 뜻대로 풀리기를 간절히 바랐다.배지희는 나고 자라며 단 한 번도 온전히 자신의 뜻을 주장해 본 적이 없었다. 어릴 적부터 어머니는 병약한 언니에게 모든 것을 양보하라 가르쳤고, 성년례를 치르자마자 죽은 언니의 빈자리를 채우라는 무거운 짐을 떠안겼다.하지만 이제 더는 그 짐을 짊어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이건 그녀의 삶이 아니었고, 그녀가 감내해야 할 책임도 아니었다.배지희는 난심을 불러 은밀히 지시를 내렸다. 난심은 서신을 가슴 깊숙이 품고 비장하게 말했다."날이 저물기 전에 서둘러 다녀오겠습니다."말을 마친 난심은 잰걸음으로 사라졌다.저 멀리 우뚝 솟은 회랑 위, 칠흑처럼 짙은 두 눈동자가 작은 불당을 예리하게 주시하고 있었다.시녀가 서신을 품고 황급히 빠져나가는 모습에 이어, 뒷마당에 놓인 탕약기에서 검은 약물이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광경까지 고스란히 내려다보고 있었다.수수한 소복 차림의 여인이 허리를 숙여 탕약을 젓고 있었다. 흘러내린 옷자락 사이로 버들가지처럼 가녀린 허리선이 언뜻 비쳤다. 여인은 품에서 작은 약병을 꺼내더니 정체를 알 수 없는 가루를 탕약에 털어 넣었다.사내의 짙은 눈동자에 싸늘한 기운이 스쳤다. 그는 곧바로 몸을 돌려 어스름이 깔리는 밤의 장막 속으로 모습을 감췄다.*다음 날 아침, 배지희가 소박한 아침 요기를 마치기 무섭게 백유정이 찾아왔다. 그 뒤로는 굳은 얼굴의 신경남이 따라 들어왔다.배지희는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밖으로 나갔다.신경남의 의중을 알 길이 없으니, 지금 당장 백유정이 보는 앞에서 이혼을 들먹이며 판을 키우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처사라 판단했다.우선은 며칠 무탈하게 넘기는 것이 상책이었다.오늘 백유정은 한층 더 눈부셨다. 봄을 닮은 초록빛 주름치마에 옅은 살구빛 덧저고리를 입고, 허리에는 정교하게 수놓은 허리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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