جميع فصول : الفصل -الفصل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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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헤어져야 해

"……어떡하지." ​하성에게는 아직 짊어져야 할 거대한 회사 빚이 있었다. 게다가 그곳은 돌아가신 아버지가 남긴 유산이자, 그의 목숨이나 다름없는 곳이었다. 만약 그 미친 여자 때문에 하성의 인생까지 진흙탕에 처박힌다면…… 지연은 숨이 멎을 것 같았다. 절대, 하성만큼은 망가뜨릴 수 없었다. ​'헤어지면…… 괜찮을까.' ​문득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에 지연의 정신이 번뜩 들었다. 왼손 약지에서 은은하게 빛나는 반지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떠오른 한 사람, 주영이었다. 평소 업무 호흡도 잘 맞고, 하성을 향한 마음을 은근히 내비치던 주영이라면. 자신보다 훨씬 안정적으로 하성의 곁을 지켜줄 수 있지 않을까. ​심장이 찢어지게 아파왔지만, 지연은 굳게 결심했다. ​"헤어져야 해." ​하성에게 조금의 피해라도 가기 전에, 그와 완전히 끝내는 것만이 유일한 답이었다. 심장이 갈라지는 듯한 고통에 지연의 눈물방울이 툭,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토록 원하지 않았던, 다른 사람이 내 남자를 만나는 상상. 하지만 지금 당장 그를 지킬 방법은 이것밖에 없었다. . . . ​"여행?" ​퇴근 후 지연의 집으로 곧장 찾아온 하성이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응. 우리 최근에 너무 바빠서 주말에도 제대로 못 놀았잖아." "좋지. 어디로 갈까? 하와이라도 갈래?" "아니, 그냥…… 바다. 동해 바다가 보고 싶어." "소소하긴. 그래, 가자. 언제?" "음…… 오늘?" "그럴까? 토요일이기도 하고. 맨날 집 데이트만 해서 아쉬웠는데 잘 됐네." ​하성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빠르게 서치를 시작했다. 오션뷰가 훌쩍 보이는 5성급 호텔부터 프라이빗한 요트 투어까지, 막힘없이 예약을 마친 하성이 옆에서 힐끔거리는 지연을 향해 피식 웃으며 손을 뻗어 볼을 잡아당겼다. ​"이지연, 사랑해. 최근에 이 말 안 한 지 좀 된 것 같아서." "어……?" "뭐야, 반응이 왜 이래. 나도 사랑해, 라는 말을 들으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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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마지막 여행(1)

​1시간 뒤.​격렬했던 온기가 지나간 자리엔, 땀에 젖어 거칠어진 숨소리만이 옅게 내려앉았다. 지연은 천근만근 무거워진 몸을 겨우 일으켰다. 그런 지연의 지친 기색을 알아챈 것일까. 하성이 먼저 손을 내밀어 그녀의 마른 손을 꽉 붙잡았다.​두 사람은 말없이 서로의 체온에 기대어 화장실로 향했다.​"이지연."​샤워기의 미온수가 떨어지는 소리 사이로 하성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울렸다.​"오늘따라... 더 적극적이더라."​하성의 눈빛에 묘한 열기와 다정함이 동시에 스쳤다. 지연은 차오르는 울컥함을 삼키며 힘없이 피식 웃었다.​"그랬나.""이리 와. 씻겨줄게."​지연은 온전히 제 몸을 하성에게 맡겼다. 하성의 커다란 손길이 닿을 때마다 살결이 짜릿하게 반응했지만, 그 안에는 슬프도록 깊은 애정이 묻어났다. 구석구석 정성스럽게 비누칠을 해주는 손길. 그 따스함이 오히려 지연의 심장을 짓누르는 것 같았다.​자신도 하성을 씻겨주려 샤워볼을 집어 들던 찰나, 하성이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지연을 밀어냈다.​"너 감기 걸려. 씻고 먼저 나가.""응? 참나... 맨날 이러지? 오빠만 나 씻겨주고.""얼른."​매번 이맘때면 감기 걸린다는 핑계로 제 손길을 거부하던 하성이었다. 오늘도 어김없었다. 평소라면 툴툴거리며 장난을 쳤겠지만, 오늘은 달랐다. 마지막일 줄 모른다는 생각에 ​지연의 가슴 깊은 곳에서 차가운 서운함이 울컥 치밀었다. 화장실을 나와 ​옷장을 열어 꺼낸 것은 하늘색 원피스.처음 하성과 함께 바다를 보러 갔던 날 입었던 옷이었다. 바다와 가장 잘 어울릴 거라 생각해서였다.​잠시 후, 화장실 문이 열리고 하성이 나왔다. 늘 입던 깔끔한 슬랙스 바지에 검은색 티셔츠. 변함없는 그의 모습에 지연의 가슴이 또 한 번 저며왔다.​"오늘도 그거 입게?"하성이 원피스를 힐끗 보며 물었다."응. 이게 편해. 가자."​차로 향하는 길, 두 사람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손은 맞잡고 있었지만, 그 온도는 묘하게 어긋나 있었다. 하성은 운전석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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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마지막 여행(2)

​"이지연?"​"어?"​"세 번이나 불렀는데 대답을 안 해. 무슨 생각 한 거야. 설마 저 근육남 본 거야?"​하성이 능청스러운 눈짓으로 가리킨 곳에는 상의를 탈의한 채 바다를 즐기는 남정네들이 있었다. 지연은 황당하다는 듯 두 손을 휘저으며 발끈했다.​"아니야! 저런 사람들 봐서 뭐 해."​"그럼 내 복근은 별로야?"​"아니... 그게 아니고."​말을 더듬는 지연을 보며 하성이 피식 웃더니, 제 손을 가져다가 자신의 탄탄한 배 위에 척 올렸다. 옷 너머로 고스란히 전해지는 선명한 왕자의 감촉. 지연은 얼굴이 새빨개져서는 화들짝 손을 떼어냈다.​"오빠, 밖이잖아!"​"어차피 다 우리한테 관심 없어. 음... 안에 들어가면, 마음껏 만질거야?"​"진짜 못 말려, 진짜."​장난스레 웃는 하성의 얼굴을 보며 지연과 하성은 서로를 향해 눈웃음을 지었다.​이렇게만. 딱 이렇게만 평생을 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지연은 차오르는 눈물을 삼키며 손을 꽉 오므렸다. 한쪽 입꼬리만 슬프게 올려 웃으며, 서서히 붉게 물들어가는 석양을 바라보았다. 저 해가 지고 나면, 정말로 모든 게 끝이었다.​"오빠."​"응?"​"나랑... 앞으로 하고 싶은 거, 뭐 있어?"​"음, 글쎄. 난 너만 있으면 돼. 딱히 바라는 거 없어."​"에이, 그게 뭐야~ 대충대충 넘어가기는."​지연은 장난스럽게 타박하면서도, 끝내 하성의 눈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다. 자꾸만 시선을 피하고 속으로 뭔가를 숨기는 지연의 태도. 하성은 그 어색한 낌새를 눈치채고 있었다.​결혼까지 약속한 사이인데, 왜 자꾸 저를 밀어내려 하는지. 서운함이 물밀듯 밀려왔다. 하성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지연의 손목을 부드럽게 끌어당겼다. 그러고는 제 품에 가두듯 안으며 그녀의 귓가에 낮게 속삭였다.​"방에 갈까? 할 얘기 있어."​"...그래. 가자."​지연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숙소 방으로 돌아온 두 사람. 하성은 지연을 쇼파에 나란히 앉히고는, 진지하게 가라앉은 눈으로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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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우리 헤어지자

다음 날 아침. ​지연은 회사에 출근하자마자 코트 안주머니에 품어두었던 사직서를 손끝으로 꾹 쥐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어내렸다. 하성이 대표실로 들어간 지 딱 10분이 지난 시각, 지연은 마른침을 삼키며 두 눈을 질끈 감고 대표실 문을 밀고 들어갔다. ​안쪽에서 하성은 한 손으로 서류를 넘기며 통화 중이었다. 지연을 발견하곤 자상한 눈웃음을 지으며 손짓으로 소파에 앉으라는 신호를 보냈다. ​지연은 멍한 얼굴로 그 가리킨 자리에 주저앉았다. 잠시 후, 통화가 끝났다. 하성은 가볍게 발걸음을 옮겨 지연의 곁으로 다가왔다. ​"보고할 거 있어?" ​"아... 어제 얘기해 주려고." ​'어제'라는 단어가 나오자마자, 하성의 얼굴에 있던 장난기가 거짓말처럼 싹 사라졌다. 그는 그저 묵묵히 지연을 내려다보았다. ​겨우겨우 목구멍 밖으로 끌어낸 말이었다. ​"우리 헤어지자." ​하성의 눈동자가 순식간에 흔들렸다. 어제까지 웃으며 여행 다녀온 뒤였으니깐. 말도 안됐다. 장난이겠거니 싶어 하성은 뒷머리를 긁었다. ​"응? 오늘 만우절이라도 된 거야? 갑자기 무슨 농담을." ​"농담 아니야. 내 짐은 내일 뺄게. 그리고 여기, 사직서." ​지연은 마치 아무런 감정도 남지 않은 사람처럼, 마르고 건조한 눈으로 사직서를 내밀었다. 그 서늘한 기색에 하성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의 눈빛이 장난이 아니라는 걸 직감했기 때문이다. ​"갑자기 왜 그래. 내가 뭐 잘못했어?" ​"……질렸어. 오빠 같은 남자. 매일 바보같이 웃기나 하고, 내 인생에 도움도 안 되는 오빠는 이제 필요 없어." ​"질렸다고?" ​"응. 더 이상 만나지 말자." ​"어머니 때문이야? 그런 거면 내가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어. 날 다시 한 번만 믿어줘, 지연아." ​"늦었어." ​지연은 더 들을 가치도 없다는 듯 매몰차게 몸을 돌려 대표실을 빠져나왔다. ​곧장 비상계단 문을 열고 들어간 그녀는, 문이 닫히자마자 다리가 풀린 듯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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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부탁

​하성과 내일 다시 이야기하기로 약속을 매듭지은 직후, 지연은 차갑게 식어버린 손으로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다. 화면을 두드려 누군가에게 짧은 메시지를 전송했다. [​할 얘기 있는데, 잠깐 시간 돼요?] [네, 괜찮아요.] [그럼 1층 카페에서 만나요.] ​잠시 후, 고요한 1층 카페 구석 자리. ​지연은 테이블 위에 놓인 아이스 아메리카노 잔을 멍한 눈으로 바라보며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얼마나 지났을까, 문이 열리며 울리는 경쾌한 딸랑거리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 다가왔다. ​우아하게 흐르는 웨이브 머리, 짙고 선명한 쌍꺼풀, 그리고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깔끔하게 정리된 눈썹. 고주영이었다. ​주영은 자리에 앉으며 가방을 내려놓았다. 묘하게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죄송해요. 약속 시간보다 늦었네요." ​"아니에요. 나야말로 와줘서 고마워요." ​두 사람 사이에 즉시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주영의 표정은 복잡미묘했다. 지연을 향한 미약한 질투와 은근한 부러움, 그리고 그동안 품어왔던 씁쓸한 서운함까지 고스란히 얼굴에 스쳐 지나갔다. 결국 먼저 입을 연 것은 지연이었다. ​"미리 말 못 해서 미안해요." ​주영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원래 사내 연애가 그런 거잖아요. 남들 눈도 있으니까." ​"이해해 줘서 고마워요. 근데... 조만간 회사 그만두려고요. 대표님이랑도 헤어질 거고." ​탁! ​주영의 눈동자가 순식간에 동그랗게 커졌다. ​이게 무슨 소리야? ​귀를 의심했다. 사내 커플로 모르는 사람이 없고, 조만간 결혼 얘기까지 오간다고 소문난 두 사람이었는데. 주영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상체를 테이블 쪽으로 불쑥 숙였다. ​"네? 그게 무슨 소리예요. 갑자기 왜..." ​"결혼 준비하면서 알았는데, 대표님이랑 저... 잘 안 맞더라고요. 그래서... 주영 씨가 내 자리, 들어와도 좋아요. 대표님이랑 잘 돼도 좋고요." ​주영은 경악으로 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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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사직서

집에 도착한 지연. 하성의 집이 아닌 자신의 집 침대 위에 누운 그녀는 여러 생각이 들었다. 과연 잘하는 일일까, 다른 방법은 없을까.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눈물을 지세우며 보내는 이 밤은 너무나도 외로웠다. 한여름이지만 춥게만 느껴지는 이 순간. "오빠..."그녀는 하성을 그리워하며 지쳐 잠들 수밖에 없었다.​다음날, 하성은 직원들의 퇴근 시간이 되어서야 지연과 다시 마주 볼 수 있었다. 하성은 책상을 검지로 톡톡 치며 잠시 생각에 잠긴 듯했다. 10분이 지나서야 그가 무거운 입을 열었다.​"32년 동안 부모님보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고 내가 너한테 고백했던 거 기억나?"​지연은 대답하면 눈물이 흐를까 봐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하성은 그런 그녀와 1년 동안 사귀었기에 지연이 대답하지 않는 이유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겉으로는 차가워 보이지만, 속으로는 부서져 내리고 있다는 것을 티 내지 않을 뿐이었다.​"넌 이제 변했다고 하지만 나는 그때랑 지금이랑 똑같아. 네가 이 세상에서 가장 좋고 내 전부라고. 그리고 너도 몇 주 전까지는 내가 한 말 그대로 했었잖아. 내가 전부라고. 근데 그 마음이 어떻게 며칠 안에 변해."​".. 저 이만 가보겠습니다. 아무리 그러셔도 제 마음은 변하지 않아요. 다시 말할게요. 이번 달까지 사직서 처리해 주세요."​지연의 차가운 목소리는 하성의 가슴에 비수를 꽂았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품에 안겨 사랑을 속삭이던 여인이 맞나 싶을 정도로 낯선 그 표정 앞에, 하성의 이성 지킬 선이 툭 끊어져 버렸다.​‘도대체 왜? 무엇 때문에 이렇게까지 악착같이 나를 밀어내는 거야?’​가슴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불안과 배신감, 그리고 이러다 정말 그녀를 영영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극심한 공포가 뜨거운 쇳물처럼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그녀의 차가운 뒷모습을 이대로 보낼 수는 없었다.​"그놈의 사직서! 찢으면 그만이야!"​찌이익-!​하성은 눈에 핏발이 선 채로 지연이 내민 사직서를 사정없이 갈기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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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헤어짐

다음날, 지연은 출근하자마자 대표실로 들어가 어제보다 더 단호한 눈빛으로 다시 한번 사직서를 그에게 건넸다.​"저.. 사직서 내겠습니다.""하연아, 도대체 왜 그러는 건데? 혹시… 나랑 결혼하는 게 부담스러운 거야?""대표님, 공과 사는 구분해 주세요.""…. 대표로서도 허락 못 해."​지연은 자신을 끝까지 포기하지 못하는 하성의 모습에 숨이 턱 막힐 정도로 답답하면서도, 가슴 한구석이 찢어지는 듯한 미안함으로 가득 차올랐다. ​그녀는 떨리는 마음을 억지로 짓누르며 냉정한 목소리를 짜내었다.​".. 이번 주까지는 퇴사 처리되었으면 좋겠어요.""어제는 한 달이라며.""같이 있는 게 불편해서요.""... 그래, 헤어지자, 헤어져. 그 대신 나 이제 네 얼굴 보지도 않을 거고 목소리도 듣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당장 나가!"​하성은 참고 참다 결국 이성의 끈을 완전히 놓아버렸다.​지연의 차가운 말 한마디 한마디는 그의 가슴에 깊은 상처를 냈다. 어린 시절 일찍 곁을 떠나간 부모처럼, 자신도 사랑하는 사람에게 버림받을지 모른다는 해묵은 공포가 치밀었다. ‘내가 이렇게 극단적으로 화를 내면, 지연이가 깜짝 놀라서 다시 마음을 돌리지 않을까?’ 하는 간절한 기대와 함께, 자신도 모르게 마음에도 없는 모진 말을 내뱉고 만 것이었다.​".. 알겠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사업 번창하세요."​하성이 바란 것은 이런 반응이 아니었다. 그러나 곧장 지연은 가방을 챙겨 곧장 대표실을 나와버렸다. 하성은 예상과는 180도 다른 지연의 태도에 머리가 하얗게 새하얘진 채, 어쩔 줄 몰라 하며 결국 또다시 그녀를 무력하게 보내주고야 말았다.​대표실 문이 닫히고 홀로 남겨진 하성은 주저앉아 멍하니 중얼거렸다.​"도대체 무슨 일이 있던 거야, 지연아…"​대표실을 나와 비상계단 구석에 주저앉은 지연은 그제야 참고 있던 눈물을 터뜨렸다. 손으로 입을 틀어막아도 새어 나오는 울음소리를 막을 수가 없었다.​‘헤어지자고 했어… 정말로 끝났어.’​그가 던진 "다시는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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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과거(1)

10년 전, 수능을 앞둔 지연은 늦은 시각까지 독서실에서 공부하다 집으로 돌아왔다. 늦은 시간이라 집안은 조용했고, 지연은 출출한 배를 채우려 냉장고를 뒤적였다. 그때, 안방 쪽에서 낯선 소리가 들려왔다. 조심스럽게 다가가자 진하게 들려오는 입맞춤 소리에 지연은 피식 웃음을 지었다.​'화해하셨나 보네. 다행이다... 잠깐, 아빠는 이 시간에 출근하셨을 텐데?'​설마 하는 마음에 지연은 살짝 열린 방문 틈으로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곳에는 익숙한 엄마 민정과, 전혀 익숙하지 않은 낯선 남자가 한 침대에 누워있었다. 엄마였다.​"엄... 엄마?!"​"어... 어, 지연아... 벌써 왔어?"​"이게 지금 뭐 하는 거야?! 이 남자는 누구고?!"​"그게..."​"누나, 나 먼저 갈게!"​상간남은 옷을 대충 갖춰 입고는 허겁지겁 신발을 신은 채 집을 뛰쳐나갔다.​상간남이 도망치든 말든 상관없었다. 지연에게는 민정의 변명이 급했다.​"말해 봐. 저 사람 누구야?"​"그냥... 회사 후배야."​"그냥 후배랑 키스하고 그래? 엄마 미쳤어? 아빠도 이 사실 알아?"​"너 미쳤어? 아빠가 알면 우리 끝장이야. 그러니까 제발 비밀로 해 줘..."​"비밀은무슨. 지금 당장 아빠한테 전화할 거야."​지연은 떨리는 손으로 명환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털어놓았고, 놀란 명환은 급히 일을 멈추고 집으로 뛰어왔다.​"유민정! 당신이 미쳤어? 제정신이야? 그 자식을 어떻게 집까지 들여!"​"하... 그게 뭐 그렇게 잘못됐어? 당신이 제때 이혼 안 해 주니까 이렇게 된 거잖아."​"이게 무슨 소리야?"​명환의 말에 지연은 금시초문이라는 듯 의문 어린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결국 명환은 최근에도 민정이 바람을 피웠던 전적이 있다는 사실을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다.​"그래서 요즘 두 사람이 그렇게 말도 안 하고 지냈던 거야?"​명환은 지연을 바라보며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지연아, 잠깐 밖에 나가 있을래? 아빠가 엄마랑 단둘이 할 얘기가 있어서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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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과거(2)

명환의 거듭된 달랠에도 지연의 눈물은 멈출 줄 몰랐다. 그때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민정이 집을 나서는 소리였다. 지연은 가슴을 쥐어뜯으며 죄책감에 어쩔 줄 몰라 했다. 명환 입장에서 입장에서 자신은 상간남의 자식이니깐. 하지만 명환의 생각은 달랐다.​"지연아, 넌 내 딸이야. 누가 뭐라 해도 내 하나밖에 없는 딸."​"하지만 아빠..."​"괜찮아. 아빠, 이혼할 거야. 엄마가 그 남자랑 끝내 못 헤어지겠대."​"뭐!?"​"미안하다. 너 성인 될 때까지는 아빠도 어떻게든 참아보려고 했는데..."​"그게 왜 아빠 탓이야... 내가, 내가 미안해..."​부녀는 서로를 부등켜안은 채 한참을 울었다. 그날 이후, 명환은 지연과 단둘이 새로운 시작을 하기 위해 민정과 추억이 깃든 집을 정리했다. 예상대로 민정은 양육비 한 푼 주지 않았고, 지연을 찾지도 않았다. 몇 달 뒤엔 그 상간남과 재혼했다는 소식까지 들려왔다.​한 가정의 평화가 무너진 자리에 남겨진 상처는 깊고도 질겼다. 엄마의 빈자리는 단순한 그리움을 넘어, 지연의 영혼을 갉아먹는 불안으로 다름없었다.​고등학교 생활은 가시밭길이었다. 칠판의 글자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책상에 앉아 있어도 머릿속은 엄마의 배신과 아빠의 상처로 가득 찼다. 원래대로라면 S대까지 바라볼 수 있었던 성적이었지만, 감정의 소용돌이에 휩쓸린 지연은 결국 뜻밖의 하향 지원을 해야 했다. 합격 통지서를 받아든 날, 지연은 죄송함에 아빠의 눈을 제대로 바라보지도 못했다.​하지만 명환은 그런 지연을 원망하기는커녕, 오히려 꼭 안아주며 다독일 뿐이었다.​수능이 끝나고, 대학 입학을 앞둔 어느 날 저녁.​"딸, 수고했어."​"응? 아니지! 아빠가 더 수고했지. 20년 동안 나 키우느라 고생했어. 앞으로는 내가 아빠 먹여 살릴 거야."​"대학생이 무슨!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기업 들어가면 그때 그렇게 해줘."​"응! 그때는 꼭 받아야 해. 알겠지?"​"그래그래. 우리 딸이 해주는 건 다 받을게."​지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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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과거(3)

4년 뒤, 대학교를 졸업한 지연은 대기업 취업의 문을 두드리며 고군분투했다. 하지만 계속되는 서류와 면접 탈락에 지칠 대로 지친 그녀는 결국 눈높이를 낮추어 중소기업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스물다섯이 되도록 취업 백수 신세를 면하지 못하자 마음이 급해진 지연은, 공고 내용조차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채 '하성'의 회사에 이력서를 덜컥 넣어버렸다.​면접 당일, 회사 로비에 도착해서야 그 자리가 대표의 비서직을 뽑는 자리임을 알게 되었다. 당황스러움도 잠시, 어차피 자신이 원하던 직종도 아니었기에 지연은 차라리 면접을 망쳐 떨어질 속셈으로 면접실 문을 열고 들어가 대표와 마주했다.​"이지연 씨? 왜 우리 회사에 들어오고 싶습니까?"​"돈 벌고 싶어서요."​"그럼 지연 씨에게 돈이란 뭡니까?"​"자본주의에서 가장 필요한 거라고 생각합니다."​지연은 예의를 차리기보다는 다소 삐딱하고 솔직한 태도로 모든 질문에 대답한 뒤 면접장을 나왔다. 당연히 불합격을 예상했지만, 며칠 뒤 날아온 것은 뜻밖의 합격 문자였다. 결국 지연은 울며 겨자 먹기로 하성의 회사에 비서로 출근하게 되었다.​당장 이 자리를 포기할 수 없는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다. 그 무렵, 민정이 대학 시절부터 지연의 남자친구였던 이에게 "아프다"는 핑계를 대며 1,000만 원이라는 거액을 빌려 갔기 때문이었다.​결국 마지못해 하성의 회사로 출근하게 된 지연은 억울하고 분통한 마음에 일에 제대로 집중할 수 없었다. 퉁명스러운 태도는 당연했고, 이는 결국 냉철한 성격의 대표 하성과 잦은 마찰로 이어졌다.​"회의가 있으면 아침에 한 번, 회의 들어가기 한 시간 전에 한 번 더 리마인드해 줘야지. 시작 10분 전에 알려주면 어떡합니까?"​"죄송합니다. 근데 대표님이 일정표를 공유를 안 해주셨지 않았나요? 그걸 제 탓으로 돌리시니 좀 당황스럽네요."​"...그건 내가 미안해요. 앞으로는 일정표 공유할테니 리마인드 잘 부탁합니다."​하성은 화를 내고 싶었지만, 지연의 말이 백번 맞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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