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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화. 불길 밖의 사람

“팔 말고! 겨드랑이 밑을 잡아!”복례가 만복의 타는 소매에 젖은 천을 덮었다. 치익, 김이 솟았다. 만복이 벌떡 일어나려다 검은 침을 토했다. 복례는 무릎으로 그의 다리를 누르고 천을 더 끌어당겼다.“가만있어. 좀 가만있으라고!”누군가 물동이를 들이밀었다. 그녀가 고개도 들지 않고 받아 불붙은 수레채에 끼얹었다. 만복의 발목에 걸린 고삐가 끊어지자 장정 둘이 그를 끌어냈다.“교대하러 온 놈은…….”“살았어. 포졸 데리러 갔어.”그제야 만복의 손에서 칼이 떨어졌다. 복례는 그것을 주울 생각도 못 했다. 남편의 어깨를 싸맨 천 아래로 피가 번지고 있었다.같은 시각, 정례헌 서쪽 물품문이 안에서 닫혔다.소의는 혜란의 짐을 받으려던 손을 뻗어 문짝을 붙잡았다. 틈으로 자온의 얼굴이 보였다.“어머니 신이 벗겨졌어요!”문 안쪽에서 하인 둘이 혜란을 끌고 있었다. 늙은 시비가 신발을 들고 따라가다가 밀쳐졌다. 소의가 문을 세게 당겼지만 안에서 미는 힘이 더 컸다.“손 빼시오. 다칩니다.”“그럼 문을 놓으세요!”나무가 손바닥을 긁었다. 소의는 발끝을 문지방에 걸쳤다. 뒤에서 약재 수레를 지키던 마부가 달려와 함께 문을 당겼다.“사람 좀 불러주세요!”자온이 하인의 팔을 물었다. 사내가 아이를 떼어내려 손을 들자 혜란이 몸으로 막았다. 퍽, 등에서 둔한 소리가 났다.소의는 수레의 짐받침을 집어 문 아래에 밀어 넣었다. 손바닥에서 피가 났다. 그 틈으로 자온이 빠져나왔다.“돌아가지 말고 저 아저씨 곁에 있어.”“어머니가—”“내가 갈게.”소의가 옆으로 몸을 넣었다. 혜란은 돌계단 앞에 주저앉아 있었다. 하인이 팔을 잡아 일으키자 소의가 그 사이로 들어가 혜란을 안았다.“비키시오!”“일어날 수 있어요?”혜란이 고개를 끄덕였지만 무릎이 펴지지 않았다. 소의는 한쪽 팔을 제 어깨에 걸쳤다. 무거웠다. 두 걸음도 못 가 함께 휘청거렸다.하인이 소의의 뒷덜미를 잡았다.“누구 허락으로 남의 안채에—”그 손이 갑자기 떨어졌다. 마부의 고함을 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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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화. 잠들지 못한 집

“저도 가겠습니다.”소의가 일어나자 경연은 손에 남은 피를 보았다.“포졸을 보내면 되오.”“이름이 둘이에요. 누가 살아 있는지 또 잘못 옮기면 안 됩니다.”그는 소의가 내민 자매의 접수지를 읽고 돌려주었다.“호위와 함께 가시오. 나는 의원으로 가겠소.”소의는 고개를 끄덕였다. 경연이 일어나면서도 손수건 끝이 풀리지 않았는지 한 번 더 보았다.혼적청 옆문에는 젊은 서리가 빗장을 걸고 있었다.“끝났습니다.”“사망 신고가 오면 확인부터 해주세요. 유씨 자매 두 분 다 살아 있습니다.”서리의 손이 멎었다. 소의가 이름을 불러주자 그는 안으로 들어가 인계첩 한 권을 가져왔다. 포졸이 대리시의 전갈을 건네는 동안 소의는 두 줄을 확인했다.언니는 죽었고, 동생은 다른 고을로 떠난 것으로 되어 있었다.“이전 신고네요.”“새로 들어온 것은 없습니다.”“그럼 오늘도 없었다고 남겨주세요.”서리는 날짜를 적었다. 소의는 그의 얼굴을 다시 보았다.“전에 창고 열어주신 분이죠?”“허온입니다.”그가 책을 덮으며 몸을 돌렸다. 허리띠에 끼워둔 열쇠가 돌바닥에 떨어졌다.때마침 식함을 들고 온 윤채가 그것을 주웠다.허온이 손을 뻗다가 멈췄다.“그리 줘.”윤채는 열쇠를 보았다. 남편에게 내밀 때 손가락이 조금 굳었다. 소의는 그 손을 보았지만 묻지 않았다.“어느 창고 것입니까?”“폐기할 책을 잠시 두는 곳입니다.”소의는 위치와 담당자만 받아 적었다. 허온은 더 물을 줄 알고 기다리다가 그녀가 떠나자 뒤늦게 책을 안으로 옮겼다.*집에 돌아오니 약이 넘쳐 화롯불이 죽어 있었다.윤채는 식함을 내려놓고 젖은 재부터 퍼냈다. 안방에서 시아버지가 기침했다. 허온이 부축하려 하자 노인은 손을 저었다.“불이나 살려라.”남편이 부채질을 너무 세게 해 재가 날렸다. 윤채는 약솥을 옮기고 마른 장작을 골랐다.“문 열어. 연기 안 빠져.”그가 문을 열자 찬바람에 요 귀퉁이가 들렸다. 허온의 손에서 열쇠가 떨어졌다.윤채는 장작을 넣던 손을 멈췄다.“그때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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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화. 약값을 치른 사람

허온이 대문을 닫았다.윤채가 다시 열었다. 골목 끝으로 수레 한 대가 빠져나가고 있었다.“어디로 모셔?”“의원에…….”“어느 의원.”허온은 약봉지 끈을 만졌다. 윤채가 그것을 빼앗아 문밖에 놓았다.“모르는 약 안 달여.”그날 밤 허온은 거의 눕지 못했다. 새벽에 아버지가 물을 찾자 먼저 일어나 그릇을 가져갔다. 노인이 손등을 두드리며 왜 이리 차냐고 물었다.아침상에는 보리밥과 절인 무가 올랐다. 아버지는 찬장 위 엿을 꺼내 세 조각으로 나눴다. 제 것은 물에 넣고 부부 앞에는 하나씩 밀었다.“둘이 싸웠어도 밥은 먹어.”윤채가 무를 작게 잘라드렸다. 허온은 숟가락을 들었다 놓았다.해가 들자 총관이 왔다.추천장과 약재전 영수패를 함께 내놓았다. 허온이 봉투를 밀자 총관은 되밀지 않고 밥상 옆에 두었다.“낭중 대인께서 혼적청으로 오셨네. 자매 기록을 바로잡을 사람이 필요하시다네.”“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그러니까 직접 가서 듣게.”안방에서 아버지가 기침했다. 총관이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돌아올 때는 의원으로 오고. 부친은 우리가 모시겠네.”허온은 봉투를 집었다. 윤채가 그의 소매를 붙잡았다.“거절하러 가는 거야?”그가 대답하지 못하자 그녀의 손이 떨어졌다.*소의는 혼적청 계단에서 허온을 만났다. 그는 품 안의 추천장을 감추려다 떨어뜨렸다.소의가 줍기 전에 허온이 먼저 집었다.“받기만 했습니다.”“무슨 일을 시켰어요?”“아직…….”안에서 총관이 그를 불렀다. 허온은 계단을 올랐다. 소의가 따라가려 하자 문지기가 길을 막았다.“오늘은 대기하랍니다.”소의는 계단 아래로 돌아와 호위 포졸에게 말했다.“경연 대인께 알려주세요. 현씨 집에서 허 서리에게 추천장을 줬어요. 저는 집에 가볼게요.”“혼자 가시면—”“길은 알아요. 집 앞에서 기다릴 테니 사람을 보내주세요.”문적방 뒤 골목에 이르렀을 때 윤채는 약재전 주인과 다투고 있었다.“돈 드린다니까요. 늘 먹던 것만 주세요.”“외상을 현씨 집에서 갚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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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화. 끌려가지 않는 사람

윤채의 손등 위로 신발이 내려왔다.소의가 어깨로 사내를 밀었다. 발이 비껴갔지만 이번에는 소의가 담에 등을 부딪쳤다. 숨이 턱 막혔다. 사내가 그녀의 팔을 비틀자 상처를 감싼 천이 풀렸다.“놔요!”총관이 다가왔다.“소란 피우지 말고 안으로 들어갑시다.”소의는 끌려가며 수레를 보았다. 윤채는 바퀴에 매달려 있었고, 노인은 장정의 팔에서 반쯤 미끄러져 있었다. 마부가 채찍을 들었다.“어르신부터 내려놔요. 그러면 들어갈게요.”총관이 손짓했다. 노인이 마당에 내려앉자 윤채가 기어가 등을 받쳤다.소의는 그제야 팔에 힘을 뺐다.방 안에는 허온이 돌아와 있었다. 허리띠가 삐뚤어져 있었고 숨을 몰아쉬었다. 현도언은 유씨 자매의 기록을 폐기 창고로 옮기라 했고, 허온은 책을 인계함에 잠근 뒤 집으로 달려온 참이었다. 총관이 소의를 끌고 들어오자 그가 일어섰다.“이분은 왜…….”“아버님 모시는 것을 막았네. 자네가 설명해.”허온은 바깥을 보았다. 아버지의 기침이 문턱을 넘어 들어왔다.총관이 종이를 폈다.“진소의가 시켜 관청 책을 숨겼다고 적게. 그러면 오늘 일은 없던 것으로 하지.”허온이 굳었다.“그런 말씀은 안 하셨습니다.”“자네가 혼자 했으면 자네 죄지. 아내는 누가 먹여 살리나?”소의가 허온의 손을 보았다. 주먹 사이로 열쇠 끝이 나와 있었다.“책을 옮겼어요?”허온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없애지는 않았고요?”“인계함에…….”총관이 탁자를 쳤다.“시키는 말만 적어!”소의가 종이 위에 손을 놓았다.“제가 시켰다고 쓰지 마세요.”총관이 손등을 치려 하자 그녀가 먼저 종이를 끌어당겼다.“이분이 한 일까지 없었다고 하지는 않을 겁니다. 저도 하지 않은 일은 인정 못 해요.”허온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가 잠깐 소의를 원망하듯 보았다. 소의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마당에서 윤채가 남편을 불렀다.“아버님 숨이 이상해!”허온이 뛰쳐나가려 하자 총관이 문을 막았다.“적고 가.”소의는 일어서며 식은 물그릇을 집었다. 총관이 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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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화. 돌아오지 않은 명패

소의는 바로 서려 했지만 옆구리가 당겼다.경연이 팔을 놓지 않았다.“어디에 부딪쳤소?”“수레요. 잠깐만 있으면…….”그는 옆집에서 내온 걸상을 발로 가까이 당겼다. 소의가 앉고 나서야 손을 뗐다.포졸이 골목 사람 둘을 데려왔다. 한 사람은 문틈으로 보았고 다른 사람은 물을 버리러 나왔다가 총관이 내민 명패에 물러섰다. 두 사람의 말은 장정이 노인을 들고 나온 데서 맞았고, 소의가 언제 달려왔는지는 달랐다.경연은 같은 말을 시키지 않았다. 각자 선 자리를 짚게 하고 기록을 나눴다.허온이 방에서 나왔다.“아버지를 맡긴 적 없습니다.”총관이 그의 어깨를 잡으려 했다. 포졸이 팔을 막았다.“추천장은 받았네. 그것도 말해야지.”허온이 종이를 내놓았다. 경연은 봉투를 펼쳐 기록 서리에게 건넸다.“받은 까닭은 따로 조사한다. 지금은 부친을 데려가도 된다고 했는지 묻는 것이다.”“안 했습니다.”경연이 총관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명패.”총관은 망설이다 품에서 꺼냈다.“낭중 대인께서 아시면…….”“이 명패를 보이고 사람을 물리쳤다지. 함께 보관한다.”포졸이 총관과 장정들을 결박했다. 마부가 수레를 빼려 하자 바퀴 앞에 섰던 윤채가 고삐를 움켜쥐었다.“이 사람도요.”경연이 고개를 끄덕였다.“말을 움직이라 한 자까지 적어라.”총관이 끌려나가며 소의를 돌아봤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허온이 받아 간 추천장은 그의 손으로 돌아가지 않았고, 명패도 돌려주지 않았다.*혼적청에 도착했을 때 현도언은 뜰에 서 있었다.경연은 노인의 진료를 확인하고 왔다. 소의는 가마를 부르겠다는 말을 거절하고 마부 옆자리에 앉아 따라왔다. 내릴 때 경연이 손을 내밀자 이번에는 잡았다.도언이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남의 집 사람부터 묶고 다니시오?”경연은 예부의 인계문을 폈다. 소의의 전갈을 받은 뒤 미리 청한 결재였다.“허 서리 부친을 강제로 데려가려 했습니다. 조사 뒤 형부에도 알리겠습니다.”“좋은 의원을 보이려 했소.”“직접 명하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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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화. 비워둔 한 자리

소의는 젓가락을 놓았다가 다시 옮겼다.둘이 마주 앉으면 상이 너무 작았다. 나란히 놓으니 손님상 같지 않았다. 곡우가 삶은 닭을 내려놓다가 세 번째로 자리를 바꾸는 손을 보았다.“아무 데나 놓으세요. 대인께서 못 찾아 드시겠어요?”“붕대에 국물이 묻을까 봐.”“장궤 것은 저쪽인데요.”소의는 젓가락에서 손을 뗐다.청묵재 앞방에는 갓 들인 종이 냄새가 났다. 곡우가 동쪽 창을 닫자 등잔불이 한 번 길어졌다가 바로 섰다. 뒤뜰에서는 옥선이 빌려준 솥뚜껑을 씻는 소리가 났다.문밖에서 장화 밑창이 돌을 쓸었다.경연은 평소보다 일찍 왔다. 검은 겉옷에 바깥바람이 남아 있었다. 소의가 일어서자 그의 시선이 붕대부터 찾았다.“앉아 계시오.”“이제 괜찮습니다.”그는 내민 손을 거두지 않았다. 소의는 잠깐 망설이다 손바닥을 위로 돌렸다. 경연의 엄지가 매듭 옆에서 멎었다.“이걸로 솥도 들었소?”곡우가 부엌에서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제가 들었습니다. 아까부터 젓가락만 세 번…….”“곡우.”곡우가 고개를 쏙 넣었다. 경연은 소의를 보다가 시선을 내렸다. 입가가 조금 움직인 것을 소의는 못 본 척했다.그가 손을 놓은 자리가 따뜻했다.상 한쪽에는 독립 호적 청원서가 놓여 있었다. 소의는 국그릇을 옮기고 종이를 펼쳤다.“제 이름으로 집을 얻으려면, 이 부분을 먼저 마쳐야 한다고 해서요.”경연은 빈 거처 칸을 보았다.“정한 곳이 있소?”“아직요. 곡우 방이 너무 좁아요. 손님이 자고 가면 짐을 제 방으로 다 올려야 하고요.”“내가 알아봐도 되겠소?”소의가 그를 올려다봤다.“값을 먼저 물어봐주세요.”“다른 것은?”“볕이 좀 들었으면 좋겠어요.”경연은 뒤뜰을 향한 발을 보았다. 낮에도 그 안쪽은 어두웠다. 그는 종이를 접지 않고 소의 곁으로 의자를 당겼다.“그대가 직접 보고 정합시다.”소의가 대답하려던 때였다.쾅!앞문이 벽에 부딪쳤다. 아완이 문턱에 걸려 두 손으로 바닥을 짚었다. 염방에서 올라온 명산과 혜진의 딸이었다. 손에 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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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화. 남쪽으로 가는 죄인

수레는 빠르지 않았다.남시를 빠져나가는 짐들이 길을 막고 있었다. 콩자루를 실은 노새가 멈추자 뒤쪽 수레도 서야 했다. 명산을 실은 수레의 마부는 그때마다 채찍으로 옆 수레를 쳤다.“관가 일이오! 길 터!”혜진이 숨을 헐떡였다. 소의도 옆구리가 당겨 걸음을 줄였다. 따라잡을 때마다 다시 멀어졌다.성문이 보이기 시작했을 때 소의는 빈 수레 앞을 막았다.“잠깐만요. 저 앞에 대주세요.”수레꾼이 손사래를 쳤다.“난 일 끝났소.”“사람을 다른 곳으로 데려가고 있습니다. 포졸이 오고 있어요.”“그럼 포졸한테 맡기시오.”그가 고삐를 들었다. 소의는 수레채에서 손을 뗐다. 붙잡고 늘어지면 이 말도 놀랄 터였다.혜진이 먼저 수레꾼에게 두 손을 모았다.“제 남편이에요. 성문만 넘지 못하게 해주세요.”수레꾼은 명산이 탄 수레를 보고, 그 뒤의 성문을 보았다. 욕을 작게 하더니 빈 수레를 비스듬히 틀었다.“바퀴 빠지면 댁들이 물어내.”나무바퀴가 돌 틈을 긁었다. 끼긱, 수레채 끝이 반대편 짐꾸러미에 닿았다. 마부가 채찍을 높이 들었다.“당장 빼!”소의는 수레 사이를 지나 명산 곁에 섰다.“연경부로 가는 길이 아닙니다.”“죄인과 말 섞지 마시오.”명산의 팔을 누른 사내가 내려왔다. 두꺼운 목덜미에 땀이 번들거렸다. 객점 주인이 운송패의 우두머리 석규라고 불렀던 자였다.그가 소의의 어깨를 밀었다.“창고에서 다른 수레로 바꾸는 거요.”“어느 창고입니까?”석규가 대답 대신 팔을 잡았다. 붕대 감은 손이 뒤로 꺾였다. 소의가 비명을 삼키자 혜진이 달려들었다.명산이 수레 안에서 몸을 던졌다.쿵!결박된 채 바닥에 떨어진 그를 석규가 발로 눌렀다. 혜진이 그 발목을 붙잡았다. 빈 수레꾼이 고삐를 놓고 뛰어왔지만 뒤의 사내 둘이 막았다.“관가 죄인 건드리지 마!”“관가 사람이 왜 저 여자를 때려!”성문 앞 장사꾼들이 고개를 들었다. 파수병 둘이 창을 세우고 달려왔다. 석규는 품의 종이를 펼쳤다.“연경부에서 보낸 거요.”파수병이 받아 읽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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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화. 놓지 못한 걸상

곽진은 의원이 팔을 펴려 하자 욕부터 했다.“부러진 데를 또 꺾으면 어쩌자는 거요!”“꺾지 않았소. 힘을 빼시오.”화영약포 뒤 작은 뜰에는 물을 데우는 솥이 걸려 있었다. 뜰 북쪽 두 칸 중 동쪽 방을 환자에게 내주고, 왕진 온 의원은 서쪽 방에서 손을 씻었다. 약동은 두 방 사이를 오가며 젖은 천을 날랐다.소의가 들어서자 약포 주인이 손을 내밀었다.“객점에서는 그댁에서 낸다고 했다던데.”“얼마입니까?”곽진이 침상에서 고개를 돌렸다.“돈으로 끝낼 생각 하지 마시오.”소의는 품에서 전꾸러미를 꺼내다 멈췄다.“끝낼 일이 아닙니다. 우선 치료를 받으세요.”그녀는 약포 주인에게 오늘 쓴 약값과 방값을 따로 물었다. 받은 돈을 주인이 세는 동안 약동의 누이가 죽그릇을 들고 들어왔다. 동생과 닮은 둥근 이마에 땀이 맺혀 있었다.“뜨거우니까 조금만 기다리세요.”곽진이 성한 손으로 그릇을 낚아챘다가 놓쳤다. 죽이 이불 위에 쏟아졌다. 누이는 욕 한마디 하지 않고 그릇을 집었으나 방 밖에 나와서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소의가 빨래 광주리의 반대쪽을 들었다.“이건 제가 놓을게요.”“손 다치셨잖아요. 거기 두세요.”약동이 얼른 받아갔다. 소의는 손을 놓고 서쪽 부엌문을 비켜섰다. 문밖은 쌀가게와 함께 쓰는 배달 골목이었다. 쌀자루를 멘 사람이 지나가며 어깨로 문짝을 밀었다.혜진은 그 모든 소리를 듣고도 앉은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객점에서 곽진은 먼저 그녀의 팔을 잡았다. 명산이 현씨 집의 아내를 숨겼다며 따라오라고 했다. 혜진이 팔을 빼자 뺨을 쳤다.명산이 그를 밀어냈다.거기까지는 혜진도 말했다. 고환이 묻자 고개를 끄덕였고, 객점 주인도 보았다고 했다.그 뒤 곽진이 다시 손을 뻗었을 때 명산은 걸상을 들었다. 첫 번째는 팔을 막으려던 것이었다. 곽진이 벽에 부딪쳐 주저앉았다.그다음에도 걸상이 올라갔다.혜진은 그때 남편을 붙잡지 못했다. 방 안에서 아완이 우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에 명산이 멈췄다.“넘어지면서 다친 겁니까?”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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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화. 바늘값으로 얻은 방

윤채는 이불 두 채 중 얇은 것을 골랐다.두꺼운 솜이불은 시아버지에게 깔고, 자기 것은 접어 궤 위에 두었다. 허온이 그걸 들자 그녀가 손을 뻗었다.“그건 두고 가.”“밤에 춥잖아.”“다 못 실어. 솥도 가져가야 해.”문밖 손수레에는 약탕기와 장작 한 묶음이 먼저 올라가 있었다. 노인은 방문 앞 걸상에 앉아 그 짐들을 세었다.“내 것 때문에 그러니?”“아니에요. 방이 작아서요.”윤채는 노인의 버선을 고쳐 신겼다. 발뒤꿈치에 잡힌 천을 펴는 손이 서툴게 떨렸다. 밤새 바느질을 해서 손끝이 굳어 있었다.허온은 대리시에서 돌아온 뒤 한 번도 겉옷을 벗지 않았다.그날 아침 그는 추천장을 받은 것뿐 아니라 지난달 현씨 집의 부탁으로 책을 내준 일도 말했다. 열쇠를 돌렸고, 반납 날짜를 늦게 적었다. 약값 때문에 시작했다고 했으나 고환이 추천장을 언제 처음 부탁했느냐고 묻자 대답이 달라졌다.아버지가 쓰러지기 전이었다.혼적청 주사는 당분간 출근하지 말라고 했다. 열쇠는 돌아오지 않았다.윤채는 그 소식을 듣고 바느질감을 한 꾸러미 더 받았다. 남편이 보는 앞에서 품삯을 세고, 방을 빌려준 과부에게 먼저 건넸다. 병자를 들인다는 말에 주인이 난색을 보이자 의원이 다녀갈 길과 물을 길을 곳까지 직접 살폈다.“얼마를 냈어?”허온이 물었다.“닷새 치.”“그다음은?”윤채는 답하지 않고 솥뚜껑을 천으로 감았다.소의가 도착했을 때 경연은 집 앞에서 짐수레를 보고 있었다. 노탁이 좁은 골목에서 수레를 돌리다 담에 바퀴를 긁었다.드르륵.“그쪽 말고 앞을 들어요.”윤채가 소리치자 노탁이 얼굴을 들었다.“앞을 들면 뒤가…… 아, 잠깐.”경연이 반대편 수레채를 들었다. 두 사람이 조금씩 옮기자 바퀴가 돌 틈에서 빠졌다. 윤채가 그제야 짐을 얹었다.허온은 아버지를 업으려 했다. 노인이 아들의 손목을 잡았다.“네 일은 끝났니?”“아직입니다.”“그럼 어디로 가는 게냐.”허온은 무릎을 굽힌 채 대답하지 못했다. 소의가 노인 곁에 앉아 새 방에 낮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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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화. 치료비를 낸 여자

약동은 누이를 기다리다 부엌 문턱에서 잠들었다.해가 뜨기 전, 누군가 그의 발을 걷어찼다.“불 올려. 뜨거운 물 가져오라잖아.”아이가 벌떡 일어났다. 뜰 북쪽 진료방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약포 주인은 문지방에 서서 안으로도 밖으로도 움직이지 못했다.침상 끝에서 흰 천이 내려왔다.약동은 물바가지를 놓쳤다.철벅.소리가 나자 주인이 돌아봤다.“밤에 무슨 일 있었느냐?”아이는 고개를 저었다. 입술 안쪽을 씹고 있었다. 주인이 다가오려는데 정문에서 사람 부르는 소리가 났다.소의는 아침 약값을 물으러 왔다가 빈 죽그릇 앞에 멈췄다.“곽진 씨는요?”아무도 답하지 않았다. 주인이 흰 천 쪽으로 턱을 움직였다. 소의는 그제야 침상 둘레의 발들이 모두 바깥을 향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어제까지 죽을 더 달라던 사람이었다.그녀가 문틀을 짚었다.“의원은 오셨습니까?”“안에 계시오.”의원은 밤에 자리를 비웠다 돌아왔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살폈을 때의 상태와 지금 본 것을 구분해 말했으나, 방 안의 누구도 끝까지 듣지 않았다.“객점에서 맞은 게…….”“젊은 사람이 저렇게 가다니.”소의는 약동을 찾았다. 아이가 젖은 바닥에 쪼그려 앉아 바가지 조각을 줍고 있었다.“다칩니다. 그대로 두세요.”아이의 손이 멈췄다. 소의를 올려다보는 눈이 붉었다.그때 정문 밖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저 여자가 돈을 냈습니다.”석규는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골목 건너 짐수레 뒤에서 연경부 아전에게 손짓하고 있었다. 소의와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돌렸다.“피고발인 쪽에서 치료비를 대고 밤에도 사람을 보냈다지 않습니까. 죽은 사람이 무슨 말을 하겠소.”아전이 소의 앞으로 왔다.“치료비를 내셨습니까?”“예.”“명산이 부탁했소?”“아닙니다. 제가 냈습니다.”“무엇을 요구했소?”소의는 잠깐 대답을 놓쳤다. 약포 주인이 끼어들었다.“요구는 무슨. 돈을 안 내면 내가 외상으로 달아야 하는데.”아전은 주인의 말도 적었다. 소의에게 이름과 거처를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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