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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붉은 혼서: Chapter 131 - Chapter 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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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화. 사건이 없는 저녁

경연이 빈손으로 청묵재 문을 넘었다.곡우는 바닥을 쓸다 말고 그의 허리부터 보았다. 관인도 칼도 없었다.“관청 일입니까?”“아니오.”“그럼…….”곡우는 다음 말을 찾지 못해 빗자루를 세게 밀었다. 먼지 대신 빗물이 문밖으로 밀려났다.옥선은 반월주가에서 밥그릇 하나를 더 가져왔다. 묻는 말은 없었다.“젖은 옷으로 방석 버리면 값 받는다.”“그러겠소.”“대답만 말고 벗어 말려.”경연이 겉옷을 벗자 곡우가 받을지 말지 망설였다. 소의가 말없이 대나무 옷걸이를 내밀었다. 두 사람 손이 닿지 않았는데도 곡우는 괜히 빗자루를 한 번 더 세웠다.저녁상에는 조밥과 생선찜, 풋나물 무침이 올랐다. 경연은 생선의 잔가시를 한쪽에 반듯하게 모았다. 소의는 그것을 보다가 물었다.“무엇을 좋아하십니까?”“무슨 뜻이오?”“먹는 것 말입니다.”경연은 상을 한 번 훑었다.“가리는 것이 없소.”“그건 좋아하는 것이 없는 겁니까?”“식사는 필요한 만큼 하면 되오.”옥선이 국자를 든 채 혀를 찼다.“저런 사람 밥해주는 집은 재미없겠네.”경연은 생선을 다시 보았다.“민물고기는 싫어하오.”“가리는 것이 없으시다면서요.” 소의가 말했다.“가시가 많아서 먹는 데 시간이 걸리오.”“그러니까 싫어하는 거지.” 옥선이 받아쳤다.소의의 입술 끝이 아주 조금 올라갔다. 경연은 그 표정을 보느라 생선 가시 하나를 밥 위에 떨어뜨렸다.“쉬는 날에는 무엇을 하십니까?” 소의가 다시 물었다.“쉬는 날은 없소.”“그게 답입니까?”“일이 있으면 해야 하지 않소.”“일이 없으면요?”“기록을 정리하오.”“그것도 일입니다.”둘의 대화는 세 마디마다 관청과 문서로 돌아갔다. 경연은 소의가 단것을 좋아하는지 몰랐고, 소의는 그가 늦잠을 자본 적이 있는지 몰랐다. 곡우가 답답해하다가 끼어들려는 순간 천장에서 물방울이 떨어졌다.툭.소의의 밥그릇 한가운데였다.“또 샌다!”사람들이 상을 밀고 종이 궤짝을 옮겼다. 빗물이 들이치자 경연은 좋은 옷의 소매를 걷고 뒤뜰 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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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화. 놓지 않은 소매

경연이 한 걸음 물러났다.소의의 손은 소매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젖은 옷감이 손가락 사이에서 더 세게 구겨졌다.“놓으라는 뜻이 아닙니까?”“제가 잡았습니다.”“그러니…….”“가시라는 뜻이 아닙니다.”두 사람 어깨 위로 처마 끝의 빗물이 한 방울씩 떨어졌다. 골목 안쪽에서는 옥선이 빈 그릇을 포개는 소리가 났다. 가까운 집의 개가 한 번 짖고 조용해졌다.경연은 소의가 쥔 제 소매를 내려다보았다.“지난번 일 때문에 찾아가지 않은 것이오.”“입을 맞춘 일 말입니까?”경연의 시선이 소의의 입술에 머물렀다.“다시 찾아가면 대답을 재촉하는 듯했소.”“그러면서 판결문은 찾으러 오셨잖아요.”“그건 두고 갔으니까.”“저에게 시간을 주신 겁니까, 버려두신 겁니까?”“그 두 말이 어찌 같소?”“그러면 지금도 가실 겁니까?”“집에는 가야—”소의가 그의 앞섶을 잡아당겼다.경연의 말이 끊겼다.그는 소의의 뺨 가까이 손을 들고 기다렸다. 소의가 남은 거리를 좁혔다.입술이 닿았다. 차가운 담벼락과 젖은 옷 사이로 오래 참은 숨이 부딪쳤다. 경연이 뺨을 감쌌고, 소의가 앞섶을 더 세게 쥐자 입맞춤이 깊어졌다.“……하.”소의의 짧은 숨이 흩어졌다. 경연의 손이 허리 가까이 갔다가 멎었다. 그가 얼굴을 떼었다.“싫소?”소의는 숨을 고르며 고개를 저었다.“놀랐습니다.”“그럼 멈추겠소.”“멈추라는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이번에는 소의가 먼저 입술을 올렸다. 경연의 팔이 허리를 감쌌고, 소의의 등이 차가운 벽에 닿았다. 놀란 숨이 샜지만 그의 뺨에 올린 손은 내려가지 않았다.골목 안쪽에서 곡우가 기침했다. 한 번, 두 번. 오래 기다렸다는 표시였다.소의가 먼저 몸을 떼었다. 경연의 손도 곧 내려갔다.“이제 돌아가겠소.”경연이 몸을 돌리자 소의가 다시 소매를 잡았다.“어디로 가십니까?”“내 집으로.”“저도 가겠습니다.”경연은 한동안 대답하지 못했다. 소의는 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두 사람은 묵정 계단을 올라 정양가를 걸었다. 경연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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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화. 다음 날의 거리

소의는 해가 중천에 오를 때까지 자고 말았다.몸을 일으키자 허리께가 묵직하게 당겼다. 베개 옆에는 백목소원에서 다시 꽂고 온 은비녀가 놓여 있었다. 소의는 그것을 집다가 제 손톱 아래 남은 희미한 붉은 자국을 보고 한동안 그대로 앉아 있었다.“사람을 불러놓고 주인이 늦는 집도 있소?”앞방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곡우가 대신 차를 내며 세 번째 사과를 하고 있었다.소의는 비녀를 비뚤게 꽂은 채 뛰어나왔다. 풍성한 머리를 급히 틀어 올린 탓에 검은 가닥이 뺨 옆으로 흘러내렸다. 계단을 급히 내려오다 마지막 칸에서 걸음이 잠깐 느려졌다.“죄송합니다. 처음부터 다시 말씀해주시겠습니까?”의뢰인은 남편이 술집의 여자에게 돈을 쓴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세탁 품삯, 아이 약값, 시어머니가 한 욕, 남편이 이틀째 돌아오지 않는 일이 뒤섞였다.평소라면 소의는 날짜와 액수를 바로 갈랐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은 남편이 기녀에게 비녀를 사줬다는 말을 두 번이나 흘려들었다.“그래서 그 여자한테 준 돈이 얼마라고요?”“내가 아까 세 번 말했잖소. 낭자가 밤새 무슨 큰일을 했나?”곡우가 갑자기 기침했다. 소의는 붓을 내려놓고 물을 마셨다.“사랑한다면서 살림돈은 안 주는 게 말이 되오?” 여자가 물었다.“사랑과 약조는 다를 수 있습니다.”“그럼 사랑은 없어도 돈만 주면 돼?”소의는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그건 제가 정할 일이 아닙니다.”“낭자는 자기 일도 모르는 얼굴이네.”여자는 혼인 때 받은 비녀까지 남편이 가져다 팔았다고 했다. 기녀에게 책임을 묻고 싶다고 했다가, 그 여자가 남편더러 집에 돌아가라며 두 번이나 쫓아냈다는 말도 덧붙였다. 화낼 사람을 잃은 여자는 더 서러워졌다.“그럼 누구를 잡아야 해요?”“돈을 가져간 남편에게 살림돈과 혼수 반환을 청해야 합니다.”“그 인간 얼굴도 보기 싫은데 관아에서는 같이 서라잖소.”소의는 소장 끝에 별도 대면을 청하는 문구를 넣었다. 사랑의 잘잘못은 적지 않고, 팔린 비녀의 값과 아이 약값을 정확히 적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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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화. 같은 상의 반대편

출석 관첩을 소매에 넣은 소의와 경연은 같은 상을 사이에 두고 인사했다.“오셨습니까.”“왔소.”둘의 허리는 평소보다 반듯했고 거리는 평소보다 멀었다.명주는 두 사람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어제 싸웠는지, 화해했는지, 아무 일도 없었는지 알아내려 했으나 어느 쪽도 표정이 없었다.“오라버니는 저쪽에 앉으세요. 아니, 이쪽이 빛이 좋나?”그가 방석을 옮기다 장부 두 권의 순서를 바꿨다.“명주야.” 여운이 안쪽에서 불렀다.“저는 도와드리는 중이에요.”“네가 만진 뒤 액수가 맞지 않는다.”명주는 시치미를 떼며 소의 옆에 앉았다. 경연은 맞은편을 택했다. 소의는 소매 안의 출석 관첩만 반듯하게 눌렀다.세 사람이 보는 기록은 서로 달랐다.경연은 대리시가 압수한 채권 번호를 읽었다. 소의는 차밭 일꾼에게 실제로 지급된 품삯을 맞췄다. 명주는 시비와 마부가 기억한 밤문 출입을 날짜 옆에 붙였다.“이날 은자 삼백 냥이 나갔소.” 경연이 말했다.“곡식값을 더하면 사백이 넘습니다.” 소의가 답했다.“그날 북방 사람은 안 왔어요.” 명주가 끼어들었다. “아니, 왔나? 초롱을 든 날이 이틀 뒤였나 봐요.”“확실한 것만 말해.”“확실하게 기억하는 사람만 세상에 있나요?”명주는 시비를 다시 부르러 갔다가 여운에게 붙잡혀 방밖으로 쫓겨났다. 잠시 뒤 문에 그림자 하나가 붙었다. 귀를 대고 있는 것이 빤히 보였다.상 위 숫자는 세 번이나 다시 셌다. 일부 채권 이자가 황손 교육 기금으로 들어간 것은 맞았으나, 날짜 하나가 어긋나 자금이 어느 상자 값에서 나왔는지는 확정되지 않았다.점심때가 지나자 여운이 찬 밥과 장아찌를 내왔다. 명주는 두 사람 사이의 빈자리에 반찬을 밀어놓고 누가 먼저 집는지 보다가 제 소매로 간장 종지를 엎었다. 하인들이 닦으러 몰려들자 경연은 더 멀리 물러났다. 소의는 간장 묻은 종이를 바꾸는 동안 그를 한 번도 보지 않았다.소의가 붓을 잡으려 손을 뻗자 경연도 같은 붓을 잡았다. 손끝이 맞닿았다. 경연의 손이 작게 움찔했지만 소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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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화. 단오날 찾아온 찻간지기

`사적 왕래는 본인이 먼저 시작하였다.`그 문장이 적힌 진술서는 다음 날 단오 장터에서도 소의의 소매 안에 있었다.청류천 위로 용선의 북소리가 퍼졌다.둥! 둥! 둥!노를 젓는 사내들이 물을 한꺼번에 걷어 올릴 때마다 강가의 아이들이 더 크게 소리쳤다. 장사꾼은 쑥떡과 약초 주머니를 흔들었고, 오색실을 손목에 묶은 아이들은 사람 다리 사이로 뛰어다녔다.소의는 정윤이 그린 용선 그림을 펼쳐 들었다.“배가 왜 세 층입니까?”“큰 배니까요.”“노는 네 개뿐인데요.”“사람이 많으면 무거워지잖아요.”그림을 산 사람은 배보다 용 머리가 마음에 든다며 엽전 두 닢을 더 놓았다. 정윤은 엽전을 세다가 하나를 문혜 손에 맡겼다. 약값 몫이라고 했다.강둑 아래에서는 창포물 대야가 줄지어 놓였다. 아이들은 서로 손목의 오색실이 오래 간다며 자랑했고, 늙은이들은 쑥을 문간에 걸면 여름병을 막는다고 다퉜다. 정윤은 자기 실 한 가닥을 회창의 아들에게도 묶어주려다 매듭을 못 지어 둘이 한참 손을 붙들고 낑낑댔다.난정은 차밭 사람들에게 나눠줄 쑥과 창포 꾸러미를 등에 졌다. 경년이 들어주겠다고 하자 가벼운 것만 골라 맡겼다. 지난번처럼 전부 빼앗기지 않겠다는 태도였다.사람들 사이로 늙은 여인이 난정을 따라다녔다.한 번은 쑥 장수 뒤로 숨었고, 한 번은 용선 구경꾼 틈에서 발을 밟혀 주저앉았다. 난정이 세 번째 돌아보았을 때 여인은 고개를 숙였다.“왜 따라오세요?”“설 낭자 맞습니까?”“그런데요.”“정안 부인과 눈이 닮았군요.”난정의 표정이 굳었다.여인은 정안이 세굽이차원에서 쓰던 찻간을 지킨 사람이었다. 관청에는 무서워 가지 못했고, 후부 사람에게 붙잡히지 않으려 사람이 많은 단오날을 골랐다고 했다.“네 해를 숨어놓고 오늘은 왜 나왔죠?”“아이가 또 독을 먹었다 들었습니다.”정윤이 그림을 접다 손을 멈췄다.여인은 목 안쪽에서 끈 하나를 꺼냈다. 땀에 젖어 색이 바랜 끈 끝에 작은 쇠열쇠가 매달려 있었다.“부인이 죽기 전에 홍 유모에게 맡겼고,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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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화. 며느릿감이 아니라 곡우

단오에 묶은 오색실이 곡우 손목에 아직 남아 있었다.노탁의 어머니는 사과 대신 새 앞치마를 내밀었다.“마침 잘 왔다. 네 키에 맞을 것 같아 지어뒀다.”곡우는 앞치마를 받지 않았다. 북문 마구간 뒤의 작은 집은 문을 열면 부엌과 안방이 한눈에 보였다. 처마 아래에는 약초가 거꾸로 매달렸고, 마당 한편에는 노탁 누이의 혼수 궤짝이 덜 칠한 채 놓여 있었다.“어머니, 그 말부터 사과하셔야 합니다.” 노탁이 말했다.“무슨 말?”“며느릿감이라고 마음대로 부르신 것.”“며느릿감에게 며느릿감이라 하지 뭐라 하니?”노탁이 곡우를 보며 어색하게 웃었다.“어머니가 원래 말이 좀 빠르오. 내가 나중에—”곡우의 얼굴이 굳었다. 노탁은 웃음을 바로 거뒀지만 이미 늦었다.어머니는 부엌 열쇠까지 앞치마 위에 올렸다.“혼인하면 청묵재는 그만두면 된다. 가게 일은 밤늦고 사내 손님도 많다며? 우리 집 살림만 맡아도 손이 모자라.”어머니는 곡우가 쓸 방까지 정해두었다. 안방 옆의 작은 골방이었다. 지금은 약재 자루와 누이의 혼수 그릇이 들어 있어 사람이 누우려면 절반을 비워야 했다. 곡우의 물건이 어디로 갈지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다.“제가 쓰는 인쇄 틀은요?”“그런 건 가게에 두고 오면 되지.”곡우는 자기 일이 이 집 사람들에게는 가져오지 않아도 되는 짐이라는 것을 알아들었다.“저는 청묵재를 그만둔다고 한 적이 없습니다.”“여자가 시집오면 남편 봉록으로 사는 거지.”구석에서 칠을 하던 누이가 고개를 들었다.“새언니가 버는 돈으로 내 혼수도 조금 보태주나요?”“너는 빠져.” 노탁이 말했다.“오라버니 봉록은 집안 돈이라며.”어머니가 딸을 나무라지 않았다. 오래 가난했던 집에서 아들이 버는 돈은 어머니 약값과 누이 혼수, 겨울 땔감까지 모두의 몫이었다. 그 계산에 새 사람 한 명의 벌이가 자연스레 빈칸처럼 들어갔다.곡우는 앞치마를 상 위에 반듯이 놓았다.“제 수입은 한 달에 은전 열두…… 아니, 열다섯입니다. 그 돈으로 제 방세와 옷값을 내고, 청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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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화. 두 번째 차를 우리는 밤

청묵재 뒷문이 안에서 잠긴 그 밤, 려화의 방문은 열려 있었다.유백은 약재 목록을 다 읽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났다.“내일 북문이 열리면 떠납니다. 누이의 약은 사흘치씩 나누어 두었으니—”려화는 찻주전자를 다시 들었다.“한 잔 더 드시겠습니까?”“속이 불편하십니까?”“아닙니다.”“밤에 차를 많이 마시면 잠이 오지 않습니다.”“알고 있습니다.”“그럼 약방에서 볶은 보리를—”“나는 오늘 아픈 사람이 아닙니다.”유백이 입을 다물었다.려화의 새 거처는 방 하나와 부엌 하나뿐이었다. 열린 방문 너머로 공동 우물이 보였고, 옆집 아기 울음이 벽을 통과해 들어왔다. 그는 남자를 방 안에 들이면 내일 골목에 어떤 말이 돌지도 알았다. 그래도 문을 닫지 않았다.려화는 낮 동안 베껴 쓴 약방 목록을 벽에 말리고 있었다. 예전 집에서는 자기 손으로 못 하나 박을 수 없었지만 이 방의 선반은 높이가 비뚤어도 그가 정했다. 유백은 기울어진 선반부터 바로잡으려다, 허락 없이 손대는 것이 싫을까 망치를 다시 내려놓았다.유백은 문턱 밖에 한 발, 안에 한 발을 둔 채 앉았다.“그렇게 걸쳐 앉으면 찬바람만 들어옵니다.”“안으로 들어가도 됩니까?”“이미 발 하나는 들어왔잖아요.”유백은 그 말이 허락인지 핀잔인지 몰라 끝내 같은 자세를 지켰다.옆집에서 그릇 깨지는 소리가 났다.“네가 돈을 어디다 썼어!”“내가 번 돈이야!”아기가 더 크게 울었다. 려화가 찻잔을 내려놓고 뛰어나갔다. 유백도 따라가 두 사람 사이에 엎어진 상을 세웠다. 남편은 술 냄새를 풍기며 소리를 질렀고 아내는 아이를 안고도 지지 않았다.유백은 누구 말이 맞는지 가르려다가 려화에게 팔을 잡혔다.“지금은 아이부터.”그는 아이의 이마를 짚었다. 열은 없었다. 부부는 싸움을 멈추지 않았지만 적어도 아이는 아래층 노파에게 맡겨졌다.방으로 돌아오니 차는 식어 있었다. 려화는 다시 물을 데웠다.“떠나지 말라는 뜻입니까?”유백이 한참 뒤 물었다.려화는 찻잎 위로 뜨거운 물을 부었다.“그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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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화. 정안의 찻간을 여는 사람들

찻간 문 앞에서 열쇠를 잡을 사람부터 정하지 못했다.“정안 부인의 아들이 열어야지.”“차밭은 설씨 혼수였어. 난정 낭자가 열어야 해.”“우리가 시킨 말도 있다며? 그럼 우리 손도 있어야지.”사람들은 낮은 찻간을 빙 둘러쌌다. 문에 닿으려면 덖음 마당과 죽석 사이를 지나야 했다. 관청에서 온 군졸은 뒤에 서 있었고, 난정은 그들을 앞으로 부르지 않았다.결국 늙은 찻간지기와 정윤, 난정이 열쇠에 손을 겹쳤다.철컥.네 해 동안 닫혀 있던 문이 안쪽 먼지를 밀어냈다. 퀴퀴한 차 냄새가 쏟아졌다. 사람들은 은자나 비밀 장부를 기대하며 목을 길게 뺐다.정윤이 재채기를 하자 늙은 찻간지기가 자기 소매로 아이 코부터 가렸다. 난정은 창을 열려 했으나 문틀이 불어 꿈쩍하지 않았다. 경년이 어깨로 밀어 올리는 동안 사람들은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문 앞에서 서로 발을 밟았다.안에는 반쯤 덖다 버린 차 자루와 곡식 표, 약값을 적은 나무패가 쌓여 있었다.“이게 다예요?” 정윤이 물었다.난정은 대답하지 못했다. 언니가 숨긴 대단한 진실을 기대한 자기 마음이 민망했다.소의는 종이를 읽었지만 먼저 말을 한 것은 글을 모르는 사람들이었다.“저건 우리 집 표요. 그런데 보리 다섯 말이 아니라 셋이었어.”“둘은 빚 갚는 데 바로 가져갔잖아.” 감독이 말했다.“그러면 받은 건 셋이지!”“여기 약값은 맞아요.” 아이를 업은 여자가 끼어들었다. “우리 어머니 다리 약. 부인이 의원까지 불러줬지.”뒤에 있던 사내가 코웃음쳤다.“당신네만 챙겼으니까 고맙겠지. 우리 집 품삯은 석 달이나 늦었어.”또 다른 사람은 나무패에 적힌 자기 집 식구 수가 틀렸다고 했다. 정안은 네 명이라 적었지만 그해 겨울 태어난 아이까지 다섯이었다.“부인도 막내가 태어난 걸 모르셨네.”아이 어머니가 나무패의 숫자를 손톱으로 긁었다.정안은 사람을 세세히 돌봤다. 그러나 누구를 먼저 돕고 얼마를 줄지는 혼자 정했다. 고마움을 기억하는 집 옆에는 그 순서 때문에 겨울을 더 길게 보낸 집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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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화. 겨울 곡식의 값

사람들의 시선이 차밭 감독에게 몰렸다.그는 찻간 기둥에 등을 붙였다.“나는 모르는 일이오.”“당신이 손도장을 걷었잖아!”“공동 약조라며 우리 엄지에 인주를 발랐어!”돌 하나가 날아와 기둥에 맞았다. 감독은 어깨를 움츠렸지만 끝까지 아니라고 했다.경년이 사람들 앞을 막았다.“말을 들어봅시다.”“또 덮으려고?” 난정이 그를 밀쳤다.“한 사람만 잡아내 쫓으면 차밭은 깨끗해집니까?”“당신은 늘 차밭부터 생각하죠.”“그럼 내일 일할 사람은 누가 남소?”두 사람이 다투는 사이 감독의 아내가 아이를 끌고 앞으로 나왔다. 아이 한쪽 귀에는 오래된 화상 자국이 있었다.“그 겨울 이 아이가 사흘을 앓았어요.”감독의 입이 떨렸다.장은은 의원을 보내고 곡식 열 말을 주었다. 그 대가로 손도장 찍힌 약조를 한 번 빌려달라고 했다. 돌려받을 줄 알았고, 빈 상자 출입패에 다시 쓰일 줄은 몰랐다고 했다.“몰랐다는 말을 누가 믿어!”“나는 상자를 날랐어.” 다른 사내가 소리쳤다. “돈인 줄도 모르고. 곡식 두 말 받은 게 다야.”“나는 알았소.” 늙은 여자가 입을 열었다. “공주부 창고로 가는 것도 알았어. 손자가 겨울을 못 넘길까 봐 입을 다물었소.”손도장을 모은 사람, 종이를 넘긴 사람, 상자를 나른 사람, 받은 곡식을 나눠 먹은 사람이 차례로 앞으로 나왔다.곡식을 받지 못한 집들이 그들을 쫓아내자고 했다. 같은 겨울 도움받은 사람들은 뒤로 물러나 입을 다물었다.곡식을 못 받은 젊은 과부가 감독 아내의 멱살을 잡았다. 자기 아이는 의원 한 번 못 보고 죽었다고 울부짖었다. 감독 아내는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그 말을 하면 자기 아이를 살린 일을 후회하는 것처럼 느껴져 입만 떨었다. 난정과 경년이 두 사람을 떼어놓았지만 어느 쪽도 진정하지 않았다.“한 집 아이를 살린 곡식이 다른 집 아이 몫이었다는 거요?” 누군가 물었다.아무도 계산할 수 없는 질문이었다. 소의는 그 말을 약조의 답처럼 적지 않고, 두 집에 실제로 배급된 날짜만 나누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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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화. 관복을 다시 입는 날

경연은 제 잘못부터 읽었다.“민간 참고인의 현장 권한을 넓게 운용했고, 거래 대금을 전면 동결하며 당일 품삯을 구분하지 못했습니다.”공개 심사청에는 대리시 관원과 감찰 서리, 차밭에서 온 대표가 나뉘어 앉아 있었다. 경연은 자기 판단이 옳았다는 말로 문장을 덮지 않았다.심조문이 다음 종이를 받았다.“참고 권한은 내가 승인했네. 상관의 책임도 같은 기록에 넣게.”고환은 밤새 정리한 법조문을 펼쳤다.“차밭 임시 약조는 관청이 정한 절차 밖에서 작성됐습니다. 관청 밖의 사람이 봉한 돈의 용처를 먼저 정하게 되면—”“약조로 실제 품삯을 받은 사람도 있네.” 감찰관이 끼어들었다.고환은 잠시 멈췄다.“결과가 좋다고 절차가 생기지는 않습니다.”“그럼 전부 무효인가?”“그것도…… 아닙니다.”방 안에서 작은 웃음이 나왔다. 고환의 귀가 붉어졌다.“실제로 지급된 품삯과 보존된 증거 자금은 따로 확인해야 합니다. 잘못을 지적한다고 없던 결과를 만들 수는 없습니다.”차밭에서 온 일꾼 대표는 법조문을 알아듣지 못했다. 그는 자기 가족이 받은 곡식 자루 수와 전대 열쇠를 가진 세 사람의 이름만 말했다. 다른 대표는 소의가 첫 약조를 찢어버린 일부터 털어놓아 감찰관을 당황하게 했다.“완성된 문서를 가져와 강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끼리 싸워서 세 번 고쳤소.”감찰관은 찢어진 첫 약조와 세 번 고친 마지막 약조를 나란히 펼쳤다.그는 경연을 몰아붙이려 거짓 증거를 보태지 않았다. 자기 법리가 흔들리는 것이 싫어 턱에 힘을 주었을 뿐이었다.소의의 자리는 비어 있었다.운주에서 돌아온 수레가 새벽에 연경에 들었다는 말을 경연도 들었다. 방청석에 앉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소의는 세굽이차원의 마지막 인장과 증언을 남창 검량소에 넘기러 갔다.경연은 빈 자리를 한 번 보았다. 서운함이 먼저 올라왔고, 곧 그 선택이 소의답다는 생각이 따라왔다. 어느 쪽도 입 밖에 내지 않았다.심사는 정오에 끝났다.경연은 조건부 복귀를 명받았다. 소의의 참고패는 되돌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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