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ua Bab 삼강(三江), 그 등불 아래: Bab 31 - Bab 40

98 Bab

제31화: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국밥 2

​하지만 옥연의 손길은 평소 국밥을 끓여낼 때보다 수십 배는 더 정교하고, 소름이 끼칠 정도로 처절하게 차분했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오직 단 하나의 맹렬한 목적만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자신을 안고 불티를 막아내던 사내의 넓고 단단한 품, 옥연을 바라보며 찬란하게 물들어 가던 그 금빛 눈동자. ​이 지독하고 무서운 세상에서, 난생처음으로 곁을 내어주고 연모하게 된 유일한 사내를 기어이 지옥 끝에서라도 건져 올리겠다는 독기뿐이었다. ​옥연은 깨끗하게 씻어낸 쌀을 솥 안에 안치고, 부엌 한구석에 남아 있던 가장 좋은 무와 시래기를 거침없이 썰어 넣었다. ​도마 위를 오가는 칼날의 소리가, 옥연의 거친 숨소리와 뒤섞여 캄캄한 공간을 어지럽게 울렸다. ​그녀는 아궁이 안으로 마른 짚단을 욱여넣고, 부지깽이 끝으로 맹렬한 불씨를 살려내었다. ​화아악! ​시뻘건 불길이 아궁이 속에서 폭발하듯 타오르며 옥연의 눈물범벅이 된 창백한 뺨을 환하게 비추었다. ​매캐한 연기가 폐부를 찌르며 기침이 터져 나왔지만, 옥연은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솥 아래의 불길을 사정없이 다스렸다. ​보글, 보글보글. ​얼마 지나지 않아, 무쇠솥 안에서 물이 끓어오르며 무거운 솥뚜껑을 들썩이기 시작했다. ​일반적인 시래기국의 냄새가 아니었다. ​그것은 옥연의 가슴속 가장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처절한 연모와, 자신의 목숨을 깎아내어 바치는 맹목적인 정성이 엉겨 붙은 기이하고도 압도적인 향기였다. ​부엌 구석에 웅크리고 있던 도깨비들이, 솥에서 뿜어져 나오는 그 경이로운 향기에 압도되어 홀린 듯이 고개를 들었다. ​옥연은 이마에 맺힌 진땀을 닦아낼 새도 없이, 끓어오르는 솥뚜껑을 조심스럽게 열어젖혔다. ​구수하고 칼칼한 수증기가 짙은 흰 김이 되어 부엌 천장을 향해 폭포처럼 솟구쳐 올랐다. ​옥연은 긴 나무 국자를 깊숙이 넣어, 솥 안에서 가장 맑고 뜨거운 국물과 고슬고슬하게 익은 밥알을 듬뿍 떠 올렸다. ​그녀의 손이 사시나무처럼
last updateTerakhir Diperbarui : 2026-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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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화: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국밥 3

​"어...?"​옥연이 바닥을 짚은 채 멍한 눈으로 고개를 치켜들었다.​천장에 매달려 숨을 거두어가던 낡은 등불.​그 안의 미세했던 푸른 불씨가, 옥연의 눈물방울이 증발하는 순간 기괴한 소리를 내며 미친 듯이 끓어오르기 시작했다.​파아아앗!​푸른색이 아니었다.​그것은 태양의 심장을 그대로 뜯어내어 좁은 부엌 안에 처박아 놓은 듯한, 눈을 뜰 수조차 없이 찬란하고도 맹렬한 순도의 황금빛이었다.​'순수한 사랑'이라는 인간의 가장 무겁고도 궁극적인 제물을 삼킨 등불이, 칠백 년의 굴레를 박살 내며 폭발적인 신격을 되찾는 경이로운 신호였다.​콰아아앙!​등불 안에서 응축되었던 황금빛이 거대한 불기둥이 되어 부엌 천장을 사정없이 뚫고 솟구쳐 올랐다.​초가지붕을 뚫고 밤하늘의 먹구름까지 갈라버릴 듯 뻗어 나간 그 거대한 빛의 기둥에, 마당 외곽을 지키던 뱃사공들이 기겁하며 바닥에 나자빠졌다.​"저, 저게 대체 무슨 빛이냐!"​"하늘에서 벼락이... 벼락이 거꾸로 치솟고 있어!"​천지를 진동시키는 거대한 파열음과 함께, 부엌 안의 좁은 공간이 숨통을 짓누르는 거대한 중력으로 완벽하게 밀봉되어 버렸다.​옥연은 쏟아지는 황금빛의 폭풍 속에서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바닥을 부여잡고 가쁘게 숨을 몰아쉬었다.​온몸의 뼈가 으스러질 듯한 압박감 너머로, 익숙하고도 깊은 물이끼 향이 폭포처럼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화마의 매캐한 냄새를 단숨에 덮어버린, 깊고 차가운 강물 밑바닥의 그 짙은 체향이었다.​지이잉.​거칠게 휘몰아치던 황금빛 폭풍이 단 한 번의 손짓에 베인 듯 일순간에 잦아들었다.​부엌 안을 가득 채웠던 거대한 파동이 스르르 가라앉고, 서리가 내린 듯한 싸늘하고도 기품 있는 정적이 그 자리를 무겁게 채웠다.​옥연은 덜덜 떨리는 긴 속눈썹을 천천히 위로 들어 올렸다.​황금빛 잔상들이 은가루처럼 부스러져 내리는 낡은 탁자 앞.​그곳에, 산산조각 나 소멸했던 사내가 완벽하고도 굳건한 실체를 이룬 채 거대한 산처럼 우뚝 서 있었다.​어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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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화: 갑을 관계의 완벽한 역전 1

​매서운 초겨울의 삭풍이 밤새 삼강 나루터의 얼어붙은 흙바닥을 날카롭게 할퀴고 지나갔다.잿빛 먹구름이 걷힌 동녘 하늘 너머로, 시리도록 맑고 투명한 아침 햇살이 비스듬히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유옥연은 안방의 윗목 바닥에 깔린 이불 속에서 천천히 무거운 눈꺼풀을 밀어 올렸다.밤새도록 뼛속을 파고들던 지독한 강바람의 한기는 온데간데없었고, 코끝에는 깊고 차가운 물이끼 향만이 짙게 배어 있었다.​자신을 단단하게 감싸고 있는 묵직한 온기에 옥연은 무의식중에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그녀의 뺨에 닿아 있는 것은 거칠고 낡은 무명 이불이 아니라, 은실로 물결 문양이 정교하게 수놓아진 최고급 남색 명주 천이었다.​옥연의 몸이 일순간 돌덩이처럼 딱딱하게 굳어버렸다.자신이 지금 덮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수호신령 휘가 평소 걸치고 다니던 그 기품 있는 도포 자락이었다.​간밤의 끔찍하고도 비현실적이었던 기억들이 둑이 터진 거센 강물처럼 옥연의 머릿속으로 미친 듯이 밀려들어 왔다.​시뻘겋게 타오르던 흙담장의 불길.스스로 금제를 깨고 바깥으로 걸어 나가 산산조각으로 부서져 내리던 사내의 창백한 얼굴.​그리고 그 참혹한 소멸의 재단 앞에서, 이성을 잃고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토해냈던 자신의 처절한 목소리.​'제가 당신이 필요합니다...!'​옥연의 핏기 없던 뺨이 순식간에 끓는 물을 끼얹은 것처럼 시뻘겋게 달아올랐다.이불깃을 틀어쥔 손가락 마디마디가 수치심과 경악으로 하얗게 질려 사시나무처럼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도련님을... 연모하고 있습니다. 제발 나를 두고 떠나지 마십시오...!'​"미쳤어, 유옥연."​옥연이 양손으로 붉어진 제 뺨을 사정없이 내리치며 앓는 소리를 토해냈다.눈앞에서 사내가 한 줌의 재로 사라질 것이라 확신했기에, 평생 입 밖에 낼 일 없으리라 여겼던 속마음을 그야말로 바닥까지 박박 긁어 보여준 셈이었다.​결국 가장 순수하고 무거운 제물을 삼킨 신령은 눈부신 황금빛 기둥과 함께 완벽하게 부활해 버렸다.부서질 듯 자신을 껴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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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화: 갑을 관계의 완벽한 역전 2

​"밤새... 마당을 지켜주신 사공 어르신들께 드릴 국밥을 지어야 합니다."​옥연이 목소리가 심하게 떨리는 것을 감추려 애쓰며, 휘의 곁을 잰걸음으로 스쳐 지나가려 했다.하지만 그녀가 부엌 바닥으로 발을 내디디기도 전에, 길고 차가운 손가락이 옥연의 가는 손목을 허공에서 낚아채듯 꽉 움켜쥐었다.​탁.​"어딜 도망가느냐."​뼛속을 울리는 낮고 고풍스러운 음성이 옥연의 귓가로 차갑게 떨어져 내렸다.휘가 손목을 쥔 손가락에 가뭇한 힘을 주어 제 쪽으로 살짝 당기자, 옥연의 몸이 종잇장처럼 휘청거리며 사내의 곁으로 속절없이 끌려갔다.​옥연이 중심을 잡으려 버둥거리다, 기어이 고개를 들어 휘의 얼굴을 마주하고 말았다.세로로 길게 찢어진 사내의 눈동자 안에는 평소의 차가운 청색이 아닌, 아침 햇살을 모조리 집어삼킨 듯 찬란하고 농밀한 금빛이 찰랑거리고 있었다.​휘는 자신의 손아귀에 갇혀 옴달싹달싹 못 하는 옥연을 올려다보며, 잘생긴 입꼬리를 비스듬히 끌어올렸다.그것은 사냥감을 완벽하게 몰아넣은 포식자의 오만함과, 주체할 수 없는 희열이 끈적하게 뒤섞인 무서운 미소였다.​"내 기억이 맞다면, 간밤에 이 흙바닥을 뒹굴며 나를 부여잡고 놓지 않던 계집이 하나 있었는데."​휘가 옥연의 손목을 잡은 채 자리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장신의 사내가 일어서자, 커다란 그림자가 옥연의 정수리 위로 쏟아지며 부엌의 좁은 공간이 숨 막힐 듯 꽉 채워졌다.​"대체 뉘 집 하인이길래 주인이 사라진다고 그토록 짐승처럼 울부짖었는지."​사내의 짓궂고도 다정한 조롱에 옥연의 입술이 파르르 떨려왔다.옥연은 잡힌 손목을 비틀어 빼내려 안간힘을 썼지만, 완벽하게 기력을 회복한 신령의 악력을 인간의 힘으로 당해낼 방도는 없었다.​"그... 그것은...!"​옥연이 눈을 질끈 감으며 갈라진 목소리로 변명을 쥐어 짜내려 했다.​"갑작스러운 화마에 놀라 이성을 잃었던 것뿐입니다! 절대 제 본심이 아니었으니, 그만 잊어주십시오!"​"잊어라?"​휘의 미간이 무섭게 일그러
last updateTerakhir Diperbarui : 2026-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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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화: 갑을 관계의 완벽한 역전 3

그 간극이 주는 달콤함이 신령의 이성을 마비시킬 정도로 짜릿했다. ​"하." ​휘가 낮게 탄성을 뱉으며, 국자를 뺏으려던 손에서 돌연 힘을 툭 풀어버렸다. 그의 힘에 밀려 팽팽하게 버티고 있던 옥연은, 갑자기 저항이 사라지자 중심을 잃고 뒤로 크게 휘청거렸다. ​"앗...!" ​옥연의 몸이 딱딱한 아궁이 벽면을 향해 무방비하게 꺾여 들어가는 순간이었다. 휘의 커다랗고 단단한 팔이 허공을 갈라, 뒤로 넘어가는 옥연의 가녀린 허리를 사정없이 낚아채어 제 품으로 다시 끌어안았다. ​와락. ​국자가 바닥으로 요란하게 굴러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옥연의 등이 사내의 넓은 팔에 완벽하게 결박당하고 말았다. 휘는 옥연의 허리를 안은 채, 그녀의 뒷모습이 부엌 벽에 가볍게 닿을 때까지 거침없이 밀어붙였다. ​좁은 부엌의 흙벽과 거대한 사내의 가슴팍 사이에 옥연의 얇은 몸이 빈틈없이 갇혀버렸다. 도망갈 곳을 완벽하게 차단당한 옥연이 숨을 헐떡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찌 이리 요란하게 구느냐." ​휘가 한쪽 팔로 벽을 짚고 옥연을 가둔 채, 나직하고 짙은 음성을 내리깔았다. 그의 얼굴이 옥연의 코앞까지 다가오자, 수려한 이목구비가 뿜어내는 비현실적인 압박감에 옥연은 호흡마저 잊어버리고 말았다. ​"내가 네 것이라 먼저 선언한 것은 너다." ​휘의 길고 차가운 손가락이 옥연의 턱선을 타고 올라와, 붉게 달아오른 뺨을 살그머니 쓸어내렸다. 피부를 스치는 차가운 체온 너머로, 뼛속까지 녹여버릴 듯한 농밀한 신력이 옥연의 혈관을 타고 찌르르 흘러들었다. ​"나는 그저, 주인의 곁에 마땅히 머물러야 할 내 자리를 되찾으려는 것뿐이니라." ​사내의 금빛 눈동자가 옥연의 떨리는 입술을 포식자처럼 집요하게 응시했다. 그의 차가운 숨결이 옥연의 입술 위로 당장이라도 쏟아질 듯 위험하게 얽혀 들고 있었다. ​옥연은 쿵쾅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이대로 사내의 숨결을 받아들인다면, 다신 이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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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화: 무장한 순사들과 주모의 문턱 1

휘의 나직한 음성이 아침 햇살을 타고 부엌 안으로 떨어진 뒤에도, 유옥연은 한동안 무쇠 국자만 가슴 앞에 세운 채 움직이지 못했다.아궁이에서 피어오른 열기가 뺨을 달구고 있었으나, 사내의 서늘한 숨결이 스쳤던 입술과 목덜미에는 아직 가느다란 소름이 남아 있었다.상마루로 돌아선 휘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남색 도포 자락을 정돈했다.완전히 되찾은 실체는 아침빛 아래서도 조금의 흐려짐이 없었고, 은실로 수놓아진 물결 문양은 그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살아 있는 강물처럼 출렁였다.옥연은 국자 자루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심장이 제멋대로 날뛰는 것과, 반드시 바로잡아야 할 말은 별개의 일이었다."잠시만요."휘의 걸음이 멎었다.그가 어깨너머로 고개를 돌리자, 금빛이 엷게 남은 눈동자가 옥연의 얼굴을 곧게 향했다."저는 도련님의 물건이 아닙니다."부엌 안에 남아 있던 도깨비불 하나가 놀란 듯 파르르 흔들렸다가 아궁이 뒤로 숨었다.휘의 잘생긴 입매에서도 조금 전까지 걸려 있던 오만한 미소가 천천히 지워졌다.옥연은 달아오른 뺨을 감추지 않고 그의 시선을 받아냈다."도련님께서 저를 살려주신 일은 평생 잊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제 목숨을 빚으로 잡아 저를 마음대로 하셔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휘는 대답하지 않았다.그의 길고 창백한 손가락이 소매 끝에서 한 번 굽혀졌다가, 아무것도 쥐지 못한 채 느리게 펴졌다."여, 연모한다 하였던 말도 거짓은 아니었습니다."말이 입술을 벗어난 순간, 옥연의 손에 들린 국자 끝이 작게 흔들렸다.그래도 그녀는 눈을 피하지 않았다."하지만 연모하는 것과 누구의 소유가 되는 것은 다릅니다."휘의 눈동자에서 찰랑이던 금빛이 깊게 가라앉았다.그는 상마루에서 내려와 옥연의 앞에 섰지만, 이번에는 손을 뻗어 그녀를 끌어당기지 않았다."안다."짧게 떨어진 한마디가 뜻밖에도 변명 없이 단정했다.옥연이 눈썹을 미세하게 들어 올리자, 휘는 그녀가 방패처럼 세운 국자를 한 번 내려다보았다."내가 네 목숨을 지켰다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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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화: 무장한 순사들과 주모의 문턱 2

그가 대문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새로 바른 흙담장 표면에 얇은 서리가 삽시간에 번져 나갔다."오겠다는 미물이 있다면 오라 하거라. 이번에는 뼈 한 조각도 문밖으로 돌려보내지 않을 터이니.""안 됩니다."옥연이 즉시 잘라 말했다.휘의 눈썹 끝이 위로 올라갔다."무장 순사들을 이 자리에서 해치시면, 오늘 밤에는 더 많은 사람이 총을 들고 올 것입니다.""그 또한 모조리 묻으면 그만이다.""그러다 온 나라 사람을 다 묻으실 셈입니까.""필요하다면."조금의 망설임도 없는 답에 김 씨가 마른침을 삼켰다.옥연은 이마를 짚고 싶은 것을 참으며 휘의 소매를 단단히 붙들었다."저들은 도련님의 힘을 두려워하는 만큼, 그 힘을 핑계 삼아 여기 있는 사람들을 잡아갈 것입니다."옥연의 손가락 아래에서 남색 명주가 팽팽하게 당겨졌다."문턱을 지켜주십시오. 그 안에서 말하는 일은 제가 하겠습니다."휘의 청색 눈동자가 소매를 붙든 옥연의 손으로 내려왔다.한동안 아무 말도 없던 그가 마침내 작게 혀를 찼다."상처 입은 몸으로 고집만 늘었구나.""도련님께 배웠습니다."휘의 눈매가 가늘어졌다.하지만 담장 위를 타고 오르던 서리는 더 퍼지지 않고 그 자리에서 멈추었다.옥연은 부엌으로 돌아가 아궁이 앞에 앉았다.도망치지 않기로 했다면, 이제 해야 할 일은 사람을 맞을 준비였다.그녀는 살얼음이 뜬 물에 쌀을 씻고 남아 있는 시래기를 다듬었다.손바닥의 터진 상처마다 물이 닿을 때면 어깨가 가늘게 굳었지만, 쌀알을 훑는 손길은 흐트러지지 않았다."이 판국에 밥을 짓겠다는 게요?"김 씨가 부엌 문지방 앞에서 눈을 크게 떴다."빈속으로 총 든 사람을 상대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옥연은 씻은 쌀을 시루솥에 안치며 아궁이 불을 높였다."어르신도 한술 뜨십시오. 밤새 아무것도 못 드셨지요?"김 씨의 검게 탄 얼굴이 일그러졌다.그는 무언가 말하려다 입을 다물고, 품속에 손을 깊숙이 넣었다."그 전에 주모에게 보여줄 것이 있소."김 씨가 꺼낸 것은 손바닥
last updateTerakhir Diperbarui : 2026-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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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화: 무장한 순사들과 주모의 문턱 3

"이 터는 제 어머니께서 제게 남기신 재산입니다."옥연은 집문서를 두 손으로 펼쳐 보였다."저는 죄를 지어 도망친 사람이 아니라, 제 집으로 돌아온 주인입니다.""네 친족은 네가 가문의 빚을 피해 달아났다고 했다.""그 빚은 제 것이 아닙니다."옥연의 목소리는 높아지지 않았다.오히려 한 글자씩 낮고 선명하게 떨어져, 얼어붙은 마당 끝까지 닿았다."제게 죄가 있다면 적힌 죄목을 보이십시오. 영장이 없다면 어느 법으로 저를 포박하겠다는 것인지 말씀해 주십시오."서장의 콧수염 아래 입매가 굳었다.오카다가 한 걸음 앞으로 튀어나왔다."이 계집은 사특한 요괴를 부려 관헌을 공격했습니다! 저 머슴 놈이 사람을 허공으로 날리는 것을 내 두 눈으로...""그 전에 이것부터 보시지요."옥연은 집문서를 접고 검은 수첩을 꺼냈다.오카다의 얼굴에서 남아 있던 핏기가 단숨에 사라졌다."그, 그것을 어디서...""간밤 강가 길목에 떨어져 있었습니다."김 씨가 삿대를 짚고 옥연의 옆으로 나섰다."최 참판에게 받은 돈도, 우리 주막에 불을 지르려고 기름을 산 값도 전부 적혀 있더이다."옥연은 수첩을 서장 쪽으로 내밀었다.서장이 손짓하자 젊은 순사 하나가 다가와 그것을 받아 갔다.종이를 넘기는 소리만 마당을 메웠다.한 장, 두 장.서장의 눈이 아래로 내려갈수록 오카다의 숨소리는 거칠어졌다."조작입니다, 서장님!""조용! 네 필체가 아니라고?"서장이 마지막 장을 펼친 채 물었다.오카다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last updateTerakhir Diperbarui : 2026-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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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화: 무장한 순사들과 주모의 문턱 4

"친족과 재산 문제는 장부를 다시 확인한 뒤 처리한다. 다음 출석 명령을 거부하면 그때는 군중도, 요행도 네 방패가 되지 못할 것이다.""정식 문서가 온다면 제 발로 가겠습니다."옥연은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그 전에는 누구도 이 문턱 안의 사람을 함부로 끌고 가지 못합니다."서장의 눈길이 옥연의 뒤에 선 휘와 마당을 채운 사공들을 천천히 훑었다.그는 대답 없이 외투 자락을 돌렸다."돌아간다!"무장 순사들의 군홧발 소리가 대문 밖으로 멀어졌다.마지막 검은 제복이 강가 길목 너머로 사라지고 나서야, 마당에 모인 사람들이 한꺼번에 눌러 참았던 숨을 토해냈다.누군가는 주저앉았고, 누군가는 옆 사람의 어깨를 붙들었다.옥연 역시 문설주에 손을 짚었다.무릎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들키기 전에 차가운 손 하나가 그녀의 팔꿈치를 받쳤다.휘였다.그의 눈동자는 다시 청색으로 가라앉아 있었지만, 옥연을 받친 손가락에는 좀처럼 힘이 빠지지 않았다.​"아직 완전히 물러간 것은 아닙니다."​옥연이 멀어진 길을 바라보며 나직이 말했다.​"알고 있다."​"헌데... 왜 그리 저를 빤히 보십니까? 제 얼굴에 재라도 묻었습니까."​"...네가 언제쯤 무서워 내 도포 자락을 붙들까, 그것을 기다리고 있었다."​휘의 시선이 옥연의 얼굴에 오래 머물렀다.​"끝까지 홀로 버티더구나. 괘씸할 만큼."휘의 엄지손가락이 옥연의 소매 위를 한 번 느리게 쓸었다.옥연은 다시 뛰려는 맥박을 감추려 팔을 빼고 사람들 쪽으로 돌아섰다."국이 다 식겠습니다."그 한마디에 마당
last updateTerakhir Diperbarui : 2026-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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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화: 첫눈과 반려의 계약 1

- 1936년 12월 초 (첫눈이 오기 전) -사흘 동안 부엌 흙벽의 첫 빗금은 단 한 번도 지워지지 않았다.아침마다 옅은 햇살이 문창살을 통과해 들어오면, 거칠게 긁힌 세로줄과 가로줄 안쪽에서 금빛 가루가 숨을 쉬듯 희미하게 반짝였다.유옥연은 젖은 행주로 그 주변의 그을음만 조심스럽게 훔쳐냈다.행주 끝이 가장 먼저 그어진 세로줄에 가까워질 때마다, 길고 차가운 손가락 사이로 제 손을 끼워 넣었던 감촉이 손바닥 위로 되살아났다."벽에 구멍이 나도록 들여다볼 셈이냐."상마루 쪽에서 낮은 음성이 떨어졌다.옥연의 손끝이 흠칫 멈췄다.짙은 남색 도포를 입은 휘가 기둥에 비스듬히 기대어, 찌그러진 나무 숟가락을 손가락 사이에서 천천히 굴리고 있었다.사흘 전 완전히 되찾은 실체에는 조금의 흐려짐도 없었다.차가운 아침빛이 창백한 뺨과 곧게 뻗은 콧날을 스칠 때마다, 사람의 얼굴이라기에는 지나치게 말끔한 선이 눈앞으로 또렷하게 살아났다.옥연은 얼른 행주를 접어 물대야 옆에 내려놓았다."손님들의 외상 장부입니다. 지워지지 않도록 살피는 것이 당연하지요.""내가 보기에는 다른 생각에 정신을 빼앗긴 얼굴이었느니라."휘의 청색 눈동자가 옥연의 손에서 얼굴로 느리게 올라왔다.그 시선이 뺨에 닿자, 옥연은 괜히 아궁이 앞에 놓인 마른 장작을 가지런히 맞추었다."아침부터 사람의 얼굴을 그리 뜯어보지 마십시오.""보지 말라는 말은 지난번에도 들었지."휘가 나무 숟가락을 상마루에 내려놓으며 몸을 일으켰다."하지만 네가 먼저 내 손을 잡아놓고 이제 와 시선까지 거두라 하면, 이 또한 지나친 횡포가 아니냐."옥연의 손에
last updateTerakhir Diperbarui : 2026-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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