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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e Kapitel von 붉은 혼서: Kapitel 161 – Kapitel 170

203 Kapitel

161화. 붉은 가마의 안쪽

“언니가 달아난 그 밤, 누가 나를 그 가마에 태웠는지 알아?”혜진은 혜란이 아니라 어머니를 보았다.유씨 저택 앞뜰에는 씻지 못한 잔칫그릇이 긴 상 두 개를 채우고 있었다. 부엌에서는 불린 쌀 냄새가 났고, 처마 밑에는 자온의 혼례에 쓸 홍등이 비를 피해 겹겹이 눕혀져 있었다. 아침까지 혼례 준비로 뛰던 사람들이 이제는 누구의 눈도 마주치지 못한 채 같은 자리를 맴돌았다.한소렴은 젖은 혼례 천을 안은 시비에게 삿자리를 가져오라고 소리쳤다. 아무도 움직이지 않자 자기가 비단을 낚아챘다.“비부터 피하고 말하자. 이 좋은 것을 다 버릴 셈이냐?”혜란이 비단 반대쪽 끝을 밟았다.소렴이 잡아당기자 천이 진창을 길게 쓸었다. 붉은 물이 돌 틈으로 번졌다.“놓아라!”“그날도 이 천부터 챙기셨지요.”“네 조카 혼례에 쓸 것이다. 지난 일을 왜—”“내 아들입니다.”소렴은 입을 다물었다. 혜진은 동생이 외손자가 아니라 자기 아들이라고 바로잡는 동안에도 아무 말도 보태지 못했다.“누가 너를 태웠어?”혜란이 웃었다. 웃음은 금세 일그러졌다.“이제 나한테 묻네.”“나는 네가 여기 있는 줄 몰랐어.”“알았으면 안 갔어?”혜진의 입술이 열렸다가 닫혔다.안 갔을 거라는 거짓말도, 그래도 갔을 거라는 대답도 할 수 없었다. 현도언의 집에서 반년을 견딘 끝이었다. 그날 밤 붙잡혔다면 살아남지 못했으리라는 생각은 십오 년이 지나도 달라지지 않았다.소렴이 젖은 손으로 혜란의 팔을 잡았다.“네 언니를 찾으면 죽이겠다고 했다. 현씨 혼담이 깨지면 가게도 끝이었어. 너까지 길에 나앉을 판이었다.”“그래서 제 얼굴에 면사를 씌웠습니까?”“잠깐만 버티면 된다고 했다. 현 대인도 사람이니 살다 보면—”“어머니가 직접 씌웠어요?”소렴의 손에서 힘이 빠졌다.앞뜰 가장자리에 선 시비 하나가 면사에서 손을 떼고 더 깊이 고개를 숙였다. 그는 그날도 안채에서 일했다.“말해보아라.” 혜란이 그를 불렀다. “내가 가마에 오를 때 울었느냐?”늙은 시비의 목울대가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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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화. 비단상 장부보다 먼저

젖은 면사는 밤새 마르지 않았다.다음 날 보문비단상 창고에는 반품된 혼례 천이 세 필이나 쌓였다. 유덕창은 천을 빛에 비춰 흠집을 찾고, 손톱으로 실밥을 튕겼다.앞 점포에는 손님을 맞는 긴 탁자가 있고, 그 뒤 좁은 문을 지나면 천을 재는 재단방이 나왔다. 창고는 다시 안쪽이었다. 어릴 적 혜진은 세 문을 오가며 비단 이름부터 외웠고, 혜란은 재단하고 남은 조각으로 인형 옷을 만들었다.혜진은 젖은 천 한 필이 바닥에 닿자 저도 모르게 달려가 받쳤다. 덕창도 반대쪽 끝을 들었다. 부녀는 예전처럼 천을 세 번 접었으나 마지막 모서리가 어긋났다.“네 손이 느려졌구나.”“쪽물 들이는 천은 이렇게 안 접습니다.”“싸구려 무명 버릇을 비단에 들이지 마라.”덕창은 말을 내뱉은 뒤 딸 손가락에 밴 푸른 얼룩을 보았다. 혜진은 천을 놓지 않았다.“물 먹은 자국은 여기뿐이오. 두 푼만 깎으면—”“유씨 집 혼례가 멎었다는데 이 붉은 비단을 누가 사겠소?”상인은 보따리를 도로 묶었다. 바깥 물품문에서는 채권자가 외상 날짜를 소리쳐 읽었다. 일꾼들은 천을 옮기다 혜진을 볼 때마다 고개를 돌렸다.덕창은 딸에게 앉으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네가 왜 하필 지금 왔느냐.”“혜란이가 제 이름으로 산다기에 왔습니다.”“살고 있지 않느냐. 아들도 있고 큰집 안주인이다.”혜진은 아버지 손에 들린 자를 보았다. 비단 반 치의 흠은 바로 찾는 손이었다.“제가 처음 현씨 집에서 돌아온 날을 기억하세요?”덕창이 자를 멈췄다.“겨울이었지.”“유월이었습니다.”“장마 전이었나.”“등에 피가 말라붙어 어머니가 속옷을 가위로 잘랐어요.”덕창은 창고 안쪽을 향해 소리쳤다.“남색 비단은 햇볕 들기 전에 넣어라!”일꾼 둘이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더 빨리 천을 날랐다.혜진은 물품문 밖에서 기다리는 채권자들에게 물었다. 십오 년 전 유씨 상단은 관청 납품을 제때 맞추지 못해 은자 백이십 냥을 물어야 했다. 현씨 집이 일부를 갚았고, 도언이 판관 자리에 오른 뒤 관청 주문도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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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화. 네 번 닫히는 문

수레에서 내린 현도언은 먼저 장인의 허리를 받쳤다.“비가 그쳤어도 돌이 미끄럽습니다.”유덕창은 품 안의 창고 열쇠를 더 깊이 밀어 넣었다.도언은 혜진을 오래 보지 않았다. 관복 소매에 묻은 빗방울을 털고 형부 아전에게 말했다.“죽은 장녀를 사칭한 자다. 대문 밖으로 내보내라.”“저를 알아보시겠습니까?” 혜진이 물었다.그의 눈이 잠깐 흔들렸다.“내 아내의 언니다.”“장례까지 치른 사람을 금세 알아보시네요.”도언은 답하지 않았다. 안채에서 자온과 혜란을 불러 수레에 태웠다. 자온은 덜 마른 예복을 벗지도 못한 채 외조부와 어머니를 번갈아 보았다.수레 안에서 자온은 세 번이나 입을 열었다. 혜란이 먼저 묻지 않자 결국 젖은 소매를 비틀며 말했다.“저분이 정말 큰이모입니까?”“그래.”“그런데 왜 어머니 이름으로 산답니까?”혜란은 맞은편에 앉은 도언을 보았다. 그는 눈을 감고 있었다.“네 아버지에게 물어.”도언이 눈을 떴다.“밖에서 들은 말을 집 안까지 끌고 오지 마라.”자온은 그 뒤로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풀린 혼례복 띠를 양손으로 구겨 쥐었다.정례헌에 돌아오자 도언은 노모의 약부터 살폈다. 식은 약을 버리고 새로 달이라 했고, 자온의 젖은 책은 한 장씩 펴 말리게 했다.정례헌은 바깥 사랑채와 가운데 뜰, 가족이 쓰는 동서 행랑, 안채가 일직선으로 이어진 집이었다. 혜란의 침방까지 가려면 각 뜰의 문을 하나씩 지나야 했다. 서쪽 담에 난 물품문만이 안채에서 골목으로 곧장 이어졌다.혜란은 수레에서 내리며 시비에게 작은 열쇠를 쥐여주었다.“오늘 밤 네가 가지고 있어.”총관이 곁에서 손을 내밀었다.“나리께서 모든 바깥문 열쇠를 거두라 하셨습니다.”시비는 두 사람을 번갈아보다 울상을 지었다. 혜란은 그 아이를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 손을 폈다. 열쇠가 총관 손바닥에 떨어졌다.“혼례가 미뤄질 수 있습니까?” 자온이 물었다.“네가 공부를 놓지 않으면 달라질 것 없다.”도언은 아들의 붓 잡는 손을 바로잡아주었다. 먹이 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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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화. 합방 날짜를 세는 여자

아침 종이 울려도 혜란은 바로 일어나지 못했다.침상 아래로 내린 발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무릎이 접히며 몸이 기울자 시비가 급히 팔을 받쳤다.“부인.”“소리 내지 마.”시비는 물을 가져오고도 혜란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바닥의 찢어진 옷고름을 주워 소매 안에 감췄다.“오늘은 제가 약을 달이겠습니다.”“네가 달이면 물을 많이 잡아.”“어제 외워두었습니다.”“그럼 나가서 숯부터 갈아.”시비는 더 버티지 못하고 옷고름을 품은 채 나갔다. 혜란은 문이 닫힌 뒤에야 갈아입을 옷을 집었다. 소매에 팔을 넣다가 멍든 어깨가 당겨 한참 멈췄다.혜란은 허벅지 안쪽의 통증이 가라앉을 때까지 침상 끝에 앉았다. 숨을 네 번 고른 뒤 평소와 같은 걸음으로 약방에 갔다.시어머니의 약은 진시 전에 달여야 했다. 불이 약하면 기침이 길어졌고, 약을 거르면 도언은 약방 시비부터 내쳤다.혜란은 작약 두 돈, 감초 반 돈을 작은 저울에 올렸다. 손이 떨려 추가 자꾸 바닥을 쳤다. 약재를 다시 덜고 올리는 사이 진시를 알리는 북이 멀리서 울렸다.시어머니 방에서는 밤새 아들이 잘 잤느냐고 묻는 소리가 들렸다. 혜란은 저울접시를 기울여 약재를 솥에 쏟았다. 작약 한 조각이 밖으로 튀었지만 줍지 않았다.약탕기가 보글거리기 시작할 때 서쪽 물품문이 열렸다. 정문에서 쫓겨난 혜진이 약재 수레 뒤에 붙어 안쪽까지 들어왔다.“걸음이 왜 그래?”“나가.”“어젯밤에 그 사람이—”혜란이 국자로 솥 가장자리를 쳤다.쨍.“입 밖에 내지 마.”혜진은 동생의 손목에 번진 자국을 보았다. 옷깃 아래에도 손가락 모양의 멍이 반쯤 숨어 있었다.“이러고 어떻게 십오 년을 살았어?”말이 나온 뒤 혜진의 얼굴이 굳었다.혜란은 불을 줄였다.“언니처럼 대신 태울 동생이 없어서.”혜진은 불 옆에 쪼그려 앉았다. 장작을 한꺼번에 세 개나 밀어 넣자 불길이 솥 옆으로 솟았다.“그렇게 넣으면 약이 타요.”혜란이 장작 둘을 빼냈다. 혜진은 손등에 묻은 재를 닦지도 못하고 동생 손만 보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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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화. 누구를 체포할 것인가

형부 공문은 대리시 합의청 상보다 길었다.고환은 첫 장을 읽다가 둘째 장의 근거를 섞었다.“그러니까 죽은 유혜진을 사칭한 유혜란을…… 아니, 유혜란으로 사는 유혜진을 체포하라는 겁니다.”“누구를 잡겠다는 것인지부터 다시 읽으시오.” 경연이 말했다.소의가 공문을 당겨 이름 둘을 갈라 적었다.“혜진 부인을 먼저 가두면 혜란 부인은 입을 닫습니다.”“위조 혼적의 당사자를 조사하지 않을 수는 없소.”“조사와 구금은 다릅니다.”경연의 목소리가 낮아졌다.“달아날 가능성은?”“십오 년 만에 제 발로 돌아온 사람입니다.”“한 번 달아난 적도 있소.”소의가 붓을 내려놓았다.고환이 재빨리 물주전자를 들었다. 빈 찻잔에 따르려다 공문 위에 두 방울을 흘렸다.“제가 닦겠습니다.”“그냥 두시오.” 경연과 소의가 동시에 말했다.고환은 어느 말을 들어야 할지 몰라 소매로 종이만 더 번지게 만들었다. 결국 젖은 대목을 새 종이에 옮겨 쓰는 동안 혜진의 구금 여부는 뒤로 밀렸다.두 사람 사이에서 고환은 공문을 다시 읽는 척했다. 아침까지 같은 방에서 나온 사람들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얼굴이었다.경연은 형부낭중 현도언이 자기 혼인 사건의 체포를 직접 청한 대목을 짚었다. 대리시는 월권 여부를 먼저 심리한다는 명분으로 집행을 미뤘다. 혜진은 보호방 문을 잠그지 않고 정해진 시각에 출석하기로 했다.해가 진 뒤 합의청에는 소의와 경연만 남았다.고환은 나가면서 등잔 심지를 잘라두겠다고 했지만 두 사람의 얼굴을 보고 가위만 놓고 갔다. 심지가 길어 불꽃이 자꾸 흔들렸다. 뜰에서는 당직 조졸이 문단속하는 소리가 차례로 멀어졌다.소의는 자기 기록을 거둬 안았다.“다음에는 한 번 달아난 여자라고 먼저 말하지 마십시오.”“위험을 따지는 자리였소.”“그 위험 속에서 왜 달아났는지는 아시잖아요.”“알기에 형부를 막았소.”“그럼 말도 그렇게 하셨어야죠.”소의가 문으로 향했다. 경연은 붙잡지 않았다. 다만 문고리를 잡은 손 옆에 자기 손을 짚었다.“또 공적인 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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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화. 청람염방의 빈 들창

푸른 천 세 폭이 청람염방 마당을 가로질러 펄럭였다.주명산은 장대 끝으로 천의 주름을 펴다가 빈 들창을 보았다. 아내가 떠난 뒤 열흘째, 묶어두었던 푸른 천은 한 번도 내려오지 않았다. 밤마다 빗장을 걸지 않았지만 문을 밀고 들어오는 사람도 없었다.염색독에서는 쪽물이 부글거렸다. 아완이 긴 막대로 거품을 걷어내다 아버지 쪽으로 물을 튀겼다.“아버지, 또 멍하니 있으면 천 얼룩져요.”“보고 있다.”“들창을요. 천을요?”명산은 대답하지 못하고 천만 뒤집었다. 모서리가 또 비뚤어졌다.아완은 아버지 손에서 장대를 빼앗았다. 발을 넓게 벌리고 천 밑으로 들어가 축축한 곳을 고르게 폈다. 혜진이 하던 방식이었다.“어머니 없다고 염방까지 삐뚤어지면 돌아와서 또 고쳐야 하잖아요.”“네 어머니는 돌아오자마자 잔소리부터 하지는 않는다.”“아버지한테는 해요.”마당 일꾼 하나가 웃음을 참다 쪽물에 기침했다. 명산은 못 들은 척 천 끝을 잡았다.오후에 연경에서 온 전갈꾼이 염방 앞에서 말을 세웠다. 소매까지 젖은 사내는 혜진이 보낸 네 글자 아래에 계화사 여인이 덧붙인 말을 읽어주었다.돌아왔으나, 아직 돌아가지 못한다.“다친 곳은?” 명산이 물었다.“그런 말은 없었습니다.”“그럼 어디서 자오?”“그것도…….”전갈꾼이 곤란한 얼굴로 종이를 접었다. 명산은 묻고 싶은 것을 제대로 묻지도 못한 채 삯부터 세어주었다. 전 한 닢이 손에서 미끄러져 쪽물 고랑으로 굴러갔다.아완이 치맛자락을 걷고 고랑에 들어가 전을 주웠다.“가요.”“어디를?”“연경이요. 어머니가 못 오면 우리가 가면 되잖아요.”“네가 물길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잊었느냐?”“지난번에는 토한 게 아니라 배에 먹인 기름 냄새가 싫었던 거예요.”“뱃전에 세 번 토했다.”“두 번이에요.”아완은 전을 우물물에 씻어 전갈꾼 손에 다시 쥐여주었다. 전갈꾼은 세 번이 맞다고 중얼거리다 아이 눈총에 얼른 떠났다.“염방은 누가 지키고.”“어머니가 지붕부터 고치라셨다며요. 다 고쳤잖아요.”아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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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화. 자매의 서로 다른 소장

청묵재 앞방에 작은 상이 두 개 놓였다.혜진과 혜란은 같은 상에 앉지 않았다. 소의가 종이를 한 장씩 펴자 곡우는 차도 두 주전자에 나누어 담았다. 어느 쪽부터 내야 할지 망설이다 혜진 앞에는 찻잔을, 혜란 앞에는 빈 받침만 놓았다.“아, 이게 왜…….”곡우가 얼굴을 붉히며 잔을 바꾸려 했다.혜란이 빈 받침을 손으로 막았다.“됐어요. 오래 있지 못합니다.”정례헌에서 시어머니 약을 달일 시각까지 두 시진 남아 있었다. 혜란은 앉으면서도 문밖 수레가 기다리는지 세 번이나 살폈다.소의는 첫 줄에 두 사람의 본래 이름을 따로 썼다.“같은 사건으로 묶지 않겠습니다. 원하는 것도 하나씩 말씀해주십시오.”혜진이 먼저 말했다.“청양현의 남편과 딸이 벌을 받지 않게 해주세요. 둘은 내 이름을 몰랐습니다.”“당신은요?” 혜란이 물었다.“나는 내가 한 말을 책임져야지.”“그래서 또 혼자 정하고 잡혀가려고?”“네가 걱정할 일은 아니야.”혜란이 상을 밀고 일어서려 했다. 차가 출렁이며 종이 귀퉁이를 적셨다.“두 분 다 앉으세요.”소의가 젖은 종이를 들어 말렸다. 평소 같으면 다시 쓰자고 했겠지만, 오늘은 얼룩이 번진 자리에 모래만 뿌렸다.혜진은 한참 뒤에야 말을 고쳤다.“잡혀가고 싶다는 뜻은 아니야.”“그런 말을 먼저 해.”“내가 원래 말을 잘 못하잖아.”“언니는 하고 싶은 말만 잘해.”“너도 싫다는 말은 잘하잖아.”“십오 년 동안 못해서 이제 하는 거야.”혜진은 반박할 말을 찾지 못했다. 찻잔을 들었다가 자기 앞에 놓인 것은 혜란의 식은 차라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곡우가 새 차를 내오다 입술을 깨물었다. 웃을 때가 아닌데도 자매가 다투는 모양이 지나치게 닮아 있었다.혜진의 소장에는 현재의 남편과 딸을 위조 혼적의 공범으로 다루지 말 것, 청람염방의 재산과 생업을 압류하지 말 것, 본인의 신병은 형부가 아니라 대리시에서 맡을 것을 적었다.“본래 이름으로 돌아가겠다는 문장은 뺍시다.” 혜진이 말했다.소의가 붓을 들고 기다렸다.“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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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화. 두 아이가 같은 이름을 듣다

열흘 뒤, 보문비단상 앞 골목에 쪽빛 물이 뚝뚝 떨어졌다.주명산은 여드레를 달려온 사람답지 않게 느린 걸음으로 대문을 넘었다. 하지만 혜진을 보자 보퉁이도 내려놓지 않고 두 팔로 끌어안았다.혜진의 얼굴이 그의 어깨에 파묻혔다.“비 새는 곳은 고쳤어요?”“그 말을 지금 묻소?”명산이 화를 냈다.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팔에 힘이 들어갔다. 혜진은 그제야 웃다가 눈가를 훔쳤다.아완은 두 사람 옆을 지나 안채부터 구경했다.“어머니가 살던 집이 이렇게 커요?”한소렴이 아이를 위아래로 보았다.“누구더러 어머니라 하느냐?”“저분이요. 유혜란.”월문 안에서 자온이 걸음을 멈췄다.혜진은 딸을 소의에게 맡겨 씻게 하고, 명산을 옛 침방으로 데려갔다. 방은 창고가 되어 비단 궤와 빈 함만 남아 있었다.명산은 문을 닫지 않았다. 혜진이 직접 문짝을 당기고 옷고름으로 손을 뻗었다.“아직 화났어요?”“당신 얼굴을 봐도 화가 나오.”“그럼 보지 말아요.”혜진이 입술부터 맞췄다. 명산의 보퉁이가 쿵 떨어졌다. 그는 아내의 두 뺨을 감싸 얼굴을 확인하듯 몇 번이나 입을 맞추다가, 숨이 흐트러지자 허리를 끌어당겼다.비단 궤에 등이 닿았다. 혜진의 옷깃이 어깨 아래로 밀리고, 명산의 입술이 드러난 목과 쇄골을 뜨겁게 훑었다. 숨을 삼키던 혜진이 그의 검은 머리를 움켜쥐었다.“하…… 너무 늦었어요.”명산의 거친 손이 치맛자락 속으로 미끄러졌다. 발목을 감싸고, 종아리를 쓸고, 무릎 위로 오를 때마다 혜진의 다리가 천천히 벌어졌다. 그가 멈춰 눈을 들자 혜진이 손목을 잡아 더 가까이 이끌었다.“지금은 문도 제가 닫았어요.”그 말에 명산의 숨이 거칠어졌다. 손길이 속옷 위로 뜨거운 살을 눌렀다. 혜진은 짧게 신음하며 그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명산의 입술이 풀린 옷깃 아래로 내려가자 가슴이 입김에 젖고 단단히 솟았다.“흣…….”혜진은 그의 옷자락 안으로 손을 넣었다. 손바닥에 뜨거운 열기가 가득 차자 명산의 이마가 그의 어깨에 떨어졌다. 늘 느리던 남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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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화. 아들이 닫은 문

자온은 정례헌으로 돌아오자 서재 문을 잠갔다.아침상이 문 앞에 놓였다가 점심상이 되어도 손대지 않았다. 혜란은 시비에게 저녁상은 하나만 가져오라고 했다. 자기가 문턱 밖에 앉아 같은 밥을 먹지 않자 숟가락도 두 벌 필요 없었다.서재는 가운데 뜰 동쪽에 있었다. 자온이 여섯 살 때 도언이 직접 책장을 들여놓고, 아홉 살 때는 북쪽 창 아래에 작은 화로를 놓아주었다. 혜란이 겨울마다 문풍지를 덧댄 흔적도 그대로였다. 문 하나 안에 세 사람 손이 겹쳐 있었다.문 안에서는 종이 넘기는 소리만 났다.“밥은 먹어.”대답이 없었다.“화가 나도 굶으면 배만 아파.”“어머니는 누구입니까?”혜란은 무릎 위의 손을 맞잡았다.“문을 열면 말해줄게.”“밖에서 말하십시오.”“그러면 네가 밥부터 먹겠다고 해.”“또 조건을 거십니까?”말끝이 갈라졌다. 문 안에서 숨 들이켜는 소리가 나고, 곧 소매로 입을 막는 부스럭거림이 따랐다.혜란은 방문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나는 유혜란으로 태어났어. 네 큰이모는 유혜진이고. 네가 태어났을 때는 모두 나를 유혜진이라 불렀다.”“그럼 제 어머니는 큰이모 이름을 훔친 사람입니까?”혜란의 손가락이 치맛자락을 구겼다.“처음에는 빼앗겼고, 나중에는 놓지 못했어.”“왜요?”“그 이름을 놓으면 네가 현씨 집 아들이 아니게 될까 봐.”“저를 위해서였다는 말입니까?”“처음부터 그랬다고 하면 거짓말이야. 무서워서 시키는 대로 했고, 나중에는 네가 생겨서 못 나갔어. 더 나중에는 어디로 나가야 할지도 잊었다.”“그럼 저는 어머니를 붙잡은 사람입니까?”“너는 내 아들이야. 어른들이 한 짓까지 네 등에 올리지 마.”문 안에서 무엇인가 넘어졌다. 혜란이 손잡이를 붙들었지만 열지는 않았다.현도언이 복도 끝에서 걸어왔다. 그의 뒤로 총관과 서재 문을 뜯을 목수가 따라왔다.“비켜서시오.”“기다리세요.”“내일 스승이 온다. 아이가 방 안에서 계속 이럴 수는 없소.”도언이 문고리를 잡자 혜란이 그 앞을 막았다.“문을 부수면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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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화. 대문 안의 체포패

밥상에 숟가락이 놓이기도 전에 정례헌 대문이 울렸다.쾅! 쾅!“부인! 형부 군졸들이 유씨 댁을 에워쌌습니다!”혜란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자온은 빈속에 물만 한 모금 마시고 어머니를 따라 나갔다.그들이 유씨 저택에 닿았을 때 골목은 관병과 비단 수레로 꽉 막혀 있었다. 형부 군졸들은 검은 체포패를 들었고, 대리시 조졸들은 대문 안쪽 계단을 지키고 섰다. 어느 쪽도 먼저 칼을 빼지는 않았지만 손은 모두 칼자루에 올라가 있었다.새벽부터 내린 가는 비가 군졸들의 어깨와 천 꾸러미를 고르게 적셨다. 형부 쪽에서 대문을 향해 다시 외쳤다.“형부의 명을 받았다. 유혜진을 내놓아라!”유덕창은 물품문으로 천을 빼내라 소리쳤다. 일꾼들은 붉은 비단을 든 채 앞사람 등에 부딪쳤다.“동쪽 골목으로 돌려!”“거기도 형부 사람들이 막았습니다!”“그럼 지붕으로 올려!”창고지기는 사람을 잡아가는 판에 누가 지붕에 비단을 올리느냐며 소리쳤다. 덕창은 천 한 필 값이면 네 석 달 품삯이라 맞받았다. 군졸들 사이에서도 어이없는 웃음이 새어 나왔다.“지금 천이 문제예요?” 아완이 소리쳤다.“젖으면 네가 물어낼 테냐!”아완은 입을 벌렸다가 명산에게 목덜미를 잡혀 뒤로 물러났다. 자온은 처음 보는 동갑내기 여자아이의 목청에 놀라면서도 자기 어머니 앞을 막았다.형부 군졸이 대문 안으로 한 발 들이밀었다.“죽은 유씨 장녀를 사칭하고 관의 혼적을 어지럽힌 죄인이다.”“체포패의 이름부터 틀렸습니다.” 소의가 말했다.그는 경연 옆에서 체포패 사본을 펼쳤다. 경연은 소의를 뒤로 물리려 팔을 들었다가, 그가 팔꿈치를 툭 치자 옆으로 자리를 내주었다.“형부가 적은 이름은 유혜란으로 사칭한 유혜진입니다. 어느 혼적을 기준으로 한 것입니까?”군졸을 이끈 관원이 대답했다.“심문하면 밝혀질 일이다.”“누구를 심문할지 모르는 채 잡아가겠다는 말이군.” 경연이 말했다.“경 소경께서 형부 집행을 막으시겠습니까?”“대리시에서 이미 출석 명을 내렸다. 먼저 온 명을 어기는 쪽이 누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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