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의 낮은 목소리가 침실에 가라앉았다.서윤은 흐트러진 침대와 와인잔, 바닥에 허물처럼 떨어진 유리의 원피스를 차례로 바라봤다.마지막으로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서 있는 재헌에게 시선이 닿았지만, 두 사람이 저 침대에서 무엇을 했는지는 묻지 않았다.서윤이 자료 가방을 고쳐 들었다.“오해할 것도 없네요.”유리의 입가에 남아 있던 미소가 굳었고, 재헌의 눈썹이 거칠게 좁혀졌다.“그게 무슨 뜻이야. 지금 혼자 뭘 결론 내리고 있는 건데?”“결론 내리러 온 게 아니라 자료 가지러 왔어요. 두 분 하던 거 계속하세요.”서윤이 돌아서자 재헌은 셔츠를 집어 들고 뒤따라 나왔다. 단추도 제대로 채우지 않은 채 서재 문을 막아선 얼굴에는 당황보다 짜증이 번지고 있었다.“한서윤, 사람 말 무시하고 그냥 가지 마. 아무 일도 없었다고 했잖아.”서윤은 그를 비켜 서재로 들어가 원본 연구 자료를 챙겼다.“유리가 몸이 안 좋아서 쉬게 한 것뿐이야. 네가 멋대로 상상해서 일을 키울 이유는 없어.”서윤이 파일 지퍼를 닫으며 그를 바라봤다.“당신이 누구를 데려와 어느 방에서 재우든 이제 나한테 설명할 필요 없어요.”자신의 침대에 다른 여자가 있는 것을 보고도 이유조차 묻지 않는 서윤의 태도가 재헌의 신경을 더 거칠게 긁었다.서윤이 드레스룸에서 작은 캐리어를 꺼내 옷과 노트북을 담자 재헌이 손잡이를 움켜쥐었다.“지금 화나서 이러는 거면 나한테 화를 내. 독일에서부터 남편 전화는 전부 무시해 놓고 돌아오자마자 짐 싸서 나가는 게 정상이라고 생각해?”서윤의 손이 멈췄다.“내가 따지면 뭐라고 대답할 건데요? 유리 씨랑 키스했는지, 같이 잤는지, 왜 내 침대에 있었는지 하나씩 물어봐야 해요?”재헌의 눈빛이 순간 흔들렸지만 물러서지는 않았다.“키스 좀 한 게 그렇게 중요해? 유리랑 나는 원래 그런 사이였어. 네가 날 만나기 훨씬 전부터.”찰싹!마른 소리가 드레스룸을 갈랐다.재헌의 얼굴이 옆으로 돌아갔다. 복도에 서 있던 유리가 숨을 삼켰고, 문밖의 김
Last Updated : 2026-09-17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