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우성 오메가로 각성하다 : 그의 페로몬에 미쳐버린 밤: Chapter 61 - Chapter 70

79 Chapters

61화. 잔향

아린은 오전에 윤하와 짧게 통화를 했다.“몸은 좀 어때?”“어제보다 나아요.다친곳도 많이 가라앉았어요.”“그럼 모레부터 훈련 다시 하자.무리만 하지 마.페로몬 쪽은 천천히 감 잡는 거야.”아린이 고개를 끄덕이다 말고, 화면 너머 윤하의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알겠어요.저도… 조절을 더 잘하고 싶어요.다시는 쉽게 흔들리고 싶지 않아서요.”“그 마음이면 충분해.내가 옆에서 잡아 줄게.”통화가 끝난 뒤에도 아린은 한동안 휴대폰을 내려다보았다.납치 이후 처음으로, 앞으로의 일상을 다시 붙잡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루카스가 서재에서 나와 그녀의 머리를 쓸어 넘기며 물었다.“윤하랑 통화 했어?”“네.모레부터 다시 시작한대요.”“무리하지 마.내가 옆에 있을 수 있는 시간에 맞춰.”아린이 그의 손끝에 얼굴을 비비듯 기댔다.말은 많지 않았지만, 그 짧은 접촉만으로도 숨이 편해졌다.루카스의 손바닥에 남은 미세한 상처를 손가락으로 스치자, 그가 짧게 숨을 들이쉬었다.“아직 아파요?”“신경 쓰일 정도는 아니다.”아린이 더 캐묻지 않고 그의 손만 잠시 잡고 있자, 루카스의 어깨선이 아주 조금 풀렸다.같은 시간, 루카스는 이미 다음 수를 던지고 있었다.화이트 쪽 연결 라인의 1차 정리안이 올라왔고, 일부 계약은 실제로 보류 통보가 들어간 상태였다. 이솔라 주변에서 동요가 감지된다는 보고가 연달아 들어왔다. 루카스는 화면을 내려다보며 짧게 지시만 남겼다.“이 기조 유지해.상대가 먼저 움직이면 그때 다음 카드 열어.아린 주변 보호망은 그대로 두고, 외부 접촉 시도가 있으면 즉시 보고.”실무진이 물러간 뒤, 루카스는 창밖을 바라보며 손가락으로 태블릿 가장자리를 한 번 쓸었다.이솔라가 조급해질수록 실수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걸 알고 있었다.서두르지 않았다.조이기만 하면 됐다.아린에게는 세부를 말하지 않았다.말할 필요가 없었다.지금은 그녀가 회복하는 시간이었고,자신이 처리할 판은 따로 있었다.이솔라는 오후 내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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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화. 그림자

훈련실의 공기가 차가웠다.윤하가 창문을 조금 열어 두었고, 바깥 바람이 얇게 스며들었다.“오늘은 세기부터 올려 볼게.무리하면 바로 말해.”아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손목의 거즈는 이미 풀린 뒤였고, 자국은 옅어졌지만 감각은 아직 남아 있었다. 그녀는 바닥에 앉아 호흡을 고르며, 윤하가 내뿜는 약한 페로몬의 경계를 의식적으로 잡았다.들이쉬고.복부에 힘을 주고.내쉬면서 선을 긋는다.처음 몇 번은 흔들렸다. 향이 얇게 샐 때마다 아린의 미간이 좁아졌고, 윤하가 손짓으로 멈추라고 하기 전에 아린이 먼저 숨을 길게 내쉬며 다시 눌렀다.세 번째 세트에서 윤하가 잠시 말을 멈췄다.아린의 향이 짧게 열렸다가 닫히는 순간, 평소 지도하던 오메가들과는 결이 달랐다. 더 맑고, 더 깊게 스며드는 느낌. 윤하는 그것을 수치로 가늠해 보았다.“지금 상태면…조절 능력, 한 70퍼센트 정도 된다.”아린이 눈을 떴다.“70요?”“응.완전하진 않지만, 납치 전보다 훨씬 안정적이야.위기 상황에서 무너지지 않을 선은 넘었어.”아린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다시는 쉽게 향을 뺏기고 싶지 않았다.100이 될 때까지, 멈추지 않을 생각이었다.윤하는 겉으로 웃어 주었지만, 속으로는 다른 생각이 스쳤다.이 향이 70에서 이미 이렇게 특이한데,100퍼센트까지 열리면 어떤 형질이 드러날지.단순한 우성 오메가의 범주를 넘는 무언가.아직은 입에 담지 않기로 했다. 아린에게 부담을 줄 필요는 없었으니까.“오늘은 여기까지.모레 같은 시간에 이어서 하자.”“감사해요.다시 움직일 수 있어서… 좋아요.”같은 시각, 루카스는 서재에서 태블릿을 내려다보고 있었다.화이트 쪽 연결 라인의 추가 보류 통보가 들어왔고, 가문 내부 동요도 수치로 잡히기 시작했다. 이솔라가 조급해지고 있다는 신호였다. 루카스는 짧게 지시만 남겼다.“기조 유지.상대가 먼저 손을 뻗으면 그때 다음 카드.”경호팀장에게는 다른 말을 했다.“훈련장 주변, 반경을 조금 더 넓혀.직접 접촉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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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화. 경고

훈련실의 공기가 어제보다 조금 더 무거웠다.윤하가 창문을 반만 열어 두었고, 아린은 바닥에 앉아 호흡을 고르고 있었다.“오늘은 70%에서 조금 더 올려 볼게.무리하면 바로 말해.”아린이 고개를 끄덕였다.들이쉬고, 복부에 힘을 주고, 내쉬면서 선을 긋는다. 처음 몇 번은 흔들렸지만, 이내 향이 얇게 열렸다가 다시 닫히는 리듬이 안정적으로 잡혔다. 윤하가 세기만 조금 올렸을 뿐인데도 아린의 이마에 땀이 맺혔다.“좋아.지금 상태면… 72~73% 정도까지는 가는 것 같아.”“아직 멀었어요.”아린의 목소리가 낮았다.납치 이후 한 번도 입 밖에 내지 않았던 말이, 훈련이 끝난 뒤에야 나왔다.“더 강해지고 싶어요.70%로 만족하고 싶지 않아요.다시는… 향 때문에 무너지지 않게.”윤하가 수건을 건네며 잠시 말을 아꼈다.아린의 향을 가까이에서 느끼면 느낄수록, 단순한 우성 오메가의 조절력과는 결이 달랐다. 70에서 이미 특이했고, 조금 더 열린 지금 그 차이가 더 선명했다. 100까지 가면 어떤 형질이 드러날지, 윤하는 속으로만 그 가능성을 의식했다. 아직은 아린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로 했다.“알겠어.그럼 모레는 세기만 조금 더 올려 보자.너는 이미 방향을 잡은 거니까.”아린이 짧게 웃었다.그 웃음 속에 의지와 피로가 함께 있었다.같은 날 오후, 루카스는 서재에서 경호팀 보고를 전부 대조하고 있었다.훈련장 인근의 이질감은 단순 감가가 아니었다. 시간대와 동선을 맞춰 볼수록, 누군가 의도적으로 거리를 유지한 채 아린의 주변을 스치고 있다는 그림이 선명해졌다. 직접 접촉은 없었다. 그래도 루카스의 손가락은 태블릿 가장자리를 한동안 두드렸다.화이트 쪽 자금 흐름을 추적하던 중, 해외 사립 보안·보모 비용으로 보이는 송금 라인이 걸려 나온 지 며칠이었다. 최근 그 라인에서 아이 이름 하나까지 확정됐다. 윌리엄.이솔라가 가장 감춘 패였다.루카스가 창밖을 바라보았다.아린이 훈련에서 돌아오는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보호망은 이미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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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화. 남은 것

이솔라 쪽 움직임은 빠르게 정리됐다.출국 준비, 해외 송금 재개, 국내 협력 라인의 침묵.보고가 하나씩 올라올 때마다 루카스의 미간은 조금씩 풀리는 듯했다. 화이트의 판은 접혔고, 적어도 표면에서는 더 이상 손을 뻗지 않았다.그런데 이질감은 남았다.훈련장 인근, 아린이 이동하는 동선 가장자리.빈도가 줄었을 뿐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고, 루카스는 태블릿 위의 동선을 여러 번 겹쳐 보았다. 이솔라가 손을 뺀 뒤에도 같은 패턴이 반복되고 있었다.‘화이트가 아니다.’그 판단이 서는 순간 감시의 성격이 바뀌었다.보호망을 두르는 데서, 남은 그림자의 출처를 역으로 좁히는 쪽으로...아린은 요즘 루카스의 공기가 평소와 조금 다르다는 건 느꼈다.함께 이동할 때 시선이 창밖을 더 자주 훑었고, 경호측과과의 통화도 짧고 차갑게 끊겼다. 아린이 묻기 전에 루카스가 먼저 말했다.“이솔라 쪽은 정리됐어.걱정할 필요 없어.”“그럼… 이제 괜찮은 거죠?”루카스가 잠시 말을 아꼈다.완전히 괜찮다고 하기엔, 아직 손에 걸린 이질감이 남아 있었다.“보호는 유지한다.당분간은.”아린이 고개를 끄덕였다.그 한 마디면 충분했다. 다만 루카스의 손끝이 평소보다 차갑다는 것만 괜히 마음에 남았다. 카인은 그 변화를 몸으로 먼저 알았다.순찰 주기가 짧아졌고, 차량의 공백이 줄었다.예전처럼 두 블록 밖에서 가만히 있어도 시선에 걸릴 것 같은 밀도였다. 이솔라의 돈은 이미 계좌에 들어와 있었고 명령은 분명했다. 사라져라.그런데도 그는 도시를 빠져나가지 않았다.두통이 밤마다 그를 깨웠다.아린의 잔향은 이미 희미했지만, 그 희미함이 오히려 갈증을 키웠다. 떠나는 게 맞았고 남는 건 위험천만한 선택이었는데도, 핸들을 돌리는 손은 번번이 같은 방향으로 미끄러졌다.‘한 번만 더.’그 말이 이제는 습관처럼 느껴졌다. 루카스는 경호팀장에게 짧게 지시했다.“화이트 잔당으로 보지 마.동선 공백이 생기는 시간대만 따로 뽑아.같은 차가 아니어도 돼.같은 간격을 찾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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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화. 일상의 틈

아침 햇살이 사무실 유리에 길게 들어왔다.아린은 책상 앞에 앉아 주간 보고서를 넘겼다. 납치 이후 한동안 비대면으로만 처리하던 업무를, 이제는 다시 직접 챙기고 있었다. 직원들의 표정은 전보다 밝았다. 성과가 크게 오른 뒤 보너스가 나갔고, 그 여파가 아직 사무실 안에 남아 있었다.“대표님, 오늘 오후 신규 상담 건 하나만 대면으로 진행할까요?”비서가 태블릿을 내밀었다.아린이 일정을 훑어보았다. 루카스가 바깥 이동을 함께하기로 한 터라, 건물 안 상담실 정도면 무리 없었다.“그쪽으로 해 주세요.한 시간만.”고개가 끄덕여졌고, 아린은 다시 서류를 보았다.손끝이 안정적이었다. 향도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예전 같으면 긴 업무 하루가 부담으로 다가왔겠지만, 지금은 일상이 다시 몸을 붙잡아 주는 느낌이 들었다.오후, 상담실.고객은 우성 알파와 우성 오메가 커플이었다.매칭률은 높았고, 문제는 페로몬 과민이었다. 공공장소에서 향이 섞이면 둘 다 통제가 어려워진다는 호소였다.아린은 차분히 기록을 받으며 시크릿룸 옵션과 비대면 모니터링 일정을 조율했다.“두 분 향의 충돌 구간이 짧아요.그 구간만 분리 동선으로 막고, 이후 적응 훈련을 병행하면 됩니다.당분간은 대면 상담보다 모니터링 비중을 높일게요.”오메가 쪽이 안도의 숨을 내쉬었고, 알파도 어깨의 힘을 풀었다.상담이 끝난 뒤 아린은 문을 닫고 짧게 숨을 고였다. 타인의 향을 다루는 일이 이제는 전처럼 버겁지 않았다. 조절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실감이 손가락 끝에 남았다.복도로 나오자 루카스가 기다리고 있었다.“끝났어?”“네..다음엔 훈련장만 갔다 오면 돼요.”루카스가 짧게 응하며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시선은 자연스럽게 통로 끝과 로비 쪽을 한 번 훑었다. 아린은 그 동작을 보면서도 묻지 않았다. 이솔라 쪽은 정리됐다고 했다. 그래도 루카스의 경호는 풀리지 않은 채였다.훈련장.윤하가 창문을 조금 열어 두고 아린을 마주 보았다.“오늘은 세기만 올리지 말고,유지 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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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화. 아흔

결혼식까지 한 달. 아린의 일상은 다시 회사와 훈련장 사이를 오가고 있었다. 루카스의 경호는 풀리지 않았지만, 예전의 숨 막히는 긴장감은 한 겹 줄어 있었다. 이솔라 쪽은 조용했고, 겉으로 보이는 위협은 없었다. 다만 루카스의 시선이 가끔 창밖이나 로비 쪽을 훑는 것만은 여전했다. “그 새끼는 아직 포기 안 했을 거야. 기회를 노리고 있을 거다.” 경호팀장에게만 짧게 남긴 말이었다. 훈련장. 윤하가 세기를 단계적으로 올리며 아린의 호흡을 지켜보았다. 향이 열렸다가 닫히는 리듬이 안정적이었고, 유지 시간도 길었다. 아린의 이마에 땀이 맺혔지만 흔들림은 적었다. “지금… 88% 조금만 더.” 아린이 눈을 감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들이쉬고, 복부에 힘을 주고, 내쉬며 선을 긋는다. 닫힌 층 아래에서 뭔가 스치는 감각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그것을 억지로 열지 않았다. 다만 조절의 테두리를 조금 더 바깥으로 밀었다. “…90%” 윤하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아린이 눈을 뜨자, 윤하가 잠시 말을 고르듯 침묵했다. “조절은 확실히 올랐어. 그런데 방금, 닫을 때 느낌이 달랐다. 가두는 힘이 세진 정도가 아니라… 안쪽이 잠깐 가라앉는 쪽이었어.” 아린이 자신의 손끝을 내려다보았다. “감정 같은 게… 아래로 가라앉는 느낌이었어요. 짧게.” 윤하가 기록용 태블릿을 켰다가, 저장 전에 아린을 보았다. “지금은 실마리야. 단정하지 말자. 그리고 이 얘기는 우리만 안다. 일단은..루카스 씨한테도..” 아린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90%이라는 숫자가 기뻤고, 동시에 그 짧은 침전의 감각이 낯설었다. 더 강해지고 싶다고 말한 몸이, 이제 다른 방식으로 응답하기 시작한 기분이었다. 오후, 회사. 비서가 스케줄을 넘기며 말했다. “대표님, 오늘 시크릿룸 모니터링 건 하나 있습니다. 우성 오메가 여성 커플이세요. 매칭률 높고, 첫 정식 이용입니다.” 아린이 파일을 열었다. 두 사람 모두 우성 오메가. 페로몬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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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화. 아흔셋

결혼식까지 며칠전..아린은 오후 일정을 비우고 윤하와 함께 있었다. 식전에 하는 마지막 피팅이었다.“여기, 허리 이 정도면 숨 막히지 않을 것 같은데.”스태프가 핀을 조정하는 동안 윤하가 아린 쪽을 보며 짧게 웃었다.“너까지 불러내서…바쁠텐데.”“괜찮아요.오히려 좋아요.이런 거, 같이 하는 거.”아린의 말은 진심이었다.동시에 거울 너머로 스치는 감정이 있었다. 날짜가 찍힌 청첩장, 이름이 나란히 놓인 자리. 부러움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었다. 다만 그 위에 즐거움이 더 두껍게 얹혀 있었다. 윤하의 결혼을 가까이에서 돕는 일이 생각보다 마음을 가볍게 해 주었다.피팅이 끝난 뒤 두 사람은 카페에 앉았다.윤하가 태블릿을 열어 일정 일부를 보여 주다가, 화면을 끄며 말했다.“우리는 먼저 출발할 거야.이틀 뒤에 이탈리아에서 보자.”아린이 눈을 살짝 크게 떴다.“네?”휴...갑자기 결정된거라서..알렉산드로 … 로시 가문이 본식을 크게 올리길 원하거든.이탈리아 대부호 쪽이라, 국내에서 조용히 끝내려고 했는데 어렵게 됐어...갑자기 하객도 많고 일정도 빠듯하게 됐어...하여튼..너랑 루카스 씨만은 꼭 와 줬으면 해.”아린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부러움과 설렘이 같이 올라왔다. 큰 식장이라는 말에 긴장이 살짝 스쳤지만, 윤하의 결혼을 직접 보러 간다는 쪽이 더 컸다.“알겠어요.꼭 갈게요.”윤하가 짧게 웃었다.“훈련은 내일 오전에만 짧게 하자.무리해서 숫자 올리지 말고.그다음엔 본식 전까지 쉬는 거야.”아린이 웃으며 대답했다.“알겠어요.그래도… 조금은 하고 싶어요.”다음 날 오전, 훈련장.창문을 반만 연 채 윤하가 세기를 올렸다.아린의 호흡은 안정적이었고, 향이 열렸다가 닫히는 선이 선명했다. 90%을 넘긴 뒤 몸이 적응한 듯, 유지가 한결 수월했다.“91… 92.조금만 더.”아린이 눈을 감았다.들이쉬고, 참고, 내쉬며 테두리를 밀었다. 그때 안쪽에서 분명한 감각이 왔다. 저번때의 짧은 실마리와 달랐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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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화. 밀라노

비행기가 밀라노에 닿았을 때, 아린은 창밖을 떠날 수 없었다.붉은 기와와 연한 석양의 도시, 공항을 벗어나자마자 느껴지는 공기 냄새부터 달랐다. 이탈리아에 처음 발을 디딘 발이 조심스러웠고, 고개를 돌릴 때마다 시선이 새로운 것에 붙잡혔다. 흥분을 숨기려 해도 입가가 먼저 풀렸다.루카스가 그 모습을 옆에서 보았다.평소의 차가운 눈매가 아주 조금 누그러져 있었다.“표정이 다 나와.”“…처음이라서요.사진으로만 보던 곳이에요.”루카스가 아린의 캐리어 손잡이를 바꿔 잡으며, 낮게 덧붙였다.“시간 될 때마다 더 데려갈게.네가 가고 싶은 데부터.”아린이 그를 올려다보았다.짧은 약속이었지만, 가슴 한쪽이 가볍게 울렸다.차는 로시 가문이 잡은 호텔 쪽으로 달렸다.본식은 다음날이었다.본식 당일.식장은 밀라노 외곽의 오래된 저택을 개조한 곳이었다.높은 아치형 천장, 대리석 바닥, 창으로 스며든 햇살이 꽃장식 위를 은은하게 훑었다. 하얀 장미와 올리브 가지가 긴 통로를 따라 이어졌고, 금빛 촛대와 샹들리에가 로시 가문의 이름을 말없이 드러냈다. 화려하면서도 과하지 않은, 이탈리아 감성이 묻어나는 웅장함이었다.경호는 식장 바깥에만 배치돼 있었다.하객 전원을 대상으로 한 로시 가문의 규칙이었다. 초대장을 가진 사람만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고, 내부는 예식과 인사의 자리로만 남겼다. 루카스는 그 규칙을 미리 전달받은 터라, 바깥 경호팀과 짧은 신호를 나눈 뒤 아린과 함께 입구를 통과했다.아린의 드레스는 연한 샴페인 골드였다.과도한 장식 없이 어깨선과 허리를 따라 흐르는 실루엣이었고, 움직임에 따라 빛이 얇게 미끄러졌다. 머리는 느슨하게 올려 목덜미를 드러냈고, 작은 귀걸이만 한 쌍 착용한 얼굴이 조명 아래에서 더 또렷해 보였다. 하객들 사이에서도 시선이 잠깐씩 머물렀다.“…영화 같아요.”아린이 입구에 서며 숨을 들이쉬었다.루카스가 아린의 허리에 가볍게 손을 올리며 안으로 안내했다. 정장 차림의 그에게 이미 몇몇의 시선이 향했다.그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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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화. 파우더룸

파우더룸의 조명은 홀보다 부드러웠다.아린은 문을 닫고 거울 앞에 서서 숨을 골랐다. 와인이 얼굴에 열을 남기고 있었고, 귀 끝이 약간 울렸다. 립스틱을 고치려 파우치를 열다, 손끝이 한 박자 늦게 움직이는 기분이 들었다. 취기가 심한 건 아니었다. 다만 평소보다 경계가 무딘 건 분명했다.거울에 비친 드레스 자락을 쓸어 내리는데, 목덜미가 먼저 서늘해졌다.문이 열린 소리가 아니었다. 처음부터 안에 누군가가 있었고, 와인 향 사이로 그 기척이 뒤늦게 느껴졌다. 아린의 시선이 거울 속 어깨 뒤로 이동했다. 그림자 하나가 이미 가까이 와 있었다.돌아서려는 순간큰 손이 입과 허리를 동시에 막았다.비명이 손바닥에 막혀 끊겼고, 등이 단단한 가슴에 부딪혔다. 아린이 발버둥 치자 발뒤꿈치가 타일에 미끄러졌고, 거울에 비친 두 사람의 형체가 한 번 크게 흔들렸다. 낯설면서도 어디선가 맡았던 우성 알파의 향이 코끝을 메웠다. 머리가 하얗게 비는 사이, 예전에 감금당했던 방의 공기가 겹쳐 올랐다.“소리 내지 마.”낮고, 갈라진 목소리.한국어였다. 아린의 눈이 커졌다. 손목이 뒤로 접혀 제압됐고, 취기 때문에 저항이 한 박자씩 늦었다. 팔꿈치로 옆구리를 찍으려 했으나 상대의 몸이 더 무거웠다. 숨이 막혀 오고, 페로몬을 억누르려던 호흡이 먼저 흔들렸다. 90% 넘게 올렸던 조절이, 와인과 공포 앞에서 미끄러졌다.“루카— ”이름만 새어 나오다 손바닥에 눌렸다.남자의 손이 더 세게 조여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손바닥에 미세한 떨림이 느껴졌다. 죽이려는 힘이 아닌 도망치지 못하게 붙잡는 힘이었다. 아린이 다시 몸부림치자, 목덜미를 누르는 압박과 함께 시야가 좁아졌다. 천으로 코와 입을 덮는 감각인지, 급작스러운 제압 때문인지 분간이 어려웠다. 다리가 풀리고, 거울 속 조명이 점으로 줄어들었다.마지막에 남은 건 그 알파의 향이었다.두통처럼 무겁고, 집착처럼 진한 향.의식이 다시 든 건, 몸이 흔들려서였다.엔진 소리가 멀리서 고르게 울렸고, 도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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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화. 잔향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 수 없었다.아린은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손목을 문질렀다. 묶임은 조금 전에 풀려 있었으나 완전히 자유로운 건 아니었다. 문 쪽은 카인이 막고 있었고, 창문은 잠겨 있었다. 머리는 여전히 무거웠지만, 와인의 열기는 많이 빠졌다. 호흡을 나누며 향을 안으로 밀어 넣는 일이 조금 수월해진 느낌이었다.카인이 아린에게 다가왔다“물.”탁자 위에 생수병이 놓였다.아린이 받지 않자 카인이 더 다가왔다. 죽이지 않는다는 건 이미 알았지만 그렇다고 이 거리가 안전하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의 시선이 아린의 목덜미와 호흡이 오가는 가슴선에 잠깐 머물렀다. 갈증이 눈에 어려 있었다.“가까이 오지 마세요.”아린의 목소리가 갈라졌다.카인은 멈추지 않았다. 무릎을 굽혀 아린과 눈높이를 맞추듯 숙였고, 숨이 섞일 정도로 가까워졌다. 우성 알파의 향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아린이 얼굴을 돌리려는 순간, 카인의 손이 턱을 붙잡았다.그의 입술이 덮쳤다.놀란 숨이 목에서 터지려다 막혔다.아린이 어깨를 밀고 고개를 젖혔지만, 카인의 다른 손이 후두를 고정했다. 이를 악물고 입을 열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카인의 혀가 입술을 밀어 열었고, 깊고 젖은 키스가 강제됐다. 타액이 섞이는 순간, 아린의 조절이 흔들렸다. 가두어 두었던 페로몬이 숨과 침을 따라 얇게 흘러나갔다.카인의 몸이 굳었다가, 크게 떨렸다.향이 혀 위로 번지는 감촉과 함께, 오래 뼈를 누르던 두통이 한순간에 걷히는 듯했다. 시야가 맑아지고, 숨이 깊어졌다. 그 해소가 너무 강해서, 카인은 잠깐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조차 놓쳤다. 아린을 데려온 이유, 그레이가 쫓고 있을 거라는 판단, 여기까지 온 대가— 전부 향 뒤로 밀려났다. 허리가 아린 쪽으로 무의식적으로 밀착됐고, 이미 단단해져 있던 자지가 바지 천 너머로 아린의 허벅지 바깥에 닿았다. 그 마찰만으로도 전류 같은 자극이 척추를 타고 올라왔다.‘이 향이면… 살 수 있다.’그 생각이 무섭도록 선명했다.“……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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