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이혼하자 국가가 나를 보호하고, 전남편이 집착하기 시작했다: Chapter 91 - Chapter 100

130 Chapters

91화. 제 인생은 제가 결정할게요

“너 지금 나 협박하니?”박정희의 목소리가 갈라졌다.서윤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제 집에서 지켜야 할 선을 말씀드리는 거예요. 여기는 어머니 집도, 강재헌 씨 집도 아니에요.”서윤이 현관 쪽을 한번 바라봤다가 다시 시선을 맞췄다.“제 집이에요.”박정희의 입술이 떨렸다.“남들 앞에서 시어머니 망신까지 줄 셈이니?”예전이었다면 서윤은 먼저 다혜를 내보냈을 것이다. 남편과 따로 산다는 사실도, 시어머니에게 이런 말을 듣는 모습도 어떻게든 감추고 싶었을 것이다.하지만 이번에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다혜 씨는 저와 함께 연구하는 동료예요. 그리고 제가 부끄러운 일을 한 것도 아니잖아요.”서윤의 목소리는 여전히 낮았다.“부끄러워해야 할 말을 제가 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요.”다혜가 숨을 삼켰다.“좋다. 아주 잘났다.”박정희가 신경질적으로 의자를 당겨 앉았다.“나도 돌려 말하지 않으마. 당장 짐 싸서 들어오라는 말은 안 해. 나도 네 꼴 보기 싫으니까.”“그러세요.”“대신 이혼은 안 돼.”서윤의 눈빛이 움직였다.“강씨 집안에 이혼한 며느리 하나 만들어서 사람들 입방아에 올리고 싶지 않아. 네가 재헌이랑 방을 따로 쓰든 여기서 혼자 살든 알아서 해. 하지만 호적에 흠집 내는 짓은 안 돼.”박정희에게 중요한 건 두 사람이 어떤 부부로 사느냐가 아니었다. 한서윤이라는 며느리가 강씨 집안에 그대로 남아 있는지, 사람들 눈에 그 집안이 어떻게 보이는지가 먼저였다.서윤은 그 사실이 이제 놀랍지도 않았다.“그건 어머니께서 결정하실 일이 아니에요.”박정희가 식탁을 내리쳤다.“네까짓 게 뭔데 결정해!”서윤이 짧게 웃었다.“제 결혼인데요?”“한서윤.”“결혼할 때도 저는 강씨 집안과 한 게 아니었어요.”서윤은 식탁 위 자기 집 열쇠를 집어 들었다.“강재헌이라는 사람과 했어요. 그러니까 이 결혼을 계속할지 끝낼지도 강재헌과 제가 결정합니다.”박정희가 헛웃음을 쳤다.“몇 년 먹여주고 입혀줬더니 이제 사람 구실한다고 목에 힘을 주네. 강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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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화. 누가 안 돌아온대

오후 일정이 절반쯤 지나갔을 때였다.강재헌이 계약서에 서명하는 동안 오세진이 휴대전화를 확인하다 말을 멈췄다.“대표님, 오늘 어머님이 한서윤 박사님 댁에 다녀오셨답니다.”재헌의 펜이 멈췄다.“거길 갔다고?”“네. 김 집사님한테 주소를 물어보신 것 같습니다.”서윤이 따로 집을 구했다는 건 알고 있었다. 마음만 먹으면 주소도 알아낼 수 있었다.그래도 찾아가지는 않았다. 며칠 지나면 돌아올 사람을 굳이 쫓아갈 이유가 없었다.“무슨 일 있었대?”“자세한 건 모르겠습니다. 분위기가 좋지는 않았던 모양입니다.”“서윤이가 뭐라고 했는데?”“그것까지는 못 들었습니다.”재헌은 멈췄던 펜을 다시 움직였다.“다음 일정.”이사회와 화상회의까지 예정대로 마친 뒤 재헌은 자리에서 일어났다.“차 준비해.”오세진이 뒤따르며 물었다.“어디로 모실까요?”재헌이 재킷을 걸쳤다.“집.”***차는 서윤이 새로 구한 집이 아니라 저택으로 향했다.현관에 들어서자 김 집사가 재킷을 받아 들었다.“유리는?”“손님방에 계십니다. 어머님께서 어제 안방에 있던 차유리 씨 물건을 전부 옮기게 하셨습니다.”“왜?”“사모님 짐을 빼면서 정리하신 것 같습니다.”계단에 발을 올리던 재헌이 멈췄다.“서윤이 짐을 뺐어?”“네. 어제 사람을 보내셨습니다. 옷도 책도 전부 가져가셨습니다.”재헌이 천천히 돌아봤다.“전부?”“하나도 남겨두지 말라고 하셨습니다.”재헌은 아무 말 없이 2층으로 올라갔다.손님방 앞을 지날 때 유리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누군가와 통화 중인지 밝은 목소리가 문밖까지 새어 나왔다.재헌은 그대로 지나쳐 복도 끝 안방 문을 열었다.불이 켜지는 순간 걸음이 멈췄다.방이 전보다 훨씬 넓어 보였다.드레스룸 한쪽을 채우던 서윤의 옷이 사라져 있었다. 화장대 위도 깨끗했고 협탁에 쌓여 있던 책도 없었다.재헌은 드레스룸으로 들어가 서랍 하나를 열었다.비어 있었다.옆 서랍도 마찬가지였다.며칠 지낼 짐만 챙겨간 게 아니었다. 정말 다 가져갔다.재헌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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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화. 이 새끼 누구야?

오전 열한 시가 넘어서야 강재헌은 강성 본사 대표실로 돌아왔다.오세진은 기다렸다는 듯 태블릿과 결재판을 들고 따라 들어왔다. 재헌이 재킷을 벗어 의자에 걸어두는 동안 오후 전략회의와 미뤄둔 계약 건을 차례로 보고했지만, 재헌은 책상 앞에 서서 휴대전화부터 확인했다.밤사이 쌓인 메시지와 부재중 전화 사이에 서윤의 이름은 없었다.어젯밤까지만 해도 화가 풀리면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다. 아침이 지나고 오전 일정까지 끝났는데도 연락 한 통 없다는 게 거슬렸지만, 재헌은 휴대전화를 엎어놓고 의자를 당겼다.“두 시 회의 그대로 진행해.”“네. 미래사업본부 쪽에서 하나 더 올라왔습니다.”오세진이 결재판 아래 보고서를 꺼냈다.“도원에너지테크에서 공동개발 관련 자료를 보내왔습니다. 국가과학전략청 연계 차세대 에너지 저장 시스템 프로젝트입니다.”재헌은 별다른 관심 없이 첫 장을 넘기다가 손을 멈췄다.보고서 중앙에 익숙한 이름이 있었다.[총괄책임연구자: 한서윤]“……한서윤?”오세진도 이름을 확인하고 태블릿을 내려놓았다.“형수님 연구 분야였네요. 첨부 자료도 있습니다.”회사 안에서는 대표님이라고 부르던 그가 둘만 남자 자연스럽게 예전 호칭을 썼지만, 재헌은 지적하지 않았다.태블릿을 끌어당겨 파일을 열자 대표 논문과 원천기술 특허, 국가 연구과제, 해외 공동연구 이력이 연도별로 이어졌다.화면을 내리던 손이 점점 느려졌다.“이게 전부 서윤이 한 거야?”“대표 실적만 추린 것 같은데요.”오세진은 다른 결재서류를 펼쳐 옆에 놓았지만 재헌의 손은 그쪽으로 가지 않았다.삼 년을 같은 집에서 살았다. 서윤이 연구실에 늦게까지 남는 날이 많다는 건 알았고, 가끔 해외 학회에 간다는 것도 들었다.그 정도였다.무슨 연구를 하는지, 어디에서 발표하는지, 어떤 기술에 자기 이름을 올렸는지 제대로 물어본 적이 없었다.다음 페이지에는 국제포럼 사진이 첨부돼 있었다.검은색 슈트를 입은 서윤이 넓은 단상 위에서 대형 화면을 가리키고 있었다. 객석에는 연구자와 기업 관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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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화. 권도준은 이 년 전에 알아봤다

“권도준. 도원에너지테크 대표입니다.”오세진의 대답에 재헌의 눈이 다시 사진으로 향했다.이름을 듣자 얼굴과 정보가 맞물렸다.도원 창업주 일가의 장남이면서도 물려받은 계열사에 얌전히 앉아 있지 않은 남자. 몇 년 사이 유럽과 북미의 기술기업을 연달아 사들이며 에너지 사업의 판을 키웠고, 필요하다고 판단한 기술이나 사람은 경쟁사가 값을 올려도 결국 자기 쪽으로 가져가는 것으로 유명했다.강성에서도 권도준의 투자 움직임을 여러 번 분석했다.재헌 역시 사업에서는 밀려본 기억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오히려 저런 남자를 더 빨리 알아봤다.쉽게 움직이지 않고, 한번 움직이면 결과를 가져오는 인간.재헌이 사진을 더 확대했다.“권도준이 왜 여기 있어?”“이 프로젝트 도원에서 주관합니다.”“그건 알아.”재헌의 손끝이 서윤과 권도준 사이에서 멈췄다.“대표가 이런 실무회의까지 직접 들어오냐고.”오세진도 그제야 이상한 점을 알아차렸는지 사업 경과 파일을 열었다. 그사이 대표실 밖에서는 다음 결재를 기다리는 직원이 두 번이나 문 앞을 오갔고, 내선전화도 울렸지만 재헌은 받지 않았다.“원래 실무회의까지 자주 들어가는 사람은 아닙니다.”오세진이 화면을 내리다가 손을 멈췄다.“그런데 이건 처음부터 직접 봤네요.”“처음부터?”“기술 검토 단계에서 권도준 대표 지시로 전담팀이 붙었습니다. 한 박사님 쪽에 별도 연구공간하고 연구인력도 제공했고요.”재헌이 의자 등받이에서 몸을 떼었다.“언제.”오세진이 최초 검토일을 확인했다.“이 년 전입니다.”재헌의 손이 멈췄다.이 년 전이면 서윤은 이미 자신의 아내였다.같은 저택에서 아침을 먹었고, 자신이 늦게 들어오는 날이면 거실이나 식탁에 앉아 책을 보고 있었다. 연구실에서 밤을 새웠다는 말을 들어도 피곤하겠다는 말 한마디면 끝이었다.그동안 자신은 그녀가 정확히 무엇을 만드는지도 몰랐다.그런데 권도준은 알고 있었다.재헌은 사업 경과를 직접 넘겼다. 초기 기술검토, 투자심사, 전담인력 배정. 몇 장을 더 넘기자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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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화. 저쪽이 늦은 거지

같은 시각, 도원에너지테크 본사.“추가 장비 승인하세요.”권도준이 보고서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최민규 R&D총괄이 곧바로 받아 적었지만 투자심사팀장은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대표님, 한 박사 연구팀에 이미 별도 인력까지 붙였습니다. 상용화 시점도 확정되지 않았는데 추가 투자는 위험합니다.”“성능 개선 수치는?”“기존 대비 18.7퍼센트입니다.”“처음 목표는?”최민규가 자료를 확인했다.“15퍼센트였습니다.”권도준이 의자에 등을 기댔다.“목표보다 더 만들었는데 돈이 아깝다는 겁니까?”회의실이 조용해졌다.이런 반대는 처음이 아니었다.이 년 전, 한서윤의 논문이 처음 도원 투자검토팀에 올라왔을 때도 비슷했다. 상용화까지 오래 걸리고 투자금이 크다는 이유로 대부분이 보류를 주장했다.권도준은 논문을 끝까지 읽고 한서윤을 직접 불렀다.첫 미팅은 한 시간 예정이었다.두 시간이 지나도록 끝나지 않았다.스물아홉의 젊은 연구자는 도원 임원 여섯 명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았다. 질문이 들어오면 숫자로 답했고, 틀린 전제를 깔고 묻는 임원에게는 상대가 누구든 바로 정정했다.예쁘다는 생각은 그보다 나중이었다.회의가 끝나고 노트북을 닫은 서윤이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겼을 때, 권도준의 시선이 잠시 그 손끝을 따라갔다.평소라면 거기서 끝났을 일이었다.그런데 그날 권도준은 예정에 없던 지시를 내렸다.“이 프로젝트, 도원에서 맡죠.”당시 옆에 있던 이현석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직접 계속 보시게요?”“왜요. 문제 있습니까?”문제는 없었다.다만 권도준은 투자할 기술을 고르는 데는 집요해도 이미 선택한 프로젝트의 실무회의까지 직접 들어가는 사람은 아니었다.그런데 한서윤의 회의 일정은 이후에도 자주 그의 일정표에 올라왔다.권도준도 이유를 모르지는 않았다.두 번째 미팅에서 그녀가 결혼했다는 사실을 알았다.그래서 거기까지였다.개인적인 연락도, 식사 제안도 하지 않았다. 대신 연구공간을 따로 배정했고 필요한 인력을 붙였다. 투자심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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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화. 내가 순순히 갈라서줄 것 같아?

오전 열한 시가 조금 넘었을 무렵, 비서가 등기 봉투 하나를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대표님, 법무법인에서 왔습니다.”강재헌은 결재를 마친 뒤 무심히 봉투를 끌어당겼다가 발신인란에 찍힌 이름을 보고 손을 멈췄다.의뢰인 한서윤.거칠게 봉투를 뜯자 첫 장 상단의 글자가 눈에 박혔다.이혼 절차 개시 통지서.그 아래에는 이혼 사유가 명확하게 적혀 있었다.혼인 기간 중 배우자의 지속적인 부정행위 및 제3자와의 부적절한 관계.차유리의 이름까지 명시되어 있었다.“……부정행위?”기가 막힌 듯 입술을 비튼 재헌은 서류를 내던지고 곧바로 오세진을 불렀다.“여기 전화해.”통화가 연결되자 재헌이 전화기를 받아 들었다.―담당 변호사입니다.“강재헌입니다. 이 서류, 한서윤이 직접 의뢰한 거 맞습니까?”―네. 직접 방문하셔서 위임하셨습니다.“그럼 당장 취소하세요. 내가 남편입니다.”―그건 의뢰인께서 결정하실 문제입니다. 현재 이혼 절차에서는 대표님께서 상대방이십니다.재헌의 표정이 굳어졌다.“상대방?”―한서윤 박사님의 이혼 의사는 확고합니다. 협의가 어렵다면 소송까지 진행해 달라는 위임도 받았습니다.재헌은 통지서에 찍힌 차유리의 이름을 짓눌렀다.“부정행위라는 것도 한서윤이 직접 주장한 겁니까?”―네.재헌은 전화를 끊고 곧장 서윤에게 걸었다. 그러나 신호음도 없이 통화가 끊겼고, 다시 걸어도 마찬가지였다.옆에서 지켜보던 오세진이 슬그머니 입을 열었다.“대표님, 차단당하신 것 같은데요.”“내가 그걸 몰라서 물었어?”“네. 표정을 보니 모르시는 것 같아서요.”재헌이 손을 내밀었다.“네 전화 내놔.”“제 것까지 차단당하면 업무에 지장이 생기는데요.”“오세진.”“드리겠습니다.”재헌이 그의 휴대전화로 서윤에게 걸자 이번에는 멀쩡하게 신호음이 이어졌다.“받잖아.”“그러니까 대표님 번호만 콕 집어서 차단하신 거네요.”재헌이 홱 노려보는 순간 통화가 연결됐다.―여보세요?“나야.”수화기 너머가 잠시 조용해졌다. 재헌은 통지서를 움켜쥐며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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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화. 내가 모르는 아내의 2년

재헌은 회의실에 들어서자 빈자리부터 찾지 않고 곧장 서윤을 향해 걸어왔다.자료를 검토하던 직원들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고, 예정에 없던 강성 그룹 대표의 등장에 강성 측 임원들까지 엉거주춤 일어섰다.“대표님, 직접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앉으세요.”재헌이 서윤의 맞은편 의자를 빼냈다. 서윤은 서류를 내려놓으며 미간을 찌푸렸다.“왜 당신이 여기 있어요?”“내 회사 프로젝트 회의인데 내가 못 올 이유라도 있나?”“원래 참석자 명단에는 없었잖아요.”“일정이 바뀌었어.”재헌은 서윤에게 눈을 둔 채 자리를 잡았고, 서윤은 더 상대하지 않고 노트북을 돌려놓았다.그때 복도에서 직원들의 인사가 연달아 들려왔다. 도원 직원들이 자연스럽게 자세를 바로잡았고, 잠시 후 짙은 회색 슈트 차림의 권도준이 비서와 함께 들어섰다.넓은 어깨와 큰 체격, 반듯하게 넘긴 머리 아래 선이 뚜렷한 얼굴이 단번에 눈에 들어왔다.“대표님, 안녕하십니까.”도원 측 본부장이 일어서자 도준은 가볍게 손을 들어 보였다.“다들 앉아요. 내가 늦었는데 왜 일어납니까.”편안한 목소리에 긴장했던 분위기가 금세 풀렸다. 회의실을 둘러보던 도준은 재헌을 발견하고 걸음을 늦췄다.“강 대표님까지 오셨군요.”“문제 있습니까?”“그럴 리가요. 결정권자가 직접 왔으니 이야기가 빨라지겠네요.”두 남자의 눈이 잠시 맞부딪쳤지만 도준은 별다른 기색 없이 서윤에게로 향했다.“일찍 왔네요.”“대표님이 늦은 거예요.”“겨우 5분인데.”“회의에서는 5분도 지각이에요.”“오늘도 봐주는 게 없네.”도준이 웃으며 서윤의 옆자리에 앉았다. 주변 직원들은 익숙한 광경이라는 듯 각자 자료를 정리할 뿐이었고, 그 무심한 반응이 오히려 재헌의 신경을 건드렸다.도준이 서윤의 노트북을 들여다봤다.“3번 수정했어요?”“아니요. 4번까지 갔어요.”“또 건드렸네.”“어제 수치 안 맞는다고 했잖아요.”“적용 조건이 마음에 안 든다고 했지.”“그래서 둘 다 고쳤어요.”도준이 낮게 웃었다.“역시 한서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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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화. 한서윤에게 관심 있으니까

회의가 끝나고 직원들이 하나둘 빠져나갔지만 재헌은 그대로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의 눈은 서윤 옆에서 서류를 정리하는 도준에게 머물러 있었다.조금 전 들은 이 년이라는 시간이 자꾸 거슬렸다.“권 대표, 한서윤하고 언제부터 알았습니까?”자료를 챙기던 서윤이 고개를 들었다.“재헌 씨, 이제 와서 그게 왜 궁금해요?”“당신한테 묻는 거 아니야.”도준은 서류철을 덮으며 대답했다.“이 년 조금 넘었습니다. 처음에는 도원 기술 검토 자문으로 만났어요. 연구소에서 석 달 가까이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있었는데 한 박사님이 몇 시간 만에 해결했죠.”막 나가려던 김 선임이 그 말을 듣고 웃으며 끼어들었다.“두 시간 사십 분이었습니다. 대표님 점심 드시고 돌아오셨더니 다 끝나 있어서 그날 연구소가 난리였잖습니까.”서윤이 민망한 듯 쳐다보자 김 선임은 웃으며 회의실을 나갔다.재헌에게는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그 뒤로 지금까지 도원 프로젝트 몇 개를 같이 했습니다.”“몇 개나 했습니까?”“지금 취조해요?”서윤의 목소리가 차가워지자 남아 있던 직원들이 슬쩍 이쪽을 살폈다. 도준은 시간을 확인한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연구동 가야죠. 늦겠습니다.”서윤이 노트북을 챙기는 사이 도준은 테이블 위에 놓인 두꺼운 자료철을 집어 들었다. 그 모습을 본 재헌이 곧바로 입을 열었다.“그걸 왜 권 대표가 듭니까?”“무거워 보이니까요.”“한서윤 물건인데.”도준이 재헌을 바라봤다.“그래서요?”서윤이 기가 막힌 듯 웃었다.“자료 좀 들어주는 것도 당신 허락을 받아야 해요?”그녀는 그대로 회의실을 나갔다. 도준이 문을 잡아주고 뒤따르자 재헌도 두 사람을 따라나섰다.연구동에 도착하자 흰 가운을 입은 직원들이 서윤에게 먼저 인사했다. 수정 데이터와 실험 결과를 든 연구원들도 자연스럽게 그녀 주변으로 모여들었다.“박사님, 수정 데이터 확인했습니다. 예측값하고 거의 같습니다.”서윤은 건네받은 태블릿에서 숫자 몇 개를 확인한 뒤 수정할 부분과 다음 검증 조건을 빠르게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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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화. 어디 비추면 돼

보안문 안쪽에서는 연구원들이 테스트 장비 사이를 오가며 마지막 수치를 확인하고 있었다. 서윤은 들어서자마자 흰 가운을 걸치고 연구원이 내민 태블릿을 받아 들었다.“박사님, 3번 센서가 계속 튑니다.”화면을 훑어본 서윤이 곧바로 장비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센서 문제가 아니에요. 냉각값부터 다시 확인하세요. 이 상태로 가동하면 같은 오차 또 납니다.”지시가 떨어지자 연구원들이 각자 자리로 흩어졌다. 조금 떨어져 그 모습을 지켜보던 재헌은 이곳에서 누구도 서윤을 강재헌의 아내로 대하지 않는다는 걸 실감했다. 모두가 한서윤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었다.서윤이 장비 하단부로 몸을 숙였다.“조명 조금만 더 내려주세요.”도준이 옆에 놓인 작업등을 들었다.“여기쯤인가요?”“조금만 더 아래요. 네, 됐습니다.”두 사람이 나란히 장비 안쪽을 들여다보던 순간, 뒤에서 바퀴 구르는 소리가 빠르게 가까워졌다.“박사님!”서윤이 미처 돌아보기도 전에 도준의 팔이 허리를 감쌌다. 그대로 몸이 뒤로 끌려가 등이 그의 가슴에 부딪쳤고, 바퀴 고정이 풀린 장비가 바로 앞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도준은 서윤이 제대로 선 것을 확인하고서야 허리에서 손을 뗐다.새파랗게 질린 연구원이 달려오자 서윤은 장비부터 고정하라고 했다. 밀려온 방향을 확인하려 몸을 돌리는데 재헌이 성큼 다가와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한서윤.”서윤이 팔을 빼려 했지만 재헌은 놓지 않았다. 다친 곳이라도 찾으려는 듯 서윤을 훑어보는 그의 손에 점점 힘이 들어갔다.“없으니까 이거 놔요.”도준이 다가온 건 그때였다. 재헌의 손목을 잡은 그는 서윤의 팔을 움켜쥔 손을 그대로 밀어냈다.“놓으시죠.”“손 치워.”재헌이 노려봐도 도준은 물러서지 않았다. 서윤이 손아귀에서 빠져나와 한 걸음 물러난 뒤에야 두 남자의 손도 떨어졌다.“내 아내한테서 손 떼.”낮게 떨어진 반말에 주변의 움직임까지 멎었다. 서윤이 곧바로 두 사람 사이를 막아섰다.“그만해요. 여기 연구실입니다.”도준은 더 상대하지 않고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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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화. 나한테는 한서윤입니다

보안문 안쪽에서는 연구원들이 테스트 장비 주변을 분주하게 오가고 있었다. 서윤은 흰 가운을 받아 입으며 연구원이 내민 태블릿을 훑었다.“박사님, 3번 센서가 계속 튑니다.”“냉각값부터 다시 확인하세요.”지시가 떨어지자 연구원들이 일제히 움직였다. 조금 떨어져 지켜보던 재헌은 이곳의 누구도 서윤을 강재헌의 아내로 대하지 않는다는 걸 실감했다. 모두가 한서윤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었다.서윤이 장비 아래로 몸을 숙였다.“저기 비춰요.”재헌이 작업등을 옮기자 서윤은 장비 안쪽으로 몸을 넣었고, 도준도 반대편 제어대에 섰다.출력이 올라가던 중 경고음이 울렸다.“온도 올라갑니다.”“출력 유지하세요.”서윤이 장비 안쪽으로 손을 뻗자 재헌이 어깨를 붙잡아 뒤로 끌어당겼다. 작업등까지 흔들리면서 장비 안쪽이 어두워졌다.“놔요. 안 보여요.”“위험하잖아.”서윤이 그의 손을 쳐내는 사이 수치가 다시 튀었다.도준은 곧바로 작업등을 가져와 정확한 위치를 비췄고, 다른 손은 차단기 위에 올렸다. 눈이 마주치자 서윤이 작게 고개를 저었고, 도준은 그대로 기다렸다.잠시 후 서윤이 외쳤다.“4번 라인 차단!”도준이 즉시 차단기를 내리자 진동이 잦아들었다.서윤은 장비 아래에서 빠져나오려고 몸을 일으켰지만 머리 위의 금속 프레임을 미처 보지 못했다.툭.머리가 닿기 직전 도준의 손이 틈으로 들어왔고, 금속에 부딪친 건 서윤의 머리가 아니라 그의 손등이었다.놀란 서윤이 멈추자 도준은 그대로 프레임을 받치면서 다른 손으로 그녀의 팔꿈치를 감싸 일으켰다.“조심해요.”좁은 틈을 빠져나온 서윤이 허리를 펴자 눈앞에 도준의 셔츠가 가득 들어왔다. 생각보다 가까운 거리였다.천천히 고개를 들자 바로 위에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도준과 눈이 마주쳤다.잠시 시선이 얽혔다가 서윤의 눈이 그의 손으로 내려갔다. 금속에 부딪친 손등은 벌써 붉게 부어오르고 있었다.“손 다쳤잖아요.”서윤은 무심코 그의 손목을 잡아 손등을 뒤집어 보았다. 손가락 아래에서 맥박이 뛰는 게 느껴지고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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