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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붉은 혼서: Chapter 141 - Chapter 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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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화. 바뀐 출항 명부

“동쪽 차선창부터 막아!”경연의 명이 수운창에 닿았을 때에는 차 배 세 척이 이미 서로 다른 자리에 매여 있었다.첫째 배는 곡물선창, 둘째는 차선창, 셋째는 짐꾼 숙소 뒤의 좁은 물길이었다. 원래라면 같은 물때에 나갈 수 없는 자리였다.위삼랑은 출항 명부를 펼쳐보지도 않고 숙소로 들어갔다. 밤일을 한 인부들의 이부자리가 어지럽게 남아 있었다. 두 자리만 말끔히 비었고, 벗어둔 짚신도 없었다.“이 둘이 달아났군요.” 노탁이 말했다.“짐 싸서 나간 사람이 범인이면 세상 도둑 잡기 편하겠다.”삼랑은 짐꾼들을 따로 세웠다.“평소 첫물에 나가는 배가 어느 거지?”“모릅니다.”“오늘 밧줄을 맨 사람은?”“못 봤습니다.”관청이 묻자 사람들은 한꺼번에 눈과 귀를 잃었다. 삼랑은 더 캐묻지 않고 품삯을 못 받은 사람을 찾았다. 그러자 마흔쯤 된 짐꾼이 앞으로 튀어나왔다.삼랑은 숙소 밥솥도 열어보았다. 사라진 인부 두 사람 몫의 저녁은 남아 있지 않았다. 부엌일을 맡은 사내는 둘이 떠날 줄 알고 점심부터 쌀을 빼놓았다고 했다가, 누가 알려줬느냐는 질문에는 쌀이 모자라 그랬다고 말을 바꿨다.“내 자리를 웬 처음 보는 놈이 가져갔소. 뱃사공이 술값까지 대신 내줬다는데 나는 한 푼도 못 받았어!”삼랑은 그 말에서 멈췄다.“어느 술집이지?”노탁이 낙조문 밖 십이등루에 닿았을 때는 열두 등 가운데 두 개만 남아 있었다. 밤손님을 내보낸 큰방에는 엎어진 잔과 과일 껍질이 널렸고, 주모는 빗자루로 의자 밑 동전을 찾고 있었다.초앵은 무대 뒤 계산칸에서 나무패를 맞추고 있었다. 노탁이 관청 패를 내보이자 그는 술값부터 받을 수 있느냐고 물었다.“누가 대신 냈습니까?”“늙은 뱃사공은 한 잔도 안 마셨어요. 저쪽 둘이 자기들 술까지 그 사람 앞으로 달았지.”초앵은 노탁의 말이 끝나기 전에 패 세 개를 골라냈다. 술 한 상, 노래 두 곡, 동석 한 시진. 잠자리 패는 없었다.“그런데 이 자가 취해서 자꾸 위층으로 올라가려 했어요.”그가 패 하나를 손톱으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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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화. 보내야 사는 차

늙은 뱃사공의 자리는 비었는데 차 상자는 통로를 가득 메웠다.회유는 짐꾼들에게 상자를 전부 창고 안으로 밀라고 했다.“한 척도 내보내면 안 된다. 사람과 문서를 찾을 때까지 차부터 지켜라.”난정이 수레 앞을 막았다.“물때를 놓치면 사흘입니다. 사흘이면 이 차는 제값을 못 받아요.”“값보다 증거가 먼저요.”“당신은 차를 언제 덖는지도 모르잖아요.”“정안은 물건을 함부로 보내지 않았소.”“언니는 사람 굶기는 것도 싫어했어요.”죽은 사람은 두 사람 입에서 서로 다른 편이 되었다.소의는 말다툼을 멈추라 하지 않았다. 대신 출항 전 뱃사공과 다툰 짐꾼을 하나씩 떼어 물었다. 첫째는 상자가 바뀌면 배를 바꾸라 했다고 기억했고, 둘째는 배가 바뀌어도 상자를 따라가라 했다고 우겼다. 셋째는 둘 다 틀렸다고 했다.“약조를 따라가라고 했어. 상자는 주인이 바뀌어도 약조가 값을 받는다면서.”소의는 차를 주문한 상인들에게 사람을 보냈다. 정상 주문 두 건은 구매자가 직접 나와 수량과 값을 확인했다. 문제의 상자는 돈을 낸 사람과 받을 사람이 달랐다.한 상인은 시험 삼아 차를 우렸다. 눅눅해진 잎은 물 위에서 제대로 펴지지 않았고 향도 옅었다. 난정은 값을 깎으려는 수작이라며 잔을 빼앗았지만, 자기가 맛보고는 더 말하지 못했다. 사흘이라는 시간은 장부가 아니라 혀끝에서 이미 줄어들고 있었다.“관청 일에 엮인 차는 전부 물리겠소.” 상인 하나가 말했다.“정상 주문까지 물리면 먼저 받은 돈을 돌려주셔야 합니다.” 난정이 막았다.“그 돈 버리는 게 대리시에 불려가는 것보다 싸.”수운창 바깥 둑길에서는 노동자 가족들이 기다렸다. 아이를 업은 여자는 남편 품삯을 받으려 아침부터 서 있었고, 뱃사람들은 물이 빠지는 눈금을 보며 욕을 했다.“한 시진 더 늦으면 오늘은 끝이오!”짐꾼들은 어느 배가 떠나는지 몰라 상자를 들었다 놓았다 했다. 한 번 옮길 때마다 품삯을 더 달라는 사람과 처음 약조한 값만 주겠다는 상인이 다퉜다. 회유는 두 배 값을 모두 주겠다고 말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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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화. 약조를 빼돌린 아내

“없습니다.”소란은 약조를 내놓으라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대답했다.회창이 아픈 아이의 이불을 걷어차듯 자리에서 일어났다.“나를 팔아넘기고도 없다고?”“목소리 낮추세요. 아이가 듣습니다.”“이미 다 들었어!”이불 속의 작은 등이 움찔했다. 소란은 남편보다 먼저 아이의 이불을 다시 덮었다.소의는 방 안 궤짝을 뒤지지 않았다.“지난달 무엇을 파셨습니까?”“왜 묻습니까?”“원본이 어디 있는지보다 부인께서 그 문서로 무엇을 하려 했는지 알아야 합니다.”소란의 눈이 가늘어졌다. 회창은 아내가 제 빚을 갚으려 판 것이라며 멋대로 답했다.기원은 관청 서리 때 쓰던 작은 수첩을 꺼냈다. 그는 정식 접수와 뒷거래가 어느 문으로 갈리는지 알았다.“전당포에 문서를 맡겼다면 물건 장부가 아니라 대물 장부에 적었을 겁니다.”회창이 비웃었다.“죄로 쫓겨난 서리가 또 장부를 가르치나?”기원은 얼굴을 들지 않았다.“그래서 거짓 명의가 어디에 숨는지 압니다.”소의와 기원은 소란이 지난달 다녀온 길을 따라 남시로 갔다. 비단 한 필을 판 곳, 낡은 패물을 맡긴 곳, 작은 방을 빌릴 선금을 물은 집을 차례로 확인했다.전당포 주인은 기원을 알아보고 웃었다.“관아에서 쫓겨난 손이 이번엔 관아 심부름을 해?”“유소란 부인이 무엇을 맡겼는지만 말하시오.”“죄인이 말투는 여전하네.”“거래 날짜부터.”기원은 변명도 화도 내지 않았다. 주인은 재미가 없어진 얼굴로 대물 장부를 가져왔다.장부의 이름은 유소란이 아니었다. 소란이 시집오기 전 따르던 유모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기원은 필체를 뜯어보지 않고 당시 보증을 선 사람과 돈을 세어준 점원을 찾았다. 점원은 소란의 얼굴보다 그가 은자를 세 번이나 다시 세고도 한 냥을 덜 가져간 일을 기억했다.소란은 운송 약조를 담보로 은자를 빌렸다. 그 돈은 회창 빚으로 가지 않았다. 서문 밖 작은 집을 빌릴 선금과 아이 약값으로 나뉘어 있었다.그 작은 집에는 부엌 아궁이가 하나, 방이 둘 있었다. 소란은 큰 방을 아이에게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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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화. 남편과 갈라 세운 재산

“이걸 숨기고도 나더러 남편이라 부르오?”회창이 전갈을 흔들었다.소란은 아이 약그릇을 찾느라 궤짝과 선반을 오갔다.“거기 두지 마세요. 물 묻습니다.”“내 말을 듣고 있나?”“듣고 있습니다. 약 숟가락을 어디로 옮겼습니까?”“지금 숟가락이 중요해?”“당신은 늘 아이가 기침하지 않을 때만 아버지입니다.”회창이 입을 다물었다. 관청 사람들은 문밖에서 기다렸다. 살림방 안에서는 빚문서, 아이 옷, 약초 꾸러미가 한꺼번에 나왔다.소란은 준비한 논고처럼 남편의 잘못을 말하지 못했다. 차밭 지분을 몰래 담보 잡힌 날을 꺼내다 아이의 겨울옷을 접었고, 자기 혼수 비녀를 팔아 도박빚을 막은 이야기를 하다 약탕기의 불을 줄였다.옷 궤짝 바닥에서는 회창이 젊을 때 선물한 붉은 끈이 나왔다. 소란은 버리려다 아이 약병을 묶는 데 썼다. 회창은 그 끈을 알아보았으나 추억을 꺼내 붙잡으면 더 비겁해질 것 같아 말하지 못했다.“우리가 서로 사랑하지 않았다고 하지는 않겠습니다.”회창의 얼굴이 조금 풀렸다.“그러면—”“사랑할 때마다 제 것을 내놓았고, 실패할 때마다 아이 자리를 내놓았죠. 이제 그것을 그만하겠다는 겁니다.”“나도 갚으려 했어.”“무엇으로요?”“이번 일만 끝나면 차밭에서—”“그 차밭이 당신 것이 아니잖아요.”회창은 또 막혔다.소란은 재산과 거처를 갈라 적은 약조를 내밀었다. 자기 혼수와 빌린 방은 자신이 관리하고, 회창의 도박빚은 회창이 갚는다. 아이 약값은 양쪽이 나누되 후사 자리나 차밭 지분을 다시 담보로 쓰지 못한다.“부부가 어찌 재산을 이렇게 가르오?”“이미 당신이 먼저 갈랐습니다. 좋은 것은 당신 것이고 갚을 것은 제 것이었으니까.”회창은 찢으려다 문밖에 소의가 있는 것을 보고 손을 내렸다.아이 방에서 기침이 터졌다.소란이 바로 달려가 등을 두드렸다. 회창도 따라갔으나 어느 약을 먹여야 할지 몰랐다.“푸른 종이입니까, 누런 종이입니까?”“아침은 푸른 것, 밤은 누런 것. 한 숟가락 반입니다.”“왜 반이오?”“몸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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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화. 닫힌 딸의 방

소란을 태운 수레가 후부를 떠났다는 보고가 화령별원에 닿았다.장은은 영락군주의 방 앞에서 한참 기다렸다. 문틈에서는 단내와 썩은 냄새가 함께 났다.연양대장공주는 은쟁반의 배 하나를 들어 올렸다.“누가 이걸 치우라 했느냐?”시비가 바닥에 엎드렸다.“물러서라.”장은이 사람들을 내보냈다. 썩은 과일을 치우는 일보다 소란의 수레가 중요하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공주는 죽은 딸이 마지막으로 손댄 방의 물건을 누구도 함부로 옮기지 못하게 했다. 창호지는 눅눅했고 향로에는 오래된 재가 넘쳤다.시비 하나가 상한 과일 냄새에 헛구역질하자 공주는 그 아이를 세탁방으로 내쫓았다. 새로 들어온 아이는 영락군주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도 몰랐지만 매일 죽은 주인의 빗과 신을 닦았다. 별원에서는 산 사람의 자리가 죽은 사람 기분에 따라 바뀌었다.공주는 딸이 쓰던 붉은 빗을 손에 들었다. 빗살 하나가 빠져 있었지만 새것으로 바꾸지 못하게 했다. 장은이 강의 상황을 설명하는 동안에도 그는 빗에 붙은 먼지만 손톱으로 긁었다.“원본이 움직였습니다.” 장은이 말했다.“누가 들고 있지?”“정회창의 아내가 강으로 갑니다.”“배는?”“준비했습니다.”공주는 금연의 죽음도, 정원후부 아이가 독을 먹은 일도 묻지 않았다.“지난번에도 준비했다 했지.”장은의 목이 움직였다.“이번에는 틀림없습니다.”“네가 틀림없다 한 일이 몇이더냐?”장은은 충성 맹세 대신 배에 실을 기름 양을 줄이겠다고 했다가, 공주의 눈빛을 보고 다시 늘렸다. 썩은 배 하나가 그의 발치에 떨어졌다. 과육이 신발에 묻어도 닦을 수 없었다.“사람이 타 있느냐?”“빈 배부터 태우고 가까이 오는 배를—”“방금은 원본 든 여자가 탄 배라 하지 않았느냐.”장은은 대답을 바꿨다. 유인책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고 했다. 소매 속에서 과거 장부를 보관한 궤짝 열쇠를 움켜쥐었다.공주는 시비 자리부터 바꾸었다.“서쪽 회랑 사람을 모두 부엌으로 보내라. 수레패 셋을 내주고, 안왕부 마부를 불러.”아래 사람들은 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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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화. 강 위의 세 척

세 척의 배가 한꺼번에 밧줄을 풀었다.선창의 종이 세 번 울렸다. 강둑의 가족들은 어느 배에 제 식구가 탔는지도 모른 채 이름을 불렀다. 배가 움직이자 목소리는 물 위에서 금세 뒤섞였다.경연은 어느 것이 유인책인지 알지 못한 채 사람을 나눴다. 자신이 탄 배에는 난정과 차 상인이, 삼랑의 배에는 노탁과 군졸들이 올랐다. 소란은 원본 약조를 품은 것처럼 빈 보자기를 안고 마지막 배에 탔다.“저 배는 너무 느립니다!” 난정이 소리쳤다.강물은 불어난 뒤라 탁했고, 세 배 사이가 금세 벌어졌다. 젖은 밧줄이 손바닥에서 미끄러졌다. 뱃사람은 돛을 더 올리라는 경연의 말을 물살을 따라 붙으라는 말로 잘못 듣고 배를 강심 쪽으로 틀었다.“왼쪽이다!”명령은 바람과 물소리에 찢겼다.첫째 배 뒤쪽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불이다!”기름에 젖은 천 조각이 돛대에 매달려 타고 있었다. 뱃사람 하나가 물동이를 들이부었으나 불붙은 기름이 갑판 위로 퍼졌다. 차 상자는 젖지 않게 기름종이로 싸둔 탓에 물 위에서도 미끄럽게 굴렀다.차 상인이 상자 위로 뛰어들었다. 불은 빈 상자 사이에서 시작됐지만 사람들은 값비싼 차부터 끌어안았다. 배가 한쪽으로 기울며 강물이 난간을 넘었다.경연은 상자를 묶은 줄을 가리켰다.“끊어라. 물에 버려!”“한 해 수익입니다!” 난정이 줄을 잡았다.“배가 뒤집히면 사람도 차도 끝이오.”“이걸 버리면 아래 마을은 또 굶어요!”배가 크게 흔들렸다. 쿵, 상자 셋이 난정 쪽으로 미끄러졌다. 경연이 그를 잡아당겼고 군졸 하나가 난간에 허리를 부딪쳤다.난정은 차 상자를 보았다. 빗속에서 살리려 싸웠고, 품삯 약조를 만들려고 밤을 새운 차였다. 그는 허리의 칼을 뽑았다.차 상인이 난정의 손목에 매달렸다.“그걸 버리면 내 돈은 누가 갚소?”“살아서 운주로 오세요. 제가 듣겠습니다.”“말로 갚겠다는 거요?”“지금은 목숨으로 받으세요!”서걱!밧줄이 끊어졌다. 상자 두 개가 검은 물속으로 떨어졌다. 젖은 찻잎이 풀려 강물 위에 번졌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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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화. 사람부터 건져라

“상자는 놓으세요!”곡우가 갈대밭을 가르며 뛰었다.강굽이 안쪽에서 세 번째 배가 옆으로 넘어져 있었다. 차 상인 둘은 물에 뜬 상자를 밧줄로 묶으려 했고, 군졸 하나는 관청 증거라며 같은 줄을 잡아당겼다.“내가 가진 것 전부요!”“압수 물건을 건드리지 마라!”“사람이 밑에 있습니다!”소란의 치맛자락이 뒤집힌 배 아래에서 잠깐 보였다가 사라졌다. 갈대섬 쪽 말뚝에는 늙은 뱃사공이 두 손이 묶인 채 쓰러져 있었다.노탁이 갑옷을 벗고 물로 뛰어들었다.첨벙!다친 팔로는 밧줄을 오래 잡지 못했다. 물살이 그의 어깨를 돌려세웠다. 곡우가 허리에 맨 줄을 잡아 나무에 감았다.“왼손으로 배를 밀어요! 잡아당기지 말고!”“상자 줄과 엉켰소!”상인은 여전히 줄을 놓지 않았다. 곡우가 작은 칼을 뽑았다.“안 돼!”서걱.상자에 묶인 줄이 끊어졌다. 차 상인이 비명을 질렀다. 상자는 물살을 타고 떠내려갔고, 느슨해진 줄을 노탁이 소란의 허리에 감았다.군졸들이 한꺼번에 당겼다. 소란이 물 위로 올라와 거칠게 기침했다. 머리 장식은 사라지고 얼굴은 흙빛이었다.곡우는 젖은 겉옷을 벗어 소란의 어깨에 덮었다. 소란은 춥지 않다고 밀어냈다가 손이 떨려 옷깃을 제대로 잡지 못했다. 곡우는 묻지 않고 끈부터 묶었다.“먼저…… 저 사람…….”그가 갈대섬을 가리켰다.노탁은 숨을 돌릴 틈도 없이 다시 헤엄쳤다. 늙은 뱃사공은 말뚝에 묶인 채 반쯤 물에 잠겨 있었다. 삼랑의 군졸들이 뒤늦게 닿아 줄을 끊고 그를 끌어냈다.뱃사공은 배를 토하듯 물을 쏟았다.“혼서가 어디 있소?” 누군가 물었다.그는 기침 사이로 고개를 저었다.“상자…… 아니야. 운송 약조를…… 따라가.”노탁은 뭍에 엎드려 숨을 몰아쉬었다. 곡우가 등을 세게 두드리자 물을 한 모금 토했다.“우리 어머니 일은…….”“지금 그 말 하면 한 번 더 물에 밀어 넣을 거예요.”“해명하려는 게 아니라…….”“살아난 뒤에 하자고요.”노탁은 더 말하지 않았다. 곡우가 등을 쓸어내리는 손길만 가만히 받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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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화. 품삯을 나누는 날의 자백

정원후부 앞뜰에는 아침부터 긴 줄이 생겼다.차밭 임시 판매금으로 밀린 품삯과 떠날 사람의 노자를 나누는 날이었다. 부엌 시비는 솥을 닦던 손으로 줄을 섰고, 다리를 저는 노복은 자기 방을 계속 쓸 수 있는지 묻기 위해 지팡이를 짚고 나왔다.노부인은 사람을 모아 자백할 생각이 없었다.대리시 군졸들이 붙잡힌 옛 마부를 끌고 들어온 것은 돈 상자가 열린 뒤였다. 줄이 술렁였고, 자기 차례를 놓칠까 앞사람 옷을 잡는 이도 있었다.마부는 입을 열지 않았다.노부인은 그 얼굴을 보자 송수당으로 달아나지 않았다. 품삯을 세던 상 앞에 그대로 앉았다.“저자는 내가 썼다.”회유가 달려왔다.“어머니, 안에서 말씀하시죠.”“문을 닫고 한 일이니 열린 데서 말해야지.”노부인은 정안이 죽은 뒤 마부를 시켜 양자 문서를 옮겼다고 했다. 위조할 돈도 자신이 댔다. 아이를 살리고 싶었고, 차밭을 후부에 남기고 싶었다.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깨끗하게 만들지는 않는다고 말했다.“이번 배에 불을 놓으라 한 것도 노부인입니까?” 군졸이 물었다.“아니다. 장은이 했을 것이다.”마부의 어깨가 움찔했다.노부인은 그 움직임을 놓치지 않았다.“네 해 전 네가 문서를 나른 일을 잡혀 다시 끌려갔느냐?”마부는 입술을 깨물었다. 눈물이 먼저 떨어졌다.줄에 선 하인들은 죄보다 품삯을 걱정했다.“오늘 돈은 주시는 겁니까?”“후부가 문을 닫으면 우리는 어디로 갑니까?”“노자는 전액이라고 하셨잖아요!”장방지기가 이름을 부르는 순서도 싸움이 됐다. 안채에서 일한 사람이 먼저라 하자 마구간 사람들은 새벽부터 밤까지 말을 먹인 손은 집안 손이 아니냐고 따졌다. 노부인은 신분 순서가 아니라 밀린 달수가 긴 사람부터 세우라 했다. 가장 먼저 앞으로 나온 이는 문지기에게 뺨을 맞고 석 달 전 쫓겨난 어린 하인이었다.회유가 사람들을 조용히 시키려 하자 야유가 돌아왔다.“대공자께서는 네 해나 조용하셨잖소!”회창은 뒤에서 자기만 속았다고 말했다.노부인이 두 아들을 번갈아 보았다.“회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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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화. 죽은 아내 뒤에 숨은 남편

“언제부터 알았습니까?”회유는 믿어달라는 말을 준비하고 왔다가 첫마디부터 잃었다.정윤은 정안의 물건을 침상 위에 펼쳐놓고 있었다. 낡은 손수건, 깨진 빗, 약 냄새가 밴 베개, 차밭 지도가 하나씩 상자에 들어갔다가 다시 나왔다.“문서가 바뀐 뒤 곧 알았습니다.”회유가 겨우 말했다.“곧이 며칠입니까?”“장례가 끝나고…….”“며칠이요?”“열흘쯤.”정윤은 손에 든 빗을 상자에 넣었다. 뚜껑을 닫으려다 다시 열었다.회유는 예전처럼 아이 머리를 쓰다듬으려다 손을 거뒀다. 정윤은 그 손을 보았으나 잡지 않았다. 대신 침상 끝을 조금 비켰다. 앉으라는 것인지 가까이 오지 말라는 것인지 회유는 알아듣지 못해 서 있었다.“그럼 네 해 동안 모른 척했습니까?”“너를 지키려 했다.”“차밭도요?”“둘 다 지키려 했다.”문밖에서 듣던 난정이 들어왔다.“언니를 사랑했다고 말하겠죠.”회유가 그를 노려보았다.“사랑했소.”“그 말은 부정하지 않아요.”난정은 정안의 차밭 지도를 들어 올렸다.“그런데 언니가 가장 두려워한 게 아이 이름으로 차밭을 묶는 일이었어요. 사랑했다면서 왜 그걸 모른 척했죠?”“후부에는 책임질 사람이 필요했소.”“책임, 보호, 집안. 당신은 자기가 원하는 말을 늘 남을 위하는 것처럼 바꿔요.”회유는 같은 단어를 되풀이했다. 책임이 있었고, 아이를 보호해야 했고, 정안이 남긴 것을 지켜야 했다. 말을 할수록 정윤의 얼굴은 멀어졌다.“둘 다 잃기 싫었다.”끝내 나온 말은 짧았다.“너도, 차밭도.”“그럼 어머니는요?”정윤의 질문에 회유는 숨을 들이켰다. 정안을 잃기 싫었다는 말은 이미 늦었다. 살아 있을 때 그의 뜻보다 죽은 뒤 남은 재산을 더 오래 붙든 사람이 할 수 있는 답이 없었다.정윤은 멋진 말로 아버지를 끊어내지 못했다. 베개를 상자에 넣었다가 냄새를 맡고 다시 꺼냈다. 회유에게 나가라고 했다가 그가 문턱을 넘자 다급히 불렀다.“멀리 가지는 마세요.”회유의 발이 멎었다.“여기 있어도 되느냐?”“문 가까이에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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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화. 아이가 지우지 않은 성

정윤은 준비한 말을 잊었다.대리시의 작은 심리방에는 높은 재판상도, 구경꾼도 없었다. 낮은 상과 방석 네 장뿐이었지만 아이는 문턱을 넘자 입을 다물었다.문혜가 옆에서 약 먹을 시각을 알려주었다.“말은 천천히 해도 돼요.”정윤은 품에 넣어온 그림을 펼쳤다.한쪽에는 정씨 집의 붉은 대문이 있었다. 다른 쪽에는 세 굽이 능선과 차밭이 그려졌다. 가운데 서 있는 아이는 어느 쪽 손도 잡지 않았다.그림 속 대문은 실제보다 컸고 차밭 길은 지붕 위로 이어졌다. 정윤은 틀렸다고 지적할까 봐 먼저 길을 잘 모른다고 말했다. 소의는 고치지 않고 아이가 어디서 오래 살았는지만 물었다. 정윤은 대문 안 우물과 다향원 창문을 손가락으로 짚었다.고환이 법적 설명을 시작했다.“본래 입적이 위조되었으므로 원상 회복을 원칙으로 하면 출생 가계의 성으로—”“원상 회복이 뭡니까?”고환은 멈췄다.“거짓 문서가 생기기 전으로 돌린다는 뜻이다.”“그때 저는 어디에 있었습니까?”“아직…….”“없었는데 어떻게 돌아갑니까?”고환이 답을 찾는 동안 경연이 설명을 이어받았다.“태어난 집의 기록으로 다시 올릴 수 있다는 뜻이다.”“그러면 차밭도 같이 갑니까?”“소유권은 따로—”“왜 어른들은 늘 제 이름이랑 차밭을 같이 말합니까?”방 안이 조용해졌다. 소의는 정윤이 이해하지 못한 말을 하나씩 쉬운 말로 바꿔주었지만 답을 대신 고르지는 않았다.문혜도 마찬가지였다. 정윤이 자꾸 눈을 보내자 약잔만 가까이 밀었다.“제가 정씨로 남으면 어머니가 되어주십니까?”문혜의 손이 약잔 곁에서 멎었다.“그것 때문에 정하면 안 돼요.”“싫다는 말입니까?”“아니. 네가 나를 고르려고 네 이름까지 고르지는 말라는 뜻이야.”정윤은 말뜻을 다 알아듣지 못한 얼굴로 입을 내밀었다.회창의 어린 아들은 옆방에서 기다리다 몰래 들어왔다. 마른 기침을 하며 정윤 그림을 보던 아이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형이 후사가 아니면 제가 해야 합니까?”회창이 아들을 데려가려 했으나 아이는 상다리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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