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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e Kapitel von 붉은 혼서: Kapitel 151 – Kapitel 160

203 Kapitel

151화. 법에 없는 아이

“법에는 아이가 자기 부모와 성을 고르는 조항이 없습니다.”관원의 손이 법전 위에 놓였다.열어둔 창으로 심리청의 낮은 말들이 밀려들었다. 바깥에서는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이 방석을 끌었고, 마당의 말은 고삐를 씹으며 앞발로 돌을 긁었다. 작은 방 안에서만 누구도 움직이지 않았다.정윤은 제 그림부터 가슴에 끌어안았다. 회창의 아들은 울다 지쳐 문혜 무릎에 기대 있었다. 소의가 두 아이를 옆방으로 데려가려 하자 관원이 길을 막았다.“당사자는 남아야 합니다.”“지금 하실 말은 아이가 아니라 대리시가 들으면 됩니다.”“진 낭자는 관원이 아니지 않습니까.”소의가 입을 다물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경연이 상 위의 패를 관원 쪽으로 밀었다.“이 심리는 대리시 관할이오. 자리를 정하는 일도 우리가 하겠소.”관원은 손을 거두었지만 의자에서는 일어나지 않았다. 태자부의 패가 허리에서 달각거렸다.고환은 법전 세 권을 들고 합의청으로 옮겼다. 너무 서둘러 가운데 책을 거꾸로 놓았다. 아무도 지적하지 않자 스스로 다시 돌려놓고 첫 장부터 읽었다.“위조 입적은 무효입니다. 원래 기록으로 되돌리면 아이는 정씨가 아니고, 차밭은 설씨 친정으로—”“아이는 어디로 갑니까?” 소의가 물었다.“그건 후견을 정한 뒤에…….”“성부터 지우고 나서요?”고환은 책장을 넘겼다. 찾는 조문이 나오지 않아 앞장으로 돌아갔다.“순서가 그렇다는 뜻은 아닙니다. 아니, 기록상으로는 그 순서가 맞지만 실제로 아이를 먼저 내보낸다는 말은 아니고…….”태자 측 관원이 헛기침했다.“전례 없는 사사로운 선택을 인정하면 다음 위조도 모두 사정을 내세울 것입니다. 오늘 안에 판결하십시오.”“오늘 안이라.”고환이 그 말을 따라 하다가 목소리를 높였다.“그렇다고 없는 죄를 덜 수도 없습니다. 정 노부인이 돈을 댔고, 정회유가 알고도 숨겼고, 정회창이 문서를 담보로 삼았습니다. 아이가 정씨로 남는다고 그 죄가 없어지지는 않습니다.”그는 책갈피를 놓쳐 같은 장을 두 번 펼쳤다. 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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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화. 두 번째 붉은 혼서의 판결

황족이라는 두 글자 때문에 합의청의 등불이 밤새 꺼지지 않았다.고환은 위경화의 의견서를 세 번 베껴 썼다. 첫 장에는 후견과 상속을 뒤섞었고, 둘째 장에는 정윤을 정안의 친아들이라고 잘못 적었다. 새벽이 밝을 무렵에야 세 번째 장을 경연 앞에 놓았다.“이번에는 읽어보십시오. 제 눈에는 이제 글자가 붙어 보입니다.”경연은 틀린 곳 두 군데를 짚었다. 고환이 머리를 감싸자 한 곳은 자기 붓으로 고쳤다.공개 심리청에는 책임질 사람만 불렀다.정 노부인은 위조를 시키고 재산을 숨긴 죄를 받았다. 회유는 문서가 달라진 것을 알고도 네 해를 침묵했다. 회창은 아내 몰래 운송 약조와 아이의 후사 자리를 빚에 걸었다.회창은 자기가 불을 놓지는 않았다고 세 번 말했다.“방화죄를 묻지 않았습니다.” 고환이 답했다.“그런데 왜 다들 나를 봅니까?”“큰 목소리가 나서 보겠지.” 노부인이 쏘아붙였다.회창은 또 어머니 탓을 하려다 소란이 들고 온 약봉지를 보고 입을 다물었다. 오늘부터 아이 약은 자기가 달여야 했다.소란은 약을 건네고도 남편 곁에 앉지 않았다. 서쪽 곁채의 두 방과 자기 혼수는 따로 등록되었고, 회창의 빚쟁이는 그 문턱을 넘지 못했다. 회창은 약봉지의 푸른 끈과 누런 끈을 또 헷갈려 사람들 앞에서 아내를 불렀다. 소란은 돌아보지 않고 아침 약은 푸른 것이라고 한 번만 답했다.정윤은 낮은 상 앞에 앉았다. 고환이 ‘현재 성의 재등록’이라는 말을 꺼내자 아이는 또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예전 종이가 거짓이었다는 것은 남겨둔다. 오늘 네가 정씨로 살겠다는 말은 새로 적고.”“그러면 어제의 저는 가짜입니까?”고환의 입이 열렸다가 닫혔다.소의가 대신 답하지 않았다. 정윤은 한참 기다리다 자기 그림을 상 위에 놓았다.“그냥 오늘 것부터 잘 적어주세요.”문혜가 후견 패에 손을 얹었다. 회유은 면회와 양육에 참여할 수 있었지만 아이의 재산과 신분을 대신 정할 수 없었다. 그는 아버지라는 말이 판결문에 남았는지부터 찾다가, 정윤이 약 먹을 시각을 묻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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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화. 이름이 나란히 적힌 밤

붉은 관인이 마르기 전에 경연이 같은 판결문을 들고 왔다.“사본은 이미 받았습니다.”“공동 작성자가 보관할 것은 별도요.”소의는 두 장을 나란히 놓았다. 글도 관인도 같았다.“어디가 다릅니까?”경연은 잠시 종이만 보았다.“이쪽이 조금 깨끗하오.”“그걸 주러 이 밤에 오셨습니까?”그는 그렇다고 하기에는 늦게 왔고 아니라고 하기에는 옷을 지나치게 단정히 입고 있었다.곡우는 두 사람을 번갈아 보더니 옥선네에서 자겠다고 이불을 들고 나갔다. 계단을 내려가면서도 서쪽 방에 종이 상자를 두었으니 넘어뜨리지 말라고 두 번 소리쳤다.소의는 판결문의 빈 곳부터 찾았다.“떠난 하인들이 어디로 갔는지는 한 줄뿐입니다. 차밭에서 먼저 사실을 말한 사람들이 받은 벌도 서로 다르고요.”“첫 판결에 모든 삶을 넣을 수는 없소.”“그래서 빠진 사람이 또 생깁니다.”경연은 축하한다는 말을 꺼내지 못했다. 소의는 기쁜 날까지 자기와 다투러 왔느냐는 말을 묻지 못했다. 둘은 판결문 끈을 다시 묶었다. 같은 매듭을 잡은 손등이 부딪쳤다.경연이 먼저 손을 뗐다.소의는 그 손목을 붙잡았다.계단은 한 사람이 겨우 오를 폭이었다. 경연이 앞서다 돌아보자 소의의 얼굴이 그의 가슴 가까이에 있었다. 아래층 등불이 두 사람의 그림자를 천장에 겹쳐 놓았다.입맞춤은 첫 계단에서 시작해 마지막 계단까지 끊겼다 이어졌다. 경연의 손이 가느다란 허리를 감싸 들자 소의의 발이 두 칸을 한꺼번에 올랐다. 방문에 등이 닿으며 빗장이 덜컥 흔들렸다.소의가 손을 뻗어 문을 닫았다.익숙한 방에는 먹을 불려둔 물과 마른 종이 냄새가 났다. 낮은 침상 아래에는 미처 치우지 못한 문서 궤짝이 반쯤 나와 있었다. 경연이 발끝으로 밀어 넣는 동안 소의가 그의 관을 뽑았다. 반듯하게 묶였던 검은 머리가 손등 위로 흘렀다.“이것도 흐트러졌습니다.”그가 대답하려다 소의의 입술에 막혔다.겉옷이 바닥에 내려앉았다. 소의는 제 옷고름을 당기는 손을 멈춰 세우고, 이번에는 스스로 풀었다. 희고 매끈한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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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화. 자물쇠 밖에 선 사람

노탁은 사흘 동안 청묵재에 오지 않았다.첫날 곡우는 문이 열릴 때마다 고개를 들었다. 둘째 날에는 일부러 앞방에 나오지 않았다. 셋째 날에는 물 먹은 종이 두 묶음을 혼자 옮기다 발등에 떨어뜨리고 욕을 했다.“사람을 부르면 되잖아.” 옥선이 말했다.“품삯이 듭니다.”“네 허리도 돈이야.”곡우는 결국 장터 짐꾼을 불렀다. 동전 다섯 닢이 나갔다. 장부에는 `노탁이 없어 든 돈`이라고 적으려다가 먹이 마르기 전에 줄을 그었다.노탁은 그동안 북문 집의 돈부터 갈랐다.봉록을 상 위에 쏟자 어머니는 약값과 누이 혼수부터 밀어놓았다. 노탁은 그 두 몫을 부정하지 않았다. 자기 밥값과 방값, 관청에서 다친 옷값까지 따로 놓았다.“곡우 낭자가 오면 그 애가 버는 돈도—”“그 사람 돈은 여기에 없습니다.”“한집 살면 한돈이지.”“아직 한집도 아니고, 한집이 되어도 먼저 물을 겁니다.”어머니는 아들이 여자에게 홀렸다고 화냈다. 누이는 자기 혼수 그릇을 도로 궤짝에 넣으며 울었다. 노탁은 둘을 달래다 또 적당히 웃을 뻔했다.“곡우 탓 하지 마세요.”목소리가 너무 커서 약초 다발 하나가 처마에서 떨어졌다. 세 사람은 동시에 그것부터 주웠다. 싸움은 끝나지 않았지만, 노탁은 자기 몫을 적은 장부를 어머니 앞에 남겼다.나흘째 되는 날 그는 종이 뭉치를 지고 청묵재에 왔다.“주문하신 물건입니다.”곡우는 손님 앞이라 모른 척하려 했으나 종이 뭉치가 문틀에 걸렸다. 노탁이 옆으로 틀다가 반대쪽까지 부딪쳤다.쿵.“그건 세워서 들어야죠.”“무게가 한쪽으로 쏠렸소.”“묶은 끈이 비뚤어서 그래요.”둘은 문턱에서 종이를 다시 묶었다. 손님 셋이 지나가며 곡우를 힐끗거렸다.일이 끝나자 노탁은 손을 내밀었다.“무엇입니까?”“품삯이오.”“그걸 받겠다고요?”“사람을 썼으면 주는 것이라 하지 않았소?”곡우는 동전 다섯 닢을 그의 손에 세게 내려놓았다. 노탁은 두 닢을 돌려주려다 또 화낼까 그대로 주머니에 넣었다.“자물쇠도 비뚤었습니다.”철컥.문이 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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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화. 돌아오면 열리는 문

반월주가 뒷문 열쇠가 새벽 안개 속에서 세 번 미끄러졌다.산해는 손을 닦고 다시 넣었다. 약속보다 닷새 늦은 사람이 제 열쇠로 문을 여는 일이 도둑질처럼 느껴졌다.철컥.술독 마당의 빈 항아리 사이로 들어서자 안쪽 문이 열렸다. 옥선은 잠옷 위에 겉치마만 둘렀고 한 손에는 부지깽이를 들고 있었다.“누구냐?”산해가 얼굴을 들었다.부지깽이가 바닥에 떨어졌다. 옥선은 달려오지 않았다. 눈으로 그의 머리와 어깨, 두 손, 진흙 묻은 신을 차례로 훑었다.“닷새 동안 어디서 뒈졌었어?”“죽지는 않았소.”“보면 알아.”산해는 정주 성북의원에서 고월낭의 행적을 찾았으나 이미 북쪽 산촌으로 떠난 뒤였다고 했다. 눈 녹은 물에 역로가 무너졌고, 돌아오는 길에는 운임이 좋은 약재 짐 하나를 더 맡았다.“길 때문에 늦은 거야, 돈 때문에 늦은 거야?”“둘 다요.”맞는 말을 골랐다고 생각했으나 옥선의 얼굴은 더 험해졌다.아침 장사를 열 시각이 다가왔다. 옥선은 물부터 끓이지 않았다. 젖은 짐을 처마 아래 풀고, 받아올 표행삯과 잃어버린 물건을 장부에 적게 했다.산해는 씻지도 못하고 빈 술독 두 개를 마당 끝으로 옮겼다. 첫 손님이 들어오자 상을 닦고 술잔을 놓았다. 잔을 거꾸로 놓아 옥선에게 손등을 맞았다.“길에서는 상을 이렇게 놓나?”“길에서는 상이 없소.”“말대꾸는 살아 있네.”점심 무렵 그가 꾸벅꾸벅 졸자 옥선은 손님 없는 안쪽 자리에 밥을 놓았다. 생선 살을 발라주지는 않았지만 가시 적은 가운데 토막이 그의 그릇에 있었다. 산해는 그것을 보고도 고맙다는 말을 제때 못했다.장사가 끝난 뒤 옥선은 뒷문 열쇠를 상 위에 던졌다.“이걸 왜 줬는지 모르겠어?”“들어오라고.”“몰래 들어와 자고 가라고 준 게 아니야. 살아 돌아왔으면 내 눈앞에 서라고 준 거지.”산해는 열쇠를 쥐었다.“다음에는 길이 바뀌는 역참마다 말을 남기겠소.”“다음이 또 있어?”“먹고살려면.”옥선의 눈이 젖었다가 금세 매서워졌다.“그러면 닷새 치부터 갚아.”“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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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화. 문턱 안쪽의 입맞춤

등불이 낮아진 시각, 려화의 방에는 찻잔이 또 두 개 놓였다.유백은 누이의 약재 목록을 다 읽고 일어났다.“북문이 열리면 바로 떠납니다. 사흘째에는 청우현, 엿새째에는 정주에 닿을 겁니다. 비가 오면—”려화가 그의 소매를 잡았다.유백은 맥을 보라는 줄 알고 손목을 뒤집었다. 두 손가락을 얹으려다 려화의 얼굴을 보고 멎었다.“어디가 불편합니까?”“아픈 곳 없습니다.”“그러면 왜…….”려화는 소매를 놓지 않았다. 방 안 선반에는 그가 나누어둔 약봉지가 날짜 순으로 놓여 있었다. 문밖에는 공동 우물의 두레박이 끽끽 울었고, 옆집 부부는 오늘도 아이를 누가 재울지 다투고 있었다.“오늘은 조금 더 계시면 안 됩니까?”유백의 시선이 열린 문으로 갔다.“나는 떠날 사람입니다.”“내일 떠나는 건 압니다.”“돌아올 날을 약속하기 어렵습니다.”“나는 평생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에게 갇혀 살았습니다.”려화는 그 말을 하고 숨을 고르느라 잠시 입을 다물었다. 준비한 말은 뒤에 더 있었지만 나오지 않았다.“오늘 밤을 묻는데 왜 자꾸 엿새 뒤를 답하십니까?”유백은 자기가 또 틀린 대답을 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그는 문턱 안으로 들어왔다. 문을 닫았지만 빗장은 걸지 않았다. 나무 빗장은 벽의 홈에 그대로 세워두었다.려화는 그 소리를 들으며 어깨의 힘을 늦췄다.유백이 가까이 서자 두 사람 그림자가 벽에 포개졌다. 그는 손을 들었다가 얼굴에 닿기 전 멈췄다. 려화가 손목을 잡아 제 뺨에 대었다.따뜻한 손바닥은 움직이지 않았다. 려화가 먼저 고개를 들고 입술을 닿게 했다.첫 입맞춤은 너무 짧아 유백은 그것이 끝난 줄 알았다. 그가 물러나자 려화가 옷깃을 잡았다.“싫은 겁니까?”“아닙니다.”“그럼 왜 갑니까?”“끝난 줄 알았습니다.”려화는 어이없는 얼굴로 그를 보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소리 내 웃자 유백의 귀가 붉어졌다.이번에는 그가 허리를 숙였다. 입술이 천천히 맞물렸다. 려화가 숨을 들이킬 틈을 두고 다시 닿았다. 유백의 손은 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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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화. 자매가 바뀐 가마

맞붙인 혼서의 붉은 선이 가운데서 한 번 끊겼다.려화는 두 조각이 벌어지지 않게 찻잔으로 모서리를 눌렀다. 소의는 글을 두 번 읽고도 바로 베끼지 않았다.“유혜진은 죽었고, 유혜란은 청양현에서 딸을 낳았습니다.”“관청 기록은 그렇지.”혼서 조각을 가져온 여자는 얼굴을 가린 채 대답했다. 소의가 이름을 묻자 그는 유 마마 쪽만 보았다.다음 날 계화사 서쪽 월문은 안에서 잠겼다.백유진은 소의가 문턱을 넘기 전에 막아섰다.“이름 하나가 드러날 때마다 안쪽 사람 스무 명이 짐을 싸야 합니다.”“스무 명의 이름을 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관청 사람은 늘 하나만 묻고 들어와 모두 보고 나가지요.”“저는 관청 사람이 아닙니다.”“그 말이 더 무서울 때도 있습니다.”려화가 두 사람 사이로 빨랫광주리를 밀었다. 문 앞에서 다투는 바람에 젖은 홑이불을 널러 갈 길이 막혀 있었다.“둘 다 비키세요. 이불부터 말려야 오늘 밤 잡니다.”소의와 유진은 서로 다른 쪽으로 물러났다. 안뜰에서는 여자들이 장마 전 이불을 털고, 아이들은 젖은 바닥에 발자국을 찍었다. 누가 누구를 구했는지 따질 동안에도 부엌 쌀은 줄고 있었다.소의는 안쪽 교실에 들어가지 않았다. 문밖 평상에 앉아 혼서에 적힌 사람만 불러달라고 했다.난정은 옆에서 차 자루 끈을 고쳤다. 그는 제2혼서가 끝났는데도 따라왔다. 죽은 언니와 살아 있는 동생을 한 묶음으로 말하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손이 거칠어졌다.“장녀가 달아났고 차녀가 대신 살았다면, 둘 다 살았다는 말부터 하지 마세요.”유진의 눈썹이 올라갔다.“죽지 않았으니 살린 일이오.”“어디에서 어떻게 살았는데요?”“난정 낭자 일은 아니오.”“내 언니도 죽고 나서 다들 좋은 뜻만 골라 말했어요.”둘은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았다. 려화는 쌀을 씻던 손으로 문틀을 짚었다.“당사자가 여기 있다면 그 사람부터 물으세요.”안쪽에서 의자가 끌리는 소리가 났다.문이 열렸다.서른 중반의 여자가 나왔다. 수수한 회색 치마 끝에는 오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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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화. 떠나지 않겠다는 여자들

혜진이 말아 올린 푸른 이불 끝에서 쪽물 냄새가 났다.계화사 여자가 그것을 수레에 싣으려 하자 혜진이 도로 빼냈다.“이건 갑니까, 남습니까?”“남습니다.”“아까는 간다고 하셨잖아요.”“그때는 쌀독을 말했습니다.”복도에는 이불과 약함, 아이 신발, 장작단이 뒤섞였다. 백유진이 오늘 밤 안으로 거처를 옮긴다고 하자 누구도 자기 물건부터 버리려 하지 않았다.푸른 이불은 나흘 전까지 청양현 청람염방의 침상 위에 있었다.혜진이 연경에 가겠다고 말한 밤, 명산은 천 걷는 장대를 평소보다 세게 내렸다. 대나무가 마당 돌에 탁 부딪쳤다.“혼자 가겠다고?”“당신은 가게를 지켜야죠.”“가게는 다시 열면 되오.”“아완은요?”명산은 대답하지 못했다. 딸을 데려가면 위험했고 남겨두면 누구에게 맡겨야 할지 막막했다. 그는 젖은 천을 접다 모서리를 세 번이나 틀렸다.혜진은 침방 들창에 묶인 푸른 천을 걷었다. 빗장을 걸지 말라는 두 사람의 오랜 신호였다.명산은 문 앞에서 기척을 낸 뒤 들어왔다. 가지 말라는 말을 다시 하려 했으나 혜진이 먼저 그의 허리띠를 잡았다.“화난 것부터 말하세요.”“당신이 가면 돌아오지 않을까 봐.”“왜요?”“그 이름이 당신 것이라면, 이 집은 남의 이름으로 얻은 것이 될까 봐.”혜진의 손이 허리띠에서 멎었다. 명산은 잡지 않았다. 돌아서는 아내를 붙들고 싶은 손을 제 옷자락에 쥐었다.혜진이 다시 다가왔다.“나는 돌아옵니다.”그는 약속을 믿는다고 멋지게 답하지 못했다.“언제?”“모릅니다.”“그게 무슨 약속이오.”혜진은 웃다가 입술을 맞췄다. 명산의 화가 그대로 남은 입맞춤은 처음엔 뻣뻣했다. 혜진이 그의 옷깃을 풀고 거칠어진 손을 제 허리에 얹자 비로소 손아귀에 힘이 들어왔다.두 사람은 십사 년을 함께 쓴 침상에서 서로의 몸을 다시 찾았다. 명산이 가슴 아래로 입술을 내릴 때 혜진은 그의 어깨를 당겼다. 닫힌 문 쪽을 한 번 보았으나 빗장은 벽에 세워져 있었다.혜진은 스스로 치맛자락을 걷고 그를 끌어당겼다.
last updateZuletzt aktualisiert : 2026-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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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화. 다른 혼담이 들어온 날

혜진의 수레가 직금로를 벗어나기도 전에 청묵재에는 중매 이야기가 들어왔다.소장을 맡기러 온 비단 상인은 문서를 다 읽고도 일어나지 않았다.“진 낭자 나이가 스물일곱이라 했지요?”소의는 붓을 씻으며 그렇다고 했다.“내 조카가 홀로 된 지 두 해요. 아이는 없고 남시 점포 하나가 있소. 사람도 순하고.”“거처는 점포 위층입니까?”“관심이 있구려.”“아니, 혼인 뒤에도 제가 이 가게에서 일할 수 있는지—”“그런 건 만나서 정하면 되지.”소의가 아니라고 말할 때에는 상인이 이미 중매인을 보내겠다고 했다. 그는 소장 값에 엽전 두 닢을 더 놓고 기분 좋게 나갔다.곡우는 문이 닫히자마자 웃었다.“거절하는 데 왜 방세부터 물어요?”“조건을 알아야 거절할 수 있잖아.”“싫으면 싫다고 하면 되죠.”소의는 그 쉬운 말을 하지 못해 붓만 오래 씻었다.저녁에 경연이 와 혜진의 수레 뒤를 누가 따를지 물었다. 곡우는 차를 내놓으며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우리 장궤께 좋은 혼담이 들어왔습니다.”경연의 손이 찻잔 위에서 멎었다.“좋은 혼담인지는 모릅니다.” 소의가 말했다.“남시 점포가 있대요.”“점포가 좋다는 뜻은 아니야.”“홀아비라 시부모도 멀리 산다던데.”“그건 묻지 않았어.”경연은 축하한다고 말했다.곡우가 입을 벌렸고 소의는 찻잔을 내려놓았다. 받침에 물이 넘쳤다.“고맙습니다.”두 사람은 혜진의 수레 이야기를 했다. 유씨 저택의 어느 문이 열려 있고, 대리시 사람이 얼마나 떨어져 따라갈지 정했다. 필요한 말은 다 했으나 찻잔의 물은 아무도 닦지 않았다.경연이 돌아갈 때 소의도 종이를 사러 나간다며 따라섰다. 종이가게는 반대쪽인데 둘 다 한동안 같은 방향으로 걸었다.세필골 저녁 장수들이 좌판을 거두고 있었다. 젖은 채소 잎과 먹 찌꺼기가 돌바닥에 붙었다. 경연은 지나가는 짐수레를 피해 소의를 길 안쪽으로 옮겨 세웠다가 곧 손을 놓았다.“앞으로도 저녁을 드시러 오실 겁니까?” 소의가 물었다.“차밭 사건은 끝났으니 자주 갈 이유는
last updateZuletzt aktualisiert : 2026-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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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화. 죽은 언니가 돌아온 비

빗물이 유씨 저택 처마 끝에서 굵은 줄을 이루어 쏟아졌다.앞뜰에서는 시비 셋이 붉은 혼례 천을 걷고 있었다. 한쪽을 걷으면 다른 쪽이 바람에 펄럭였다. 촤악, 빗물 먹은 비단이 얼굴을 덮자 어린 시비가 비명을 질렀고, 안채에서는 잔칫국을 시험하던 솥이 부글부글 넘었다.“불부터 줄여! 천은 기둥에 감아두고!”유덕창의 아내 한소렴은 월문 아래 서서 양쪽에 소리를 질렀다. 사흘 뒤에는 외손자 현자온의 혼례복 치수를 마칠 장인이 왔다. 비가 들이치든 천이 젖든 집 안 누구도 손을 놀릴 때가 아니었다.쿵, 쿵.그 소란을 뚫고 대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늙은 문지기가 빗장을 반쯤 들었다. 문틈으로 비바람이 먼저 밀려들고, 푸른 치마를 입은 여인이 그 뒤에 서 있었다. 삿갓 끝에서는 물이 흘렀다. 젖은 옷자락 아래로 흙 묻은 신이 보였다.문지기는 그 얼굴을 본 채 빗장을 놓쳤다.덜컥.“큰…….”목구멍까지 나온 호칭이 소리가 되지 못했다. 스무 해 가까이 대문을 지킨 그는 장녀 혜진이 혼례 가마를 타던 날에도 이 자리에 있었다. 어릴 적에는 열병 난 아이를 등에 업고 약방까지 달린 적도 있었다.그 아이의 눈이 문밖에 있었다. 전보다 눈꼬리가 깊고 뺨이 야위었어도, 사람을 기다리게 해놓고 자기가 먼저 미안해하던 표정은 그대로였다.“안에 유혜란이 있습니까?”문지기의 턱이 떨렸다.집 안에서 그 이름으로 사는 사람은 없었다. 둘째딸 혜란은 십오 년 전부터 장녀 유혜진으로 불렸다.“누구냐?”한소렴이 앞뜰을 가로질러 왔다. 젖은 돌 위에서 비단신이 미끄러졌으나 시비의 팔을 뿌리치고 대문까지 다가왔다.혜진은 어머니 얼굴을 한참 보았다. 소렴은 딸보다 먼저 문밖 길과 담 모퉁이를 살폈다. 관병이 따라왔는지, 이웃이 보는지부터 찾는 눈이었다.“어머니.”소렴의 입술이 하얗게 질렸다.“누구더러 어머니라 하느냐. 우리 큰아이는 죽었다.”“예. 그렇게 올리셨다지요.”빗소리가 처마를 두들겼다. 앞뜰에 모인 시비들은 젖은 천을 품에 안은 채 꼼짝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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